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집(a)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 관한 설교 교통 (1)
【112-A-1】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파악하고 사람 몸에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는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이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모든 사람에게 부족한 점은 바로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모든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데, 이것은 모든 종교계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부족한 점이다. 언젠가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보고 하나님의 소시소유(所是所有)를 인식하고 그의 풍부함, 지혜로움, 기묘함 그리고 사람에게 행한 그의 모든 사역까지도 보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유를 포함하고 매우 풍부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만유를 포함하는가? 어떻게 풍부한가? 만약 네가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왜 종교계 사람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마귀와 같은 부류라고 하는가? 그들을 악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한 일을 여태껏 그들에게 나타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눈먼 사람들로,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전혀 없고 성령의 역사는 더 말할 여지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뜻과 합할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까닭은 한 방면으로는 사람의 패괴(역주: 부패, 타락) 성품 때문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두 방면이 종합되여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 역사(歷史)가 구성된 것이다. 처음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오래 믿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초래된 것이고 그 밖에 사람의 패괴 성품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기 전에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했는지의 여부를 가늠한 것은 사람이 하늘 위의 하나님이 정한 규례를 준수했는지의 여부에 근거하였다. 예를 들면, 율법시대에 무릇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무릇 여호와의 제물을 훔쳐먹는 자와 여호와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돌에 맞아 죽을 대상이며, 무릇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와 남을 때리고 욕하는 자는 모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여호와를 대적하는 사람이다. 은혜시대에 이르러서는 다르다. 무릇 예수를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무릇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복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때 ‘하나님을 대적한다’에 대한 정의는 더 정확하고 더 실제적이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의 여부는 사람이 하늘 위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앙망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하였다. 그때 ‘하나님을 대적한다’에 대한 정의는 그렇게 실제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기에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형상이고 도대체 어떻게 역사하고 말씀하는지도 몰랐으며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없었고 모두가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상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든지 하나님은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너무 높은 요구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사람들 가운데 와서 역사할 때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육신에서의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사람의 관념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육신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본 사람이 만일 진심으로 순복하면 정죄받지 않지만 고의적으로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으로 정해진다. 이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이다. 만일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어도 기꺼이 순복하는 사람이라면 정죄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사람의 본심과 사람이 행한 일에 근거하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다. 만일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사람을 정죄한다면 하나님의 분노의 두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대적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불복으로 인하여 징벌받는데, 이 사람들이 대적하는 근원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의도적으로 대적하고 허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정죄받는 것이다. 사역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 있는 사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심으로 순복할 수 있고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오래 경력(역주: 체험)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고, 성육신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인식할 수 없으며, 몇 년을 경력했든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쌓이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설령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매우 많고 설령 이런 관념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할 수 없고 간증을 굳게 설 수도 없다. 이런 사람은 바로 밥통이고 바보이다.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조금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정죄받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방금 믿어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지만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경력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는 것은 비정상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정죄받는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다 폐물이고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누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도태되는 사람이다!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닫고도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큰 교회당에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온종일 성경을 외우지만 하나님 사역의 취지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 역시 하나도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 뜻과 합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쓸모없는 소인배들이고 모두가 높은 곳에 서서 ‘하나님’을 교훈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걸지만 사람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악마들이고 바른길에 들어서는 사람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귀신의 우두머리이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그들이 비록 ‘심신이 건장’하지만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바로 사람을 이끌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적그리스도임을 어찌 알겠는가? 그들이 바로 전문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살아 있는 귀신임을 어찌 알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이고 스스로 천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오히려 가장 귀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스스로 여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제멋대로 떠벌이는 사람은 가장 무지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증거가 없는 사람이고 오만 자대(自大)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여기지만 확실히 실제적인 경력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실제적인 인식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간증이 있는 사람이고 정말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만 말씀의 실질을 어기는 사람,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러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논단하는 사람, 무릇 하나님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정말로 이 길을 걸어갈 자신이 있다면 계속해서 따르고 만일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 일찍이 떠날 것을 나는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흉한 것은 많고 길한 것은 적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의 본성이 그야말로 너무나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충심과 순복이 조금도 없고 공의와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정형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고 할 수 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며, 마땅히 실행해야 할 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다해야 할 기능도 하지 못하며, 마땅히 있어야 할 충심과 양심이 없고, 마땅히 있어야 할 순복과 심지가 없으며,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을 받지 못하고, 마땅히 있어야 할 믿음이 없다. 너희는 그야말로 하나도 옳은 게 없는데 무슨 낯으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더는 염려하거나 고통받지 않도록 너희가 일찌감치 눈을 감는 것이 낫겠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지키지 못하며,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삶에 분투 목표가 없고 가치나 의의가 조금도 없으며, 하나의 사람으로서 오히려 양심과 인격 그리고 신용이 조금도 없는데 너희를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의 돈을 탐하며 하나님의 제물을 먹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인정사정없고 양심도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그마한 요구에도 도달하지 못하는데, 너희를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밥을 먹고 하나님의 산소를 호흡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만 결국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밥통으로 되었는데, 이것은 개보다도 못한 짐승이 아닌가? 동물 중에 너희보다 더 악독한 것이 있는가?
높은 강단에 서서 사람을 교훈하는 목사와 장로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로 모두가 사탄의 동맹이다. 하지만 높은 강단에 서서 사람을 교훈하지 않는 너희는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가? 너희는 더욱 사탄과 결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에 합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 설마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깨달은 사람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할 수 있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하나님의 역사는 틀릴리 없고 사람이 추구함에 문제가 있다.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대적하는 이 인간쓰레기들은 그 목사와 장로들보다 더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매우 많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허다한 종류의 서로 다른 정형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각양각색인 만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역시 각양각색으로 각기 다르다. 하나님 역사의 취지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이 이전에 하나님을 어떻게 대적했든지 간에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닫고 또한 힘써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사람의 이전의 죄를 한꺼번에 도말한다. 오직 사람이 진리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행할 수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고 또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의롭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든지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후에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에 의해 ‘사책(史冊)”에 기록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와 지고지상함을 보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옛 성품도 변화될 때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 성품을 완전히 벗어버리게 된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한 적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네가 만일 성육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할 수 있고 지금부터 너의 충심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으며 네가 실행해야 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네가 다해야 할 본분을 할 수 있으며 네가 지켜야 할 규례를 지킬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패역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만일 네가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통회하는 마음이 없이 거역하는 행위를 계속하면서 하나님과 협력하고 만족케 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너처럼 매우 완고한 사람은 틀림없이 징벌받을 대상이지 온전케 될 대상이 아니다. 이러면 너는 오늘도 하나님의 원수이고 내일도 역시 하나님의 원수이며 모레도 여전히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영원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원수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가만둘 수 있겠는가? 사람의 본성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지만 본성을 고치기 어렵다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비결”을 일부러 찾아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후의 더 중한 형벌을 면하도록, 야수의 본성이 발작하고 통제가 어려워 하나님에 의해 육체가 제거되지 않도록 네가 일찍이 떠나는 것이 낫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복받기 위한 것인데 마지막에 도리어 화를 입게 된다면 얼마나 가치가 없는가. 내가 권하는데, 너희가 계획을 따로 세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무엇을 한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못하겠는가, 설마 이 길밖에 없단 말인가? 진리를 찾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생존하는 것이 아닌가? 구태여 하나님과 이렇게 맞설 필요가 있는가?』
【112-A-2】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이 한 편 하나님 말씀의 주제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서 걸립니다. ‘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설마 인성이 비교적 좋은 사람, 마음씨가 좀 착한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 한 마디 말씀 자체가 바로 진리이고 실제입니다. 하지만 경력이 없는 사람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 그것이 진리이고 실제라고 할까요? 인류는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모두 사탄의 본성이 있습니다. 사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인류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인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실질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인류에게는 관념과 상상이 있고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 믿는 데다가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만약 사람에게 사탄 본성이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더군다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류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에 대해 이제는 완전히 터득할 수 있겠죠!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만약 아직도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언짢아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줄 알게 됐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역주: 헌신, 소비)하면서 본분하는데도 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할 수는 있지만 사탄 본성이 정말로 해결됐습니까? 만약 사람의 사탄 본성이 진정 해결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날마다 제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지, 진리를 실행했는지, 악을 저지르진 않았는지 반성해 보는데 어떤 때는 몇 달이나 1년을 성찰해 봐도 하나님을 대적한 일을 한 적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왜 그렇다고 합니까? 그것은 사탄의 본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탄 본성이 해결되지 않았다 해서 수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모든 일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 어떤 시련이 닥쳐서 드러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제가 한 접대집 자매님을 대처한 적이 있습니다. “자매님은 왜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해요? 인솔자 일꾼이 오면 잘 대하면서 특별 대우를 하고 형제자매들이 오면 잘 대하지도 않고 심지어 밥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게 하는데, 속마음이 바르지 않네요! 이건 형제자매들에게 진실한 사랑이 없는 거예요! 왜 인솔자 일꾼을 접대하는 건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을 접대하기 위해서인가요? 제가 보기엔 아첨하기 위해서이고 득 보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제가 그 사람을 이렇게 대처했더니 제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뒤에서는 “나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사람에게 순복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아무런 일도 없으면 사람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사탄 본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어떤 일에서 드러날지 모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결코 매사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항상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매사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항상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악마, 적그리스도, 사탄, 큰 붉은 용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사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사람은 간혹가다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특별한 일이 임했을 때 지위와 명예, 자신의 이익과 개인의 체면에 연관된 일이나 혹은 어떤 시련에 임하면 소극적인 정형이 생기고 관념이 생기며 마음속에 불복과 불만이 생기고 불평하게 됩니다. 이런 특별한 배경에서라야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렇죠? 어떤 인솔자 일꾼은 발탁되면 관념이 없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야, 하나님 집 정말 좋아요. 사람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대하니.” 그러나 그를 교체하고 도태시키면 욕할 것입니다. “하나님 집도 불공평해요! 저를 발탁해 놓고 왜 또 교체하는 거죠?”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어떤 태도로 대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불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시해 주셨으면 우리에게도 계시해 주실 수 있지 않는가? 모세가 뭐 대단해서. 우리보다 나은 게 어디 있는데? 우리와 똑같잖아. 하나님은 왜 모세를 쓰시는 거지?” 이 말을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만 들어쓰시고 우리를 안 쓰시는 거야?”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도 이럽니다. 평소에는 열심히 추구하고 적극적이며 본분도 할 수 있지만 일단 어떤 사람이 인솔자로 선거되면 그는 마음에 평정을 잡지 못합니다. “왜 그를 선거하고 나를 선거하지 않죠?” 이 말을 하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순복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이 좀 닥치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본성이 발작하기 시작하는데 일이 없을 때는 발작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위가 없을 때는 여러 사람이 보기에 그 사람이 아주 좋아 보이고 열심히 추구하고 소질도 있어서 즉각 인솔자로 선거했는데, 인솔자가 되고 나면 오만하고 우쭐거리는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그는 자신이 괜찮고 누구보다 낫다고 여기면서 점점 더 오만해집니다. 어느 날, 자립능력을 갖춰 다수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면 그는 더 심해져서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배척하고 탄압하며 누가 불복하면 기어이 그 사람을 제압합니다. 마치 인솔자가 되면 반드시 모든 사람을 다 제압해야만 그의 본직 사역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라도 불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인솔자 사역을 잘 못했다고 여기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 같이 자기에게 순복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어떤 성품입니까? 적그리스도입니다! 왜 하나님 선민에게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에게 순복하라고 요구합니까? 제가 여러분께 그렇게 요구했습니까? 저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에 순복하고 사역 안배에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진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또한 원칙입니다. 저는 저에게 순복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하나님 집의 사역 안배에 순복하지 않고 다 자신의 생각대로 사역한다면 저는 당신을 교체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본직 사역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공평하고 합리적입니다. 당신이 사역 안배를 어기면 저는 당신을 교체할 권한이 있고, 당신이 사역 안배에 순복하면 저는 당신을 발탁해 배양할 권한도 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진리에 순복하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실제입니다. 당신이 매사에 모두 진리에 순복한다면 진실하게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당신이 많은 일에서 진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데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런 사람은 진실하게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진실하게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합니다.
【112-A-3】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얼마나 오래 경력하든 틀림없이 갈수록 이 말씀이 진리이고 실제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 없으며 분명히 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설령 당신이 큰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시련이 닥칠 때 넘어지고 실패하게 되는데 이건 틀림없습니다. 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었었는데, 큰 붉은 용에게 잡혀가 혹형을 당하니 단번에 유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진리가 있습니까? 진리가 없으니 혹형에 투항하고 굴복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혹형도 필요없습니다. 하나님 선민이 그를 인솔자 일꾼으로 선거했는데, 1~2년 만에 적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이건 드러난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집의 제물을 관리하면서 하나님의 제물을 훔쳐먹었는데 이건 유다보다 더 가증스럽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죽기만 하면 즉시 유황불 못에 던져져 불에 타서 아우성칠 것입니다. “아~ 제가 하나님 돈을 훔쳐서 유황불 못에 던져진 겁니다! 하나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다시는 훔치지 않겠습니다.” 유황불 못에서 아무리 뭐래도 소용없고 누구도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을 터득할 수 있겠죠?
어떤 사람은 “저는 지금 아무런 악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급해 하지 마세요. 아직 시련이 오지 않았으니까요. 시련이 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한바탕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받고 발작했습니다. 저는 인솔자 일꾼들을 많이 대처하는데, 인솔자 일꾼들에게 대처가 없으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대처가 없으면 사람은 점점 더 오만해지고 우쭐거립니다. 이것은 실제 정형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수리 대처는 좋은 일입니다. 만약 수리 대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복하고 불평하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여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고 잘못을 인정한 다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진리를 구하고 “다음엔 교훈으로 삼아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처리 해야겠어.”라고 다짐한다면 이런 사람은 바로 가장 좋은 사람이고 틀림없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진리에 순복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리에 순복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주로 수리 대처 앞에서 순복하는지, 진리를 구하는지, 진리를 받아들이는지를 봅니다. 이 몇 가지를 해낸다면 이런 사람은 진리 실제에 진입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주요 원인은 무엇입니까? 진리를 얻지 못해서입니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사탄 본성은 분명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사탄 본성은 무엇을 통해 해결됩니까? 주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해결됩니다. 안에 새로운 생명이 생기고 진리를 생명으로 하면 사람의 사탄 본성은 마음속에서 지위가 갈수록 약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본성과 성벽은 갈수록 무너지며 마지막에 진리에 의해 무너지고 대체됩니다. 진리가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의 생명이 되면 사람 안의 사탄 본성은 따라서 와해되고 제거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바로 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많이 실행할수록 사람의 사탄 본성은 더 와해되고 마지막에 진리를 얻어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면 사탄의 본성은 해결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에 속합니다. 진리를 사람 안에 넣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 안에 넣어서 사람의 사랑이 되고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은 성령 역사가 최종에 도달하는 효과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어서 생명으로 할 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통해 도달할 수 있습니까?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으면 사람 안의 사탄 본성은 해결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진실하게 사탄을 배반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예.) 사탄을 배반하는 것은 무엇을 통해 도달합니까?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도달합니다. 입술만 놀리면 소용없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저는 육체를 배반하고 사탄을 배반하기 원합니다.” “그럼 네가 어떻게 사탄을 배반할 것이냐?”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실행하겠습니다.” 이 말은 요점을 잘 지적했습니다. 육체를 배반하고 사탄을 배반하려면 진리를 실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본분을 함에 있에서 사람의 육체는 대충대충 해서 하나님을 기만하고 과정만 거치려 합니다. 그럼 육체 사탄을 배반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합니까? 더는 대충대충 해서 하나님을 기만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면 무엇을 실행해야 합니까? 원칙대로 일처리 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해야 합니다. 진리 원칙을 실행하기만 하면 육체를 배반하고 사탄을 배반하는 그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 저를 육체를 배반하고 사탄을 배반하기 원합니다.”라고 기도만 하고 어떻게 실행하는 것이 사탄을 배반하는 것인지 모르고 어떻게 실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인지 모른다면 사탄을 배반하는 그 효과에 도달했습니까? 여전히 빈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본분을 하면서 늘 대충대충 하고 속이며 원칙이 없고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하며 각자 제 할 일만 하는데, 이렇게 본분하면 순복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진리를 찾을 줄 압니까? (모릅니다.) 진리를 교제할 줄도 모릅니다. 형제자매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면 평소에 그의 대인 관계는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 같아도 중간에 선이 있습니다. “이 선만 넘어오면 가만 안 있을 거야.” 이 관계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다. 그들은 마음 소통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음은 고립적이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 상태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다.) “두 분은 나란히 앉아 있을 때 마음속 말 하세요?” 어떤 사람은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말하지 못합니다. “뭐라고 말하죠? 아는 사이지만 할 말이 없어요.”라고 대답합니다. 할 말이 없고 소통하지 못하고 말을 시작하면 저촉이 생겨 마지막에 서로 적대시하고 서로 범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아무런 악도 저지르지 않고 남을 괴롭히거나 다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논단하지도 정죄하지도 않지만 마음 상태가 비정상입니다. 만약 자신의 이익, 명예와 지위에 관련되면 즉시 견해 차이가 생깁니다. 그렇죠?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사람과의 관계도 비정상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 그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비정상이면 사람과의 관계도 틀림없이 비정상입니다. 만약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이면 사람과의 관계도 정상입니다.
무릇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가 없고 사람을 대함에 원칙이 없습니다. 언젠가 사람이 각 부류 사람을 대함에 원칙이 있고 절대적으로 원칙에 따라 일처리 하며 원칙을 굳게 지키면서 조금도 원칙에 엇나가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진리를 얻은 것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얻었을 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때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 그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되면 갖가지 일이 임할 때 생각이 있고 어떤 때는 관념이나 선입견이 생기고 견해가 생겨 진리 원칙에 어긋나는 것 같으면 “아, 이건 안 돼. 진리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해선 안 돼.”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육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옵니다. 누가 잘 아첨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면 그 사람을 각별히 좋아하지만 비교적 고지식하고 너무 직설적인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가지면서 논단하고 대처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죄짓는 거야. 진리가 없으니 이건 육체에 따라 일하는 거잖아? 육체가 좋아하는 것에 따르면 원칙이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 공평하지 못하고 사랑이 없어. 이러면 안 돼. 이런 일 안 할 거야.”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많은 일에서 자제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악에서 떠나는 것은 어떻게 도달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 안의 패괴, 관념, 육체가 나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의해 와해됩니다. “이렇게 하면 안 돼. 그러면 하나님을 상심케 하고 하나님께 죄짓는 거야. 또 진리에 어긋나고 원칙이 없는 거야.”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많은 악행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 안의 생각은 다 같습니다. 관념, 육체, 본성은 다 별반 차이가 없어서 비슷하지만 어떤 사람의 패괴나 부정적인 것들은 나오기만 하면 다른 한 가지에 의해 와해되는데, 이렇게 와해되면 악을 행하지 않고 매사마다 원칙이 있게 됩니다. 그것은 지킴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킴이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정확하게 말하면 바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해 얻은 생명입니다. 진리를 추구함에 효과가 좋고 뚜렷할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더 커지고 더 진실해집니다. “진리를 몇 년 추구했는데, 어떤 성과를 얻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과입니다! “진리를 몇 년 추구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진리를 추구한 성과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요, 성과가 없다니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성과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해 얻은 생명입니다. 알겠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20여 년 믿었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3~5년 믿었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예.) 어떤 사람들도 하나님을 여러 해 믿고 인성도 아주 좋고 착실한 사람이지만 진리가 없고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예.) 다 알았네요.
【112-A-4】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파악하고 사람 몸에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는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이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파악하고”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진리 원칙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몰라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어요?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요? 말세에 하나님이 왜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이런 것을 꿰뚫어 보지 못해 하나님께서 아무렇게나 하시는 줄로 여기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어디에서 표현됩니까? 바로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이렇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 최종에 어떤 효과를 이루려 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줄 알겠습니까? 알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줄 모르면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면 쉽게 가로막고 방해하고 대적하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쉽게 합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 몸에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는지”, 여기엔 진입할 방면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단계 사역을 하셔서 이루려는 효과는 한 방면이겠습니까? 적어도 몇 방면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사람 몸에서 어떤 효과를 이루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율법과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키도록 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최종 효과입니까? 최종 효과는 무엇입니까? 첫째, 사람은 그 율법과 계명에 규정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규정하셨는지, 왜 그것을 반포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 율법과 계명은 무엇을 대표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대표하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며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행정입니다. 만약 어긴다면 죄짓는 것이었고 죄의 삯은 사망이었습니다. 그럼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속죄해야 했습니다. 속죄제를 바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고 속죄제를 바치지 않으면 저주가 임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율법을 반포하셔서부터 사람이 죄를 범하면 징벌을 받아야 했는데,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고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은 사람이 더럽히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최종에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알고 하나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반포해 사람 몸에서 이루려는 효과를 완전히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율법을 반포하신 참된 의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율법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려 징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다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 방식을 바꾸어 친히 속죄제로 되어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았었는데, 지금은 또 무엇을 보았습니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진실한 사랑을 본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속죄제로 되신 것을 통해 나타난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하신 구속 사역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또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의 심판 형벌로 사람을 정결케 하셔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사역이 사람에게서 도달하는 효과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것인데, 종착점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만일 규례만 지키면서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공의롭고 위엄 있어 사람이 거스르기만 하면 죽는 길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영이 안 통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뜻은 구원이고 사랑입니다. 이는 인류를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것이지 하나님의 성품만 나타내어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도달하는 효과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첫째,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장악하고 둘째, 사람에게서 어떤 효과를 이루는지 셋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 몇 가지 방면에 대해 끝까지 모르고 깨닫지 못하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까?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 경력해도 하나님이 하신 사역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영이 통하지 않고 또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영이 통하지 않는 것은 소질이 없어서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이 영이 통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는 진리 방면에서 진보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듣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아무리 알기 쉽게 말씀하셨어도 상고해 보지 않고 자세히 보지도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구원받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도태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보았겠죠?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10~20년 믿었는데 아무런 진리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위험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잘 상고해 보지도 않습니다. 사실 날마다 10분 정도 시간 내서 잘 상고해도 수확이 좀 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면 수확이 매우 큽니다. 그럼 왜 하나님을 10~20년 믿어도 진리를 모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1분간의 공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매일 말씀을 한 마디씩 상고하여 빛비춤을 얻을 수 있다면 1년이면 많은 진리를 깨닫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상고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진리를 좀 교제해 보세요.” “교제할 게 없는데요. 어떻게 교제할지 모르겠어요.” 한 마디도 짜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평소에 한담할 때는 말을 많이 하는데, 본격적으로 진리를 교제하면 할 말이 없어. 도리를 말하면 낯이나 깎이고 여러 사람이 웃을 것이고, 진리 실제를 말하자니 또 없어 아예 말 말자.’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빈궁하고 가련하고 눈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교제하라면 한 마디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건 도태될 대상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이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최종에 도달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입니다.
“지금 모든 사람에게 부족한 점은 바로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모든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데, 이것은 모든 종교계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부족한 점이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어떤 관계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사람은 바로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을 모두 발표하고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한 사람은 바로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알겠죠? 하나님을 알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3단계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3단계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취지를 다 알고 하나님의 3단계 역사가 사람에게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는지를 다 알고 하나님의 3단계 역사가 사람에 대한 뜻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 알면 이런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112-A-5】
“언젠가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보고 하나님의 소시소유(所是所有)를 인식하고 그의 풍부함, 지혜로움, 기묘함 그리고 사람에게 행한 그의 모든 사역까지도 보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알고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정말로 분명히 알게 된다면 그때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인물 중에 누가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욥입니다.) 욥은 어떻게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까? 사실,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 마음속으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렇죠? 예를 들면 먼 곳에 있는 가족을 오랫동안 못 만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르고 있는데, 어느 날 그 사람에게서 보내온 편지를 보게 된다면 ‘아, 알았어. 이 사람은 아직 살아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몇 달 전에 쓴 거면 그 사람이 지금도 살아 있겠습니까? 편지만 보고는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들어보니 그의 목소리였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그를 봤어요.”라고 말하면 됩니까? (됩니다.) 왜 됩니까? “비록 전화만 해서 얼굴은 못 봤지만 제가 느낀 건 본 것과 같아서 봤다고 해도 돼요. 건강하게 잘 계셔요. 그의 상황도 다 알게 됐구요.” 그럼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의 경지에 도달했다면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보았어요. 마음이 환해졌어요. 하나님과 대면했어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전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다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시고 너무나 위대하시고 너무나 사랑스러우시고 너무나 존귀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려고 하면 양심에 찔리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려고 하면 마음에 가책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려고 하면 마음이 고통스럽고 일단 하나님께 죄짓는 일을 좀 하면 자신을 증오하고 자신을 저주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서 도달하는 효과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성실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리를 실행하라고 하면 마치 수치를 당하고 손해 보고 창피스러운 것 같지만 어느 날엔가 하나님을 알고 나면 그때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과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오히려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말라고 하면 더 어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겠습니까? 대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놓고 말하면 무엇이 가장 고통스럽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믿지 말라고 하면 차라리 죽으라고 하는 게 나아.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안 믿으면 안 돼. 나보고 하나님을 떠나라고 하면 절대 안 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수록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까?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하면 어려워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면 어려워하고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얻기 위해 고생하라고 하면 어려워합니다! 이런 것을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8~10년 경력하고 나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좀 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때 만약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하면 어렵겠습니까? 어떤 때는 해내지 못하고 어떤 때는 할 수 있는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은 처음에 하나님을 믿었을 때 성실한 사람이 되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 왜 그렇게 어려워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면 왜 그렇게 어려워합니까? 지금은 왜 어려워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바로 진리를 좀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그나마 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해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진리를 깨달으면 변할 수 있습니다. 일을 판단하는 관점도 바뀌고 진리를 실행함에 어려운 점도 적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도 적어지고 거역도 적어집니다. 그 외에 가장 주요한 것은 적극적인 면에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쉽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도달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렵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럼 처음에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생소하고 조금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낯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면 못합니다. 그 사람을 몰라서요.”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대면하는 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모두 호감이 있고 하나님은 진리이고 공의라고 느끼며 찬양을 받을 만하시고 사람의 사랑을 받을 만하시다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엔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어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면 그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진실되고 하나님을 위해 어떤 고생을 해도 다 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셔도 하나님을 찬미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닥치겠어요?”라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빼앗아 가신 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러우시죠. 빼앗아 가셔도 사랑스러우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도 사랑스러우시므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할 겁니다.” 하나님을 이 정도로 믿으면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성과가 있고 간증을 굳게 선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시련이 없다면 무엇으로 하나님을 진실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증명하겠습니까? 사람도 불복하고 사탄도 불복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욥에게 이러한 시련이 임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고 사탄은 탄복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주 정당하게 욥에게 복을 베풀어 주셨는데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심에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시련을 겪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데 무슨 시련이 필요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사탄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분명히 가짜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수록 사탄은 더욱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시련이 임해도 다 됩니다. 저의 진심으로 인증하겠습니다. 시련이 없다면 제 자신도 분명히 모릅니다.”라고 말한다면 사탄이 들어보고 “야, 이 말에는 하나님에 대해 순복과 경외가 있구나. 이건 진짜야.”라고 하면서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임하는 건 도대체 좋습니까 아니면 나쁩니까? (좋습니다.) 너무나 의의 있습니다. 만약 시련을 겪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사탄이 부끄러워하지 않았어. 내가 정말 그 분량이 될까? 시련을 겪으면 좋겠어.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증명해 보게.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복 받을 자격이 없어요. 시련에 임해 증명해 봐야 합니다. 이 증거를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 자신도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지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시련을 겪어서 실증해 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죽음의 시련이 임할 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지 진실한 내막을 알고 그 답을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지만 제 자신은 몰라요. 시련이 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편안해요!’ 만약 이렇게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마음은 진실한 것이죠? 이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이 정도에 이르면 사탄을 수치당하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참답게 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욥의 그 시련에 대해 좀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데 사탄이 참소하든 말든 상관할 것 없어요. 그것이 참소해도 소용 있겠어요? 그것이 참소한들 어쩔 건데요, 안 들으면 그만이잖아요?” 이 말은 성립됩니까? 하나님이 지금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바로 사탄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 배경을 잊지 마세요. 하나님은 일을 하심에 원칙이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시련을 겪어서 사탄을 수치당하게 해야 합니다. 이 최저선은 누구도 넘어서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시련을 겪으면 좋지 않습니까? 시련을 겪으면 좋습니다. 시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것이 한 단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떤 시련이든 다 겪고 나면 정말 좋습니다! 마음이 달콤하고 누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어도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거나 세상의 저버림을 왜 겪지 못했을까요? 이런 것을 겪지 않았지만 다 겪고 간증을 굳게 서면 믿음이 얼마나 많이 생기겠어요!” 겪은 적이 없으면 마음에 부족함이 되겠죠? 시련을 얼마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 믿음은 마치 안개 속에서 꽃 구경하는 것 같아 그리 진실하지 않습니다. 마치 도리의 성분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영이 통하지 않아 이해하지 못합니다.
【112-A-6】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보고 하나님의 소시소유(所是所有)를 인식하고 그의 풍부함, 지혜로움, 기묘함 그리고 사람에게 행한 그의 모든 사역까지도 보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는 것이다.” 경력한 것이 아주 많고 풍부해지면 거의 하나님과 대면하는 데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진실하게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마치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한 말과 같습니다. “이전에는 귀로 듣기만 했습니다. 반평생 하나님을 믿어도 안개 속에서 꽃을 보는 듯 진실하게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했는데 오늘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나니 단번에 진실하게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과 대면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진실하시고 실제적이시며 너무나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십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은 이러한 효과를 이루어 욥이50여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성과가 배로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경력입니다. 이 경지에까지 경력하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을 집으로 영접해 오고 하나님과 동심합의하고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주가 되시고 왕이 되시고 하나님이 전부이시며 매사에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한평생 하나님을 믿으면서 비록 고생도 적지 않게 했고 시련도 적지 않게 겪었지만 끝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말하고 자신의 진실한 경력을 말하고 생명 진입을 말하면 할 말이 끝이 없고 풍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음에 성과가 있는 것이고 진실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진실하게 증거할 수 있으면 진리 실제를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교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인솔자 일꾼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서 성과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고 큰 인솔자가 될 수 있으며 독자적으로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고 천년 하나님 나라가 오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누리는 복은 무엇입니까? 늘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으며 성령께서 하실 말씀만 있으면 그에게 전달해 먼저 얻게 하시며 그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을 믿음에 성과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복은 엄청납니다! 잘 추구하세요. 이건 가치 있고 깊은 의의가 있습니다! 대학 가고 박사가 되는 것보다 1억배나 더 낫습니다. 그런 공부는 할수록 더 깊이 중독되어 폐인이 되고 다 공부해도 죽어야 합니다. 소용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지식 나무와 선악과나무의 과일에 속합니다. 많이 먹을수록 더 빨리 죽고 많이 먹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생명 나무의 과일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여서 사람이 많이 먹고 마실수록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수록 더욱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성과가 있으면 좋죠? (좋습니다.) 하나님을 집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이 왕권 잡으시게 하고 하나님과 대면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최대의 성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 얻기를 원합니까? (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추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공을 들여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한 편씩 읽고 나서 다시 한 단락씩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하루는 수확이 적지 않습니다. 하루에 몇백 위안씩 돈 버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몇백 위안을 벌고 “부자 됐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부자가 된 것이 전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을 한 편 읽고 한 단락 상고하여 한 가지 진리에 대해 빛비춤이 있다면 그건 정말 부자가 된 것입니다. 진리 부자가 된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 누구도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어느 날 진리를 정말 얻었다면 그 성취감은 너무나 크고 그 의의는 너무나 깊습니다. 그때면 이 말을 인정할 것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얻으면 돈을 얻는 것보다 몇백 배, 몇천 배나 낫습니다! 언젠가 큰 재난이 내릴 때 그 부자들은 꼴깍 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만 당신은 한 푼 없어도 진리를 얻은 것으로 말미암아 국도에 들어가게 되고 살아남게 됩니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 내가 정말 천국에 들어온 거야? 살아남게 된 거야? 이방인들은 다 사라졌네. 큰 재난이 닥칠 때 천사가 날 구원하는 걸 봤어. 하나님을 본 거야! 아, 너무 소중해. 진리를 추구한 게 정말 좋구나. 다행히 진리를 추구해 생명을 얻어서 죽지 않게 됐어! 세상 돈은 정말 별 의미가 없어. 아무리 많아도 죽어야 하니. 진리를 얻으면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 있으니 이 가치가 어쩌면 이렇게 클까?’ 재난이 닥칠 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면 그때는 느낄 수 있고 생각나서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이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은 게 가치 있어! 헛 믿지 않고 잘 믿었어. 이건 하나님의 은총이야!” 그러므로 하나님을 마지막까지 믿어서 정말 진리를 얻는다면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이 말을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다”,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친절합니다. 하나님을 집에 모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럼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도 성과가 없는 것은 어떤 정형입니까? 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막연한 하나님, 하늘 위의 하나님이고 여태껏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전혀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인식이 조금도 없으며 도리만 조금 알고 텅 빈 신학 이론만 말할 뿐입니다. 이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형편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늘 위의 하나님을 믿고 땅의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만약 땅의 하나님을 믿고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분이 하나님이고 성육신이심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뿐입니다. 그 다음 또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면 마지막에 진실하게 그분을 따를 수 있고 진실하게 그분의 역사를 경력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진실한 믿음이 좀 있게 되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평범한 하나님 자민입니다. 하나님 자민의 경력이 이 정도에 도달할 수 있으면 괜찮은 것입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을 알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고 이기는 자가 된다면 바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아직도 하늘에 있다면 끝입니다. 구원받을 희망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땅 위에 계시고 아주 실제적인 성육신 하나님이라면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때에 사람은 실제의 하나님의 인성이 정상이고 일반적인 것을 보고 “그래도 하늘의 하나님이 진짜야.”라고 한다면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얻었습니까? (못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보고는 “아, 하나님은 실제적이십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저는 꼭 따를 겁니다.”라고 말하다가 하나님의 인성이 너무 정상인 것을 보고는 또 의심하고 하나님이 또 진리를 발표하시는 것을 보고는 또 확신합니다. 이렇게 톱질하듯 마음이 왔다갔다 하다 보니 여러 해 돼도 진보가 없고 마지막에 시련이 오니 간증을 굳게 서지 못했고 하나님을 믿다가 잃어버리고 다시 하늘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늘의 하나님이 진짜이고 땅의 하나님은 진짜일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도태된 자들과 온갖 악행을 저질러 출교된 자들은 모두 이런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잃어버리고 다시 하늘의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마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이런 말씀들은 진리가 아닙니까?” “몰라요. 모르겠어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온전케 된 이긴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실패한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도태된 적그리스도, 악인, 각종 악령, 그리고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멍청이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 진리도 조금 깨닫고 진리 실제에 조금 진입하고 하나님을 확신도 하고 끝까지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은 국도에 들어가는 하나님 자민들입니다. 이건 몇 가지 부류입니까? 3가지 부류이죠? 한 부류는 하나님을 믿어서 실패한 자, 하나님을 믿다가 잃어버린 자, 도태된 자들과 적그리스도, 악인, 악령 그리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파들입니다. 한 부류는 진리도 추구하고 진보하려고 노력도 하며 마지막에 진리를 조금 깨닫고 충심으로 본분할 수 있고 끝까지 따를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좀 있는 사람들인데 바로 하나님 자민들입니다. 하나님 자민은 재난 속에서 온전케 되므로 큰 재난을 겪어야 합니다. 또 한 부류는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이기는 자입니다.
【112-A-7】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은 아주 진실하지만 진리가 없고 말할 때 희희덕거리며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고 경건함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조금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진리에 대해 호감이 조금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건 맞아. 이제 보니 진리를 추구하면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어. 그럼 더 노력할 거야.’ 이런 마음만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굳게 설 수 있는지는 재난 속에서 봐야 합니다.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고 많은 공과를 배워야 하며 마지막에 굳게 설 수 있으면 바로 하나님 자민입니다. 만약 재난 속에서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도태됩니다. 하나님 자민은 바로 재난 속에 남겨 연단하고 재난 속에서 드러냅니다. 큰 고통을 받고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는 바로 재난 전에 온전케 되는 사람입니다. 같지 않습니다. 재난 전에 온전케 된 한 무리 사람들은 큰 재난을 겪지 않고 큰 재난 속에서 아무 고통도 받지 않습니다. 지금 보다시피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렇게 실제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리를 좀 알고 글귀 이론을 좀 말할 줄 알면 국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데, 이런 생각은 성립됩니까?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넘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사람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품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제가 말하는 것이 딱딱하고 직설적이면 듣고는 괴로워하고 마음에 찔려서 마음으로 저촉하고 순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말할 때 얼굴에 웃음을 띠고 부드러운 태도로 어휘사용에 신경 써서 얌전하고 완곡하게 연약을 헤아리며 말해야 그가 듣고는 기뻐합니다. “이래야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지.”라고 하는데,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패괴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까? 직설적으로 조금만 딱딱하게 말해도 안 됩니다. 그러면 시련이 올 때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당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관념이 있는데 왜 늘 당신의 관념으로 가늠합니까? 이건 거역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말은 딱딱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필요하고 효과가 좋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쉽게 귓전으로 흘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마음에 찔리고 중요한 일로 여기고 해결합니다. ‘효과를 위해서이지 결코 악의가 없어. 우리에게 되도록 빨리 잘못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거야.’ 이렇게 이해하면 어떻습니까? (됩니다.) 이것이 이해입니다.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국도 훈련은 바로 이렇습니다. 이것을 훈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훈련하지 않으면 됩니까? 이렇게 훈련하지 않으면 실제적입니까?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이든 다 사람의 관념에 맞아야 한다고 늘 요구하지 마세요. 그렇게 요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의 관념 상상대로 역사하여 시련을 다 없앤다면 사람이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성품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시련이 없으면 안 되고 수리 대처가 없어도 안 되며 엄한 말씀이 없어도 안 됩니다. 이건 다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예비한 것으로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안배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한 걸음씩, 매 한 가지 일에서 진리를 찾아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 도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진리를 추구할 거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순복하고 정확하게 대하며 소극적이지도 연약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을 거야.’ 이걸 쉽게 해낼 수 있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해내기 쉽습니다. 한동안이면 됩니다.
“하나님이 만유를 포함하고 매우 풍부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만유를 포함하는가? 어떻게 풍부한가? 만약 네가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만유를 포함한다”를 어떻게 인식합니까?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이 만유를 포함하고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유는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고 다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으며 다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이것은 우선 먼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 선민만 관할하십니다. 성육신하셨기 때문에 세계를 관할하실 수 없고 큰 붉은 용이랑 각국 대통령이랑 국가랑 사회 발전이랑 이런 것은 관할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다.) 천지만물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아닙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재하시지 않습니까? 외계인은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도대체 외계인을 관할하시는 것 맞아요?” 하나님께서 언급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관할하시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런 외행성들을 주재하시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구만 주재하실 겁니다. 지구의 주인이시고 지구의 창조자이십니다.” 달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아닙니까? 태양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아닙니까? 온 우주는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이 점에만 근거해도 하나님은 만유를 포함하시는 것 맞죠? 하나님의 성품은 만유를 포함하는 것 맞죠? 하나님의 생명은 만유를 포함하는 것 맞죠? 하나님의 전능은 만유를 포함하는 것 맞죠? 모두 만유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만 주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도 다 주재하십니다. ≪계시록≫의 예언과 율법시대 선지자들의 예언에서도 하나님이 온 우주 세계를 주재하신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예언이 어떻게 실증합니까? 4번의 핏빛 달을 예언했습니다. “달이 핏빛 같이 변하리라”고 구약 선지자서에 있습니다. 3천년 전에 예언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과학자들이 실증한 것입니다. “아, 예언이 이루어졌어요.” 이것은 온 천체, 만물, 별들이 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가지 운행 법칙을 안배하여 조금도 차이 없이 어느 때에 4번의 핏빛 달이 나타나는지, 매번 나타날 때 이스라엘 나라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 세계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 다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주재 안배를 통해 이룹니다. 즉 하나님이 주재하셔서 이렇게 안배해 놓고 규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주 행성이 어느 때 어느 지경에 이를지,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떤 재난이 발생할지 다 규정해 놓으셨습니다. 과학자들도 투철히 연구하지 못하고 아는 것 또한 유한합니다! 마치 사람의 일생과 같습니다. 당신이 모태에 있기도 전에 이미 말세에 강생할 것을 예정해 놓으셨고 한평생 어떤 일을 겪을지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어느 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일으키시는지, 어느 때 하나님 선민이 강생하는지, 어느 때 하나님 선민이 온전케 되는지, 어느 때 이방인들이 어떻게 죽는지, 어떤 재난에 어떤 사람들을 데려가는지 하나님께서 다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자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후의 영원한 것까지 다 규정해 놓으셨습니다. 마치 사람이 차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다 만들고 나서 그 차가 몇 년 지나면 어떤 고장이 생기고 몇 년 뒤에 어떤 고장이 빈번히 생기며 이런 유형의 차는 기껏해야 몇 년 사용할 수 있고 몇 킬로를 달리고 나면 기본상 폐기된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수명은 이 기계의 원리에 따라 정한 것입니다.
【112-A-8】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들이 다 이루어지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주재, 안배, 명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장악하고 계시는 것 맞죠? 하나님께서 만유를 포함하시는 것 맞죠? (맞습니다.) 만유를 포함하는 것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풍부함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이제 길이 생겼습니까? (생겼습니다.) 어떤 어리석은 아낙네들과 영적인 척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세계만 관할하셔도 다 관할하실 수 없이 바쁘실 겁니다. 만약 세계 각국 사람들이 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하루에도 몇십 만 명이 기도하게 될 텐데 너무 많아서 안 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기도해서 하나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됩니다. 큰일이나 기도하면 모를까. 우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지 하나님께 부담을 드리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까? 그의 관념과 상상 속에는 하나님께도 한계가 있고 만유를 포함하지 않고 전능하지 않아서 일부분만 포함한다고 여깁니다. 한번은 어떤 크리스천이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큰 핍박을 받아 큰 붉은 용에게 잡히고 인솔자 일꾼들은 몸을 숨길 곳도 피할 곳도 없어요. 보아하니 주님의 능력도 한계가 있어요. 큰 붉은 용이 사람을 잡으니 주님도 관할하시지 못하네요.” 이 말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까? 그는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안배해 놓으셨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목자들을 치시면 양떼들이 분산되고, 큰 붉은 용이 어느 때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지막에 어떻게 멸망되는지 다 하나님께서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큰 붉은 용이 대적하고 싶을 때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움직이시는 것이므로 그것이 효력하기 싫어해도 안 됩니다. 이런 일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포함하시고 풍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사람의 소질이 너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닿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욥의 그 시련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말씀하시자 욥에게 그 일이 임한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안 맞아요. 사탄에게 말씀했지만 영계의 사탄이 와서 욥의 재산을 빼앗아 간 걸 못 봤고 악령과 사탄 수하의 군병들도 못 봤습니다. 사람이 본 건 강도들과 야만스러운 부족들이 욥의 모든 짐승을 빼앗아 간 겁니다.” 이런 터득은 어떻습니까? (영이 통하지 않습니다.) 영이 통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합니까? 사탄이 어떻게 했기에 그 사람들이 온 것입니까? 사탄과 악령도 일을 저지름에 많은 방식이 있고 직접 사람을 지배할 수 있으므로 사람에게 한 가지 건의를 주어 받아들이게 하여 한 가지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맞아, 이렇게 하면 돼.” 그러므로 어떤 때 사람은 흥분되면 마귀가 되고 마귀 일을 저지릅니다. 악령이 사람들을 지배해서 어떤 나쁜 짓을 시키려 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으므로 쉽게 도달합니다.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단 한 가지 방식만으로 꼭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의 일은 우리가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 일은 도대체 사람이 한 것입니까 아니면 사탄이 한 것입니까? (사탄이 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사람이 한 것이지만 배후에서는 사탄이 움직이고 지배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셔서 사탄이 사람을 지배하고 움직여 그대로 했기 때문에 욥의 시련이 형성된 것입니다. 영이 통하는 사람은 다 이렇게 이해합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사탄이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에서 보면 사탄이 한 게 아니라 다 사람이 했어. 이건 아무렇게나 쓴 게 아닐까?’ 웬 영문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영이 통하지 않는 것이란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압니까? 어떤 사람들이 영이 통하지 않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까?
어떤 인솔자 일꾼들은 보기에는 아주 착하지만 실제 사역을 할 수 없고 전부 방해하는 말만 하고 엇나가는 일만 하는 바람에 결국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교체되고 나서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은 좋고 사람은 나쁩니다.” ‘사람’은 누구를 두고 말합니까?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나쁘다고 하는데 매우 노골적으로 사람이 나쁘다고 합니다. 제가 그를 교체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저를 쓰시고 인도하시고 깨우쳐 주시고 지배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사역을 하든 그는 “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말은 영이 통하는 말입니까? (영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분이 믿는 그 하나님은 하나의 평범한 사람이고 확실히 사람이고 이름도 성도 있어 사람들이 다 알아요. 그럼 여러분은 사람을 믿는 게 아닌가요? 하나님을 믿는 거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까? 큰 붉은 용이 이런 말을 하고 교계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외에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이방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가 대처하면 “이건 사람에게서 나온 겁니다.”라고 말하고 제가 대처하지 않고 진리를 교통하면 “아, 이건 성령에게서 온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사람을 발탁하면 “아, 형제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우린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좋습니다.” 이건 영이 통합니까? 보기엔 아주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교체했더니 “사람이 한 겁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건 또 영이 통합니까?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 원래는 영이 통했는데 지금은 왜 통하지 않습니까? 그에게 유리한 일과 좋은 일에서는 영이 통하고 그에게 불리한 일과 안 좋은 일에서는 영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축복을 주고 그를 발탁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순복하고 그를 수리 대처하고 교체하고 도태시키면 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건 도대체 영이 통하는 겁니까, 통하지 않는 겁니까? 이랬다저랬다 하고 통했다 안 통했다 하는데 이런 사람은 정신이 그리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얼치기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배양할 가치가 있습니까? 얼치기는 배양할 가치가 없습니다. 배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만유를 포함하고 매우 풍부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만유를 포함하는가? 어떻게 풍부한가?”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해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깨달을 수 있습니까? 죽었다 깨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에게 일을 하라고 하면 밥 세 그릇 먹고 일할 수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라고 하면 밥 다섯 그릇 먹어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건 영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네가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에 닿지 못합니다. 사람의 소질은 도대체 어떻습니까? 무엇을 소질이 있고 소질이 없다고 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으라고 하면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하여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도 서로 모순되는 것 같고 이렇게 말씀했다가 저렇게 말씀한 것 같아 아무리 읽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을 영이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까막눈이라 백지에 쓴 검은 글씨만 보이고 뭐라고 썼는지는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헛되이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