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집(b) 하나님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에 관한 설교 교통 (6)

【107-B-1】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모두 조물주의 주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고 조물주의 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와 만물의 운명이 어떠한지는 모두 조물주의 권병과 갈라놓을 수 없는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인류는 만물의 규율 속에서 조물주의 지배와 주재를 체득하게 되었고 만물의 생존 법칙 속에서 조물주의 주관을 보게 되었으며 만물의 숙명 속에서 조물주가 만물에 대해 주재하거나 주관하는 방식을 귀납해 내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와 만물의 생사 윤회 속에서 인류는 만물의 생령에 대한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를 진정 체험하게 되었고 또한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가 세상의 모든 법령, 규정, 제도를 초월하고 그 어떤 힘과 세력까지도 초월한다는 것을 진정 보게 되었다. 이로부터 인류는 조물주의 주재는 그 어떤 피조물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고 조물주의 명정 아래의 만사만물은 그 어떤 세력도 침범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인류와 만물은 바로 이러한 천상의 법칙과 규율 속에서 한 세대 또 한 세대 생존하고 번식해 온 것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권병이 참으로 구현된 것이 아닌가? 비록 인류가 객관적 법칙 속에서 조물주의 주재를 보고 만사만물에 대한 조물주의 명정을 보았지만 또 조물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원칙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고 또 자신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를 진정 인식하고 시인하고 받아들이고 순복(역주: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어느 누가 조물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인해 조물주가 동시에 또 인류의 일생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음을 진정 믿고 시인할 수 있는가? 또 어느 누가 사람의 운명이 조물주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 이 사실을 진정 꿰뚫어 볼 수 있는가? 인류가 조물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이 사실에 직면할 때 인류가 어떤 태도로 조물주의 주재를 대해야 하는가는 지금 이 사실에 직면한 각 사람마다 해야 할 선택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먼저 첫 마디 말씀을 보겠습니다.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모두 조물주의 주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고 조물주의 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한 마디 말씀을 총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 부분은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모두 조물주의 주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고 조물주의 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매우 밀접한”이라고 하면 그것은 한 방면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방면과 다 연관이 있다는 것인데, 이런 연관성이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단지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이 하나님의 주재와 연관이 있다는 것만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하나님의 말씀의 효과에 이를 수 있습니까? (이를 수 없습니다.) 연관이 있다고만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안배이니 인류가 벗어날 수 없어요.”라고만 인식한다면 그런 인식은 너무 단순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런 한 마디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바로 인류의 운명의 매 단계의 발전 과정과 원인과 결과 그리고 매 단계의 마지막 결말을 모두 조물주의 주재와 연관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바리새인들이 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일을 어떻게 인식합니까? 큰 붉은 용의 산생과 그것의 결말은 조물주의 주재와 어떠한 연관이 있습니까? 만약 이 일을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무나 복잡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큰 붉은 용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의 받침물로 명정하셨습니까? 여기에 구해야 할 진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구해야 할 진리가 있고 여기에 비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민족의 운명이 마지막에 어떠하고 한 국가나 전 인류가 어떤 운명일지는 무엇을 근거로 결정되는 것입니까? 이 안의 세부적인 일은 정말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차츰 경력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한다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모두 조물주의 주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고”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참된 인식이 조금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경력하지 않거나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내용입니다. “모두 조물주의 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라는 이 말씀에 대해서도 우리가 조금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한 국가가 이 세상에서 어떤 지위에 있고 얼마나 강대하며 얼마나 큰 실력이 있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사역 중에서 어떤 효력을 하고 무슨 역할을 맡을지는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에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와 직접적이고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일본을 강대하게 해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게 했고 어느 날 중국을 제재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일본을 이용하여 어떤 효력을 하게 했습니까? 중국 즉, 큰 붉은 용을 징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율법시대의 한 단계 사역을 하셨고, 은혜시대에 또 한 단계 사역을 하셨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가 이스라엘을 제재하고 이 지구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상황에서 만일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나라가 없다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일으켜 강대케 하여 이스라엘을 돕게 하셨기에 이스라엘의 적국(敵國)은 이스라엘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적국들이 미국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의 강성 여부와 어떠한 실력이 있는지는 모두 하나님의 안배가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하나님의 안배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어리석어 그런 국가의 사람들이 능력이 있고 머리가 좋아서 그런 나라가 날로 강대해졌다고 한다면 이런 논조가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들을 지배하고 안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대하게 하는 나라는 강대해지고 하나님이 어느 나라를 저주하시면 그 나라는 곧 끝장일 것인데 모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가 있습니다.

【107-B-2】

말세에 하나님은 중국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는 한 무리 이긴 자들을 만드시려 하십니다. 그리하여 말세 이전의 그 100여 년 이래 하나님은 먼저 교회를 세우시려 했지만 집권당이 허락하지 않았고 극력 선교사들을 박해하고 몇백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 어떤 사건들이 발생했습니까? 8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쳐들어왔고 결국 청나라는 멸망되었습니다. 청나라가 망하자 선교사의 사역이 중국에서 완전히 구체화되어 수천만 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중국 본토에서도 몇 명의 전도자들을 일으키셨는데 이렇게 교회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세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때 많은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이 중국에서 사역하고 계시고 복음이 중국 전역에 다 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우리들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중국에서 교회를 세우셨고 복음을 확장하셨으며 어떤 국가들을 움직여 효력을 하게 하셨는지 이런 사실에 대해 분명히 알았겠죠? (네.) 겉보기에는 8국 연합국이 청나라를 멸한 것 같지만 이것은 누가 안배하신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입니다. 이러한 실례는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보게 합니까? 인류와 만물의 운명은 모두 조물주의 주재, 안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합니다. 각 나라와 각 민족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고 더욱이 전 인류의 운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에 하늘에서 홍수가 내려 그 시대를 멸하였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셨습니까? 모두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심에는 모두 진리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영문인지도 잘 모르면서 하나님이 왜 이 일을 하셨냐고 원망한다면 너무나 생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에는 틀림없이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멸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 각국의 운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를 일으키려 하시고 어떤 국가를 이용하여 어떤 효력을 시키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국가를 저주하고 멸하려 하시는지, 그 어떤 민족이든 다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인류와 만물의 운명 그리고 각 국가와 각 민족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겠죠? 이것은 진리이고 사실이기에 마땅히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무신론은 역사 사실을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늘 답을 찾지 못하고 사실의 실상을 간파하지 못하며 오랜 시간 연구해도 결론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는 영원히 장님인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내용입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와 만물의 운명이 어떠한지는 모두 조물주의 권병과 갈라놓을 수 없는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인류의 결말은 무엇입니까? 노아 시대의 인류와 같지 않습니까? 같습니다. 그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어떠했습니까? 어느 정도로 사악했습니까? 음란이 본성으로 되어 장가들고 또 장가들며 시집가고 또 시집가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만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70~80세 된 노인들조차도 그렇고 결혼도 호화스럽게 합니다. 전 세계가 다 이렇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노아의 시대와 완전히 똑같습니다. 인류는 다른 즐거움이 없기에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밖에 모르는데 이것이 음란이 본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경까지 타락되었다는 것은 이 인류를 멸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을 어떻게 주재하시는지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에 근거하여 인류의 패괴된 정도에 따라 처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은 줄곧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 계시는데, 사탄이 인류를 점점 더 깊이 패괴시킴에 따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도 점차 심화되었습니다. 말세에 이르러 인류가 모두 패괴되어 마귀가 되었을 때 하나님 역시 그분과 마음과 뜻이 합하는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고 구원하심으로 이 시대를 끝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이 사악하고 어두운 세계를 훼멸하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모두 조물주의 주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고”라는 이 말씀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어느 국가가 언제 강대해지고 언제 하나님의 손에 멸망되며 어느 국가가 언제 빈곤해지고 낙후해지는가도 역시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그 지역은 왜 그렇게 가난합니까? 무엇 때문에 그 사람들은 거기까지 가서 사람으로 환생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관련이 있고 모두 원인이 있습니다. 한 영혼이 어디에서 환생하고 어디에 가서 어떤 고생을 해야 되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완성하고 무엇을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큰 붉은 용에게 핍박과 패괴, 짓밟힘을 당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지 않습니까?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경력하고 나서 모두 큰 붉은 용을 증오하고 저주하며 배반하고 굳건히 하나님을 따르며 마지막에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저는 왜 중국에서 태어났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일본에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독일에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라고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이것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왜 이렇게 저의 운명을 안배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저를 이런 가정과 이런 사회 환경 그리고 이런 국가에 안배하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원칙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하나님이 저를 중국에 태어나게 하셔서 큰 붉은 용의 모진 핍박을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이끄시고 안배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저의 생명이 자라나는 데에 너무나 유익합니다. 이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공의와 전능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후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을 보았기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면서 행하신 매 한 가지 일들(각 사람에 대한 안배 포함)도 다 가장 좋은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어째서 외모가 특출나게 빼어난 부모님의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습니까? 그랬다면 저도 조금 잘 생겼을 텐데.”라고 말하는데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난 후 당신은 이렇게 말해야 됩니다.“제가 이렇게 생긴 것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생긴 것도 다 원인과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틀릴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전생에 무슨 일을 했나 봅니다. 그러니 고생을 안 하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는 키가 왜 이렇게 작습니까? 만약 키가 좀 컸더라면 스타가 됐을 텐데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키가 작은 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안배와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잘 생기지 못했고 피부도 너무 검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러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기 때문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릇 당신이 어떤 처지에 있고 외모가 어떠하며 가정 형편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 너무나 좋으며 너무나 적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좋습니다.

【107-B-3】

인류는 만물의 규율 속에서 조물주의 지배와 주재를 체득하게 되었고” 그러면 과학자가 체득할 수 있습니까? 의사가 체득할 수 있습니까? 생물학자가 체득할 수 있습니까? 모두 체득할 수 없습니다. 의사가 무엇을 체득할 수 있는지 얘기해 봅시다. 의사는 사람의 신체 구조와 혈액을 몇십 년 연구한 뒤 인류는 정말로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인체가 어떤 구조이고 관절이 몇 마디이고 어떤 혈액형인지 사람이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많은 병을 고칠 수 없고 선천적인 병도 고칠 수 없으며, 후천적으로 전염되고 상해로 생긴 병은 일정한 기간은 얼마쯤 치유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인체는 너무 기묘합니다. 여기에는 정말로 법칙이 있습니다! 인체의 구조와 인체의 질병이 바로 커다란 비밀인데, 지금까지 인류가 완전하게 연구해 냈습니까? 아무도 못했습니다! 인류는 유전학도 완전하게 연구해 내지 못합니다. 현재 유전자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계에 어떤 종족이나 어떤 피부색, 어떤 혈액형의 사람이든 마지막에는 두 사람 즉, 아담과 하와에게로 귀결시켰는데, 인류의 조상은 확실히 하나의 조상 즉 아담과 하와이기에 진화론을 부인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인류는 만물의 규율 속에서 조물주의 지배와 주재를 체득하게 되었고”라는 것입니다. 천문학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도 규칙을 발견하였는데, 배후에는 암흑 에너지가 전 우주를 주재하고 조종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별이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사명을 갖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지배하십니다. 모든 피조물 그리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된 국가라 해도 그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이 별 하나의 위치를 조금 옮겨 놓으려고 해도 옮길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큰 붉은 용이 그렇게 사악하고 반동적이지만 그것은 지구의 회전을1분도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지구의 회전을 멈출 수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상청 연구원들이 오랫동안 연구를 했지만 하나님께서 기후를 변화무쌍하게 하실 수 있기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진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지진이 도대체 언제 발생할지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각종 동물들은 어떻게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느낄 수 있습니까? 그 예감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이것은 과학자도 연구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는 동물보다 고등 피조물이면서도 왜 각종 천재를 먼저 느낄 수 없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는 있습니다. 동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 대하여 특별한 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무릇 어떤 분야의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든 조물주의 주재와 지배, 안배는 그 어떤 피조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실증했습니다. 마지막에 조물주의 행사가 너무나 기묘하고 만물은 확실히 하나님이 창조하셨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정했습니다.

만물의 생존 법칙 속에서 조물주의 주관을 보게 되었으며”, 만물의 생존 법칙은 다 같지 않지만 모두 조물주의 주관하에 있습니다. 모기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를 말해 보세요. 개구리는 무엇을 먹고 삽니까? 코끼리와 코뿔소는 무엇을 먹고 삽니까? 사자와 호랑이는 무엇을 먹고 삽니까? 인류는 무엇으로 생존합니까? 사자와 호랑이와 음식을 다투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코끼리와 코뿔소와 풀을 다투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보세요, 조물주께서 이렇게 안배하고 주관하심으로 인류를 포함하여 각종 살아있는 것들은 다 자기만의 생존 방식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물을 관리하시는 것은 조금도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만물의 숙명 속에서 조물주가 만물에 대해 주재하거나 주관하는 방식을 귀납해 내게 되었다.” 만물의 운명과 만물의 법칙 그리고 만물의 결말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물은 다 각기 그것의 대략적인 수명이 있고 그의 법칙이 있습니다. 인류의 법칙에도 생로병사가 있는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어떤 병에 걸리고 어떤 연령대에 무슨 병에 걸리며 그리고 마지막에 대다수 사람들이 어느 연령대에 죽는 것입니다. 인류가 인류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인류가 생존하는 필연적인 법칙과 결과는 숙명이기에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운명은 자기 손에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릇된 논리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죽지 않습니까? 병에 걸리지 않습니까? 당신이 오곡잡곡을 먹지 않으면 무엇을 먹겠습니까? 사람의 생활 방식은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께서 모두 명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태어나서는 젖을 먹어야 하고 젖을 뗀 후에는 오곡잡곡과 야채를 먹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고 마지막에 어떤 병에 걸리고 사람의 수명이 얼마인지도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일생에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어떤 특기가 있으며 무슨 사명을 완성하는지도 하나님의 명정에 있고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사명을 가지고 왔기에 그는 일생동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술을 배우러 왔기에 일생 동안 무술을 배워야 합니다. 무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생도 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와 같은 이 무리 사람들이 와서 하는 주요한 사명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떤 가족의 대다수 사람들은 의학을 배우고 어떤 가족의 대다수 사람들은 교육계에 종사하며 어떤 가족의 대다수 사람들은 모두 관직에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명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일생을 경력하면서 마지막에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거역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 손의 안배를 벗어날 수 없고, 피동적으로 하나님의 안배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107-B-4】

그리고 인류와 만물의 생사 윤회 속에서 인류는 만물의 생령에 대한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를 진정 체험하게 되었고” 이 “생사윤회”는 인류에게 있어서 확실히 비밀입니다. 왜 비밀이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이 이 인간 세상에 올 때 전생의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볼 수가 없고 자신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실 가운데서 이런 일을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데 어떤 사실인지 아십니까?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전생을 압니다. 중국 후난(湖南) 일대의 어느 마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전생에 어느 가정에서 태어났고 몇 살까지 살았으며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않자 그가 전생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보니 그럴듯하게 진짜처럼 여겨져 사실을 확인하고자 그 사람을 데리고 그 집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집에 가서 무슨 성씨였고 어떤 이름이었다고 말한 것이 다 맞아 떨어지자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많고 각국에도 다 있기에 사람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류는 기껏해야 이 정도밖에 알지를 못합니다. 인류는 전생이 있고 생사윤회가 있고 이런 사실이 진짜라는 것만 압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볼 수 있습니까? 여기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의 전생이 왜 그러했고 금생은 왜 이렇겠습니까? 여기에 또 비밀이 있습니다! 많은 일들을 사람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전생과 금생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의 전생과 금생을 안배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이런 것을 안배하시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인정한다면 그나마 괜찮은 것이고 더이상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안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의 행사에는 다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해야만 비로소 좋은 결말과 운명이 있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고, 어떤 사람들은 태어난 후 어떤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희귀병에 걸려서 아무리 치료를 해도 고칠 수가 없고,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질병의 시달림 속에서 살아가도록 명정되었습니다. 여기에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일들에는 모두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인과응보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전생에 남의 것을 너무나 많이 탐했고 너무 많은 사람을 기만했다면 금생에는 그 사람에게 빚을 갚거나 소나 말이 되어 온갖 고생을 하고 수모를 당해야 하는데 이것이 인과응보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바로 인과응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들을 보고 난 후 단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은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하여 인식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전능은 그 어떤 사람도 초월하거나 바꿀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이고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과제입니다.

또한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가 세상의 모든 법령, 규정, 제도를 초월하고 그 어떤 힘과 세력까지도 초월한다는 것을 진정 보게 되었다.” 이 사실에 대해 우리도 조금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배치하고 명정하신 이런 법칙은 인간 세상의 모든 법령, 규정, 제도보다도 훨씬 좋고 완벽합니다! 인간 세상의 법령이나 규정 그리고 제도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것은 공평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조물주가 명정하신 이러한 법칙은 특별히 완전무결하여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한편 “그 어떤 힘과 세력까지도 초월한다.” 이 말씀은 그 어떤 사람이나 세력 그리고 어떠한 국가도 하나님이 명정해 놓으신 만물의 생존법칙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보았습니까? 조물주의 전능과 권병은 그 어떤 사람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사람의 키를 크게 할 수 없고 사람의 외모를 아름답게 바꾸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성형해서 외모가 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고통을 다 받고 나서도 어떤 운명이면 여전히 그런 운명이고 어떤 고생을 해야 될 운명이면 여전히 그런 고생을 감당해야 하며 가난한 운명이면 여전히 가난한 운명입니다. 수명이 짧은 사람이 수명을 늘리고 싶어 한다고 바꿀 수 있습니까?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이 황실이나 대통령의 집안에서 태어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수명이 짧은 사람은 역시 짧고, 죽어야 할 사람은 역시 죽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는 사람이 바꾸거나 초월할 수 없고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행성에 가서 생활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구에서 살도록 정해졌든 아니면 어느 나라에서 살도록 정해졌든 모두 바꿀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사람도 하나님이 안배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외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정해 놓으셨으면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갈 수 없고, 어떤 사람은 저 나라로 가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가지 못하고 이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확정할 수 없고 모두 자신의 계획과 안배대로 될 수 없으며 다 하나님의 주재와 관련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이후가 어떠한지 미리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해주신 모든 것은 다 비밀이기에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몸부림을 치고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친다 하더라도 여전히 피동적으로 하나님의 명정에 순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또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재를 인정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당신은 하나님의 명정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주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순복하지 않는다 해도 피동적으로라도 순복해야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당신은 억지로라도 하나님께 끌려가야 합니다. 가고 싶지 않다고 해도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정이고, 하나님의 권병입니다.

【107-B-5】

이로부터 인류는 조물주의 주재는 그 어떤 피조물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사실을 모두 다 볼 수 있겠죠? 조물주의 주재를 어느 누가 파괴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조물주가 어떻게 안배하셨는지를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환경이 되는대로 자신의 방식을 선택하는데 이것 또한 피동적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알았다고 해서 파괴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는 노래를 안 부를 거야, 춤 추러 가고 말 거야.”라고 한다면 됩니까? 춤을 좋아하지 않기에 춤 추고 싶어도 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춤 추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잘 출 수도 없고 팔과 다리가 말을 듣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은 그런 운명이 아니기에 아무리 돈을 많이 쓴다 해도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운명적으로 정해져야 하며 더욱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파괴할 수 없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이 그런 운명이면 당신이 노력해서 그 일을 이룰 수 있지만, 당신이 그런 운명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소용없고 대통령이 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명정이면 어느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명정이 맞습니까?”라고 하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의 명정입니다. 당신에게 그런 사주 팔자가 없으면 사장이 될 수 없고 사장이 되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부도가 날 것입니다. 사람의 혼인은 하나님의 명정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가 상대를 원하지 않는다면 혼인이 성사되겠습니까? 그 밖에 하나님이 명정하신 때가 되지 않았을 때 상대방이 당신을 봤을 때는 사람으로 보이고 당신이 잘 생겼다고 말하지만, 당신이 상대방을 봤을 때는 귀신으로 보이는데 혼인이 성사되겠습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성사되지 않습니다. 아들, 딸 낳는 것은 하나님의 명정입니까? 한 사람의 운명에 자녀가 있는지의 여부와 아들 몇 명, 딸이 몇 명 있는지도 하나님께서 명정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것은 사람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사람이 아들을 낳고 싶으면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싶으면 딸을 낳을 수 있고 몇 명을 낳고 싶으면 몇 명 낳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성립됩니까?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낳기를 원하지만 그런 팔자가 없어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낳고 싶지 않지만 그의 팔자에 아이 복이 있어 낳는 대로 아이가 살고,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명정하신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어떤 일들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자기의 선택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선택을 하겠습니까? 당신은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중국에서 미국까지 도망을 가서 선택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여전히 운명의 안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인식해야 합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 안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인류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타고난 취미를 바꿀 수 있습니까?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천성적으로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어떤 분야의 일을 할지 모두 하나님의 명정에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얻을지도 하나님의 명정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노래를 할 재목이고,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과학을 연구할 사람이며,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관직에 있을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도를 닦을 사람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에게 중이 되라고 정한 것을 그가 안다면 “나는 절대로 중이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중이 되지 않고 다른 것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실패를 맛보고 여전히 중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먼 길을 돌다가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엇을 하게 명정하셨다면 여전히 그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착실하게 조물주의 안배에 순복하면 됩니다.

조물주의 주재는 그 어떤 피조물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고”, 어느 국가나 어느 민족이 파괴할 수 있습니까? 과학이 가장 발달된 국가가 조물주의 안배를 파괴할 수 있습니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달되었다 할지라도 조물주의 명정과 허락 범위 안에 있는데 어느 정도까지 발달할 수 있겠습니까? 쥐가 코끼리로 변할 수 있겠습니까? 코끼리가 크다고 해서 산으로 변할 수 있습니까? 운명으로 정해 놓았기에 변할 수 없고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상의 과학으로 달이나 외부 행성에까지 도달하려고 하는데 도달할 수 있습니까?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치대로 말하면 인류가 달나라에 이미 갔었는데 그럼 계속 몇 번 갈 것이지 왜 감히 가지를 못하겠습니까? 달에는 달의 생물이 있는데 사람이 제멋대로 가면 되겠습니까? 그 지역이 누구에게 속하고 누구에게 나누어 줬는지도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셨기에 어느 누구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될 줄을 이전에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 가운데서 확장되고 사람들 가운데서 형성되며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는데, 어떤 세력도 나의 나라를 파괴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권병(역주: 권세)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큰 붉은 용이 미친 듯이 붙잡고 진압하고 제거하려 하지만 목적을 달성했습니까? 달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고분고분해졌고 수치를 당했으며 항복하면서 “이 무리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 아무리 제거하려 해도 안 돼.”라고 말합니다. 큰 붉은 용이 갖은 수단을 다 썼지만 우리 이 무리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건재(健在)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터넷에 올렸고 신문에 게재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합창 동영상과 영화도 인터넷에 올렸는데 갈수록 봇물 터지듯 하여 큰 붉은 용은 속수무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세력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이로부터 인류는 조물주의 주재는 그 어떤 피조물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고 조물주의 명정 아래의 만사만물은 그 어떤 세력도 침범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인류와 만물은 바로 이러한 천상의 법칙과 규율 속에서 한 세대 또 한 세대 생존하고 번식해 온 것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류의 역사는 이미 몇만 년이나 되었고 이것이 진실임을 하나님의 이 말씀이 완전히 실증했습니다. “조물주의 명정 아래의 만사만물은 그 어떤 세력도 침범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며” 만사만물은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밖에 당신이 마음대로 공기를 없애려 하거나 바꾸려고 해도 안 되고 햇빛을 바꾸려고 해도 안 되며 사람이 먹는 식량을 바꾸려고 해도 안 되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밖에 당신이 한 민족이나 한 국가를 마음대로 제거하려 해도 안 되고 아무도 할 수도 없으며 이런 일은 오로지 조물주만이 안배할 수 있습니다. 조물주가 어떤 나라를 일으켜서 어느 나라를 물리치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하나님이 안배하시는 것이지, 사람이나 어느 국가가 마음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하나님의 권병은 어느 누구도 벗어나거나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비록 외계인들의 과학이 발달해서 그들이 사용하는 비행접시가 어떤 것은 지구보다도 크지만 하나님께서 별들을 각자의 위치에 배치해 놓으셨는데 외계인들이 바꿀 수 있습니까?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권병이 참으로 구현된 것이 아닌가?”입니다. 이러한 일들에서 구현되고 드러나서 우리들로 하여금 조물주의 권병은 그 어떤 세력과 피조물도 초월할 수 없으며 조물주의 명정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했습니다.

【107-B-6】

비록 인류가 객관적 법칙 속에서 조물주의 주재를 보고 만사만물에 대한 조물주의 명정을 보았지만 또 조물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원칙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고 또 자신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를 진정 인식하고 시인하고 받아들이고 순복(역주: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인류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인류가 외적인 것만 알 수 있어도 대단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안의 비밀을 사람은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체이고 육체 가운데서 살면서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외적인 것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을 제고시킬 것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천지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인류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라고만 시인했고 이 한 마디 말만 알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천지만물을 주재하시느냐고 물으면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하지 않으셨기에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합니다. 인류가 몇 평생을 경력한다고 해서 인식을 얼마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분명하게 인식했습니까? 영원히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이런 사실을 다 인정할 수 있겠죠? 모두가 진심으로 탄복해야 됩니다!

조물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원칙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고 또 자신의 운명에 대한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를 진정 인식하고 시인하고 받아들이고 순복(역주: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법칙과 만사만물에게 정해 주신 숙명에 근거하여, 이론상으로는 하나님이 주재하는 사실을 믿지만 이 말씀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진실로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사실에서는 어떻게 믿고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많은 법칙과 사실 가운데서 보고 믿는 것이 진실한 믿음입니다. 그 밖에 우리가 조물주께서 만물을 주재하는 이 사실을 믿고 난 후 “조물주가 동시에 또 인류의 일생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음을 진정으로 믿고 시인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을 만드시고 난 후, 당신 일생의 운명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이 어떻게 명정하시고 안배하셨는지를 당신은 압니까? 세부적으로 말한다면 사람들은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도 압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럼 당신이 안다면 얼마나 순복할 수 있습니까? 왜 아직도 그렇게 몸부림칩니까? 무엇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까? 당신은 왜 여전히 애써 무엇을 바꾸려고 합니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당신은 정말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했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을 했습니까? 이것은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을 저는 다 보았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류의 일생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이 사실을 당신은 분명히 보았습니까?” “저도 인정합니다.” “당신이 인정한다면 지금 당신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있습니까?” “순복하고 말고요! 저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화비(역주: 헌신, 소비)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명예나 지위를 추구하고 두각을 나타내 남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왜 아직도 자신의 전망과 운명을 위하여 다른 일을 하고 따로 노력을 하고 일부 수단을 취합니까?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한다면 “하나님이 저의 일생을 가난하도록 명정하셨으면 저는 가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애를 쓸 필요도 없고 환상을 품고 타인의 재물을 편취하여 부유해질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안배하신 환경 가운데서 생활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하므로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사람이 배우자를 구했는데 상대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아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을 구했지? 안 돼, 이혼해야겠어. 이혼하고 다시 좋은 사람을 구해야겠어.’ 어떤 사람은 가난합니다. ‘가난하니 다른 사람의 재물을 편취해서 부자가 돼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관리가 되지 못하니 ‘관직을 쟁취해서 출세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자녀가 없기에 자녀를 낳고 싶어 합니다. 아들이 없으면 아들을 낳으려 하고, 딸이 없으면 딸을 낳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의 결혼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여러 번 하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운명을 위해 여전히 몸부림치고 분투하는데, 마치 운명이 자신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 것 같이 여기고 자신이 온갖 수단을 부리면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깁니다. 어떤 사람이 배우자를 구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한 것이지 배우자를 못 만나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상대가 눈에 차지 않으면 얕잡아 보고 마음에 들면 상대방이 원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외톨이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나는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배우자도 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이 말이 맞습니까? 어떤 사람이 배우자를 구하지 못한 것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는 “주님을 위하여 화비한다”고 말을 하며 화비하던 중 기회가 생기면 그는 “하나님이 저에게 상대자를 안배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조물주의 안배에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조물주의 안배에 순복하려면 우리는 착실하게 진리를 추구하면 됩니다. 조물주가 인류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진리이고 사람이 얻어야 할 생명이기에 우리는 착실하게 조물주의 사역을 경력하고 조물주의 말씀을 먹고 마셔 그분의 말씀을 모두 자신의 마음에 먹고 마심으로 자기의 생명이 되게 하며 마지막에 조물주의 말씀에 의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한편 남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행 가운데서도 조물주의 안배와 권병에 순복할 수 있으며 “조물주가 저에게 정해주신 방식 속에서 살겠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즐겁다.’라고 했듯이 욕망이나 특별한 요구가 없습니다. 내가 고생을 하도록 정해졌으면 고생을 해야 하고, 감옥에서 몇 년 살도록 정해 놓으셨다면 나는 성실하게 순복할 것이며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세상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빈곤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경력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 밖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자신의 어떤 목적을 이루거나 두각을 나타내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 추구하지 않습니다. “가령 언젠가 하나님 집에서 저를 인솔자로 안배한다고 해도 역시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리하게 추구하거나 사람의 수단으로 도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안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언젠가 우리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해 대체된다면 저는 평범한 따르는 자로 되어 제가 해야 할 본분을 다 하겠으며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조물주의 안배에 순복하겠습니다. 어떤 본분을 하라고 해도 다 괜찮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다 생활할 수 있고 고생해야 할 때에는 고생할 수 있으며, 인내해야 할 때에는 인내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며 선택이 없고 본분을 잘하여 진리를 얻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는 이런 사람만이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매일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고 옥신각신 하는 것보다 훨씬 낫죠? 어떤 사람은 날마다 이것을 봐도 눈에 거슬리고 저것을 봐도 눈에 거슬리며 자기만 괜찮아 보입니다. 그래서 누구와도 협력이나 교통을 할 수 없고 상대방이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미워하는데 이런 사람은 사는 것이 피곤합니다! 사람이 순복이 없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평안과 희락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 교회에 있는데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이 교회에 나의 천적이 몇이 있어. 그들이 있으니까 나를 나타낼 수가 없잖아. 어떻게 해서든 저 사람들을 내보내고 무너뜨려야지. 그들을 억눌러 걸림돌을 차버려야지. 그래야 내가 여기서 권력을 잡을 수 있어.’라고 말하며 이런 궁리만 합니다. 이는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이것은 악인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거역하면 행복하고 평안할 수 있습니까?

【107-B-7】

또 어느 누가 사람의 운명이 조물주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 이 사실을 진정 꿰뚫어 볼 수 있는가? 인류가 조물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이 사실에 직면할 때 인류가 어떤 태도로 조물주의 주재를 대해야 하는가는 지금 이 사실에 직면한 각 사람마다 해야 할 선택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몇 마디 말씀은 너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는 확실히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것이고 진리를 깨닫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시종일관 중시하지 않고 교통하지 않으며 곰곰히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면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조물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조물주가 발표하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진실되게 순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피조물의 본분을 잘함과 동시에 가장 중요하게 진입해야 할 한 가지가 “어떠한 태도로 조물주의 주재를 대해야 하는가”입니다. 어떻게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지는 지금 배워야 할 과제이고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서 진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하나님께 순복하는 진리를 자주 교통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진리는 몇 방면을 포함합니까?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순복하고 현재의 말씀에 순복하고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며 또 다른 한 가지는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매우 중요합니다!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라는 이 한 가지가 결여되면 되겠습니까? 이 한 가지가 부족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기어코 인솔자가 되려 하고 하나님과 권력을 다투며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려 하는데, 최후에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왜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습니까? 그것은 개인의 야심과 목적을 이루고 개인의 욕망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주요한 표현은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 어떤 목적에 이르려 하고 줄곧 야심과 욕망을 갖고 있는데 이러면 매우 곤란합니다. 각 사람은 마땅히 자신에게 지금도 어떤 욕망이 있는지,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자신이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지, 무엇 때문에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없는지, 무엇 때문에 늘 인솔자가 되려 하고 지위 다툼을 하며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려 하는지, 그리고 왜 늘 하나님 선민들을 통제하려 하고 남보다 위에 있으려고 하며 늘 머리가 되려고 하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사탄의 성품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솔자가 되었을 때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인솔자 사역을 잘하지 못해 대체되면 힘이 빠져 김빠진 공처럼 풀이 죽는데 이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면 “저에게 인솔자를 하라고 하면 힘이 생겨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책임을 다하고 마음을 더 쓰고 고생을 더 하겠습니다. 만약 저보고 보통 신자가 되라고 해도 순복하고 제 본분을 잘 할 것이며 전혀 소극적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심리 상태가 옳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본분을 하는 것이며 개인의 요구와 욕망이 없습니다. 당신이 결혼상대를 구할 때에도 자신의 요구가 있다면 타당합니까?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나 만나서 결혼하면 됩니까? 이것도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무엇입니까? 여러 방면에서 서로의 조건이 비슷해야지 차이가 너무 커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너무 못 생겼는데 여자는 너무 예쁘면 타당합니까? 이러면 어울리지 않기에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소질이 너무 좋고 다른 한 사람이 소질이 너무 낮으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어째서 안 됩니까? 공통언어가 없습니다. 당신이 소질이 너무 높아서 한 마디 하면 다른 사람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엇나가기에 두 사람 사이의 감정에 영향을 줍니다. 한 사람은 키가 매우 크고 다른 한 사람은 키가 너무 작다면 되겠습니까? 어울리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거리에 나갔는데, 남자가 키가 너무 작고 여자가 키가 너무 크다면 이건 누나가 남동생을 데리고 나온 건지 아니면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편, 살찐 정도에 있어서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나도 안 됩니다. 보기가 안 좋으니 어느 정도 어울려야 합니다. 이렇게 어울리는 것도 원칙이고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본분을 하는 데는 어떤 원칙이 있습니까? 당신이 어떤 본분을 할 수 있는지는 당신 자신이 잘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본분을 하는 것을 모두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착실히 그 본분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데 당신이 연기를 할 줄 압니까? 연기할 줄 모릅니다. 연기할 줄 모르면서도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면 적절하겠습니까? (적절하지 않니다.) 당신은 이런 특기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해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 부르기에 적합한데 배우가 되려고 한다면 적합합니까?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본을 쓰기에 적합한데 꼭 배우가 되려고 하거나 노래를 부르려고 합니다. 이러면 됩니까?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인솔자가 되기에 적합합니다. 그 사람은 소질도 괜찮고 경력도 있는데 배우가 되려 한다면 적합합니까? 이렇게 한다면 원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개인의 선택이 있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을 해야 하고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집에서는 당신의 특기에 따라 안배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한데 그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저는 합창단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요.”라고 하는데 이러면 안 됩니다. 당신이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하면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하고, 복음을 전함에 있어 선두에서 지휘하기에 적합하면 복음만 전하지 말고 지휘를 해야 하고, 간증인이 되기에 적합하면 복음대상 내막을 알아보는 본분을 하지 마세요. 무엇을 하기에 적합하면 그것을 하고 성실히 자기의 본분을 지키야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는 이러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그가 하는 본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습니다. 사람이 합격되게 피조물의 본분을 하려면 원칙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원칙을 어기면 안 되고 준수해야 합니다. 원칙을 준수하는 가운데서 어떤 때에는 자기를 배반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늘 욕망과 야심이 있으면 안 되며 늘 높은 데만 바라보지 말며 본분을 한동안 하고는 “이 본분, 이 정도면 충분해요. 다른 본분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러면 되겠습니까? 당신은 이 본분을 하는 것이 제일 적합한데 어떤 것으로 바꾸겠습니까? 본분은 함부로 바꾸는 것입니까? 본분을 함에 있어서 자주 바꾸면 안 되고 어떤 본분이 적합하면 계속 그 본분을 해야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 집에서 특별한 안배가 있으면 그때 순복하고, 다른 안배가 없으면 착실하게 자기의 본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데는 이러한 원칙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원칙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늘 자신의 요구와 욕망 그리고 자신의 야심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과 야심과 목적은 하나님의 요구에 맞지 않고, 육체에 속하며 육체로부터 비롯되고 사탄 본성에서 생긴 것이므로 반드시 배반해야 합니다.

【107-B-8】

어떤 사람은 돈 쓰는 걸 좋아해서 집안이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돈을 쓰고 싶어 합니다. 이러면 되겠습니까? 조금 자제하고 돈을 헤프게 쓰지 마세요. 예전에 빈곤한 시절에 어떤 사람은 옷 한 벌을 한평생 입었습니다. 지금 그런 걸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조건이 좋아졌어도 너무 지나치게 바라지 말고 조건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생활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생활 조건이 보통이어서 기껏해야 옷 몇 벌밖에 없다면 그런대로 바꿔 입으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스무 벌이나 있다 해서 그 사람과 뭐 비교할 게 있습니까? 우리 이 가난한 지역에 서너댓 벌 있으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게 아닙니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즐겁다.”라고 했듯이 늘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차를 즐겨 마십니다. 그런데 당신이 간 곳에 차가 없다면 그래도 기어코 차를 마시겠습니까? 그것은 조건이 좋아서 당신의 습관이 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냉수도 마시기 어려운 지역에 보내져 개천의 물을 마셔야 한다면 안 마시겠습니까? 나중에는 어떤 물이든 상관하지 않고 다 마실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 있으면 그 환경에서 과제를 배워야 하고 고생을 해야 된다면 고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끼니마다 고기가 없으며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당신을 가난한 지역에 보내서 한평생 고기 한 점도 못 먹게 할 것입니다. 사람의 이러한 사치한 욕망과 야심은 정말이지 배반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따르세요. 하나님이 당신에게 적당한 환경을 안배하시기에 당신이 육체를 배반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유난히 방탕해서 자유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환경을 배설하셔서 당신을 감옥에다 넣고는 날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지키게 할 것입니다. 조금 늦게 걸어도 안 되고 일을 조금 적게 해도 매를 맞을 것인데 3년이면 당신의 그 결점을 고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좋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이며 당신에게 과제를 배우게 하는 것이고 사람마다 배워야 할 과제이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엇을 “안 된다”고 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된다면 되는 것이지 당신 스스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패괴된 본성을 사람은 벗어버릴 수 없기에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안배하신 환경대로 거기에서 배울 과제를 배우세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무엇이 좋습니까? 각종 환경이 변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로 말미암아 사람의 패괴 성정이 정결함을 얻고 사람의 생명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효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주재의 권병과 전능은 누구도 바꿀 수 없으며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유을 주재하시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은 우리가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 것과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읽고 나서는 한 방면으로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또한 이 진리를 실행해서 우리의 이후의 경력 가운데서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진리를 교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데에 얼마만큼 진입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 진리에 어떻게 진입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엇을 정해 놓으셨습니까? 당신을 어떤 환경에 명정해 놓으셨습니까? 어떤 가정과 어떤 남편(아내) 그리고 어떤 자녀를 명정해 놓으셨으며, 당신에게 어떤 특기가 있고 당신이 어느 교회에서 무슨 본분을 할 것인지도 명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럼 당신이 무슨 과제를 배워야 하고 육체의 어떤 것들을 배반해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고 어떻게 당신의 가정과 친척 그리고 당신의 본분과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대해야 할지, 이러한 것을 당신이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선택하는가가 지금 진입해야 할 진리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 아직 어떤 욕망과 야심이 걸림돌이 되고 장애물이 됩니까? 어떤 사람은 “저는 저의 청춘과 일생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한평생 가정을 이루지 않고 자녀도 없는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것을 고민해야 됩니까?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자제할 수 없는데 이것은 현실적 문제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강을 건너려면 신을 벗어야 한다” “산 앞에 가면 반드시 길이 있다”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순리에 맡기면 됩니다. 지금이 바로 본분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면 배우자를 구하지 말고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마음이 없다면 맹목적으로 구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어떠한 일들이 닥칠지를 봐야 하고 하나님께서 지금 무슨 사역을 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분명히 꿰뚫어 보지 못하고 당신이 함부로 자신의 일을 계획한다면 일들이 잘못되거나 어긋나기 쉽고 자기 자신에게 골칫거리를 가져다주기 쉽습니다. 자녀나 남편(아내) 그리고 나중에 어디에서 살 것인지, 나중에 어떻게 살 것인지 많은 일들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바로 재난의 날로 좋은 날이 얼마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날이 얼마 없다고 하는데 그 시간이 얼마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길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이 땅에 하루라도 계시는 날이 바로 좋은 날입니다. 언젠가 내란이 일어나고 사역이 정지되고 재난이 내려오면 더 이상 좋은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1년이나 2년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몇 편의 영화가 완성되고 합창이 두 회 정도 완성되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최고봉에 이릅니다. 최고봉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사역이 곧 끝나고 재난이 바로 내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몇 가지 큰 재난이 곧 내릴 것입니다. 첫째, 전쟁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지진이 수시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셋째, 기근이 수시로 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재난이 내린다면 좋은 날이 있겠습니까? 어느 한 가지 재난이 내려도 사람은 끝장입니다. 지금이 위험한 날들이지 않습니까?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다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현재 최고봉에 이르렀기에 좋은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빨리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하고 선행을 예비해야지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면 소용없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행복한 날을 보내고 결혼상대를 구해 결혼을 하고 부자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방의 짐승들이나 추구하는 것이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제는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선행을 예비하고 진리를 갖추어 합격되게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어야 구원을 받고 좋은 거처가 있게 되는데,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방인 포함)이 일생을 살면서 주로는 무엇을 얻어야 합니까? 돈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까? 돈을 자루로 벌고 병에 걸려서 죽는다면 그 돈이 무엇입니까? 근사한 별장과 아파트를 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병에 걸려서 죽는다면 그 별장과 아파트에서 누가 살게 됩니까? 좋은 남편(좋은 아내)과 착한 자녀가 재난 속에서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두 헛된 것입니다. 물질 세계의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좋은 거처가 있는 것이 제일 보배롭고 가장 값진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이 말해 보세요. 부자들이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을 때 마음의 위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많은 돈이 있는데 어째서 위로가 없습니까? 관건은 돈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죽으면 정말로 지옥과 천국이 있을까?” 사람이 거의 다 죽게 되었을 때 무슨 생각을 합니까? 죽은 후에 있게 될 곳을 생각합니다! 사람이 노년이 되면 자신이 일생을 살다가 나중에 갈 좋은 거처가 있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무엇보다 보배롭다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설령 일생 동안 고생했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아름다운 거처가 있다면 죽을 때에 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 세상의 복을 다 누렸어도 죽어서 좋은 거처가 없고 지옥으로 간다면 사람은 일생을 헛되이 산 것이고 잘못된 길을 걸었고 좋은 거처를 얻지 못했음을 느낄 것입니다. 마지막 거처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며 이것 외에는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분명히 보았습니까? (분명히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누구누구는 좋은 결혼 상대를 만났네. 백마 탄 왕자고 부자네.” “누구누구는 좋은 여자 얻었네” “누구누구는 좋은 부모가 있네” “누구누구는 좋은 직장이 있네”…… 이런 것들을 부러워한들 소용 있습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한 움큼의 잡초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다년간 믿으면서 노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는 “제 평생에 하나님을 믿은 것만은 가장 잘 선택한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전혀 후회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많이 얻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고 마지막에 아무런 본분도 하지 못하고 중요한 본분은 해보지도 못한 것이 가장 유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지를 얻지 못하면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이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좋은 거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완전히 정확한 것이고, 진리를 얻으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진리를 얻었다면 아름다운 거처가 있기 마련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고 일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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