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집(a)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께 얻어지고 온전케 될 수 있는가

【108-A-1】

하나님의 말씀을 몇 단락 읽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 이 책입니다.

577. 네가 참으로 나의 간증인이 되려면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 순수해야지 그릇되거나 치우쳐서는 안 되고 나의 말을 실행하기를 많이 중요시하고 생명이 빨리 자라나기를 추구해야지 일부 가치없는 것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생명 진보에 대해 유익한 점이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발표와 증거ㆍ제20편 말씀≫에서 발췌

630. 사람이 육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심판과 형벌이 없으면 사람이 다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러운데, 어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베드로가 여기기를, ‘하나님의 형벌과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에게 제일 좋은 보호이고 제일 큰 은혜이다. 오직 하나님이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해야만 사람이 각성할 수 있고 육체를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엄한 징계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기의 좁은 세계를 이탈하여 하나님의 얼굴 빛 속에서 살 수 있게 하였다. 심판ㆍ형벌은 참으로 제일 좋은 구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642. 어느 날까지 경력하면 한 사람의 인생관과 생존의 의의와 생존의 토대가 완전히 다 변한다. 바로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딴 사람으로 되는데, 이는 대단하다! 이는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의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ㆍ지위ㆍ돈ㆍ누림ㆍ부귀영화에 대하여 있으나 없으나 다 괜찮다고 여기며 이런 일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으면 이야말로 사람 모양이 있는 사람이다. 최종에 온전케 하는 자는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의 일을 위해 사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모양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은 공통성도 있고 차이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643.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알고 진리가 있다면 그야말로 광명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세계관ㆍ인생관이 바뀌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변화이다. 사람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에 근거하여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 말씀에 의거하여 살면 심령 깊은 곳은 편안하고 환하게 느껴지며, 마음속에 조금의 흑암도 없고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로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된다. 이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 밖에 네가 소유한 진리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오고 하나님 그리로부터 온 것이다.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 즉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칭찬하고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 한다. 네가 참으로 인생을 살아내면 하나님이 너를 칭찬하는데, 이것은 가장 의의있는 것이 아닌가?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644. 나의 뜻은 너희가 모두 온전케 되고 최소한 정복되는 데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이 단계 사역이 순조롭게 완성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바람은 사람마다 온전케 되어 최종에 그에게 얻어지고 완전히 그에게 정결케 되어 그의 사랑하는 사람으로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너희들을 낙후하다고 하든지, 소질이 낮다고 하든지 이것은 모두 너희의 실제 정황이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희를 버리려 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내가 너희들에 대하여 희망을 잃었다는 것도 증명하지 않으며, 더욱이 너희들을 구원하기를 싫어한다는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오늘 온 것은 너희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고 역시 구원의 접속 사역을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온전케 될 기회가 있다. 네가 원하기만 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최종에 가서는 모두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 네가 소질이 낮으면 소질이 낮은 대로 요구하며, 네가 소질이 높으면 소질이 높은 데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우매하여 글자를 모르면 너의 이 조건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글자를 알면 글자를 아는 표준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연로하면 연로한 데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접대할 수 있으면 접대할 수 있는 것에 따라 요구하며, 네가 접대할 수 없고 다만 한 방면의 기능, 즉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사무 사역을 할 수 있다면 너의 하는 기능에 따라 너를 온전케 한다. 네가 충성할 수 있고, 끝까지 순복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를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네가 도달해야 할 바이다. 바로 이 세 가지가 가장 좋은 실행이다.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오늘 교통할 제목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께 얻어지고 온전케 될 수 있는가?”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금 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 경력하면서 진리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보았습니다. 또한 모두 진리를 추구하기 원하고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이것은 모두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여기에 많은 실제적인 문제들이 있으니 분명히 설명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기 원하고 하나님에 의해 도태되기를 싫어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많은 악을 저질러 도태되고 제명되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 하지만 그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10년, 20년을 믿었어도 아무 진리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을 도태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 악인들이 도태되지 않았습니까? 적그리스도가 도태되지 않았습니까? 각종 악령에 속하는 자들이 도태되지 않았습니까? (도태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을 10년, 20년 믿은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고 있는데, 사실 이미 넘어진 것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정말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다 보았겠지요?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보긴 해도 듣긴 해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은 왜 사람을 도태시키실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도태시키시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온갖 악을 행하여 선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교회에서 제명되었는데 그건 하나님에 의해 도태된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되어 하나님 선민들에게 미움을 받고 버려져 역시 제명되어 도태되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바른길로 가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시종일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함에 있어 대충대충 해서 속이다가 갑자기 죽었는데, 이것이 도태된 것 아닙니까? 그럼 이런 사람은 다시 환생할 기회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면 환생할 기회도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도태되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그러면 말해 보세요, 비록 어떤 사람들은 아직 교회에 남아 있고 제명되지 않았으며 죽지도 않았을지라도 조금의 진리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도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이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태시키지 않으신 것 같아. 내가 아직도 교회에 남아 있으니까!”라고 말하는데, 지금 교회에 남아 있다 해서 이후에 닥칠 각종 재난에서 죽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태되었는지를 알려면 무엇에 근거해야 합니까? 진리가 있는지의 여부에 근거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죽지 않고 교회에 남아 있으면 틀림없이 도태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만약 정말 진리가 조금도 없다면 설령 완전히 도태되지 않았을지라도 구원받을 희망이 희박하고 틀림없이 위험 가운데 처해 있고 위험한 변두리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계속 각성하지 않고 계속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당신의 결말은 끝장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시종일관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정해졌고 성령께서도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108-A-2】

만약 새신자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구원하심에 있어 여러 차례 기회를 주십니다. 이 ‘여러 차례 기회’는 무엇을 가리켜 말합니까? 바로 한 사람이 진리를 얻어 진실한 변화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여러 차례 실패하고 넘어질 것인데, 이 길은 순탄하지 않고 각종 환난과 시련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여러 차례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붙잡힌 후 교회 사람들 몇 명만 팔아먹고 다른 것은 팔아먹지 않았으며 사탄의 도구도 되지 않았고 공안국 요원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형제자매들을 붙잡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사랑한다면 일시적으로 연약해져서 그런 것이지 아마 통회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계속해서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믿음이 있어 일어설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막다른 길로 가고 지옥의 문을 밀어젖힌다면 기회가 또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혀 큰 붉은 용에게 빌붙어 큰 붉은 용의 간첩이 되어 큰 붉은 용의 군대를 데리고 형제자매들을 붙잡은 것과 같은데, 이러면 지옥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어서 기회가 없습니다. 이것은 막다른 길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 집의 제물에 대해 어떤 사람은 좀 미련을 두고 탐하기도 하고 누리기도 하며 부당하게 이익도 좀 챙기지만 어느 날엔가 진리를 깨닫고 후회합니다. ‘나는 정결치 못하구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제물을 누릴 수 있지?’ 그 사람은 통회합니다. 이와 같은 일은 극단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번 더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럼 어떤 상황이라면 기회가 없습니까? 사기치는 수법으로 하나님 집의 제물을 몇십 만, 몇백 만 위안을 사취했다면 이런 사람은 막다른 길로 갔고 지옥의 문을 열어젖혔기에 다시는 기회가 없고 반드시 유황불 못에 던져집니다. 하나님 집에서 가장 큰 악은 바로 하나님의 제물을 몇십 만, 몇백 만 위안을 사취해 자기 소유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악랄한 것이고 극악무도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원수에 속하기에 하나님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고 반드시 그에게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그를 제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큰 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과 권력을 다투고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며 하나님의 선민을 돌아오지 못할 길로 끌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큰 죄이고 온갖 악을 행하는 것으로 적그리스도의 악에 속합니다. 온갖 악을 행한 적그리스도들이 이미 선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하나님의 선민들이 모두 증오하면 그들은 다시는 돌아올 길이 없고 하나님도 그들에게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인솔자 일꾼에게 또 기회가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 효력을 조금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선민에게 유리한 사역을 조금 할 수 있으며 비록 진리의 생명을 공급하지는 못하지만 뚜렷한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거짓 인솔자들은 소질이 낮아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해 교체되었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기 때문에 제명해서는 안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일을 하여 선민들의 분노를 일으킵니까? 그는 악인과 적그리스도만 발탁하여 인솔자 일꾼으로 세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이 진리를 추구하여 진입하는 길에 걸림돌과 장애물을 놓고 사탄 마귀들을 놓아 중간에서 하나님의 선민을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큰 악에 속합니다! 무릇 각 목양 구역, 각 구역, 각 소구역에 적그리스도들을 발탁하고 안배해 인솔자로 세우는 것이면 다 큰 악에 속하고, 이런 사람은 극악무도한 자입니다! 그 외에 어떤 사람은 각 구역과 각 소구역에서 적그리스도와 악인이 권력 잡고 있는 것을 보아도 전혀 개의치 않고, 사탄이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아무리 해를 끼쳐도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자신의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만 생각합니다. 이는 온갖 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것도 악을 행하는 것에 속하는데 좋은 놈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선민들을 아끼고 보호해 주는 사람입니까? 인솔자 일꾼이 될 자격이 있습니까? 인솔자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선민들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인솔자가 된 악인 혹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제거하거나 도태시키거나 교체시키지 못한다면 인솔자의 사역을 할 자격이 없고 양심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도 악인에 속합니다. 요즘 일부 목양 구역의 인솔자 일꾼들은 전적으로 적그리스도와 악인에 대해 조사하여 하나를 발견하면 하나 제명하고 둘을 발견하면 둘을 제명하면서 하나님 집의 마지막 사역에서 즉 “가짜와 악당을 제거하는” 사역에서 실제적인 사역을 좀 했습니다. 저는 이 몇몇 목양 구역의 사역 보고 내용을 보고 나서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괜찮고 실제적인 사역을 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사람이 도대체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곧 드러날 것입니다. 물론 매번의 선거에서 100% 다 합당할 수는 없습니다. 70~80%만 합당해도 이미 괜찮은 편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고 실제 사역을 좀 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간파할 수 없고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인솔자가 아닐 때는 여러 가지 사역에서 아주 열정적이고 아주 부담이 있어 보이지만 정작 그 사람을 선출했을 때 그 사람이 도대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도대체 사역을 함에 원칙을 견지할 수 있을지 이런 일은 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옛말에 “사람은 지내 봐야 안다”라고 했듯이 막 사역을 시작할 때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도 역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마치 낯선 사람을 접촉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드시 한동안 지내 봐야 하는데 그 한동안은 바로사람을 드러내는 시기입니다. 그 사람이 도대체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는 최종에 다 드러날 것입니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라면 희망이 있고 틀림없이 진리를 얻을 것입니다. 만약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 악인이라면 진리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이런 사람은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정말로 마음속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구비하고 반드시 실행하고 반드시 살아 내야 한다고 요구하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입니다.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가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는데 이 실제가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는 또 사람의 생명 격언으로 불립니다. 생명의 격언이 바로 진리가 사람의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의해 살아간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만약 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영생의 도를 얻은 것입니다. 지난날에 우리는 무엇을 영생의 도라고 하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고, 이방인들이 말하는 부자가 되는 길과 생존의 길만 들어보았습니다. 이방인들의 생존의 길과 부자가 되는 길은 사람에게 무엇을 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저 육체가 먹고 입을 수 있는 것과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것만 보장해 줄 뿐,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의 생명은 짧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로 짧습니까? 몇십 년입니다. 그것도 특별한 재난이 닥치는 것은 포함하지 않고 말입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나서 며칠 안 되어 죽고, 어떤 사람은 10여 살까지 살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20여 살까지 살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50여 세에 죽는데 죽는 데는 기한이 없습니다. 온 세상은 곳곳이 다 재난입니다. 공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고 음식물까지도 오염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곳에는 전쟁과 기근, 온역이 임해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이 죽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아주 짧습니다. 그럼 영원한 생명의 도를 어떻게 얻어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고 요구하신 그 실제들을 다 살아 내고 다 실행하여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도입니다.

어떤 사람이 또 묻습니다. “그럼 영원한 생명의 도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한 가지 방면뿐인가요?” 아닙니다. 여러 방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 맞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멸하시고 사탄을 멸하셔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멸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하면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몇 년을 경력하고 나서 “이 길은 정말 좋습니다. 근데 실행이 안 됩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일을 하기만 하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건 더욱 어렵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저의 좋은 것을 다 남에게 베풀어 주고 어디서든 다른 사람을 생각해 준다면 제 자신은 아무것도 없게 돼요.”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여기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도 하지 못합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이 두 가지 가장 큰 계명이 있었지만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여기에 길이 있습니까?

【108-A-3】

말세에 하나님은 왜 심판 사역을 하시겠습니까? 심판 사역을 하는 의의는 너무나 깊습니다. 바로 사람의 사탄 본성을 해결하고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 속에 존재하는 사탄의 독소와 사탄의 철학을 해결하며 사람의 사탄 성품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에게 속하는 이런 것들이 다 심판을 통해 정결케 된 다음 사람이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실행한다면 한결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심판 사역은 바로 사람을 온전케 하여 진리를 얻고 영생의 도를 얻게 하는 사역입니다. 만약 말세의 심판 사역을 거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없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수 없으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거나 죽기까지 순복하는 데에 도달할 수 없고, 하나님께 충성하거나 하나님과 합하는 데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런 진리를 사람 안에 만들어 넣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 합니까? 심판의 말씀에 의해, 많은 진리를 발표하는 것에 의해 사람을 철저히 정복하여 자신이 패괴(역주: 부패, 타락)된 진상과 진정한 면모를 분명히 보게 하고 그 다음 자신을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하게 합니다. 이래야 사람의 마음이 비로소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하며,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만물의 주재자이시고 인류의 구세주이시고 지금까지 사람을 자신의 혈육처럼 사랑하시며 사람을 이끄시고 사람에게 공급해 주시는 영원한 참 하나님이심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심판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생겼고,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치 않음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존귀하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사람이 경배할 가치가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인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께로 향할 때가 바로 몸과 마음을 다 하나님께 바치기 원할 때인데, 이런 효과는 무엇에 의해 도달하게 됩니까? 바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도달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한 것이 얼마큼 깊고 명백해지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그만큼 깊고 명백해지며 사탄에 대한 미움도 그만큼 깊고 명백해집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심판과 형벌은 참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사역으로 너무나 귀중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은혜시대에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아무리 경력해도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저 하나님의 존재만 인정하고 예수님의 성품이 자비와 긍휼이라는 것만 봤을 뿐 더 깊은 인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 더 깊은 인식이 없었겠습니까? 이것은 사역의 성질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단지 구속의 사역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은 말씀의 심판 사역이고 사람을 온전케 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사역이며,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효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심판을 경력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발표하신,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얻게 되는데, 이 모든 진리는 다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이고 다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며 다 하나님의 생명 성품의 유로(流露)입니다.

만약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을 따라야 하며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는 것만 알 뿐이라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런 것은 영적 도리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 참된 인식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영적 도리를 알아도 쓸모없으며, 누구도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을 위해 화비(역주: 헌신, 소비)했든지, 어떻게 복음을 전했든지, 어떻게 주님을 증거했든지 생명 성품이 변화되지 못했고 주님에 대한 인식도 얼마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사랑이시고 그 사랑에는 긍휼과 관용과 인내가 포함되어 있고 주님이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왜 도달하지 못합니까? 이제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람에게 사탄의 성품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본성이 안에서 사람을 통제하고 속박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들을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심판과 형벌에 의해 사람을 땅에 엎드리게 하셨고 인류가 깊이 패괴되어 살아 내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없고 다 마귀 사탄의 형상임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럼 도대체 사람이 마귀입니까 아니면 사탄이 마귀입니까? 이렇게 대조해 보니 다 마귀입니다. 사탄은 근원이고 사람은 사탄의 후예이므로 다 마귀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람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단지 사탄에게 패괴된 것뿐만이 아니라 깊이 패괴되어 그야말로 산 귀신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서 사람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원하지만 해내지 못하고 실행하고 싶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탄의 본성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사람 안에는 사탄의 철학, 사탄의 논리, 사탄의 관념, 사탄의 상상들이 너무 많아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면 이 사탄의 것들이 다 나와서 당신의 마음을 제어합니다. 그것이 당신을 가로막고 방해하면 당신은 거기에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할까 아니면 자신을 위할까?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는데 내가 정말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면 다들 나를 바보라고 할 거야. 그러면 내가 많은 손해를 보게 되잖아!’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싶어도 순복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려고 하면 사탄이 방해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사탄이 또 방해하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화비하려고 해도 사탄이 여전히 방해합니다. 진리가 없기 때문에 당신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사탄의 관념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탄에게 순종하게 되며 패괴된 육체를 따르게 되어 결국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실행하지 못하게 되고 그저 사탄의 말만 실행하고 사탄의 철학만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실행할 때 마음속에서 사탄의 어떤 것들이 나와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막는지, 지금 우리가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을 버리겠습니다. 불신자 남편과 자녀는 저한테 필요 없고 저의 소유가 아닙니다.” 기도할 때는 마음이 굳세져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집문을 나설 때는 두 다리가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막 넘으려고 할 때 사탄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집은 여러 해 동안 수고하고 노력해서 세운 집인데 그저 이렇게 버리고 포기한다고? 그럴 수 없어!” 보세요. 문턱도 넘지 못합니다. 남편을 버리려고 하니 남편이 눈물을 떨구면서 “당신 정말 너무하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 거요?” 남편이 이렇게 말하고 눈물까지 흘리니 또 버리지 못합니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보면서 “엄마가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려고 하는데 찬성할 거야?”라고 물었을 때 아이가 “엄마, 이젠 날 사랑 안 해?”라고 말하면 또 가슴이 찢어질 듯할 겁니다. 사람은 사탄의 이런 것들에 의해 통제받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마지막에 어느 날엔가 당신을 지옥에 멸해 버리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자신을 탓해야죠. 누가 사탄을 배반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마지막에 죽어서 영계에 가 보면 남편이랑 아이랑 다 마귀이고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저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두 영혼입니다. 하나의 육체를 입으니 이렇게 당신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은 왜 사탄에게 속박받고 통제받습니까?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심오한 비밀을 열어 주셨는데 그 무슨 육체 관계며 부부며 가정이며 터놓고 말해서 다 분토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분토가 맞나? 분토가 아니야,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따뜻하다고.’ 이것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가 아닙니까?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탄의 관념과 사탄의 철학, 사탄의 논리를 믿습니다. “이거 진짜네. 너무 실용적이다. 없으면 안 되겠어, 떠날 수가 없어!” 보세요, 이런 사람은 사탄을 떠나면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가 없지 않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진리가 없으면 사탄의 말이 다 허무맹랑하고 다 육체적인 것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는 것이고 진리가 아니고 영원한 사실도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며, 진리가 없으면 겉면에 미혹됩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을 때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다 진리이고 다 영원불변한 사실임을 믿게 됩니다. 육체의 겉면의 이런 일들이야말로 가짜이고 영원까지 존재하지 못하며 허무맹랑한 것들입니다. 부부관계가 가짜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왜 가짜라고 합니까? 마치 마술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매님 내외가 아주 사이좋게 살고 애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화비해야 하는데 집에만 있으니 양심이 갈수록 평안하지 않습니다. 마귀 같은 남편과 같이 힘들게 일하다 보면 생명까지 다 잃을 것 같으니 가정을 벗어나야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해도 모질게 마음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다가 한밤중에 깨서 보니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개가 왜 여기에 있지? 어젯밤에 분명 남편이 여기서 자고 있었는데!’ 그 자매님은 혼이 나갈 정도로 놀랐던 것입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건 한 마리 누렁이가 환생해서 내 남편이 된 거였네. 인간의 형체를 입고 이렇게 오랫동안 날 속였으니 결국은 내가 이런 개랑 오랜 세월 부부로 지내온 거였어. 얼른 떠나자, 이런 개랑 살지 말고.’ 어떤 사람은 귀신이 환생해서 육신을 입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동물이 환생해서 육신을 입기도 합니다. 사람의 그 두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정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 만져 보고 뼈와 살이 있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남편이고 사람이야, 너무 사랑스러워!’ 결국 영계에 가서 보니 원래는 귀신이었는데 육체를 입고 오랫동안 사람을 미혹했던 것입니다. ‘나 어쩜 이렇게 어리석지?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사람의 육안은 영계를 직접 꿰뚫어 볼 수 없고 육체 안에 어떤 영이 환생했는지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 즉 이생의 물질세계는 진짜이고 사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계에 가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며 다 가짜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육체로 볼 수 있는 것은 다 겉면의 것이지 진상이 아니기에 육체로 볼 수 있는 이런 사실들은 진리가 아니고 사실이 아니라 가상입니다.

【108-A-4】

도대체 진리란 무엇입니까? 사람이 말하는 지식과 과학의 그런 이론들이 진리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고 다 영원한 긍정적인 사물, 영원한 사실, 영원한 실제임을 믿으세요.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영원불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절대로 틀릴 리가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진리에 대해 이런 개념적인 인식과 신념이 있게 되면 진리를 추구하는 믿음을 견고케 할 수 있습니다. 정식으로 진리를 추구하게 되면 가끔씩 연약해지는데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너희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 “너희는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런 말씀들을 행하기 어렵습니다. 행하기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말씀하면 꼭 그대로 하고, 그대로 하면 꼭 이루며, 이루면 꼭 영원까지이다.” 만약 사람이 행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 그런 말씀들을 하셔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빈말들을 하셔서 사람이 영원히 해내지 못하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사람이 정말로 해낼 수 없다면 하나님이 하신 그 말씀들이 다 의의 없는 것 아닙니까? 분명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길이 있고 심오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길은 무엇일까요? 기도를 통해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통해 길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실행할 때 믿음을 얻게 되고,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실행하게 하시면 달콤함을 맛보게 됩니다. 그때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와 성령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진리를 실행하여 다시 그 달콤함을 맛보게 될 때 진리를 떠날 수 있습니까? 그때면 진리에 대해 어떻게 보겠습니까? 진리는 너무나 실제적이고 진리야말로 사람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탄의 철학, 육체의 이익,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진리가 아니고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없으며 그래도 진리가 귀중합니다. 이것이 진실되고 의의 있습니다! 반드시 진리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럼 이 진리의 문을 어떻게 열겠습니까? 기도와 진실된 믿음 그리고 고통받고 대가 치르는 것을 통해 열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경력과 인식이 있을 때면 진리의 문을 두드려 연 것과 같아 “들어섰어, 길과 원칙이 생겼어!”라고 말하게 됩니다. 어떤 한 가지 진리든지 다 간고한 노력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이 문을 두드려 열 수 있습니다. 일단 이 문을 두드려 열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이건 마치 보배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보배가 어디에 있는지 측량해 보고 그다음 그 곳에 가서 정확한 위치를 찾아보고, 노력해서 찾아내면 파내기 시작하고 또 노력해서 보배의 문을 열면 손 닿는 대로 보배를 얻게 되는데, 여기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실제에 진입해서 진리를 얻는 것도 과정이 있다고 합니다. 이 과정은 보배를 얻는 것보다는 간단하고 쉽습니다. 보배를 얻는 것은 몇십 년을 노력해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비록 진리를 얻는 것도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3~5년이면 한 가지 진리를 깨닫고 진입할 수 있으며, 7~8년이면 한 가지 비교적 중요한 진리를 깨닫고 진입할 수 있으며, 10~20년이면 각 방면의 주요 진리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러면 얻은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면 완전히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진실된 마음을 갖추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도달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마음을 갖춰야 하겠습니까? 만약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고 간사한 사람을 증오한다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이 진리를 얻기가 쉽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그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실행해 보세요. 어떤 일은 실행하기 쉬워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실행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은 닥치면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진짜 솔직한 말을 하면 체면을 잃게 되고, 진짜 솔직한 말을 하면 불이익을 당하게 되고, 솔직한 말을 한 마디 하면 직업을 잃게 되고, 솔직만 말을 한 마디 더 했다가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어.’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붙잡혔는데 자백서를 씁니까, 안 씁니까? 쓰면 옥문을 나서고 안 쓰면 3년은 옥살이할 것입니다. 입장을 밝혀 그 한 마디 솔직한 말을 함에 있어 대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사람은 시험 앞에서 그렇게 큰 대가가 따르는 것을 보고는 ‘차라리 자백서를 쓰고 말자. 쓰고 나면 자유롭고 옥살이도 안 할 테니까.’라고 자백서를 씁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진리를 실행하고 생명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만약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심으로 진리를 사랑한다면 대가를 치르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대가를 치르는 것이 뭐 두렵겠습니까? 성실한 사람만 되면 됩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고 나서 보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런 것이 닥치지 않습니다. ‘아,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고 축복도 해 주셨어.’ 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 없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시험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요구하신 대로 하고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보다시피, 진리를 실행하려면 확실히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정말로 진리를 실행하면 확실히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있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있다는 것을 보았으면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신념이 있다면 실행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 가장 큰 시험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험을 제외하고는 보통 흔히 있는 일은 기껏해야 체면을 좀 잃거나 작은 불이익을 좀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리석어 강도에게 “저의 집에 돈이 얼마 얼마 있어요.”라고 솔직한 말을 하면 강도가 “너희 집에 돈이 많다고? 좋아, 그럼 뺏으러 가야지.” 그리고는 다 빼앗아 가니 “아차, 성실한 사람이 되니 손해를 보네. 강도가 알고는 뺏어 갔어.” 빼앗아 가도 당신이 간증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강도가 뺏어 가도 나는 성실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너한테 사탄이 빼앗아 간 것보다 몇 배나 더 축복해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내가 성실한 사람이 됨에 지혜가 없어 우매한 짓을 하는 바람에 돈을 사탄에게 빼앗겼어.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우매함을 기억하시지 않고 나를 축복해 주시다니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러우셔. 앞으로도 계속 성실한 사람이 될 거야. 하지만 무지몽매한 성실한 사람이 되지 않고 성실하면서도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 더욱 하나님의 기쁨을 얻어야겠어.’ 이렇게 실행하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이 진리는 실제에 진입한 것이 아닙니까? 실제에 진입하고 나서 다시 전면적으로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면 나중에 당신과 접촉한 사람들이 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고 분명히 좋은 사람입니다. 우린 다 감탄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해 주시고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다 당신과 가까이하기를 원하고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당신을 쓰셔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증거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 이 정도에 이르게 되면 베풀어 주고 대가를 치르면서 손해 보는 것이 많겠습니까 아니면 얻는 것이 많겠습니까? 얻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짧게 생각하고 이익만 생각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면 손해 보고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업신여김을 당할 거야.’ 사실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 되어 진리를 얻고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와 성실한 사람이 되는 도를 완전히 살아 낸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클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당신을 감탄하고 찬성하고 가까이하며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며 당신과 친구가 될 것입니다. 손해를 봤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축복은 너무나 크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가득해서 흘러넘치고 아주 풍부합니다.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 비록 대가를 좀 치르고 손해를 좀 보고 체면이 좀 구겨져야 할 때도 있긴 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이 아주 평범한 진리를 실행해도 하나님의 이토록 큰 축복을 받는데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한다면 받을 복이 크지 않겠습니까? (큽니다.) 매사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사람에게 순복하지 않으며 매사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으면 일부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 기분을 상하게 하며 가족들이 지지하지 않고 교회에서 어떤 사람은 당신을 버리고 어떤 사람은 당신에 대해 불만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고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어느 한 단계에서 참된 간증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추구하는 그 사람들도 갈수록 당신에게서 뭔가 보게 되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는 사람을 말하면 ○○형제(자매)예요. 그 사람은 진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어서 정말 감탄이 나오네요.” “저는 그 사람 엄마인데 제 말은 안 듣고 하나님 말씀만 들어요.” “저는 그 사람과 가장 친한 친구인데 제 말은 안 듣고 하나님께만 순복합니다.” 집의 불신자 남편까지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우선이어서 누구도 하나님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남편인 저도 안 됩니다.” 이러면 간증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렇게 칭찬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만약 각 교회마다 이렇게 당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일부 사람들은 당신을 칭찬하면서 탄복합니다. “이 사람은 정말 진리를 실행하고 실제가 있네요. 이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정말 성실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본분을 함에 정말 원칙이 있고 또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이러면 진리를 얻은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야말로 진정 진리를 얻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얻은 사람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 볼 수 있고 사탄도 탄복합니다. 그러면 말해 보세요, 진리를 얻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진리를 얻고서 누림과 위로를 얻는 것은 진리를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손해 보고 고통받는 것보다 몇 배나 높은지 모릅니다. 진리를 실행할 때 잠시는 고통을 좀 받고 모욕을 좀 받아도 다음날이면 기쁘고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면 성령의 깨우침이 있으며 진리를 교통하면 실제가 있고 형제자매들과 나눌 때 형제자매들이 유익한 점을 얻고 당신을 찬성할 것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막 고통을 조금 받자 바로 이렇게 많은 것을 누리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봅니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손해 보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바로 관념을 돌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건 너무 힘들고 많은 손해를 봐야 해. 자칫하면 모두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어.’ 너무나 무섭게 상상했네요. 잘못 예측한 것 아닙니까? 그 정도로 무섭습니까? 공안국 안에서만 시험이 좀 크고 고통이 좀 크지 보통 사람 앞에서는 별거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안국에서는 고통을 좀 받아도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 맞서지도 않고 그저 사실만 말하면 됩니다. “내 목숨은 다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끝까지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미안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면목이 없어요. 당신은 양심적으로 처신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양심적이라면 저도 양심적으로 하게 해 줘야죠. 저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고 끝까지 믿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사탄이 보고 “이 말은 아주 진실해.”라고 하면서 부끄러워 할 말이 없고 수치를 당합니다.

【108-A-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실행하기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의의 없고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사랑하는 것도 의의 없으며 천지만물 중에 오직 하나님만이 가장 사랑스럽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가장 의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도대체 도리입니까 아니면 실제입니까? 이 말을 해석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조금도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빈말인데, 이것을 구호라고 합니다. 정말 실제가 있다면 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시기에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진리가 없고 생명이 없으며 길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점에 근거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실제적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근거가 아닙니까? 이것은 근거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있습니까? 생명이 없으면 길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인생에 길이 없고 진리가 없다면 동물이 아닙니까? 살아 있다면 반드시 진리, 길,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진리, 길, 생명에 대해 알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이 보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은 인생에 대해서, 저에게 있어서 아주 의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떠난다면 흑암에 떨어지고 멸망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리, 길, 생명이시라고 한 것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진리, 길, 생명이시라는 것은 조금도 틀림없기에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의의 있고 가장 실제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근거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도리입니끼? 이 말은 실제적입니다. 그 밖에 또 “하나님께서 저를 만드시고 저의 모든 것을 명정(역주: 운명적으로 정함)하시고 안배하셨으며 저의 일생을 이끌어 주시고 저의 피조됨과 생존 그리고 영원한 세상에 가는 것을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이시고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어찌 저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저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아주 진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사랑스러우십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양심과 인성이 없는 짐승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매 한 마디는 다 사람이 생존하는 근거이고 다 사람 생명의 근원이며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러우십니다. 하나님에 대해 이런 인식이 없다면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빈말이며, 만약 진정 어느 정도의 인식이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럼 말해 보세요, 무엇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입니까? 사람이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고 하나님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행에 어떤 원칙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면 매사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합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을 할 때 먼저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을 먼저 만족시킬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을 먼저 만족시킵니다. 사람의 일 처리 원칙이 이렇지 않습니까? 그럼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 내가 이 일을 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 수 있을까? 이 일을 하면 하나님께 미안하지 않을까? 만약 하나님을 상케 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 수 있는 전제라면 사람의 요구대로 해 줄 수 있어. 그러나 만약 사람이 요구한 것이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하나님의 마음을 상케 한다면 안 돼. 하나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이시기에 사람의 미움을 살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상케 하지 않을 거야.’ 이런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에 닥치는 많은 일들에서 하나의 원칙을 확정합니다. 이러한 원칙을 확정하면 닥치는 모든 일에서 늘 하나님과 연락하지 않겠습니까? ‘나보고 어떤 일을 말하라고 하고 입장을 밝히라고 하는데 나의 이런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까? 만약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다면 입장을 밝히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밝히지 않을 거야.’ 교회에서 어떤 일을 안배할 때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 죄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아닐까요? 만약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고 안배에 순복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일이 하나님께 죄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그 일은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저에게 거절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실행하면 원칙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전적으로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실행함에 길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길이 있으면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길과 원칙이 없고 개인의 이익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주 힘들었던 것입니다.

만약 지금 길을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교통해서 원칙도 있고 길도 있는데 힘들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힘들고,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힘들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위해 일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워요? 내가 간절히 부탁했는데 들어주지도 않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말합니다. 툭 터놓고 말해서,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어려워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하든 달가워할 것입니다. 보통 친구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면 일반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자꾸 이유를 대서 거절하면서 이러쿵저러쿵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일을 부탁한다면 있는 힘을 다해서라도 해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한 마디 하면 왕의 명령과 같아 감히 불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럼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 대해 분명하게 교통한 거겠죠? 사람이 무엇을 추구해야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구비해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진리를 좀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좀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방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이렇게도 어렵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고 진리를 갖추지 못해 하나님에 대해 조금의 인식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분명히 사랑스러운 분이라고 느껴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많이 깨달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더 커집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신용이 높다는 것을 경력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경력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잇따라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신실하시고 너무나 사랑스러우십니다.” 이런 사람은 이 방면에 대해 인식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고생하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해 주신 것을 보고는 “하나님은 너무도 좋으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사람을 자신의 골육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너무나 사랑스러우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방면에서 투철히 경력하면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여 성실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니 잇따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을 보고는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러우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느 방면의 진리에서든 진입이 있어 하나님에 대해 조그마한 인식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실행하고 사람의 말은 듣지 않았어요. 내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실행했을 때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깨우침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면 빛비춤이 있었는데 마치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나에게 공급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러우십니다!”

【108-A-6】

만약 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많은 참된 인식이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완전해지고,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실제적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 우선이며 다른 것은 다 상관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는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께 순복하고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매사에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이 바로 가장 의의 있는 인생입니다. “저는 이 진리가 아주 실제적임을 굳게 믿습니다. 사람이 이 진리를 얻어 생명이 있게 되면 영원토록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영생의 도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한다면 사탄은 “아니야, 성실한 사람이 되면 바보야, 성실한 사람이 되면 손해 보니까 성실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 그래서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간사한 사람이 돼야 해. 거짓말하지 않으면 큰일을 할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계속 거짓말만 하고 사탄의 거짓말에 의해 살아간다면 결국 어느 날엔가 죽게 되고 멸망될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면 가끔씩 손해를 좀 보고 훼방과 비웃음도 좀 받지만 영생을 얻게 되고 매사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재난이 올 때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나중에 가서 보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진리이고 참 도이며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갖추라고 요구하신 것이기에 성실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이것이 참 도가 아닙니까? 인생의 바른길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틀립없습니다! 하나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 영원히 살고 하나는 간사한 사람이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 지옥에 갔다면 어느 것이 참 도이고 어느 것이 진리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에는 진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참 도이고 진리라고 하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금전이 진리이고 지위가 진리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금전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해 보세요. 추구하고 추구하여 대통령이 되었어도 꿀꺽 죽어 버리면 공허하고 의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므로 살아갈수록 더 젊어지고 영생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또 자식을 낳아 부유한 나날을 보내고,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금은보석을 감고 다닙니다. 마지막에 몇 년 안 돼서 재난이 닥치면 죽는데, 육체가 죽어 썩은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가정을 버리고 남편(아내)과 자녀를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면서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으면 재난이 닥쳐도 죽지 않고 국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것이 참 도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사람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하나님에게서 권력을 빼앗으며 인솔자 일꾼이 되어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다가 마지막에는 재난이 오면 꿀꺽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지배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솔자가 되라고 하시면 인솔자가 되고 또 어떤 본분을 하라고 하시면 그 본분을 할 겁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면 다 순복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진리를 얻어 살아 남게 되고 재난이 닥쳐도 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바른길을 가고 어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다 드러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을 믿어도 얻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기에 몇 년 동안 고생해서 진리를 얻습니다. 진리를 얻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데, 무궁무진합니다. 마지막에는 진리가 바로 영원한 생명이고 진리가 생명이 되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보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할 때 친척과 친구들이 뭐라고 합니까? “이건 철밥통이야, 근데 이렇게 그저 버렸어? 멀쩡한 가정을 버려? 행복한 생활은 안 하고, 너 바보 아니야?” “내가 추구하는 게 뭔지 알기나 해요? 내가 추구하는 건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는 거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당신들이 추구하는 가정이랑 밥그릇이랑 직장은 다 분토처럼 값없는 거예요.” 그러면 다들 어이없이 웃으면서 “똑똑한 줄 알았는데 막연하고 보이지도 않는 것만 말하네, 비현실적이야.” “비현실적이라고? 앞으로 그걸 현실로 되게 해서 보여 주죠.” 이렇게 추구하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됩니까? 어느 날엔가 큰 재난이 닥치면 “만약 큰 재난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아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그 도가 맞을 거야. 그건 참 도였어! 우리는 세상을 좇으면서 비록 육체의 복을 좀 누렸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죽잖아! 한순간의 편안과 행복이 영원한 멸망과 고통을 가져오다니, 이건 너무 어리석은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은 잠시적인 버림과 고통으로 영원한 복락과 영원한 누림, 영원한 복을 가져오고 영생을 가져왔어, 우리는 안목이 짧았고 그 사람들은 멀리 보는 눈썰미가 있고 원대한 포부가 있었어, 이 사람들이야말로 대단히 총명한 사람들이었네.”라고 말하면서 이방인들 모두가 탄복하게 됩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영생입니까? 무엇이 영원한 멸망입니까? 이 두 가지 길에 대해 이제는 분명하게 보았겠죠? 사람이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면 ‘내가 사람들에게 설교를 해 주고 사역을 하고 지위가 있으니 사람들이 다 내 눈치 보며 틀림없이 내 곁을 맴돌 거야, 이게 얼마나 누림 있는가!’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하나님과 겨루며 지위를 다투는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선민을 빼앗는 것이며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고 죄를 짓고 있는 것인 줄을 모릅니다. 이러면 눈먼 것 아닙니까? 교회에서 당신이 아무리 지위가 있고 모두가 아무리 당신을 옹호하고 찬성하며 당신 곁을 맴돌아도 그것이 좋은 일입니까? 그것이 복입니까? 그것은 영원한 죄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득죄하는 일입니다. 뭐 지위와 권세를 쟁탈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시키신 것을 하고 하라는 본분을 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얼마나 평탄하고 얼마나 환하며 얼마나 누림이 있습니까! 잠시적인 지위의 복을 탐하며 누리다가 영원한 화와 영원한 저주를 초래한다면 극도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지위와 명리를 추구하는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은 겉면의 소질이 좋고 언변도 좋고 머리도 똑똑하지만 사실 다 귀신의 성품이고 다 총명한 척하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분명히 아셨겠지요? 이런 일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진리입니까? 무엇이 생명입니까? 무엇을 추구해야 합니까? 그래도 실속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면 어떤 고생을 하든 다 영광이고, 육체의 누림을 추구하면 무엇이든 다 분토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맞습니까?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 방면에 힘을 내지만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최종에 진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어떤 원인으로 인해서든지 다 가장 아쉬운 일이고 평생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진리를 잘 추구하려고 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 다들 자신을 인솔자로 선거하지 않으면 이 일에서 걸려 온종일 이 일을 생각합니다. ‘왜 나를 선거하지 않았을까? 내가 한 게 괜찮고 표현도 꽤 좋았었는데 왜 날 선거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나서 원인을 파헤칠 것입니다. ‘누구 누구는 왜 나를 안 선거했을까? 그러면 누굴 선거했을까? 왜 그 사람을 선거했지?’ 그리고는 이 일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정찰하기 시작하고 두세 달 동안 정찰한 결과 어떻습니까? 진리를 얻지 못하고 무엇을 얻었습니까? “저 사람들은 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음모나 궤략을 꾸미고 꿍꿍이를 꾸미는데 나는 무슨 바보짓을 하고 있지? 무슨 진리를 추구한다고, 나도 안 추구할 거야.” 이런 사람은 영리합니까? (영리하지 않습니다.) 이런 바보 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이제 막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는데 남편(아내)이 죽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막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는데 재난이 닥쳐 가족이 죽다니 하나님의 축복도 없잖아, 내가 추구하지 않았더라면 안 죽었을 텐데, 설마 잘못 추구한 건가? 이러면 추구하지 않겠어. 계속 추구했다가 다른 사람까지도 죽으면 더 곤란해.’라고 생각하면서 추구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은 터득 능력이 있습니까? 생각한 것이 맞습니까? (틀립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무슨 원인으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까? 자그마한 시련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일이 조금 임함으로 인해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빼앗긴 것입니다.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항상 맑은 날이어야 하는데, 해가 나오고 먹구름이 사라지면 마음이 유난히 트이고 기뻐하며 그다음 진리를 추구함에 비로소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이제 막 진리를 추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면 ‘맨날 비가 와서 추구하지 않겠어, 재미없어. 진리를 추구해도 별로 행복하지 않고 하늘도 안 도와주는데 뭐, 무슨 진리를 추구한다고!’라고 생각하면서 늘 밖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구속을 받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무지몽매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면 뭐든 다 순조로워야 하고 뭐든 다 뜻대로 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야 계속 진리를 추구합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다가 집에 도둑이 든 일 때문에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그만둘 수 있고, 좌절을 조금 당하면 넘어지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데, 이런 사람은 기개가 없는 사람입니다.

사실상, 진리를 추구함에 모든 것이 다 순조롭습니까?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흔히 시련의 환경 속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할수록 시련의 환경이 더 많아지고 닥치는 모든 일에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더듬게 됩니다. ‘내가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면 왜 이런 일이 임할까?’ 고민이 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 한 단락을 찾아 분명하게 교통해서 이 고민을 해결하면 마음이 환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시련은 더 커지고, 시련이 클수록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 섞인 불순물이 더욱 정결케 됩니다. ‘아, 이런 일이었구나.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시련이 임하고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닥친다 했더니 이제 보니 내 믿음을 단련시키고 내 믿음을 온전케 하려는 거였네.’ 그럼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사람이 고통받아야 한다면 고통받고 나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생명은 도대체 어떻게 자라납니까? 고통받는 것을 통해 참된 믿음이 자라나면 각종 시련을 이겨 낼 수 있고 실패와 좌절을 견뎌 낼 수 있으며 어떤 고통을 받든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바로 고통과 시련을 받는 것을 통해 도달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건 하나님의 사랑이야! 이런 시련이 임하지 않았더라면 내 생명이 자라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섞인 불순물이 정결케 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볼 수 있었을까? 진리의 가치를 알 수 있었을까? 이런 효과는 고통받는 것을 통해 도달한 거야.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믿음을 얻지 못하고 이런 진리를 얻지 못했을 거야. 이제 보니 고통받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어. 안일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 좋은 일도 아니며 안일한 가운데서 사는 사람은 생명이 자라지 못해!’라고 깨닫게 됩니다. 여러 차례 시련을 통해 이 일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조금이나마 참된 믿음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이 아닙니까?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이 바로 이렇습니다.

【108-A-7】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부모를 통해 당신의 믿음을 온전케 하셔서 육체를 배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우심을 보게 하십니다. 당신의 부모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다면 이때 사탄은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당신에게 묻게 합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부모님이 왜 돌아가셨니? 너 그래도 믿을 거야?” 이 일에서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합니까? 간증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좋은 일이야. 부모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짐이 되지 않았을까? 다 사탄인데 일찍 돌아가면 내가 그만큼 일찍 해방받은 거지 뭐, 이젠 더욱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게 됐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것이 간증이 아닙니까? (간증입니다.) 사탄은 지켜보다가 당신이 이런 말을 하자 참소할 것이 없어 도망가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가 죽어 짐이 없어지니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지쳐도 다시는 아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에 의해 진리를 얻습니다. 그럼 당신은 아이와 진리를 ‘바꿀’ 생각이 있습니까? 어느 것이 의의 있고 가치 있습니까? 진리를 얻으면 영원한 생명이 있게 됩니다! 아이가 큰 병에 걸려 침상에서 거의 죽게 되면 어떻게 기도해야겠습니까? “하나님, 만약 당신께서 거두어 가려고 하신다면 이 아이를 거두어 가셔도 저는 순복하겠습니다. 저는 오로지 진리를 얻고 당신을 얻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거두어 가시지 않으면 짐이 돼서 진리를 얻고 새명을 얻는 것이 더 힘들어집니다.” 이렇게 기도할 자신이 있습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거둬 가 달라고 하면 거둬 가고, 네가 거둬 가기를 원치 않으면 너의 짐이 돼서 진리를 얻는 시기를 놓치게 될 거야. 그러니 너 스스로 선택하여라. 도대체 아이를 원하느냐, 진리를 원하느냐?” 이런 일이 닥치지 않았으니 농담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언제 가서 정작 임한다면 진짜 그렇습니다. 이것이 실제 공과(功課)가 아닙니까? 육체 친척, 부모, 자녀를 포함해 주변의 각종 인ㆍ사ㆍ물 대부분은 바로 당신을 온전케 하기 위해 효력을 하는 것이고 다 효력을 하는 도구입니다. 효력을 다 하고 나면 거둬 갈 것입니다.

이제는 당신 주변의 효력 도구를 다 사용했습니까? 아직 다 사용하지 못했다면 정말 시련이 임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효력을 합니까? 먼저 하나님 집의 적그리스도가 어떤 효력을 하는지 말해 봅시다.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시작부터 힘을 쓰고 열심히 하며 버리기도 해서 다들 보고 “좋아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네요. 모든 걸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니 인솔자로 선거해야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인솔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인솔자가 되고 나니 득의양양해서 ‘봐봐, 그래도 내가 괜찮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설교하면서 위세를 부리고 자신을 나타내는데, 나타낼수록 숭배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사람들이 다 옹호하여 마지막에는 큰 인솔자가 되었습니다. 큰 인솔자가 되니 거만을 부리며 자신이 사람들을 이끌어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견해와 다른 사람들을 억누르고 배척하기 시작하고 본연의 일은 하지 않고 육체의 누림을 탐하면서 온갖 악을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온갖 악을 저지르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선민의 눈을 피하지 못합니다. 다들 보고 “이 사람이 이전에 아주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을 행하는 사람이었네. 이건 적그리스도잖아? 원형이 드러난 거잖아?”라고 말하는데 모두가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온갖 악을 행하고 증거가 확실하여 정말로 적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면 이 적그리스도를 접촉하게 하고 체험하게 하고 보게 하고 알게 하고 버리게 하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 선민들의 무엇을 온전케 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분별할 줄 알게 됐어요. 무엇이 적그리스도인지 알게 됐어요.”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간단합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서부터 바르지 못한 속마음을 품고 계속 적그리스도의 길을 추구하면 나중에는 온갖 악을 저질러 도태되고 훼멸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실패한 사람이 멸망하는 결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로 하나님 선민들에게 살아 있는 반면교사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적그리스도를 보면 ‘저 사람은 어쩌다가 멸망의 길에 들어섰을까? 처음부터 뭘 추구했길래? 어떤 악을 저질렀지? 왜 드러나 도태됐을까? 어디가 잘못돼서 그 길로 간 걸까? 저 사람에겐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을까? 왜 여러 번 타일러도 안 고쳤을까? 왜 적그리스도가 됐을까?’ 이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이 길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해도 반성합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다가 어디에서 결론을 얻습니까? 바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인솔자들의 그 살아 있는 교재들을 통해 이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적그리스도가 걸은 길이 왜 멸망하고 침륜되는지 단번에 알게 됩니다. 적그리스도 이 살아 있는 교재가 이런 역할을 일으킨 것 아닙니까? 이 교재를 보기만 하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길로 가야만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만약 이런 살아 있는 교재들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을 얻는지, 어떻게 성공의 길을 가는지, 무엇이 멸망의 길인지,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들의 실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 살아 있는 교재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 성공하고 구원받는 데 도달함에 있어서 좋은 역할이 되지 않겠습니까? (됩니다.) 그들이 적그리스도가 되고 *안받침물과 효력품이 되면 이런 역할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럼 어떤 집의 남편, 부모, 자녀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그들이 늘 꼬드깁니다. “나는 당신 아이잖아요. 엄마(아빠)의 사랑이 필요하니 나를 사랑해 줘야죠.” 하나님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아이와 남편은 자기들을 사랑하라고 꼬드깁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탄을 위해 효력을 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사탄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선민을 시험하면서 쟁탈하려는 것입니다. 가정은 어떤 역할을 일으킵니까? 당신의 마음을 분산시켜 도대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가정을 사랑하는지 봅니다. 가정은 바로 이런 효력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위해 도와주고 사탄의 앞잡이와 도구가 되는 것들은 부정적인 사물에 속합니다. 그런 부정적인 사물들이 하루라도 존재하면 당신에 대한 위협과 위해(危害)가 하루 더 존재하고 사탄의 시험이 당신 곁에 하루 더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해외에 와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합니다. 이치대로라면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집에는 사랑하는 사람, 애인과 가족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전화를 합니다. “당신 마음에 내가 있기나 해요? 나를 사랑해요? 나한테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없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을 졸입니다. ‘언제 돌아가지? 여기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할 수 없어. 그쪽에 아직 가족들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차마 버리지 못하겠어!’ 그것은 사탄이 독침으로 당신의 마음을 꼬드기는 것이 아닙니까? 사탄이 그 독침을 바짝 당기면 당신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집을 사랑하고 남편과 자녀를 사랑한다면 돌아가세요.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에게 자유를 줍니다. 하나님 집의 문은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 하면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본분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가족을 그리워하는데, 양다리를 걸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단성이 없으면 후환을 남기게 됩니다”, 어떻게 선택해야 하면 그렇게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아내(남편)와 자녀는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합니다.) 남편(아내)과 자녀가 있는 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위협을 받고 억눌림과 배척을 당하게 됩니다. 이건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각 사람마다 안에는 싸움과 시험이 있고, 어느 정도의 부담과 짐들이 있으며, 어느 정도의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바로 진리를 깨닫는 것에 의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을수록 더욱 사탄을 배반할 수 있고 더욱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버리거나 포기하기가 어렵고 사탄과 육체를 배반하기가 어렵습니다. 보세요,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정이 너무 깊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늘 아내(남편)와 자녀 그리고 가정의 속박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하지 못하고 진리를 실행하려고 해도 실행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지위심이 너무 강해 지위를 내려놓지 못하고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하며 건성으로 해서 속이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체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해도 얻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고 싶어도 실행하지 못하고 지위를 내려놓지 못하며 정을 배반하지 못하는데, 바로 그 하나의 정과 지위가 그 사람을 망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너무 불쌍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 하지만 늘 배우자를 찾고 싶어 하고 배우자를 찾지 못하면 못 살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배우자를 찾고 싶은 마음보다 크지 않고 강하지도 않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서 실패했습니까? 배우자가 그 사람을 망쳐 버렸고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갔는데, 이런 사람이 적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뜻과 체면이 너무 강합니다. 막 진리를 추구하려고 할 때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가 임하면 체면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면서 이렇게 고분고분 대처를 받고 수치와 모욕을 받아야 한다면 이건 사람을 괴롭히는 것 아닌가? 진리를 추구하면 괴롭힘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 안 할래, 내가 오히려 남을 괴롭히고 싶어. 누가 나를 괴롭히는 건 안 되지.’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육체를 배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안 되고 반드시 육체와 체면 그리고 허영심까지 무엇이든 다 만족할 수 있는 상황에서라야, 조금도 상처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라야 진리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육체의 이익을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보고 육체를 배반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또 가장 불쌍한 한 부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서 이치를 따지려 합니다. ‘하나님 집의 모든 일은 다 내 이치에 맞아야 해. 내가 볼 때 눈에 거슬리지 않고 마음에 들어야 진리를 추구할 수 있어. 만약 한 가지 일이라도 내 눈에 거슬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하나님 집과 맞설 거고 이치를 따질 거야. 내가 이길 때까지 말이야. 안 그럼 난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안받침물: 한 사물을 통해 다른 한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

【108-A-8】

제가 어떤 사람을 한 번 대처한 적이 있습니다. 대처를 너무 심하게 해서 어떤 말은 완전히 정확할 수는 없고 혹은 조금 딱딱하거나 조금 지나치거나 엄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버렸는데 하나님 집에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가? 상면에서 나를 이렇게 대하면 불공평해. 만약 나에게 사과하며 빌지 않는다면 나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거야. 진리를 추구해도 소용없어. 형제자매들이 사과하며 빌 때에야 진리를 추구할 거야.” 그럼 당신은 저를 믿은 거였습니까? 저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믿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왜 저에게 구속을 받습니까? 제가 한 것이 잘못된 것은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제가 잘못한 것 같을지라도 저에게 구속을 받지 말고 진리를 잘 추구하세요. 이러면 되지 않습니까? 당신은 왜 제가 한 일 때문에 늘 관념이 생기고 여기서 걸려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또 하나님이 사람을 잘못 쓰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당신은 이지가 있습니까? 당신이 사람을 아주 나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객관적으로, 사실대로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다윗이 한 번 죄를 범해 하나님께서 징벌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왜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결코 다윗의 그 범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아니라 다윗,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데 왜 간음죄를 범했을까요?” 그럼 다윗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또 있는지 찾아 보세요. 패괴된 인류 중에 과오가 없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완전히 성결한 사람이 있습니까? 설령 간음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을 찾았을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다윗과 비할 수 있겠습니까? 비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간음하지 않은 사람을 찾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할 생각도 하지 않고 사람들이 다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그 한 번의 과오로 징벌받은 후 영원히 다시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합격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다윗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패괴된 인류 중에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나 혹은 앞으로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한 무리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부족함이 있는 것을 용납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입니다. 깊이 패괴된 인류가 이 정도로 하나님께 정결케 된 것은 이미 괜찮은 것이고 사탄을 부끄럽게 하기에 족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요구대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습니까? 당신은 사람을 판단할 줄 모르고 사람을 보고 일을 판단하는 원칙이 틀렸습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만 의해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무엇으로 인해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까? 무엇으로 인해 진리를 추구함에 힘이 없습니까? 교회 인솔자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혹은 교회 인솔자가 잘 대해 주지 않거나 자기를 억누르고 배척한 것으로 인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이 총명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의 이유가 성립됩니까? 교회 인솔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겁니까? 그것은 사람이 선거한 것이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는데 왜 사람의 구속을 받습니까? 사람이 안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도 안 좋다는 것을 뜻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 결점이 있고 과오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도 더럽고 과오가 있다는 것을 뜻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데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왜 늘 사람의 구속을 받습니까? 이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까? 이것이 소탐대실이 아닙니까? 만약 요만한 작은 일도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영향을 준다면 당신의 마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왜 그렇게 힘이 넘칩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왜 고생하고 대가를 지불할 수 있습니까? 왜 하나님을 위해서는 억울함과 괴롭힘 그리고 고통과 모욕을 좀 받으면서 진리를 얻어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작아서 일만 좀 있으면 구속받고 넘어진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중국 속담에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볼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장의 나뭇잎이 눈을 가리면 눈앞에 있는 태산도 보지 못하는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소경입니다. 이렇게 작은 일이 당신을 가로막았습니다. “교회 인솔자 일꾼이 내 맘에 안 들면 나는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힘이 빠지고 그 사람을 보면 하나님마저 믿고 싶지 않아.” 당신은 이 말을 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말을 한 것이 너무 무지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설마 당신이 그 사람을 믿는단 말입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합니까? 당신은 왜 하나님의 좋으심과 하나님의 사랑스러우심을 보지 못합니까? 그 사람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도태시키십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과오가 있어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축복해 주십니다. 당신은 왜 하나님의 공의를 보지 못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이렇게도 가련하고 나약합니다. 한 가지 일이라도 마음에 안 맞으면 넘어지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믿음이 없어지고 소극적이 되어 믿기 싫어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 마음속에 도대체 하나님의 지위가 있겠습니까? 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 일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환경 때문에 믿지 않고, 개별적인 인솔자 일꾼 때문에 믿지 않으며, 어떤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것 때문에 믿지 않습니다. 이는 다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좋으심과 거룩하심과 위대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통해 다 우리를 시련하시고 우리를 연단하시고 온전케 하시려고 효력하게 하십니다. 당신은 왜 이런 일들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더듬지 않습니까? 왜 이런 일들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보지 못합니까? 왜 이런 일들에서 진리를 구해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늘 겉면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구속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며 하나님이 이런 일들이 임하도록 허락하셔서 대체 무엇을 온전케 하시려는지, 어떤 효력을 하게 하시려는지,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고 하시는지를 모릅니다. 이 방면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그 사람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인사물만 보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배하시는지, 그 뒤에 감춰져 있는 하나님의 고심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어느 한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저를 포함해서) 한 일이든 어떤 잘못된 것이나 당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구속을 받지 말고 진리만 추구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세요. 이야말로 총명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선입견이 생겼다면 어떻게 기도해야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믿는 건 저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저 사람은 우리의 인솔자이지만 제가 믿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구속을 받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리를 추구하겠습니다. 저는 진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길 원합니다. 그 어떤 인ㆍ사ㆍ물에 의해 넘어지지 않도록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아마 힘이 생길 것입니다. 만약 어느 인솔자 일꾼이 하는 일이 당신을 가로막아 구속을 받게 한다면 마땅히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넘어지거나 실패하지 않고 연약하거나 소극적이 되어 일어나지 못할 정도까지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이제는 분명히 보았겠지요! 무엇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야 합니까? 어려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생깁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어떻게 가야 합니까? 그러면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인ㆍ사ㆍ물도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께서 배설하셨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면서 적어도 갖춰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인데 하나님이 진리, 길, 생명이심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심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이 공의롭고 거룩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최종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얻으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 인ㆍ사ㆍ물의 구속도 받지 않고 그 어떤 인ㆍ사ㆍ물에 의해 넘어지지 않는다면 진리를 얻기를 추구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의 인ㆍ사ㆍ물이 당신을 넘어지게 하여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무지몽매합니다. 그것은 평생 유감스러운 일이고 가장 크게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왜 사람의 구속을 받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어리석어서가 아닙니까? 만약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인ㆍ사ㆍ물의 구속도 받지 않을 것이고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해서 성공할 것이며 틀림없이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얻어지고 온전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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