131집 (b)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131-B-1】

집회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말씀 몇 단락 읽겠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長久)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 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만 지키려고 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원 상태만 유지하려고 하면서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歷史)를 도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호호탕탕하여 용솟음치는 파도와 같고, 진동하는 우렛소리와 같은데, 네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만일의 요행을 바란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누렇게 된 너의 그 책 속의 글귀가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시대를 뛰어넘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찾을 수 있게 하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천당에 가게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잠시 너에게 위안이 되게 할 수 있는 글귀일 뿐, 네게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네가 읽는 글귀와 경문은 너의 혀를 충실케 하는 경문일 뿐, 인생을 알게 하는 철리(哲理)가 아니고 더욱이 너를 온전케 되게 하는 길도 아니다. 그런 차이가 설마 너를 반성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네게 그 속의 비밀을 깨닫도록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네 스스로 하늘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네가 스스로 천당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천륜지락(天倫之樂)을 누릴 수 있겠느냐? 지금 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권하겠다. 너의 그 꿈은 이제 그칠 때가 되었다. 너는 지금 누가 역사하고 있고, 누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생명도 얻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은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자신의 선택이 정확한지의 여부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도 모른다면, 너는 이 평범한 사람이 너에게 큰 도움이 되는지, 하나님이 매우 큰 사역을 하였는지의 여부를 왜 너의 운에 맡겨 보지 않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에게 알려 주겠다. 노아 시대의 사람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하나님은 한 차례 큰 물로 모든 사람을 멸해 버리고 오로지 노아 가족 여덟 식구와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만 남겨 두었다. 그러나 말세에 하나님이 남겨 두는 것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모든 사람이다. 다 똑같이 하나님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극히 패괴된 시대이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전혀 시인하지 않는 패괴된 인류이지만 하나님이 노아 시대의 사람은 모두 멸해 버렸고, 다 똑같이 하나님을 극도로 상심케 한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하나님이 말세의 사람에 대해서는 오늘까지 인내하였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너희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가? 너희가 정말 모른다면, 내가 알려 주겠다. 하나님이 말세의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 수 있는 것은 말세의 사람이 노아 시대의 사람보다 덜 패괴되었거나 하나님께 회개할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고, 더욱이 말세의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하나님이 멸하기 아쉬워서도 아니라, 하나님이 말세의 한 무리 사람들에게 할 사역이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이 사역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한 무리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를 택하여 그의 구원 대상과 그의 경영 계획의 결정체로 삼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을 데리고 다음 시대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치른 이 모든 대가는 말세의 성육신의 역사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너희에게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육신 가운데 살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존할 기회를 얻은 것인데, 이 모든 복은 다 이 평범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만국이 모두 이 평범한 사람에게 경배하고, 이 작디작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순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져온 진리와 생명과 길이 온 인류를 구원하였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갈등을 완화시켰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켰고,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소통시켰으며, 또한 그가 하나님으로 더 큰 영광을 얻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이 네가 믿고 앙모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는가? 이런 평범한 육신이 그리스도라고 칭함받을 자격이 없겠는가? 이런 평범한 사람이 사람들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발표가 될 수 없겠는가? 사람에게 재난을 면케 해 준 이러한 사람이 너희가 사랑하고 만류할 가치가 있지 않는가? 만약 너희가 그의 입으로 발표한 진리를 저버리고 또 그가 너희들 가운데서 생존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너희의 결말은 무엇이겠는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세의 그리스도는 진리로 만방의 사람을 가르치는데, 모든 진리를 그들에게 효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에 대해 매우 언짢아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너에게 알리겠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흔히 사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며, 모두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며, 사람의 머리는 마치 한 웅덩이의 썩은 물과 같아 생겨나는 것은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한 각 단계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각자에게 자기 자신을 금보다 더 중하게 여기지 말 것을 권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너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높은가? 다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사역은 대세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너의 ‘공로’로 인해 심판 사역을 반복하여 두 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면, 너는 후회막심해할 것이다. 만일 내가 한 말을 네가 믿지 않는다면, 너는 하늘의 그 희고 큰 보좌가 너를 ‘심판’하기를 기다려라! 너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예수를 저버렸고 다 예수를 부인했어도, 예수가 인류를 구속한 사실은 우주와 땅끝까지 널리 전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이 아닌가? 만일 네가 아직도 예수가 와서 너를 천당에 데려가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너를 매우 완고한 썩은 나무라고 한다. 예수는 너같이 진리에 충성하지 않고 복만 받으려고 하는 거짓 신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도 가차 없이 불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사를 것이다.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너는 다 깨달았는가? 네가 깨달았다면, 나는 네가 또한 고분고분 심판받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이끌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심판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정결케 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즉 심판 사역에서 도망간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혐오받아 버림받을 것이다. 그들의 죄상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중하고 더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효력할 자격마저도 없는 그 사람들은 더 심한 징벌을 받을 것인데, 영구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는 충성하면서 그를 배반한 어떠한 배신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ㆍ혼ㆍ체가 모두 징벌받는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닌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을 드러내는 목적이 아닌가? 하나님은 심판 기간에, 악을 많이 행한 사람들을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에 두어 악령이 마음대로 그들의 육체를 훼손하게 하는데, 그들의 육체에서는 시체의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야 할 보응이다. 하나님은 전혀 충성하지 않는 그 거짓 신도들과 거짓 사도들, 거짓 일꾼들의 각종 죄상을 그들의 기록 책에 일일이 적어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그들을 더러운 귀신 가운데 던져 더러운 귀신이 마음대로 그들의 온몸을 더럽히게 하며, 그들로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게 하고, 더 이상 영원히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한동안 효력은 했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않고 외식하는 사람들을 악인들 가운데 두어 악인과 야합하여 오합지졸이 되게 하며, 최종에는 그들을 멸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적이 없거나 힘을 조금도 바친 적이 없는 사람들을 한쪽에 던져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시대를 바꿀 때 모조리 멸해 버릴 것인데, 그들은 더 이상 땅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고, 마지못해 대충대충 대하는 사람을 자민(子民)을 위해 효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넣어 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소부분만 생존할 수 있고, 대부분은 효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훼멸될 것이다. 최종에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자민, 뭇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으로 제사장이 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인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가운데서 얻은 결정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분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은 다 이방인의 행렬에 들게 되는데, 그들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는 너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하였으니,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는 모두 너희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너희는 이런 말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다 무정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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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131-B-2】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가져온 생명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말세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이 혐오하는 대상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말세에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문이므로 아무도 피해갈 수 없으며, 아무도 그리스도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가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도에 순복해야지 복만 받으려고 하면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생명의 공급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가 말세에 온 것은 그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역은 옛 시대를 끝마치고 새 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있게 된 사역이며, 새 시대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인데, 네가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정죄하거나 모독하거나 핍박을 가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영세토록 불사름을 당할 대상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이 그리스도는 본래 성령의 발표이고, 하나님의 발표이며,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부탁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네가 말세의 그리스도가 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는 네가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보응은 말하지 않아도 사람마다 다 잘 알고 있다. 나는 또 너에게 알리겠다, 네가 만일 말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였고 말세의 그리스도를 저버렸다면, 너의 결과는 아무도 대신 감당할 수 없다. 또한 그때부터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너는 만회하려고 해도 다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대적한 이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니며, 네가 저버린 이는 작디작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너는 아느냐? 네가 한 일은 작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각 사람마다 진리 앞에서 날뛰지 말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오직 진리만이 너에게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너를 소생시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지금은 내가 각 사람의 결말을 확정할 때이지, 사람을 만드는 사역을 시작하는 단계가 아니다. 나는 각 사람의 말과 행위 그리고 각 사람의 따르는 노정과 원래의 속성 또는 그 최종의 표현을 하나하나 나의 기록 책에 적어 놓는다. 이리하여 어떠한 사람이든 모두 나의 손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모두 나의 배정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될 것이다. 내가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이가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관록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며, 받은 고난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사람의 가련한 정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모두 징벌받게 된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고, 그들 스스로 갖은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인해 보응을 받는다. 나의 계획은 시종일관 조금도 변동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말하는 대상이 점점 적어지고, 또한 진정 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갈수록 적어질 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말한다, 나의 계획은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지만, 사람의 믿음과 사랑은 계속 변하고 있고 계속 작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각 사람은 나에게 아부하던 데에서 냉담하게 대하고 더 나아가 나를 문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할 것이다. 나는 너희의 태도에 대해 미지근할 뿐이며, 내가 반감을 가지고 혐오할 정도에까지 이르면 마지막에는 징벌한다. 하지만 너희를 징벌하는 날에 가서 나는 여전히 너희를 볼 수 있어도 너희는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이미 너희들 가운데서의 삶에 대해 너무 무미건조하고 답답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너희의 악한 말에 상처받는 것을 피하고, 또한 더러워 차마 보기 어려운 너희의 행위를 멀리하기 위해, 너희가 계속 나를 속이고 형식적으로 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연히 다른 생활 환경을 선택한다. 내가 아직 너희를 떠나기 전에 나는 여전히 너희에게 권한다,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일을 하지 말며,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일과 자기의 귀숙에 대해 유익한 일을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재난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다.

나의 긍휼은 나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버리는 사람에게 나타낸다. 그러나 그 악인들이 받는 징벌은 바로 나의 공의로운 성품의 증거이고, 더욱이 나의 진노의 증거이다. 재난이 닥칠 때, 나를 대적한 모든 사람은 기근과 온역 가운데 떨어져 애곡할 것이며, 온갖 악을 행하면서 오랫동안 나를 따른 그 사람들도 죄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천만년 이래 보기 드문 재난 가운데 떨어져 흉흉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르면서 나에게 일편단심으로 충성한 그 사람들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할 것이고, 나의 큰 능력을 찬송할 것이며, 상쾌한 심정을 이루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이고,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 베풀어 준 적이 없는 즐거움 속에서 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의 선행을 귀히 여기고, 사람의 악행을 몹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를 오늘까지 인솔하면서 나와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는 한 무리 사람들을 얻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나는 나와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지 않는 그 사람들을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고 항상 마음으로 미워하였는데, 다만 기회를 기다려 그 악행에 보응할 것이고 이로 인해 즐거워할 것이다. 오늘 나의 날이 마침내 왔으니, 나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마지막 사역은 내가 사람을 징벌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귀숙을 안배하기 위한 것이고, 더욱이 모든 사람에게 나의 행사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다. 나는 각 사람에게 내가 한 모든 것이 옳다는 것을 보게 하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에게는 멸망과 재해의 침습밖에 없을 것이고, 아무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푸르른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게 된다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사역을 하였는데, 사람이 얼마의 선행으로 나에게 보답하기만을 바란다. 비록 나에게 보답하는 사람이 매우 적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인간 세상에서의 여정을 끝마치고 곧 전개할 다음 단계 사역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바쁘게 보낸 것이 이미 결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아주 만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에 두는 것은 인원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람의 선행이다. 어쨌든, 나는 너희가 자신의 귀숙을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기 바란다. 이래야 내가 만족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모두 재난의 엄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재난은 나로부터 시작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하게 보이지 못한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환난 가운데서 너희의 모든 행위는 완전히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희의 믿음과 사랑은 다 텅 비었고, 단지 비겁함이나 강인함을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에 대해 단지 아주 좋다거나 나쁘다는 평가만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여전히 너희 각 사람의 모든 행위와 표현이다. 이것으로써 너희의 결말을 정한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분명히 알려 주려고 하는 것은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해 조금도 충성심이 없는 그 사람들에게 나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긍휼은 다만 여기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이전에 나를 배반했던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고, 더욱이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사람과 왕래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상관없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지 나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을 수 없으며, 누구든지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나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의 귀숙을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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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131-B-3】

여러분들과 이렇게 진리를 교통하면 저는 정말 기쁩니다. 왜 기쁠까요? 왜 기쁜지 아세요? 피조물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말세에 나타나 사역을 하셨습니다. 바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의 심판 사역을 시작하신 겁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교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이 말을 인정하지 않죠.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참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시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반드시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교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이런 말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주님은 예수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여 죄 사함을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만 지키고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말세에 신랑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신랑을 맞이해 신랑을 따라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 들림받는 거고, 천국에 갈 기회가 있는 겁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고 미련한 처녀는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그럼 미련한 처녀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버려지고 도태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슬기로운 처녀만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진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확실히 오셨다는 걸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이 그와 더불어, 그가 주님과 더불어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정결케 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이끌려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라고 고집하는 자들은 꿈꾸는 자들이 아닌가요? 이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라는 이름 세 글자만 붙잡고 있으면서 주님이 말세에 다시 오셔서 하는 사역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미련한 처녀입니다. 완전히 도태될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에 무엇이 제일 관건이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순복하고 경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이름을 주셨죠! ‘예수’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 ‘구원’은 어떤 구원입니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정죄받고 저주받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걸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 율법을 어겨도 정죄받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신다는 얘기입니다. 그건 율법의 저주에서, 율법의 권세 아래에서 벗어나 죄 사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 예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죠? 주님께서 말세에 다시 와서 어떤 사역을 하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말세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게 들림받아 천국에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셨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신 겁니다. 말세에 심판 사역으로 뭘 가져다 주셨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주셨습니다. 왜 말세 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의 길을 주셨다고 할까요? 예수님도 사역하실 때에 많은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럼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은 왜 영원한 생명의 길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체험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다음에도 왜 사람은 늘 죄를 지을까요? 왜 날마다 죄짓고 회개하고, 회개하고 죄짓는 악순환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요? 왜 육체의 사슬과 죄성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의 형상대로 사는 삶을 살지 못할까요? 이런 곤혹스러운 문제는 은혜시대에 오랫동안 주님을 믿어 왔던 사람들은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럼 말세에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어떤 사역을 하시려는 걸까요? 주님이 예언하신 것이 있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2~13) 이 예언이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깨닫고 진입해야 할 모든 진리를 다 주셨습니다.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게 진리의 성령이 발표하신 게 아닌가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모든 진리, 인류가 반드시 갖추어야 되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셨습니다. 이런 진리가 바로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간단하게 영생의 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불로장생할 영생의 길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그 길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결론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래도 의학을 연구하고 보건 기술을 연구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사람의 먹을거리가 건강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100세까지 사는 건 문제 없다고 합니다. 그럼 100세까지 사는 게 영생인가요? 그건 영생의 길이 아닙니다. 그럼 여러분, 하나님께 영생의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하나님께 영생의 길이 있다는 건 어떻게 확정할 수 있습니까?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입니다. 하나님께 연령이란 개념이 있던가요? 하나님께 연세가 있나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영원까지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에겐 연령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이신 겁니다. 둘째,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시면 꼭 있게 되고, 세워지라고 명하시면 세워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일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해와 달, 별들이 존재한 지는 얼마나 오래됐죠? 연한이 없죠.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영생이시고, 하나님께 영생의 길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에게 몇 살까지 살라고 명하시는 건 한 마디면 이뤄지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히 죽지 말라고 한 마디만 하시면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권병을 지니고 계시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께 영생의 길이 있지 않나요?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이 아니신가요? 그리고 또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있으라고 하시면 생기고, 세워지라고 명하시면 세워지는 겁니다. 각종 동물과 생물 그리고 각종 생명체를 보면 전부 수명이 있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겁니다.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게 아닌가요?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서 정말 진리를 얻게 되면,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이 진리를 다 분명하게 제대로 먹고 마시고, 마음에 새기고, 생명으로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받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다는 건 어떻게 칭찬받는다는 말입니까? 바로 영생을 얻게 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겁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럼 불신파들은 뭐라고 하죠? 그건 과학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이 말이 성립이 되나요? 과학은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파만이 과학 이론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여러분은 과학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이방인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과학을 믿을까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있든,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걸 알고 있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걸 알고 있고, 천지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실 권병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확신하고 있고,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이방인들보다 복받은 사람인 겁니다. 우리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해서, 그분의 권병과 능력, 그분은 사람을 어떻게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는지, 궁극적으로 어떻게 사람을 축복하시고 사람에게 약속하신 게 뭔지, 이런 걸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의심 없이 완전히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방인들보다 복받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가 정해졌고 결말도 정해졌습니다. 우리와 이방인들의 차이점이 바로 이게 아닌가요? 바로 하나는 믿고 하나는 믿지 않는 것에 따라 두 부류 사람들의 결말이 확정되는 겁니다.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게 간단한 일일까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믿고 한 사람은 믿지 않아서 이혼하고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부자간에 한 사람은 믿고 한 사람은 믿지 않아서 서로 얼굴을 붉히고 적대시하다가 남남처럼 지내면서 각자 갈 길을 가게 되는 가정이 있습니다. 왜이겠습니까? 상대방이 믿으면 내가 안 믿고, 내가 믿으면 상대방이 안 믿고, 이렇게 가는 길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통언어가 없어서 같이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 하시는 사역에 따라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취하신 이름이 뭡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린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고,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조물주께서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에 오셔서, 진리를 발표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에 발표하신 진리를 보게 됐고, 또 하나님께서 이 세대를 어떻게 끝마치시는지, 마지막에 재난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을 어떻게 훼멸하시는지에 대한 말씀도 보게 됐습니다. 거기에서 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마치신 다음, 그러니까, 구원해야 할 사람을 다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신 다음, 재난으로 이 인류를 훼멸하려 하신다는 걸 보게 됐습니다. 한 방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인류를 철저하게 구원하는 사역을 위해 오셨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이 세대를 끝마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다음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천년 하나님 나라(역주: 천년왕국)가 인간 세상에 임하는 겁니다. 그렇게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끝나는 모든 예언입니다. 계시록을 보시면 어디서부터 시작되나요? 예수님께서 말세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은 자신이 어떻게 다시 오시는지, 교계의 교파 교단은 전부 그 일곱 교회로 나뉘며, 그다음 빌라델비아 교회는 들림받고, 나머지 교회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이 이렇게 시작되는 게 아니었습니까? 말세 사역의 시작에서 말세 사역이 끝나기까지입니다. 끝난 다음 마지막 예언은 뭐였습니까?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거,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고, 생명수의 강물이 보좌에서 흘러나오며, 새 천년의 나라 풍경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 경영 계획에 대한 예언서라고 합니다.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음성을 발하여 말씀을 시작하시는 것부터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며 끝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린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인류가 말세에 구원받는 것에 있어 유일하게, 또 반드시 의존해야 할 이름이고, 하나님이 말세에 나타나신 이름이며, 또 사람이 국도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안내자이자 하나님 나라의 문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에서, 하나님이 전 우주에 공개하신 행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사탄을 경배하는 자는 다 나의 불사름 속에서 넘어질 것이다. 즉, 지금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잿더미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 믿지 못합니다. ‘그럴 리가 없어!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셔! 아기들, 어린 애들은 순진무구하고 죄성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다 멸하시겠냐?’라고 합니다. 그게 맞는 말일까요? 하나님의 뜻에 맞는 말인가요? 어떤 사람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하면서 이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그럼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께서 나타나 사역하신 뒤로, 2천년 동안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전쟁과 재앙이 발생하고, 어른에서 아이들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이건 어떻게 해석할 겁니까? 그럼 그건 예수님이 내리신 재앙이 아니고 사탄이 한 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게 합리적인가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노아시대에 강포가 온 땅에 가득해서 하나님께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까지 갔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끝날이 이르러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셨을 때 의인은 노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나타나 방주를 만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 세대가 너무 사악하다. 강포가 땅에 가득하니 내가 이 인류를 멸하겠다. 너는 방주를 짓고 너의 가족 여덟 명과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정결한 것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방주로 데리고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뜻이 대략 이렇습니다. 그게 노아가 5백살이 된 다음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방주가 완성됐을 때 노아는 마침 6백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가족 여덟 명과 각종 생물이 방주에 들어간 뒤에 하나님은 홍수를 나게 하셨습니다. 비를 40주야 내려서 사람과 모든 생물이 다 물에 잠겼습니다. 방주에 들어간 자들만이 구원받고 살아남았습니다. 이게 사실이 아닌가요?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또 어떤 사람은 말하겠죠. “아니에요. 그건 사실일 수 없어요,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니까요. 아기들, 어린아이들은 죄성이 없기 때문에, 그 아이들은 죽으면 안 되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잘못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건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르면 안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긍휼 자비의 성품조차도 사람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많은 일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감히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으시다고 논단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가 없다고 논단할 수 있겠습니까? 설마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전능하다고 여기는 겁니까? 그리고 인간의 육의 눈으로 뭘 볼 수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물질세계의 겉모습이겠죠. 빌딩이 무너지고,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의 육체가 맞아 죽고 깔려 죽고 홍수에 빠져 죽고, 이런 것들만 볼 수 있겠죠. 그 뒤에 숨겨진 영계에서 그 영혼들은 다 어떤 영혼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영혼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처리하시는지 아십니까? 육체가 죽는 걸 잔혹하다고 여기는데, 사실, 육체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겁니다. 그리고 인류는 죄를 졌기 때문에 당연히 죄값을 받아야죠. 반드시 죽어야 되는 겁니다. 어떻게 죽든, 얼마나 비참하게 죽든 그건 사람의 육체가 받아 마땅한 징벌입니다. 제 말이 맞지 않나요? 사람이 인류의 육체가 죽는 모습이 비참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거나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 합당합니까? 사람은 하나님이 배후에서 각종 영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어떻게 안배하시는지를 모릅니다. 육체가 죽었다는 건 사람이 하는 말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거두어들인 겁니다. 다른 안배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신 다음에 어떻게 안배하시든, 다 하나님의 공의이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걸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두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겉모습으로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논단하고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가 없다’고 논단하는 건 잘못된 겁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논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원칙에 맞지 않고 사실에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계의 일은 사람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계의 일은 천사가 알고, 각종 악령이 알고, 사탄이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많은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찾고 구해야 되는 겁니다. 무작정 논단해서는 안 됩니다.

【131-B-4】

교계를 봅시다. 유대교의 바리새인,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맹목적으로 논단했었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논단했을까요? 왜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많은 진리를 발표하셨고 그들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을까요?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하나님을 믿은 1세대 사람들인 거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2세대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고, 마지막 세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믿습니다. 그들은 1세대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그들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그들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예수님을 논단한 게 아닌가요? 가장 주요하게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까요? 주님께서 자신은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자신 안에 계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발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유대교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참람한 말을 하는도다!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하다니, 우린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면서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치대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다, 바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 안에서 말씀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이치대로 말하면 바리새인과 제사장, 서기관들은 다 무엇입니까? 다 사람 아닙니까! 그러면 빨리 예수님 앞에 엎드리고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순복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만하고 독선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첫째면 자신은 둘째 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예수님의 권병에 순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순복되지 않은 거죠! 순복이 안 되면 광적으로 정죄하고 대적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그들은 어떤 것 때문에 죽게 됐습니까? 완고하게 광적으로 예수님 즉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것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바로 저주받은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의 결말은 뭘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대적하면 죽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적하면 죽는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시대에 주신 이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지 못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저주받고 징벌받는 건 정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계 안에도 보면, 경건한 사람도 많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결혼하지 않고 주님 위해 화비하고 봉헌하는 처녀 총각들도 얼마나 많은데, 설마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다 죽겠냐고 합니다. 그게 맞는 말인가요? 그들이 죽으면 왜 안 되는 겁니까? 그런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겁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권병보다 더 큰가요?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도 죽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황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교의 대제사장도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해서 여지없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죽은 겁니다”. 대제사장의 지위가 높지 않습니까? 수도원의 수녀보다 훨씬 더 높죠? 교계의 목사, 전도사보다 훨씬 더 높죠? 온 유대교에 한 명밖에 없는 대제사장입니다. 높지 않나요?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알아야 될까요? 소질이 좀 뛰어나고 총명한 사람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봐야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든 다 피조물에 속합니다. 어느 종교의 교주든, 목사나 전도사든, 제사장이나 선지자든, 천사까지 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께 저주받고, 결국 훼멸됩니다! 천사는 높지 않나요?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해도 하나님은 가차없이 하늘에서 땅으로 쳐버리십니다. 사탄의 악령무리가 바로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이게 사실이 아닌가요? 일개 피조물이 다 뭡니까? 그런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도 죽지 않는답니까? 전에 하나님을 사랑했었고 경건했었고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공을 세웠으면 하나님을 대적해도 죽지 않는다는 겁니까? 이런 이론이 성립되나요? 성립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도 합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셔요, 정말 경건한 사람들이에요! 평생 경건하게 살면서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실 때 어떻게 정하시죠? 알고 계신가요? 우리,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지금은 내가 각 사람의 결말을 확정할 때이지, 사람을 만드는 사역을 시작하는 단계가 아니다. 나는 각 사람의 말과 행위 그리고 각 사람의 따르는 노정과 원래의 속성 또는 그 최종의 표현을 하나하나 나의 기록 책에 적어 놓는다. 이리하여 어떠한 사람이든 모두 나의 손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모두 나의 배정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될 것이다. 내가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이가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관록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며, 받은 고난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사람의 가련한 정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모두 징벌받게 된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고, 그들 스스로 갖은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인해 보응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실 때, 무엇에 근거하십니까? 제가 이 단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내가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이가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나이가 많고 적고에 근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시는 건, 즉 조물주께서 각 사람에게 귀숙을 정해 주시는 건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책임 있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왜 하나님은 가장 공의롭게, 가장 거룩하게, 가장 책임 있게 일을 하신다고 할까요? 첫째, “나이가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자에게는 좋은 귀숙을 주고, 나이가 어린 자에게는 좋은 귀숙을 주지 않는다”, 이런 것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 “관록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관록의 많고 적음’은 뭘 말합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시간도 오래 됐고, 일도 많이 했고, 지위도 있고 덕망도 높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지하는 사람이고, 인간관계도 좋다.”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근거하지 않으십니다. 세 번째, “받은 고난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고생’이란 건, 그 사람이 주님을 믿으면서 박해를 많이 받은 걸 얘기합니다. 핍박과 환난을 비교적 많이 받았거나 옥살이를 한 시간이 비교적 오래 되었거나 또는 복음을 전하러 다닌 곳이 많거나 이방인들의 비난과 논단과 핍박을 많이 받았다는 얘깁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정하실 때, 이런 것에 근거하지도 않으십니다. 네 번째, “가련한 정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가련한 정도’라고 하는 건 바로 진리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은 길고, 심혈도 많이 기울였고 심성도 괜찮습니다. 누가 봐도 불쌍한 생각이 들고,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정하실 때, 이런 것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귀숙과 결말을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해 정하십니다. 다른 것에 근거하지 않으십니다. 아셨나요? 그럼 어떤 사람은 “왜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만 근거하고, 다른 것에 근거하지 않으시냐? 고난받은 거나, 관록이나 나이나 그런 것에는 왜 근거하지 않냐?”라고 물어 보겠죠! 여기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다 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실질, 사람의 본성 실질, 인성이 있고 없고의 실질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판단할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잘 생기고 아름답게 생긴 사람이면 인성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 말이 맞나요? 또 누군가 말합니다. “그 사람은 나이도 많고 고난도 많이 받아서 인성이 좋아요.”, 이 말이 맞나요? 또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인간 관계도 잘 맺고, 명성도 좋아서 인성이 좋아요.”, 맞나요? 사람의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는 어떻게 확정해야 합니까? 바로 진리를 사랑하느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고 참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인성이 좋지 않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드러내는 시금석이고 분수령입니다. 진리에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사역에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나게 됩니다. 본분에서도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아셨죠?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무엇으로 판단합니까? 우리는 대다수의 좋은 사람들이 너무도 온순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음도 참 착한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해 주고, 거지나 소외 계층을 불쌍하게 생각해 줍니다. 심지어 애완동물까지 불쌍하게 생각해서 유기견이나 길고양이까지 다 입양합니다. 누가 닭이나 오리를 잡는다면 돈을 주고 사서 살려 주고, 물고기를 잡는 것을 봐도 산 것은 사다가 다시 방생해 줍니다. 이만하면 정말 착한 거죠? 근데,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인가요? 그건 정말로 착한 게 아닙니다. 정말로 착한 건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건 바로 생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생명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이 없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착한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보면 평소에 수다 떨 때는 늘 환하게 웃는 얼굴로 온화하고 친절하다가도 일단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진리를 교제하면, 곧바로 눈이 커지면서 광적으로 정죄하고 대항합니다. 진리만 언급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듭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입니까? 마귀가 아닙니까? 전형적인 마귀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사람을 분별할 줄 모릅니다. 계속 겉모습으로만 판단을 합니다. 그러면 쉽게 속겠죠? 사탄 마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 제일 착해 보이는 말, 배려해 주는 말들을 다 할 줄 압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뭘 할 때 되면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의 겉모습이나 겉으로 말하는 것으로는 사람의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없고,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계에서 경건하다고 하는 사람들, 성경의 진리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을 봅시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평생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화비했습니다. 근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시니까 눈에 쌍심지를 켜고 거부하고 정죄하고 대적합니다. 어떤 사람들이죠? 바로 마귀가 원형을 드러낸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닌데요! 그분들은 예전에 주님을 위해 많은 걸 포기했어요, 그러면서도 보수도 바라지 않았다고요. 그게 주님을 사랑하는 게 아닌가요?”, 이 말이 맞나요? 틀렸습니다. 왜 틀렸죠? 그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화비한 것은 목적이 있고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득이 없으면 일찍 일어나는 법이 없죠! 그들도 바울처럼 천국에 가고, 상을 받고 면류관을 받기 위해 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한 사람인가요?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을 수 있었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게 아니었다면 자신만의 속셈과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죠? 그 속셈과 목적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서 면류관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후로는 날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됐을 거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딤후 4:7~8) 바울은 사역의 끝자락에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바울이 고난받고 화비했던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하는 동안 예수님의 사랑스러우심을 증거한 적이 없고,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한 적이 없고, 예수님의 소유소시와 성품을 증거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본다면 바울은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을 사랑했었나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늘 증거했겠죠. 바울은 자신을 증거하기 좋아했고, 항상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했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사랑했었다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겁니다. “제가 그동안 누굴 위해 고난받았는지 아시나요? 예수님을 위해 받은 겁니다. 전 예수께서 절 너무 사랑하신다는 걸 봤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주저하고 예수님의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사람이라 칭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저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뵐 면목이 없고 주님의 나타나심을 영접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했어야죠! 근데, 바울이 쓴 많은 편지에 이런 말이 한 마디라도 있나요? 바울이 수많은 편지를 썼지만 아무리 봐도 이런 말은 한 마디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사역하고 화비한 사실과 우리가 본 결과에 따라 교계에서 주님을 위해 화비하고 사역하는 사람들, 바울을 숭상하는 모든 사람들, 바울처럼 추구하면서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늠해 봅시다. 그 사람들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인가요? 그들이 주님을 위해 수고하며 사역한 것과 그들이 말하는 경건함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주님과 거래하는 것이고, 전적으로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화비한다 한들, 수고하며 사역을 한다 한들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실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귀숙을 결정할 때 뭘 근거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뭘 근거로 그들의 결말을 정하실까요? 여기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이가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관록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며, 받은 고난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사람의 가련한 정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는 것이다……”,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란 뭘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걸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 궁극적으로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대로 실행하는 걸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통행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주를 위해 화비하고 고난받는 사람, 하나님을 흡족케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든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는 사람, 행하는 모든 것은 뭘 얻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사람, 그러면서 “우리는 예전에 다 패괴된 인류에 속하고 많은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 득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제는 진리를 깨닫게 됐으니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살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고난받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런 사람이 진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하거나 이기적이고 비열한 목적을 위하거나 더욱이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진정 진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될 수 있게 하기 위해 고난받고 화비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화비하고, 이렇게 고난 받고, 이렇게 사역하고, 이렇게 지불하는 대가는 진리가 있는 간증이고, 진리가 있는 증거입니다.

【131-B-5】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면 그 마음가짐과 목적이 다릅니다. “난 면류관을 위한 것도 아니고, 상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야. 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될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거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려고 하는 거야.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지불하신 대가가 너무나 많아, 너무 많은 고난을 받으셨어.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난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라고 합니다. 그럼 본분을 다 했을 때는 이미 늙었고, 또 죽는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으니 “하나님의 안배대로 하겠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제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입니다.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진리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정결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복을 얻고자 하는 속셈이 없고 자신의 전망과 운명을 위해 분투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정결케 된 게 아닐까요? 정말 정결케 된 것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들이 재산을 빼앗거나 물려받기 위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키워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효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인품이 어떻습니까?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부모에게 효도하겠습니까? 재산을 물려받고 빼앗으려고 효도하는 것입니다. 이것 보세요, 그런 마음가짐은 어떻습니까?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습니까?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유익한 점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탄 마귀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더 이상 사탄에게 묶여 있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제일 주요한 건 진리란 뭔지, 그러니까 무엇이 진리인지, 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진리가 인류에게서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고,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 우리들의 어떤 것을 정결케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온전케 할 수 있는지, 우리를 무엇으로 만들 수 있는지입니다. 이런 것을 통찰할 수 있나요? 이런 걸 분명히 깨달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기꺼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진리를 얻는 건 지식을 배우는 것과 다릅니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든 3년, 5년, 아무리 길어도 10년 정도 배우면 거의 다 배웁니다. 하지만 진리는 3년에서 5년 정도 추구하면 그 길을 좀 찾게 됩니다. 3년에서 5년 정도면 효과를 조금 볼 수는 있지만 진실로 완전하게 진리를 얻으려면 평생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진리의 가치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하고 왜 진리를 추구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진리이고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가 뭔지를 몰랐고, 맹목적으로 진리를 정죄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이 방면에 대해 여러분과 교통을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읽은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의 귀숙을 정하시는 데에 관한 가장 관건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귀숙을 정하실 때는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정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진리란 무엇이냐, 도대체 무엇을 진리라고 하느냐, 하나님은 왜 사람의 귀숙을 정하실 때 다른 건 안 보시고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만 근거하시냐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평생 수고하며 사역했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무조건 들림받아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들림받지 못한 거죠. 주님께서 그들을 한쪽에 버려두시고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때부터 주님을 의심하고 심지어 주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사람이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서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일하고, 수고하고 대가를 지불해 놓고는 주님께 상을 바란다면, 너무 그릇되지 않습니까? 그건 사람이 그릇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사람이 그릇되고 망령되면 치우치기 쉽고, 착오가 생기기 쉽고,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꼭 이럴 거다, 꼭 저럴 거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 보면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죠! 판단을 잘못하면 어떤 경우에는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말하자면, “전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겠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수님의 이름이 더 믿음직스러워요, 성경적 근거도 있고요. 전 그냥 성경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생각 하나의 차이로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습니다. 결과는 징벌을 받아서 버려졌고 천국에 들어갈 기회도 잃게 됐습니다. 천국의 꿈이 철저히 깨지고 만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죠? 생각 하나의 차이입니다! 대세의 흐름을 따라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면 끝입니다. 무조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교의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주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습니다. 유대교 신자들도 다 교계의 지도자들을 따라 주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유대라는 나라는 훼멸됐고, 유대교는 2천년 동안이나 황폐했습니다. 그게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닌가요? 생각 하나의 차이로 예수님을 부인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재앙이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시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드러내는 시련이 다시 한번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계 목사 전도사들의 말을 따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계속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결국 교계는 황폐해졌고, 큰 바벨론이 됐습니다. 큰 바벨론으로 됐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바벨론은 이방인의 성입니다, 훼멸된 성이죠. 교계가 이방인의 큰 성 바벨론이 됐다는 건 바로 하나님이 그들을 전부 이방인으로 처리하고 불신파로 처리하신다는 뜻입니다. 전부 훼멸하신다는 뜻이죠.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몫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사람의 말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몇 페이지 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건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많은 목사들과 영적 위인들의 책들을 봤지만, 이런 말씀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직감이 있는 사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처녀가 아닌가요? 슬기로운 처녀는 어떤 면에서 슬기로운 걸까요? 하나님의 음성임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직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임을 인식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이 오셨고 영체가 아닌 육신에 오셨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셨는데, 그 음성을 들어보니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님의 음성이었어요. 그분이 말씀을 하실수록, 우린 더 많은 걸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이 바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오셨다는 걸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음성을 발하셔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근데 받아들인 사람들이 실제로 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교계에서 나온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고집하지 않고 ‘주 예수’라는 이름만 붙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돌아오신 예수님이 맞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에 내놔도 다 기적입니다. 근데 그릇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중국에 오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중국은 독재국가 아닙니까. 우리 나라보다 후진국입니다. 하나님이 중국에 계신다면 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민주 국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곳에 오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게 맞는 거죠. 독재 국가는 낙후한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에 오셨다면 안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만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셨다고 해도 자기 나라에 오신 게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성정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 관념에 부합돼야 한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조물주이십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셔서 하신 말씀을 보고는 확실히 하나님의 음성이 맞다고, 진리라고 합니다. 근데 하나님이 중국 사람으로 성육신하셨다는 이유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미국 사람, 영국 사람, 프랑스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죠.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받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누구 탓일까요?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한 탓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이 너무 그릇되고 교만한 탓일까요? 자기가 교만한 걸 탓해야 됩니다. 자업자득이죠. 운이 나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교만하라고 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안 믿는다고 하면서 교계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안 받아들였으니 자기도 안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또 교계 흐름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온 교계를 훼멸하시는지 두고 보겠다고 하죠. 이렇게 하나님께 도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렇게 도전하는 사람은 어떤 성정이죠? 너무 교만자대합니다. 감히 하나님께 도전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얘기 중에서 어떤 건 인정하고 어떤 건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인정하고 안 하고는 개인이 터득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하는 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나머지는 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깨닫고 인식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은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복하고 대항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한다면 손해 보는 건 누구겠습니까? 손해 보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이 없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지휘하는 대로 움직이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도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를 돌아봅시다.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기까지 대략 10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100년은 노아가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한 100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100년 동안 노아를 통해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려 한다는 증거를 들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근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노아, 너 미쳤구나.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앉았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다는 말씀을 왜 너한테만 하신 거야? 어떻게 멸하시는데? 우린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살아오면서도, 홍수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 하나님께서 왜 하필 너한테만 말씀하시고 우리한텐 왜 안 하신 거야? 난 이거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 하나님이 우리한테도 말씀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을 봤다면, 그럼 믿을 거야! 근데 하나님이 너한테만 말씀하시고 우리한텐 말씀 안 하셨으니 믿지 않을 거야! 우린 불가능하다고 봐.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데. 네가 하는 말 증거 있어?”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을까요, 적었을까요? 틀림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 노아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 노아를 믿어 주지 않았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네가 방주를 다 만든 다음 홍수가 나는지 지켜보겠어. 그리고 홍수가 안 나면 그때 가서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거야.”라고 말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난 인정 못해. 하나님이 어떻게 홍수로 멸하는지 한번 두고 보겠어.” 이렇게 따지고 드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틀림없이 있었을 겁니다. 어느 날, 방주가 다 완성되고, 각종 동물들이 방주에 다 들어가고 노아 일가 여덟 식구도 다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과 동물들을 방주에 들여보낸 다음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40주야를 내리셨죠. 40주야면 물이 얼마나 됐을까요? 그 당시 하늘 아래 제일 높은 산까지 다 물에 잠겼습니다. 그러니까 키가 제일 큰 사람이 산 정상에 서 있어도 잠겨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때 어린아이들이 많았을까요, 적었을까요? (많았습니다.) 틀림없이 많았습니다. 다 물에 잠겨 죽었습니다. 성경에 12살 아래의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 긍휼과 사랑이 없으신 걸까요? 하나님의 성품이 자비롭고 긍휼이신 건 맞습니다. 하지만 공의롭기도 하십니다. 율법시대를 보세요. 하나님을 증오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3, 4대까지 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복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증오하고 광적으로 대적하는 자들의 후손이 축복을 받을까요? 만약 그런 사람의 후손이 마침 한두 살, 즉 열두 살도 안 된 아이라면 멸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 아이들은 왜 멸망당했을까요? 그건 그 조상이 하나님을 증오하고 대적해서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또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워서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긍휼과 사랑이기에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이 다 있습니다.

우리, 그러면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신 다음을 봅시다. 니느웨라고 하는 성읍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요나를 그 성에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40일이 지나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멸하실 것인데, 지금 회개해도 늦지 않다고 알리게 하셨습니다. 성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게 됐고, 왕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왕은 백성들을 이끌고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성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요나는 가기 싫어했습니다. 왜 가기 싫어했을까요? 요나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어.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축복해 주시지 말아야 돼! 너희 같은 이방인들은 아예 싹 다 훼멸되는 게 맞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참 옹졸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옹졸하고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징계하신 뒤에 다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다시 갔죠. 요나가 말씀을 전하니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습니다. 온 성이 다 회개했고, 그래서 다 용서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11)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이 만을 보시고 차마 그들을 멸하지 못하셨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가 있지 않습니까?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소돔 성 하나가 전부 훼멸됐다고 해서 하나님께 공의와 위엄만 있고 긍휼과 자비는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니느웨 성은 예외적입니다.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이 만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 사람들이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께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해 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성을 멸하지 않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131-B-6】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한 가지 일만 가지고 볼 게 아니라 많은 일에 비춰 봐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이 얼마나 사악해졌는지 한번 봅시다. 소돔성에 비하면 어떻습니까? 이 세상은 너무나 사악합니다. 많은 나라들을 보세요, 하나님을 환영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계에도 하나님을 환영하는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어느 교단의 목사가 신자들을 데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찾고 구한 적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우리가 오래 기다렸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목사부터 평신도까지 당신을 영접하려고, 당신의 사역을 받아들이려고 왔습니다. 당신께서 저희 교회로 와 주십시오.” 이렇게 하는 교회가 있나요? 이런 나라가 있습니까? 이런 민족이 있습니까? 이 세상, 이 인류가 하나님이 오시는 걸 환영합니까? 하나님이 오시는 걸 환영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제대로 보셨죠? 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외국의 어느 형제님이 제 교통을 듣고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형제님이 하신 교통에서 어떤 건 맞습니다. 근데, 어떤 건 틀렸어요. 그래서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도 듣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서양 사회는 자유 민주 제도입니다. 그래서 별의별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 다 있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고, 각자 자신의 관점을 얘기합니다. 있는 관점대로 서슴없이 말합니다. 제가 맞게 말하는 부분은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습니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말하는 내용이 자기 관념에 맞고, 진리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인류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좋지 않죠? “당신이 말하는 내용이 전부 다 진리에 맞다 해도 그 중에 한 가지가 진리에 맞지 않으면 난 더 이상 듣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한 마디라도 틀린 말을 하고, 한 마디라도 내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난 인정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거절할 겁니다.” 이런 사람은 곤란합니다.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전부 다 정죄했습니까? 전부 다 정죄한 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대부분 인정했습니다. 아니면 주님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다란 말을 하지 않았겠죠. 권세와 능력이 있다고 한 건 인정하는 게 아닌가요? 바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랬으면서도 왜 예수님을 정죄했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고, 하나님이 자신의 안에서 말씀을 하시고, 하나님 자신의 일을 행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이잖아?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셨으면, 대제사장보다 더 높다는 얘기잖아? 그 말은 용납할 수 없어! 그 말은 참람한 말이다.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다니? 너무 교만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진리의 말씀을 하셨고, 그들에게도 권세와 능력의 말씀으로 보였지만, 그 말씀을 하셨다고 주님을 정죄한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발표하는 것은 괜찮아. 근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라고 하면 우린 당신을 정죄할 것이고 못 박아 죽일 것이다!” 이 인류는 너무 흉악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본 다음엔 가만히 있습니다. 어떤 태도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곳에서 “나는 인간 세상에 왔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뭐라고요?” 하고 “나는 성육신 되었다.”라고 하면, “뭐? 당신이? 당신이 누군데? 감히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해?” 난리가 납니다. 바로 정죄합니다. “이단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1인칭인 “나”를 보면 반대합니다. 만약 “나”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계시로 대할 것입니다. 근데, “나”라고 하시니까, “당신이 하나님으로 오셨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불가능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광적으로 정죄합니다. 그런 자들은 유대교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같은 부류입니다! 서로 쿵짝이 잘 맞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으신가요? 기억하세요, 갓 믿기 시작하신 형제자매님들은 제가 하는 말 중에 마음에 맞지 않는 말이 있을 겁니다. 그건 정상입니다. 근데, 교통하는 내용에 진리가 있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되면 많이 들어보세요. 많이 들으면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많이 듣다 보면 진리를 깨닫게 되고, 많은 일들을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있고, 어떤 일에서든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많이 듣다 보면 제가 하는 많은 말들을 인정하고 동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듣는 게 적으면 안 됩니다. 타이완의 어떤 형제님이 처음에 막 믿기 시작했을 때, 제 교통을 듣고 어떤 말은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다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좋은 면이 어떤 것인지 아세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진리입니다. 사람 말은 어떤 것은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 형제님은 연약해지지 않고, 실족하지 않고 계속 따르고 있습니다. 몇 년을 따른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통을 많이 들으니 유익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을 경력한 다음에 지금 다시 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구요.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형제님이 얘기했던 말씀을 생각해 보면, 다 받아들일 수 있고 다 아멘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실제 경력이 있고 생명 진입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말이 맞고 어떤 말이 틀렸는지, 무작정 정하지 말고 먼저 들어 봐야 합니다. 많은 일들은 경력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겁니다. 한 번에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60대와 20대가 대화를 하면 충돌이 생기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요? 서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틀림없이 많이 논쟁합니다. 근데, 60대끼리 대화하면 충돌되는 부분은 적습니다. 대부분 견해가 일치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 사람이 비슷한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알고 있는 것도 비슷하고, 관점도 비슷한 것입니다. 맞나요?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가 뭡니까?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부터 확정해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 소유소시의 발표이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의 발표이고, 하나님 생명 실질의 유로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이고 소유소시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생명 실질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진귀한 보물입니다. 진리로 사람에게 나타나는 효과는 사람의 패괴가 정결케 되고, 사람의 안에 있는 사탄 독소가 깨끗하게 되고, 사람 안에 있는 사탄의 독소, 사탄의 황당무계한 그릇된 논리가 전부 드러나고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사람을 깨끗하게 한 다음엔 또 사람의 생명이 됩니다. 사람이 얻은 진리가 생명이 되면 사람은 일을 보는 관점이 바뀝니다. 사람이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합하게 됐기 때문에 사람은 진리를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합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은 제일 사랑스러우시다. 사람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인류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건 뭘 말하는 겁니까? 바로 하나님의 생명 실질을 말하는 거고, 하나님의 생명 성품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성품은 거룩하십니다, 그래서 공의롭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성품은 인류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래서 진리는 가장 사랑스런 보배인 것이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어 생명으로 만들면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데, 더 이상 사탄 마귀에게 속하지 않게 되고,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벗어나게 됩니다. 진리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됐기 때문에 사탄의 부류, 사탄의 세상, 사탄의 모든 관점과 맞지 않게 되는 거고, 저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말이 맞나요? 제가 지금 하는 말을 들어 보시면, 제 관점이 세상 사람들과 같습니까? 교계 사람들의 관점과 맞나요? 많은 면들이 같지 않습니다. 그럼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관점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경력하고, 많은 책망과 훈계, 심판 형벌을 통해 알게 된 것이고, 변화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으로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몇 년 경력하게 되면,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들의 관점은 거의 비슷하게 됩니다.

그럼 진리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진리는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입니다. 오직 진리만이 긍정적인 것입니다.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 진리에 속하지 않는 것은 다 긍정적인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진리를 발표하신 목적은 뭘까요? 바로 하나님의 선민에게 베풀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자민에게 생명이 될 수 있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진리를 얻으면, 그러니까, 진정으로 이런 진리를 얻게 되면, 이런 진리가 생명이 되면, 그런 사람은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럼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그게 맞는 말인가요?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으로는 어떤 일을 해석해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과학으로 뭘 해석할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뭘 간파할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뭘 해결할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스텐을 만들고, 철을 만들고, 알루미늄을 만들고 자전거, 비행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수명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모든 질병을 정말 치료할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생명을 변화시키고 생명의 실질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모기 하나라도 만들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간파하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습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만들 수 있습니다. 화학품, 철제품 같은 것이나 조금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부터 패괴된 인류가 몇 년을 살 수 있었습니까? 아담은 930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 므두셀라는 960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들은 패괴된 인류인데 다 900살 넘게, 거의 천년 가까이 살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지 말라 하셨고, 그 나무의 과일을 먹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먹었으니 반드시 죽게 됐습니다. 반드시 죽는데도 930년을 살았습니다. 그럼 또 어떤 사람은 그건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항상 과학으로 모든 일을 가늠하려고 합니다. 과학이 진리입니까? 과학이 하나님을 대표합니까? 과학이 전능합니까? 과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과학이 다 뭡니까! 하나님께서 발전하지 못하게 하시면 한 마디에 그냥 다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발전하게 하시면 명하시는 대로 굉장히 빨리 발전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인류를 축복하시면 더 빨리 발전하겠죠. 제 말이 맞나요? 그래서 과학은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영원히 해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죽지 않게 하셨으면, 그들의 육체는 영원히 살고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매우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맞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행사는 너무나 기묘합니다. 사람이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시면 있게 되고, 세워지라고 명하시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과학을 믿지 않습니다. 물론 과학 연구로 작은 성과, 작은 상식은 가지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가장 얕은 도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을 아주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숭배하지 마세요. 과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류가 과학을 아무리 발전시켜도 훼멸될 때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재앙을 하나만 내려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 정도로 허술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영계에서 볼 때, 인류의 요 정도 과학은 별거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옛날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었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대한 적들을 보고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셨는데,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이 다 천사 손에 죽었습니다. 천사가 어떻게 싸웠을까요? 천사에게 총이나 포가 있었습니까? 천사는 총과 포를 쓰지 않습니다. 그럼 천사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영이, 그러니까, 영체가 범속한 인류의 육체, 물질세계에 있는 이런 무기들을 처리하는 건 너무 간단하고 쉬운 일입니다! 아시겠죠? 육체와 물질세계의 이런 총이나 포 등의 무기가 영계에 있는 각종 영체를 상대할 때는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에서 이방인의 과학론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에 맞지 않는다.”, 이런 그릇된 논리를 듣지 마세요, 소용 없습니다. 그런 그릇된 논리를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셨나요? 진리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뭘 말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걸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또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할 수 있다는 걸 믿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걸 기억하세요. 진리는 사람을 자유케 하고 해방시켜 줍니다. 진리는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할 수 있고, 진리는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고, 사람에게 아름다운 귀숙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이 몇 마디는 정말 중요합니다. 기억하셨죠?

【131-B-7】

저하고 하나님 믿는 일에 관련된 걸 얘기하면 어떤 방면이든 일단 진리에 관련되고, 경력에 관련되고, 간증에 관련되고, 본분에 관련된 모든 일이라면 할 말이 정말 많습니다. 아무 말씀이나 가지고 와도 막힘없이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건 다 쉬운 일입니다. 여러분도 생명 경력이 풍부해지고, 그니까 최소한 한 10년 정도 경력을 한 다음에,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고 성령께서 써 주신다면, 충분히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죠? 저는 교계에서 8년을 믿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직접 인도해 주셨는데, 설교할 때 항상 깨우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8년, 10 년 믿으면 제가 교계에서 8년 동안 믿으면서 얻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게 될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성령이 여러분들을 들어서 사역하시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저보다 더 많은 걸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나머지는 여러분이 진리를 추구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전 여러분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학력이나 소질을 놓고 보면 저는 그저 보통입니다. 지식 수준도 여러분들보다 못합니다. 근데,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니까 저는 진리를 갈망하게 되고, 진리를 사랑하게 되고, 진리를 중요시하게 되고 진리 방면으로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등을 많이 체험하다 보니 이런 일들에 대한 인식과 경력이 생기게 된 겁니다. 그래서 교통을 하면 할 말이 아주 많은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만 하고 경력하지 않는다면 안다고 해도 그건 죽은 글귀밖에 더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걸 얘기하고 싶어도 경력한 게 없고 인식한 게 없으니까, 아무리 해 봤자 하나님의 말씀만 반복해서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 말해 봤자 글자 표면으로 인식한 것밖에 없습니다. 근데, 경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에 결부시키고, 사람의 경력과 삶에 결부시킨 다음, 다시 교통하게 되면 그때 하는 말들은 다 생명수가 되는 겁니다. 말을 해도 해도 끝이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효과는 어떻게 생기게 되는 거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묵상해야 되는 겁니다. 충분히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행하고 경력해서 그 말씀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그 진리를 묵상해서 분명하게 알게 된 다음 진리를 자기 생명으로 만들고, 일을 바라보는 근거, 일을 행하는 근거로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진리를 자신의 관점으로 만들고 자신의 주관으로 만들고, 자신의 마인드로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된 다음 그 말씀을 다시 교통하면 성질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때는 실제적인 삶의 언어가 있게 되고 그 범위도 훨씬 넓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럼 더 이상 메말라 있는 글자 표면의 뜻만 말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나 어느 지역이든 초반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분들은 진리를 잘 추구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은 정말 큽니다.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가장 먼저 진리를 얻은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받게 될 거고, 자기 민족과 자기 나라의 하나님 선민들을 양육하고 목양하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셨는데,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큰 부탁을 맡기실 거고, 훈련을 시키실 겁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믿음을 검증하실 겁니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인지 거짓으로 믿는 사람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확신하고 있는지를 보시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더니 가족에게 병이 생겼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더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일어나 핍박하고 박해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더니 집에 재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참 하나님께서 오셔서 믿었는데, 왜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재앙이 오는 거야? 참 하나님이 맞으신 건가?’ 이렇게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해 봅시다. 우리가 참 하나님을 믿는데, 사탄 마귀가 싫어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탄이 와서 믿는 사람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사탄 마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려고 이런 상황, 저런 상황을 일으켜서 믿는 사람에게 환난을 가져다줍니다. 이런 시련이 임하셨던 분 없으십니까? 전 어디에나 다 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미국이든,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든, 그게 어디든 이런 시련을 겪어 본 사람은 다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 사탄이 이 땅에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죠. 보시면 마귀 사탄들이 예수 믿는 사람은 상관하지도 않습니다. 근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영계에서 난리가 납니다. 이건 진위를 가리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이 올 때,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간증을 굳게 서야 합니다. 모든 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간증만 굳게 서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시련이 닥친다고 합시다. 예를 들면, 집에 애가 아프거나 남편(아내)이 아픕니다. 그럴 때, 정말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면 이렇게 말하겠죠! “사탄아, 네가 내 아이와 내 남편, 내 아내를 빼앗아 간다고 해도 난 하나님을 믿을 거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난 하나님을 믿을 거다!” 이렇게 하나님께 맹세하면서 단호하게 하나님 편에 서고, 멋진 간증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는 겁니다. 이런 기도 하나에, 이런 선포 하나에 사탄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더 이상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겁니다. “내 가족을 죽인다 해도 난 믿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병이 안 생기냐고 합니다. 병이 생깁니다. 병만 생기는 게 아니라 재앙도 생깁니다. 별의별 재앙이 다 생깁니다. 중국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다 보면 중공 정부에 잡힙니다. 이제 중국 공안이 위협을 합니다. “믿지 않겠다고 대답하면 풀어줄게! 근데 계속 믿는다 그러면 교도소 생활 10년, 20년이야! 그리고 가족들 직장도 다 빼앗고, 자녀도 대학에 못 갈 거야! 아예 생활 근원을 다 잘라 버릴 거야! 이 중국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신이 살만한 곳은 없을 거야!” 이것 보세요! 사탄의 정권이 지독하지 않습니까? 중국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공산당은 이렇게 대합니다. 생존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일단 중국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자녀들 대학은 어림없습니다. 직장도 안 줍니다. 공직에 있으면 바로 해고되고, 옥살이까지 해야 됩니다. 그럼 사람에게 무슨 방도가 있겠습니까? 사람에겐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그렇죠?

진리는 사람에게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얻으면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나라시대 하나님의 이름을 믿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숫자만 채우는 사람이라고 하시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에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갓 믿어서 암이 치유된 사람도 있습니다. 암이 치료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암으로 죽은 사람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재난 속에서도, 화재 속에서도, 수재 속에서도 구원을 받은 일이 있고, 기적이 일어난 일들도 있습니다. 이런 간증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은 뭘 말하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재난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지만, 진심으로 믿지 않고 복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만 믿는다면 병이 나도 어김없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지도 않으시고 구원하지도 않으시는 겁니다. 이런 것에서 우린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다 공의롭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맞나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는 공의, 위엄, 진노가 없고 긍휼과 자비만 있는 줄 압니다. 틀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성품은 단지 한 시대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한 방면의 성품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경력하면, 매 시대에서 유로된 하나님의 성품을 다 결합하고 다 하나로 모아야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이라는 걸 보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위주로 하는 성품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알아야 옳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한 단계만 경력하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3단계 역사를 다 경력해야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경력해야 공의를 위주로 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진정으로 알 수 있고,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효과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봐야 합니다. 이제 갓 믿기 시작해 어떤 말씀 한 마디에 관념이 생기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진리에 속하는 다른 말씀까지 전부 부인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불공평한 겁니다! 사람의 상상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봐서는 안 됩니다. ‘내 관념과 상상에 맞는 말씀은 진리로 인정하고, 내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 말씀은 맞다고 해도 진리로 인정하지 않겠어. 어떤 말씀에 대해 아직도 관념이 있으니, 하나님과 내기를 해 볼 거야.’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자세로 대하는 게 옳은 건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다 진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딴지를 걸어서는 안 됩니다. 20년 전에, 제가 하나님의 사역이 어떤 부분은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자주 말했었습니다. 하나님께 딴지를 걸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할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이 내 관념에 맞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 당신의 말씀이 제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전 당신의 말씀이 진리인 걸 믿습니다. 제 관념이 진리가 아닙니다. 전 관념을 내려놓고 관념을 배반하고 당신의 말씀에 순복하겠습니다.” 이런 기도가 참 좋은 기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어떤 관념이 생기든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논단하지 마세요. 말씀에 보면 ‘폐물’, ‘사탄의 부류’, ‘짐승’이라는 단어들이 나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이 하나님 말씀이 사람을 욕하는 게 아니냐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말씀이 욕하는 말인가요? 그런 말씀은 다 어떤 말씀이죠? 사실을 폭로하는 말씀입니다. 그럼 “인류가 심히 패괴되어 사탄의 후손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산 귀신 같이 살고 있다.”고 하시는 게 사람을 욕하는 건가요? 전 인류 중에서 사람다운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정상적인 인성을 가진 사람은 몇 안 됩니다. 그럼 이 말씀이 사실에 부합되지 않나요? 어떤 사람은 자기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짐승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류를 짐승이라고 하셨다면 그건 너무 깊이 패괴된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 자기를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닐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깨닫는 게 맞을까요? 틀렸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괜찮은 사람이라고 합시다. 교계에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런 사람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보실까요? 그런 사람들이 인성도 괜찮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합시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사랑과 순복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그런 사랑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갓 믿기 시작한 분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특별하게 어떤 말씀에 대해 관념이 생길 수도 있고, 순복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맹목적으로 논단부터 하지 마세요! 그런 말씀은 잠시 내려놓으세요. 우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고, 인정되는 진리를 찾아서 보세요. 그런 진리를 보고 다 깨달은 다음, 한 1~2년 정도 더 경력하고, 다시 그 말씀들을 보면, 그때는 다를 겁니다. 어떤 말씀은 첫해에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근데 1년, 2년 뒤에 가서 다시 보면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또 어떤 말씀은 첫해에는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10년이 지나면 제대로 깨닫게 되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면 이제 지난날을 후회하게 되겠죠! ‘내가 하나님을 논단하는 말을 했었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었어!’ 이렇게 여한이 남게 되겠죠? 그래서 하나님께 절대 딴지 걸지 마세요. 우리는 피조물이고 다 패괴된 인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정결케 하기 위해서 이렇게 오셔서 사역을 하시는 겁니다. 인류를 대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말씀만 하십니다. 그분은 바로 진리를 발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의 관념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정상입니다. 그건 우리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직접 영계와 통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영체를 보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에 맞지 않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몇 년을 경력해 보면 다릅니다. 정말 경건한 사람은 자기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 말씀을 보게 되더라도 다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배반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겁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이 아무리 제 관념에 맞지 않는다 해도 전 당신의 말씀이 진리라는 걸 인정합니다. 제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당신의 말씀이 전부 진리라는 걸 깨닫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이것 보세요. 이런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죠! 이런 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해야 할 말이고, 해야 할 기도입니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한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깨우쳐 주실 것이며, 반드시 하나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주시고 돌봐주실 거란 얘깁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논단하지 않고,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이해했든 못 했든, 깨달았든 못 깨달았든 언제나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인정하며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정확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에 관해 함부로 논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 겁니다. 혹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해 많은 관념과 상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진실한 걸까요?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매우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인성이 좋은 사람일 겁니다. 인성도 좋고, 또 하나님의 사역도 받아들인 이상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을 가지고 관념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관념이 생기면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관념이 조금 생겼다고, 어떤 말씀에서 관념이 하나 생겼다고 해서 ‘난 안 믿겠다! 난 참 진리라고 인정 안 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라고 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누가 손해죠? 자신의 아름다운 앞날을 망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게 되는데, 그러면 미련한 거 아니겠습니까? 작은 것 때문에 큰 걸 놓치게 되는 게 아닌가요? 저는 말을 잘못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그냥 제가 하는 말은 일반인이 하는 말로 생각하세요! 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여러분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다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는 하지 마세요. 저는 그런 일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틀리게 했다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는 하지 마세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시고,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표하십니다. 전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이제 막 믿기 시작한 형제자매들은 제가 하는 말이 옳다고 생각되고, 여러분의 관념과 상상에 맞는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이시고, 여러분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거나 진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이지 마세요. 이런 것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일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와서 본분을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데에는 더더욱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것 때문에 큰 걸 놓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사람을 억압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전 그 어떤 사람과도 사적인 은혜나 원한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 집의 사역을 할 뿐입니다. 형제자매들에게 필요한 것과 형제자매들의 요구에 따라서 말씀을 교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저는 함부로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앞날과 운명은 더더욱 규정하지 않습니다.

【131-B-8】

지금 새 신자들은 다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생활을 하는 데는 몇 가지 원칙이 있으니,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면 직장을 그만두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시간을 내어 본분을 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정 환경 조건이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가정 환경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아내(남편)가 있는데, 그 사람이 돈을 벌지 않고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무엇으로 살아가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조건이 허락되지도 않는데, 기어이 직장을 그만두려고 한다면 그것이 합당할까요?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가정 조건이 허락되는지의 여부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기도도 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절대 일시적으로 끓어오르는 열정과 충동으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무작정 직장을 그만두지 마세요. 직장을 그만두려면 자신에게 그만한 조건이 있고 그만한 생활 환경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살림이 넉넉합니다. 우리는 살림이 부유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고 고급 아파트도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살기에는 충분합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사직하고, 한 사람은 계속 직장을 다닐 겁니다.”라고 한다면 이런 경우는 됩니다. 만약 하루 세끼를 챙기는 것이 문제가 되고 끼니를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다면, 그럼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사직입니까! 어떤 이는 독신인데, 이렇게 물어봅니다.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와서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면 될까요? 하나님 집에서 식사를 제공해 주시나요?”라고 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식사는 제공합니다. 모든 시간을 내어 본본을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집에서 숙식이 다 가능합니다. 조건이 되는 어떤 사람은 자기 집에서 자고 하나님 집에서 식사를 해도 되며, 또는 하나님 집에서 최저 생활비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특별한 은사가 있고, 본분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하나님 집에서 그 사람이 본분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질이 좋고 인성이 좋아서 교회에서 그를 인솔자로 선출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에 자신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인솔자의 사역을 잘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 사람에게 그만한 체력이 있으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역을 하면 할수록 사역이 점점 더 많아지고, 할수록 성령도 더 많이 깨우쳐 주시므로 양육하고 교통해야 할 진리가 너무 많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교회의 각 방면의 사역도 점점 더 많아지게 되니 “제가 더 이상 직장을 다녀서는 안 되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직장을 그만두어야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요? 사역이 이 정도까지 발전하게 되면 그 사람의 분량도 그 정도까지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그만두지 말아야 할까요? 이런 경우에는 그만둘 수 있습니다. 보다시피, 어떤 사람은 특별한 은사가 있는 특수한 인재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마침 그런 인재가 부족하다면, 그 사람은 모든 시간을 내어 본분을 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생활은 하나님 집에서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 밖에 또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새 신자들은 맹목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진리를 잘 갖춘 다음 전해야 합니다. 만약 진리를 잘 갖추지 못했는데, 복음상대가 자신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모르고,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게 됩니다. 이러면 효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참 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참 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 영계의 전쟁에 관련됩니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새 신자는 진리를 잘 갖춘 다음 복음을 전해야 하고, 훈련을 받은 다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알아들으셨겠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가정에 시험이 임하고 환경이 닥치면 빨리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로 찾고 구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기도를 다 한 다음에도 저는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했어요. 하나님께서는 저의 마음에 어떻게 하라고 하는 그 어떤 생각도 주시지 않았어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급해하지 마세요. 기도로 자신의 어려움을 다 말하고 나서 아마 2, 3일, 3, 5일, 일주일이 지나면 마음이 밝아지면서 그 일에 대해 길이 생기게 되고, 그 일을 꿰뚫어 보게 될 겁니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어!’ 그럼 여러분들이 얘기해 보세요.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까요? 바로 효과에 도달한 겁니다. 당신은 그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아무런 계시도 받지 못하였지만, 며칠만 지나면 이런 효과가 있게 되어 깨닫게 됩니다. 아무 말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길이 있게 되고 깨닫게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암시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을 많이 경력하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역사가 기묘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일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조금도 일을 그르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요. 이렇게 경력하면 경력할수록 하나님께 점점 더 믿음이 생기게 되고, 경력할수록 하나님이 진실한 분이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당신은 하나님을 봤습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봤습니까?”라고 물으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전 봤습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에 계십니다. 아주 분명합니다. 일할 때 저로 깨닫게 하시고 저로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고 계심을 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사랑스럽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경력이 없으면 여러분은 간증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해 정말 확신하고, 또한 참된 인식이 있다면, 이런 것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패괴된 세상에서 사람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운명은 참 비참해요. 아무튼 다 죽어가야 하니까요. 어떻게 해야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반드시 죽게 되는 이 결말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알려드리죠. 한 마디입니다. 여러분이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얻게 된다면, 여러분의 운명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말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할 상황에서 죽지 않을 상황으로 바뀔 것이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대재난이 임한 후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게 될 것인데, 보증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살아남게 되면 천년하나님나라시대의 사람이 됩니다. 대재난에서 죽지 않으려면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당신이 이 말을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라고 합니다. 우리가 처음에 모임을 시작하였을 때 이런 말씀을 읽었습니다. “내가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이가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관록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며, 받은 고난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사람의 가련한 정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귀숙을 정하시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는 것이지, 다른 것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이 예전에 교계에서 얼마나 고생했고 대가를 얼마나 치렀는지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며, 관록의 많고 적음, 명망의 높고 낮음에 근거하는 것도 아닙니다. 설령 여러분에게 관록이 아무리 많고 명망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단계에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조금도 얻지 못한다면 여전히 멸망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에게든 다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어떤 마왕 악귀든, 죽기만 하면 바로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에게 또 얼마나 큰 능력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큰 능력이 있겠습니까? 모두가 가련한 영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첫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역 앞에서 절대로 교만방자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진리 앞에서 절대로 교만방자하지 말고 흉악하게 날뛰지 마세요. 이렇게 하는 것은 순전히 우매무지한 것에 속합니다. 손해 보는 것은 자신입니다. 절대로 교만방자하지 말고 진리에 순복하세요. 제가 늘 말하다시피, 생명 성정이 변화됨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한 가지는, 사람이 진리에 순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말하든 진리에 부합되면 순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자신을 낮추고 고분고분 순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면 성정이 변화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지가 있는 피조물입니다. 진리 앞에서 언제나 흉악하게 날뛰면서 누가 말한 것이 맞는다고 해도 “저는 불복해요. 당신이 말한 것에서 100개 맞고 하나가 틀려도 저는 반대하겠습니다. 저는 불복해요!”라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런 사람을 마귀라고 합니다. 마귀는, 첫째로 거짓말을 하고, 둘째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러면 끝장입니다. 구제불능인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전부 마귀입니다. 눈을 뻔히 뜨고 거짓말을 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면서도 시인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마귀입니다. 더 이상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장이고, 구제불능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도 출교당하고 도태되었습니까? 그런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방해하고 교란하면서 계속 권력과 지위를 다툽니다. 그러니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진리에 순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하니님 집에서는 진리가 권세를 잡기에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세상은 법이 권세를 잡고 있지만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진리가 권세를 잡았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든 진리에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로 구원을 받은 인류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명망이 얼마나 높든지 진리에 순복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순복하지 않는다면, 모두 훼멸될 부류이기에 전부 훼멸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과거에 주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고난을 당했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고통을 받고 대가를 치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대역무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했기에 하나님의 반역자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말세의 사역을 하셨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런 사람은 반역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반역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여러 해 믿었어도 헛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여호와를 믿었던 그 신도들과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다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았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하고 2천년간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들이 유린당하게 하였으며, 도살당하고 살육당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히틀러의 손에 넘겨주어 수백만을 죽이게 하였습니다. 왜 죽이려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오셨으나 인정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여전히 하나님의 원래 그 이름만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죄하셨습니까? 반역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시인하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시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시인하지 않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주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왔으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니 나는 너희를 부인한다. 너는 나의 반역자이고, 너는 나의 역적이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게 순복한다고 말하고 나를 위해 고난받고 대가를 치렀다고 말하지만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그럼 이렇게 볼 때 교계에 있는 사람들의 날이 이제 얼마 남아 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부터 대재난이 임하기까지의 이 기간이 바로 그들의 마지막 기한입니다. 최후의 기간에도 만약 그들이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재난 속에 떨어져 훼멸될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한입니다. 깨달았겠죠! 이 은혜의 문이 이제 시간이 얼마 지나면 닫힐까요? 예전에 교계의 일부 성경해설가들은 “교회가 들림받는 것은 재난 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보면 4번의 핏빛 달까지 임했으니 대재난이 곧 내릴 것입니다. 그러니 또 이렇게 말합니다. “재난 전에는 들림받을 수 없으니 아마 재난 가운데서 들림받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아마 재난 후에 들림받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교계의 성경해설가들도 말을 참 잘하죠. 보아하니 재난 전에 들림받는다고 한 것이 응하지 않으니 또 말을 바꾸어 재난 가운데서 들림받는다고 말합니다. 사실상 재난 전에 일부분 사람들이 들림받고, 재난 중에 일부분 사람들이 들림받으니 두 가지 다 있습니다. 그럼 우리 이 무리 사람들은 재난 전에 들림받습니까, 아니면 재난 중에 들림받습니까? 우리 이 사람들은 재난 전에 들림받았습니다. 대재난이 아직 임하기 전에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온전케 되었는데, 바로 재난 전에 만들어진 이긴 자들입니다. 재난 전의 이긴 자들은 온전케 되었기에 지금은 간증이 있게 되었습니다. 교계의 일부 사람들이 재난 중에 들림받는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재난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들어보지 못했거나 들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어리벙벙해 있다가 재난 중에서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계는 내가 만민을 형벌할 때, 각기 다른 정도로 내 나라에 돌아오고 나의 행사로 말미암아 정복될 것이다.” “각기 다른 정도”란 바로 재난 중에서 들림받는 일부분, 소부분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재난 중에서 일부분 사람들이 들림받으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요? 그들이 주님을 믿는 생애는 끝났고, 도태된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인 거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시인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아 도태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럼 지금 교계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들이 앞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있습니까?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대재난이 아직 임하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대재난이 몇년 뒤에 내릴지 알고 있습니까? 기껏해야 3~5년, 아니면 1~2년이면 내릴 수도 있습니다. 재난이 임할 때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그래도 재난 전에 들림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일은 우리가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이 들림받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당신도 그 사람들에게 전해 주지 않고 아무도 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에게 직접 영계와 접촉하는 기관도 없는데, 어디 가서 알 수 있겠습니까?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람들이 그들에게 있는 힘껏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해 주어, 그 사람들이 인식하게 하고 받아들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만큼, 증거하는 만큼 그 사람들이 얻게 되고 복을 받게 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전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인터넷을 통해서만 알아본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다 요나와 같으면 곤란하죠. “우린 당신들에게 증거해 주지 않을래요. 당신들은 죽어 마땅해요.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멸하시는 것이 차라리 낫겠어요. 당신들이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데, 왜 전해야 하나요? 당신들은 이방인이에요.” 복음을 전하면서도 관념 있는 사람이 없습니까? “제가 보기에 당신은 좋은 사람 같지 않으니 당신에게 전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그 사람에게 전할래요.” 이는 요나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항상 개인의 선택이 있으면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볼 때 누가 진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고, 교통하기만 하면 영이 통하고 금방 깨닫는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딱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했는데, 그 사람이 항상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무리 말해도 깨닫지 못하며, 한사코 정죄하고 반대하고, 한사코 거절하고 배척한다면, 우리는 힘들어 더 이상 어찌 할 방법이 없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당신에게 전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에게는 그런 복이 없으니 전할 수도 없네요. 당신한테 애쓰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끝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영이 통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좋아하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전하세요.

지금, 사람들은 모두 대재난이 멀지 않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날이 많이 남았을까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허무하지 않을까요? 육체의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 허무하지 않을까요? 날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멀리 계획하지 마세요. 세상에 살며 긴 타산을 하지 마세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언급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고, 구약의 선지자 예언과 계시록의 예언이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를 우리는 정확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시일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3~5개월이나 1~2년, 2~3년이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천히 공력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8년이나 10년의 시간으로는 진리를 추구한다 해도 좀 부족합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기에는 절대적으로 넉넉합니다. 당신이 1~2년의 경력에서는 이상 방면에 깊이 뿌리를 박고, 3~5년이면 진리를 실행할 줄 알며, 5~6년, 7~8년이면 성정 변화를 조금 볼 수 있고, 8~10년이면 초보적인 효과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 공은 1~2년이란 짧은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하니, 자신에게 시간적 여유를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보세요.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 끝나나요? 대재난이 아직 1~2년 남았다는데, 그럼 좋아요. 저는 1~2년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 되겠어요. 만약 대재난이 아직도 10년 있다면, 그럼 안 돼요. 10년이라면 제가 아직도 세상을 누려야겠고 천륜지락을 누려야겠어요. 10년이나 있다면 저는 돈도 좀 벌 수 있으니 고급주택도 사고 명차도 몰고 다니든지 해야죠.” 10년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명 진입을 하고 구원받는 데는 1~2년을 남기고 육체의 누림에 7~8년을 남기겠다고 하니, 이런 사람을 총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럼 생명 진입과 진리 생명을 얻는 데 몇년을 남겨 두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겠죠? 어떤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느 때에 끝나는지 1년 먼저 저한테 알려 주세요. 그래야 사표를 내죠.”라고 말합니다. 이 일을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습니까? 다 가늠해 본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성경의 예언이 다 응하였고, 핏빛 달이 연속 4번이나 나타난 걸 보면 대재난이 가까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경 해설가들은 꽤 정확하게 해석합니다. 대재난이 정말 이르렀습니다.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보면 대재앙이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이르렀습니다. 다가왔습니다. 그럼 우리는 마지막에 무엇을 중요시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상,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여, 최후에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실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데에 도달한 사람은 생명이 있게 됩니다. 당신에게 생명이 있게 되면 큰 재앙이 닥쳐도 죽지 않습니다. 만약 생명이 없다면 역시 죽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을 경력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데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3개 절차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한마디 알려드리겠습니다. 진리는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진리는 여러분에게 좋은 귀숙과 결말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진리를 거부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어도 헛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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