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집(c) 하나님의 발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에 관한 설교 교통 (7)
【107-C-1】
“사람이 일생 동안 반드시 거쳐야 할 6가지 고비
각 사람마다 일생 동안 몇 가지 중요한 고비를 겪어야 한다. 이런 중요한 고비는 한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이자 가장 관건적인 몇 가지 절차이다. 다음으로 나는 사람이 일생 동안 반드시 거쳐야 할 이 몇 가지 고비를 간단하게 배열하겠다.
첫 번째 고비, 사람의 출생
한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성별인지, 어떤 생김새를 갖는지, 어느 때에 태어나는지, 이런 것이 바로 각 사람마다 반드시 거쳐야 할 첫 번째 고비의 몇 가지 내용이다.
이 고비의 몇 가지 부분(원문: 環節)은 모두 사람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이고 조물주가 일찍이 명정(命定)해 놓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어떠한 외부 환경의 영향도 받을 리가 없고 어떠한 인위적인 요소도 다 조물주가 명정해 놓은 사실을 바꿀 리가 없다. 한 사람의 탄생은 조물주가 이미 한 사람 일생의 운명에 대해 안배한 첫 단계를 이루었음을 뜻한다. 이런 세부적인 것은 다 조물주가 일찍이 명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중 어느 한 가지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 사람의 이후의 운명이 어떠하든지, 하지만 그의 출생 배경은 명정해 놓은 대로이지 추호도 그의 일생의 운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또한 이 사람의 일생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주재에도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1. 하나의 새 생명의 탄생은 조물주의 안배에서 온다
첫 번째 고비에서 사람의 출생 지점과 가정, 사람의 성별, 사람의 생김새, 사람의 출생 시간, 어느 한 가지가 사람이 선택한 것인가? 아주 뚜렷한바, 사람은 모두 “피동”적으로 태어나고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어떤 곳에서 어떤 시간에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생김새를 가지게 되며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어떤 가정의 일원이 되고 어떤 가정의 후대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첫 번째 고비에서 사람은 선택권이 없고 조물주의 안배 하에 고정된 배경에서 태어나고 특정한 가정, 성별, 생김새가 있게 되고 사람의 일생과 밀접히 관련되는 태어난 날짜와 시간도 있게 된다. 이 중요한 고비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자세히 따져보면 사람의 출생에 관계되는 이 몇 가지 내용에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하나의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만약 조물주의 명정과 인도가 아니라면 그는 어디로 갈지, 어디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며 그에게 가족이 없고 귀속이 없고 진정한 집이 없다. 그러나 조물주의 정성스런 안배 하에 그에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주어 그에게 부모가 있게 하고 귀속이 있게 하고 가족이 있게 하는데, 이로부터 이 생명의 인생 역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새 생명의 출현은 조물주의 안배에서 온다. 그리고 이 새 생명이 곧 소유하게 될 모든 것도 다 조물주가 부여한 것이다. 이 새 생명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표류체(漂流體)에서 점차 피와 살이 있고 형상이 있는 하나의 피조된 인류로 된다. 그는 생각을 갖고 있고 호흡할 줄 알고 추위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물질세계의 피조물이 종사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에 종사할 수 있고 머지않아 하나의 피조된 인류가 반드시 겪어야 할 모든 세상사도 겪게 된다. 한 사람의 출생에 대한 조물주의 명정은 조물주가 곧 한 사람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모든 것을 부여할 것임을 뜻하고, 한 사람의 탄생도 그가 조물주에게서 그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임을 뜻하며, 또한 이로부터 그가 다른 한 가지 형식으로 조물주의 공급 아래에서 살게 되고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서도 살게 될 것임을 뜻한다.
2. 인류의 여러 가지 출생 배경이 생기는 근원
사람은 흔히 만약 다음에 환생하면 꼭 으리으리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만일 여자라면 백설공주처럼 생겨 보는 사람마다 귀여워하고 만일 남자라면 백마 탄 왕자여서 태어날 때부터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려는 지나친 욕망을 갖는다. 흔히 어떤 사람은 자기의 출생에 대해 갖가지 환상을 품고 동시에 또 자기의 출생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워하는데, 자기의 가정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자기의 생김새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자기의 성별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며 심지어 자기의 태어난 날짜와 시간에 대해서까지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껏 사람이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이런 생김새를 갖게 되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며,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생김새를 갖게 되든지 사람이 조물주의 경영을 위해 여러 가지 배역을 맡고 여러 가지 사명을 완수하는 이 취지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임을 모른다. 조물주의 안중에 한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든, 남자이든 아니면 여자이든, 그 생김새가 어떠하든 이런 것은 다 일시적인 것이고 다 조물주가 전체 인류를 경영함에 있어서 각 시기의 하나하나의 작은 부호(符號)와 표징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 사람의 진정한 거처와 결국은 결코 그 한 시기의 출생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그 매 차례의 사명에 의해 결정되고 조물주의 경영 계획이 완결될 때 그에 대한 조물주의 규정에 의해 결정된다.
그야말로 이른바 결과가 있으면 꼭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탄생은 그의 전생과 금생에 모두 필연적인 관련이 있다. 만약 한 사람의 죽음이 그의 이번 윤회의 끝이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탄생은 그의 새 윤회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만약 이전의 윤회가 한 사람의 전생이라면 새로운 윤회는 자연히 한 사람의 금생인 것이다. 한 사람의 탄생이 그의 전생과 금생에 모두 관련이 있는 이상, 이 사람의 출생과 연관되는 지점, 가정, 성별, 생김새 등 각각의 요소들도 그의 전생과 금생에 모두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람의 출생과 연관되는 각각의 요소들이 그의 전생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생의 운명으로 인해 결정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리하여 사람의 갖가지 출생 배경이 생기게 된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민족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대단한 국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남방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북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사막지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녹색지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의 출생은 즐거운 이야기와 웃음소리를 가져와 사람들의 축하를 받지만 어떤 사람의 출생은 오히려 애곡과 재난을 가져와 사람을 슬프게 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염둥이와 같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초개와 같고, 어떤 사람은 용모가 뚜렷하고 어떤 사람은 눈, 코, 입이 비뚤고, 어떤 사람은 생김새가 준수하고 어떤 사람은 생김새가 추하고, 어떤 사람은 한밤중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 떠있는 한낮에 태어나고…… 사람의 갖가지 출생은 각 부류 사람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안배에 의해 결정되고 또한 사람의 금생의 갖가지 운명도 결정하고 사람의 금생의 갖가지 배역과 사명도 결정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조물주의 주재와 명정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런 명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기의 출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하나도 없으며 더욱이 자기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107-C-2】
오늘 하나님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사람이 일생 동안 반드시 거쳐야 할 6가지 고비”에 대해 교통하겠습니다. “각 사람마다 일생 동안 몇 가지 중요한 고비를 겪어야 한다. 이런 중요한 고비는 한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이자 가장 관건적인 몇 가지 절차이다. 다음으로 나는 사람이 일생 동안 반드시 거쳐야 할 이 몇 가지 고비를 간단하게 배열하겠다.” 사람이 만약 일생의 운명이 모두 조물주의 손에 장악되어 있고 조물주께서 주재ㆍ안배하신다는 것을 인식하려면 반드시 무엇을 인식해야 합니까? 사람이 일생 동안 반드시 거쳐야 할 여섯 가지 고비가 어떻게 된 일인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이 여섯 가지 고비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조물주가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어떻게 주재하시는지에 대해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섯 가지 고비는 도대체 하나님의 주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신 것인지 사람은 이 여섯 가지 고비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고비, 사람의 출생”, 조물주께서 어떻게 한 사람을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안배하셨는지를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성별인지, 어떤 생김새를 갖는지, 어느 때에 태어나는지, 이런 것이 바로 각 사람마다 반드시 거쳐야 할 첫 번째 고비의 몇 가지 내용이다.” 여기에 모두 다섯 가지 방면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어디에서 태어나는지”입니다. “어디에서 태어나는지”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어디에서 태어나고 그 지역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이 어느 국가에서 태어나는지, 어느 지리 환경에서 태어나는지, 남방인지, 북방인지 아니면 동방인지, 서방인지도 포함합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일본에서, 어떤 사람은 타이완에서, 어떤 사람은 미국에서, 어떤 사람은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아시아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유럽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해양의 어느 섬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육지의 어느 시골에서 태어납니다…… 이런 것은 모두가 한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입니다. 부귀한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아니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아니면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아니면 황궁에서 태어나는지를 포함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한 부모 가정에서 태어나서 과부와 그 자식뿐이고 어떤 가정은 식구가 많아 가족이 아주 번창한 것도 포함합니다. 세 번째는 “어떤 성별인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만약 남자였더라면 좋았을 걸”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만약 여자였더라면 좋았을 걸”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배입니다. 네 번째는 “어떤 생김새를 갖는지”입니다. 사람은 다 잘 생겼으면 하는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김새를 마음에 안 들어합니다. ‘내 얼굴 못생겼어, 성형해야지’, 사실 어떤 생김새를 가졌든지, 여기에는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성형을 한다면 아무 의의도 없습니다. 절대 성형하지 마세요, 좋지 않습니다! 선천적으로 어떻게 생겼으면 그 모양인데, 이것은 조물주의 안배입니다. 다섯 번째는 “어느 때에 태어나는지”입니다. 이 일이 관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때에 태어나는지가 뭐 중요합니까? 아무 때나 태어나면 돼요.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어느 때에 태어나는지에 대해 논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의 일생의 운명은 어느 때에 태어나는지와 관계가 있는데 여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고비의 몇 가지 부분(원문: 環節)은 모두 사람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이고 조물주가 일찍이 명정해 놓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어떠한 외부 환경의 영향도 받을 리가 없고 어떠한 인위적인 요소도 다 조물주가 명정해 놓은 사실을 바꿀 리가 없다.” 이 말씀이 진리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입니다! 또한 사실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읽고 나서 보면 이 말씀이 바로 진리이고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있어 아무것도 벗어날 수 없고 아무것도 뛰어넘을 수 없으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마다 반드시 거쳐야 할 첫 번째 고비에는 이 다섯 가지 방면의 내용이 포함됩니다. 이 다섯 가지 방면의 내용이 사람의 선택과 관계가 있습니까? 사람은 선택할 수가 없고 사람 자신은 모릅니다. 첫째, 어디에서 태어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는 더더욱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 어떤 성별일지는 사람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넷째, 어떤 생김새를 갖게 될지는 사람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다섯째, 어느 때에 태어날지도 사람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조물주가 일찍이 명정해 놓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명정(命定)이라고 지금 모두가 인정하겠죠. 이방인들은 “이것은 부모님이 결정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틀렸습니다!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도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의 출생, 이 몇 가지 방면의 내용에 대해 바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그리고 명정이라는 것을 확정하였습니다. 그러면 아직도 마음에 안 들어할 것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내가 왜 이런 가난한 가정을 만났나? 내가 왜 이런 무능한 부모를 만났나? 내가 왜 아무것도 아닌 이런 형제들을 만났나? 내가 왜 부모와 같은 생김새를 가졌나? ……”라고 말합니다. 별의별 원망을 다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가정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몇 명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왕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사람이면 다 만족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근거 있습니까? 황제의 가정에서 태어나도 그 사람은 불만입니다. 그 사람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얼마나 자유롭고 좋을까? 왕실 가족은 규례나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아.’ 이러한 일은 완전무결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시든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이 단락 말씀은 진리입니다! “한 사람의 탄생은 조물주가 이미 한 사람 일생의 운명에 대해 안배한 첫 단계를 이루었음을 뜻한다. 이런 세부적인 것은 다 조물주가 일찍이 명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중 어느 한 가지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 말씀에는 권병이 있는데 아무도 그중 어느 한 가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의 이후의 운명이 어떠하든지, 하지만 그의 출생 배경은 명정해 놓은 대로이고 그의 일생의 운명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또한 이 사람의 일생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주재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람의 출생 배경을 명정해 놓은 후에는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출생 배경이 어떠하든지 그 사람의 일생의 운명은 그 배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출생 배경이 변변치 못하거나 가난한 것은 그의 일생의 운명과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출신이 변변치 못하면 일생이 찌그러지고 가난한 운명이고, 출신 가정이 대단하면 일생이 출세할 운명이라고 여깁니다. 이 말이 근거가 있습니까? 그런 일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왕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몇 해 안 가서 그 가정이 파탄나고 다 살해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재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거지 가정에서 태어나 기구한 반평생을 살다가 중년에 번창하여 장군이 되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이 출생 가정 배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은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보지 않고 당신이 어떤 가정 출신인지를 봅니다. “대단한 가정이구만, 자네는 벼슬을 할 운명이니 앞으로 꼭 출세할 거야.” 혹은 “농민 가정이구만, 자네는 끝장이고 장래성이 없고 자네가 태어난 그 가정이 자네 일생의 운명을 결정했어.” 이 말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또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그리고 전능과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도록 안배하신 것은 그 사람의 이후의 운명이 어떠한지와 아무 관계가 없고 그 가정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107-C-3】
“또한 이 사람의 일생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주재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 일을 이제는 알겠죠. 그러면 이후에 우리가 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그 사람의 출생 배경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재와 전능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하신 어느 한 방면에 근거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그 사람의 출생 배경에 근거해 그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의 운명과 출생 배경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관념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무지몽매하고 여러 가지 관념으로 사람과 일을 대하는데 이것은 모두 황당하고 웃기는 일입니다. 이 단락의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마땅히 몇 가지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는 사람의 출생인데 어느 방면의 내용이든 다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수 없고 사람은 모두 피동적으로 조물주의 안배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 밖에, 사람의 출생 배경이 어떻게 명정되었으면 어떤 것이지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방면은 사람의 일생의 운명은 출생 배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해서 일생이 가난한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고귀한 집안 출신이라 해서 일생이 고귀한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 행사의 기묘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명정하셨으면 그럴 수밖에 없으니 사람은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되고 원망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첫 소제목을 교통하겠습니다. “하나의 새 생명의 탄생은 조물주의 안배에서 온다.” “첫 번째 고비에서 사람의 출생 지점과 가정, 사람의 성별, 사람의 생김새, 사람의 출생 시간, 어느 한 가지가 사람이 선택한 것인가? 아주 뚜렷한바, 사람은 모두 ‘피동’적으로 태어나고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어떤 곳에서 어떤 시간에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생김새를 가지게 되며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어떤 가정의 일원이 되고 어떤 가정의 후대가 되는 것이다.” 각 사람마다 분명히 보았듯이 사실은 바로 이러합니다. 자신의 선택이 없고 모두가 조물주의 안배입니다. 그러면 조물주께서 이렇게 안배하신 것에 의의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제가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이것이 저의 일생에 어떤 의의가 있습니까?” 여기에는 분명히 조물주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배하신 것에는 분명히 의의가 있는데 이 일은 사람이 천천히 경력(역주: 체험)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대단한 가정에서 태어나 황실의 후대나 관료의 후대가 된다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적합하겠습니까?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적합한 요소들이 있습니까? (생활이 너무 편안해 육체를 탐하고 즐기게 됩니다.) 이러면 성격이 나약해집니다. 그 밖에 귀족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오만해서 가난한 사람을 깔보고 높직이 앉아 지위가 낮은 사람들과 접촉하기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겠습니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쉽지 않으며 붙임성도 좋지 않은데, 마치 괴물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데에 극대한 가로막음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데에 불리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을 위해 화비(역주: 헌신, 소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 좋습니다. 농민(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괜찮네요. 황궁이나 귀족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길 정말 다행이죠. 거기에서 태어났더라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우리는 마땅히 어떤 느낌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해 주신 것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느껴야 합니다.
“인생의 첫 번째 고비에서 사람은 선택권이 없고 조물주의 안배 하에 고정된 배경에서 태어나고 특정한 가정, 성별, 생김새가 있게 되고 사람의 일생과 밀접히 관련되는 태어난 날짜와 시간도 있게 된다.” “사람의 일생과 밀접히 관련되는 태어난 날짜와 시간도 있게 된다.” 이 말씀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사람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은 어느 방면에 관련됩니까? 사람의 일생과 밀접히 관련되고 사람의 일생의 운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두 명정해 놓으셨습니다. “이 중요한 고비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자세히 따져보면 사람의 출생에 관계되는 이 몇 가지 내용에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사람은 어느 한 가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일부 부녀들이 임신을 한 후 날짜와 시간을 선택해서 아기를 낳으려 하는데 선택할 수 있습니까?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아기를 낳을 날짜와 시간을 계산해 낼 수 있습니까? (그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날짜와 시간은 그녀가 계산해 낼 수 없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만약 조물주의 명정과 인도가 아니라면 그는 어디로 갈지, 어디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며 그에게 가족이 없고 귀속이 없고 진정한 집이 없다.” 이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한 영혼을 이 세계에 보내고 나서 상관하지 않고 그 영혼을 어느 가족에게서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하면 정말 안 됩니다. 그에게 진정한 집이 없다면 그 결과는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 반드시 그에게 먼저 가정이 있게 하기 위해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 그 가족의 후대가 되도록 안배하여 그 가정을 통해 그를 양육하게 하셔야만이 점차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것은 공정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조물주의 정성스런 안배 하에 그에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주어 그에게 부모가 있게 하고 귀속이 있게 하고 가족이 있게 하는데, 이로부터 이 생명의 인생 역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세요, 그를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게 안배하시니 이러한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고 어려움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조물주의 정성스런 안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주로 조물주께서 각 사람에게 많은 심혈과 대가를 치르셨고 모두 정성스럽게 안배하고 계획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아직 일부 세부적인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영들을 안배하여 효력하게 했는가의 등등입니다. 당신의 가정이 당신에게 한 가지 성격과 습관을 길러 주었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또 여러 가지 효력자의 효력을 통해 당신에게 정결함을 얻게 하시고 변화되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렇게 많은 영들과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리고 갖가지 사물을 모두 당신의 주위에 안배해 놓고 당신 한 사람의 성장을 위하여 효력하게 하는데, 거기에는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많은 효력을 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만약 이런 효력자들이 없고 이런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없다면 사람의 생명이 성장할 수 없고 사람은 구원받거나 하나님께 얻어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기까지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심혈과 대가를 치렀다 해도 조물주께서 각 사람에게 치르신 심혈과 대가보다 많겠습니까? 턱없이 부족하고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시고, 사람의 일생과 사람의 전생 그리고 사람의 후세까지도 다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이런 일들에서 조물주께서 각 사람에게 치르신 심혈과 대가가 너무 커서 사람이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방금 읽은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도 하나의 비밀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발표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누구도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107-C-4】
“이 과정에서 이 새 생명의 출현은 조물주의 안배에서 온다. 그리고 이 새 생명이 곧 소유하게 될 모든 것도 다 조물주가 부여한 것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세요. “소유하게 될 모든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물질 방면의 모든 것 그리고 생명 영 안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조물주께서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았겠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생명을 얻어야 하기에 하나님은 말씀을 발표하시고 각 사람에게 역사하셔서 진리를 깨닫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시는데, 갖가지 효력자와 인ㆍ사ㆍ물을 포함해 모두 조물주께서 안배하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안배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 각 사람에게 치르신 심혈과 대가는 사람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빈틈없이 안배하셨습니다. “이 새 생명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표류체(漂流體)에서 점차 피와 살이 있고 형상이 있는 하나의 피조된 인류로 된다. 그는 생각을 갖고 있고 호흡할 줄 알고 추위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물질세계의 피조물이 종사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에 종사할 수 있고 머지않아 하나의 피조된 인류가 반드시 겪어야 할 모든 세상사도 겪게 된다.” 이런 것은 조물주의 안배가 아닙니까? 모두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생각을 갖고 있고”라는 이 형성이 조물주의 안배와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관계가 있습니다. 그에게 어떤 생각과 언어가 있는지는 그의 생존 환경에 모두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호흡할 줄 알고 추위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육체는 바로 이 방면의 기능이 있습니다. “물질세계의 피조물이 종사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에 종사할 수 있고”, 당신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일을 할지, 어떤 분야의 지식을 배울지, 생존을 위해 어떤 특기를 갖출지, 이런 것은 다 조물주의 안배입니다. 당신이 한 가지 재간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도 모두 조물주께서 안배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무엇을 배우게 될지도 다 당신이 처한 그때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그런 환경이 없으면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어떤 배경하에 어느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도 다 하나님께서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이 무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출생에 대한 조물주의 명정은 조물주가 곧 한 사람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모든 것을 부여할 것임을 뜻하고, 한 사람의 탄생도 그가 조물주에게서 그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임을 뜻하며, 또한 이로부터 그가 다른 한 가지 형식으로 조물주의 공급 아래에서 살게 되고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서도 살게 될 것임을 뜻한다.” 한 사람이 탄생하는 순간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 놓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있고 머리가 좋아서 부자가 될 운명이고, 어떤 사람은 능력이 없고 머리가 나빠서 부자가 될 운명이 아닙니다.”라고 누군가 말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부자가 되는 명이 아닌데 그가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겠습니까? 부자가 되는 명이라면 부자가 되기 싫어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으나 돈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와 밀어내려고 해도 밀어낼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꿈에서도 부자가 되고 싶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일이 소원대로 되지 않고 결국 부자가 되기는커녕 밑천까지 날려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얘기해 보세요, 부자가 되는 것이 사람이 바란다고 해서 되는 일입니까? 사람의 능력과도 별로 관계가 없고 반드시 부자가 되는 명이어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일생 동안 얼마의 재산이 있는가는 하나님께서 명정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아주 좋아서 계산을 아주 잘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노력은 운보다 못하다”라고 했듯이 계산을 할수록 점점 가난해지는데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보세요, 어떤 가정은 여윳돈이 있으면 안 됩니다. 여윳돈이 있기만 하면 어김없이 누군가 병에 걸리는데 어느 정도까지입니까? 그 여윳돈을 다 써 버리면 병도 낫습니다. 이것은 규칙적이 되었습니다. 보통 말로는 “이게 바로 명이야”라고 합니다. 이 명의 근원이 바로 조물주의 안배인데 조물주께서 명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소제목을 교통하겠습니다. “인류의 여러 가지 출생 배경이 생기는 근원”, 이것은 또 하나의 비밀입니다. “사람은 흔히 만약 다음에 환생하면 꼭 으리으리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만일 여자라면 백설공주처럼 생겨 보는 사람마다 귀여워하고 만일 남자라면 백마 탄 왕자여서 태어날 때부터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려는 지나친 욕망을 갖는다.” 이것은 패괴(역주: 부패, 타락)된 인류의 욕망으로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좋습니까? 좋지 않고 의의가 없습니다. 정말 으리으리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여자라면 백설공주처럼 생기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사내들이 따르는데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오래 살 수 있겠습니까? 너무 역겨워 살 수가 없습니다. “만일 남자라면 백마 탄 왕자여서 태어날 때부터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려는 지나친 욕망을 갖는다.” 이것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같은 관점으로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것이 무지몽매하지 않습니까? 유치하고 아무 의의도 없습니다. 그 무슨 귀족이고 왕실가족이고 의의가 없습니다. 이방의 스타 열혈팬들은 그런 인물들만 전문적으로 쫓아다니는데 여러분도 쫓아다니겠습니까? (아니요.) 어떤 사람은 어느 유명인을 만나면 끝까지 쳐다보고는 다가가서 “사인해 주세요, 메시지를 써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어리석지 않습니까? 너무도 어리석습니다! 스타를 숭배하는 것은 대부분 어린 사람들의 일입니다. 어린 사람들은 얼마나 유치합니까!
“흔히 어떤 사람은 자기의 출생에 대해 갖가지 환상을 품고 동시에 또 자기의 출생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워하는데, 자기의 가정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자기의 생김새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자기의 성별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며 심지어 자기의 태어난 날짜와 시간에 대해서까지 불만스러워한다.” 이러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이것은 모두 어린 사람들의 무지몽매로 생긴 각종 불만입니다. 어렸을 때 저도 그랬습니다. 무엇을 배우려고 해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집의 아이들은 잘도 배우는데 우리 집 식구들은 왜 못 배울까? 한평생 아무것도 못 배우면 끝장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나서 저는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모든 것을 쉽게 버릴 수도 있고 직장을 그만두는 데에도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만약 으리으리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버리기가 쉽겠습니까? 만약 좋은 직장을 얻고 관리가 되어 지위의 복을 누리고 있다면 그만두기가 쉽겠습니까? 그러면 그만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약 거액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버리기가 쉽겠습니까? 더더욱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기가 훨씬 쉬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배하신 것이 너무 좋고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괜찮고 정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젊었을 때는 무지몽매하여 이것도 원망하고 저것도 원망했는데 나중에 하나님이 안배하신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지혜로우십니다! 이런 일들을 이렇게 경력해야 합니다. 반평생을 경력하고 나니 많은 일들을 꿰뚫어 보게 되었고 나이가 들고 나니 뭐든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외모를 추구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자기의 외모를 바꾸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젊은 사람들과 배우자가 없는 사람들은 ‘내가 도대체 남보다 어디가 못생겼지? 어느 부위를 어떻게 좀 고쳐야 하나? 내가 만약 몇 백만, 몇 천만이 생긴다면 먼저 성형부터 할 거야.’라고 늘 이런 궁리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무지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성형한 후 나이가 들면 뼈가 변형되지 않겠습니까? 뼈가 변형되고 탈골되는데 그러면 죽은 사람보다 더 보기 흉할 것이고 더욱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모든 것을 사람이 고쳐서는 안 됩니다. 고쳤다면 이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하고 더 큰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107-C-5】
“하지만 사람은 지금껏 사람이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이런 생김새를 갖게 되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며,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생김새를 갖게 되든지 사람이 조물주의 경영을 위해 여러 가지 배역을 맡고 여러 가지 사명을 완수하는 이 취지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임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껏 사람이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이런 생김새를 갖게 되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며”, 젊었을 때는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노년에 접어들면 좀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너무나 좋고 모두 적합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완전히 알지는 못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기까지만 알아도 괜찮고 원망이 없게 됩니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생김새를 갖게 되든지 사람이 조물주의 경영을 위해 여러 가지 배역을 맡고 여러 가지 사명을 완수하는 이 취지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임을 모른다.” 사람의 일생이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든지,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어떤 생김새를 가졌든지 간에 사람의 일생에 조물주께서 안배하신 역할과 사명을 맡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많은 일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못생기고 태어난 곳이 좋지 않아도 어떤 사명이면 역시 그 사명을 맡아야 하고 어떤 역을 맡았으면 역시 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이 한 가지는 바꿀 수 없습니다. 알겠죠. 그러면 사람이 최종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는 것은 사람의 출생이나 생김새와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못생겨도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구원받고 온전케 되어 자민이 되도록 명정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의 출신 배경이 좋지 않고 못생겼다 하여 한평생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당신이 잘생기고 출신 환경과 가정이 좋아도 오히려 복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가정 출신이 좋지 않은 사람, 못생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사람을 차별 대우 하시지 않고 당신에게 좋지 않은 출생 환경과 지점을 안배하고 못난 생김새를 주었다 해서 당신을 학대하거나 영원히 복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 내려가게 하시지 않습니다. 아마 당신이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생김새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겠지만 마지막에 당신이 하나님의 경영 계획 가운데서 큰 복을 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또 사람의 외모로 사람의 일생을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외모 혹은 가정 출신으로 사람을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의 생김새가 별로이면 “흥, 당신은 평생 출세할 일이 없겠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가정 혹은 저의 가정에 대해 연구를 합니다. ‘모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셨는데 그리스도일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을까? 만약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대단한 출신이셔야 하고 마땅히 귀족 가정이나 권세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셔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믿어도 힘이 나고 명분이 서지.’ 이런 생각이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잘못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조물주의 안중에 한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든, 남자이든 아니면 여자이든, 그 생김새가 어떠하든 이런 것은 다 잠시적인 것이고”, 무엇이 “잠시적인 것”입니까? 영원을 결정하지 않고 임시적으로 당신에게 안배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귀족 출신인 사람이 어느 낙후한 산골에 여행을 가서 고급 호텔에 묵고 싶은데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지으면 되겠습니까? 권력이 있다 해도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그냥 여기서 아쉬운 대로 잠시 이틀 묵으면서 하층사회의 생활 방식이나 체험해 보자.” 이것을 잠시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잠시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일생에 우선 이런 가정 환경을 안배해 주셨는데 이런 환경은 그 사람의 성장에 유익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유익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데에 유익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영혼의 영원한 거처는 세상에서 어떤 가정 조건이고 어떤 배경인지에 근거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당신이 오늘은 이 세상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생활하다가 내세에는 천국에서 살지도 모릅니다. “천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환경이겠습니까? 그곳의 거리는 황금길이고 성은 벽옥이고 수정인데 환경이 바뀌었죠?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당신이 이 인간 세상에 와서 머무는 것은 임시적이라는 것입니다.
“다 조물주가 전체 인류를 경영함에 있어서 각 시기의 하나하나의 작은 부호(符號)와 표징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 사람의 진정한 귀숙과 결국은 결코 그 한 시기의 출생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그 매 차례의 사명에 의해 결정되고 조물주의 경영 계획이 완결될 때 그에 대한 조물주의 규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출생 가정, 생김새, 성별 이것이 당신의 마지막 거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은 그가 남자라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또한 여자라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이 화를 받는 것은 가정 출신 때문이 아니고 더욱이 생김새 때문에 화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최종에 한 사람의 결말과 마지막 거처는 그에 대한 조물주의 규정으로 결정되는 것인데 즉 조물주께서 그분의 원칙과 안배에 근거하여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무엇에 근거합니까?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의 여부에 근거하는데, 당신에게 진리가 있으면 조물주께서 당신에게 좋은 결말과 거처를 주십니다. 당신에게 진리가 없으면 조물주께서 반드시 당신을 지옥으로 보내 징벌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 인류의 각 사람에 대한 조물주의 안배는 공의롭고 공평한 것인데, 당신의 가정, 생김새, 성별에 근거해 당신의 결말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진리를 사랑하는지의 여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주 못생겨 많은 사람들이 그를 무시한다면 그는 차별 대우로 인하여 심지를 내립니다. ‘나는 기필코 진리를 잘 추구할 거야. 사람들이 나를 무시해도 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지.’ 사람들의 차별 대우와 무시가 오히려 진리를 추구하려는 그의 신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가 이렇게 추구하면 오히려 장래성이 있고 최종에 그의 결말과 거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좋은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잘생기고 출신 가정환경이 좋아 늘 우쭐거리고 오만해 하면서 남을 무시하다가 마지막에 도태되고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볼 수 있는데 우리에게 평범한 생김새, 어려운 가정 환경의 출신, 낮은 지위를 주신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가난한 집 아이들은 철이 빨리 들고 부자 집 아이들은 늘 철부지 같다고 하겠습니까? 부자 집 아이들은 늘 놀기만 좋아하는 데 버릇이 되어버렸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가난할수록 어떻게 출세를 할까 하고 살 궁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환경이 가난한 데다가 사람의 외모도 보통이면 그 사람의 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는 꼭 출세를 해야 돼, 꼭 좋은 사람이 되고 남들이 존중하는 사람이 돼야 해.’ 이런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출세를 하고 전망이 있습니다. 용모가 아주 뛰어난 사람들을 보세요, 대부분 다 한가지 폐단이 있습니다. 즉 진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늘 자기의 아름다운 자태만 과시하며 늘 자신이 외모가 좋아 일반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면서 높직이 앉아 남을 무시하는데 결국 한평생 큰 출세를 하지 못하고 실속 있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든, 어떤 생김새든, 어떤 성별이든 이것은 다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전망과 운명 그리고 마지막 거처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관건은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가에 달렸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07-C-6】
“그야말로 이른바 결과가 있으면 꼭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탄생은 그의 전생 금생과 모두 필연적인 관련이 있다.” 이 말씀에는 비밀이 있는데 전생과 어떠한 관련이 있습니까? 여기에서 말씀한 결과가 있으면 꼭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게 된다는 것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탄생이란 이런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전생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를 말세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여기에도 다 원인이 있지 않겠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원인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으나 대략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이 사람들을 말세에 태어나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을 경력하도록 명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안배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원인입니다. 각 사람의 자세한 실제 사정은 모르고 또한 굳이 알 필요도 없습니다. 차후에 깨달으면 됩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도 몰랐지만 오늘에 와서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비밀을 밝혀 주신 것입니다.
“만약 한 사람의 죽음이 그의 이번 윤회의 끝이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탄생은 그의 새 윤회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만약 이전의 윤회가 한 사람의 전생이라면 새로운 윤회는 자연히 한 사람의 금생인 것이다.” 매번의 탄생은 모두 새로운 윤회의 시작이고 매번의 죽음은 모두 이번 윤회의 끝입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윤회가 끝나 영혼을 거두어 가고, 한 사람이 탄생하면 “응애” 하고 고고성을 울리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그 사람의 새로운 윤회가 시작되는데 바로 이렇게 된 일입니다. 새로운 윤회는 당연히 한 사람의 금생이고 이전의 윤회는 바로 이 사람의 전생입니다. 전생은 때로는 원인이 되고 금생은 그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전생에 늘 죄를 지었다면 금생에 와서는 징벌을 받아야 하는데 좋을 리가 없습니다. “한 사람의 탄생이 그의 전생 금생과 모두 관련이 있는 이상, 이 사람의 출생과 연관되는 지점, 가정, 성별, 생김새 등 각각의 요소들도 그의 전생 금생과 모두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 사람의 탄생이 금생과 틀림없이 관련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의 사주팔자가 금생의 운명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생과는 어떤 관련이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은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이 한평생은 왜 이렇게도 가난할까?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을까?”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 사람의 전생과 관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모두 관계가 있습니다. 무슨 관계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시기에 당신이 전생에 많은 악을 행하였으면 반드시 보응이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더 깊이 있게 물어도 그 누구도 모릅니다. 이 정도만 깨달을 수 있으면 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출생과 연관되는 각각의 요소들이 그의 전생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생의 운명으로 인해 결정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금생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 안배하고 명정해 놓으셨는데 당신에게 적합한 태어나는 시간과 날짜, 가정환경, 출생지점, 성별, 생김새를 안배하신 것입니다. 보아하니 이런 일은 다 비밀입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죠. 마음대로 안배한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는데, 마음대로 안배한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비밀이 있고 모두 관계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사람의 갖가지 출생 배경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전생과도 관계가 있고 금생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민족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대단한 국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남방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북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사막지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녹색지대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의 출생은 즐거운 이야기와 웃음소리를 가져와 사람들의 축하를 받지만 어떤 사람의 출생은 오히려 애곡과 재난을 가져와 사람을 슬프게 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염둥이와 같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초개와 같고, 어떤 사람은 용모가 뚜렷하고 어떤 사람은 눈, 코, 입이 비뚤고, 어떤 사람은 생김새가 준수하고 어떤 사람은 생김새가 추하고, 어떤 사람은 한밤중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 떠있는 한낮에 태어나고…… 사람의 갖가지 출생은 각 부류 사람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안배에 의해 결정되고 또한 사람의 금생의 갖가지 운명도 결정하고 사람의 금생의 갖가지 배역과 사명도 결정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 명정 아래에 있기에 이런 명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기의 출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하나도 없으며 더욱이 자기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다 조물주의 명정이므로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조물주께서 그분의 명정과 안배에 따라 사람의 출생가정, 지점, 가족 환경, 태어나는 날짜와 시간을 결정하셨고 또한 사람의 일생의 운명도 결정하셨는데 이런 것은 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장악하시고 주재하시는지는 방금 우리가 교통한 이 단락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안배하고 명정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출생과 그 사람의 전생은 모두 관계가 있는데 전생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에 있었다면 금생은 더욱더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하에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서 걸음마도 하기 전에 그의 일생의 운명과 전망을 다 이미 정해 놓으셨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어야 하고, 무엇이 진리이고 비밀인지를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주재는 지혜가 있고 전능한 것이지 마음대로 안배하시는 것이 아니고 의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모두 비밀이 있습니다. 방금 이 말씀이 모두 사실이 아닙니까? 이것은 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사람은 모두 일부 사실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지 못했다면 TV에서 그렇게 보도한 것을 좀 보세요. 사람에게 전생과 금생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사람의 금생과 전생은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인과관계가 아닙니까? 인과관계이고 보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면서 악을 너무 많이 행해서는 안 됩니다. 좋지 않습니다. 당신이 금생에 악을 너무 많이 행하면 내생에는 골칫거리입니다. 금생에 빚을 너무 많이 지면 내생에는 그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합니다. 민간 전설에 이런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봤죠? 그러면 이런 일을 듣고 나서 당신은 믿습니까? 예전에 어떤 사람들은 믿었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마 다 믿을 것입니다.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무엇을 인정합니까? “인과응보, 이것은 너무나 정확합니다.” 세상에서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아버지가 진 빚을 아들이 갚고, 남편이 진 빚을 아내가 갚는다.” 이것이 인과관계이고 보응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모두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늘 부당한 이득만 챙긴다면 좋은 일입니까? 그것은 빚을 지는 것이고 다음 생에 갚아야 하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용모가 뚜렷하고” 이것은 좋은 일인데 전생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눈, 코, 입이 비뚤고” 이것도 전생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틀림없이 모두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 늘 화를 당하면 뭐라고 말합니까? “아마도 전생에 좋은 일은 하지 않고 못된 일만 하고 벌 받을 짓만 했나봐, 안 그럼 한평생 왜 늘 화만 당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겉보기엔 자손들이 아주 번성한 것 같지만 딸이 매음하고 아들이 강도질하여 좋은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생에 벌 받을 짓을 많이 해서 자식이 보응을 받는구나”라고 말합니다. 이런 것은 흔히 듣는 말이 아닙니까? 이런 말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비슷할 것입니다. 어쨌든 전생과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보응을 받는 일도 틀림없이 다 사실입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셨는데 천대까지 복을 베푸신다면 그런 부정적인 인물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애곡하고 재난을 당하고 눈, 코, 입이 비뚤게 태어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손 후대들이 용모가 뚜렷하고 사람다운 모습입니다. 만약 선천적으로 험악하게 생겼다면 틀림없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불구인데 이것이 바로 보응입니다. 어떤 사람은 낳은 자식이 방탕아여서 가산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탕진해 버리는데 이것이 보응을 받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일들은 전생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의 진리 비밀을 보았으니 이해할 수 있으면 되고 다시 이런 일들이 닥쳤을 때 대체적인 견해가 있으면 족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보호하여 이후에 악을 행하지 않고 벌 받을 짓을 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벌 받을 짓을 하면 보응을 받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큰 복이 있든지 너무 지나치게 누려서는 안 됩니다. 너무 지나치게 누리면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이 부유하다고 해서 죽기살기로 누리면서 먹고, 입고, 마시는데 이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너무 좋은 것만 누리려고 하지 말고 평범하거나 그런대로 괜찮거나 쓸 만하면 됩니다. 너무 좋고 너무 지나친 것은 의의가 없습니다. 남을 도와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베풀어 줄 수 있는 것은 다 정상적인 인성에 갖춰야 할 것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합니다.
【107-C-7】
구원을 받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선행을 예비해야 합니까? 악을 행한 사람은 무엇 때문에 반드시 도태되어야 합니까? 이것은 보응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 집에서는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선행이 있는 사람과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좋은 거처를 안배해 주십니다. 사람이 악을 행하고 나쁜 일을 많이 한다면 반드시 징벌받고 도태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선행이 없고 악행도 없으면 도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많은 악을 행하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반드시 도태되고 징벌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보응을 받는다”라는 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한 사람의 결말을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그의 선행을 갖춘 다소(多少) 혹은 악을 행한 다소에 근거해 규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많은 악을 행하고 10~20년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쁜 일을 적지 않게 해서 모두가 분개할 정도라면 이 사람은 종말을 고하고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당신에게 진리의 실제가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악행이 많다면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 깊든 얕든 상관없이 선행이 많고 좋은 일만 하였다면 틀림없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되지 않습니까? 당연히 진리에 부합되는데 바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당신이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면 절대로 나쁜 일을 하지 마세요.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무엇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합니까? 바로 당신의 표현에 근거하는데 당신이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좋은 사람이고 나쁜 짓을 많이 하면 나쁜 사람입니다. 이렇게 평가하면 조금도 틀림없고 사실에 완전히 부합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나쁜 짓을 적지 않게 하였기에 본인이 인정하지 않아도 소용없습니다. 그가 한 나쁜 일이 그가 바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결정합니다. 당신이 이간질하고 뒤에서 남을 모함하고 정죄하고, 남을 짓눌러 괴롭히고, 거짓 증거만 하고, 이런 나쁜 짓을 적지 않게 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질렀다면 반드시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잘 믿고 인성이 좋고 본질이 좋다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런 나쁜 일들이 당신에게 결론을 가져다주었고 당신의 결말을 규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이 몇 년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얼마나 많은 나쁜 일을 하였는지는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남을 억눌러 괴롭히고, 누가 눈에 거슬리면 결점을 들춰내고 약점을 잡으며 정죄하여 나중에는 집으로 돌려보내 소극적이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는 얌전히 자기의 일을 끝냅니다. 이것이 죄악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지위를 다투기 위해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자기를 높이고 갖은 수단을 다해 남을 모함하고 짓누르고 괴롭히는데 이것은 벌 받을 짓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남을 짓누르고 괴롭힙니까? 아무 지위도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지위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알랑거리며 아부하는데 당신은 도대체 어떤 놈입니까! 당신이 능력 있으면 악인을 다스려 봐요, 왜 온순한 사람을 다스립니까! 이런 나쁜 짓을 하고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반드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인과관계를 어떻게 해석합니까? 악은 악대로 선은 선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실패의 운명이고 좋은 결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인과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즉 “결과가 있으면 꼭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해석하면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보응을 받는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전생과 금생은 모두 이 원칙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인데 하나님께서 바로 이렇게 인류의 운명을 안배하셨습니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행을 많이 예비하고 악을 행하지 마세요.
일부 사람들은 “제가 예전에 악행을 여러 번 저질렀는데 지금 그 악행들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징벌을 면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합니다. 재빨리 회개하고, 누구를 억누르고 괴롭혔으면 그 사람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그 밖에 하나님 앞에 와서 빨리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면 혹시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네.) 어서 돌이키세요. 회개는 필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집의 재물을 훔쳐 먹었는데 빨리 방법을 찾아 반환하고 더 많은 선행을 예비하세요.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혀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게 했는데 빨리 그 사람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해 주세요. 어떤 인솔자 일꾼은 글귀 도리만을 말하고 자기만을 위하여 말하는데 빨리 형제자매들에게 사과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많이 하고 더 힘내서 형제자매님에게 보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당한 이익을 너무 많이 챙겼는데 그러면 얼른 상대방에게 베풀어 도와주고 갚아 주고 다시는 부당한 이득을 챙기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이 집 물건을 빌리고는 돌려주지 않고 저 집 돈을 빌리고는 갚지 않으며 이 집에 가서는 옷을 달라고 하고 저 집에 가서는 신발을 달라고 하면서 부당한 이득만 챙기는데 이것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만약 형제자매들이 기꺼이 베푸는 것이라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이 완전히 합당하나 만약 형제자매들이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양심상 불편합니다. 양심상 불편하면 반드시 보상을 해야 양심의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너무 가난해서 보상할 수가 없어요”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방면으로 도와주세요. 제가 가끔씩 어떤 지역에 가면 그 집 사람들이 저를 잘 대접해 주고 잘 대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패괴된 인류여서 남의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이분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수고하니 미안하네, 어떻게 보상을 하지? 달리 보상해 드릴 것이 없으니 진리를 많이 교통해 주고 좀 고생스러워도 실제 문제를 더 많이 해결해 주자.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 저는 설교를 하고는 보수를 바란 적이 없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별로거나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해서 교통해 주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일은 감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필요입니다. 교통해야 할 상황이면 교통을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생명수를 사람에게 누리게 하시면서 보수를 바라지 않으셨기에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가 당신을 어떻게 대하든지 우리가 하는 것은 본분이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사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진입과 진리를 교통하는 방면에서 그 어떤 사람에게도 빚져서는 안 됩니다. 그가 만약 하나님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고 본분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면 우리는 더욱더 최선을 다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공급해 줘야 합니다. 이러면 심령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인성의 표준입니다. 만약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도달할 수 있지만 단지 양심적으로 일을 한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야만 완전히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습니다. 양심의 표준은 사람됨의 최저 표준이고 최고의 표준은 진리 원칙입니다. 사람됨이 양심의 표준보다 낮아서는 안 됩니다. 양심의 표준보다 낮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고 인성이 없으며, 양심의 표준보다 높아야 좋은 사람이고 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할 수 있다면 바로 인성도 있고 진리도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됨의 길, 표준, 원칙이 다 있으니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점점 많이 깨달음에 따라 사람됨의 표준도 한 단계 높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양심의 표준보다 낮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진리는 우리의 사람됨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관계가 있습니다. 진리는 어디에 필요합니까? 사람됨에 필요합니다! 사람됨에 진리가 없다면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이방의 좋은 사람은 양심에 의해 살지만 진정한 좋은 사람은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갑니다. 양심이 진리를 대표할 수 있습니까? 대표할 수 없습니다. 양심이 있는 것과 진리가 있는 것이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다.) 양심은 사람됨의 최저 표준이기에 양심의 표준보다 낮다면 사람이 아니고 짐승과도 같으며 비인류입니다. 이방인들이 제 욕심만 차리는 것은 모두 양심 표준보다 낮은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들이 제명됩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가 양심 표준보다 낮고 악행에 속하기 때문에 제명되고 징벌받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 반드시 징벌받아야 하고 본분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높여주셔서 본분을 하게 하셨는데 당신이 양심적으로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입혔으므로 마땅히 보응을 받아야 하고 징벌을 받아야 하며 제명을 당해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격리를 당해야 하는데 이것은 보응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은 다음 생에 계속해서 보응을 받아야 하고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107-C-8】
인과응보는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 공평하고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인과응보가 있겠습니까? 인과응보가 생기는 배경과 근원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민간 전설에 일부 사람들이 벌 받을 짓을 저지른 후 다음 생에는 동물로 환생하여 말이나 소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개로 환생하여 사람들의 정원을 지켰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이런 일들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설들이 다 완전히 진실하거나 조금도 과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와 같은 사실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이 사람들이 전생에도 이 일대에서 몇 백 년 동안 살지 않았을까요?”라고 물어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전생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들과는 다르고 특별합니다. 무엇 때문에 특별하다고 할까요? 우리는 또 다른 한 무리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말세에 태어나도록 안배하신 것은 말세가 되어 비로소 태어나게 하신 것 같고 결코 말세에 여러 대를 거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성별이고, 어떤 생김새이고, 태어난 날짜와 시간이 언제인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고 하나님의 명정이며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사람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은 사람의 일생의 운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안배하셨는지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이후의 결말과 거처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후의 결말과 거처는 우리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어떤 길을 걷는지의 여부에 달렸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이런 것을 깨달았으면 됩니다.
첫 번째 고비에서 하나님이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해 주셨기에 우리도 여러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여러 가지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교계의 어떤 사람이 “전생 금생이라는 설이 없고 윤회라는 설은 더욱 없어요. 이것은 황당무계한 논리예요.”라고 말하면서 이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은혜시대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하신 말씀은 아주 유한하고 많은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금방 믿고 하나님의 존재를 금방 알게 되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시는 것과 어떻게 인류를 인도하시고 구원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같은 이런 큰일에 대해 사람이 닿지 못했으므로 사람에게 많은 진리를 말씀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금방 하나님을 믿었을 때는 무엇만 알면 되겠습니까? 천지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고,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들을 하셨는지, 그 후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의 속죄제로 되셨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인류는 모두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기 때문에 만약 죄가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고 멸망될 것이며, 만약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죄 사함을 받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이런 것만 알아도 괜찮고 이런 것을 아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멍청한 사람과 소질이 낮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두 단계로 나눠 역사하셔야만 효과를 이룰 수 있었는데 한 단계 역사에서 너무 많은 말씀을 하시면 사람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얘기해 보세요, 사람이 7~8살 때에 무엇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결혼 상대를 찾는 일을 미리 말해 주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해 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그의 학업과 생활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면 어떤 말만 해 줘야 합니까? 학교에 가서 어떤 지식을 배우고 어떤 기술을 배워야 앞으로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생활이 좋아진다는 것만을 말해 줘야 합니다. 아이가 이런 말을 들으면 깨닫고 충분히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면 공부를 잘 할게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혹은 아이에게 학습 내용이나 학습 과목을 말해 주면 제일 좋아하기에 이런 것을 말해 줘야 합니다. 청년이 되어 스무 살이 넘으면 어떤 말은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무엇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으면 말해 줘야 합니다. 사람이 깨달아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연령대와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인류가 진리를 얻으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3단계로 나눠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3단계 역사의 매 단계 역사는 또한 경력의 단계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사역과 같이 먼저 사람을 심판ㆍ형벌하시고 그 후에 열두 편 말씀을 발표하셨는데 이 열두 편 말씀에서 또 많은 비밀들을 밝혀 주셨고 인류의 이후의 거처와 여러 가지 인생의 비밀도 밝혀 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심판ㆍ형벌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무엇 때문에 안 됩니까?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정말 참 도일까? 마치 이방이나 어느 종교의 논법과 조금 비슷한 것 같은데.’라고 의심하면서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의 역사 단계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근거해 안배하시는데 공정하고 합리적입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 우리는 예전에 이 말씀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어떤 사역을 하셨고 은혜시대에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하나님나라시대에 이르러 또 어떤 사역을 하러 오셨는지, 인류의 운명과 온 인류의 역사(歷史)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걸음씩 인도하셨는지, 여기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는지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큰 방면입니다. 세부적으로는 각 사람의 운명이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사람 일생의 운명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어떤 것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밝혀 주셔서 이 6가지 고비의 비밀을 말씀해 주시자 우리는 사람의 전생과 금생은 모두 하나님의 안배와 명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밖에 사람의 일생의 이 6가지 고비에는 비밀이 너무 많고 의의가 너무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치르신 심혈과 대가는 너무 많습니다. 모두 정밀한 안배를 거친 것이고 조금의 오차도 없는데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나 기묘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나면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는지에 대해 더욱더 구체적이고 더욱더 분명해집니다. 늘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고, 어떻게 인류의 마지막 거처를 안배하시고, 어떻게 사람을 한 단계씩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지에 대해 더욱더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정상적인 사유가 있고 하나님이 요구하신 소질을 갖추기만 하면 모두가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해도 부지중에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 또 무엇 때문에 선행을 예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선행이 무엇을 대표하고 무엇을 드러내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선행을 예비함에 있어서 힘이 닿는 데까지 하고 달갑게 해야지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는 사람의 믿음에 근거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달은 후 문제를 꿰뚫어 보게 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무엇을 예비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자연히 길이 생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