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집 (b)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사람은 가장 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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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각국각방의 모든 형제자매님들 축하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서 먼저 한 가지 일을 교통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왜 ‘주 예수’의 이름을 안 믿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요? 성경 예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주님의 새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이 새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사야에도 있고 계시록에도 있습니다. 계시록 3장 7절~13절,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언급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기에서 세 개의 이름을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면 새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것이 바로 근거입니다. 이사야 62장에도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들림받은 교회를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대부분 형제자매들은 모두 각 교파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니 교계에서는 뭐라고 하겠습니까? “‘동방번개’에서 양을 도둑질해 갔다, 각 교파의 좋은 양을 다 도둑질해 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동방번개’를 아주 미워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맞습니까? 그 사람들은 성도들을 자신의 양이라고 여깁니다. 근데 사실은 하나님의 양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의 들림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가장 소중한 면입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바로 들림받은 근거이자, 들림받은 조건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는 사람은 주로 어떤 것을 구비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파에 있든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반드시 도태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2천년 동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니 받아들이지도 않고, 거기다가 극력 대적하고 정죄하다가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이런 것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탓에 하나님께 저주받았던 것입니다. 저주받은 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임했습니까? 하늘에서 아주 많은 재앙이 내렸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나라가 훼멸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계 각국으로 떠돌게 됐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습니다. 특히 히틀러가 대학살을 일으켜 이스라엘 사람을 몇백 만 명이나 학살했습니다. 이것이 저주받은 것이 아닌가요? 왜 저주받았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호와 하나님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도 대적했습니다. 그건 예수님과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 여호와의 나타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들은 여호와를 2천년 동안 믿으면서 하나님의 율법시대 사역을 경력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육신 되어 예수님으로 불린 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또 대적하고 정죄하기까지 했으니 문제가 됐고 끝장나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잘못을 절대 저지르면 안 됩니다. 일단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사람의 결국은 철저히 끝장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주님을 위해 순교한 충성스런 성도들도 아주 많죠. 욥이나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그런데 그들이 어찌 저주받을 수 있겠어요? 고작 그런 일 때문에 저주받았다구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긍휼과 사랑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을 저주하지도 않으시고 증오하지도 않으시고 사랑만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노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그분을 알든 모르든, 오직 악을 행하지 않고 그분을 대적하지만 않으면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도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주님은 그 사람들을 저주할 리가 없습니다!” 이 말이 맞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평생 주님을 믿고 성경을 봤으면서도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이것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가요? 이건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성경에 분명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이렇게 연이어 일곱 번이나 “화 있을찐저”라고 저주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라는 것이 축복의 말씀인가요? 긍휼의 말씀인가요? “화 있을찐저”는 저주의 말씀입니다. 그 밖에,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고 편히 살았습니까? 유다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죽을 때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팔고 후회하였으나, 후회해도 소용은 없었습니다. 그럼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이걸 예수님의 저주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또 이 일을 유다에 대한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이고, 끝없는 용서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의 용서라고 말할 수 있나요? 은혜시대에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완전히 철저하게 사해 주셨고, 인류의 모든 죄를 한 번에 영원히 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죄를 짓고 그분을 대적한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까요? 우리가 만약 끝없이 죄를 짓고, 계속 죄를 짓고, 일부러 죄를 짓다면, 예수님께서 그래도 사해 주실까요? 그분이 이런 것에 대해 무슨 말씀이 없을까요? “예수님은 긍휼과 사랑이시니 영원히 우리를 사해 주실 것이고, 우리의 과오대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 말이 맞습니까? 틀렸습니다. 왜 틀렸겠습니까? 성경적 근거가 있지 않습니까? 계시록에, 예수님이 일곱 교회에 쓴 편지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도태되고, 어떤 사람이 저주받는다고 하셨나요? 어떤 사람이 들림받는다고 하셨나요?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축복하셨습니다. 그럼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요?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니 미지근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도태시키신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나요? 똑같이 모두 예수님을 믿지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다 믿고, 어떤 사람은 몇 구절밖에 안 믿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의 말씀만 믿고 엄한 말씀, 심판의 말씀,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말씀,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말씀, 말세에 사람을 드러내는 말씀은 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그분의 성품을 요해하고 그분의 뜻을 더듬어, 그분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시고, 어떤 사람을 저주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은혜시대에, 우리를 위해 속죄제로 되셨다고 해서 그분이 우리를 끝없이 사해 주시고, 영원히 용서해 주신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논조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지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계시록의 말씀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시고 듣게 하셨던 그런 말씀들은 선지서와 마찬가지로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속합니다. 이는 틀림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정말로 다 구원받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방금 말했던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의의는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깊이 생각해 봅니다. ‘난 원래 예수님을 믿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간증인이 성경의 진리를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을 들어보고, 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해서 말씀하신 걸 듣고 보니, 모두 진리야. 하나님의 음성이야. 계시록 2장 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는 말씀이 응한 거야. 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하신 모든 말씀을 듣고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이 일을 확신했어.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야!” 이렇게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께 들림받은 한 무리 사람들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주님께서 오셔서 들림받게 된 한 무리 사람들입니다. 이는 성경의 어느 예언이 이루어진 것인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6절에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그리고 계시록 3장 20절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 16장 15절에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이 몇 개의 예언이 마침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과 함께, 주님이 우리와 함께 연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이 ‘연회’를 무슨 연회라고 했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무슨 뜻일까요? 왜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하셨을까요?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셔서 사람을 얻는 것이지요. 그분은 자신에게 속하는 양, 그분이 예정해 놓은 이기는 자에 속하는 이런 사람들을 만들고자 하시는데, 재난 전에 이기는 자로 만들려 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연회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 ‘혼인 잔치’란 바로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얻은 후에는 어떻게 되지요?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이런 경문을 해석하면서 그리스도를 신랑이라 하고 교회를 아내, 신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혼인 잔치라 하는데,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세의 역사, 심판 형벌의 사역,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에 관련됩니다. 먼저 하나님께 정복되는 것을 경력하고, 정복된 후에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고, 얻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은 바로 이러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경력하고 나서 그리스도와 합하게 되면,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도 따라서 끝나게 됩니다. 그럼 그 후에 만들어진 한 무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일까요? 바로 재난 전에 만들어진 한 무리 이긴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이긴 자들입니다. 이긴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지위일까요? ‘그리스도 나라에서의 기둥’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난 전에 한 무리 사람들을 만드시는데, 한 무리 이긴 자들을 만들고자 하십니다. 이런 이긴 자들이 바로 훗날 그리스도 나라에서의 기둥인 것입니다. 그 복이 크지 않습니까? 그 복은 너무나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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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깊고, 너무 엄하다! 이렇게 엄하고 또 심판하고 형벌하는 건데, 사람이 언제 생명 성정이 변화돼서 하나님과 합하고, 진실로 정결함을 받을 수 있겠냐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기만 하면 어떤 사람은 한숨을 쉬면서 “하나님을 믿는 게 정말 어려워요! 예수님을 믿으면 참 쉽습니다. 날마다 하고 싶은대로 하고 마음껏 놀고, 놀다가 죄를 지으면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되지요. 그리고 또 놀고, 놀다가 죄를 지으면 그때 또 자백하면 돼요. 날마다 죄를 짓고 자백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면서 믿으면 돼요. 이게 주님을 믿는 거죠. 심판 형벌 안 받아도 되고, 진리 실행 안 해도 되고, 진리를 교통할 필요는 더 없어요. 주님을 믿는 게 얼마나 편합니까! 아무 방해도 안 받아요. 생활하거나 결혼하는 것도 영향을 받지 않고, 아이 낳는 것도 영향받지 않고 거기다 돈 벌고 즐기는 것도 영향받지 않으니,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게 더 좋고 행복해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외국에 가서 보고는 “외국의 민주주의 제도는 정말 좋아요. 능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어요. 돈을 벌고 누리는 건 다 자기가 알아서 해요. 와, 이런 곳에서 몇년 간 잘 누리지 않으면 정말 손해예요.”랍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어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말들을 기뻐하실까요? 이런 말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성경 잠언 1장 32절에 아주 중요한 말이 있죠.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사람은 살면서 의의 있는 일을 해야 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떤 길이 바른길인가요?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바른길입니다. 그 외에는 다 바른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도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길은 넓습니다. 사람마다 믿는 게 다 다릅니다. 신앙은 자유니까 저마다 터득하는 게 다르고, 저마다 추구하는 게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저마다 믿는 방식이 다 다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걸은 길이 하나님의 뜻에 맞아 온전케 되고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일을 통찰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굉장히 필요합니다. 제 말이 안 믿겨지면 방금 한 말을 메모해 놓으세요. 지금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다가, 언젠가 정말로 그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되면, 이 말 때문에 한동안 울 것이고, 유감스러워하고 후회할 것입니다. 이 내기를 걸어 볼 신심이 있나요? 여러분들한테 사실대로 말할게요. 이 말을 듣지 않다간, 이후에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요? 딱 한마디입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길입니다. 이 말을 알아들었겠지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길은 하나님께 축복받는 길입니다. 또한 사람이 지극히 거룩한 자를 아는 데에 이르는 가장 총명한 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사람이 거룩해지는 길,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거룩한 사람과 의인이 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은 바로 거룩해지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대부분 다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깨닫는 게 너무 적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깊어요! 언제면 이런 말씀들을 자기 생명이 되게 할 수 있죠? 언제면 이런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죠? 언제면 이런 말씀들의 진실한 생명을 살아낼 수 있죠? 자칫하다간 1, 2백년, 평생을 가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있나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심지가 있고 추구하려고 하기는 하는데 도달할 수 있겠냐, 또 가족도 보살피고 돈도 벌어야 되는데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냐고 합니다. 이런 생각은 틀립니다. 왜 틀릴까요? 은혜시대에 주님을 믿을 때, 유행했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막바지가 바로 하나님의 시작이다. 사람은 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깨닫게 되고, 마음이 갈수록 더 환해집니다. 사람의 보기에 아무리 어려운 것일지라도,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이렇게 교통하는 것이 꼭 한담을 하는 것 같습니다. 길게 하고 싶으면 길게 하고, 원하기만 하면 날마다 해도 되고, 어떻게 말해도 다 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렇게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이런 것에 어떻게 도달하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해도 저는 중요시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육체를 생각할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베드로가 남이 연약해져도 자기는 연약해지지 않고 남이 배반해도 자기는 배반하지 않고 주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 그런 심지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온전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있기만 하면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을 믿습니까? 성령이 역사해 주시고 인솔하시고, 인도하시고, 환경을 안배하시면, 우리는 기도하기만 하면 영 안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 안에서 말하게 되고 성령 안에서 일을 판단하게 됩니다. 또 무엇이든 다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고, 무엇을 보든지 마음이 환하고, 무엇을 하든지 수월하고, 무엇이나 다 쉽고 길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저는 이 방면에서 체험한 것이 가장 깊습니다. 저는 아주 많은 것을 배운 적이 없어서 문외한이이었는데, 하나님을 믿고 나서 이렇게 본분을 하니 무엇을 보든 다 알게 됐고, 마음이 환해져서 쉽고 간단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런저런 일이 저에게는 다 작은 일에 지나지 않아 척 보면 무슨 문제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마디 말로 문제를 지적해 주면 여러분들은 바로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적합한지 알게 되며, 저의 말대로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해서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얻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수월하고 다 쉽다는 것입니다. 이건 마태복음 11장 30절에 나오는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는 주 예수님의 말씀이 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진리를 추구하면서 어려울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성령이 역사하면 아무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또 간단하게 예를 들겠습니다. 이런 일을 경력한 사람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잡힐까 봐 두려워합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사람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적어도 반죽음이 될 때까지 때립니다. 어떤 사람은 잡히고 나서 처음에는 두려워 ‘주님, 저를 보호해 주세요.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역사하시면서 보통 초자연한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이 받아야 할 고통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간증을 하라는 것이지요. 왜 간증을 하라고 하실까요? 간증을 하는 의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에 속죄제로 되는 사역을 시작하셔서부터,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셔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끝마칠 때까지 이 전체가 바로 사탄과 싸우는 사역입니다. 어떻게 싸우는 걸까요? 하나님이 사탄과 직접 싸우는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사람을 빼앗는 싸움입니다. 사탄이 “이 인류를 내가 이미 다 패괴시켰으니, 당신은 이젠 이 인류를 얻지 못해. 하나님, 당신이 어떻게 하든지 이 인류를 온전케 하지 못할 거야. 이 인류는 모두 당신을 배반할 것이고, 모두 당신을 믿지 않을 거야.”라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럼 나는 인류 가운데서 일부분 사람만 온전케 할 것이다. 나는 이 일부분 사람들을 얻는 것으로 너를 부끄럽게 할 것이다. 마지막에 너의 죄를 정하고 너를 패배시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싸움이 아닌가요? 욥에게 시련이 임한 배후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사탄이-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시니 사탄은 이에 불복하는 태도로 말했습니다. “아니야. 만약 당신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빼앗으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할 거야.”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네 권세 아래에 있으니, 그럼 시험해 보아라. 그가 나를 배반하는지 네가 보라” 그래서 땅에서,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평온무사할 때, 한 무리 강도들이 와서 욥의 물건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뒤에 또 한 무리가 와서 얼마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몇 무리 강도들이 욥에게서 철저히 다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몇십 년 동안 욥에게 축복해 주신 가업과 재산이 하루아침에 전부 빼앗겼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 일까요? 영계의 전쟁과 관계되지 않습니까? 관계가 큽니다. 그럼 만약 영이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한테 이런 일이 임한다면 그 사람은 유물론의 관점으로, 법관의 관점으로, 법률의 관점으로 그 일을 볼 텐데 골치 아프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일이 임하자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이 아닐 거야. 이건 하나님께서 빼앗으신 것이야.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네. 내가 어디서 하나님을 노엽혔을까? 나는 계속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악을 행한 것 같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왜 거두어 가실까?’ 욥은 그 일을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 욥의 믿음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많이 읽고 나서야 그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됐는데, 욥은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본 적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이 종잡지 못했던 것도 아주 정상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 시대의 사람이었으면, 우리는 욥보다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가 오늘 얻은 것이 욥보다 더 많지 않은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늘 얻은 것이 역대 성도들이 얻은 것을 훨씬 초과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시대의 성도들을 초과했을 뿐만 아니라 은혜시대의 모든 성도들도 초과했습니다. 모세를 초과했고 이사야의 계시를 초과했고, 또한 베드로도 초과했습니다. 왜 우리가 얻은 것이 역대의 성도들을 초과했다고 하는 걸까요? 그건 바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런 말씀들을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진리의 비밀들을 전부 밝히셨고, 전부 발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얻은 것이 역대 성도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130-B-3】

지금 많은 형제자매들은 금방 종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주님을 오랫동안 믿었습니다. 평생을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보고 성경 말씀이 너무나도 좋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보다 더 좋아요. 성경 보는 것보다 마음이 더 환해져요. 성경을 보면서 몰랐던 진리들을 여기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요!” 하나님의 매 단계의 역사는 다 일정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효과에 도달했는데, 어떤 효과인가요? 여호와는 조물주이시기 때문에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해야지, 거짓 신이나 우상을 경배하면 안 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다 패괴됐기 때문에 비록 여호와를 경배하고 여호와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킨다 해도 많은 죄를 짓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럼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래서 율법시대에는 각종 규정, 속죄제, 번제, 여러 가지 제사가 있었습니다. 율법시대에는 이런 율법들이 있어 지킬 수 있었고, 하나님의 계명들이 있어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에게 오직 여호와만이 조물주이시고, 여호와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시대 사역이 가져온 효과입니다. 그렇죠?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속죄제로 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전부 다 죄 사함을 받았지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바로 하나님에게서 평안과 기쁨을 누렸고, 또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까지 누렸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기도를 하기만 하면 병이 나았고, 재앙이 닥쳤을 때 기도만 하면 잠잠해졌고, 어려움이 생겼을 때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해결받았습니다. 그럼 은혜시대에서는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이런저런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이, 또 그 율법들을 지킬 필요가 없이, 주님만 믿으면 됐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바로 여호와의 나타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단계 한 단계씩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은 사람에게 지기 어려운 짐을 지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단계 역사는 율법시대를 온전케 하셨고, 그런 효과들도 다 이루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나라시대에 와서는요? 하나님께서 말세 사역을 하시면서 또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셨습니까? 은혜시대에 어떤 문제들을 남기고 아직 해결하지 않았죠? 율법시대에는 어떤 문제들을 남기고 해결하지 않았었죠? 율법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또 하나는, 늘 죄를 짓고 그러고는 제사를 드리면서 끝없이 계속 죄를 지었는데 이런 것이 언제면 끝날지, 왜 늘 죄를 지으면서 항상 죄 속에서 사는지, 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지…… 너무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율법시대에서는 이런 효과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너무 심하게 죄를 짓고 있나이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의 결박과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러지 아니하시면 모두 율법 아래에서 죽게 되고 율법에 의해 정죄받게 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알겠노라. 그럼 내가 말씀이 육신되리라. 은혜와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 예수로 되어 너희들을 위해 속죄제로 되겠노라. 너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가 사함받을 수 있으니, 더는 이런저런 제사를 드리지 말거라.’ 그래서 많이 간편해졌습니다. 그럼 성육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늘 위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는 차이가 있나요? 있습니다, 도달하는 효과가 다릅니다. 여호와는 누구에게 나타나신 적이 있습니까? 누가 여호와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도 뒷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은 왜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지 않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답이 있습니까? 아마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사람은 영을 볼 수 없다, 사람은 물질적인 육체에 속하니까 영을 보기만 하면 죽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다, 사실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영을 볼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누구에게 나타나신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체는 사람에게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나타나셔서 사람이 보게 된다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사람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큰 빛인 태양을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나요? 적도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는 낮이면 더워 죽을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영을 가까이하는 것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가까이하면 끝장입니다. 잿더미로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사람에게 그분을 알게 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일까요? 바로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시면 그 육신의 형상은 하나님의 진실한 모습과 진실한 형상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성육신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형상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는 성육신이 하나님의 성품, 소유소시와 그분의 생명 실질을 발표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품, 생명 실질, 소유소시, 그리고 전능과 지혜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된다면, 어떤 뚜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게 된 후, 사람은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시작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관념과 상상이 모두 없어지고, 완전히 실제적인 인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때면 사람은 하나님과 마주하고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에 대해서 좀 알 수 있나요? 어떤 사람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이 맞습니까? 제가 여러분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교통하고, 문제에 대답해 주는 시간이 오래되면 저의 성격이나 관점에 대해서 알게 되지 않을까요? 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영에게 기도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진실로 인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완전히 가능하고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인식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진실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에 대해 참으로 인식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소중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정말로 꿰뚫어 보았나요? 정말로 하나님의 얼굴이나 하나님의 영체, 하나님의 진실한 형상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참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효과가 무조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사탄도 불복하면서 참소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경력하게 하고, 그분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실행해서 마지막에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받고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는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알고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사람이 된다면, 사탄을 더욱 부끄럽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여 말씀하시는 것만으로 이 사람들을 정결케 하시고, 온전케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면, 더욱더 하나님의 전능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사탄을 부끄럽게 하는 데에 가장 좋고,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 데에 가장 유리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통행하는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證據)입니다.

지금 교계 많은 사람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해 주면 자기가 믿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고 참 하나님은 한 분이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건 틀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어떻습니까?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은 길과 저지른 착오와 같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분은 여호와이고 여호와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건데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왔다고 전하냐면서 옳지 않다고 했고 여호와 외에는 또 참 하나님이 없다고 여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여호와의 이름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예수님이 오시니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한 번으로 그들은 큰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죄는 그렇게 정죄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데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은혜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니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또 정죄하면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은혜시대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저지른 일입니다. 그들이 걸은 길이 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은 길이 아닙니까? 지금 교계의 그렇게 많은 목사와 장로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들을 보배와 법도로 삼아 지키면서 누구의 말도 안 듣습니다. 보세요, 교계의 목사와 장로들이 이스라엘의 그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습니까? 그들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고,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예수님만 믿고 그분의 재림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죠.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왜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이름을 바꾸시자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압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를 믿으면서도 여호와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예수님으로 되시자 인정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결국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130-B-4】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주받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열국으로 떠돌게 하셨고, 사탄에게, 히틀러 마왕에게 넘겨주어 학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수백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2천년 동안 끊임없이 살해당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악을 저질렀겠습니까? 경건한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설마 그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이었겠습니까? 모두 인성이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 사람들 중 착한 사람이 없었을까요? 착한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저주받으면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안배가 있으십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을 다 나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어야 하고, 그런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의 눈에는 대부분 착한 사람입니다. 왜 사람이 보기에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재난을 당할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재림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다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경건하고, 아무리 선행을 많이 예비해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배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 도태될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다 죽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어떻습니까? 내기를 할 수 있겠어요? 우린 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으니,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지 아닌지 좀 보세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그 믿음에는 불순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불신파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불신파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정도의 믿음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인가요? 여러분의 믿음은 어느 믿음에 속합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또한 그분은 전능자시고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그 정도에 이를 수 있습니까? 아마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교인들의 믿음은 단지 하나님의 존재만 인정하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라는 것만 인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벌써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후 또 다시 오셨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과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의 생명 원천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너희가 나를 찾아와 시비를 따지려 하면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그분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은 예수님의 영이시고, 여호와의 영이십니다. 여호와가 처음에 말씀이 육신 되셔서 예수님이 되셨고, 여호와가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한 분의 영이 하신 사역이 아닌가요? 한 분의 영이십니다. 육신만 인정하고 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눈먼 것이 아닙니까? 눈먼 것이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나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는요? 조금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한 분의 영이 발표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통찰하지도 못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 예수심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빈말이고,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에서 이후에 이 도의 흐름 속에 있지 않는 사람은 다 잿더미로 변한다고 했는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각 교파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주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훼멸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축복받을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은 정확하지 않아요.” 누가 이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그럼 이 말씀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인정한다면 “천지가 없어질 수 있어도, 내 말은 일점 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디마디 다 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이런 믿음이 있다면 이 말씀을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없으면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믿어야 진실한 믿음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 예수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좀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릇 그분의 이름을 지키는 사람이나 경건한 사람이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신 적이 없습니다.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나서 일부분만 시인하고, 더 많은 말씀에 대해서는 아직도 관념과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고,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죠.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야, 반대하고 부인할 거야, 저 구절은 인정해, 받아들이고 찬성해.” 이런 것이 진실한 믿음입니까? 눈을 뻔히 뜨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데,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감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늘 관념이 있고, 또 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인성도 괜찮고 나쁜 일을 한 적도 없고, 노인과 아이들을 잘 챙기고,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베풀고 도와주면서 선행을 가득 쌓아 명성이 자자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부인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늘 관념이 있어 순복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믿지 못하겠으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좀 알아보세요. 그런 사람들이 다른 나쁜 일을 행한 적이 있는지, 사람을 납치한 적이 있는지, 사람을 해친 적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 매우 경건했고, 늘 성경을 해석하고 율법과 규례를 정확하게 지켰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탓으로 저주받은 거지 다른 악행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악인이 아닐까요? 나쁜 일을 조금도 행하지 않았지만 단지 예수님을 대적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받았습니다. 그것을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해도 됩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겨서는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은 왜 그렇게 경건한 사람들을 다 저주했습니까? 그 사람들은 악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 잘못도 저지른 적이 없는데, 왜 그 사람들을 정죄하나요?” 사실 그 한 가지 죄가 다른 그 어떤 죄보다 더 큽니다. 목숨 빼앗길 그 한 가지 죄를 지었다면, 다른 죄가 없어도 죽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가장 심각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금세든 내세든 사함받지 못합니다. 다른 부분에서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이 일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죽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만으로 끝장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은 종교 사람들을 위해 불평을 토합니다. “그 사람들 아주 경건해요, 주님을 아주 사랑해요,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주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니,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관용을 베풀어 주셔야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습니까? 사람의 눈에는 경건한 크리스천이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므로 화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을 판단하는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차이가 왜 그렇게 클까요? 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까요?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논단하고 의심한다면, 가장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대적합니까? 관념과 상상이 아닙니까? 대포와 같은 무기로 대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죠? 관념과 상상으로, 사탄의 터무니없는 이론과 그릇된 이치로, 하나님을 논단하고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선동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고 배반하게 하는 것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악행이죠.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악행을 누가 저질렀습니까?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 저질렀고, 교계의 목사와 장로들이 저질렀습니다. 어느 날엔가 재난이 쏟아져 대지진이 나서 교회당이 와르르 무너졌다고 합시다. 그러면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배를 드리다가 우지직 소리와 함께 모두 깔려 죽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관념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기도 드릴까요? 그런 사람은 무조건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 그런 경건한 사람들이 왜 죽어야 합니까? 그들도 다 당신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왜 그들을 구원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들을 위해 슬피 웁니다. 하나님, 당신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왜 그들을 구원하여 재난에서 벗어나고 악한 자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들이 만약 이런 기도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들도 이렇게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기도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 캐묻는 기도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추궁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그런 동영상이 하나 있었죠. 한 자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자매는 주님께 들림받아 천국을 한 바퀴 돌아보고 또 주님의 인도로 지옥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서 어떻게 울고 외치는지, 어떻게 가련한지를 다 보았습니다. 지옥에 있는 귀신들은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손을 뻗으면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 하면서 계속 그렇게 외쳤습니다. 이에 그 자매는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저 사람들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왜 구해 주시지 않으시나이까? 주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나이까? 저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어 하나님을 노엽혔는지 잘 알지 못하겠으나 주님이 저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뜨려 저렇게 고통받고 있나이다. 저렇게 불쌍한데, 하나님은 마음이 괴롭지도 않으시나이까? 저는 차마 보지 못하겠나이다!” 이 말이 어떻습니까? 그 자매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매우 선량하고 거룩하고 주님보다 더 좋아 보입니다! 그런 느낌이 좀 있지 않습니까? 자매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은 주님이 공의롭지 않고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다 착한 사람들인데 왜 불쌍하게 구원하지 않고 지옥에 떨어뜨렸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 자매가 거룩한 주님이 됐고 자비롭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으로 됐습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주님을 아는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을 전형적인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방인의 말로 어떻게 표현했죠? 완전히 자화자찬하면서 고결한 척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좀 우습지 않습니까? 사람이 주님보다 더 거룩하다는 것입니까? 주님이 행하신 것이 틀렸단 말입니까? 사람이 주님께 캐물을 자격이 있습니까? 정말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주님, 저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만 행한 사람일 것이나이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물론이라고,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나이다. 당연히 저렇게 처벌해야 하나이다.”라고 말한다면 아주 좋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사람답습니다.

【130-B-5】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진리가 없으면서도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면서 누구보다도 거룩하고, 누구보다도 선한 척하는데, 이것은 스스로 잘난 척하는것이고, 전형적인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크리스천들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보게 된다면,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원망이 가득하고, 심지어 원한이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이건 예수님이 그들을 지옥에 떨어뜨려서 저렇게 벌을 받는 겁니다. 주님은 참 너무 선하지 않으시네요. 주님을 안 믿겠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불신하는 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럼 그런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 잘못했을까요? 그 사람은 두 눈을 갖고 있어도 문제의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근데 왜 그렇게 자신만만할까요? 열심으로 착한 일을 하는 성도들을 보면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과부에게 물을 길어다 주고, 마당을 쓸어 주고, 고아에게 밥을 지어 주는 것을 보면 또 정말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거룩이 무엇인지 압니까?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당신만 거룩하고 주님은 거룩하지 않다는 말입니까? 당신만 착하고 주님은 착하지 않다는 말입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건 대적이 아닙니까? 그런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당에서 외식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기만 하면 바로 눈을 부릅뜨고 눈이 벌개지면서 마귀가 돼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생글거리면서 착한 사람인 척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가 착합니까? 위선적입니다! 요만한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면서 함부로 논단합니다. 누가 주님을 사랑합니까? 온 교계에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전 인류 가운데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뭐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관념과 상상으로 그 영예로운 면류관을 저 사람에게 며칠 씌우고 이 사람에게 며칠 씌우고 마지막에는 또 자기 머리에 쓰고, 그렇게 하지 마세요! 사람에게 그런 권병이 있습니까? 거룩이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좋은 일을 좀 하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편면적으로 해석하면서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겁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다 사랑이고, 다 구원임을 느끼고, 심판 형벌이든, 수리 대처든 최종 효과는 모두 사람을 정켤케 하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보게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정도까지 인식하고 경력하면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면이 아주 많고,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많은 일들에서 사람은 하나님 성품의 공의와 위엄과 진노를 보게 되는데, 마지막에 이익을 얻는 것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 고난을 다 받고 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진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생기면서 말할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너무 거역했어요, 눈이 멀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어요! 전에 다 관념과 상상대로 말했기 때문에 진리가 전혀 없었어요. 사람을 판단하고 일을 판단할 때, 원칙이 없었고 일을 보는 관점이 틀렸었어요. 이방인의 관점을 따르고, 교계에서 유행하는 논법을 따랐어요. 그래서 진리 실제에 부합되지 않고, 원칙에 어긋나고, 주님의 뜻에 어긋났었어요!”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진정으로 정결케 된 것입니다.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판단할 때, 원칙이 하나님과 일치해져서 사람 겉면의 행실을 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속셈과 동기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 사람에게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범사에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예수님과 한 마음이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겉면의 현상에만 근거해서 사람에게 면류관을 씌워놓고 이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고 저 사람이 정말 주님께 순복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건 허튼소리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예수님을 득죄할까 봐 두렵지도 않습니까? 당신이 조물주입니까? 당신이 사람을 지었습니까? 사람의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교만자대하고 독선적이고 진리를 모르면서 허튼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저의 경력을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갓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을 보고 나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종교적인 것이 있고, 관념과 상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면 저에게도 있고, 또 여러분에게 얼마나 있으면 저에게도 그만큼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고, 또 본분하면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고, 마침내 그런 일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을 보는 관점이 어느 정도 바뀌었고 교계의 사람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이런 말을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코 선천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알아들으셨지요? 여러분들도 8년, 10년 믿으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나, 편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함부로 논단하는 것들이 정결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정결케 됩니다. 제가 바로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가 어떻게 정결케 되었는지, 여러분도 저처럼 이렇게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경력하면서 기도하고 진리를 구한다면 마지막에는 저처럼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종교인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교계의 신학 박사나 목사, 장로들의 관점은 모두 틀린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못했고, 그런 분량도 없습니다. 또 사람의 관념과 상상, 독선적인 것들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아무도 사람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지 마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 어려운 것 같지만 하나님께는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려 하고, 성령이 사람과 함께하고, 인솔하고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면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1년 경력하면 1년의 성과를 얻을 수 있고, 2년 경력하면 2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3년, 5년 본분하면 적지 않은 진리를 알게 되어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8년, 10년을 본분하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8년, 10년 믿으면 교계에서 100년을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얻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믿으십니까? 교계에서 20여 년을 믿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3시간을 교통해 주고 나니 그는 20여 년 믿으면서 얻은 것보다 그 몇 시간 교통을 통해 얻은 게 더 많다고 했습니다. 20여 년을 믿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일과 부족했던 것들이 한번에 해결된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인가요?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이미 나이가 많습니다. 대 재난이 당장 떨어질 건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경력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겠어요?” 온전케 될 수 있을까요?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30년 가까이 믿었지만 저희는 금방 믿었잖아요!” 예수님께서는 7시간의 일을 한 사람과 1시간의 일을 한 사람이 얻는 상은 모두 같다는 비유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보면 저는 7시간을 한 사람이고, 여러분은 1시간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얻는 상은 다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질투하면서 예수님은 공평하지 않다고 했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그러자 사탄이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 비유는 바로 이런 뜻입니다.

【130-B-6】

말세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셔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셔부터 인류 사회가 끝날 때까지 두 번 성육신하셨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구속의 사역을 하신 것이고, 또 한 번은 말세에 친히 오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나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말씀을 발표하셨어요, 진짜에요. 이런 말씀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학 박사들, 교계의 목사들을 한데 불러 모아도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안간힘을 다 써도 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셔야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실로 되었습니다. 귀신이 사람을 패괴시켜 사람을 귀신으로 만든 것은 더욱 사실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들과 마왕은 사탄이 아닙니까? 다 사탄입니다. 육체는 사람이지만 그 영은 사탄의 영입니다. 사탄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의 영을 말하는 것인데, 바로 사탄의 영인 것입니다. 사탄의 영이 육체를 입으면 무엇이 됩니까? 세상 말로 하면 어떻습니까? “악마가 윤회하고 사탄이 환생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귀신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이방인은 이것을 통찰했습니다. 제가 갓 주님을 믿었을 때,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 문제를 물어서 저는 귀신은 바로 악령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틀렸냐고 하자, 그는 사람이 바로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말을 듣고 맞다고 생각하고 동감하면서 사람이 바로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귀신이 됐을까요?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부인하는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에 사람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마귀에게 점유당해서 살아내는 것은 다 산 귀신의 몰골이고 사람의 모양이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산 귀신이 아닙니까? 이전에 사람들은 악령을 귀신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육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바로 귀신이고, 귀신도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산 귀신인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이 말은 현실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지나칩니까? 이건 진리이고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지 우리 내부적으로만 말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이방인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마귀라고 하면 골칫거리입니다. 또 집에 돌아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 마귀라고 하면 골칫거리인고, 큰일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지만 지혜를 써야 합니다. 어떤 말은 속으로만 알고 있고 말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지혜가 없이 함부로 말했다가 문제를 일으켜 다른 사람이 논단하고 소송을 걸면 정말 골칫거리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전파되고 증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각 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 축하드립니다.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 말에는 실제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고 말씀이 육신 되어 인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진리를 발표하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기 시작하셨음을 보았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였으니 들림받은 것인데, 바로 하나님 앞에 들림받은 것이고, 공중으로 들림받아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공중’이란 무슨 뜻일까요? 온라인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을 하는 것이 ‘공중’의 뜻이 아닙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과 말을 하는 것도 공중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공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는데 ‘공중’은 대명사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늘에 있습니까, 땅에 있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땅에 있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먹고 마시면서, 셋째 하늘에서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실제적인 의의로 보면, 우리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하늘에 있을까요, 땅에 있을까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죠? 그래서 ‘공중’이란 단어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들림받아 어린양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바로 하나님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신 것지요. 둘째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말세에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심판대 앞의 심판과 형벌을 겪고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그 복은 너무나 큽니다. 역대 성도들도 얻기를 갈망했었지만 대부분 얻지 못했는데 우리가 얻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복 있는 일이 아닌가요? 셋째, 지금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서 마음이 좀 고통스럽고 체면도 깎이는 것 같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얻는 효과, 도달하는 효과는 정결케 되는 것이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비록 채찍질을 받으면서 품위와 체면을 따지지 않고 땅에 무릎 꿇고 엎드려 통곡하면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지만, 한동안 그렇게 고통을 겪다 보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점점 이지(理智)가 생기고, 양심도 소생되고, 영 안도 환해지기 시작하고, 하나님도 보게 되어 이 길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을수록 밝아지고 마지막에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서 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긴 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대 재난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대 재난이 닥쳐도 시편 91장 7절에 말한 것처럼 됩니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이 복이 크지 않습니까? 이방인이나 종교의 사람들은 다 재난 가운데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재난 속에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재난이 우리 몸에 임하지 않습니다. 정말 진리를 얻게 되면 죽음의 맛을 보지 않습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약속과 가장 큰 복은 다 우리 이 한 무리 사람들에게 응한 것입니다. 알아들었겠지요? 바로 이런 이유로 여러분들에게 축하드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축하드린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정말 아셨습니까? 여러분은 평범한 한 마디 빈말로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이 속에 담겨져 있는 축복은 아주 큽니다!

지금 어떤 새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념이 좀 있어 어떤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심하게 말씀하셔서 사실에 완전히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어떤 말씀은 심지어 비꼬는 느낌이 좀 있고 그다지 고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느낌을 가지는 것은 정상입니다. 우리도 갓 받아들였을 때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니, 의심하지 마세요. 이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맞냐고 절대 의심하지 마세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알아들었겠지요? 한동안 경력하고 나면 ‘하나님은 일부러 우리를 비꼬는 것이 아니네. 말씀에 실제적인 의의가 있어. 진실한 감정이고 실제 상황이야.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편차가 없어! 정확하여 틀림없고 매우 적절해.’라고 느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아직 여기까지 경력하지 못해서 이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몇 년 경력하니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 저 말씀에 대해 관념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님을 논단하고 하나님 말씀을 논단했다고, 또 이지도 없고 사람도 아니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죄를 자백하면서 자신의 입을 사정없이 때리게 되죠. 몇 년을 경력하고 나면 여러분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어느 말씀에 대해 관념이 생기고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혹은 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만 기억하세요. 한동안 경력하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니, 지금은 절대 논단하지 말고 관념을 갖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세요. “제가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아니든,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터득하면 됩니다. 이렇게 경력하다 보면 3년도 안 돼서 ‘아, 이런 말씀을 다시 읽어보니 또 다르네. 말씀이 참 너무 실제적이고 너무 진실해.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정확하고 틀림없어, 매우 진실해. 이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야! 그때 논단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야.’라고 느낄 것입니다. 금방 믿었을 땐 이런저런 관념이 있어 이것도 저것도 다 못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3, 5년도 안 돼서 다 받아들이게 되고, 문제되는 것이 없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경력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한 구절이 하나님의 말씀 같지 않고 절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서 사람이 잘못 쓴 게 아니냐고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어떤 관념이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 대해 어떤 관념이 있든지, 절대 하나님과 도박을 걸지 마세요. “하나님, 저는 이 말씀에 관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시면 분명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분명합니다.” 절대로 이렇게 도박을 걸지 마세요. 100% 완패할 것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입니다. 도박을 건 사람마다 다 완패합니다. 도박을 걸고 나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고 평생 여한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저의 설교 교통은 좀 고쳐도 됩니다. 저는 그리 높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한 글자도 못 고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고쳐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 도박을 걸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전 우주 아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말씀의 권병 아래에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이 말씀을 하나님에게서 왔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면 문젯거리입니다. 그러면 평생 여한을 남기고 영원히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다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본분에 대해 말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경력하는지를 교통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진리를 교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날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해석하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 사역합니다. 몇십 년 동안 주님을 믿었지만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몇십 년 동안 주님을 믿고 나서 가장 큰 성과는 무엇입니까? 성경의 글귀 도리를 좀 알게 되었지만 주님에 대해서는 진실한 인식이 조금도 없습니다. 이론과 빈말 뿐이어서 탁상공론입니다. 평생 주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주님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겉면의 행위는 좀 변했지만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성경 지식은 많이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점점 더 교만방자하고 독선적이 되어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믿고 얻은 성과입니다. 제가 말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요? 어느 교회에 가든 목사, 장로, 신학생, 신도들이 다 성경을 가지고 겨루는데, 서로 불복하고, 서로 누가 더 잘 아는지 겨루기만 합니다! 성경의 글귀에 대해 논하기만 하면 각자가 다 자기의 관점만 말하면서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성령이 주권 잡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주권 잡는다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단지 ‘주 예수’ 이 세 글자이고, ‘주 예수’란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주님을 오랫동안 믿었어도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오랫동안 믿다가 들어오신 분들이 주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진실한 인식이 있는지 얘기해 보세요. 얘기할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 앞에서 인식한 것을 얘기할 수 있습니까? 진리의 실제가 있는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평가하게 해 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들은 이런 것을 잘 분별합니다. 얘기한 것이 글귀 도리이고 조금도 실제적이지 않으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달라집니다. 1년을 경력하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아, 교계에서 배운 것들이 다 글귀 도리였네. 이 1년 동안 내 관념과 상상이 진리 실제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어. 아직도 매우 교만방자하고 독선적이고 자신을 너무 높게 보고 있어. 내 자신을 낮추지도 않았고. 입으로는 겸손하고 사랑하고 인내하라고 외쳤지만 마음속에서는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아주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어.’ 주님을 믿은 시간이 길수록 다른 사람을 더 평가하게 되고,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실제적이지 않고 외식한다고 해부하면 그는 말한 사람을 때리고 논단하고 적이 됩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권력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구요. 교계의 목사와 장로들은 교계에서 다 왕들입니다. 한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성경에 대해 겨루는데, 누가 더 많이 아는지 가려내지 않으면 그만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여 굴복하면 그 사람과는 별 탈 없이 잘 지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복한다면 계속 맞섭니다. 교계에는 이런 일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 실제가 없으면 스스로 난처해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래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제자매들은 그런 사람이 말하는 태도와 말투 그리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진리 실제가 없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고 어느 정도 되는지 짐작해 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폭로당하고 질책당하고 대처, 수리까지 당해도 반항하지 않습니다. 막 믿기 시작한 새 신자들까지 그렇다고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몇 년을 믿으면 반항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누가 말한 것이 진리이면 인정하고 순복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말한 것이 진리에 부합되면 순복합니다. 누가 인솔자나 일꾼이 됐든, 그 사람이 한 말이 진리에 부합되고 사실에 부합되기만 하면 순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주권 잡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주권 잡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주권 잡는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가 주권 잡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주권 잡는다면, 즉 하나님이 주권 잡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의 나라가 땅에 나타난 것입니다.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130-B-7】

여러분은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어떻게 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직도 중국 공산당과 교계가 날조한 유언비어를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복음을 전해 줬는데 믿지 않으면 귀를 자르고 코를 베고 눈을 파낸다”는 유언비어를 계속 믿습니까? 코가 잘리고 눈이 파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중국에도, 타이완에도, 한국에도 다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들이 사역하고 복음을 전하는 곳인데, 그런 사례가 한 건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은 왜 그렇게 제멋대로 유언비어를 날조할까요? 공산당은 어떤 놈들입니까?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악마들입니다! 그놈들은 무슨 유언비어든 다 날조합니다. 못할 거짓말이 없고 날조하지 못할 유언비어가 없습니다. 마귀란 무엇일까요?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다 마귀입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들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돈 한 푼 벌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있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본분을 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라도 믿을 수 있으면 그나마 좀 괜찮고 이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하는 간증도 믿지 않습니다. 그럼 누구만 믿을까요? 중국 공산당의 말은 믿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당이니까 터무니없는 말을 할 리가 없다고 합니다. 사실 집권당일수록 더 터무니없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 않는 집권당이 있습니까? 없죠. 집권당이야말로 황당무계한 말을 합니다. 국민들은 그나마 좀 나아 보이는데 이건 저의 관점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닌가요? 중국 공산당이 퍼뜨린 유언비어와 거짓말만 믿는다면, 그건 무슨 문제일까요? 하나님 말씀은 믿지 않고 마귀 사탄의 말을 믿는데, 믿음이 너무 작습니다. 그 믿음에는 뒤섞임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믿지 않는 건 더욱 문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들이 가정과 직업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한 푼도 벌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을 봤으면서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들림받은 교회입니다. 이 무리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도 심판대 앞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해서 하나님에 대해 조금 알고 난 후 참된 믿음을 갖추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많은 시련의 고통을 겪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온전케 된 한 무리 이긴 자의 간증도 이미 나타났습니다. 일부분 사람들이 진실한 체험 간증을 해서 하나님을 위해 굳센 간증을 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들림받은 교회입니다. 대 재난이 임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땅에 나타난 교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들어오면 하나님나라시대로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들어오면 그리스도 나라의 자민이라고 할 수 있냐고 묻는데, 맞습니다,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을 경력해야 합니다. 시련을 이겨 내서 참된 간증이 있으면 자민이 된 것입니다. 지금은 수습 기간으로 그리스도 나라의 ‘수습 자민’입니다. ‘수습 자민’을 하나님 선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선민이 대 재난을 겪은 후, 거기에서 살아남으면 ‘하나님 나라의 자민’으로 이름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민으로 되는 과정입니다. 자민은 대 재난 속에서 나와 살아남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이하는 것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습니다. 근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교회에 다니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들어오려면 교회의 심사와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또 조건도 있습니다! 어떤 조건일까요? 첫째, 악한 사람이 아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평판이 좋고 인성이 있어야 합니다. 또 생김새가 단정하고 반듯하고 착한 사람 같아야 합니다. 그럼 합격입니다. 둘째는 악령이 아니어야 합니다. 악령은 안 됩니다, 필요 없습니다. 하루 종일 방언만 안 됩니다. 그건 악령입니다. 눈을 뜨고 귀신과 영을 볼 수 있다면, 악령입니다. 악령이 들린 사람은 교회에서 받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셋째, 동성애자는 안 됩니다. 넷째, 일관되게 음란을 행하는 사람과 세상에서 평판이 나쁜 사람은 안 됩니다. 다섯째, 살인범, 강간범, 절도범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몇 가지 조건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마다 심사와 동의를 거치고 조건에 부합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만약 처음에 잘 알지 못해서 받아들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에 동성애자나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면 제명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는 국도 행정이 반포되어 있습니다. 오고 싶으면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과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순리에 맡기고 자유를 줍니다. 그 누구든 가로막아선 안 됩니다. 교회 문을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누구든 가로막아서는 안 되고, 어떤 조건도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나가도 됩니다. 알아들었지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오늘 믿었는데, 내일 나가도 돼요?” 지금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편합니다! 문은 늘 열려져 있으니 언제든지 나가도 됩니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상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댁까지 쫓아갈 일 없고 전화로 귀찮게 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번 더 들어 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제가 알고 있었다면 그런 사람을 말렸을 것입니다. 더 얘기해 주지 마세요. 나가는 건 본인 마음이고 자유입니다. 누가 나가든 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새 신자들은 마음대로 헌금하지 마세요. 열심으로 하는 헌금은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새 신자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니까 헌금한 것도 열심으로 한 것이지 참된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년 정도 믿고 진리를 좀 깨닫고 나서 여러 번 기도한 후에 기꺼이 원해서 헌금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새 신자에게 헌금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집에서는 헌금하라고 언급하는 것을 허용치 않습니다. 예배드릴 때에도 헌금에 대해서 교통해선 안 됩니다. 헌금에 관해 교통하는 인솔자 일꾼은 교체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의 행정에 공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배부한 책이나 CD나 영화는 다 무료이고,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형제자매들 간에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있는데, 여러 해 동안 교회에서는 이렇게 실행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지금까지 헌금하라고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누리기에 충족하고 아주 풍성합니다! 큰 붉은 용도 보고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그것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해 돈을 빼앗으려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다니는 집에 가서 땅을 3자 파면서까지 돈을 강탈하려고 합니다. 그것들 강도가 아닙니까? 정말 비열하고 파렴치합니다. 먹지도, 입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와서 돈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붉은 용 중국 정부가 저지른 비열한 짓거리입니다!

제가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대해 소개했는데, 이 몇 가지 방면이면 충분하겠지요? 우리 교회에서 나가겠다는 사람을 누가 함부로 막는다면 그 사람은 출교당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열성적이면 안 됩니다. 나가겠다면 말리지 마세요. 그 사람에게 교통비가 없으면 교통비를 주면서 배웅하세요.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빗자루를 들고 쫓아도 나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막 대해도 나가지 않습니다. 큰 붉은 용이 아무리 추적하고 탄압해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사람은 계속 많아지고 있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왜 많아지고 줄어들지 않을까요? 극소수의 사람들은 구타당할까 봐 두려워 위축되고 겁나서 믿지 않고, 또 유다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도해서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전도해서 들어온 사람이 떨어져 나간 사람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많아지기만 하고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왜 갈수록 흥해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큰 붉은 용이 그렇게 미친 듯이 탄압하고 박해하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깨끗해졌습니다. 어떻게 깨끗해졌을까요? 겁 많은 사람이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물러갔고, 참 하나님을 확신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탄압해도 나가지 않았으니, 교회가 더 깨끗해진 게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이 무너진 다음에 믿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소용없습니다. 그때면 연회는 끝났습니다. 은혜의 문이 닫혔고 이미 늦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기는 자를 온전케 합니다. 오늘 예배는 이만큼 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제기하셔도 됩니다.

문제해답

문제 (1) 어떻게 성령 역사를 확정해야 합니까?

다음과 같이 답변함: 성령은 초자연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성령 역사는 대부분 경우에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을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줘서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어떤 때는 일깨워 주고, 감동을 주고, 하나님께 기도하게도 하고 또 진리를 실행하면서 자기 뜻대로 하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사람을 강요하지 않고 억지로 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 역사는 사람의 생명 진입에 대해 유익한 것입니다. 악령 역사만이 사람에게 육체를 생각하게 하고, 관념과 상상대로 하게 하고, 교만방자하고 독선적이게 하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합니다. 이런 것이 악령 역사입니다. 성령 역사는 사람을 인도해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게 합니다. 또 진리를 깨닫도록 깨우쳐 주고, 사람을 감동시켜 원칙 있게 본분하게 하고 진리를 실행하게 합니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 역사를 얻으면서 초자연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한동안 경력하다 보면 적지 않게 깨닫게 되고, 정말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씩, 그리고 점점 더 진리를 깨닫고 더 환해집니다. 이러면 성령 역사가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약 오랫동안 경력해도, 반년이나 1년 동안 발전이 조금도 없고, 얻은 것이 없고, 영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없고,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어느 방면에서나 발전이 없다면 성령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점점 뒷걸음치고 초자연한 것을 믿고 하나님에 대해 갈수록 믿음이 작아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싶다면 아마 악령이 역사하는 것이라서 위험합니다. 이상 어떻게 성령 역사를 확정하는지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석입니다.

【130-B-8】

문제 (1) 우리 여기 미국에는 직업이나 집안일이 좀 바빠 어떤 때는 하나님 말씀을 보지 못해 마음에 걸리고 하나님께 빚지는 느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첫자리에 놓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주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갓 받아들인 데다가 균형점을 잡지 못해 별로 즐거운 줄 모르겠습니다. 직업, 가정과 교회에서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답변함: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면 바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못하고 집세도 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죠. 차량유지비, 전기요금, 수도요금…… 뭐나 다 돈이 드는데 일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애로사항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나니 부담이 더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데, 특히 본분을 하는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사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안 믿었을 때는 힘들지 않았습니까? 똑같이 힘들었습니다. 아마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설마 지금보다 더 힘들었겠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보다 더 힘들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건 배불리 먹기 위해,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 악착같이 일하면서 고생스레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많고, 순탄치 않고, 세상도 공평치 않고, 사람도 다 사악해서 어려움도 많이 생기고, 순조롭게 풀리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고통들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줄어듭니다. 또 지혜도 생기고 길도 생기면서 마귀와 어울리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람들을 지혜롭게 대하면서 고통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한 말이 실제적이지 않습니까? 외적인 일에서, 많은 고통들은 어떻게 임합니까? 첫째는 마귀가 생존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없어서 마귀가 늘 침범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진리가 없으니 지혜도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있으면 지혜도 있고, 진리가 있으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진리를 깨달아 지혜가 생기고, 또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까지 있으면 많은 고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줄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심령이 위로를 좀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난이 닥치면 우리는 마음이 편안하지만 이방인들은 아연실색하면서 살아가기 힘들다고 느끼고 세계의 종말이 왔다고 느낄 것입니다. 똑같이 재난이 닥쳤는데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느끼는 것은 이방인이 느끼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또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동참하게 되는데,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그 정도의 위로로도 심령이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이것이 가장 참된 행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돼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생겨서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심령의 기쁨, 심령의 위로, 심령의 소망이 바로 인류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런 것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왜 눈코 뜰 새 없나요? 돈을 벌랴, 가족을 부양하랴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까지 봐야 되지, 교회 생활을 하고 예배를 드려야지 부담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복이 더해지고 얼마나 많은 후환과 재난이 줄어들었습니까! 왜 이런 것은 보지 않는 것입니까? 이렇게 균형을 맞추면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요? 제가 이렇게 교통하니 알겠지요? 어느 쪽이 복이 있는 길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을 믿고 나서 마귀 세상을 꿰뚫어보고 더는 왕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의지해 살 필요도 없고, 그들에게 아첨할 필요도 없으며, 더욱이 그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삶이 점점 더 즐거워졌습니다. 걷는 길이 점점 환해지면서 마음도 따라서 더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참된 행복과 진정한 복을 얻게 됩니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이런 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야 행복이 있습니다. 심령의 평안과 기쁨, 소망과 누림, 그리고 위로는 진리를 얻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삐 보내는 것은 큰 축복이고, 큰 복입니다! 이방인들을 보세요, 바삐 보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마음은 고통스럽고, 근심이 가득하고, 좋은 결말과 좋은 귀숙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였으니 하나님 집에 등록이 됐고 생명책에 등록이 됐습니다. ‘생명책’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들림받아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진리와 생명을 얻은 것을 가리킵니다. 교계에 있는 사람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생명책에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말세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것은 영원한 생명의 도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온전케 돼야 생명책에 몫이 있고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으면 마음에 얼마나 큰 누림과 복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얻었을까요? 얻지 못했습니다. 하늘에서 천둥 치고 비가 오면 ‘아, 주님은 왜 아직도 안 오실까? 주님은 언제 오실까? 주님이 오시긴 할까? 내가 버림받은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두려워지고 마음에는 주님이 없어집니다. 늘 하늘에 들림받을 생각만 하면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데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걸 절대 안 믿는다고 합니다.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에 1장 7절에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실 때는 만민이 애곡할 것입니다. 왜 애곡할까요? 주님이 도둑같이 은밀히 강림하셨을 때, 인자로 와서 사람을 온전케 하실 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죄하고 대적하고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주님이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강림하시는 것을 보면 슬피 울면서 이를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말씀이 응한 걸까요?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나타나실 때, 도마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20장 29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그러므로 주님이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을 본 뒤에야 믿는 자들은 끝입니다. 아무 복도 없고 도태돼서 애곡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어떻게 또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시냐고 합니다.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형상을 바꾸어 시온으로 돌아가 대 재난을 내린 후, 마지막에 재난이 지나가고 거의 끝날 무렵에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알아들었겠지요? 그럼 지금은 대 재난이 곧 오고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가시려고 할 때입니다. 성육신이 사역하시는 것은 이 한동안입니다. 이것은 만나기 어려운 기회로 이 20~30년 뿐입니다.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하셨을 때처럼, 그 몇 년 사이에 다 하신 후,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나타나시다가 승천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도마를 만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은밀히 강림하여 역사하시는데 성육신하신 인자를 믿지 않다가 영체가 공개적으로 오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믿는다면 주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실까요? 예수님께서는 영체가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성육신해서 도둑처럼 왔을 때 받아들인 자는 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문제 (2) 우리는 다른 교회에서 왔습니다. 지금 주일이 되면 또 원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로 옮겨야 하고 어떻게 본분을 해야 합니까?

다음과 같이 답변함: 본분부터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먼저 하나님 말씀을 좀 더 먹고 마시세요. 환히 깨닫고 난 뒤에 본분을 하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후 깨달을 수 있는지 봐야 합니다. 나중에 말씀을 아무리 봐도 관념이 많고 아무리 봐도 의문점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물러갈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이런 일을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이제 완전히 확신하고 관념도 없고 의심도 없어졌을 때, 본분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주일에 가서 예배드리는 교회에서는 일단 공개하면 안 됩니다.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공개했다가 그 사람들이 성경으로 정죄하고 중국 공산당의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꺼내들면 자기가 잘못 믿은 거 아니냐면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은 당해 낼 만한 분량이 없습니다. 뭐든 다 알아듣고 관념과 의심이 조금도 없을 때, 원래 교회에 공개해도 됩니다. 지금 공개하면 당해 내지 못합니다. 못 믿겠으면 한번 공개해 보세요. 그때 가서 당해 내지 못했다면 또 와서 저에게 물어볼까요? 교회에 와서 찾고 구할까요? 그러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꿇어 엎드려 죄를 자백합니다. 그 뒤로 다시 오지 않고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게 됩니다. 그때면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전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나 봤습니다. 교통을 다 듣고는 예배를 통해 완전히 깨달았고 100% 믿는다면서 그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 가면 돌아오지 못하고 그 사람들한테 넘어갈 거라고 설득했는데도 믿지 않고 가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들한테 넘어갔습니다.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해 그 사람들을 반박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계에 가서 공개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교계 목사한테 물어봐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려면 바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물어본 목사가 마침 적그리스도였다면 단번에 사람을 노략해 갈 것입니다. 목사에게 말하면 안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고 억지로 붙들지 않습니다. 제 말을 들으면 교통해 주고, 떠나겠다고 하면 배웅해 줄 것입니다. 뺨을 때리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눈을 파내는 건 물론 머리카락 한 오리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지금 헌금하려고 해도 받지 않습니다. 헌금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런 교회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그냥 먹고 마시게 합니다. 보세요, 이것이 진리가 아닙니까? 생명이 아닙니까? 이것이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닙니까? 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영원한 생명의 도라 하지 않고,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라고도 하지 않을까요? 계시록의 예언은 어디서부터 이루어질까요? 하나님의 말세 성육신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와서 하신 것은 구속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라고 하지 않고 그저 생명수의 원천이라고만 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말세 그리스도의 발표야말로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이고, 하나님이 정식으로 말세에 사람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시면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인류를 창조하신 후 처음으로 이렇게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는 계시록의 말씀은 이것을 가리킵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하신 모든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 알아들은 다음 돌아가 공개해도 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여러분은 분량이 너무 작아서 당해 내지 못합니다. 절대 무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무리하던 사람들이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때에 가서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서 계속 예수님을 믿어도 괜찮지 않냐고 하는데, 이 말이 어떻습니까? 다시 돌아가 예수님을 믿으면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실 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3장 15절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그들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않고 종교로 끌어갑니다. 그래서 일단 종교에 들어가면 지옥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입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으로 들림받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받은 것입니다! 교계는 교회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좌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에 들어가면, 즉 종교에 들어가면 지옥 자식이 되고 하나님의 구원과 인연이 없어집니다. 알아들었겠지요?

여러분에게 하나 더 얘기할게요!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실 때, 여러분들이 만약 구속의 은혜도 받아들이고 율법도 지키겠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예수님께서 인정하실까요? 그것은 어떤 착오를 범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반드시 하나님의 오늘날 사역에 순복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습니다! 이전에 한 사역은 다 오래돼서 누렇게 된 달력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는 끝나고 도태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단계에 근거해 사람에게 죄를 정하고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지 그 단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 단계는 도태됐습니다. 알아들었겠지요? 하나님이 오늘 발하신 음성과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그 영이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이 이전에 하신 말씀을 계속 보면 예수님의 그 영이 당신을 내버리고 증오하십니다. 또한 오늘날의 역사를 따르지 못하면 거역하고 외식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근데 여호와 하나님께도 득죄하지 않고, 예수님께도 득죄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께도 득죄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이미 다 득죄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그 영이시고 또한 여호와의 영이십니다. 이런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어오다가 하나님을 세 분의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착오를 범한 것이고, 잘못된 길을 걸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시대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시고, 율법시대에는 여호와로 불리셨고, 은혜시대에는 예수로 불리셨는데, 한 분의 하나님이시고 하나의 영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3~5년이나 7~8년 보다 보면 무엇이든 다 환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분명히 깨닫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예수, 전능하신 하나님은 본래 한 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천천히 보세요. 그 말씀들을 보고 나면 다 꿰뚫어 보게 될 것입니다. 너무 적게 보면 제가 아무리 교통해도 따라오지 못합니다. 이것은 노력의 문제입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교통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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