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집(b)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 관한 설교 교통 (2)
【112-B-1】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 하나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람의 사탄 본성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입니다. 하지만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함에 있어서 어떠한 표현이 정죄받지 않고 어떠한 표현이 정죄받는지는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왜 이렇게 정죄하시는지, 이렇게 정죄하시는 원칙은 무엇인지,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각종 정형을 보고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떤 부류의 사람을 정죄하시고 어떤 부류의 사람을 정죄하시지 않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온전케 하시고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시는지를 모른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각 부류의 사람에 대해 어떻게 보겠습니까?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어떤 원칙이 있습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정죄받는지, 정죄받은 이 사람들의 결말은 어떤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품이 있지만 정죄받지 않는 정형은 어떤 것인지를 분별할 줄 모릅니다. 만일 이런 일들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진리입니다. 만약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고 확정하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확정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분명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휴, 저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사탄 본성이 있는데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 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정죄하시는지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아마 다 멸망될 거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 하나님 말씀을 여러 번 읽고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확정할 줄 아는데, 이렇게 확정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 말씀에서는 사람의 본성 실질에 근거해 정의를 내렸습니다. 당신이 사람의 실질에 따라 이렇게 확정하면 맞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최종에 하나님께 정죄받고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는지를 뚜렷하게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이런 일을 정말 분명하게 보지 못한다면 자칫하면 마지막까지 믿어도 정죄받을 것이니 위험합니다. 말해 보세요,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이런 위험이 없겠습니까? 정말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왜 종교계 사람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마귀와 같은 부류라고 하는가? 그들이 악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행한 일을 여태껏 그들에게 나타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눈먼 사람들로,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했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전혀 없으며 성령의 역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이 단락에서 종교계가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종교계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왜 종교계 사람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마귀와 같은 부류라고 하는가? 그들이 악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아주 직설적인데,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시인하시지 않고 그들이 악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 말씀은 “너희는 믿지 말고 물러가라, 내가 너희를 시인하지 아니하리라”는 뜻입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 하나님을 믿은 지 20~30년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직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합니다. 영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아무리 많이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20여 년 되지만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면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행한 일을 여태껏 그들에게 나타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눈먼 사람들이다.” 왜 그들을 눈먼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셔서 이렇게 기세가 드높고 온 중화 대륙을 진동하고 심지어 세계까지 놀라게 했지만 그들이 조금도 보지 못하고 고찰하지도 않으며 맹목적으로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모두 눈먼 사람들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조금도 차이가 없이 매우 적절합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했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전혀 없으며 성령의 역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이것은 종교계에 대해 정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정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성령 역사가 없을 뿐이야. 그들이 참 도를 구하고 고찰하여 어느 날엔가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면 혹시 또 성령 역사를 얻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성립됩니까? 혹시 개별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성립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종교계의 대다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성립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하면 첫 번째 결과는 바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으로 처리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로 그들을 또다시 사탄에게 넘겨 주고 하나님이 그들을 상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사는 바로 사탄에게 속하는 이방인과 같습니다. 이방인이 어떻게 죽으면 그들도 그렇게 죽고, 이방인이 다 죽으면 그들도 다 죽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아시겠죠? 그럼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교계에서 주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진리를 고찰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눈먼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전혀 없으며 성령의 역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사탄의 본성이 영원히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정죄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선을 좀 행하고 덕을 좀 쌓기에 보기에는 악인 같지 않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의 본성 실질이 다 악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악을 얼마 행했는지에 상관없이 모두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첫째로 눈먼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으며, 셋째로 하나님이 그들을 사탄에게 넘기신 것이고, 넷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정죄하고 훼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의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진리가 조금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데다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을 방해한다면 이는 도태될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만약 진리는 없지만 방해하지 않고 효력을 좀 할 수 있다면 남길 수 있습니다. 효력도 하지 못하면서 방해하고 설령 힘을 낸다 해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면 출교시켜야 하는데, 틀리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 사람은 악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악인이 아니라 해도 방해하면 출교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선민이 유익한 점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조금이나마 효력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들을 접대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들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할 수 있고 사무적인 일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베풀고 나누며 봉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겨야 합니다. 특히 베풀고 나누며 봉헌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진리를 그다지 깨달은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마음만은 진실하고 하나님 선민에 대해서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99% 다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그 사람은 인성에 결점이 좀 있습니다.” 결점이 좀 있어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베풀고 나누며 봉헌하는 것은 입만 놀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은 해내지 못합니다. 돈은 사람을 잘 드러냅니다! 만일 누가 베풀고 나누며 봉헌하는 사람을 출교시킨다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베풀고 나누며 봉헌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일부 사람들은 인성이 아주 나쁘고 악을 적지 않게 저질렀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베풀고 나무며 봉헌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인성이 매우 좋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쉽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진실한 선행이 있습니다!
【112-B-2】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정의에 대해 아시겠죠? 바로 이 몇 마디 말씀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었다고 시인합니다. 그럼 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겠습니까? 이것은 무엇에 근거해 확정한 것입니까? 바로 이 몇 가지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첫째,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둘째,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지 않는 사람”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기준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를 가늠하면 가장 정확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인지를 잘 모른다면 자신이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해서 속였고 또 일부 일들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없었다는 것을 돌이켜 보세요. 그러면 ‘아, 이 몇 가지 표현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세 가지 표현과 비슷하구나.’라고 생각될 것인데, 이러면 자신에게 맞춰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맞춰 보면 확정된 것이 아닙니까? 이러면 확정된 것입니다.
첫째,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시고 하나님이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은 인정하고 100% 확신하며 조금도 의심이 없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인식이 없는데, 이는 아주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정의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정말로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되면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식이 그리 투철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 많은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성품이 거룩하고 공의롭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기만 하면 악을 아주 적게 행하거나 심지어 결단코 악을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인식이 깊든 얕든, 최소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고 아주 겁 없이 함부로 말하고 아무런 말이나 다 한다면 설령 하나님을 아는 많은 도리를 말한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해도 가식이고 위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출교당한 적그리스도들은 모두 이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영적 도리는 줄줄 말하지만 그들의 표현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권력과 이익을 위해 다투고 제물을 훔쳐 먹고 하나님 선민을 농락하고 통제하려 하며 또 큰 인솔자가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고 숭배하게 하려고 합니다. 보세요, 이 성품이 천사장의 성품이 아닙니까? 그들이 걷는 길이 바로 바울의 길입니다. 이 사람들은 입으로 많은 도리를 말하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다 숭배하고 두려워하고 그들의 말을 듣지만 사실 이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확정되었고 적그리스도에 속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흐름 속에 이 부류의 사람들이 정말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따르고 있고 또 본분도 하고 버리기도 하며 이 본분도 할 수 있고 저 본분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집에서 사역을 안배하기만 하면 순복하려 하지 않고 많은 경우에 마지못해 합니다. 그리고 인솔자 일꾼들이 수리 대처하면 받아들이지 않고 일련의 논리로 대꾸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사람에게 순복하지 않습니다.” 어떤 인솔자 일꾼들은 제가 대처하면 입으로는 뭐라고 하지 않지만 속으로 저촉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처하시면 순복하겠어. 사람이 나를 대처하면 어떤 뜻에서 나온 건지 누가 알아?’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논단하는 말을 하지 않지만 속에는 항상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감춰 두고 진리를 구한 적이 없고 하나님께 순복한 적이 없습니다. 이 성질이 아주 심각하지 않습니까? 이 성질은 너무나 심각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사람의 이런 갖가지 표현들이 겉으로 보기에 다 같지 않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순복하면서 마음속에는 관념과 패역, 저촉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구하기 때문에 이런 관념과 패역, 저촉이 점차 사라지는데, 갈수록 적어지고 경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완전히 없어집니다. 다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순복하는 것은 순복의 첫 단계입니다. 마음속에 저촉이 조금도 없는 것은 무엇을 통해 도달한 것입니까?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깨달아 도달한 효과입니다. 사람에게 관념과 견해가 있거나 패역과 저촉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고 아주 쉽게 생겨납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진리를 발표하신 까닭은 바로 우리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여 사탄의 성품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복할 수 있다면 자연히 하나님에 대한 우리 안의 관념과 패역, 저촉이 모두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복함에 따라 점차 정결케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효과입니다. 매사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는 사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게다가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진리로 자신의 많은 패괴 문제를 해결했다면 그 사람은 진정 진리를 깨달은 것이고 진리가 생명이 되는 가치와 의의를 인식한 것입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 닥치든지 자신의 사탄 철학과 일을 판단하는 사탄의 관점으로 대합니다. 그럼 사람 안의 관념과 패역, 대적이 정결케 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정결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생명 성품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은 그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이 바로 실례입니다. 그 사람들도 자주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상면의 설교 교통도 듣는데, 왜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패역, 저촉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겠습니까? 바로 그들이 이런 일들이 닥치면 진리를 구한 적이 없고 진리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관념이 있고 패역이 있는 것은 일리가 있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나에게 일리가 많은데, 진리보다 적지 않아. 나의 일리는 다 정확해서 진리보다 못하지 않아! 나에게 이유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이렇게 직면하고 이렇게 저촉할 거야.’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당하게 말하고 여전히 오만 자대하고 독선적이며 그 어떤 사람이 교통하는 진리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문제가 닥쳐도 진리를 구할 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의 성품이 바로 오만 자대하고 독선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일에 직면하든 자신에게 일리가 있다고 여기며 자신의 그 일리대로 살아가고 사탄의 철학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러고도 득의양양해서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아주 좋아. 악을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들의 이런 관념이 그들을 망친 것입니다. 오만하고 독선적이면 자신을 해칩니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일리만 따지고 그들의 그 일리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의 일리가 도대체 어떤 일리이겠습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사탄의 일리’입니다. 이 사탄의 일리가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까? (해칩니다.) 여러분 안에는 사탄의 일리가 있습니까? 여러분도 많은 경우에 이 사람들처럼 모두 사탄의 일리대로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족스러워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저에게 이렇게 일리가 많은데, 하나님은 왜 모르십니까? 하나님은 왜 저를 이해해 주시지 않습니까? 저는 근거가 있습니다!” 이 말이 설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의 말이 선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의 근거를 내놓고 우리 변론해 봅시다. 자신 있습니까? 당신의 그 근거는 내놓고 거론할 가치도 없고 구석에 있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쨌든 당신이 여기는 그런 일리를 최종까지 배반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당신을 심각하게 해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왜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사탄의 일리에 순복하고 그 사탄의 일리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최종에도 회개하지 못한다면 정죄받게 됩니다. 그때면 지옥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저는 지옥에 가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지옥에 가면 하나님과 이치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마귀 사탄에게 속하는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과 아치를 따질 자격이 있습니까? 지금은 이유가 충분해서 당당하게 목을 곧게 세우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겠어요.”라고 말하지만 틀렸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먼지에 불과하고 분토에 불과해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도 없습니다. 그런 논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112-B-3】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전에 우리가 자주 말했듯이 은혜시대의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았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자격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으면 최소한 “하나님께서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축복해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린 다음 하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만약 증거하지 않고 간증도 굳게 설 수 없다면 위험하게 되고 하나님께 정죄받게 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렸지만 간증을 굳게 서지 못했고 게다가 하나님의 제물까지 훔쳐 먹었습니다. 이것은 본래보다 더 악화된 것이 아닙니까? 문제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리고도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의 제물을 훔쳐 먹는다면 정죄받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정죄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그는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있고 다 영계의 단속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 인류를 창조하시고 이 인류를 인솔하시며 이 인류를 지배하시고 이 인류를 주재하신다는 이 몇 마디 말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엄격하고 면밀하게 이 인류의 일거일동을 주시하시고 모든 영을 파견하여 이 인류를 주관하고 통제하게 하시므로 아무도 달아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의 진상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의 제물을 훔쳐 먹는데 이것은 스스로 죽을 길을 찾는 게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주로 이 세 가지 정형이 있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일까요? 절대로 이방인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 틀립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않았고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이방인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모두가 사탄의 종류, 악인, 짐승으로 비인류에 속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성질이 확정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두 부분의 사람이 포함됩니다. 한 부분은 종교의 사람들이고 한 부분은 하나님 집의 사람들입니다. 종교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확정된 사람은 모두 악을 행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세부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시인하고, 가장 주된 것은 하나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내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기에 서로 무관합니다. 하나님 집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정죄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하시겠죠?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뜻과 합할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는 여기에도 조건이 있고 구체적인 논법이 있습니다. 아래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까닭은 한 방면은 사람의 패괴(역주: 부패, 타락) 성품 때문이고,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두 방면이 종합되어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 역사(歷史)가 구성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진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여기에서 분명하게 해석했습니다. 만약 이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 역사(歷史)”는 바로 이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한 유래가 오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몇천 년 대적한 것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여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간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오래 믿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초래된 것이고 그 밖에 사람의 패괴 성품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금방 믿은 그 몇 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에 하나님을 믿어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누가 하나님인지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로 악인이어서 누구를 막론하고 다 대적합니다. 사탄에 대해서도 대적하고 제 집 사람에 대해서도 대적하는데, 어쨌든 누가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기만 하면 가만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초래된 것이다”, 당신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지만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계속 하나님을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사람을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난다”는 무엇을 가리켜 말합니까? 바로 사람의 사탄 본성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이 발표하신 진리에 대해 마땅히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공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은 다 인류에 대해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사람이 일을 판단하는 관점이 바뀌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도 와해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제도 점차적으로 해결되기에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인을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사탄의 본성은 관계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배경은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배경이고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해 사람을 구원하시는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몰라서 초래된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금방 믿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성질이 다릅니다. 이것은 엄중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처음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왜냐하면 금방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확실하게 말하자면 전적으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하나의 원인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오래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오래 경력했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하셨으므로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해결될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과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것이 주된 원인으로 됩니다. “그 밖에 사람의 패괴 성품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원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어릴 적에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는 것은 철없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른이 되어 교육을 받은 다음에도 부모를 거역하고 학대한다면 철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인성 품격의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은 철없어 부모를 학대한 것이 아니라 인성 품격이 악랄하고 인성이 없어 부모를 학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 원인입니다. 성질이 다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하신 이런 말씀에는 원칙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하게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각종 정형을 아주 분명하게 나누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논법은 다 하나님이 일을 하심에 원칙이 있다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이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모두 공평하고 공의롭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정확하고 매우 적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을 논단하는 성분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에 대해 모두 공의롭습니다. 이 원칙을 너무나 분명하고 명확하고 공정하게 나누셨습니다.
【112-B-4】
“하나님이 성육신하기 전에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했는지를 가늠한 것은 사람이 하늘 위의 하나님이 정한 규례를 준수했는지에 근거하였다. 예를 들면, 율법시대에 무릇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여기에서 또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율법시대에서의 역사에 근거해 정하였고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반포하신 율법과 계명으로 사람을 단속했습니다. 그 시대에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릇 여호와의 제물을 훔쳐 먹는 자와 여호와의 마음에 든 사람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돌에 맞아 죽을 대상이다”, 여호와의 마음에 든 사람은 어떤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을 포함해 여호와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율법시대에 누가 여호와께서 칭찬하신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라함, 욥 등등입니다. 누가 그 사람들을 대적하면 다 징벌을 받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욥의 세 친구가 욥을 논단한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사람이 욥을 논단해도 안 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만두시지 않고 반드시 속죄제를 드리게 하셨으며 그들을 욥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냈습니다. “무릇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와 남을 때리고 욕하는 자는 모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여호와를 대적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율법시대에 율법을 어긴 사람들은 어떻게 정죄받았습니까? 은혜시대에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들은 어떻게 정죄받았습니까?” 이것은 다 기준이 있습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요구에 따라, 무엇에 근거해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 여부를 규정하는지는 모두 엄격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고 함부로 생각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시대에 이르러서는 다르다. 무릇 예수를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말씀으로 되신 하나님의 육신이시고 즉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인데,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무릇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복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더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인 것이 아니라 무릇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복하지 않는 자도 포함됩니다. 이 범위가 크지 않습니까? (큽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 바리새인, 대제사장, 서기관, 유대교의 상층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한 탓에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되겠습니까? 그들의 죄는 틀림없이 엄중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복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경중 정도가 다를 뿐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에 속하고 성질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대적한다’의 정의는 더 정확하고 더 실제적이었다.” 보세요,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기준이 다르죠? ‘하나님을 대적한다’의 정의가 더 정확해지고 더 실제적이 되었으며, 성육신하시기 전의 기준과 다른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심각합니까?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후 ‘하나님을 대적한다’에 대한 정의가 더 엄격해졌고 정죄가 엄중해졌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살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때가 되었으니 대적하면 곧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의 여부는 사람이 하늘 위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앙망하는지에 따라 판단하였다. 그때 ‘하나님을 대적한다’의 정의는 그렇게 실제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아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형상이고 도대체 어떻게 역사하고 말씀하는지도 몰랐으며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없었고 모두가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상상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든지 하나님은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매우 높은 요구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공평하고 공정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가장 공정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맞습니까? (네.)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 알면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어떤 관념이 있고 어떤 상상이 있든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그렇게 높이 요구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심에 있어 공평하고 합리적이죠? 하나님은 사람을 대하심에 있어서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사람을 조금도 지나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사람들 가운데 와서 역사할 때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육신에서의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사람의 관념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온 교계와 이방인들은 하나님 집의 동영상과 영화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을 보고 ‘어, 이건 무슨 말씀이지? 이 말씀이 아주 진귀하네! 이 말씀을 읽으면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고 감탄하네! 혹시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까?’라고 여깁니다. 보세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터득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하신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육신에서의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되었다”라는 이 말씀은 실제적이고 진실하고 아주 객관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성육신의 역사를 봤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체를 봤다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안다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립됩니까? (성립되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관념에 따르면 ‘만약 하나님의 영체가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영체가 친히 음성을 발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정말로 하나님의 영을 대표해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법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체는 영원히 인류에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류에게 나타난다면 인류는 육체에서 하나님의 영체를 보고 다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에게 정상 사유가 있기에 만약 성육신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듣는다면 무릇 터득 능력이 있는 사람과 심령에 정상 감응이 있는 사람은 모두 ‘이것은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신 거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야. 이 말씀은 권병과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달라. 하나님의 말씀은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이고 확실히 그 어떤 사람도 말할 수 없어.’라고 의식할 수 있습니다. 정상 사유가 있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바리새인들까지 다 시인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이 발표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히 말해서 사람들이 다 시인하고 다 알고 다 닿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육신을 본 사람은 기껏해야 만여 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육신을 봤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에 근거해 믿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이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어떤 사람도 말할 수 없으며 이 말씀이 너무나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고 하나님 영의 발표라고 시인한다 해서 그들이 다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시인하는 모든 사람이 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상, 그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인류에게 정상 사유가 있어 여기에 닿을 수 있고 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즉시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하나님 영의 발표임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됩니다. 이 한 가지에 근거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후 만약 사람이 하나님 성육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고 정죄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가 아니겠습니까?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112-B-5】
“그러나 만일 육신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정죄받지 않는다”. 무엇을 “육신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봤다”고 합니까? 바로 예수님이 성육신이시고 말씀하고 발표하신 것이 다 진리이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았다면 이것이 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정말로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아,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이것도 본 것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의 음성과 말씀, 역사에 대해 들은 사람은 다 성육신 하나님을 본 것에 속합니다. 본 후의 상황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데 어떤 요구이겠습니까?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정죄받지 않는다”. 바로 마음속으로 ‘이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시기에 순복해야지 대적하거나 정죄해선 안 돼. 설령 어떤 점에 대해 나에게 관념이 있고 상상이 있을지라도 그분이 성육신이시기에 거역하지 않고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순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죄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요구가 높습니까? 당신에게 순복하려는 마음만 있고 당신 안이 어떻든지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고 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 맞서지 않고 대적하지만 않으면 정죄받지 않습니다.
“고의적으로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으로 정해진다. 이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이다. 만일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어도 기꺼이 순복하는 사람이라면 정죄받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고의로 대적하는 사람들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순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누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육신이라고 증거하면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아, 이 말씀은 정말로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나님의 음성이고 진리야. 정말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으니 절대로 대적하거나 정죄해선 안 돼!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말해도 남이 하는 대로 따라 말해선 안 돼. 입과 혀를 조심하고 죄짓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인식은 없지만 이런 속마음이 그를 구하여 정죄받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자 마음속에서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관념과 상상으로 대하지 말고 논단하지 말아야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진리셔. 이것은 틀림없어. 우리가 한 말이 아무리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아도 진리가 아니야.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고 사람들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일수록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틀린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장 얕은 인식이 있고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정죄받지 않습니다. 이 일이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실 바로 이렇게 간단합니다. 악인도 이렇게 하고 싶어 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단지 일시적으로 인내할 뿐이고 최후에는 정죄받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길 때도 여전히 달갑게 순복한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관념이 없을 때 그는 순복하기를 원하지만 이것은 꼭 진실한 것은 아닙니다. 관념이 있을 때도 여전히 달갑게 순복한다면 이 사람은 인성이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이 말씀의 실제를 갖추면 대단합니다! 진리를 몹시 증오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다 진리이고 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대표하며 다 하나님 소유소시의 유로인 것으로 인해 몹시 증오하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고의로 대적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고의로 대적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에 속합니다. 교계의 지도자들은 다 고의로 대적하는 자들인데, 이 사람들이 정죄받았습니다. 누구에게 정죄받았습니까? 하나님께 정죄받았는데 사람들은 모르고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으신 줄로 생각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일찍이 그들을 정죄하셨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죄하셨다면 그들이 왜 죽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죽었다면 어떻게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라는 예언이 응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 일은 사람들이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고의로 대적하는지 하나님은 다 최종적으로 분명하게 확정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결말이 죽음이고 어떻게 죽는지 하나님은 다 안배해 놓으셨지만 사람은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실 수 없습니까?” 사람에게 알려 주시면 적합합니까?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 적합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이 담지 말아야 할 것까지 사람에게 알려 주신다면 사람은 진리를 추구할 시간이 없고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야 할지 모릅니다. 사람 마음속에 담아 놓은 것이 많으면 좋겠습니까? 5살짜리 아이에게 늘 배우자를 찾는 일만 말한다면 그 아이가 많이 들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습니까? 50대 사람에게 자녀가 금방 자라나 아직 가정도 이루지 못했는데, 그 사람에게 어느 날에 죽는다고 알려 주면 그 사람이 밤낮 언제 죽느냐는 일만 생각하고 수의를 예비하고 누릴 것과 먹을 것만 생각할 것인데, 아주 골칫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너무 빨리 알면 좋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연약해서 마음속에 얼마 담지 못합니다. 많이 담으면 귀찮아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듣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으니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사람의 본심과 사람이 행한 일에 근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원칙을 언급했는데,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죄하시는 원칙은 주로 두 방면에 근거합니다. 첫째는 사람의 본심에 근거합니다. “사람의 본심에 근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논단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가리킵니다. 이 본심이 아주 관건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들이 논단하는 말을 좀 하거나 관념이 있는 말을 좀 해도 본심은 의식적으로 논단하려는 것이 아니고 악을 행하거나 방해하려는 마음도 없으며 더욱이 고의로 허물고 방해하는 일을 해서 하나님 집의 이 사역을 폐기하여 혼란이 생기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일을 하는 것도 해야 할 본분을 하는 것이고 본분을 할 때에도 진심이고 대충 해서 속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몇 마디를 유로합니다. 이런 것은 패괴 유로에 속하기에 고의로 하나님 역사를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로 적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일을 함에 고의적이 아니고 목적 있게 일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흐리멍덩할 뿐 마음은 나쁘지 않습니다. 둘째는 사람이 저지른 일에 근거합니다. 사람에게 그런 마음이 있고 그런 상상이 있고 그런 의도가 있지만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정죄받지 않습니다. 예컨대, ‘내 안에서 저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여 무슨 일을 해야겠어.’라고 생각은 했지만 궁리해 보더니 ‘그러면 안 돼, 그건 악을 행하는 거야.’라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이런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이 정죄하시겠습니까?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은 마음과 생각에 문제가 좀 있지만 일을 저지르기 전에는 하나님이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정죄하시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어 자연히 많은 일에서 마음에 생각이 있고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을 저지르기 전에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궁리하든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어느 자매(형제)가 잘 생겨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면 내통할지를 궁리합니다. 궁리하다가 일은 저지르지 않고 그렇게 지나갔으면 이것은 정죄받지 않습니다. 만약 궁리하다가 행동까지 궁리해 내고 어느 날 내통했을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까지 직접 보게 되고 귀찮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방해했다면 이것은 성질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남녀관계가 비정상이 된 것입니다. 경고를 해서 그 후에도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B조에 보내면 됩니다. 만약 B조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몰래 결혼해서 광명정대하지 못하게 배까지 불룩하게 나오면 성질이 더 엄중하지 않습니까? 이러면 출교시켜야 합니다. 만약 광명정대하게 “우리는 결혼하겠어요. 정상적으로 연애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일은 정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우자가 있으나 없으나 몰래 함부로 내연관계를 맺으면서 광명정대하지 못하다면 안 됩니다.
【112-B-6】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물을 관리함에 있어서 고의로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기회를 틈타 제물을 훔쳐 자기 손에 넣습니다. 그런 후 사람들 앞에서 또 이렇게 저렇게 말합니다. 나중에 일이 생기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합니다. 이것은 다 고의적입니다. 고의적인지 아닌지는 형제자매들이 다 분별할 줄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에 속하는데, 하는 것이 대부분 다 고의적입니다. 그가 하는 말이 누구를 위해 변명하는지, 누구를 발탁하는지, 누구를 쓰고 누구를 쓰지 않는지 그는 모두 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 결과 큰 화를 빚어냈는데 이것은 고의적인 것에 속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의적은 아닌데 결국 일이 생겨 제물이 손실 보고 큰 붉은 용에게 빼앗겼습니다. 그가 의식하지 못했고 생각지도 못했으며 그만한 사고력이 없는데, 이것은 고의로 범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는 사람의 속마음을 보는데, 그의 마음이 고의적인지, 그 일을 할 때 마음에 궤계가 있었는지, 별다르게 안배가 있고 다 생각해 놓고 설계해 놓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했는지, 의식적으로 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했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것은 속마음을 가리킵니다. 그 외, 그가 저지른 일을 봅니다. 그 일을 저지른 것과 저지르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당신이 저지른 그 일이 만약 객관상에서 악이고 또한 그 악을 행할 때도 일부러 계획해 놓고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죄받습니다. 그 일을 고의로 저지른 것과 무의적으로 저지른 것은 또 차이점이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악이 있고 좋지 않은 생각이 있어도 일을 저지르지 않은 것과 저지른 것은 같지 않습니다.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마음속에 관념과 상상 그리고 악한 생각이 있는 것은 정죄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있고 고의로 그 악을 저지르려 하고 계획해 놓고 꼭 하려고 하고 나중에 저질렀다면 이것은 정죄받습니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악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죄하시는 것은 이 두 가지에 근거하는데 하나는 속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저지른 일입니다. 이러면 사람이 쉽게 진심으로 탄복하게 됩니다. 본 사람들도 다 진심으로 탄복하면서 하나님은 너무나 공의로우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단지 그런 생각만 있고 그런 관념만 있고 그런 그릇된 생각만 있을 뿐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정죄하시겠습니까?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저지른 것이 무의식적이고 이런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지 못했고 그런 속셈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정죄하시겠습니까?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일의 결과가 너무나 심각하여 다른 사람들도 다 생각했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했다면 이 일은 그저 지나치지 못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바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저지른 일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는데, 본인이 의식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책임을 미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이 말씀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정하시는 데에 원칙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이 원칙에서 무엇이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 성품의 유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정하시는 데에 원칙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른 것에 근거해 정죄하십니다. 악을 저지르기 전에는 모두 관용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고 사탄 본성이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면서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사람을 정죄한다면 하나님의 분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패괴된 인류에 속하고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본성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까? 어느 누구나 속으로 생각하는 나쁜 일은 적지 않습니다!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가장 많은 나쁜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권력과 이익을 쟁탈하고 아귀다툼을 하며 항상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 하고 지위를 갖고 싶어 하며 사람들이 다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 합니다. 둘째,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제물을 훔쳐 먹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덕을 보면 ‘난 왜 덕을 보지 못할까? 왜 저 사람만 덕을 보는 걸까? 저 사람이 형제자매들이 헌납한 옷도 가지고 좋은 신도 가지고 좋은 것은 다 가지는데,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는 왜 갖지 못할까?’라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위해 분쟁하는 일에서 마음과 생각이 아주 많지 않습니까? 셋째, 사악과 음란입니다. 어떤 이성이 잘 생기고 말재주가 좋으면 꼬시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손은 내밀지 않았지만 눈짓만 합니다. 눈짓을 많이 하다가 언제 기회를 틈타 손을 내밀까 궁리합니다. 손으로 만지거나 건드리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어떤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든가, 하나님 집에서 처리한 어떤 일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든가,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출교시킨 것이 그의 감정과 관련되든가, 인솔자 일꾼들이 자기 뜻에 맞지 않든가 하면 관념이 생깁니다. 이 몇 가지 방면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까? 사람은 속으로 다 이런 일을 궁리합니다. 어떤 사람은 잘 생기고 옷도 화려하게 입고 겉으로 보면 기질이 있지만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악한 것이 아닙니까? 겉은 스마트하게 차려입었지만 속에는 사악한 잡념들이 가득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서 매일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아시기 때문에 단지 사람의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죄를 정하시지 않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패괴된 인류는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 징벌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분량을 아시고 사람의 패괴된 정도를 아시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정죄하심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은 바로 패괴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과 긍휼, 인내를 체현했습니다. 악을 저지르지 않으면 죄를 정하지 않지만 악을 저지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정죄받고 사람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출교시키는 것은 그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정죄하고 출교시킵니까? (아닙니다.) 무엇에 근거해 출교시킵니까? 그들이 저지른 그런 악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 악은 한 번만 저지른 것이 아니며 다 갖은 악을 행했기 때문에 출교당한 것입니다. 그가 악을 한 번 저지르면 하나님 집에서 대처 수리해서 기회를 주고, 악을 두 번 저지르면 경고를 줍니다. “또 악을 저지르면 안 돼요.” 악을 세 번 이상 저지르면 갖은 악을 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적그리스와 악인들은 모두 갖은 악을 행했기 때문에 출교당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니 적그리스도들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악을 하나하나 열거해 내면 그들은 사실 앞에서 강퍅한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출교시키는 원칙은 진리에 부합되며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대적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불복으로 인하여 징벌받게 된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정죄받는 사람이고 틀림없이 징벌받을 것입니다. 고의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어떤 징벌을 받겠습니까?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뿐이겠습니까? 보통 사람과 같겠습니까? 분명히 다릅니다. 보통 사람은 고의로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남이 뭐라고 말하면 그도 뭐라고 말하는데, 별다른 생각도 없고 불복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방인처럼 갑자기 각종 재난이 오면 죽는데, 죽어서 직접 지옥에 떨어지면 그만입니다. 고의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받는 징벌은 이방인의 결말과 다릅니다. 이방인의 결말은 징벌이 아니라 재난과 무력으로 해결하는데, 그들은 훼멸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징벌받는 사람은 이방인이 죽는 방식과 다릅니다. 이방인처럼 그렇게 죽는다면 흔히 하는 말로 “너무 편하게 해 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맞습니까? (맞습니다.)
【112-B-7】
“하나님을 고의로 대적하는 이 사람들이 대적하는 근원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의도적으로 대적하고 허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정죄받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정죄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신 것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고 사람에게 지혜롭게 말씀하시면 다들 관념이 없을 거예요. 관념이 없으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게 되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로 일리가 좀 있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이 얘기하는 것은 왜 그렇게 직설적이고 그렇게 매섭습니까? 그러니 우리에게 관념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속으로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해서 하나님은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왜 특히 지식이 있고 아주 점잖게 말하는 사람을 택해 이 사역을 하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에게 관념도 없을 것이고, 그 사람이 사람들을 대처하는 것도 틀림없이 품격이 있어 사람들이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며, 사람들을 대처해도 사람들에게 관념도 없고 진심으로 탄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가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어찌 된 일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쓰시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쓰신 것이 아니라 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해서이고 말할 줄 몰라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관념이 생기고 거역과 논단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건 도대체 제 탓일까요 아니면 형제자매들 탓일까요? (형제자매들 탓입니다.) 왜 형제자매들 탓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공평합니까? 저에게 지위가 있다고 저를 두둔해서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심오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이렇게 어른이 되기까지 그 사람의 배경을 하나님이 안배해 놓으시고 계획해 놓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오늘날까지 줄곧 보살펴 주시고 인솔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셔서 그 사람이 이렇게 어른이 되었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성격과 말하는 방식이 형성되는지는 하나님께서 다 아시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렇다면 하나님께서 의식적으로 이런 사람을 안배해 이 사역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됩니까? (됩니다.) 이런 가정 출신에 그런 사회 배경에서 자라난 그 사람의 패괴 성품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의 성격은 하나님이 명정해 놓으신 것이고 말하는 방식도 하나님이 명정해 놓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맞습니까? (맞습니다.) 만약 정확한 말이라면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이 어떤 때는 매우 딱딱한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역시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럼 사람에게 관념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이런 한 마디 말씀이 있습니다. “인호하산(引虎下山)”, “인(引)”은 어떻게 생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이 방면의 인성 즉 이 방면의 사역 방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설령 당신이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그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셔서 일부러 “인호하산”하게 하십니다.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어떤 유로가 사람 뜻에서 나오고 사람의 뒤섞임에서 나온 것인지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아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제한하시지 않겠습니까? 당시에 성령께서 갑자기 그 사람의 입을 봉하시면 그 사람이 말하지 못할 것이고 또는 그 사람이 한 번 말할 때 갑자기 징계를 내리시면 다음번에는 한 글자도 언급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려면 하실 수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허락하셔서 일부러 사람을 드러내십니다. 아시겠죠? 제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하는 것에서 어떤 사역 방식은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순복할 수 있고 관념이 없으며 자신을 알 수 있고 진리를 구하여 자신의 패괴를 해결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 나중에 당신이 진리를 구하여 자신의 패괴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한 관념을 갖고 있다면 진리를 구하고 관념이 없고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는 그 사람들에 의해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뒤에서 두어 마디 하지만 본분을 함에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않고 본분을 할 때 또한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죄하실까요?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이십니다. 하지만 관념이 있어서 불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고 가로막는다면 이것은 악행입니다. 당신에게 순복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정죄받습니다.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조금 유로해도 하나님께서 포용하시고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저에 대해 선입견이 있으면 제가 출교시킨다고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어도 출교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논단하거나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고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출교시키지 않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 하나님 집에서 용서하지 않고 반드시 출교시킵니다. 당신이 정죄하거나 모독하는 말은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지만 만약 관념이 있는 말을 한다면 경고합니다. “관념이 있는 말을 하지 말고 이런 것을 퍼뜨리지 마세요. 퍼뜨리면 당신한테 좋은 점이 없습니다!” 마음속에 관념이 있으면 빨리 진리를 구하여 해결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없었던 걸로 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하나님께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고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관용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정죄하거나 논단하는 말을 하여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한다면 이것은 따로 논하고 따로 처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또 다른 일로 변합니까? 만약 그 사람에게 관념이 생겨 하나님에 대해 불만이 있고 그다음 뒤에서 논단하고 정죄하며 하나님 집을 방해하여 많은 사람들을 소극적이 되게 한다면 이것은 성질이 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이미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일을 저지르면 따로 처리해야 합니다.
“사역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 있는 사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복하려는 마음이 있고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어떤 일들을 보면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한 것이지만 그 사람이 고의적이 아니고 알지 못해서였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을 정죄하겠습니까?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방해한 것은 고의적이 아니라 그 일을 몰라 억제하지 못하고 참지 못해서 말하고 저지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면 그것은 고의적입니다. 어떤 일들에서 그 사람이 저에게 혹은 인솔자 일꾼에게 그렇게 말했다 해도 고의적은 아닙니다. 금방 믿었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정죄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진리를 교통해 주어 해결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가로막고 방해하는 일이지만 사람에 따라, 배경이 다름에 따라 서로 다른 처리를 해야 합니다. 오래 믿은 사람과 금방 믿은 사람이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어느 사람을 엄하게 처리하겠습니까? 오래 믿은 사람에게 엄중한 벌을 주어야 합니다. “믿은 지 얼마 됐어요?” “10여 년 됐습니다.” “그럼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임을 알고 있을 텐데요!” 그래서 그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고의로 가로막고 방해한 것에 속합니다. 금방 믿은 지 3~5년 되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패괴가 유로한 것은 너그럽게 처리하고 진리를 교통하면 끝납니다. 하나님 말씀에 서로 다른 성질이 있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서로 다른 처리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도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서로 다른 사람과 서로 다른 일을 대합니다. 이것은 다 진리 원칙에 부합됩니다.
【112-B-8】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오래 경력(역주: 체험)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고 성육신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인식하지 못하며, 몇 년을 경력했든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쌓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설령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매우 많은데 설령 이런 관념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할 수 없고 간증을 굳게 설 수도 없다. 이런 사람은 바로 밥통이고 멍청이이다.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조금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정죄받는다.” 이 사람들은 정죄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죄받지 않고 어떤 사람이 정죄받는지 이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은 사람들에게 관념이 좀 있고 행위 표현이 좀 있는 것은 정죄받지 않습니다. 하나님 역사를 오랫동안 경력하고도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관념이 있고 하나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경력해도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관념이 겹겹이 쌓이고 인식이 없다면 설령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이런 사람은 최종에 정죄받습니다.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 정죄받겠습니까?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시종일관 관념이 겹겹이 쌓이고 진리를 구해서 해결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정죄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구원 사역을 오랫동안 하시면서 무수한 진리를 발표하셨지만 사람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따라도 효과가 조금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관념이 겹겹이 쌓인다면 이런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치르신 대가가 너무나 많고 하신 사역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대하시는 태도는 원래의 긍휼과 관용, 인내에서 분노로 바뀐 것입니다. 분노로 바뀌었기 때문에 “정죄받는다”는 것입니다. “정죄받는다”는 무슨 뜻입니까? 바로 징벌하고 훼멸한다는 것이며, 바로 그 사람의 육체를 제거해 죽게 하고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며, 그 사람의 결말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큰 재난을 언급했는데, 150일 동안 황충이 전문적으로 사람을 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쏜다고 했습니까?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들만 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이방인을 가리키겠습니까 아니면 종교인을 가리키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겠습니까? 이 범위를 우리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는 않은 사람들은 다 이 황충들에게 쏘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겠습니까? 황충은 분별할 줄 압니까? (모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정확하게 쏘겠습니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십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있을 때 사자들이 왜 물지 않았겠습니까? 두 손이 묶여 반격할 수도 없고 사자가 물면 반항해도 소용없습니다. 사람에게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사자가 왜 다니엘을 물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주재 안배와 관련되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상세한 내막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생각으로 만물을 지배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생각으로 지배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황충에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쏘면 안 돼.”라고 말씀하면 황충은 압니다. 이 하나의 생각만으로 만물을 지휘하시는 것입니다. 예컨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밭의 농작물을 먹으면 안 돼!”라고 말씀하면 황충은 어느 밭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밭이라는 것을 알고 건너뛰어 먹지 않습니다. 홍수가 날 때면 하나님의 하나의 생각으로 “이 집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집이니 잠기게 하지 말고 에돌아가라”고 하면 물이 거기에서 에돌아갑니다. 큰 산이 무너질 때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의 집을 치면 안 돼!”라고 하면 돌이 마침 거기로 구불어 떨어지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집이면 멈추기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으로 지휘하시는데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너무나 크십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정상이지만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경력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는 것은 비정상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더욱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단락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고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 공평하고 공의롭다는 것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분량을 아시고 사람 안의 정형을 아시며 사람에게 다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여기에 여전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과 긍휼, 인내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은 후에도 이런 관념을 해결하지 못하고 진리를 조금도 얻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다 폐물이고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누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최종에 모두 도태될 사람이다!”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하셨습니까?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다 폐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폐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집에 남아 있어도 쓸모가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폐물이라고 하면 쓰레기에 속하므로 도태되고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폐물이 가장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금방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사탄 본성이 있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하나님 역사를 오랫동안 경력하고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관념이 겹겹이 쌓이면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죄가 더 무겁고 가장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많이 누렸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누리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분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지만 사람에게 간증을 굳게 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런 뜻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간증을 굳게 서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누렸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모두 도태될 사람이다!”라고 규정하셨습니다. 도태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합니까? 하나님 집에서 버리고 사탄에게 넘겨 주어 결말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의 많은 사람들이 재난이 올 때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누리고도 간증을 굳게 서지 못했고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했으며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관념이 겹겹이 쌓이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다 폐물이고 가장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사탄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지 마지막 결말은 여전히 죽음이기에 이렇게 처리한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이런 사람의 죽음에 대해 관념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진리를 교통할 때는 당신에게 관념이 없겠지만 만약 이런 사람들 속에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당신의 남편(아내) 혹은 자녀가 있다면 관념이 없겠습니까? 딱하겠죠? 당신의 가족이라면 당신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2016년 이후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마 죽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암으로 죽고 어떤 사람은 온역에 죽고 어떤 사람은 굶주림으로 죽고 어떤 사람은 대지진에 죽을 것이며, 쓰나미에 죽는 사람도 있고 전쟁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납치돼 살해되는 사람도 있는데, 별의별 죽음이 다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거의 죽을 뻔했다가 죽지 않았는데 대단한 행운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직은 희망이 있고 아마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가서 이방인이 다 죽고 재난도 멈추고 그 사람도 죽지 않았으면 잘 된 것입니다. “큰 재난에 죽지 않으면 훗날에 복을 받는다”고 살아남아 국도에 들어가면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큰 재난에 죽지 않고 훗날에 복을 받고” 국도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까? (원합니다.) 다 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교통한 진리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형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죄를 정하시는 데에 원칙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고 말하는 것은 증거가 있고 남이 말하는 대로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입으로만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매 한 마디 말씀을 하시고 어떤 사람을 정죄하시고 어떤 사람을 관용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최종에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시는지는 완전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냅니다.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 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고 나서 우리는 이런 일들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우리는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야 하겠습니까? 길이 생겼겠죠? 길이 생긴 후 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기간에 마땅히 전력으로 진리를 구하여 자신의 관념을 해결해야 하고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느 날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인식이 있을 때는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그때면 우리는 모든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라면 설령 패괴가 좀 유로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때에야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