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4집 (b)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9편 말씀>에 관한 설교 교통

【124-B-1】

내 말을 사람이 삶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 것은 사람의 직책이다. 반드시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자초하고 스스로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숨을 나와 바꾸려 하지 않고 다만 자신 수중의 폐품을 내 앞에 가지고 와서 알짱거리며 나를 만족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사람에게 요구할 뿐이다. 나는 사람이 공헌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혐오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탐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 거기에서 벗어나 나에게 마음을 바치지 못한다. 내가 말을 할 때, 사람은 모두 온 정신을 집중하여 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음성을 그쳤을 때, 사람은 또 자신의 ‘경영’을 시작하였고, 내 말이 그의 ‘경영’의 부속물인 듯, 조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는 계속 사람에게 요구를 늦추지 않았지만 또 인내하고 관용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관용으로 인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스스로 자신을 알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며, 내가 인내함으로 나를 기만하기만 한다. 사람들 중,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헤아려준 적이 없고 아무도 나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아 귀하게 여긴 적이 없으며 그저 한가할 때만 나를 조금 응대할 뿐이다. 나는 이미 사람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공을 들였고, 사람에게 전례 없는 사역을 하였다. 그 외에 나는 또 사람에게 더한층 ‘부담’을 주어 나의 소유소시 가운데서 다소 인식이 있고 변화가 있게 한다. 사람을 단지 소비자만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가 되게 한다. 비록 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내게는 사람에 대한 요구 기준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과 근거가 있게 일을 하는 것이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심심풀이로 하거나 마음이 내키는대로 천지 만물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에서 사람은 마땅히 무엇을 좀 깨닫고 얻어야지 자신의 ‘청춘’만 허비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생명을 아무렇게 먼지가 묻어도 되는 옷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자신을 엄격히 보호해야 하고 나의 풍부함으로 자신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더 나아가 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로 돌아서서는 안 되고 도리어 사탄을 공격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은가?

동방에서 한 줄기의 희미한 빛이 조금 내비취었을 때, 전 우주 아래의 사람은 이로 인해 모두 동방의 빛을 조금 주목하게 되었다. 사람은 더 이상 단잠을 자지 않고 동방의 빛의 근원을 바라보는데, 사람 능력의 한계로 그 빛의 출처를 본 사람은 없었다. 전 우주 아래가 전부 환히 밝아졌을 때, 사람들은 모두 꿈속에서 깨어나 비로소 나의 날이 조금씩 인간 세상에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모두 경축하고 있으며, 빛의 도래로 인해 더 이상 깊이 잠들어 있지 않고 혼미하지 않다. 내 빛의 비췸으로 사람은 모두 통찰력이 예리해져 삽시에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자욱한 안개 속에서 인간 세상을 바라보니 동물은 모두 쉬고 있었다. 모든 만물은(원문: 物) 한 줄기 희미한 빛의 도래로 인해 새 생활이 임했음을 의식하였다. 그러므로 동물들도 굴에서 기어 나와 먹이를 찾는다. 물론 식물도 예외가 아니다. 빛의 비췸으로 푸른 잎은 빛을 반짝이며 내가 땅에 있을 때에 자신의 몫을 바치려고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모두 빛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도 빛이 임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자신이 벌거벗어 가릴 것이 없는 까닭에 자신의 추한 몰골을 가리지 못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빛이 임하여 몹시 당황해하고 빛이 나타난 연고로 크게 놀라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빛을 본 후 후회막급하여 자신의 불결함을 증오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 나의 징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고난의 연단을 받았기에 빛을 보았을 때, 바로 빛의 깊은 의미를 느끼고 다시 잃을까 두려워 그 빛을 자신의 품에 껴안았다. 빛이 갑작스레 나타났어도 많은 사람들은 빛이 갑작스레 나타났다고 하여 결코 평정을 잃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일만 하고 있다. 그가 실명한 지 오래 되었기에 빛의 도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또한 빛으로 인한 누림도 얻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는 결코 위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천하지도 않다. 사람에게 있어 나는 있으나 마나한데 마치 내가 없어도 사는 것이 쓸쓸하지 않고 내가 있어도 즐거움을 얼마 더해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이 나를 귀히 여기지 않기에 내가 사람이 누리도록 베풀어 준 물질은 아주 적다. 하지만 사람이 나에게 애모의 정이 좀 더 생겼을 때, 나도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원칙(원문: 規律)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그제야 다행스럽게도 내게 와서 자신을 바치는 것으로 나의 수중의 것을 얻어 내려 한다. 설마 나에 대한 사랑이 단지 자신의 흥미 내에 제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나에 대한 믿음이 단지 내가 준 물질에 제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나의 빛을 보지 못하면 사람은 믿음으로 나를 참되게 사랑할 수 없단 말이냐? 설마 사람의 에너지가(원문: 精力) 정말로 오늘의 상황에 제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나를 사랑하는 데에도 담력이 필요하단 말이냐?

만물은 나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순복하고 나의 징계가 없어도 결코 제멋대로 방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산은 땅에서 각 나라의 경계가 되었고, 물은 이 땅과 저 땅 사이에서 사람을 가로막게 되었으며 공기는 땅 위의 공간에서 사람 가운데 유통하게 되었다. 오직 사람만이 내 뜻의 요구에 진실로 순종하지 못하므로 나는 사람이 만물 중에서 패역한 것에 속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나에게 참되게 순복한 적이 없으므로 나는 계속 사람을 엄격히 관리한다. 나의 영광이 사람들 가운데 정말로 전 우주 아래에 널리 퍼진다면 나는 반드시 모든 영광을 다 사람에게 나타낼 것이다. 사람은 더럽기 때문에 나의 영광을 볼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수천 년 동안 나는 사람에게 공개한 적이 없고 숨겨 두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나는 사람에게 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고 사람은 계속 죄의 심연 속에 타락되어 있었다. 내가 사람의 불의를 용서해 준 적도 있었지만 사람은 모두 스스로 보호할 줄 모르고 늘 ‘죄’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죄’가 자신을 해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것이 그래 사람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지 않고 자신을 아낄 줄 모르는 것이 아니더냐? 사람 사이에 진실한 사랑이 있느냐? 사람의 충성은 몇 냥이나 되느냐? 소위 사람의 진실 가운데 다 가짜가 섞여 있지 않느냐? 사람의 충성은 다 혼합물이 아니더냐?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단일한 사랑인데,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한다. 비록 나를 알려고는 추구하지만 참되고 간절한 마음은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 나는 결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나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사람이 나를 신뢰하지 못해 자신을 조금도 나에게 바치려 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에 대해 더 많이 근심하지 않고 따로 처리하여 사람에게 적합한 귀숙을 줄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 천둥 칠 때, 사람을 쳐서 쓰러뜨리고, 큰 산이 갈라질 때, 사람을 매장하며, 맹수가 굶주릴 때, 사람을 통째로 삼키게 하고, 바닷물이 세차게 밀려올 때, 사람을 침몰시키며, 인간 세상에서 서로 학살할 때, 사람은 모두 사람들 간에서 비롯된 재해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국도(國度)는 사람들 가운데서 확장되고 사람들 가운데서 형성되며 사람들 가운데서 세워지는데, 어떤 세력도 나의 국도를 무너뜨릴 수 없다. 오늘, 국도의 자민(子民) 중에 어느 누가 사람 중의 일원이 아니었던가? 어느 누가 사람의 정형이 아니었던가? 내가 새로운 시작을 공포(公布)할 때 사람의 반응은 또 어떻겠는가? 인간 세상의 상황을 너희가 직접 보았으면서 설마 아직도 세상에서 오래 머물 생각을 단념하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지금 뭇 자민 가운데서 거닐고 있고 뭇 자민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오늘날, 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나에게 순복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나라에 남을 것이요, 나를 아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국도에서 권세를 잡을 것이다. 나를 추구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사탄의 묶임에서 벗어나 내게 있는 복을 누릴 것이요, 자신을 배반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에게 점유되어 내 나라의 풍부함을 이어받을 것이다. 나를 위해 뛰어다니는 자는 내가 기억하고, 나를 위해 화비하는 자는 내가 열납하며, 내게 바치는 자는 내가 그에게 누릴 것을 베풀어 줄 것이다. 나의 말을 누리는 자는 내가 축복할 것이요, 반드시 내 나라의 기둥이 될 것이며 나의 집에서 분명 더없이 풍부하여 비할 자가 없게 될 것이다. 너희를 위한 축복을 너희는 받아들인 적이 있느냐? 너희를 위한 약속을 너희는 추구한 적이 있느냐? 너희는 내 빛의 인도로 반드시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벗어날 것이고, 흑암 속에서 절대로 빛의 인도를 잃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만물 중에서 주인이 될 것이고, 반드시 사탄 앞에서 이긴 자가 될 것이며, 큰 붉은 용의 나라가 무너질 때, 만인 중에 서서 반드시 나의 이긴 증거가 될 것이다. 시님 땅에서 너희는 반드시 굳세어 흔들리지 않으며, 받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복을 이어받고 전 우주 아래에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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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⑤시님: 원문은 진나라(秦國), 지금의 중국을 가리킴.

【124-B-2】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 <제19편 말씀>에서 주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까? 주로 하나님께서 말세 역사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으로 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려고 하십니까? 간단히 말해, 바로 한 무리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려는 것입니다. 그럼 이긴 자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아마 어떤 사람은 잘 몰라서 “이긴 자가 어떤 건가요? 이긴 자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마지막까지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한 가지 논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긴 자란 진정으로 진리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고 마지막에 간증을 선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맞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 가운데서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긴 자입니다.”라고 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역시 맞습니다. 이런 말은 다 맞습니다. 다 맞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진실한 경력과 진실한 간증도 있어야 합니다. 이는 문제를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말하든지 저는 하나님을 따를 것이고 끝까지 견지하리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이러면 이긴 자가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틀렸습니다.) 왜 틀렸습니까?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는지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심지(心志)가 다 크지만 시련이 임하면 또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에게 잡혀서 하룻밤 사이에 유다가 되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그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유다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들인 심혈 대가와 전에 그렇게 컸던 심지가 하룻밤 사이에 모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는데 마치 수증기처럼 증발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진리 실제가 없으면 굳게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시련이 임했을 때, 심지가 있다고 효과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욥은 시련이 임했을 때 어떻게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말해 보겠습니까? 그가 온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그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원인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이 한 마디 말이 바로 욥의 생명인 것입니다. 욥이 여러 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이런 생명을 마지막에 얻었기 때문에 간증을 굳게 선 것입니다. 믿음만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믿음만 있는 역대의 성도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욥과 같은 간증을 설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너무나 귀합니다. 그럼 이긴 자의 생명은 무슨 생명이겠습니까? 바로 욥의 생명인데,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생명입니다. 사람이 이런 생명을 얻어 그 생명이 마음속에서 형성되고 자라나게 되면 바로 이긴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명이 없다면 겉으로 심지가 아무리 크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고 해도 굳게 설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부 사람들이 큰 붉은 용의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감옥에서 결국 유다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은 평상시 추구하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믿은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일부 사람은 그렇다고 하지만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소수의 사람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고 인성도 정말 좋으며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얻기 전에는 모두 나약해서 시련이 임하기만 하면 이겨 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긴 자의 생명이 무엇이고 간증이 무엇인지 사람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정도의 심지와 믿음으로는 간증을 서려고 해도 불가능하며 확실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환난이 임하지 않았을 때는 믿음이 백배이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고통을 어느 정도 받아도 물러가지 않았지만, 시련이 임하자 왜 주저앉았겠습니까? 어찌하여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본분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어찌하여 소극적이 되고 나태해지겠습니까? 어찌하여 하던 본분에서 손을 떼려고 하겠습니까?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생명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명이 없는 사람은 이렇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고 시련과 환난이 임하기만 하면 소극적이 되고, 비관하고, 실망하는데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 말은 저도 알고 있어요. 저도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왜 큰 붉은 용을 멸하지 않습니까? 큰 붉은 용을 멸하면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적그리스도와 마귀들은 왜 여전히 이렇게 창궐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고 정죄합니까?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멸하지 않습니까?” 이런 의문은 사람마다 갖고 있는데 이는 무엇을 설명합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지금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모두 이스라엘을 정죄하고 이스라엘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 네 글자는 바로 하나님 선민의 대명사입니다! 세상의 많은 나라가 모두 일어나 이스라엘을 반대하고 이스라엘을 정죄하며, 심지어 군대를 파견해 이스라엘을 지구에서 훼멸하려 할 때 곧 하나님의 행사가 보여질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선민에게 가장 큰 환난이 임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이 낙담하고 실망하여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행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모든 행사를 다 나타낸 후에야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온 인류를 향해 행사를 나타내 모든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예수님도 참 하나님이며 전능하신 하나님도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게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비로소 세상 끝 날이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행사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땅을 향해 모습을 감추시고 거룩한 나라를 향해 나타나시지만, 사악한 세상과 사악한 인류에게는 그분의 행사와 성품만 나타내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많은 나라의 정죄와 비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출병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지만, 하나님의 날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최후 결전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겠습니까? 바로 여러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 즉 제3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행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모든 사람은 보고 나서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은 확실히 참 하나님이다!”라면서 무너질 것입니다. 철저히 무너지고, 이를 갈고 애곡하며 죽어 묻힐 곳도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정세는 그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갈수록 더 악화되고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날이 갈수록 더 악화되고 심각해지는 형세하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구원하실까? 우리가 이렇게 사악한 인류에게 훼멸당하지 않을까?’ 그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밤낮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세 사역을 하신 이후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런 사악한 세력이 갈수록 미쳐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이 그렇게 미쳐 날뛰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을 멸하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허락하실까요?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이런 일에는 두 가지 방면의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둘째는 필연적인 추세인 것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증오하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필연적인 법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사악한 무리들이 그렇게 미쳐 날뛰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도록 허락하셨겠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만약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세력이 미쳐 날뛰면서 정죄하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세력을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적그리스도의 실질을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사람들이 인류가 깊이 패괴되어 사탄의 후손이 된 사실의 진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역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사악한 세력의 실질과 진상을 철저히 드러내 사람에게 보여 주고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입니다. 만약 이런 일들을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 주지 않고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하지 않고 언젠가 재난이 임할 때 교계의 적그리스도를 모두 멸한다면 사람에게 어떤 관념이 생길까요? 사람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안 하셔. 하나님을 믿는 교계를 모두 멸하셨는데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해!”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 교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이 그렇게 미친 듯이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들을 간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길 것이며, 심지어 그들을 위해 대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마귀이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모두 하나님께 훼멸됩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사람들은 “맞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날 믿지 않는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믿지 않는 아내(남편)가 죽으면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모두가 하나님을 정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바로 이런 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종 마귀 사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선민을 대하는지를 드러내 빛 가운데 폭로하여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최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실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기뻐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지 않겠습니까? (있습니다.) 꼭 그럴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인데,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조금만 관념이 있어도 거역하고 대적하며, 조금이라도 사람의 뜻에 맞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아 하나님을 진실로 찬미하지 않습니다. 이 패괴된 인류의 본성을 사람 스스로는 간파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두 꿰뚫어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에 사람의 뜻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겠죠? 하나님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정죄하고 반대하게 하고, 모든 이슬람 교도들이 이스라엘을 정죄하고 반대하고 공격하게 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르면 각 나라에 흩어지게 하여 떠돌게 하고 돌아갈 나라가 없고 돌아갈 집이 없게 하여 갖은 고생을 다 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일에서든 최종 목적은 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가 연합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는 바로 하나님의 행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를 발하여 여러 나라를 징벌하시고 여러 나라의 군인들을 모두 훼멸하실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최후의 시각이 아니면 하나님은 행사를 나타내지 않고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일거수일투족과 어느 나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손을 쓰시는데 사람들이 “손을 내밀 때가 되면 내밀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최후의 시각, 가장 위험한 때가 아니면 하나님은 손을 쓰시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고 이것 또한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이 추적하면 두려워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 맞을까? 하나님이 나를 구해 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왜 그것을 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다 이런 연약한 면이 있고 이런 경력이 있으며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시지만 손을 써야 할 때는 손을 쓰시고 손을 쓸 필요가 없으면 손을 쓰시지 않습니다. 사람은 생사의 고비에 직면했을 때 종종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습니다. 생사존망의 때가 되지 않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직 한 순간이 남아 있어도 하나님은 손을 쓰시지 않는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는지 보기 위한 것입니다.

【124-B-3】

방금 우리가 말한 이긴 자의 생명은 어떤 생명입니까? 사람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마음이 진실하고 또 자라나면 그 사람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더 읽어봅시다. “나의 말을 사람 생존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 것은 사람의 직책이다. 반드시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자초하고 스스로 체면을 잃는다.”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전에 늘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진리 실제에 진입함에 있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진입해야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완전히 살아내야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겁니까? 아니면 일부만 살아내도 되는 겁니까? 만약 다 살아 내야 한다면 어느 세월에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한평생 해도 다 살아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살아내야 진리와 생명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곤혹스러워합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이 말씀이 바로 이런 곤혹스러움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의 말을 사람 생존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 것은 사람의 직책이다.” 이건 직책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무엇을 직책이라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사람의 본분입니다. 사람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이고 사람의 책임이며 마땅히 맡아야 할 직책이고 사람이 반드시 책임져야 하고 마땅히 구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직책이란 뜻입니다. 어떤 직책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 생존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직책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 생존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걸 가리키지 않습니까?”라고 물을 것인데 이렇게 이해하면 아주 정확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여 자신의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 실제가 될 때까지 경력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것이 성공적이고 정말로 성과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마땅히 이렇게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나는 몇 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와 생명을 얻었는가? 하나님 말씀을 얼마 경력해서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얻었는가?’ 이 성과는 어떻습니까? 만약 이런 성과를 얻었다면 그 사람은 매우 총명한 사람입니다. 아마 이런 성과를 얻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적고 지위와 명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깊게 체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 집에서 어떤 사람들이 인솔자가 될 수 있는지 드디어 알게 되었고, 인솔자가 되는 느낌을 드디어 맛보았어. 최종적으로 나는 인솔자가 되는 것에 대해 깊은 경력이 생겼는데 진리가 없으면 절대 인솔자를 하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하게 돼!” 이 일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게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생명이 되었는지에 대해 지각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성과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만 경력했습니까? 어떻게 지위와 명리를 추구할 것인지 하는 그런 것만 경력하다가 마지막에 지위와 명리에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곤두박질당하여 깨어나게 되었는데 이런 일을 분명하게 경력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대해서는 얼마 경력하지 못했는데, 경력해도 인솔자 지위에서 곤두박질친 후에 비로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조금 경력한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왜 이런 사람이 많을까요? 그것은 지위와 명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었고, 또한 사람의 본성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어느 정도까지 경력해야 진리와 생명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아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반드시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세워야 한다.” 이 말씀은 너무 강력하고 너무나 분명합니다. “반드시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세워야 한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각 부분’인데 ‘각 부분’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각 방면의 진리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각 방면의 진리입니다. ‘각 부분’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한 부분이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증거하는 것도 한 부분이며, 성령의 역사에 관한 것도 한 부분이고, 사람의 진입에 관한 것도 한 부분이며, 하나님께서 왜 말세 사역을 하시는지에 관한 것도 한 부분이고,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의 사역 내막에 관한 것도 한 부분인데, 이 각 부분은 다 각 방면의 진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각 항목의 진리 중에서 다 자신의 몫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세워야 한다.”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각 항목의 진리를 다 자신의 것으로 갖추어야 할 그 몫이고, 자신이 얻어야 할 그 몫이며, 자신이 진입해야 할 그 몫이고, 자신이 깨달아야 할 그 몫입니다. 각 항목의 진리에서 자신 몫의 경력, 간증, 실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 몫의 경력, 간증, 실제란 말의 뜻은 바로 각 항목의 진리에서 다 참된 진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입이 깊고 얕은 것은 우리가 말하지 않겠는데 반드시 자신의 그 몫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한 가지 진리를 조금도 경력하지 못하고 자신의 몫도 없다면 뭔가 부족해 완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에 몫이 있습니까? 경력이 있습니까? 경력이 조금도 없다면 역시 간사한 사람인데 간사한 사람은 국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예로 들어 말하면, 이 몫이 조금도 없을 경우 참된 믿음이 없어 굳게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예로 들어 자신 몫의 경력 간증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 도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그 몫도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면 또 끝장입니다. 이 몇 가지 몫 중에서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몫이 없어도 다 치명적입니다! 마치 사람이 어떤 암에 걸려도 죽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암에 다 걸려야 죽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암에만 걸려도 치명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말할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하나님의 행사를 조금 보고 성령 역사를 조금 인식하여 성령 역사가 어떤 일인지를 느끼지만,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일에서 자신의 몫이 없고 경력이 조금도 없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할까요? 그 사람은 인성이 나쁘고 자격 미달이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인성에서 자격 미달이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간사한 사람이고 이방인 중의 하나로 이방인과 같은데, 하나님 나라에 이방인이 필요하겠습니까? 만약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방인 중의 좋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대재난을 내리실 필요가 없고 일반적인 재난으로 나쁜 사람들만 형벌하고 끝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재난은 인류를 훼멸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대도시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면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의 90% 이상이 전부 죽게 되는데, 그 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대재난을 내려 이 세상을 멸하려고 하고 심지어 그것을 세계 종말이라고 하겠습니까? ‘세계 종말’은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바로 인류의 말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 인류를 훼멸시키려 하실까요? 이 인류는 이미 하나님과 적대되어 사악한 인류가 되었고 이미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려 하나님의 노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이 인류를 훼멸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해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진행해도 한계에 부딪히며 좋은 효과에 도달하지 못할까요? 바로 온 인류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싫어하며, 하나님이 오신 것을 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인류는 확실히 훼멸시켜야 하고 대재난으로 훼멸시켜야 하며, 이 인류에게 말일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긴 자의 생명은 어떤 생명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진실합니다. 믿음이 진실하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만 인정하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나타내신 모든 표적과 기사만 인정하는 그런 믿음은 온전합니까? 온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재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의 믿음 역시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을 보았으며, 매 구절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고 그것을 하나님 성품의 유로, 하나님 전능의 유로와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만이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심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악에서 떠날 수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악에서 떠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악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의 마음과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온통 악인데 그런 악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정결케 되지 못하면 그런 것들이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야 그 사람의 마음과 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악이 비로소 정결케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안에서 지배하면 자연히 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어 지배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악도 다는 벗어버리지 못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이 여전히 많고 여전히 존재하는데 이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124-B-4】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세워야 한다.”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지금 분명하게 알겠지요? 바로 각 방면의 진리 실제에 모두 진입하여 자신의 몫이 되고 진실한 생명의 일부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의 영적 생명이 자라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함으로 도달하게 되는데, 깨달은 진리가 많을수록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이 실제가 더 많아집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이 실제가 많아지면 바로 인성이 있는 사람이고 진정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각 방면의 진리에 다 진입하지 못하고 경력하지 못하고 자신의 몫을 세우는 진실한 간증을 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에게 생명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왜 생명이 없습니까? 예를 들어 봅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알고 진리도 잘 교통합니다. 마치 어느 방면의 진리에서든지 다 자신이 세운 그 몫, 자신이 깨달은 그 몫, 자신의 그 몫의 간증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의 진리 실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입으로 말하기는 잘하지만 그 실제를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이 완전히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생명 성정이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많은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이 글귀 도리는 잘 말하고, 말재주도 저보다 훨씬 좋고, 정말 말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는데 왜 도태되었습니까? 왜 서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아는 것은 다 글귀 도리이지 전혀 진리 실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의 각 부분에서, 하나님이 발표하신 각 방면의 진리에서 자신의 그 몫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다 드러나고 도태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자초하고 스스로 체면을 잃는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데 교회에서 말을 제일 못하는 사람을 보세요. 그 사람에게 권면의 말과 도리적인 말을 하라고 하면 적지 않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의 말재주는 누구나 다 좋고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다 잘합니다. 그런데 왜 본분만 하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까? 왜 사역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까?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많은 글귀 도리나 영적 이론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왜 오히려 본분 하나도 잘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없습니까? 생명이 없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없으면 영원히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하지 못합니다. 글귀 도리를 얼마 알고 말할 줄 안다고 해서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더욱이 진리와 생명을 얻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알아들었겠죠? 그러면 이 구절을 자세히 말해 보겠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정말로 진리 실제가 있다면 어느 구절의 하나님 말씀이 이미 당신 생명의 일부가 되었는지 말해 보세요. 이 문제는 답하기가 쉽습니까? 당신이 어느 구절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고 인식하여 당신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이 되었고, 어느 구절의 말씀과 어느 항목의 진리가 당신 생존의 토대가 되었습니까? 이런 간증이 있습니까?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 집에서 20가지 진리 점검 문제를 내려보낸 지 몇 개월 되었는데 질문에 답한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다수의 사람은 감감무소식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당신이 평소 설교할 땐 아주 능숙하게 잘하더니 20가지에 답하라고 하니 왜 말이 없습니까? 당신의 그런 말은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이 한 그런 말의 십 분의 일이나 백 분의 일을 내놓아도 이 몇 가지 문제에 답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선민에게 내려보낸 문제에 깊이가 있습니까? 거짓 인솔자들이 말하는 영적 도리에 비하면 깊습니까? 왜 말이 없습니까? 중요한 부분을 말할 때면 할 말이 없고 바깥 일을 말할 때면 말을 하는데, 실제적으로 교통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진지하게 따지고 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글귀 도리를 말하는 사람들은 실제를 말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목숨을 나와 거래물로 삼지 않고 그저 자기 손의 폐품만 나의 앞에 가지고 와서 알짱거리며 나를 만족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줄곧 사람에게 요구할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사람에게 요구하시는데, 사람은 폐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와 어슬렁거리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폐품’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글귀 도리입니다.) 하나는 글귀 도리이고, 또 뭐가 있습니까? 생명 경력 간증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런 간증만 누리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어떻게 사랑하고 저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또 저를 징계하신 적도 있어요. 하나님은 저한테 얼마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얼마의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이런 것으로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한다고 증명하고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기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뭐라고 하실까요? 폐품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어슬렁거리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생명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그 폐품을 꺼내 들고 “나한테 생명이 없는지 보세요! 이렇게 많은 경력과 간증이 있는데 나한테 생명이 없다니요?”라고 하는데 아주 당당합니다.

나는 사람이 공헌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미워한다. 사람은 모두 탐하는 마음이 있는데 마치 사람의 마음이 귀신에게 홀린 듯하여 거기에서 벗어나 마음을 나에게 바칠 수 없다.” “나는 사람이 공헌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미워한다.” ‘공헌’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압니까? 공헌이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복음 확장에 대해 진실한 공헌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다면 이것이 공헌입니다. 베풀고 봉헌하는 것도 그 안에 포함됩니다. 진실하게 하나님 집에 베풀고, 중요한 사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진실한 공헌이 있고 진실한 화비도 있으며, 어떤 본분을 하면서 공헌하고 성과도 있으며, 하나님의 복음 확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이런 것은 공헌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이방인들이 말하는 공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시대에 적을 얼마 죽이고, 어느 전투에서 승리하여 얼마나 많은 적장의 목을 베었는지는 다 전쟁에서의 공헌입니다. 공을 세운 것인데 특등 공로자, 일등 공로자, 이등 공로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에서의 공헌도 있습니다. 한 가지 발명품을 만들어 과학적 성과가 있고 한 항목의 과학 실험을 해 어떤 것을 발명해 내어 인류의 건강에 어떤 공헌을 하는데, 이것은 이방인들의 공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헌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복음 확장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는 것에 대해 공헌하는 것인데, 이런 공헌은 사람이 마땅히 구비해야 할 선행이고 가장 바람직한 선행입니다. 사람이 가장 좋은 선행을 예비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나는 사람이 공헌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공헌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토색하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미워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늘 토색하면 이런 본심은 불량한 것인데 당신의 공헌도 참되지 못하며 거래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토색이 없고 공헌만 있다면 이런 사람은 진실한 믿음이 있고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공헌만 있고 토색이 없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사랑하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축복이 있지 않습니까? 축복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 집의 복음 확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역을 함에 있어 주된 역할과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늘 모두에게 “빨리, 더 빨리” 하면서 독촉하고, 어디에 문제가 있으면 “얼른 수정하세요!”라고 말하며 참답게 대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 공헌이 있는데, 영화 사역에 대한 공헌입니다. 동영상을 만드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 사역을 유지하고 독촉하고 이끌면서 직접 애로 사항을 해결하고 문제를 해결해 그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하면, 이런 것은 다 공헌에 속합니다. 그러면 공헌이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누가 책임지고 누가 이끌든지 나는 건성으로 하고 속일 거야. 뭐라고 말해도 나는 나대로 할 거야.”라고 합니다. 결국 아무리 오래 해도 뚜렷한 효과가 없는데, 이 사역은 그 사람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공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재촉하면 조금 하고 재촉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데 아무런 공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기에 소질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책임지고 선두 역할을 하라고 하면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책임을 맡으라고 하고 지위를 주어도 괜찮지만 선두 역할은 못해. 내가 그런 지위에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라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고 지위를 차지하게 하면 “좋아요,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사역을 넘겨 받지만 실제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지위의 복만 누리려 하는데 이런 사람은 토색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공헌하는 사람입니까? (토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을 거면 왜 그 지위를 넘겨 받고 그 본분과 책임을 떠 맡았습니까? 당신은 맡은 후에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본심이 불량하고,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렵고, 인격이 비천하여 신뢰받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공헌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토색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지금 알았으니 상세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124-B-5】

사람은 모두 탐하는 마음이 있는데 마치 사람의 마음이 귀신에게 홀린 듯하여 거기에서 벗어나 마음을 나에게 바칠 수 없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칠 수 있을까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칠 수 있을까요? 무릇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합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그건 사실입니다. 무릇 진리를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 참으로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그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쳤다고 말해도 그건 가짜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바쳤다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본분함에 있어서 대가를 지불하거나 고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실제가 없으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바쳤다고 하는 것은 기만이고, 허위이며, 허풍 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하라고 하면 뒤섞임이 있습니다. 본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일은 진심으로 하고 하나님 집의 일은 형식적으로 하고 흐리멍덩하게 대충대충 해서 속입니다. 결국엔 자신의 일은 확실하게 잘 처리했지만 하나님 집에서 부탁한 일은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그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쳤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복을 받으려는 마음이 모든 것을 초월하고, 복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따르며, 복을 받고 국도에 들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본분을 좀 하는데, 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진지하게 따지면 더 이상 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렇게 본분하고 봉헌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또 더 많이 화비하고 고생을 하라고 하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많이 주지 않으셨으니까요. 지금 당장 저에게 10만 불만 준다면 뛰어다니며 본분을 할 것입니다. 저의 호주머니에 금덩이 한 조각을 넣어 준다면 매일 땀을 흘리며 본분을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사람은 물질의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합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 사람들이 다 본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500불을 주면서 “일을 괜찮게 했으니 상으로 드립니다. 더 잘하세요.”라고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까요? 대다수 사람들은 소극적이 되어 “왜 그 사람한테만 줍니까? 공평하지 못해요!”라고 하면서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 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본분을 할 수 있었는데 상을 주니 오히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사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지금 본분을 함에 있어서 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유혹도 이겨 내지 못하고 조그마한 공격도 이겨 내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변고나 조그마한 공격, 위험이 있어도 줄행랑을 놓을 것인데 간증을 굳게 서서 진정한 이긴 자가 될 사람은 몇 명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믿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봅시다. 외국에서 경찰이 만약 본분을 하고 있는 사람을 갑자기 체포하거나, 어떤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가 교계 사람들에게 잡혀 가 한바탕 혹독하게 두들겨 맞는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소극적이 될까요 아니면 더욱 힘이 생길까요? 대다수 사람들이 굳게 설 수 있을까요?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가 도피한 것은 바로 옥살이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입니다. 왜 여기까지 와서도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저는 본분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긴 자의 간증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지금 사람들의 믿음이 기준에 도달했습니까?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너무 작습니다! “반드시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한몫을 세워야 한다.” 이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각 방면의 진리를 발표하셨겠습니까? 사람에게 베풀어 주어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새 생명과 영적인 생명을 베풀어 주려고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 속의 모든 진리입니다. 만약 이런 진리에 다 완전히 진입하고 자신의 진실한 간증을 세울 수 있다면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된 사람만이 참된 이긴 자입니다. 참된 이긴 자는 다시 각종 시련이 임할지라도, 누가 체포되고 누가 해를 입어 목숨을 잃었을지라도 연약해지지 않고 소극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를 하면서 계속 화비할 수 있고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본분을 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면서 그 어떤 인사물의 구속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이긴 자의 간증입니다!

내가 말할 때 사람은 모두 온 정신을 집중하여 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음성을 발하기를 멈추었을 때 사람은 또 자기의 ‘경영’을 시작하고 조금도 나의 말을 거들떠보지 않는데, 마치 나의 말이 그의 ‘경영’의 부속물인 듯하다.” 이것은 어떤 정형입니까? 이것은 사람을 드러낸 말씀인데,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여 말씀을 하실 때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귀담아듣고 온 정신을 가다듬지만,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지 않으실 때 사람은 또 자기의 경영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경영을 시작한다”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자신의 비뚠 길을 계속 걸으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중요시하고 추구하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으며, 자신이 추구하던 지위와 명리를 여전히 추구하고, 자신이 사랑하던 세상을 여전히 추구하며, 감정에 휘둘려 살던 그대로 계속 나아가면서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이런 태도로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이면 경력해야 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경력하고 실행하게 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마지막에 하나님 말씀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진리가 확실히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사람이 먹는 음식이나 입는 옷이 아니라 마땅히 얻어야 할 생명이라고 느끼게 되며, 만약 이 생명을 얻지 못하면 사람이 멸망된다고 느끼게 됩니다. 지금 전 인류에게 생명이 없고 육체의 생명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짐승의 생명과 같아서 한 차례 재난만 오면 다 멸망됩니다. 어떤 사람은 운전하다가 ‘꽝’ 하고 차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어떤 사람은 운전할 때 굽이돌이를 제대로 돌지 못해서 ‘꽝’ 하고 벼랑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는데 육체의 생명은 동물 목숨처럼 그렇게 취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진리를 발표하여 사람에게 새 생명과 영적인 생명 더구나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 주려고 하시는데 사람은 좋아하지 않고 마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사람은 보배를 압니까? 사람은 보배를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예를 하나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마음 상태입니다. 그럼 이 비유는 무엇을 가리켜 말합니까? 그 비유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진리를 발표하여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실 때 사람이 그 생명의 소중함을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그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깨우쳐 주셔서 보배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의 이 말씀은 곧 영생의 도이고, 이 영생의 도를 얻으면 영원히 죽지 않으며, 인류를 훼멸하는 대재난이 임할 때 꼭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살아남게 하시면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이런 진리는 다 사람됨의 진리이고 영원한 생명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생기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볼 수 있으며, 마지막에 하나님이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면 이 영생의 도를 얻은 것입니다. 언젠가 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되면 바로 영생의 도를 얻은 것입니다. 사람은 갖가지 무술을 배워서 어떤 효과와 경지에 도달합니까? 몸에 병이 없고 아주 건강하며 몸을 보호할 수 있어 누구도 그 사람을 해치지 못합니다. 이런 효과는 가져올 수 있지만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까? 전쟁이 오면 총 한방에 목숨을 잃고, 온역이 오면 온역에 목숨을 잃고, 지진이 오면 지진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 어떤 무술을 할 줄 알아도 쓸모없고 재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술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얼마 더 살 수 있겠습니까? 더 오래 사는 걸 못 봤습니다. 무술을 잘 배웠다 하여 120~130세, 130~140세까지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에 장수 노인들은 다 무술을 배웠던 사람입니까? 정말 장수하는 사람들은 무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생의 도를 얻는 사람은 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마지막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럼 무술을 배우는 데 공력을 많이 허비하지 않을까요? (허비합니다.) 얼마나 큰 공력을 허비하겠습니까? 평생의 공력입니다. 10여 세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단련해야 하는데, 70~80살까지 계속 단련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삼십 년 단련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됩니다. 그렇지만 계속 단련하지 않으면 다 없어지고 쉽게 잃게 되기 때문에 유지해야 되고 계속 단련해야 됩니다. 하지만 늙을 때까지 단련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예가 없어진 것 같고 몸 각 부위의 기관이 작용을 잃게 됩니다. 그때 가면 배웠던 무예가 쓸모없게 되고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며 다른 사람과 과감하게 무예를 비기지도 못합니다. 무예가 폐기된 후에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죽게 됩니다. 무술을 배우는 사람을 보면 그 당시는 몸이 건강하지만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만약 무술을 배우는 그 대가와 시간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면 어떻겠습니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지 않겠습니까? 당연합니다. 그 사람들도 한평생 배우는데 우리도 한평생 이런 진리와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진리 생명을 얻었을 때는 무술을 배우지 않아도 몸이 좋아지며 아무런 병도 없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 살면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찬미한다면 생기가 넘치고 사람 안의 생명이 일정한 효과에 도달하여 식견을 넓히게 합니다. 마치 우주의 모든 비밀을 본 것 같습니다. 생기가 넘치게 되면 사람은 자연히 젊어지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인삼을 자주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은 다 인삼을 먹을 것입니다. 인삼은 사기 쉽고 먹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인삼 작용을 일으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진정으로 생기가 넘치고 생명력이 있게 하는 것은 진리이며, 진리가 바로 가장 좋은 약입니다. 사람이 일단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여 생명으로 할 때는 그 힘은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말한 것이 사실이죠? (네.)

【124-B-6】

나는 사람에 대해 줄곧 긴장을 풀지 않지만 사람에 대해 또 인내에 관용을 더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마음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에 대해 줄곧 긴장을 풀지 않지만 사람에 대해 또 인내에 관용을 더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간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바로 줄곧 긴장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에 대해 줄곧 긴장을 풀지 않는다”는 무슨 뜻입니까? 마귀 사탄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즉 하나님이 진정으로 구원하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긴장을 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긴장을 풀지 않는다”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줄곧 사람에게 요구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공과를 배우게 하려고 사람에게 적절한 환경을 안배해 주며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에 대해 줄곧 긴장을 풀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알아들었겠지요?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사람에게 또 인내에 관용을 더한다.” 인내에 관용을 더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많은 경우에 사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도대체 나를 원하실까? 하나님은 도대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인내에 관용을 더하십니다. 사람은 때로는 거역하고 때로는 믿음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초자연적이지 않고 또한 사람에게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내에 관용을 더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대하시고, 당신을 드러내시며, 당신에게 기회를 주어 깨닫게 하시고 공과를 배우게 하시며, 당신에게 어떤 일이 임하게 하여 경고하고 일깨워 주시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관용으로 인해 사람은 모두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지 못한다”라는 것은 자신을 잘 성찰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능력을 가늠하지 않으며 늘 자신이 아주 높고 크다고 생각하며 주제를 모르고 늘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관용으로 인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분의 행사를 나타내지 않으셨고 노도 발하지 않으셨으며 그 어떤 징벌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갈수록 교만해지고 갈수록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자신이 피차 매일반인 것을 모르는데, 바로 이런 뜻입니다. “자신을 알 수 없고 반성할 수 없으며, 그저 나의 인내로 인해 나를 기만할 뿐이다.” 하나님의 인내로 인해 하나님을 기만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많은 일에서 사람이 그런 패괴를 유로해도 그 어떤 초자연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셨고 또 사람에게 나타나지도 않으셨으며 더욱이 노를 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교만해지고 패괴를 유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패괴가 유로되는 것은 괜찮지만 반드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반성하지 않고 또한 자신을 모르는데 바로 이런 정형입니다. “그저 나의 인내로 인해 나를 기만할 뿐이다.”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당신을 상관치 않거나 혹은 당신을 한쪽에 내버려 두고 당신으로 하여금 유로하게 해서 자신의 패괴를 드러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외면하면서 당신이 느끼지 못하도록 음성도 발하시지 않고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도대체 하나님이 있을까?’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마치 쥐 한 마리가 사람이 방 안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다 갔을까? 아니면 잠자고 있을까? 주인이 잠자고 있으면 바로 내 세상이니 이젠 내가 놀 때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은 바로 이런 표현으로 쥐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의 정형을 다 말씀하신 다음 또 총결하셨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진심으로 나를 생각한 적이 없다.” 이것은 한 가지 정형입니다. “아무도 나를 자기의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삼아 귀하게 여긴 적이 없으며 그저 한가할 때만 나에 대해 조금 응대할 뿐이다.” ‘한가할 때’만 ‘조금 응대할 뿐이다’는 자신의 일을 끝내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후 또 한 가지 일, 즉 하나님을 믿는 일도 그럭저럭 얼버무려야 하고 간단하게 처리해 그럴듯하게 보여야지 그렇지 않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면 아주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패괴된 인류의 마음 상태가 아닙니까? 바로 이런 뜻입니다.

내가 사람에게 들인 공은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례 없는 사역을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도성육신 하나님이 하신 이런 말씀만 보았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주재하시고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며 어떻게 사람의 주변에 각종 인ㆍ사ㆍ물을 안배하시고 사람에게 어떤 공과를 배우게 하시는지,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시는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마음에 어떤 고통을 받으시는지 이런 심혈의 대가를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 영의 역사와 하나님 영의 행사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배후에 영은 또 어떤 사역을 하시고 어떤 환경을 안배하시며 어떤 세력을 움직여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하시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더욱이 인류가 하나님이 말씀을 발표하실 때 어떻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했는지, 심지어 어떻게 하나님께 불손하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 논단, 정죄, 대적이 생겨 하나님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으시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모든 표현, 즉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런 표현은 하나님께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염증을 느끼며 증오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배반하고 바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사실을 말해 봅시다. 어떤 곳에 사람이 이삼백 명 혹은 삼사백 명 있는데 그 가운데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인솔자 일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찾을 수 없고, 진심으로 진리의 실제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우리를 놓고 말해 봅시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참하게 생기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보면 키도 괜찮고 생김새도 아주 균형 잡히고 아주 활기차고 학력도 충분한데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알면 여러분은 무척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은 진심이 아니고 모두가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하고 사람의 속셈을 갖고 있으며 여러 가지 욕심이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심지어 신뢰성이 없고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제물을 맡겨 보관하게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사유 재산으로 간주해 훔쳐먹고 남용할 것이며 모두가 돈을 갖고 달아날 것입니다. 하나님 집을 위해 한 가지 일을 처리하라고 하면 그 가운데서 이익을 취해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부탁을 중요한 일로 삼고 진지하게 처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기에는 모두 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겉으로는 모두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런 사람이 정말로 몇 명이나 될까요?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한 교회에 사람이 얼마 되든지 진심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인솔자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면 찾기가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각 사람마다 눈도 아주 크고 활기찬데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사람 말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아첨하는 것은 남보다 갑절로 하는데 실제적인 사역과 본분을 하면 절반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몇 사람이라도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왜 모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람에게 들인 공은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례 없는 사역을 한 것이다.” 이 구절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모를까요? 하나님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공력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약 정말로 공력을 들이고 정말로 중시했다면 어떻게 조금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일부분은 알 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글귀 도리를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구절에 대해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교통해 보세요. 괜찮은지 제가 들어보겠습니다.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할 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몇 명 안 됩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결코 마음을 쓰지 않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사람의 몸 외에 또 사람에게 더 한층 ‘부담’을 주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여깁니다. ‘이것은 사람 몸 외에 사람에게 더 한층 부담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사람에게 많은 부담을 더해 주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죄 가운데서 낙을 누리는 것도 괜찮은데 다 누리고 난 후 하늘이 무너지면 다 같이 죽으면 그만이야. 나 혼자 죽는 것도 아니고 다 죽으니까 할 말이 없어.’ 지금 일부 사람들은 어떤 일에 부딪치면 어떤 관념이 있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면 키 큰 사람이 버티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이 두려워 그런 일에 관계합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논법인데,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어느 곳에 어떤 일이 임하면 “우리와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여전히 잘 먹고 마시며 잘 자는데 돼지같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듣기 싫어합니다. “사람에게 나의 소유소시 가운데서 다소 인식이 있게 하고 변화가 있게 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목적은 바로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얼마의 인식이 있게 하여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은 아마도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경배할 수 있을 것인데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다음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소비자가 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소비만 해서는 안 되고 생산도 해야 합니다. 현대 국가는 경제를 활성화시켜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비하게 하고 돈을 쓰게 합니다. 당신이 돈을 많이 쓰면 제품은 자연히 유통되어 돈을 끌어들일 수 있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소비만 하는 것이 공헌하는 것입니까? 좋은 제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아무리 소비해도 안 되는데 그러면 경제를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소비자가 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비자는 바로 “나는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을 증거하러 갑니다.”라고 말하는데 겉보기에 마치 소비자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겉으로 일을 조금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경력 간증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의 소극적인 정형을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생명의 동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에게는 실제적인 경력 간증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 이런 사람은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간증이 있는데 이런 진실한 믿음으로 생겨난 진실한 간증이 바로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가 제공한 간증인 것입니다.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지 지금 확실히 알았습니까?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여 진실한 믿음이 생기고 그 후에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생산자입니다. 무엇을 생산합니까? 간증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간증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진리를 추구하면 진실한 믿음이 생기고, 진실한 믿음이 참된 간증으로 바뀌는데, 이것은 다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하여 도달한 효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진실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진심으로 본분을 하여 원칙이 있게 된 사람들이고, 어떤 본분을 하더라도 성과가 있는 사람들이며 참된 효과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여러 가지 좋은 영화, 좋은 동영상, 좋은 간증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가 도달한 효과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한 본분은 어떤 것을 생산해 냈습니까? 어떤 합격된 제품을 생산해 냈습니까? 생산해 낸 것은 반제품입니까 아니면 모조품입니까 아니면 정품입니까? 또한 원자탄이나 미사일처럼 정말로 효능이 있습니까? 만약 제조한 포탄이 불발탄으로, 발사해도 아무 소리가 없고 연기만 피어오르는 것으로 끝나 사람이 그 매운 연기를 마시고 그저 정신이 흐릿해진다면 이것을 생산자라 할 수 있습니까?

【124-B-7】

저는 일부 사람들이 중국에서 본분을 하면 효과가 있었는데 해외로 와서 본분을 하면 효과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 사람들은 왜 중국에 있을 때는 효과가 조금 있었겠습니까? 바로 중국의 그 열악한 환경이 추진시켰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어떤 본분도 하지 못하고 다만 그 정도의 본분만 할 수밖에 없는데 세상에 미련을 가지려 해도 안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려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그런 환경이 없습니다. 너무나 위험해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본분을 조금 하는데 그것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본분을 하면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외에 오면 환경이 달라 자유로운 환경이므로 즐길 수 있는 일이 많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에 별의별 기이한 것들이 있어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안정시켜 본분을 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은 지금 생산자가 아니어서 어떤 제품도 만들어 낼 수 없고 어떤 성과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늘 세상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나님 위해 화비하고 있는 걸까요? 그 사람들은 본래 정체를 드러냈는데,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시종일관 본분을 잘하지 않고 어떻게 진리를 교통하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알아들었겠지요? 권면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며 충성을 다해 본분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겨 두세요. 무릇 일정한 시간 동안 아무리 말해도 안 되는 사람은 빨리 돌려보내 중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까요? 중국의 그 환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데 그런 열악한 환경은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역사를 위해 힘을 좀 쓰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열악한 환경이 없으면 그런 사람은 아주 문제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일단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에 오면 하나님을 위해 본분을 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에 미련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가서 결혼 상대를 찾아 육체적 정욕을 탐하며 장난치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마땅히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출국시키면 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망치는 것이며, 집으로 돌려보내면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을 편하게 해 본분을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인성이 좋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남겨두고, 무릇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다 돌려보내야 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그런 사람은 남겨 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을 패배시키는 생산자가 될 수 없는데 진실한 간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면서 본분을 한다는 것을 빌미로 육체를 탐하고 죄 가운데서 누리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육체적인 누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사악한 정욕으로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화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사람을 해외에 계속 남겨두면 나중에 이기는 자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망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이런 민주 자유주의 사회에서 본분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비록 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지만 내게는 사람에 대한 요구 표준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일을 하는 데는 목적이 있고 근거가 있는 것이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마음대로 놀거나 자기 마음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하는 중에서 사람은 마땅히 무엇을 좀 보고 무엇을 좀 얻어야지 자기의 ‘청춘’만 허비해서는 안 되고 자기의 생명을 입은 옷처럼 여겨 아무렇게나 먼지 묻게 해서도 안 된다. 자신을 엄격히 보호해야 하고 나의 풍부함으로써 자기에게 누리도록 공급해야 하며 더 나아가 나로 인해 사탄에게 되돌아가서는 안 되고 나로 인해 사탄을 공격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는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간단한데 이것은 최저 기준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요구도 일부 사람들은 이르지 못하는데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실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본분을 해도 아무 효과가 없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눈이 멀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신 것은 마땅히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온전케 하시는 이기는 자는 마땅히 어떤 실제를 구비해야 합니까? 이 편의 말씀 마지막 단락을 펼쳐 보세요. “국도(國度)는 사람들 가운데서 확장되고 사람들 가운데서 형성되며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난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국도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바로 진정한 하나님 자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진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바로 국도 자민인 것입니다. 이 국도 자민들이 존재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면 “국도(國度)는 사람들 가운데서 확장되고 사람들 가운데서 형성되며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난다.”라는 이 말씀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의 국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확장되고 발전되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국도가 사람들 가운데서 확장되고 형성되며 사람들 가운데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바로 이기는 자들입니다. 그다음 또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세력도 나의 국도를 파괴할 수 없다.”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아주 분명한데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계 심지어 온 우주를 포함해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국도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도 이런 말을 할 권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모든 피조물을 향해 자신의 말씀을 발표하신 것입니다. 누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일어나서 해 보세요. 누구도 감히 말로 도전하지 못하는데 이 말씀을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해도 온 인류는 듣고 나서 묵묵부답이고 감히 맞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일을 보면 이 일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시대 사역을 시작하실 때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맡겼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바로왕의 권세 아래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모세는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왕이 집권하는 애굽 땅에서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 과정은 상세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과정에 하나님의 행사도 어느 정도 나타내어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을 떠날 때 바로왕은 또 ‘안 돼, 이렇게 놓아줄 수 없어. 달갑지 않아!’라고 생각을 바꿔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 사람을 뒤쫓아 다시 잡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홍해에 도착했는데 애굽 왕의 그 군대 수효가 얼마나 됩니까! 아마 수십 만 명은 되는데 모두가 무기를 들고 뒤쫓아 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뒤에는 애굽 바로의 군대가 뒤쫓아 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태에 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아무 방법도 없을 때 하나님의 행사가 나타났는데 하나님께서 큰 권능의 손을 내밀어 홍해 한 가운데 길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바닷물은 평평한데 어떻게 길이 생길 수 있습니까? 가파른 절벽이 양쪽으로 섰는데 마치 칼로 잘라놓은 듯했고 중간에 한 갈래의 길이 생기고 물이 그 길 위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으로 전능하시도다!” 하면서 곧바로 믿음이 생겨 홍해를 건넜습니다. 밖으로 막 나오니 뒤에서 애굽의 군대는 여전히 뒤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희들이 이 길을 지나갔으면 우리도 지나갈 수 있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애굽의 군대가 바다 중간까지 갔을 때 물이 합쳐져 그들은 다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일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일은 사악한 세력이 파괴할 수 있습니까? (파괴할 수 없습니다.) 파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일은 그 어떤 세력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말할 나위도 없고 전 세계가 연합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행사를 나타내 몇 개의 행성들을 멸한다고 하시면 멸해지지 않겠습니까? 말씀 한 마디로 사라지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의 아무리 사악한 세력도 가로막거나 파괴할 수 없는데 이 일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할까요? 바로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이 이기는 자들이 곧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의 결정체입니다. 이 이기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국도를 주시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이런 성과를 사탄이 파괴할 수 있을까요? 파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이스라엘 사람은 그때 아직 이기는 자가 되지 못했고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그들을 뒤쫓아 붙잡아 가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말세의 6천년 경영 계획에서 이룬 열매, 즉 이기는 자는 그것이 더더욱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 눈의 눈동자인데 그것이 감히 건들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감히 건들지 못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을 보호하시지만 결정적인 때가 되지 않으면 손을 쓰시지 않다가 손을 써야 할 때면 쓰시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지금 분명히 보았겠지요? 그 밖에, 우리는 계시록의 예언에서 보았는데 마지막 큰 재난은 어느 정도로 큽니까? 땅 위의 임금들이 모두 어떻게 외칩니까?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 6:16) “우리 위에 떨어져”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어린양이 노를 발하는 것을 보지 않게 하라는 것인데 너무나 두려운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노를 발하는 그 광경이 너무나 무서워 큰 산이 그들 위에 떨어져 하나님의 진노에서 가리우라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그런 광경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이 인류를 훼멸시키는 그렇게 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큰 능력이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과 국도를 보호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가능합니다. 이러한데 지구상의 인류 가운데 어떤 세력이 감히 기고만장하면서 하나님과 맞설 수 있습니까? 감히 기고만장하면서 하나님과 맞설 사람이 없는데 기고만장하면 즉시 훼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세력도 나의 국도를 파괴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 선민은 이미 하나님의 전능을 보았습니다. 말세에 반드시 대재난이 있는데, 이 대재난은 하나님의 행사를 인류에게 나타내어 이 패괴된 인류에게 노를 발하는 것입니다. 이 패괴된 인류가 죽음에 임박해 훼멸될 때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하여 참 하나님은 너무나 두렵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고 참 하나님을 대적하면 확실히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을 보게 할 것인데 그러면 끝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나실 리가 없습니다.

오늘의 국도 중의 자민(子民), 너희는 어느 누가 사람 가운데의 하나가 아닌가? 어느 누가 사람 이외의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인가?”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의 국도 중의 자민”, 오늘의 하나님 선민은 모두 국도 중의 자민, 즉 말세 그리스도의 국도 자민입니다. 이 말씀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은 다 자민입니까?”라고 말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국도 자민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중 국도 자민의 비율이 도대체 얼마를 차지하는지는 지금 말하기 어렵지만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다 국도 자민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외에 또 국도 자민이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또 있습니다. 지금 복음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도대체 얼마의 사람들이 받아들일지는 누구도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의 사람이든 아니면 이후의 사람이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 중에 대다수는 다 국도 자민입니다. 도태된 사람들은 국도 자민이 아닌데 그 사람들은 머릿수만 채우는 사람들로,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 모두 도태된 것입니다.

내가 새로운 기점(起點)을 공포(公布)할 때” 여기의 “새로운 기점”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새로운 기점에 속합니다. “내가 새로운 기점(起點)을 공포(公布)할 때 사람의 반응은 또 어떠하겠는가? 인간 세상의 상황을 너희가 이미 직접 보았는데, 설마 아직도 세상에서 오래 살 생각을 단념하지 않는단 말인가?” “세상에서 오래 살 생각을 단념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드러내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이 말씀에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 세상 끝날이 곧 오고 이 세상이 머지않아 곧 훼멸될 것이니 이 세상에서 여러 해를 더 살고 세상에서 오래 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여전히 어떤 관직을 좀 맡아보고 싶어 하고 이 세상에서 황제가 되고 싶어 하며, 이 세상에서 여전히 어떤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하고 이 세상에서 어떤 사업을 이루고 싶어 한다면 이런 생각은 다 성립되지 않고 모두가 환상입니다. 이 세상은 머지않아 훼멸되는데 대재난이 곧 내리는 것입니다. 4회 핏빛달이 이미 나타났는데 그 예언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졌는지 무릇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다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대재난이 곧 임한다는 것은 세상이 공인하는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상류층 인물이나 수상 그리고 대통령들도 아마 앞으로는 성탄절도 다 없어지고 이후에는 다 재난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과학자들은 늘 세계 기상(氣象)을 연구합니다. ‘세계 기상에 관한 토론 회의’는 무엇을 말합니까? 그들이 왜 자꾸 ‘기상’을 말할까요? 기상의 대명사는 사실상 대재난입니다. 세계 대재난의 문제, 말세 재난의 문제를 그들이 기상이란 표현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기상—기후가 비정상이 되어 무엇으로 변했습니까? 재난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이 기상만 말하고 재난을 말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말할까요? 민심이 술렁일까 두려운 것입니다! 정치가들에게 지혜가 없습니까? 그들은 지혜도 있고 책략도 있습니다. 이런 말은 자세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124-B-8】

내가 지금 뭇 자민 가운데서 거닐고 뭇 자민 가운데서 살고 있는데, 오늘 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 말씀에서 ‘지금’과 ‘나’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도성육신하여 뭇 자민 가운데서 거닐고 계시고 뭇 자민 가운데서 살고 계시는데, 지금 이 사실을 모두 보았고 모두 체험하였습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읽은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뭇 자민 가운데서 발하신 음성과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나에게 순복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나라에 남을 것이다.” 이는 이긴 자가 아닙니까? 이것은 이긴 자입니다. “반드시 나의 나라에 남을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국도에서 권세를 잡을 것이다.” 이는 이긴 자가 아닙니까? 이것도 이긴 자입니다. “나를 추구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내게 있는 복을 누릴 것이다.” 이는 이긴 자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자신을 배반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에게 점유되어 나의 나라의 풍부함을 이어받을 것이다.” 이것도 이긴 자입니다. 결론적으로, 복이 있는 이 사람들이 행한 것은 모두 이긴 자가 갖춘 진실한 간증입니다. 즉, 모든 이긴 자의 진실한 간증인 것입니다. 그럼 이긴 자는 몇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까? 바로 이 몇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복이 있는 이 몇 부류 사람은 모두 이긴 자입니다. 그다음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뛰어다니는 자는 내가 기억하며, 나를 위해 화비 하는 자는 내가 열납하며, 내게 바치는 자는 내가 그에게 누릴 물질을 베풀어 주며, 나의 말을 누리는 자는 내가 축복하는데 반드시 나의 나라의 기둥일 것이다. 나의 집에 있으면 꼭 비할 바 없이 풍부하여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 이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바로 최고의 복입니다. 이런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최고의 복은 무엇입니까? “나의 말을 누리는 자는 내가 축복하는데 반드시 나의 나라의 기둥일 것이다. 나의 집에 있으면 꼭 비할 바 없이 풍부하여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자는 바로 진실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이 사실로써 설명합니다. “반드시 나의 나라의 기둥일 것이다.” ‘나라의 기둥’은 바로 이긴 자 중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가장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너희를 위한 축복을 너희는 받아들인 적이 있는가? 너희를 위한 약속을 너희는 추구한 적이 있는가?”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질문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는 ‘받아들인 적이 있는가?’이고 하나는 ‘추구한 적이 있는가?’입니다. 이 두 질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국도는 이미 형성되었고 나타났으며, 하나님께서 뭇 자민 가운데서 거닐며 사역하시면서 진리를 발표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어 하나님의 국도에 남아 있을지,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모두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하여 모두 알게 하셨고 그런 후 사람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에 대해 도대체 받아들일 수 있을지 도대체 추구할 수 있을지를 잘 생각해 보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사람의 결말과 관계되고 사람의 귀숙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빛의 인도하에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반드시 벗어날 것이고, 흑암 속에서 반드시 빛의 인도를 잃지 않을 것이며, 만물 가운데서 반드시 주인이 될 것이다.” 이 말씀에서 “만물 가운데서 반드시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다음 시대에서 만물의 주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그 이긴 자들입니다. 국도에서 왕권을 잡은 이 사람들이 바로 주인입니다. “사탄 앞에서 반드시 이긴 자로 될 것이다.” 보세요, 이긴 자가 되는 의의는 너무 깊은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만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 앞에서 반드시 이긴 자로 될 것이며, 큰 붉은 용의 나라가 무너질 때 만인 가운데 서서 반드시 나의 이긴 증거로 될 것이다. 시님 땅에서 너희는 반드시 굳세고 흔들리지 않으며 받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복을 이어받고 전 우주 아래에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이 몇 구절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자민에 대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이 축복, 이 말씀의 표현, 이런 언어 방식은 아주 보기 드문 것입니다. 어떤 말씀 방식을 채택하셨습니까? 모두 ‘반드시’로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반드시’는 “너희는 나의 빛의 인도하에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반드시 벗어날 것이고” 두 번째는 “흑암 속에서 반드시 빛의 인도를 잃지 않을 것이며” 세 번째는 “만물 가운데서 반드시 주인이 될 것이고” 네 번째는 “사탄 앞에서 반드시 이긴 자로 될 것이며” 다섯 번째는 “큰 붉은 용의 나라가 무너질 때 만인 가운데 서서 반드시 나의 이긴 증거로 될 것이다.” 이 다섯 개 ‘반드시’는 하나님이 명정하신 것이고 권병을 띠고 있어 그 어떤 사람도 바꿀 수 없고 옮겨갈 수 없으며 누구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면 그것은 바로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님 땅에서 너희는 반드시 굳세고 흔들리지 않으며 받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복을 이어받고 전 우주 아래에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약속이자 축복인 것입니다. 그럼 이긴 자의 간증은 모두 어떤 것이 있습니까? 방금 말한 그 몇 가지 ‘복’이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이긴 자의 간증입니다. 즉, 이긴 자는 하나님 말씀의 각 방면의 진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진실한 간증이 있고 자신의 그 한몫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그 한몫은 바로 이 몇 가지 “복이 있나니”에 도달한 효과로 나타낸 것입니다. 지금 분명히 알았겠지요? 그럼 이 몇 가지 “복이 있나니” 가운데서 당신은 어떤 것을 갖췄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그 한몫을 세워야 합니다. 만약 이 몇 가지 “복이 있나니”에 한 가지도 부합되지 않고 최종에 한 가지도 당신에게 부합되는 것이 없어 자신의 그 한몫이 없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우수자 명단은 발표했는데 게시판을 보니 이름이 없고 부합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자신의 그 한몫을 마땅히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워야 합니다.) 첫 번째, “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진실한 사랑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진리를 깨닫고 빛 비춤도 있고 인식도 있지만 투철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고 특별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특별히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나에게 순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어떤 환경이나 어떤 수리 대처가 임하든 모두 단호히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복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나의 나라에 남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분깃이 있고 누구도 잘라 낼 수 없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남아 있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긴 자 중의 일부분입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국도에서 권세를 잡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면 어떤 사람들은 복이 있어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남아 있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자민이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이 있어 하나님 나라에서 권세를 잡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남아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권세도 잡게 됩니다. 그럼 이 복은 더욱 크지 않겠습니까? “나를 추구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내게 있는 복을 누릴 것이다.” 즉,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배반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에게 점유되어 나의 나라의 풍부함을 이어받을 것이다.” 이런 생명에 사람이 정말 진입하였다면 어느 방면에 진입하든 하나님의 약속만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남아 있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그 사람의 한몫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느 방면에 진입했는지 보세요! 그다음 “나를 위해 뛰어다니는 자는 내가 기억하며, 나를 위해 화비 하는 자는 내가 열납하며, 내게 바치는 자는 내가 그에게 누릴 물질을 베풀어 주며, 나의 말을 누리는 자는 내가 축복하는데 반드시 나의 나라의 기둥일 것이다. 나의 집에 있으면 꼭 비할 바 없이 풍부하여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이 가장 큽니다. 그렇지요? 그럼 어떤 사람이 그것이 “나를 아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국도에서 권세를 잡을 것이다.”라는 말씀과 차이가 있냐고 말하는데, 사실상 한 가지 정형이고 두 가지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또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가운데서 틀림없이 깨우침을 얻게 되고 진리를 깨닫게 되며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나를 아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국도에서 권세를 잡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다음 왜 또 특별히 “나의 말을 누리는 자는 내가 축복하는데 반드시 나의 나라의 기둥일 것이다.”라고 이 일을 언급하셨을까요? 또 이런 일을 다른 한 가지 표현으로 바꾸어 단독으로 내놓고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 방면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자에 대해 특별히 중시하여 다시 단독으로 언급하셨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런 뜻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나의 말을 누리는 자는 내가 축복하는데 반드시 나의 나라의 기둥일 것이다.” 그럼 기둥은 권세를 잡는 자일까요? 이것은 확정할 수 없지만 범위는 좀 넓을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인지 혹은 무엇인지 이런 일은 제가 분명하게 해석할 수 없으므로 상세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모두 기둥입니다. 이 기둥은 국도 안의 기둥이고 중요한 인물이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권세를 잡는 자는 기둥이 맞겠습니까? 당연히 더더욱 기둥이죠. 이렇게 이해해도 됩니다. 그러므로 무릇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 말씀을 누리기를 좋아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간증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교통하여 하나님 선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한 자, 이런 사람들이 바로 “나의 집에 있으면 꼭 비할 바 없이 풍부하여 견줄 만한 사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메시지를 전합니까? 바로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중시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기를 중시하는 자,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신 것입니다. 알겠지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렇게나 한쪽에 놓아두고 심지어 며칠 동안 보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예배 드릴 때 설교나 좀 듣고 교통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교통하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하나님 말씀을 누리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교통한 만큼 얻고 하나님 집에서 교통하지 않으면 혼자서 볼 줄 몰라 자신이 얻는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흔히 모두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다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그 외에 소질도 보통이고 이해력도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흥미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빛 비춤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상면의 형제가 교통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으며 상면의 형제가 교통하는 것을 들으면 깨닫고 혼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깨달으며 심지어 어떤 빛 비춤은 상면의 형제가 교통한 것보다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이후에도 많은 것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길이 생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빛 비춤이 있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이긴 자이고, 이긴 자는 모두 어떤 사람들이며, 이긴 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생명은 무엇이고, 이긴 자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것을 중시해야 하는지, 이런 일에 대해 지금 분명하게 알았습니까? (네.) 모두 분명하게 알았으면 길이 있게 되고 어떻게 추구하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긴 자가 될 수 있고 이긴 자가 될 희망이 있습니다. 이긴 자가 되는 그 의의는 너무나 깊으며, 받는 축복은 너무나 큽니다. 잘 알아들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