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10집(b)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10-B-1】

나는 너희들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너희의 행위와 모든 생활이 결코 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너희에게 나의 뜻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너희의 분별력이 매우 부족하고 감상 능력 또한 너무 부족하여 너희는 나의 성품과 실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급히 너희에게 알려 줘야 할 것은 나의 성품과 나의 실질이다. 이전에 네가 얼마나 알고 있었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알려고 했든지 상관없이 그래도 나는 너희에게 상세히 알려 주겠다. 이 문제를 언급하면 너희에게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 내포된 뜻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 익숙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렴풋이 조금은 알지만 그것마저도 수박 겉 핥기 식이다. 너희들이 진리를 더 잘 실행하기 위해, 즉 나의 말을 더 잘 실행하기 위해 나는 너희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믿음은 여전히 아주 막연하고 가식적이며 게다가 종교적인 색채로 가득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고, 네가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리가 없으며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건성으로 대하고 얼버무리며 더욱이 만회할 수 없는 모독만 할 뿐이다. 물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몰두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보다시피 너희는 내가 반포한 행정에 대해서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아주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거스려 진노를 사는 것과 같다. 그러면 네가 마지막에 맺는 열매는 바로 행정을 범하는 것이다. 지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도 알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동시에 행정 자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행정의 많은 내용이 모두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결코 행정 가운데 다 발표되지는 않았으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더한층 알아 갈 필요가 있다.

내가 여기서 너희에게 하는 말은 결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너희가 신중히 대해야 하고 더욱이 나의 말을 많이 상고해야 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뜻은 너희가 내가 한 말에 대해 공을 들인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성품을 언급하면 너희는 거듭 심사숙고하려 하지 않고, 이 문제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믿음이 다 허울만 그럴듯한 논법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너희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에 대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참으로 너희에 대한 나의 애쓰는 마음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 눈에 하나님이 없고 생활 가운데 진리가 없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을 어찌 성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하늘의 이치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너희가 이런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적은 만큼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추상적이고 또한 각 사람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사람의 성격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도 자신의 희로애락이 있는데 이런 희로애락은 사람의 희로애락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자신만의 소시소유(所是所有)가 있다. 하나님의 모든 발표와 유로(流露)는 그 자신의 실질과 신분을 대표한다. 이 소시소유와 실질과 신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성품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위로 그리고 인류에 대한 증오도 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에는 명랑함, 활발함 혹은 마비되어 무감각함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만물의 생령의 주재자가 구비한 것이고 조물주가 구비한 것이다. 그의 성품은 존귀와 권세를 대표하고 고상함과 위대함을 대표하며 더욱이 지고지상함을 대표한다. 그의 성품은 권병(역주: 권세)의 상징이고 모든 정의와 모든 미(美)와 선(善)의 상징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과 흑암이 압도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상징이고 그 어떤 피조물도 범할 수 없는(또한 범함을 용납치 않는) 상징이다. 그의 성품은 최고 권력의 상징이므로 그 어떤 한 사람이나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그의 사역과 그의 성품을 방해할 수 없고 더욱이 방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은 단지 동물보다 약간 높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 자체는 권병과 자주(自主)가 없고 자아를 초월하는 능력이 없으며, 오직 나약하게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지배를 받는 실질만 있다. 하나님의 ‘희(喜)’는 정의와 광명이 존재하고 탄생함으로 인한 것이고 흑암과 사악이 훼멸됨으로 인한 것이다. 그의 ‘희’는 그가 인류를 위해 광명을 가져왔고 인류에게 아름다운 삶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의 ‘희’는 정의로운 것이며 모든 긍정적 사물이 존재함의 상징이고 더욱이 길함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노(怒)’는 비정의적인 사물의 존재와 방해가 그의 인류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사악과 흑암이 존재하고 진리를 몰아내는 일이 존재하고 더욱이 아름답고 선한 사물에 저촉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는 모든 부정적 사물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상징이고 더욱이 그가 본래 거룩하다는 상징이다. 그의 ‘애(哀)’는 그가 기대했던 인류가 흑암 가운데 떨어졌고 사람에게 행한 그의 사역이 결코 그의 뜻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가 사랑하는 인류가 결코 다는 광명 속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무고한 인류를 위하여 슬퍼하고 근심하며,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하지만 우매한 사람을 위하여 슬퍼하고 근심하며, 선량하지만 주견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슬퍼하고 근심한다. 그의 ‘애(哀)’는 그의 선량함의 상징이고 긍휼함의 상징이고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인자함의 상징이다. 그의 ‘낙(樂)’은 물론 원수를 패배시키고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얻은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을 몰아내고 멸한 것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며 또한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생활을 얻음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낙’은 사람의 기쁨과 같은 것이 아니라 기쁨보다 더 높은 아름다운 열매를 얻은 기분이다. 그의 ‘낙’은 인류가 이때부터 고난을 받지 않는 상징이고 인류가 광명의 세계로 진입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인류의 희로애락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의나 광명 그리고 아름다운 사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늘의 은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하여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하여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무사(無私)하며, 하나님은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과 선의 기원이며 사람은 모든 추함과 사악함을 계승하고 표현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와 아름다운 실질을 영원히 바꿀 리 없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정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다.

내가 한 말마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 속에 있으니 너희가 한 번 자세히 고찰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 너희는 틀림없이 큰 수확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은 헤아리기 매우 어렵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너희가 대략 알았으리라 믿는다!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지 않는 일을 많이 하여 나에게 보여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네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일을 처리할 때 그의 말씀에 따라 하고, 매사에 그의 뜻을 구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 무례하고 불경스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을 너의 뒷전에 두고 앞날의 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 네가 평생 동안 하나님을 모독하고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또 평생 동안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한 일을 착실하게 해내고 또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복(역주: 순종)한다면 너는 행정을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나는 왜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여겨지지 않을까?”, “나는 이런 말이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행한 것이 다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인성은 나보다 별로 높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다” 등등 이와 같이 논단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나는 너에게 너의 죄를 많이 자백하고 회개하라고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사함받을 기회를 영원히 얻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네가 득죄한 것은 한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한 사람을 논단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네가 그의 육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곧 그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네가 행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범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영이 하는 모든 것은 그의 육신의 사역을 수호하고 육신의 사역을 더 잘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네가 이 한 가지를 소홀히 한다면 나는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네가 하나님의 노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상응한 징벌로써 너를 질책할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은 결코 아이들 장난이 아니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부지중에 너는 하나님의 실질을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네 자신이 더 높고 더 아름다운 경지를 향해 매진하게 될 것이다. 최종에 너는 자기의 추악한 영혼으로 인해 수치를 느끼고 더욱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그때면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너의 행위는 점점 적어지고 너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점점 가까워지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애모(愛慕)의 마음도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감의 상징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들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 너희가 모두 자기의 운명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데 어느 누구에게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려는 마음이 있겠는가? 만약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너희는 자신도 모르게 행정을 범하는 일을 저지를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희가 행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려고 기초를 닦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나의 사역과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가 늘 행정을 범한다면 너희 중에 누가 징벌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내가 한 사역이 모두 헛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는 것 외에 자신의 발걸음도 신중히 하는 데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에 대한 나의 더 높은 요구이니 너희가 모두 신중히 고려하고 진지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어느 날 너희 행위가 나를 노기충천하게 한다면 그 결과는 오직 너희 자신이 고려해 보아야 한다. 너희를 대신해 벌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110-B-2】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한 마디는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줄 아는지는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는 것’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아는 것’은 하나의 경로이고 하나의 과정이며 이르는 효과는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경력을 통해서 인식하고, 경력을 많이 하면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좀 수동적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아는 것’은 뜻이 아주 뚜렷합니다. 바로 사람이 주동적으로 하는 것이지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고 한다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는 것’은 저희가 자주 말하는 영적 술어 ‘찾고 구하다’와 관계가 있지 않나요? 아는 것은 찾고 구하는 것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디가 중요할까요? 이것은 우리가 상고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중요하다는 것만 알고 어디가 중요한지를 모른다면 ‘매우 중요하다’가 텅 빈 것이 되겠지요?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믿으면서 끝까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없다면 늘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성품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고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악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실 것인데 반드시 이런 결과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알지 못한다면 가볍게는 징벌 받게 되고 중하게는 도태됩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하면서 건성으로 대충 때웁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만약 이렇게 때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회개마저 없으면 효력조차도 불합격입니다. 만약 이 사람의 본분까지 취소된다면 도태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사람은 무엇 때문에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어서 도태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악인을 위해 변호하고 악인을 위해 나서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전혀 수호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최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분명히 도태됩니다. 이런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고, 임의로 행동하며, 지나고 나서 반성하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도태될 대상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음에도 이방인들처럼 간사한 말만 하고 일을 함에 있어서 잔머리를 굴리면서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며 합격되게 본분하는 데에 전혀 이르지 못한다면 최종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도태됩니다.) 이런 사람은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생명 성품이 전혀 변화가 없어 최종에는 도태되는 사람입니다. 은혜시대에 예수님께서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천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시대에 벌써 이 한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행정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최종에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 의해 악인으로 정해져 도태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여 생기는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찾지 않아 시종일관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늘 건성으로 대충 때우면서 그 흐름을 따라갑니다. 이런 사람이 하는 본분은 불합격입니다. 이런 사람은 원칙이 없기 때문에 생명에 진보가 없고 지금껏 성품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최종에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만약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도태되고 버려집니다. 그나마 조금 괜찮은 사람은 충성된 효력자로 살아남을 순 있겠지요. 그 정도만 되어도 다행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이 없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고 생명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국도의 자민이라 칭함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볼까요? 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를 봐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게다가 하나님과 동심합의(同心合意)할 수 있고 매사에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자민입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이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욥을 예로 들면서 “만약 너희들이 욥과 같은 믿음을 구비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기준과 하나님의 자민이 되는 기준을 이미 발표하셨습니다. 적어도 욥의 믿음이 갖춰져야 합니다. 욥의 믿음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면 욥의 믿음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자신이 국도로 들어갈 수 있는지, 국도 자민의 기준에 맞는지를 알고 싶다면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요?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인지를 봐야 합니다. 만약 본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악을 멀리하겠고 욥과 같은 믿음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익만 챙길 것이고,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간사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에 속하는 사람이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보면 어떤 사람들은 뺀질거리면서 엄청 간사하고, 잔머리만 굴리면서 자신을 위해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80년 믿어도 소용없고 역시 도태될 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알아내기 쉽지 않습니까? 너무 쉽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는지, 말하는 목적과 마음가짐이 누구를 위해 하는지, 어느 편에 서서 말하는지를 보면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 자신의 이익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말을 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은 수호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느 한 사람의 체면을 위하고 어느 한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말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지 않고 교회의 이익이나 교회의 사역을 수호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조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사람이 누굴 위해 말하고 누굴 위해 사역하고 일을 하는지가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예를 들면 인솔자가 있다고 합시다. 누가 “그 인솔자 어떤가요? 공정하게 말씀해 보세요.”라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인솔자니까 속으로 ‘인솔자를 어떻게 건드려? 난 못해.’라고 생각하면서 그 인솔자가 이렇게 저렇게 좋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객관적이고 공정합니까? 성실한 사람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분명히 인솔자가 별로인데도 꼭 덧붙이고 과장해서 좋은 쪽으로 말합니다. 이런 입은 심하게 삐뚤어진 것입니다. 이건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 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기 위해 하는 말도 아니며 공평을 시행하는 말도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사람이 말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너무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집의 돈과 제물을 전혀 수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면 상관도 안 하다가 그에게 주는 것이라고 하면 바로 주머니에 챙겨 넣기 바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교회 인솔자 일꾼은 정말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께 바친 제물들을 전혀 관리하지 않고 함부로 쓰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좀 쥐어주고 다 나누어 가지게 하면서 “저는 교회 인솔자이니 응당히 하나님의 제물을 먼저 잘 챙겨 놓고 하나님 집의 재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솔자로서 하나님의 제물은 상관치 않고 자신의 지위만을 위해 복리를 탐합니다. 속으론 ‘하나님에게 바친 제물이나 물건은 나랑 상관 없어! 어디로 가져가든 알아서 해! 내가 쓰고 내가 향수해야 좋은 거지.’라고 합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민이 누구에게 가져온 거냐고 물었더니 교회에 주려고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 물어봤어요? 대체 교회에 가져온 거에요? 하나님 집에 가져온 거에요? 아니면 하나님께 드린 거에요? 제대로 구분할 수 있어요? 이 물건 누가 산 거에요? 만약 인솔자 일꾼이 하나님 선민을 통해 보낸 것이면 하나님 집의 돈으로 산 것인데, 당신이 교회에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묻겠어요. 교회의 누구한테 주는 것입니까? 그 외에 물건 가져다주는 사람한테 ‘○○교회의 ○○에게 주는 것입니다.’라고 쓰라고 하세요.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만약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면 성질이 엄중해집니다. 제물을 훔쳐 먹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아는 것: 원문은 요해(了解)

【110-B-3】

만약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에게 바친 제물들을 잘 보관하지 않고, 하나님께 제대로 드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교회의 인솔자로 될 자격이 있습니까? 자격이 없습니다. 1년 넘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왔는데 하나님께 가야 할 것들은 하나도 보내지도 않고 통계하지도 않고 상면에 리스트도 전혀 보여 주지 않고 그저 “형제자매들이 영양제 보내왔는데요, 먹는 거에요. 필요하신가요?”라는 말 한마디 뿐입니다. 좋은 것을 가져와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말은 하나도 안 하고 귀중품이 있다는 말은 전혀 하지도 않는데, 정말 말하는 것이 속셈을 품고 모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당신은 하나님의 행정을 엄중하게 거스르는 일을 했어요. 하나님의 제물을 하나님 선민들에게 다 나눠 주고도 왜 사퇴하지 않습니까? 회개서는 썼지만 전혀 진실하게 인식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누굴 속이려는 겁니까?”라고 말했더니 어쩔 수 없이 사퇴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말이 없고 아무런 인식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도태 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런 거짓 인솔자를 남겨 둬서 뭐합니까? 하나님을 욕되게만 합니다! 이런 사람이 인솔자가 되면 하나님의 마음은 고통스러워 위로받지 못하십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 집의 인솔자가 되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만족스러워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해 하시고 위로를 받으셔야 합니다. 교회 인솔자로서 하나님의 제물을 훔쳐 먹고 제대로 보관하지 않고 임의로 망령되이 행하고 진탕 낭비하고 마음대로 분배하고 자신의 인정을 위해 쓰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건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품이 좋지 못합니다. 너무 간사하고 이기적이고 비겁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까? 전혀 인식이 없으며 짐승과 같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떻 된 일인지, 왜 믿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제대로 말하지 못합니다. 진리 실제가 하나도 없으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인솔자 본분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 집의 인솔자로 될 자격이 있습니까? 그 자격이나 있습니까? 이런 인솔자들은 아직도 사퇴하지 않고 뭐합니까? 꼭 하나님 집에서 악행을 다 총결해서 퇴출시켜야 합니까? 그때면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시며 이런 사람을 증오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겠습니까? 쉽게 악을 행하지 않겠습니까? 쉽게 하나님의 노를 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너무 위험합니다. 아주 위험하다고 말하면 ‘매우 중요하다’는 그 뜻을 알게 됩니다.

이후에 각 교회에서는 인솔자 일꾼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에 속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을 교회 각급 인솔자 일꾼으로 선거해야 합니까? 이런 사람을 뽑으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다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봅니까?”라고 물어보면 이제는 아시겠죠? 욥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표현은 어디에서 가장 잘 드러났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면서 어느 경지에 이르러 악행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러면 완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은 더욱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장 완전한 사람입니다. 보시면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조금 잘못 건드려도 화를 내지 않고 포용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듯 아이가 가끔 기분이 안 좋아서 두어 마디 대들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애가 오늘 심기가 불편한가 보네.’라며 이해를 합니다. 아이가 나쁜 짓을 좀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 집 애가 나쁜 짓을 했어요.”라고 하면 “우리 애는 착해요. 나쁜 일을 했다고 해도 고의가 아닐 거에요.”라고 하면서 여전히 화를 내지도 않고 편을 듭니다. 사람을 사랑해도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난 하나님을 거역해선 안 돼! 다시는 날 위해 고통 받으시게 하면 안 되지! 절대로 다신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는 게 우선이야!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의 마음이 위로가 되시도록 하고, 조금이라도 나아진 태도를 보여 드려서 기쁘게 해드려야지.’ 그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면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일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 수 있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2~3일 지나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지 알았어! 어떻게 하면 노하지 않으시고 위로를 받으실지 알았어.’라고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길이 생겨서 이 길대로 원칙에 따라 행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적그리스도가 방해하여 다수의 하나님의 선민들이 분별할 줄 모르고 또 구속받고 통제받는 것을 봤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교회가 이런 걸 보시고,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날뛰는 걸 보시면, 하나님 마음은 고통 받으시고, 괴로우실 텐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 안 되겠어! 일어나서 적그리스도를 막아야겠어! 사탄의 궤계가 이뤄지게 둘 순 없어! 진리를 아는 하나님의 선민들과 연합해 이 일을 제대로 교통하고, 적그리스도를 적발해 드러내야지! 악인을 검거해 내고 모든 교회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이런 자들을 퇴출시키게 해야 돼!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이 위로받으실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조건 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 것입니다. 마치 저희가 늘 말하던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하자’ 이 네 마디가 아주 관건입니다. 이 네 마디를 해낼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와 합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민이고 합격된 피조물이며 국도의 자민이 된 사람입니다. 이런 목표를 향해 가면 좋지 않습니까? 먼저 자신의 안에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느낌이 없다면 이것은 뭘 말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없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느낌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임해도 계속 덜렁덜렁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고도 하나님께 득죄할까 두렵지 않아요?”해도 “네? 하나님께 득죄하는 게 뭐에요? 전 모르겠는데요.” “하나님께 득죄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 그럼 하나님께 순복하는 건 알고 있나요?” “하나님께 순복하는 건 알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는 거잖아요.” “그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데요?” “하나님이 저한테 아무 말씀도 안 하셨는데요? 만약 뭘 하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하죠.” 이런 말을 들으면 바로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볼 줄 모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에게 하신 것이 아니고 다 다른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줄 모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뭔지, 자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면 영이 통하는 사람 맞습니까? (아닙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심리 상태를 모릅니다. 사람의 실제에 따라 말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도 모르고 진리를 교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더욱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영 안의 일에 대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영 안에 뭐가 필요한지, 어떤 느낌이 있는지, 어떤 반응이 있는지, 영 안의 부족함, 갈급함, 충실함, 충족함, 평안함과 즐거움이 뭔지 하나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육체의 일은 잘 압니다. 육체가 뭘 입으면 편하고 느낌이 좋은지, 육체는 뭘 누리면 좋은지는 다 압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몇 년 믿든지 다 헛수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10-B-4】

나는 너희들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너희의 행위와 모든 생활이 결코 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여기에 ‘많은 일’은 뭘 가리켜 말씀하신 걸까요? 각 방면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요구를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 합격된 본분을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 속의 진리를 깨닫는 것,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아는 것, 하나님의 권병에 대한 인식, 충심으로 본분을 하는 데에 도달하는 것, 아주 힘차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런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되새겨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일들을 요구하셨는데 난 몇 가지나 했는지?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있는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됐는지?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했는지? 합격되게 본분을 했는지? 일을 처리하는 데 원칙이 있게 했는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기준에 도달했는지?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 됐는지? 어둡고 사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 확실하게 인식했는지? 큰 붉은 용의 본성 실질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는지?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고 있는지?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신 성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지?’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일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얼마나 했습니까? 이런 일들을 생각해 봤습니까? 어떤 사람은 “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를 마땅히 행해야 할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고 하나님의 요구를 거들떠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에 대해 흐리멍덩하고 한 가지도 갖추고 있지 못했고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면 정말 문제가 아닙니까? 어느 날이 되어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면 도태되어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렛소리에 놀라서 무서워하고 재난이 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서워합니다. ‘재난이 임하면 나 죽는 거 아니야? 대지진이 온다면 너무 커서 피할 수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날 지켜 주시려나?’ 재난이 임하니까 하나님을 찾고 평소에 안일할 땐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양심이 있습니까? 양심이 전혀 없어서 짐승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뭘 하든지 마음속으로 ‘요 이틀 난 어떤 진리를 실행했지? 오늘 임했던 한 가지 일에서 진리를 실행했었나? 일을 처리하는 데에 원칙이 있나? 믿지 않는 집식구에 대해 정이 깊은가? 아직도 그들의 구속을 받고 있나? 사탄과 육체의 권세에서 벗어났을까?’라고 수시로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언제든지 상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신의 육체의 일을 위해서는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위한 일과 진리에 연관되는 일에서는 미동이 없으면 이것은 자신이 할 도리를 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어느 날엔가 교회 인솔자로 당선되어 예배에서 진리를 교통해야 하는데 ‘뭘 교통해야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할 말은 없고 뭘 교통해야 할지 몰라 ‘야, 인솔자가 될 줄 알았더라면 일찍이 추구했으면 좋았을 걸. 지금 보니 진리가 전혀 없어. 정말 허송세월했네.’라고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이 부분이 부족하고, 저 부분이 부족하고. 이 진리를 모르고, 저 진리를 모르고, 거기에 교통을 하려니 자신도 모르겠고, 할 말도 없습니다. 쭉 보니 다 자신도 다른 사람과 비슷비슷하니 그때서야 후회하면서 “쌤통이야! 그 동안 누가 진리를 추구하지 말랬어! 지금 본분을 하니 어때? 할 말이 없잖아!”라고 하면서 자기 뺨을 때립니다. 이렇게 해서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국 속담에 “젊어서 튼튼할 때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는 상심과 비애 뿐이라네.”라는 말처럼 본분을 하려니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교통하려 해도 할 말이 없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발견은 했는데 부축해 주려니 어떻게 부축해 줘야 할지 모르겠고, 새 신자가 물어볼 때 해결해 줘야 하는데 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셔야 하는데 어느 말씀을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뭐라고 합니까? 진리 실제가 없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진리 실제가 없으면 폐인이 아닙니까? 폐인이라고 합니다. 뭘 해도 안 되고, 뭘 먹어도 부족하는 격입니다. 어떤 반찬이 맛있고, 어떤 밥이 맛있고, 어떤 반찬에는 어떤 밥을 먹으면 밥 맛이 나는지 이런 것들을 말하기만 하면 눈이 반짝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교통하면 그런 갈급한 면이 안 보이고 먹는 데에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진리를 교통만 하면 어떤 사람은 “저는 뭐가 뭔지 모르겠고 졸리기만 합니다. 어제 제대로 쉬지 못해서 한잠 자야겠어요.”라고 말하고는 테이블에 엎드려서 코를 골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진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위험합니다. 언젠가는 질질 짤 날이 옵니다. 재난이 임했을 때 “하나님, 저를 지켜주세요! 죽지 않게 해주세요! 저 아직 다 못 살았습니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너 살아서 뭔 소용있냐? 살아도 쓸모 없는 폐품인데.”라고 하실 것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쓸모 없는 폐품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아마 의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아주 영리해서 머리도 좋고 소질도 괜찮은데 왜 진리 실제가 하나도 없을까요? 이것이 잔머리가 아닙니까? 잔머리는 바로 간사하고 잔꾀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희의 행위와 모든 생활이 결코 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어떤 행실은 어디가 불합격일까요? 진리와 무관합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을 너무 많이 합니다. 비록 확연하게 범죄하진 않지만 공허한 속에서 살면서 쓸데 없는 일을 합니다. 그런 행실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게 아니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의 삶을 보면 세상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삶 속에는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이방인과 같아 날마다 잠자고 밥 먹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육체를 위해 이것저것 하는데, 다 하나님과 관계 없고 진리와 관계 없는 일들입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나요? 진정한 성도의 삶은 무엇인가요? 매일 한두 가지씩 의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을 내서 형제자매들을 부축하고 내일은 시간 내서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모레는 시간 내서 진리를 좀 무장하고, 글피에는 시간 내서 하나님 집을 위해 일 처리를 좀 해야지, 혹은 복음을 전하고 혹은 교회에 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지.’ 이렇게 매일 진리와 연관되는 일을 한두 가지씩 하고,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과 연관되는 일을 한다면 이런 삶은 하나님께서 만족하십니다. 한 가지 더, 하루 동안 마음을 하나님께 얼마나 바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2분 정도 기도를 하면서 속 얘기를 하고는 오전 시간은 다 육체의 일을 위해 뛰어다니거나 혹은 몇 시간 동안 출근하면서 계속 육체의 일과 밖의 일을 고려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고 또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교제도 없고 또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으며 생명 진입에 관한 일도 생각하지 않아 마음은 통째로 비어 있고 다 자신의 육체를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 오후에 가서도 여전히 말씀은 묵상하지 않고, 어떤 일이 닥쳐도 어떻게 진리로 진입할지 생각하지 않고 진리를 찾는 일은 더욱 없고, 완전히 육체의 삶을 위해 바삐 보냅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집에 와서 부랴부랴 밥 해 먹고, 저녁을 먹고 나면 쉬다가 잠이 듭니다. 이런 하루가 어떻습니다.? (허송세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십니까? 첫째, 하나님의 지위가 없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습니다. 둘째, 하루 종일 한 일들이 다 진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셋째, 마음으로 진리를 실행하거나 본분하는 일을 고려해 보지 않으며, 임하는 일에서 진리를 구하거나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생명 진입하는 실행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입니까? 이건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의 삶이라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고 교통을 듣는 데까지만 그치고, 평소의 생활 속에서는 마음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고 진리를 묵상하지 않으며, 임하는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행하고 진리의 원칙을 어떻게 응용할지를 별로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을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를 가리켜 말한 것

【110-B-5】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루의 삶이 어떤 느낌일까요? 하나님을 너무 멀리했다면 의식할 수 있습니다. ‘아, 나는 하루 종일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았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았구나! 오늘 하루의 삶은 하나님이 없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하루였구나! 이건 이방인의 생활이고 짐승의 생활이야.’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졌구나! 안 돼! 기도해야지. 다시 육에서 살 순 없어! 이방인이 사는 이런 삶을 살면 안 돼!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 말씀을 먹고 마셔야 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일 말씀을 한 편씩 보고 말씀의 진리를 몇 구절 묵상하고 임하는 일에서 또 진리를 구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마음이 한결 평안해집니다. 매일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하루하루 한두 가지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원칙과 진리에 근거해서 말을 하고 진리에 근거해 일을 한다면 마음으로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고 하나님이 있는 삶이고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삶이고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민이 진입해야 할 삶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선민이 진리 실제로 들어갔다면 그 사람의 삶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진리를 실행할 길이 있으며 진리를 실행하라고 자신에게 요구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찾아도 기도하면서 “하나님, 배우자를 찾는 건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저 혼자의 생각으로 김칫국 마시면서 첫 눈에 반한 사람을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큰일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인성이 안 좋다면 진리의 원칙에 따르고 제게 보이는 대로 또한 저의 욕망에 따르지 않겠습니다. 저의 육체 욕망은 늘 잘생기고 돈이 많은 사람을 찾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잘생기고 돈 많은 사람이 아닌 인품이 좋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찾겠습니다. 간사하고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인성이 없는 사람은 찾지 않겠습니다.’라고 맡깁니다. 사람은 인성이 좋은 것이 우선입니다. 아무리 잘생겨도 마음이 고운 것보다 못하고 마음이 고워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이것이 배우자를 찾는 일에서 구해야 할 진리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또 일자리를 구하면서도 진리를 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돈을 많이 버는 게 다 좋은 일은 아니야,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하고 말씀을 묵상할 시간이 있어야 해! 또 내가 하는 일은 사악한 것과 연관 있어도 안 돼! 만약 그런 일을 하면서 더 패괴되고 더 사악해지면 지옥으로 빠지는 거잖아!’ 이렇게 일을 찾아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집안 살림을 하면서 어떤 가정을 꾸려야 하는지와 삶의 환경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방인의 요구는 좋은 집과 좋은 차와 좋은 환경이 있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해! 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런 허황한 조건은 요구하지 않을 거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게 우선이지!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데 영향을 안 받는다면 가장 좋은 거야!’ 이렇게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매사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해 실행하고 임의로 망령되이 행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자신의 뜻대로 애인을 찾고 직업을 찾는데, 결과가 어떻습니까? 화가 임하고 문제들이 임하면서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은 보응이 있고 징벌이 임합니다!

매사에 진리를 구한다면 이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면 ‘안 돼! 마음이 편치 않아.’라고 하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들고 흑암에 빠진 것 같아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은 시간은 오래됐는데 몇 년간 진리를 얻지 못했으면 자신이 길을 잘못 가고 있다고 느끼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것은 패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임하든 다 하나님의 말씀이 따르고 하나님이 생각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진리를 구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에 대해 갈수록 더 뚜렷하게 알며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길이 더 생기고 진리를 구하는 일에서 요령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진리 실제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매사에 다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순 없습니다. 또 어떤 일이 임한다고 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많이 실패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매번의 실패가 이런 사람에게는 크나큰 교훈이 되고 잊지 않고 ‘이번에 하나님을 거역했구나! 육체대로 살고 육체에 따라 일을 했어! 이번엔 망령되게 행했구나! 이번엔 내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았어.’라고 마음속으로 다 압니다. 그 뒤에 곧바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백하고 마음으로 괴로워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오면 절대로 이렇게 안 할 거야.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며 거기에 따라 계속 진리를 더 뚜렷하게 깨닫고 과오가 갈수록 적어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점점 강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더욱 커지는데, 이때 점차 악을 멀리하는 데에 이르게 되고 갈수록 완전해집니다. 사람의 생명이 자라는 과정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처음에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작아도 마음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이 생각날 수 있을까요? 기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멀리하고 멀어졌다고 느껴질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런 문제들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며칠 안 보면 마음이 공허하여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하나님을 가까이하지도 않았고 말씀을 먹고 마시지도 않았어! 진리를 조금도 얻지 못했으니 이건 허송세월하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나가다간 큰일날 거야! 마지막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도태되잖아! 안 돼! 일어나서 진리를 추구하고 말씀을 읽어야지. 이렇게 빈둥거리면서 보낼 순 없어.’라고 늘 자신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효과를 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큰 악행은 감히 하지 못합니다. ‘제물을 훔쳐먹는 건 절대 못해! 줘도 감히 못 다치지! 이건 엄중한 오점이 되는 거야! 남녀 관계도 빠지면 안 돼! 이건 죄악이야!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인데도 남녀 관계로 죄 지으니 하나님께서 용서치 않으시고 징벌하셨어!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어! 큰일날 수 있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깨달은 진리가 너무 얕거나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가장 범죄하기 쉬운 것은 바로 남녀 관계입니다. 보시면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조금은 알고 있는데도 어느 사람과 붙으면 떨어지지 못합니다. 붙으면 마음속에 박히고 마음에 박히면 끊기 어렵습니다. 정말 큰일 날 일입니다. 이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오점입니다. 또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지위를 다투며 악을 위해 변호하고 악인의 편에 서서 말을 합니다. 이런 건 다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대죄입니다. 남은 건 이제 하나님의 역사를 논단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논단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논단하는 일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세부적인 일에 속합니다. 이런 사람은 악인에 속하고 보통, 적그리스도로 처리합니다. 지위를 쟁탈하는 성질과 같습니다. 이 외에, 하나님 집의 사역을 하면서 무책임하여 하나님 집의 사역과 하나님의 제물에 손실을 가져오는 사람은 다 악인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효력할 자격도 취하하여 다시는 쓰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쓰면 매 잃고 꿩 잃는 격입니다. 효력도 불합격입니다. 이렇게 처리하는 게 어떻습니까? 일단 인솔자 일꾼이 무책임하여 하나님의 제물에 손실을 가져오면 다 취하해야 합니다. 다시는 인솔자가 될 수 없고 영원히 쓰지 않습니다. 만약 손실을 배상하지 않는다면 퇴출시킵니다! 이건 하나님 집에서 행정을 범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리 원칙입니다. 이 몇 부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쉽게 취하될 수 있고 효력할 자격도 없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런 사람들을 위해 나서서 도와주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변호하고 말을 합니다. 이런 건 공개적으로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과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건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이어서 성질이 심각합니다. 왜 이런 사람을 위해 변호하는 것입니까? 진리를 알기나 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나 합니까? 왜 하나님을 위해 말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 집을 위해 말 한 마디 안 합니까? 하나님 집에 얼마나 큰 손실이 오는지는 개의치 않고 악마를 위해 말하고 악인을 위해 말하다니요! 당신 마음엔 하나님 집에서 손실 보는 건 마땅하고 악인은 제재받지 말아야 합니까? 어느 켠에 선 것입니까? 사탄 편에 섰습니까? 하나님 편에 섰습니까? 속으로 모른단 말입니까? 자신이 뭔 일을 했는지 알기나 합니까? 정말 그동안 헛 믿었고 그 나이까지 헛 살았네요! 진리가 조금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다시 믿어도 도태될 놈입니다!

【110-B-6】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최종에 다 도태된다는 걸 이젠 잘 아시겠죠?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도 진리가 전혀 없는데, 만약 정말 하나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고 최종에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면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됩니다. 도태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과 같이 처리하십니다. 이방인들은 각종 재난에서 다 죽습니다. 이런 재난에서 한 무더기가 죽고 저런 재난에서 또 한 무더기가 죽습니다. 매번 재난이 올 때면 사람들을 어느 정도 데려갑니다. 지진 한 번에 얼마나 죽을지, 온역 한 번에 얼마나 죽을지, 한 번씩 유행하는 어떤 바이러스에 얼마나 죽을지, 작은 전쟁에 또 얼마나 죽을지, 큰 전쟁에 얼마나 죽을지, 어떤 재난 한 번에 어떤 사람들이 죽을지는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그것들은 다 사명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정해진 자는 다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훼멸될 때면 하나님 집에 있는 불신파들도 같이 훼멸됩니다. 큰 재난이 한 번 오면 이방인들이 많이 죽고 교회에 있는 어떤 사람들도 몇몇 죽습니다. 하지만 교회 중에는 재난에 임하여 또 하나님께 구원받은 간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왜 죽지 않았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기묘하게 그 사람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죽었죠? 진심으로 믿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난이 임했을 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재난이 임하면 저를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하다가 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 만약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보호할 것이고 만약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기도해도 소용없어! 하나님은 듣지 않으실 거야’ 그러므로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처럼 처리하십니다. 바로 이방인들에게 재난이 닥칠 때 따라서 같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구원받는 길은 무엇입니까? 얼른 진리를 추구해서 언제 생명을 얻는다면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면 상대적으로 보험이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너희에게 나의 뜻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너희의 분별력이 매우 부족하고 감상 능력 또한 너무 부족하여 너희는 나의 성품과 실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급히 너희에게 알려 줘야 할 것은 나의 성품과 나의 실질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반드시 인식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물음을 듣게 됩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이고 실질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답할 말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왜 이렇게 깊이 물어봐요? 하나님을 믿는 건 쉬운 일인데,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성품을 자꾸 물어보면 누가 알겠어요?”라고 합니다. 이런 말은 어떤가요? 아직 거기까지 닿지 못하고 소질이 너무 낮아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물어보면 어리벙벙해집니다. 머리속엔 할 수 있는 말이 한 마디도 없고 개념 자체가 없어서 어떻게 답할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서 멍 때립니다. 이러면 정말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걸 가난하고 불쌍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아무런 진리도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느 때에 누군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어요?”라고 물으면 생각해 보다가 몇 마디로 “이 진리에 관해서는요, 아주 깊은데 저는 경력이 아주 얕습니다. 조금은 알고 있긴 한데 맞는진 모르겠네요……” 하면서 몇 가지를 얘기하면 상대방이 듣고는 “음. 정말 맞네요! 이건 도리가 아니고 정말 실제적이네요! 경력이 있으시네요.”라고 하면서 머리를 끄덕이며 마음으로 인정합니다. 그럼 이런 문제에 관해서 어느 정도로 얘기할 수 있나요? 대부분 사람들이 두어 마디는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엔 두어 마디가 아닌 진짜를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찬성하게 해야 합니다. 이걸 실력이라고 하죠.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아서 하나님의 성품에 관련된 말씀을 다 외웠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외운 대로 하나님 말씀을 말하면 돼요! 어때요? 답안지 그대로니까, 대단하죠.”라고 합니다. 이 방법이 어떻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외워 놓았다가 나중에 몇 마디를 교제하고 그 다음 또 진리의 실제를 이야기하면 좋지 않습니까? 언젠가는 쓸 날이 있습니다. 이게 실력이죠. ‘지금은 많은 걸 얘기해 낼 수 없어서 조금밖에 못하지만 나중엔 갈수록 많아질 거에요.’라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나누면 할 말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경력이 있고 실제가 있고 생명이 풍성하며 부유해집니다. 무엇을 부유하다고 합니까? 백만장자, 천만장자들을 부유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명이 부유하다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부유가 아닙니다. 각 방면의 진리에 다 체험 인식이 있어서 어느 정도 진리 실제를 나눌 수 있으면 그게 생명의 부유입니다. 생명 경력이 많은 사람은 종교계 사람들과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나눌 때 그저 입을 열고 경력을 계속 이야기하기만 하면 종교인은 한쪽에서 듣고 있다가 인정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을 얻게 되지요. 이것이 진리를 아는 좋은 점입니다. 진리를 알면 종교계 사람과 만날 때 그 사람을 내가 잡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인이 보기에 여러분의 말과 행동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주동적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진리를 알면 좋지 않습니까? 진리를 깨달으면 다른 사람과 말을 해도 상대방이 쉽게 탄복하고 인정하며 높이 봅니다. 그 외에 어떤 일이 임해도 지혜가 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압니다. 또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척 보고 관찰하면 알게 됩니다. 같이 지낼 필요 없이 관찰만 해도 70~80% 답이 나옵니다. 차이가 크게 나지 않습니다.

이전에 네가 얼마나 알고 있었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알려고 했든지 상관없이 그래도 나는 너희에게 상세히 알려 주겠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요? 부모의 마음과 같지 않나요? 아들딸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과 아낌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알려고 했든지 상관없이 그래도 나는 너희에게 상세히 알려 주겠다” 하나님은 왜 다른 사람에게는 안 알려 주시고 꼭 저희에게 알려 주실까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치대로라면 알아보길 원하지 않고 이런 걸 듣기 싫어한다면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지 말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래도 나는 너희에게 상세히 알려 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특별히 보이셨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여 반드시 알려 주어야 한다는 걸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라고 말씀하신 건 모든 하나님의 선민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지하게 알려면 이렇게 묵상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언급하면 너희에게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바로 우리가 이 글은 알고 술어도 들어본 것이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만약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고 거기에 안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라면 아주 생소한 것이 되겠지요? “그 가운데 내포된 뜻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시는 건 조금은 안다라는 뜻이겠죠! “그리 익숙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렴풋이 조금은 알지만 그것마저도 수박 겉 핥기 식이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라고 얘기하셨는데, 바로 대다수의 좋은 사람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어렴풋이라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렴풋이라고 하면 마치 희미한 것과 같겠죠. 안다고 말하자니 잘 모르고, 모른다고 말하자니 조금은 알고 있고 그래서 어렴풋이라는 단어가 가장 형용하기 적합하고 알맞습니다. “그것마저도 수박 겉 핥기 식이다.” 안다고 말하면 다 모르고, 전혀 모른다고 하면 또 조금은 알고, 하지만 또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는 걸 수박 겉 핥기라고 합니다. 이 단어가 아주 합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단어, 말씀에 쓴 단어들은 너무 정확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기 그지없다라고 말합니다.

【110-B-7】

어떤 사람들은 은사가 좀 있어서 대학교를 가고 또 거기에 석사요 박사를 추구하다가 결국 합격해서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합니다. 돌아오는 길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앞날 출세의 길이 막힐까 봐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은 대학에 붙지 못해 눈물을 흘리다가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 줘서 하나님을 믿는 게 참 좋다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뒤에 지난 일을 뒤돌아보면 “난 공부도 꽤 잘했는데 왜 못 붙었을까? 이제 보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구나! 하나님께서 날 위해 길을 열어 주셨고 하나님을 믿도록 인도해 주신 거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리를 더 깨닫고 나면 “다행히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어.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지 않으셨다면 주동적으로 하나님을 믿진 않았을 거야. 그런 좌절을 맛보게 하신 게 정말 좋은 것이구나.”라고 하며 보호를 받아 바른 길로 가게 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애인을 찾는 게 잘생기고 지위도 있는 걸 찾으려 합니다. 결국, 찾아도 찾아도 순탄치가 않고 쫓아다닐수록 넘어지고 부딪히다가 결국엔 차이고 질질 짭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하나님을 믿고 또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은 다음 ‘못 찾길 다행이지.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큰일 날 뻔 했네, 그건 완전 마귀였잖아!’라고 이 일을 생각하면서 또 하나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일생은 다 하나님의 안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일은 사람이 꾀할지라도 이루는 건 하늘에 있도다’라는 중국 옛말과 같습니다. 진리를 알고 난 후에 하나님을 알고 나면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하나님께서 안배하셨구나! 하나님은 정말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시는구나!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 손에 달렸어! 난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할 거야!’라고 느끼면서 단번에 믿음이 생깁니다. 애인을 못 찾아도 후회하지 않고 직업이 없어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이구나! 난 정말 행운이야,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받아들인 건 정말 하나님의 안배고 하나님의 사랑이구나!’하면서 경력하다 보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고 알게 된 다음은 또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됩니다,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생명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생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하나님 성품의 진실성이 막연하지 않고 텅 빈 말씀이 아니고 글귀가 아니란 걸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일에서도, 각종 사람의 몸에서도, 각 나라와 세계 정세에서도 진실하게 나타나시고 역대 성도들의 몸에서도 아주 진실되게 나타나셨습니다. 이 모든 걸 제대로 보았다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고 나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 글귀가 아니고 빈 말이 아니며 다 사실이고 실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감히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까요? 어떤 일을 하게 되면 ‘난 ○○처럼 하지 말아야지.’라고 하고 감옥에 가게 되면 ‘절대 유다가 되지 말아야지, 이건 큰일 날 일이야.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인 걸!’라고 하며 또 교회 인솔자가 되면 ‘난 바리새인이 돼선 안 돼! 하나님께 득죄하면 저주를 받으니.’라고 하며 하나님의 제물을 보관하면 ‘난 절대로 유다처럼 제물을 훔쳐 먹으면 안 돼.’라고 합니다. 또 본분을 하면서 ‘난 거짓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선민들을 속이지 않을 거야. 진리의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지.’라고 하고 사람됨에 있어서 ‘난 성실한 사람이 될 거야! 사탄의 성품으로 살 순 없어! 날마다 거짓말이나 하고 간사함으로 사람을 기만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면서 사기를 치고 다니다간 언젠가는 제 명에 못 살 수 있어! 이건 좋은 일이 아니야.’라고 하며, 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음을 보고 ‘아이고 이건 무덤을 파는 거잖아! ’라고 합니다. 이러면서 마지막엔 모든 일을 진리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게 되며 앞날의 운명도 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맡기고 원망하지 않으며 또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서는 착실하게 실제로 행하며 원칙에 따라 행하고 또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진리를 구하고 진리의 원칙을 어기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착실하게 실제로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규칙대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수록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사람이 되려고 하면 진리대로 살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느끼며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존 기초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사람이 진리의 실제로 들어가면 삶이 여전히 평범할까요? 어떤 일이 올까요?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시는 걸 보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 실제가 있을 때, 진리를 실행할 줄 알 때,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줄 알 때,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줄 알 때면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때는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고, 어떤 때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걸 느낄 수 있으며 어떤 때는 그 환경을 정말 기묘하게 안배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면 갈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이 아닙니까? 이런 느낌이 있을 때면 하나님께서 사람과 점점 가까워진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덜컥’ 큰 시련이 임하면, 이건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좋은 일입니다.) 왜 좋은 일이라고 하죠? 아까는 하나님의 축복을 본다 그랬는데 축복은 안 보이고 왜 갑자기 시련이 임할까요? 욥에게도 시련은 이렇게 임했습니다. 진정한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축복은 은혜 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사람을 쓰십니다. 사람을 통해 사탄을 패하게 하시고 부끄럽게 하시고 또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하시려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까? 이런 시련이 임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면 한번에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뒤에는 모든 게 순조롭고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이뤄집니다. 하지만 패역이 있으면 여전히 징계가 따르고 범죄하면 징벌은 여전히 임합니다.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면 마음으로 늘 하나님,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이끄심,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 사람에게 환경을 안배하셔서 온전케 하시고 훈련시키시고 쓰십니다. 어떤 일은 사람이 보기에는 안 좋을지 몰라도 사실은 다 좋은 일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끌어 난관을 뚫고 나가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면서 시련을 겪게 하시고 증거하게 하시며 마지막엔 사탄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이러면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처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떻게 생길까요?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을 어떻게 걷게 될까요?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성품이 각종 일에서 나타나시는 걸 보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갈수록 인식이 생겨서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오만 자대하고 권력과 이익을 다투면서 득의양양해 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은 ‘저건 무덤을 파는구나’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에 이런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이런 일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시는지 잘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어떤 사람들이 도태되고 어떤 사람들이 징벌받게 되는지, 각 부류의 사람들의 결말을 다는 몰라도 비슷하게는 다 압니다. 그 외에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민이고 어떤 사람들이 효력자이고, 어떤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인지 다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 실제가 있고 각종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하나님 집에서 인솔자가 될 수 있고 인솔자가 될 자격도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또 각종 사람의 결말도 볼 줄 모르면 인솔자의 본분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볼 줄 몰라서 잘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아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등용합니다. 누가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추고 누가 아첨을 잘하고 아양을 잘 떨수록 그를 등용합니다. 누가 자신에게 바르고 성실한 말을 하고 진실을 말하면서 가끔씩 상처가 되는 말을 하면 내리 밟고 등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솔자 일꾼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악을 멀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행하고 내키는 대로 하며 임의로 망령되게 행합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이 임할 것이며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110-B-8】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기에 진리 추구는 뭘 말하는 것일까요? 가장 주요하게는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실질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면 바로 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걸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과 관계가 있나요?”라고 물어봅니다. 어떤 방면의 진리이든 다 하나님의 성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진리는 다 하나님의 성품의 발표이며 다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추구하는 진리가 많을수록 각 방면의 진리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이 점점 진실되고 정확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실질은 사실 뭘 말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실질이 영이라는 걸 말씀하는 게 아니라 이 실질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성품이시고 하나님은 어떤 생명이신지를 말하는 것이며 바로 이 실질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진실로 안다면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면 영원히 하나님의 실질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성품과 실질은 바로 이런 관계입니다. 이 실질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 실질을 가리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의 실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생명의 실질은 주요하게 성품에서 나타나시고 성품의 실질이 바로 생명의 실질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을까요?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실질을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관건은 뭘 알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하나님의 실질을 안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성품을 지니신 하나님이신지, 하나님의 성품에는 어떤 방면들을 포함하고 있는지, 무엇이 주된 것인지, 어떤 사람들을 존재하도록 허락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훼멸하시는지, 어떤 사람들을 온전케 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는지를 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뭘 보고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할까요? 사람이 어떤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다고 할까요?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는 방면의 일들과 연관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나라를 축복하십니까? 만약 어느 나라에 지도자가 백성을 이끌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한다면 하나님은 그 나라를 축복하십니다. 어느 나라의 정부가 하나님을 믿는 걸 반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그 나라는 저주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이런 성품이 있으신 건 뭘 대표합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거스름을 용납치 않으시는 걸 대표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순복하라고 요구하십니까?”라고 물어보는데, 이 문제는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까? 가장 주요한 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아무런 요구가 없으시다면 그분은 어떤 성품이겠습니까? 공의가 있을까요? 위엄이 있을까요? 존엄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마치 아버지나 어머니로서 자녀에게 효도하라고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당연히 요구해야 합니다. 그들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요? 자녀의 생활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게 부모의 책임입니다. 자녀들을 가르쳐서 사람으로 만들고 키워서 사람으로 만들면 부모의 사명은 다한 것 이고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존엄이 있고 인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밥만 먹여 주고 육체만 키워주는 걸로 끝내고 마지막엔 자녀가 다 커서 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또 효도하지도 않으며 부모를 보통 사람처럼 대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교육할 줄 모르고 부모로서 존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 피조물에게 조물주를 경배하고 순복하라고 하는 건 *천경지의입니다. 창조주의 거룩과 공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창조주께서 존엄과 권병이 있으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외에 피조물이 조물주를 경배하고 순복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으며 의의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평안하게, 기쁘게, 보람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런 요구를 하셨지만 강요하셨나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게 진리라고 믿지 않고 천경지의라고 인정하지 못하겠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모든 이방인들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행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평안과 기쁨도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잘 먹고 육체가 좋은 걸 누린다 해도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공허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사람의 심령 깊은 곳에는 한 가지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자녀들이 갓 태어나자마자 한 가지 필요로 인해 “난 엄마의 사랑이 필요해! 난 아빠의 사랑이 필요해! 엄마의 사랑이 없고 아빠의 사랑이 없으면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삶이 기쁘지가 않아.”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죽어서 다른 사람에게 맡겨져 자랐는데, 크고 나면 늘 “저의 친부모님은 누굽니까? 저는 알아야겠습니다.”라고 묻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친부모를 찾으려고 합니다. 찾지 못하면 심령이 편치 않고 공허해서 꼭 찾으려 합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찾으면 의미가 있나요? 의미가 없습니다. 근데 왜 계속 찾으려고 할까요? 심령의 필요가 아닐까요? 사람의 심령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평안하고 그렇게 기쁠까요? 공허하던 심령이 단번에 위로를 받고 풍부하게 채워지는데, 이게 심오한 비밀이 아닌가요? 이건 심오한 비밀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의 심령의 가장 큰 필요는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또 생명의 길과 하나님의 약속을 다 얻으면 진정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고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약속과 생명의 길을 다 얻었다면 최후에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게 피조물의 가장 큰 영광이고 심령의 가장 큰 축복과 가장 큰 필요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늘 ‘하나님은 왜 이런 걸 요구하시지?’라고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순복과 경배를 탐내서일까요? 그런 게 아닙니다. 여기엔 의의가 있고 심오한 비밀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정말 사람의 순복과 경배를 탐내신다면 쉽게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인류에게 나타나시기만 하면 다 되는 일이 아닌가요? 너무 쉽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실까요? 왜 피조된 인류는 몇천 년, 몇만 년 동안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지 못했을까요? 왜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사람에게 감추시고 닫고 계실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하십니다. 그래서 더러운 땅에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더러운 사람이 더럽히는 걸 용납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러운 땅을 향해 감추시고 성결한 나라에 나타나십니다. ‘성결한 나라에 나타나다’란 뭘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나라가 형성된 후에 하나님께서 국도에 있는 모든 자민들에게 나타나시는 걸 말합니다. 그러면 도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몸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왜 하나님은 하나님 집의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을까요? 적그리스도들은 왜 늘 나서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에서 맴도는 걸 좋아할까요? 하나님은 감추고 나타내시지 않는데, 무엇 때문일까요? 이건 하나님의 성품과 연관 있지 않을까요? 너무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맴도는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늘 거짓과 기만과 진실하지 않은 모습으로 찬미하는 것을 역겨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실제입니다. 그 외에 패괴된 인류는 진리가 전혀 없고 생명 성품의 변화가 없어서 하나님은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시고 만나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실 겁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고 어떤 사람을 증오하시고 어떤 사람을 보기 싫어하시는지 또 어떤 사람만 가까이하기를 원하시는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그분의 성품을 알기를 요구하실까요? 여기에는 깊은 의의가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족처럼 생각하시고 자신의 골육처럼 자신의 자녀처럼 대하신다는 걸 말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증거해 주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천만번 당부할 때 자녀가 짜증을 내면서 “됐어요! 그만하세요.” 해도 “안 돼! 네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버리면서 귓전으로 들을까 봐 계속 얘기해야겠어! 꺼리지 않고 계속 얘기해 줘야겠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까? 깨닫지 못할까 봐 말을 안 하면 안 되고 귀찮아할지라도 해야 되고 꼭 이렇게 요구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여기에선 또 뭘 보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히 아끼고 사랑하시며 전례를 깨시고 높여 주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이렇게 증거하시지 않는다면 저희들로서는 아무리 더 추구해도 도저히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저는 안 받아드리렵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영원히 아무것도 안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고 하나님의 그 고심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 사람들이 늑대의 마음과 개똥 같은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무엇과 연관됩니까? 사람의 생사와 생존과 죽음에 연관되고 사람의 운명과 연관됩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악을 멀리하거나 각종 패괴를 벗어 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생명 성품의 변화가 있을 수 없고 영원히 생명의 진리를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사람이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에 연관되는 큰일이며 더욱이 사람의 결말과 운명에 관계되는 큰일입니다.

*천경지의: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나 법칙을 뜻함. 천경지위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