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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 관한 설교 교통 (12)

하나님 말씀 읽겠습니다.

『우리 계속해서 시련을 받은 후의 욥이 어떠한지를 보자.

5. 시련을 받은 후의 욥

(욥 42:7-9)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 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보이고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비천하게 보인다

≪욥기≫ 42장 7절에서 9절에 하나님은 욥을 그의 종이라고 언급하였다. “종”이란 이런 호칭으로 욥을 칭했는데,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욥의 가치를 뜻한다. 비록 하나님이 그에 대해 더 높은 호칭은 없었지만 이 호칭은 결코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욥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의 “종”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애칭”이다. 하나님이 여러 번 “내 종 욥”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욥에 대한 하나님의 기쁜 심정을 알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이 “종”이란 단어의 함의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이 성경 본문에서 한 말씀에서 하나님이 “종”이란 이 단어에 대해 내린 정의(定義)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욥을 시련한 후에 처음 공개적으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욥이 한 것과 말한 것을 열납한다고 알려 준 것이며 처음 공개적으로 욥이 전에 한 것과 말한 것의 확실성과 정확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의 부정확하고 황당한 의논으로 인해 그들에게 노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배경에서 살면서도 욥은 하나님에 대해 이토록 정확한 인식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제멋대로 추측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음에 화가 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욥이 한 것과 말한 것을 열납한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해 분노가 생겼다. 하나님은 그들의 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들에게 요구하였다.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일을 함으로 그들의 죄를 씻으라고 알려 주었다.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번제를 드림으로 그들의 과오를 만회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번제는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지만 이번의 번제는 욥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 번제의 특이한 점이다. 욥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열납되었고 동시에 욥의 친구 몇몇은 오히려 욥이 시련을 받는 기간에 드러났다. 그들은 우매하고 거만한 탓에 하나님께 정죄받고 하나님의 노기를 건드려 당연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는데, 이 “징벌”이 바로 욥의 앞에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런 후에 또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기를 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조치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데에 뜻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이 욥의 순전함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들의 모든 행위를 열납하지 않고 욥을 크게 열납하고 기뻐한다고 알려 주었으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고, 우매하고 거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혐오를 받고, 우매하고 거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하나님의 눈에 비천하게 보인다고 알려 주었다. 이 두 방면은 하나님이 두 부류의 사람에게 내린 정의(定義)이고 이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자 이 두 부류 사람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하나님의 논법이다. 비록 하나님이 욥을 종으로 호칭했을지라도 이 “종”은 하나님 눈에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권병을 부여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과오를 사해 줄 수 있게 한 사람이며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직접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고 다른 사람보다 존귀한 사람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한 “종”의 진정한 함의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종”으로 칭함받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2가지 확연히 다른 태도가 바로 두 부류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 눈에 귀하게 보이며,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날 수 없기에 하나님의 기쁨을 얻지 못하고 늘 하나님께 혐오를 받고 하나님께 정죄받으며 하나님 눈에 비천하게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권병을 주었다

욥은 그의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한 후, 하나님은 욥의 기도로 인해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에 따라 그들을 처리하지 않았다. 즉 그들을 징벌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그 어떤 보응도 내리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종, 욥이 그들을 위해 한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욥의 기도를 열납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였다.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하나님이 한 사람을 축복할 때 그에게 상을 많이 줄 것인데, 이 상은 물질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권병도 주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자격이 있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줌으로 말미암아 그 몇 사람의 과오를 마음에 두지 않았고 따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욥에게 준 권병이다. “욥의 기도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는” 이런 방식으로써 그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였는데, 물론 이것도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징벌이다.

욥은 재차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더는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 말씀 중에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고 언급되었는데, 욥은 어떤 말들을 했는가? 바로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것과 ≪욥기≫에 기록된, 욥이 말한 그 큰 편폭의 말이다. 이 큰 편폭의 모든 말 속에 하나님에 대한 그의 어떠한 원망도 없고 어떠한 추측도 없다. 그는 결과만 기다렸을 뿐이다. 그의 기다림은 바로 순복(역주: 순종)하는 태도였다. 그의 태도로 인하여, 그가 하나님께 한 말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를 열납하였다. 그가 시련을 겪을 때,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은 바로 그의 곁에 있었다. 비록 그의 고통이 하나님이 그의 곁에 있었다 하여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고자 했던 것을 보았고 듣고자 했던 것을 들었다. 욥의 모든 행위의 한 장면 한 장면과 그가 말한 구절구절마다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어 하나님이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그때에, 그 시기에 하나님에 대한 욥의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마음속의 생각은 사실 현재의 사람처럼 이렇게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배경에 근거해 하나님은 여전히 그가 말한 것에 대해 인정하였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 생각과 그의 행위 때문이고 그가 표현한 것과 유로한 것이 이미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욥이 시련을 겪는 기간에 그가 속으로 생각한 것과 해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하나님에게 하나의 결과를 보게 하였는데, 이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해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시련을 거두었고 그 뒤로 욥이 역경 속에서 나왔는데, 욥의 시련은 그때부터 사라지고 더는 없었다. 그가 이미 시련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시련 속에서 굳게 서고 철저히 사탄을 이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명정언순(名正言順)하게 그에게 복을 베풀어 주려 하였던 것이다. ≪욥기≫ 42장 10절과 12절에 기술된 바와 같이 욥은 또 한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이때 사탄이 물러갔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욥은 더는 사탄의 방해와 공격을 받지 않았으며 욥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도 더는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비록 그때의 축복은 일부 소나 양, 낙타, 가산 등등에만 국한되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베풀어 주려는 것은 전혀 이런 것만이 아니었다. 당시에 하나님이 욥에게 어떤 영원한 약속을 주겠다고 기록된 것이 있는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중에는 결말을 언급하지 않았고 결말에 관련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 마음속에서 어떤 가치이든지, 어떤 지위가 있든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축복은 아주 적당하다. 그가 결말을 선포하지 않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사람의 결말을 선포하는 데까지 진행되지 않은 그때에 사역이 끝나는 단계까지 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은 결코 결말을 언급하지 않았고 단지 사람에게 일부 물질적인 축복만 주었다. 즉 욥의 여생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보낸 것이다. 이것은 그와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점이다. 같은 점은 그도 늙어가고 정상적 사람처럼 어느 날엔가 인간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성경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욥 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여기의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는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결말을 선포하지 않은 시대에 하나님은 욥에게도 나이를 정해 주고 수한이 찬 후 그로 하여금 이렇게 자연히 세상을 하직하게 하였다. 그가 두 번째로 축복을 받아서부터 죽기까지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그 어떤 고통도 더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이 보기에 자연스러운 것이자 역시 필연적인 것이고 아주 정상적인 일이지 판결을 선고한 것이 아니고 정죄한 것도 아니다. 욥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후 어떤 결말이 있었는지에 관해 하나님은 그 어떤 논법도 제시하지 않았고 그 어떤 평론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일하는 것은 아주 합당하다. 그가 말씀하고 일하는 내용과 원칙은 그의 역사 단계에 근거하고 그의 역사 시기에 근거하는 것이다. 욥과 같은 이런 사람이 하나님 마음속에서는 어떤 결말이 있겠는가? 하나님 마음속에 하나의 정론이 있지 않겠는가? 확실히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하나님은 사람에게 알려 주기를 원치 않고 사람에게 알려 줄 생각도 없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 욥은 이렇게 나이가 차서 죽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일생이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낸 가치

욥이 이 일생 동안 살아온 것은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왜 그가 살아온 것이 가치가 있다고 하는가? 사람이 보기에 그의 가치는 무엇인가? 사람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를 대표하여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한차례의 드높은 간증을 하였으며 그는 한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하였고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고 모본이 되어 인류로 하여금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완전히 사탄을 이길 수 있음을 보게 하였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이 보기에 욥의 삶의 가치는 바로 그가 살면서 능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고 찬송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에게서 위로를 얻게 하고 누릴 것이 있게 한 데에 있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삶의 가치는 또한 그가 살아있는 동안 겪은 이번 시련에서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드높은 간증을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류 가운데서 영광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를 얻게 하고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에 결과가 보이게 하고 희망도 보이게 한 데에 있다. 그의 간증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선례를 열어놓았다. 이런 것이 욥의 삶의 가치가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를 얻게 하였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얻는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경영 계획으로 하여금 여기에서 완벽한 시작이 있게 하였다. 그리고 욥의 이름은 이로부터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표징이 되었고 인류가 사탄을 이긴 기호로 되었다. 욥의 일생 동안의 살아냄과 사탄을 이긴 그의 위적(偉跡)은 영원히 하나님께 귀하게 보일 것이며, 그의 순전함과 정직(역주: 정의롭고 솔직하다의 뜻)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게 되었고 본이 되었다. 그는 마치 흠없고 눈부신 명주(明珠)와 같아 영원히 하나님께 소중히 여겨질 것이고 또한 사람이 소중히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다!』

먼저 “하나님은 욥에게 권병을 주었다”, 이 단락을 교제하겠습니다. “욥은 그의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한 후, 하나님은 욥의 기도로 인해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에 따라 그들을 처리하지 않았다. 즉 그들을 징벌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그 어떤 보응도 내리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종, 욥이 그들을 위해 한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욥의 기도를 열납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였다.” 이 말씀은 아주 의의 있습니다! 욥, 그 시대에 하나님의 선민 가운데도 등급이 있었습니다. 욥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고, 그의 세 친구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아니고 단지 일반 하나님 선민이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이 진리 실제를 구비하지 못했습니다. 욥과 같은 사람과 그의 세 친구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안중에 어떤 등급이었겠습니까? 앞의 이 단락 말씀에 설명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보이고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비천하게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중에 귀하게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 바로 욥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안중에 비천하게 보이는 사람은 바로 그의 세 친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 안중에서의,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 선민의 등급이 나뉘어진 것입니다. 이 두 등급에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바입니다. 예컨대, 우리 교회에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했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안중에 어떤 등급이겠습니까? 아십니까? 일부 사람들은 얼마간의 글귀 도리만 알고 많은 도리를 말할 줄 알지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안중에 또 어떤 등급이겠습니까? 이것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읽은 다음 하나님 안중에서의 각 부류 사람의 등급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귀하게 보시고 어떤 사람들을 비천하게 보시는지를 가늠하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심각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할까요? 첫째로 당신에게 진리 실제가 없고 둘째로 당신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을 혐오하시는지를 모르는데,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의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욥은 그의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한 후, 하나님은 욥의 기도로 인해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에 따라 그들을 처리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 즉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했습니다. 마음에 들어하시는 사람은 욥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글귀 도리를 말하기 좋아하고 남을 논단하기 좋아하는 그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들인데, 그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중에 비천하게 보입니다. 비천은 무슨 뜻입니까? 비천은 바로 무게가 없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말로 하면 바로 남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남을 싫증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중의 비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경시하시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욥의 그 세 친구가 한 말이 어떤 소식을 전달했습니까? 우리에게 무엇을 보게 합니까? 이 세 친구는 모두 말재주가 있고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많은 영적 도리를 말할 수 있지만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에 대해 그들은 조금도 알지 못했고 욥처럼 진리 실제가 있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특히 시련 속에서 간증을 굳게 선 이 사실을 그들은 조금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욥을 논단하면서 욥이 범죄한 탓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이 문제의 성질은 매우 심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사실을 보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시련이 더욱 많아지고 연단이 더욱 심해지고 받는 고통이 더욱 많아지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런 하나의 사실이 바로 전혀 영이 통하지 않고 많은 글귀 도리를 말할 수 있는 그 거만한 사람들에게 논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받는 시련이 점점 심해지면 그들은 비웃고 훼방하고 논단하고 얕잡아보며 심지어 그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탓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실 사람을 공격하고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시련을 당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사람들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면서 시련이 임한 일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또 함부로 하나님의 역사를 논단하고 시련을 겪는 그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닙니까? 오늘의 교회에서 그 적그리스도와 거짓 인솔자들이 이 부류의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읽음에 있어서 실제에 결부시키는 것을 배우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함부로 도리와 규례에 맞춰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실제에 결부시키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안중에 비천하게 보였는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함부로 하나님 역사를 논단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그 사람들을 논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맞습니까? (네.) 지금 분명히 알았습니까? 이 일을 분별할 줄 모르면 당신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은 헛되이 읽는 것이 아니고 실제에 결부시켜야 합니다. 현실 배경에 결부시켜서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욥의 세 친구에게 노하셨는지를 알았겠죠? 만약 실제에 결부시킬 줄 모른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이 단락 말씀을 다 읽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어! 욥의 세 친구가 한 말도 도리가 있고 그들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그들이 말하는 것도 욥보다 못하지는 않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왜 그들에게 노하셨습니까? 저는 이 세 사람이 어떤 일을 해서 하나님을 대적했는지 보지도 못했고 더욱이 이 세 사람이 어떤 악을 행했는지도 보지 못했어요.”라고 말할 것이고 이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들에게 노하셨겠습니까? 만약 이 말씀을 읽고 나서도 실제에 결부시킬 줄 모른다면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생기기 쉽지 않을까요? 만약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생긴다면 이런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은 경력이 없어 대조할 줄 모릅니다. 실제에 결부시킬 줄 모르면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영원히 깨닫지 못하고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지금의 적그리스도, 거짓 인솔자가 욥의 세 친구의 역을 맡은 것이지 않습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은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많은 영적 도리를 깨달은 다음 남에게 설교하여 자신을 과시하고 큰소리치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욥의 그 세 친구의 화신이 아닐까요?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욥의 세 친구가 하나님을 믿는 이런 방식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많은 영적 도리를 알고는 규례에 맞출 줄밖에 모르고 규례를 지킬 줄밖에 모르고 하나님을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권병을 주신 것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바입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권병을 주신 의의는 무엇일까요? 바로 교회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욥과 같은 사람이고 즉 교회에서 무릇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이르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며, 무릇 교회에서 늘 헛된 영적 도리만 말하고 조금의 진리 실제도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안중에 비천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중에 비천하게 보인다”는 무슨 뜻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고 이런 사람을 혐오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일단 교회에서 권세를 잡고, 일단 일어나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통제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논단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시고 그들을 징벌하십니다. 그럼 하나님이 여기에서 욥에게 권병을 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교회에서 권세 잡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헛된 글귀 도리만 말하는 그 사람들은 욥의 권병을 받아들여야 하고 욥의 인도에 순복해야 하며 욥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래야 하나님께서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에 따라 그들을 처리하시지 않고 그들에게 노하시지 않게 됩니다. 교회에서의 하나님의 뜻은 교회에 마땅히 욥과 같은 사람이 권세 잡고 욥과 같은 사람이 인솔자 본분을 하고, 글귀 도리만 말하는 사람, 조금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욥의 권병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하고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리의 실제가 있는 사람에게 고분고분 순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권병을 주셨다는 것은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권세 잡아야 하는지, 이 메시지를 내보내신 것입니다. 그럼 교회에서 마땅히 어떤 사람을 인솔자로 선거해야 하겠습니까? 욥과 같은 이런 사람을 인솔자로 선거하겠습니까 아니면 욥의 세 친구와 같은 그런 사람을 인솔자로 선거하겠습니까? 욥의 세 친구는 어떤 부류의 사람을 대표합니까? 영적인 척하는 사람,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을 대표하고 모든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 글귀 도리밖에 말할 줄 모르고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으실까요?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중에 귀하게 보이기에 하나님은 욥과 같은 부류의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글귀 도리만 말하고 영적 도리만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만약 교회에서 권세 잡고 제멋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논단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제멋대로 공격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실 것이고 그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신 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징벌을 받고 징계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안중에 비천하게 보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기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을 위한 욥과 같은 이런 사람의 기도가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징벌하시고 그들에게 노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입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권병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아주 강한 신호를 보내 주었는데, 바로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서 도대체 어떤 사람을 교회 인솔자로 선거해야 하고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권세 잡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권병을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 사람들에게 권병을 주시는 것이지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는 조금의 권병도 주시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아닙니까? 우리가 만약 이 말씀에서 이 일을 꿰뚫어 보고 즉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을 세워 권병으로 삼으시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증오하시고 어떤 사람을 비천하게 보시고 어떤 사람에게 노하시는지, 우리가 이 방면의 하나님 성품을 투철히 인식하고 이 말씀을 읽는다면 참된 수확이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이 하나님의 안중에 평등할까요? 똑같이 대하실까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안중에 귀하게 보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안중에 비천하게 보이는데, 이것이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서입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모두 사랑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증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는지, 이것은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애증이 있으시고 그분의 원칙이 있으시고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이 있으십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께 사랑만 있고 공의가 없다고 말한다면 맞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논단이 아닐까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요? 그럼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여기에 찾아볼 진리가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사람의 관념으로 가늠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의 관념으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늠한다면 틀린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랑은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해 주도되고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의 흐리멍덩한 관념대로 지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있고 하나님의 증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증이 분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어떤 사람을 증오하시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을 온전케 하시고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시는지, 이것은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면 맞습니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원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공의로운 성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애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진리를 추구할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중에 고만한 사랑밖에 없습니다. 즉 고만한 긍휼밖에 없는데, 고만한 긍휼도 최저선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회개할 생각도 없이 계속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아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실 것이고 그들을 도태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또 이 방면의 성품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그분이 도태시키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에 대해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전에 있었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공평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다 기회를 주었지만 사람이 스스로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잡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사랑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은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하나님의 전부의 성품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반드시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해야만이 정확한 것입니다.

금방 읽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또 욥에게 권병을 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일에서 우리가 얻을 진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교회 인솔자를 선거할 때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을 인솔자로 선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에게만 권병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그 사람들에게는 권병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장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큰소리치고 장광설을 늘어놓고 오만 자대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시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에 속하고 거짓 인솔자에 속하며 적그리스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조만간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것이고 조만간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사람의 범함을 허용치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에 많은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이 제명되고 도태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신 것입니다. 그럼 이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도대체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도대체 어떤 사람을 혐오하는지 말세에 완전히 드러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다 교통했습니다.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다 보고 나서 수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수확이 큽니까? (큽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인솔자로 선거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분별할 줄 압니까? 분별할 줄 모르면 어떻게 선거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욥은 어떤 사람입니까? 욥은 진리를 추구한 사람입니다. 그가 진리를 추구함은 나중에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되게 했고 그가 진리를 추구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효과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후에 한차례의 영적 싸움을 거쳐 하나님께서 욥에게 권병을 주셨는데, 이 권병은 가장 의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욥의 지위를 수호하시고 그의 권병을 수호하시기에 누구도 거스르면 안 됩니다. 누가 거스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노하십니다. 만약 욥의 기도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사함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는 욥에게 권병이 있었기에 욥은 그 사람들 즉 그의 세 친구를 처리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들을 제명하라고 하면 제명하고 그가 그들을 저주하라고 하면 저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서 욥이 어떻게 처벌하는지를 기다리시고 욥이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태도를 표명하는지를 지켜보셨습니다. 그때 욥이 만약 그의 세 친구에게 노하고 저주했다면 그 세 사람은 즉시 죽었을 것입니다. 욥에게는 이 권병이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모세를 쓰실 때 모세가 직접 지시를 내려 악인을 징벌한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진정 권병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에게 권병을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가 교회의 권력을 장악하면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인데, 이것은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증오하시고 그런 사람을 혐오하시기에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안중에 비천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일을 저지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다음 단락의 말씀을 교통하겠습니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낸 가치”, 이 단락의 말씀은 매우 관건입니다! “욥이 이 일생 동안 살아온 것은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왜 그가 살아온 것이 가치가 있다고 하는가? 사람이 보기에 그의 가치는 무엇인가? 사람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를 대표하여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한차례의 드높은 간증을 하였으며 그는 한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하였고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고 모본이 되어 인류로 하여금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완전히 사탄을 이길 수 있음을 보게 하였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이 보기에 욥의 삶의 가치는 바로 그가 살면서 능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고 찬송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에게서 위로를 얻게 하고 누릴 것이 있게 한 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욥이 살아낸 가치입니다. 우리가 교통하는 “욥이 일생 동안 살아낸 가치”, 이 단락의 말씀은 우리가 앞으로 하나님을 믿고 추구하면서 최종에 도달할 효과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무엇을 살아내야 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도대체 무엇을 살아내야 가장 가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바입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우리는 추구할 수가 없고 앞길을 걸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방인들이 살아내려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방인들은 지위, 신분, 권세, 돈과 세력을 추구해 부자처럼 살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백만장자, 천만장자, 억만장자가 되려고 하는데, 그들은 이것이 가치라고 여깁니다. 어떤 이는 지위와 명리를 추구해서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데, 이것이 가치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무슨 가치입니까? 이것은 패괴된 인류의 안중에 그만한 가치가 있어 사람들이 잠시 과대평가하고 잠시 숭배하기는 하겠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연기로 되는 것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훼멸되어 아무것도 없으며 전부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그 탐관들이 갖은 악행을 저질러 실각되기도 전에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가치입니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죄업입니다! 자손 후대에게도 화가 미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 가치를 살아내야 하겠습니까? 교회에서 지위가 좀 있으면 가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글귀 도리를 좀 말할 줄 알면 가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중요한 본분을 좀 하면 가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도대체 무엇이 가치입니까?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의 안중에 가치 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중에 가치 있게 보이려면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여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표본 모형으로 되는 것입니다. 즉 사탄 앞에서 간증을 굳게 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으시게 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간증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얻으시면 이 사람은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념되고 하나님께 칭찬받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안중에 가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간증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으시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탄 앞에서 떳떳하실 수 있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탄에게 “사탄, 너 철저히 욕봤겠지! 또 욥을 참소할 테냐?”라고 말씀하실 수 있게 하여 사탄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으시게 하였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누림을 얻으시게 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이 평생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그럼 당신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으시게 하는 간증을 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할 이런 심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지금 만약 누가 하나님의 복음 확장을 위해 자신의 필생의 정력을 들여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데에 이른다면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안중에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심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복음 확장을 위해 일생을 바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심지가 있고 정말로 대가를 치른다면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떤 사역들을 해야 사람을 되도록 빨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하나는 합창단을 잘 이끌어 가고 하나는 영화를 잘 찍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러 가지 간증문을 잘 써서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며 거기에 또 우리가 전력을 다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모두 4가지 사역입니다. 잘하면 틀림없이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 복음 확장 사역이 틀림없이 순조롭게 전개되고 국면을 열 수 있습니다. 이 4가지 사역에 사람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하나님 나라 복음 확장을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과 힘을 전부 바친다면 하나님께 열납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고 너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고 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확장을 위해 힘을 아끼지 않고 충성스럽게 모든 것을 버리면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인데, 3~5년 분투해야 나중에 완전히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형제자매들이 모두 이런 심지가 있고 또 모두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데, 진리를 추구하면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되고 진리를 추구할수록 우리의 간증, 우리의 사역, 우리의 본분이 더욱 효과가 있게 됩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 효과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야 힘이 있고 본분을 잘할 능력이 있습니다. 진리가 있어야 모든 사역을 잘할 수 있고, 진리가 있으면 어떤 본분을 해도 원칙이 있고 어떤 사역을 해도 요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진리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방인의 사역이 아니고 이 사역은 진리에 의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교통하여 도달할 효과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사역하고 어떻게 본분하면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고 하나님의 안중에 귀하게 여김을 받는 데에 이를 수 있는지를 알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가 없으면 왜 하나님께서 칭찬하시지 않겠습니까? 욥의 세 친구가 그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왜 칭찬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들은 진리가 없고 하나님을 모르고 그들이 말한 것은 전부 빈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말씀은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럼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너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다 빈말이고 그릇된 논리이고 실제가 없으며 욥이 한 말이 실제적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뜻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 들으신 후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네가 말한 것은 적합하지 않고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하다. 네가 한 말이 너의 우매와 오만을 대표하기에 나는 너희를 싫어하고 너희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만약 욥의 기도가 없다면 나는 너희에게 노하고 너희를 징벌했을 것이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그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는커녕 하나님의 노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려 징벌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본분을 잘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데에 이르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어떤 본분도 잘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에게 “동영상 검사할 줄 압니까? 하나님 집의 영화 검사할 줄 압니까? 어느 것을 잘 찍었고 어느 것을 잘 찍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저는 볼 줄 모릅니다! 뚜렷한 것은 볼 수 있지만 뚜렷하지 않은 것은 알아내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은 진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진리가 없으면 당신에게 무슨 본분을 시켜도 당신은 잘할 수 없습니다. 동영상을 검사하는 것도 안 되고 영화를 보면서 심사하는 것도 안 됩니다. 만약 영화를 찍으라고 하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한 편의 좋은 간증문을 쓸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한 편의 간증문을 썼다는 것이 전부 빈말이고 전부 도리이며 조금도 실제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지식만 있으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지식이 있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대학을 몇 년 다니면 되잖습니까, 하나님을 10년, 20년 믿을 필요 없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글을 쓰고 영화를 찍고 동영상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지식이 쓸모없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 그것은 조금의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지식이 진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지식은 아무런 쓸모도 없고 진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지식인에게 글 한 편을 쓰라고 하면 어떤 결과일지 압니까? 지식의 관점으로 한 편의 평론, 논설을 쓴다면 어떨까요? 전부 그릇된 논리로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식이 아주 많다고 여깁니다. ‘내가 지식이 많기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건 나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누구도 안 돼.’ 이런 관점이 성립될까요? 무엇 때문에 종교계의 목사, 지도자들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할까요? 바로 그들에게 책에서 배운 지식만 있고 하나님 역사에 대한 진실한 경력이 없으며 성령 역사를 경력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이젠 이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 보았겠죠! 문제의 근원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경력과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 역사에 대한 경력은 그 어떤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1년을 경력하면 1년차의 인식이 있고 2년을 경력하면 2년차의 인식이 있으며 5년을 경력하면 5년차의 인식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적 분량은 경력 시간의 길고 짧음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 역사를 1년을 경력하면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3년을 경력하면 어떻겠습니까? 인식이 좀 있습니다. 5년을 경력하면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까지 경력해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데에 이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이 몇 년을 경력했는가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데에 이르고 모든 악에서 떠날 수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표준에 이른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께 칭찬받는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효과입니다. 만약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데에 이른다면 이것은 온전케 된 효과입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만약 어느 날엔가 당신에게 시련이 임해 질병이 생긴다면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만약 어느 날엔가 당신의 가족, 아내, 자녀들이 다 당신을 저버리고 당신을 반대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생긴다면 무슨 문제를 설명합니까?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아직도 인식이 없고 하나님의 고심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고심을 모른다면 당신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약 어느 날엔가 당신의 시련이 심해지고 사회 환경과 당신의 가족이 당신에게 극대한 압력을 가져다준다면 그때 당신은 굳게 설 수 있습니까? 그래도 계속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위해 본분을 할 수 있습니까? 시련이 임하면 사람의 실제 분량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시련이 없을 때 사람은 입으로 다 충심을 부르짖지만 유독 시련이 임할 때면 사람을 제일 잘 드러낼 때입니다. 입으로 말한 것만 듣고 믿을 수 있을까요? 꼭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원해도 시련이 임하고 압력을 받으면 지탱할 수 있을지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에 의해 지탱할까요?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인식과 당신이 깨달은 진리에 의해야만 지탱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련이 임해도 당신에게 진실한 인식이 없고 진리가 없다면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틀림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사람이 한평생 가치 있게 살려면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데 먼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것이 아주 관건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으면 당신이 한 모든 것이 틀림없이 가치 있음을 결정합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다면 당신이 한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터득할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럼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면 하나님의 안중에 가치 있게 보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어떤 본분을 잘해야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확장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어떤 일들을 해야 복음전도가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어떤 영화를 찍으면 더 많은 사람들을 인도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합창단을 어떤 정도로 이끌면 사람들로 하여금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가장 가치 있는 이런 일을 무엇에 의해 해야 하겠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되겠습니까? 사람에게 진리가 없이 소망만 있으면 효과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진리 실제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간증문 한 편을 써서 사람들이 보고 큰 도움을 받고 유익한 점을 많이 얻게 해야 하는데, 그런 글을 쓰기 쉽겠습니까? 만약 욥의 세 친구의 몇 마디 말만 쓴다면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빈말입니다! 빈 종잇장입니다! 아무 유익한 점도 없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써낸 것은 실제적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써낸 것은 내용이 없고 빈말이고 텅빈 이론이니 봐도 아무런 유익한 점이 없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가치 있게 살려면 진리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말하고 일하는 데에 능력이 없으며 다른 사람이 듣기도 싫어합니다! 저는 일부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할 때 종교인이 논의한 것에 진리가 없음을 듣고는 반박하려는 생각은 있지만 역부족인 것을 보았습니다. ‘빨리 하나님 말씀을 찾아야지!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기억나는데 그의 그릇된 논리를 반격하기 딱이야.’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고 말하라고 해도 말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진리가 없으면 이렇게 어찌할 도리가 없고 방법이 없습니다. 손만 비비고 속만 태우고 발만 동동 구르는데 힘을 쓸 수 없습니다! 그때 당신이 만약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외워 가장 중요한 몇 마디 말씀을 교통해 준다면 효과에 도달하고 사람을 정복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때에 왜 말이 없습니까! 속만 태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평소에 잘 준비하지 않다가 싸움터에 나가 속을 태운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싸움에 임하여 칼을 갈면 무뎌도 빛은 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소용있을까요? 소용없습니다! “빛”만 나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살상력(殺傷力)이 있습니까? 소용없습니다. 진리를 잘 장비하고 싸움터에 나가면 할 말이 있고 적을 물리칠 수 있고 원수를 정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어떤 본분도 잘 할 수 없고 어떤 일도 잘 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잘 쓸 수 있겠습니까? 당신에게 복음을 전해 사람 한 명을 얻으라고 하면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에게 대본을 심사하라고 하면 심사할 줄 알겠습니까? 당신에게 동영상을 하나 만들라고 하면 잘 만들 수 있겠습니까? 당신에게 영화를 한 편 만들라고 하면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았겠죠!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나라 복음 확장을 위해 전인을 바친다고 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력을 다 기울입니다. 그 결과 싸움터에 나가서는 휘두르지도 못하고 효과적으로 싸우지 못하는데, 무슨 문제일까요? 나중에는 ‘주먹만 불끈 쥐어선 안 된다. 진리가 없으면 주먹도 힘이 없다. 마음속에만 힘이 있고 진리가 없으면 안 된다. 진리가 있어야 힘이 있다!’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말해 보세요, 혹형을 받는 그 싸움에서 주먹만으로 적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진리에 의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진리를 깨달으면 그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진리가 없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으면 그 고통을 누구도 이겨 낼 수 없습니다! 그 육체적 고통이 심각한데, 그것은 악성 종기가 나는 것보다 더 심각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마음속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에 의해야 큰 힘이 생길 수 있고 죽음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때 의지력에 의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당신은 형제자매들이 그 고통받을 때를 보지 못했습니다. 때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그 비명 소리는 육체적 본능입니다!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사탄에게 투항하지 않는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죽어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비명을 질렀든 여전히 간증을 굳게 섰습니다. 이것이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증거를 보시고 만족스러워하시고 위로를 얻으십니다. 그는 그 순간에 가치 있게 산 것입니다. 만약 그 순간에 유다가 되었다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혐오받고 비천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겠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 지금 보면 간증을 굳게 서는 것도 진리에 의해야 하고 본분을 잘 하는 것도 여전히 진리에 의해야 하며 나중에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더욱 진리에 의해야 합니다. 이 길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내려면 전력으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효과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다음 우리가 살아내는 것이 가치 있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내는 데에 도달함에 있어서 1~2년, 2~3년이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1~2년, 2~3년이면 정말로 체포당하고 혹형이 임해도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굳게 설 수 있고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분을 잘하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려면 족하겠습니까? 이것은 부족합니다. 잠시적인 간증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고 일생의 가치를 살아내려면 이것은 아직 크게 부족합니다! 분명히 알았겠죠? 일부 사람들은 사탄의 체포와 혹형을 겪은 후 간증을 굳게 섰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단지 하나의 간증일 뿐 갖가지 본분을 할 때에 여전히 진리가 부족하고 분량이 아직도 작다는 것을 느낍니다! 욥의 분량, 베드로의 분량과는 아직도 차이가 매우 큽니다. 그러므로 계속 진리를 추구하고 계속 대가를 치러야만 최종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계속 아래로 봅시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삶의 가치는 또한 그가 살아있는 동안 겪은 이번 시련에서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드높은 간증을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류 가운데서 영광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를 얻게 하고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에 결과가 보이게 하고……” 사람이 절박하게 무엇을 얻고 싶어할 때 만약 그 결과가 만족스러운 것임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가장 위로를 얻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도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은 무엇인지, 그분이 이런 결과를 얻으신다면 그분도 가장 위로를 얻으시는 것입니다. “그의 간증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선례를 열어놓았다.” 이 선례는 율법시대, 즉 3천년 전에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욥의 삶의 가치가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를 얻게 하였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얻는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였으며……” 하나님은 욥의 간증을 보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말세에 더 큰 영광을 얻으려 한다. 지금 나의 마음에는 확신이 있다. 나는 이미 말세에 영광을 얻는 기쁨을 미리 맛보았다.” 하나님께 이렇게 큰 위로를 드렸는데, 이것이 욥의 삶의 가치입니다. 우리의 간증, 우리의 앞으로의 추구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렇게 큰 위로를 얻으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욥의 간증은 3천년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 하여금 큰 위로를 얻으시게 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나의 경영 계획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 이미 결과가 있다. 나는 이미 맛보았다.” 보다시피, 욥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도는 사람의 언어로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영 계획으로 하여금 여기에서 완벽한 시작이 있게 하였다. 그리고 욥의 이름은 이로부터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표징이 되었고……” 이 말씀은 너무나 좋습니다. 욥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욥을 말하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영광을 얻으셨음을 상징하고 욥의 간증을 언급하기만 하면 당신이 직접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욥의 간증을 보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이 욥에 대해 어느 정도로 만족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욥의 간증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얻으셨겠습니까? 누가 사람의 말로 형용할 수 있습니까? “인류가 사탄을 이긴 기호로 되었다.” 하나님은 욥으로써 사탄을 이기실 수 있었고 사탄에게 “인류는 완전히 사탄을 이길 수 있다! 그것은 나에게 욥이 사탄을 이긴 실례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장담하실 수 있었습니다.

“욥의 일생 동안의 살아냄과 사탄을 이긴 그의 위적(偉跡)은 영원히 하나님께 귀하게 보일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께 귀하게 보인 것입니다! “영원”이라고 말하면 그 의의는 너무나 깊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영원”은 단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완성되는 이 영원일 뿐일까요? 아닙니다. 그 범위를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난 후에도 욥의 이 간증은 영원히 하나님께 귀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의 이 간증은 영향이 너무나 큽니다. 그것은 몇 백 년, 몇 천 년이 아니고 아마 몇 만 년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 “영원”은 정말 너무나 의의 있습니다!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게 되었고 본이 되었다.” 이 “후세 사람”은 누구를 가리켜 말한 것일까요? 여러 세대의 사람입니다. 이는 성인(聖人)입니까, 아닙니까? 욥은 진정한 성인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성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 사적을 열거하시고 그의 가치를 뚜렷이 보여 주셔서 당신으로 하여금 그가 성인인지 아닌지를 보게 하시고 말하게 하십니다. 저는 그가 성인 중의 성인이며 성인보다 더 성인이라고 봅니다! “그는 마치 흠없고 눈부신 명주(明珠)와 같아 영원히 하나님께 소중히 여겨질 것이고……” 흠없고 눈부신 명주입니다! 일반 명주는 모두 흠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는 흠없을 뿐만 아니라 눈부신데, 이런 명주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소중히 여겨질 것이고 또한 사람이 소중히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은 모두 가장 좋은 보석을 간직하기를 좋아하는데, 흠없고 눈부신 것일수록 더욱 귀중합니다. 그럼 진정한 보석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마음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마음을 얻는다면 이것은 그 어떤 보석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안중에 진정 흠없고 눈부신 명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욥, 이 사람이 사랑스럽습니까,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사랑스럽습니다.) 그럼 우리가 마음속으로 만약 그를 매우 존중하고 그를 매우 애대(愛戴)한다면 맞습니까, 틀립니까? 어떤 사람은 “이것은 사람을 숭배하는 게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함부로 규례에 맞추지 마세요. 영에 속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규례에 맞추는 것은 매우 메스껍습니다! 욥은 사람의 존중을 받을 만합니다! 이 사람은 매우 사랑스럽고 사람들이 본받을 만합니다. 그는 성인이고 사도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율법시대, 은혜시대의 모든 사도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베드로만이 그보다 좀 낫습니다. 베드로 이외에는 바로 욥이 흠없고 눈부신 명주인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귀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마음속으로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욥처럼 간증을 굳게 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위로를 얻으시게 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욥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본보기, 이 푯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본받게 하신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존중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경배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를 본받아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이르게 하고 그를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를 본받을 대상으로 삼으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이것은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