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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 관한 설교 교통 (2)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은 욥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이다

≪욥기≫ 1장 8절, 이 말씀은 우리가 본,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과 사탄과의 첫 대화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였는가? 원문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것은 사탄 앞에서의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다. 하나님은 그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말씀하였다. 하나님과 사탄과의 이 대화가 있기 전에 하나님은 사탄을 이용하여 욥을 시험하게 하려고 작정했는데, 즉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이러면 한 방면으로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감찰과 평가가 정확하여 틀림없음을 실증하고 사탄으로 하여금 욥의 간증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하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과 경외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왔을 때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직설적으로 사탄에게 물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의 질문에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사탄이 이리저리 빈둥거리며 늘 하나님의 종 욥을 엿보고 또 항상 그를 시험하고 그를 공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한 가지 방식으로 욥을 무너뜨려 욥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는 서지 못하는 것임을 실증하려고 시도하였으며, 그것이 또 제멋대로 욥을 해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욕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손에서 욥을 빼앗아가려고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의 마음을 감찰하기에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보았고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도 보았다.’ 하나님은 묻는 방식으로 사탄에게 욥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니 그가 영원히 하나님을 욕하고 사탄을 따를 리가 없다고 알려 주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듣고 사탄은 더욱 악에 받쳐 잠시도 늦추지 않고 욥을 빼앗아가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탄은 사람이 “순전하고 정직함”을 해낼 수 있음을 아예 믿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음”도 믿지 않으며 동시에 또 사람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증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욥기≫ 1장 9-11절과 같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악랄한 본성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사탄이 욥을 해할 방도를 궁리하고 음모를 꾸민 지 이미 오래된 것을 깊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은 재차 사탄에게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알려 줌으로써 사탄으로 하여금 고분고분 복종하게━그것의 정체를 드러내게━욥을 공격하고 시험하게 하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의식적으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강조하는 이런 방식으로써 사탄으로 하여금 욥의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을 증오하고 분노함으로 인해 욥을 공격하게 하는 데에 이르렀고 따라서 욥의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사탄으로 하여금 철저히 부끄러움을 당하고 실패하게 하고 이로부터 더는 욥의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을 의심하거나 참소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한차례의 시련과 사탄에게서 오는 한차례의 시험을 피하기 어려웠는데, 하나님의 시련을 감당할 수 있고 사탄의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인선(人選)은 오직 욥뿐이었다. 이런 대화가 있고 나서 사탄은 허가받고 욥을 시험하러 갔는데, 이것은 사탄이 일으킨 첫 공격이었다. 이번의 공격 목표는 욥의 가산이었다. 사탄이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라고 이렇게 욥을 참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이 욥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록 허락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한 목적인데, 단지 하나님이 사탄에 대해 한 가지 요구가 있었을 뿐이다. 즉 ≪욥기≫ 1장 12절,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욥을 사탄의 손에 넘겨준 후 제기한 조건이다. 즉 하나님이 사탄에게 준 최저선인데, 그것에게 욥을 해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은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대해 인정하였고 그의 앞에서의 욥의 정직함과 순전함이 검증을 견딜 수 있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탄에게 하나의 범위를 주었는데, 욥의 그 어떤 재산도 다 빼앗아가도 되지만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즉 그때 하나님이 욥을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주지는 않았고, 그것이 어떻게 욥을 시험하고 어떤 방식을 써도 되지만 욥 본인을 해쳐서는 안 되고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사람이 죽든 살든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탄에게는 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이 말씀을 하자마자 사탄이 잠시도 늦추지 않고 가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욥을 시험하는 바람에 욥은 즉시 온 산의 우양을 잃게 되었고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준 모든 가산을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시련이 이렇게 욥에게 임한 것이다.

비록 우리는 성경에서 욥이 겪은 시험의 유래를 알게 되었지만 “당사자” 욥은 이 일을 알고 있었겠는가? 욥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니 그의 배후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그는 당연히 몰랐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와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시련이 그에게 임한 것임을 의식하게 했을 뿐이다. 그는 영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고 또 이번 시련의 배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일이 닥치든지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을 대하는 욥의 태도와 반응을 하나님이 분명히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본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본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욥이 시련을 받기까지 그의 마음은 줄곧 하나님께 열려진 것이고 하나님 앞에 놓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버리지도 않고 등지지도 않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고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이어서 욥이 어떤 시험을 겪었는지, 욥이 어떻게 시련을 대했는지를 보자. 계속해서 성경 본문을 읽어보자.』

금방 읽은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에서 모두 여러 가지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문제, 사람에게 임한 것이 시험이든지 아니면 시련이든지 모두 하나님의 안배에서 나온 것이니 이 일을 반드시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임을 아신 이상 왜 또 그를 시련하려 하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문제 아닙니까? 이 일은 알아야 할 바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시련하실 때 욥이 사실의 진상을 알고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왜 배후의 영계 싸움의 진상을 욥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을까요? 어떤 사람은 “만약 하나님께서 이 일의 진상을 욥에게 알려 주신다면 욥이 아주 쉽게 간증을 설 수 있겠죠! 더욱 쉽게 간증을 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탄을 욕되게 할 텐데,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한 가지 문제입니다. 지금 이 2가지 문제를 잘 교통해야겠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사람에게 임하는 시련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왜 시련이 임할까요? 바로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키고 인류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파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와 인류를 온전케 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이리하여 영계의 싸움은 대단히 치열한데, 싸움의 초점은 바로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은 정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려 하시지만 사탄은 꼭 사람을 패괴시키려고 합니다. 사탄은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람을 구원하려 하시는데 어떻게 하실까요? 바로 사탄의 시험이 사람에게 임하도록 허락하셔야 합니다. 사탄의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또 사탄의 간계를 드러내심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는 데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래야 패괴된 인류가 참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식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런 방식으로 인해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중에서 사탄의 각종 시험(즉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임하는 각종 시련)이 임하게 되는데, 이것은 정상이고 자연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럼 이런 시련이 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아마 일부 사람들은 꿰뚫어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러면 영계 싸움의 사실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진리와 그릇된 논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입니까? 대립적 관계 즉 날카롭게 맞서고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사탄이 와서 당신을 시험합니다. 사탄이 어떻게 당신을 시험할까요? 그릇된 논리, 거짓말로 미혹합니다. 당신이 사탄의 그릇된 논리, 거짓말에 미혹되면 진리를 잃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탄의 거짓말과 그릇된 논리를 간파할 수 있다면 진리가 당신의 마음속에서 굳게 서고 당신의 생명으로 됩니다. 이 일에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와 그릇된 논리는 날카롭게 대립되는 것임을 보게 합니다. 당신이 만약 사탄의 거짓말과 그릇된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당신에게 진리가 없는 것이고 당신은 사탄에게 속하는 자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사탄의 거짓말과 그릇된 논리를 분별할 수 있고 사탄의 거짓말과 그릇된 논리를 저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가 당신의 생명으로 되고 당신은 바로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그릇된 논리와의 싸움은 화해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시련이 임하는 것은 주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우리도 보다시피 욥이 시련 속에서 굳게 서고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는데 이것은 하나의 전형적인 대표입니다. 그럼 시험에서 실패한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시험에서 실패한 사람은 어떤 결말일까요? 이런 일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어떤 사람은 시련 속에서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께 얻어지고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또 일부 사람들은 시험에서 실패하고 사탄에게 노략당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도태되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다 실존하는데, 이것은 사실이니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자 다른 한 방면으로는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가라지와 밀이 철저히 나눠지고 사람은 각기 종류대로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도태시키시는 방식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역사는 현실적입니까, 아닙니까?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실제적이어서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역사에서 사탄이 받침물로 되어 효력하지 않으면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그럼 사탄이 받침물로 되어 효력하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예컨대, 하나님께서 당신보고 그분의 거룩과 공의를 인식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인식하겠습니까? 사탄의 사악과 더러움이 없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 긍정적인 사물은 반드시 부정적인 사물과 사악한 사물을 받침물로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분별하고 비교하게 해야 나중에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사물인지 확정하게 되고 그다음 진정한 선택이 있게 됩니다. 만약 긍정적인 사물만 있고 부정적인 사물이 없다면 사람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여도 옳고 그름을 모르고 왜 받아들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물을 내놓고 받침물로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욥을 온전케 하고 욥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사탄에게 그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셨음을 보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시련으로 욥을 온전케 하시고 즉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것이 사람에 대한 사랑과 구원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기에 사람에게 이런 구원 사역을 하셨음을 설명합니다. 만약 일부 사람들이 시종 사탄을 뒤따르고 숭배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시련하시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시련이 없습니다. 이전에 진리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이 임했는데, 어떤 사람은 질병이 오고 어떤 사람은 재난이 닥치고 어떤 사람은 많은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런 불행을 이방인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요? 날벼락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시피, 이런 일이 임한 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그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굳게 설 수 있으며 그 후로 분량이 크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분량이 크게 자라날까요? 그 사람은 경력(역주: 체험) 중에서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속 육체를 배반하여 나중에 어떠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속박도 받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따르고 믿음도 더욱 커지고 진리를 추구하는 힘도 더욱 커지며 하나님에 대해 의심과 오해가 있기는커녕 하나님을 더욱 믿고 하나님께 더욱 충성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시련은 확실히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사람의 생명 진보에 대해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시련은 좋은 것이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후로 여러 가지 시련이 매우 많았습니다.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도 특히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그 사람들도 시련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이 10여 년간, 큰 붉은 용의 핍박, 추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옥살이하고 혹형을 받고 감시당해 집이 있어도 돌아가기 어렵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 시련입니다! 하지만 시련 속에서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부단히 정결함을 얻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진실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갈수록 진실되며 하나님에 대한 충심이 갈수록 순결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순복이 갈수록 절대적입니다. 이런 사실이 가져온 효과에서 보면 시련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유익한 점이 있고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참 도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시련의 결과가 다릅니다. 시련이 임하기만 하면 어떤 사람은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며, 어떤 사람은 먼저 불평을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또 어떤 사람은 안 믿으려 하고 참 도를 의심하고 하나님을 의심하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합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2012년의 큰 시련, 대대적인 체포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태되었는데 모두 유다가 되어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 방면의 현상에서 볼 때 시련은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모두 드러내고 도태시켰습니다. 시련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온전케 하는 것이고 정결케 하는 것이고 구원하는 것인데, 이것도 역시 사실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여러 가지 시련에서 정결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사람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시련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시련이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련은 너무나도 큽니다. 죽는 일이 닥치거나 고문의 시련이 임하면 시련이 너무 커서 어떤 사람들은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거의 기도하지 않고 아예 믿지 않습니다. “이 길을 걷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믿는 건 그야말로 칼날 위에서 걷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칼날 위에서 살기란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떠났습니다. 보세요, 생명의 위험에 관련되자 그는 도피하고 불신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들은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까지 믿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이 믿음이 있기에 굳게 설 수 있는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됩니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 목숨을 버릴지라도 불평이 없는 이런 믿음은 대단합니다. 목숨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고 필요할 때는 목숨을 잃어도 마다하지 않는데, 이것은 의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믿음이 무엇 때문에 굳게 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이런 믿음을 갖추라고 요구하실까요? 이는 하나님과 사탄이 사람을 빼앗을 때입니다. 당신이 이런 믿음이 없으면 통과되지 못하고 사탄은 당신이 이 고비를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탄의 이런 참소와 이런 행위를 사람의 믿음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당신이 이 고비를 통과하면 합격이고 이 고비를 통과하지 못하면 도태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역사하기 시작하실 때 “이 단계 역사를 경력하는 길은 걷기 쉽지 않다! 욥의 믿음이 없으면 굳게 설 수 없고 수시로 도태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어떠했습니까? 특히 2012년의 대대적인 체포에서 정말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드러나고 도태되었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몇 십만 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위험이 너무나 크고 이 집권당 큰 붉은 용이 맹렬한 기세로 체포하는 것을 보고는 견뎌 내지 못해 떠났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나라에 밀려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사탄의 이 고비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의 체포와 혹형, 국가의 제한, 이 고비를 통과하지 못하고 걸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실패했습니까? 믿음이 불합격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없어 목숨으로 바꿀 수 없는데, 그래서 도태된 것입니다. ≪계시록≫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탐욕스러운 자들과 음행하는 자들은 나중에 도태된다는 이와 같은 말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바로 큰 붉은 용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국가에서 믿지 못하게 하고 믿는 사람을 붙잡으면 고문을 가하고 옥살이시킬 뿐만 아니라 자녀도 대학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직장도 찾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듣고 결국 사탄에게 투항한 그런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많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욥만큼 큽니까? (크지 못합니다.)

욥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무릇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고 무릇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 때나 거두어 가셔도 다 됩니다. 저는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께 순복하고 당신을 칭송합니다.” 그러므로 욥에 대한 사탄의 그 시험은 철저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혀 옥살이하고 재산이 압수당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이혼하고 가족과 헤어져 모두 그를 원망하고 저버렸습니다. 그럼 이 시련은 욥의 시련보다 어떻습니까? 사실, 거의 비슷합니다. 집, 은행에 저축한 돈, 값어치 있는 가장집물이 다 큰 붉은 용에게 압수당하고 사람도 옥에 갇혔는데, 이러면 아무것도 없겠죠! 어떤 사람은 이혼하고 자녀와 헤어졌는데, 이건 욥과 엇비슷하겠죠! 이런 시련이 사람에게 임하니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가 여기에서 드러났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유다가 되어 큰 붉은 용에게 빌붙어 감옥에서 나왔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풀이 죽고 기가 꺾였습니다! 큰 붉은 용, 이 고비를 통과하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나온 후 해방받아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옥살이를 헛되이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령 역사와 하나님의 깨우침,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구원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믿음이 더욱더 커졌습니다. 나온 후에는 더욱 진리를 추구하고 예전대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이는 바로 시련 속에서 굳게 선 사람입니다. 이번 시련을 통해 분량이 자라나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지고 더욱더 하나님을 위해 화비(역주: 들이다, 바치다, 쓰다, 지불하다의 뜻)하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시련으로 온전케 한 것이 아닐까요? 시련 속에서 온전케 함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련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시고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온전케 하시며 동시에 또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드러내시고 도태시키십니다. 드러나 도태된 그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인정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큰 붉은 용, 이 고비를 왜 통과하지 못했습니까? 왜 죽음을 두려워했습니까? 당신은 왜 육체적 누림을 탐했습니까? 왜 항상 자녀의 정에 속박을 받고 있습니까? 어떤 자매가 잡혔는데, 큰 붉은 용이 어떤 수작을 부립니까? 자매님의 남편보고 자매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든가, 면회오게 한다든가, 아이에게 엄마 보러 가서 울면서 엄마보고 자백하고 돌아오라고 시킵니다. 큰 붉은 용은 그 자매의 가족으로 그 자매의 감정을 공격하고 그 자매의 치명적인 부분을 공격합니다! 가족이 눈물을 흘리면서 애걸합니다. “빨리 자백해요. 집에 돌아가 함께 살 수 있게 빨리 자백해요!” 이때 어떤 사람은 연약해져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울면 위험한데, 큰 붉은 용의 간계가 성공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울 때에도, 연약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께 역사하실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기만 하면 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울면서 연약해져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아예 자백하고 유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영적 싸움이 결정적인 시각에 이르면 생사존망은 한순간의 생각에 달렸습니다! 정말 문자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유다가 된 그 사람들은 감옥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자신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는데 어떻게 그 한순간에 유다가 되었을까? 순간 유다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꿈이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제 뺨을 때려 보니 꿈이 아니라 생시입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진실한 믿음이 없고 결정적인 시각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끝장인데, 바로 유다입니다. 그저 환경이 없을 때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환경이 있기만 하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임하는 것은 매우 의의 있는 일입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은 매우 의의 있는데, 이것은 온전케 함이고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시련으로써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도태시키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고 하나님이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모두 공평하심을 나타냈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의 범함을 허용치 않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사탄은 어떤 역을 맡았습니까? 받침물과 효력품의 역을 맡았습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님의 전능 지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탄의 간계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지 빈말이 아니며, 시련 속에서 증명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욥기≫에서 욥에게 임한 시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서 각 사람마다 많은 시련이 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대부분 시련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우리가 주의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개별적인 시련은 매우 커서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시련은 마음에 좀 깊이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큰 붉은 용을 받침물과 효력품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어디가 좋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거스르는 것을 허용치 않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큰 붉은 용을 받침물과 효력품으로 하면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또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도태시킬 수 있습니다. 큰 붉은 용, 이 고비는 정말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고비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일까요? 뛰어넘을 수 없는 고비이고 장애물인데 당신은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멍에이고 철감방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온전케 함이고 구원이고 초탈입니다. 이것은 대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큰 붉은 용을 초탈하고 큰 붉은 용을 이기고 싶은데 어떡하죠?” 시련이 없이 당신이 어떻게 초탈하겠습니까? 큰 붉은 용의 체포, 혹형, 철감방이 없이 당신이 어떻게 초탈하겠습니까? 당신은 초탈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시련이 임해야 합니다. 당신이 교회 생활을 할 때 “저는 큰 붉은 용을 초탈할 수 있고 큰 붉은 용을 이길 수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빈말이고 도리이니 쓸모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다시피 욥은 이 방면에 진실한 믿음이 있었고 시련이 임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을 무조건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었고 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욥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욥은 그가 얻은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시인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자신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시인합니까? 어떤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고 “그건 제가 피땀 흘려 벌어온 것이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다.) 그럼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입니까? “고생하지 않고 얻은 것,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죠. 만약 저의 노동, 저의 능력과 재능, 저의 머리로 벌어온 것이라면 제가 스스로 얻은 거니 하나님과 상관없어요.” 이런 관점이 진리에 부합될까요? (부합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부합되지 않습니까?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할 때입니다. 홍콩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운명에 때가 있다면 끝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나 운명에 때가 없다면 억지로 찾지 마라.” 이것은 어떤 관점입니까? 이건 하늘이 베풀어 준 것이고 하늘이 안배해 놓은 것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일부 농사꾼들은 영이 통합니다! 그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고 거두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무릇 이런 관점이 있는 사람은 “한평생 고생해서 부유해졌는데, 이건 내 능력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건 운명입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느냐를 떠나서 그런 복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이 그런 복을 베풀어 주면 일을 해서 얻을 것이고 하늘이 그런 복을 베풀어 주지 않으면 아무리 고생해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얻고 누리는 이 모든 것은 다 하늘의 은혜입니다.” 이 관점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이 점을 인식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그 사람이 영이 통합니까? (통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 하에 있기에 누구도 이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얻는 것은 다 하늘이 명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 부자들을 보세요, 그는 “이 돈은 다 내 능력으로 벌어온 거야.”라고 함부로 말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을 하기만 하면 수시로 빼앗길 수 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이건 하늘의 은혜입니다!” 그에게 그런 운명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명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 이 사람은 영이 통한다고 합니다. 그는 “내가 얻은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이지 내가 고생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고생만 하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면 헛고생하는 사람이 매우 많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능력이 있고 우리보다 더 고생하는데, 왜 얻지 못했을까요? 왜 우리가 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명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명정하신 것입니다. 단지 사람이 조금 협력하고 조금 수고했을 뿐입니다. 사람의 수고가 여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까요?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당신에게 그런 운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어떤 본분을 하고 나중에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명정해 놓은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질투합니다. “내게는 왜 그 방면의 재능이 없을까? 나는 왜 그렇게 둔할까? 나는 왜 당신처럼 문화적 소질이 없을까?”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명정해 놓으신 것이지 사람의 능력에 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 방면의 재능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저 방면의 재능이 있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의 명정과 안배이고 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어떤 재능이 있어도 칭찬할 가치가 없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패괴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셨는데, 그럼 우리는 욥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욥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었고 진실한 순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베풀어 주실 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미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재산을 거두어 가실 때 그는 전적으로 순복하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렸고 원망이 조금도 없었으며 자신의 이유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는데, 왜 또 거두어 가십니까?”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여겼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다 맞아.’ 이 순복이 대단합니다. 조물주 앞에서의 피조물의 이지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욥의 인성, 인품, 이지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셔도 저는 기쁘고 저에게서 거두어 가셔도 저는 역시 기쁩니다.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욥에게 이런 이지가 있었는데 매우 대단합니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에게 없는 것입니다. 당신 몸에서 발생한다면 불평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첫째는 당신이 아직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그다지 시인하지 않고 둘째는 일단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면 당신은 여전히 자신의 이유를 따질 것입니다. 그럼 당신의 인품은 욥보다 어떻습니까? 저는 욥의 이 인품 간증을 보고 욥에 대해 탄복했습니다. 저는 욥보다 못합니다. 확실히 욥보다 못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욥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가장 이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지는 무엇으로 실증되었습니까? 그의 순복으로 실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거두어 가셔도 저는 원망하지 않고 순복하겠습니다.” 욥은 그때 그의 친구를 부르고 그의 세력을 모아 강도에게 찾아가서 결판을 내고 재산을 되찾으러 갔습니까? 그런 일을 했습니까?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라면 이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순복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때는 몸에 뭘 좀 지니고 외출해도 보호장비까지 지녀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보호장비를 지녀야 합니까? 다른 사람이 빼앗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이 빼앗아가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그럼 만약 당신이 재산 침해를 당한다면 반항하거나 세력을 모아 되찾으러 가겠습니까? 저는 이전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깊이 생각해 보니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욥에 비하면 어림도 없고 부끄럽습니다. 우리 인품은 욥과 비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욥기≫를 다 읽고 욥의 무엇을 본받아야 할까요? 그가 하나님 앞에서 그런 이지를 갖춘 것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배치에 순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면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추구하면서 악한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려 하셔도 저는 순복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계속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하겠습니다.” 이것도 우리는 해내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욥의 그런 순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을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면 우리는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말하기는 쉽고 도리상에서도 통과될 수 있지만 일이 닥칠 때는 해내지 못하는데, 이것이 분량 문제가 아닐까요? 분량이 안 되고, 욥과 비기지 못합니다.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욥의 이 일에서 자신을 반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반성하고 또 자신의 결점과 부족함을 보아야 하고 어떤 진리를 장비해야 하는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어야 하는지, 어떤 순복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합니다. 그 밖에, 우리는 욥의 이 일에서 또 욥의 다른 하나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일의 배후의 영계 싸움의 사실의 진상을 몰랐고 속된 인간이어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탄과 이 일을 내기하셨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드높은 간증을 해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욥보다 진리를 더 많이 깨닫고 영계 싸움의 사실의 진상을 좀 분명히 볼 수 있는데 만약 우리에게 다시 시련이 좀 임한다면 욥과 같은 이런 간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을 생각해 봤습니까?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욥은 사실의 진상을 모르면서도 간증을 해냈습니다. 정상적 법칙대로 말하면 우리는 영계 싸움의 사실의 진상을 알고 있으니 간증을 하는 것이 좀 쉽지 않을까요? 당연히 욥보다는 행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만약 이런 배경에서 욥의 이런 간증을 해낼 수 없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이것은 알면서도 고의로 저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것은 무슨 성질일까요? 참 도인 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는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자신을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우리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까닭은 바로 우리를 드러내기 위해서이고 사실의 진상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주신 것도 간증을 굳게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최후에 구원받고 살아남게 하기 위한 것임을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의 진상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셔서 보게 하신 것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이것은 우리가 무지몽매하여 사탄의 올무에 빠질까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일깨우심입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일깨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하나님을 믿고 안심하라. 허락없는 일은 임할 수 없으니 하나님만 의지하면 곧 하나님의 행사를 볼 것이다.” 한 간증문에서 보다시피 어느 형제님이 고문을 당할 때 그 악질 경찰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막 내리치려 할 때 전화벨이 울렸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던 것입니다. 또 한번 고문을 당할 때 쇠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내리치려 하는데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 그 악질 경찰은 이미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악령입니다! 그놈은 하나님 선민을 때려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쇠몽둥이로 만약 내리쳤다면 죽지 않는다 해도 불구가 됐을 것입니다! 그때 전화가 왔는데,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것이 기묘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것은 일분일초도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당신은 일분일초도 차이가 없다고 보증할 수 있나요? 만약 차이가 있다면 어떡하죠? 차이가 있다면 그분이 조물주일까요?” 조물주의 능력과 지혜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수많은 행성들이 있는데, 각 행성의 운행 궤도도 역시 조금의 차이도 없습니다! 그 정확도가 이 정확도보다 더 높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전 우주 행성의 운행 궤도를 정하신 것은 이보다 더 정밀하십니다. 하나님은 질서정연하게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과학자들이 계산기로도 계산해 내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그토록 기묘하게 안배하셨습니다. 하나의 악질 경찰이나 악령이 하는 일, 사탄이 하는 이 모든 일은 하나의 지구에서 생기는 일이니 하나님께 있어서는 가볍고 유쾌하게 지휘하시는데,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온 우주의 무수한 행성의 운행 궤도도 다 조금도 차이가 없는데, 하물며 이 작은 일이야!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알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도 차이가 없는 건 하나님께서 곁에서 지키시기 때문이잖아요! 차이가 있을 리 있겠어요?” 이 말이 맞습니까? 하나님이 곁에서 보고 계시는 것도 진실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만약 곁에서 보시지 않는다면 차이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또 잘 모르시겠죠? 이것은 사람에게 이해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사람은 이해력이 안 됩니다. 이해력이 된다 해도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상상을 훨씬 초월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욥에게 시련이 임한 후 그가 한 간증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한 방면은 그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있고 하나님이 사악을 증오하시고 부정적인 그런 사물을 증오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자신을 경계했습니다. “악을 행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배우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맡기면 영원히 틀리지 않아!” 욥에게는 이 신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해낼 수 있었는데,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그의 인품이 어떻습니까? 좋습니까, 나쁩니까? 이런 사람은 인품이 틀림없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지금의 유행어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가장 고상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품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전체 율법시대에 욥의 인품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이 율법시대의 역사에서 만드신 한 사람입니다. 율법시대에서 욥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만들어진 하나의 전형적인 대표입니다. 욥의 인품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인품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야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기 쉽습니다. 인품이 좋지 않은 사람은 틀림없이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실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전에 제가 늘 어떻게 사람의 인성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가늠하면 가장 정확한지를 말했습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인성이 가장 좋은 사람이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증오하는 사람은 바로 인성이 나쁜 사람입니다. 진리로 사람의 인품의 좋고 나쁨을 드러내는 것은 가장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당신은 누가 인성이 좋고 인성이 나쁜지를 알려면 어떻게 분별해야 가장 정확하겠습니까? 진리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인성이 좋은 사람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 진리를 듣고 진리를 깨닫고서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틀림없이 인성이 나쁜 자입니다. 이것은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겉보기에 그 사람의 인성이 보통인 것 같지만 그가 교회 생활에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겉모습을 봐서는 안 됩니다. 겉모습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면 이건 이미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교회 사역이나 어떤 본분을 그에게 맡기면 확실히 틀림없습니다. 입으로는 아주 잘 말하고 겉으로 일을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이런 사람은 가장 음험하고 가장 간사하며 위선적이고 사람을 가장 잘 기만하고 미혹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맞습니까? 절대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 것이 매우 관건입니다! 한 사람이 일을 잘못해서 형제자매들이 그를 수리하고 대처할 때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세요. 이때 사람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진리를 깨닫고 또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구원받을 수 있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듣기 좋게 말하고 이치를 따지기 좋아하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이런 사람은 조만간 도태될 것입니다. 이 말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기억하세요, 바로 이러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보면 100% 정확합니다. 진리는 사람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진리없이 다른 것을 보면 다 정확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큰 붉은 용은 어떻습니까? 큰 붉은 용이 그렇게 많은 악을 행하여 서민들이 아무리 질책해도 그것이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큰 붉은 용이 서민들에게, 중국 국민에게 사죄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것이 여태껏 사죄한 적이 없고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여태껏 한 번도 죄를 시인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많은 악을 저지르고 많은 사람을 학살해도 국민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더욱이 인책사직하여 정치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정당도 국민의 질책이 있거나 그가 법을 어기거나 죄를 짓기만 하면 인책사직하지만 유독 중국 공산당만은 영원히 자진사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 무리 악마 집단입니다! 그것은 인성이 없고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이 마귀이고 짐승이니 사리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선민을 그렇게 많이 체포하고 학살하여 하나님 선민이 이 일을 보도하고 이런 간증을 하니 그것이 뭐라고 합니까? “이건 공공연히 경찰 측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연히 공산당 정권에 도발하는 것이다.” 보세요, 그것이 당신에게 이 죄를 덮어씌웁니다. 그것이 사람을 박해하고서도 구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간증을 하니 그것이 또 “이것은 공공연히 경찰 측에 대항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공산당의 경찰 측이 무슨 경찰 측입니까? 조직폭력배, 토적 정권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그래도 “경찰 측”이라고 하는데 “경찰 측”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까? 부끄러움을 모르고 막무가내인데, 민주국가의 정권과 비교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만드시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사람은 바로 하나의 기준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생존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태됩니다. 즉 사탄에게 속하는 자라면 멸망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을 분명히 보셨겠죠?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임을 시련 속에서의 그의 간증으로 실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말세 역사에서 하나님은 욥의 이 일을 내놓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는 모든 하나님 선민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여 다들 여기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걸어야 할 길과 추구해야 할 진리를 찾게 하셨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산깐(陝甘) 구역 “창카이(敞開)”의 제명 통고를 보겠습니다. “창카이”란 사람을 저는 일찍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겉보기에 아주 얌전하고 말수가 적고 열정이 좋았었고 꽤 추구했었고 가정과 직업도 버렸었습니다. 인솔자 일꾼들도 그에 대한 반영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20년 후에 그녀가 적그리스도로 되어 제명된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지금 제명 통고가 왔는데 한번 읽어보세요.

『적그리스도 제명 통고 제1856호

장○○(여, 41세, 미혼, 초졸) 〔영명: 창카이(敞開), 가명: 빠이윈(白雲), 샤오상(小尙), 쑤리(蘇麗)〕,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시 탕인(湯陰)현에 거주한다. 원래 자오후이(召會) 신도, 1991년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였다. 1991~1994년에는 정저우(鄭州), 카이펑(開封) 지역에서 인솔자들과의 집회를 책임지고 있었다. 1994년 후 복음을 전하고 인솔자 본분도 했었다. 1998년에는 산시(山西)에서 사무원 본분을 하고 나중에 사역 효과가 없어서 1선에서 새신자를 양육했다. 1999년에는 허난 사무원을 했었고 2000년에는 후광(湖廣) 구역에서 인솔자 본분을 하다가 붙잡히고 2002년 11월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2003년 정월에는 허난에서 심사원 본분을 하다가 후에 또 문제답변팀, 문장팀에서 본분을 했다. 2005년에는 산깐(陝甘) 구역, 산둥(山東) 구역에서 3개월쯤 유동 감찰원 본분을 했고 후에 사역 능력이 안 되어 문장팀에서 본분을 했다. 2007년 하반기에는 감찰팀에서 본분을 했다. 2011년에는 산깐 구역에서 감찰원 본분을 했고 11월에는 실제 사역을 할 수 없어 해임되었다. 2012년 7월에는 산깐 구역 사역팀에서 본분을 했고 그해 10월에는 저민(浙閩) 구역 사무원을 했으며 2013년 6월에는 실제 사역을 할 수 없어 교체되었고 그해 9월에는 사역팀에서 본분을 했다. 2014년 3월에는 산깐 구역에서 목회 구역 사무원을 하다가 6월에 해임되었다. 이 사람은 겉으로 겸손하고 온화하지만 실질이 음험하고 간교하며 특히 꾀가 많고 미혹력이 대단하다.

장○○는 저민 구역에서 사무직을 하고 있는 기간에 지위의 복을 탐하면서 전혀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았으며 또한 오만 자대하고 제멋대로 하면서 사역안배를 어겼다. 그녀는 적그리스도 마쥔(馬駿)과 결탁해 나쁜 짓을 일삼고 그를 자기의 주인처럼 삼아 곳곳에서 수호하고 감싸주었다. 마쥔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는 그를 대신해 말해 주고 심지어 다른 자매를 시켜 마쥔에게 안마하고 등을 밟아주게 했다. 마쥔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악을 행한 사실의 진상에 대해 그녀는 다 알고 있었지만 시종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장○○는 사역을 하면서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고 사람을 선거하거나 쓸 때에도 민심을 따르지 않고 성령 역사가 없는 적그리스도 따위의 사람들을 중용했다. 2013년 5월, 그녀는 저장(浙江)에 가서 구역 인솔자를 선거할 때 민심조사에서 한 구역 사무원이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관되게 지위에 서서 사람을 억누른다는 것을 알았지만 민심을 억누르고 그 구역 사무원이 소질이 좋다는 핑계로 굳이 그를 저장 구역 인솔자로 기용했다. 후에 형제자매들이 연달아 그 사람이 인솔자 일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적발했지만 장○○는 마쥔과 한패가 되어 형제자매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계속 그 사람을 구역 인솔자로 썼다. 그 구역 인솔자가 원칙을 어기고 제멋대로 하고 함부로 전화하고 마구 접대집에 드나들다가 큰 붉은 용에게 전화도청을 당해 붙잡히는 바람에 저장 구역의 주요 인솔자 일꾼과 목회 구역 동영상팀 등 100여 명의 형제자매들이 잇따라 잡히고 거액의 제물을 갈취당해 저장 구역의 사역과 하나님 선민에게 커다란 재난을 초래했고 전체 구역의 사역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장○○는 양심에 조금도 가책을 받지 않고 그저 나 몰라라 하면서 환경의 후환을 처리하는 것을 돕지도 않고 협력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마쥔 등과 결탁해 사역을 수호하고 협력하는 구역 대리인을 억눌러 사역 상황을 편지로 알아보지 못하게 하여 교회 사역에 극대한 가로막음을 가져다주었다. 그 후로 장○○와 마쥔은 환경이 열악하다는 핑계로 늘 각 구역에 편지를 써보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탄을 높여 인솔자 일꾼들로 하여금 환경의 속박을 받고 모두 본분을 할 엄두도 못 내게 했다. 그리하여 전체 목회 구역의 각 항목 사역이 모두 제때에 구체화되지 못하고 거의 정지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하나님 집의 가장 중요한 동영상 사역도 그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장○○는 본분을 할 때 직무에 태만하였고 환경이 열악한 시기에 자기의 안위만 돌보고 하나님 집의 제물에 대해서는 조금도 책임지지 않았다. 6월 25일에 저장에서 환경이 일어난 후 장○○는 자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손을 거쳐 보관된 제물에 대해 감독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안배하지도 않았고 또 물어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여러 보관집에 환경상 잠재 위험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제때에 이동하도록 안배하지 않아 돈 장부를 지금까지도 분명히 조사할 수 없게 되었다. 2014년 3월, 장○○는 산깐 구역으로 옮겨가서 사무원을 하게 되었는데, 사역을 인계할 때 제물을 보관하는 집을 하나 인계하지 않았고(4월말에야 편지를 써서 인계함) 그녀가 거주하던 접대집에 가방(하나님 집의 재물이 있었음) 하나를 보관해 두고 있었지만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기를 위해 변명하면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장○○는 산깐 구역으로 옮겨간 후 저민 구역에서의 자기의 악행에 대해 추호도 언급하지 않았고 아무런 회개의 태도도 없었으며 오히려 본래보다 더 심하게 하나님께 대항했다. 그녀는 자기가 다닌 곳이 많고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어떻게 어떻게 고생했다고 늘 자기를 높이고 증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과대 평가하게 하고 앙망하게 했다. 그녀는 사역 대상에게 편지를 쓸 때 “이전에 하나님을 대하던 자신의 태도를 돌이켜보면 저의 마음은 아픕니다. 저는 후회와 자책을 하고 스스로도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상으로써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자신을 잘 알고 진입할 줄 알고 진리 실제가 있다고 착각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대적한 자기의 행동과 속셈 동기 및 본성 실질을 해부하지 않았다. 무릇 그녀와 접촉한 형제자매들은 모두 그녀에게 진리 실제가 있다고 여기고 모두 그녀를 숭배하고 앙망하게 되었다. 장○○는 뻔뻔스럽게 접대 본분을 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병이 있어 저민 구역에 있을 때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어떻게 자기를 보살펴 주고 비교적 귀중한 영양 식품을 먹었다고 늘 말하면서 사람들이 그녀를 하나님처럼 대해 주기를 바랐고 또 그래야 기뻐했다. 그리하여 접대집에서 특히 중요시하여 그녀에게 영양보충을 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면서 곳곳에서 그를 싸고 돌았으며 좋은 옷장까지 그녀에게 쓰라고 내주었다. 그녀는 특히 멋을 부리기 좋아했는데, 형제자매들이 기부한 좋은 옷은 남겨서 입고 마음에 안 드는 옷은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장○○는 본분을 할 때 유아독존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무슨 일이든 다 혼자 결정했다. 자기 혼자 권력을 독차지하고 마음대로 하려는 야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녀는 음모와 수단을 부려 제멋대로 다른 2명의 사무원을 실권을 잃게 하고 3월부터 6월까지 전부 혼자서 사역을 했다. 상면에서 다른 목회 구역의 두 자매를 보내 사역을 수호하라고 안배해도 그녀는 그와 함께 협력하기에 걸맞지 않는다고 여기고 곳곳에서 자매를 배척했으며, 산깐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이전에 자기와 관계가 좋던 사역팀의 인원(나중에 목회 구역 동영상 사역에 안배함)을 곁에 옮겨오고 그를 자기가 거주하는 접대집에 데려와서 자기의 측근으로 배치함으로써 2명의 협력자를 대체하려고 꾀했다. 그녀는 2명의 협력자가 컴퓨터에 능숙하지 못하고 사람이 많다는 핑계로 두 사람을 다른 접대집으로 쫓아내 영적 수양을 하게 함과 아울러 부르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말하였고 일부러 배척하여 2명의 자매를 동영상 사역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서는 사역팀의 자매와 함께 사역을 상의했다. 장○○는 공적이 높다고 자처하면서 늘 지위에 서서 협력자 자매님을 “시간이 짧고 경력이 얕다”고 얕잡아봤다. 은밀히 사역하는 기간 그녀는 2명의 자매님에게 구역 인솔자에게 편지를 쓰지 못하게 했고 또 자기를 증거하면서 “저는 세상에 있을 때 완벽함을 추구하던 사람이에요.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구역 인솔자인데 사실대로 말해서 두 분께 편지를 쓰는 것이 저는 정말 마음 놓이지가 않네요.”라고 말하였고 협력자 자매님이 쓴 편지가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그 자리에서 깎아내렸다. 자매님이 그녀와 함께 상의하면서 편지를 쓰고 사역을 안배하려 하면 장○○는 다른 사람이 보면 잘 쓰지 못한다는 핑계로 자매님을 따돌렸고 자기가 안배하는 사역을 협력자와 상의하지 않았고 편지를 다 쓴 다음에도 협력자 자매님에게 보여 주지 않고 바로 보내는 바람에 2명의 자매님이 사역을 구체화시킬 수가 없었다. 장○○는 혼자서 권력을 잡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해 장애물을 없앴다. 2014년 5월, 그녀는 간쑤(甘肅), 신장(新疆)도 사역 범위라는 핑계로 두 사람을 외딴 지방에 안배해 사역을 책임지게 하고 사역팀의 자매님과 함께 주로 목회 구역 사역을 책임졌다. 5월 25일, 신장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녀는 2명의 자매님이 거기에 가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자매님 스스로 가늠하게 함으로써 추호도 하나님 집의 이익과 2명의 자매님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는데 심보가 극도로 비열하고 악랄하다.

장○○는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패거리를 짓고 이간질을 하였는데, 협력자 자매님의 마음을 흩뜨리고 무너뜨려서 산깐 구역에서 쫓아내지 못해 한스러워했다. 그녀는 늘 뒤에서 협력자 자매님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공격하고 깎아내렸으며 사역팀의 인원을 농락하고 미혹하여 자기 편에 서게 하고 협력자 자매님과 대립시켰다. 그래서 예배 중 사역팀의 자매님이 일부러 협력자 자매님과 시비를 걸면서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얼마 되느냐고 물어보아 협력자 자매님으로 하여금 교통할 때 구속받게 했다. 장○○는 음모가 달성되자 또 기회를 엿보아 자매님을 공격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얼마 되느냐고 물어보는데 무슨 뜻인지도 못 알아들어요? 그건 다른 사람이 자매님 분량이 작고 이 사역을 해 보지 못했다는 걸 알아챈 거니까 자매님은 마땅히 인정하고 이 일을 대해야 해요. 이건 사실이잖아요!” 그리하여 협력자 자매님은 더욱 소극적이 되고 자신이 이 본분을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다. 장○○는 늘 높은 위치에 서서 협력자 자매님의 패괴 유로(流露)를 잡고 늘어지면서 자기 마음대로 해부하고 대처했으며 곳곳에서 협력자를 억누르고 깎아내렸다. 그리하여 접대 본분을 하는 사람도 그녀를 높이 보고 자매님을 업신여기며 2명의 자매님을 접대하기를 꺼려했다. 장○○는 자기 지위를 굳히기 위해 늘 일부러 2명의 협력자 간의 관계를 이간시켰다. 이 사람 앞에서는 저 사람을 분별하라고 하고 저 사람 앞에서는 이 사람을 해부했다. 그녀가 무너뜨리는 바람에 2명의 협력자 자매님은 늘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졌으며 서로 방비하고 추측하고 다투었으며 무슨 일이든 다 그녀의 말을 듣고 누구도 사역에 협력할 마음이 없었고 모두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어 산깐 구역의 각 부분 사역이 제때에 구체화될 수 없게 되었고 동영상 사역과 문장 사역이 진전이 없고 교회 생활도 좋아지는 기미가 없고 마비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장○○는 측근을 기용 배양하고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배척하면서 자기 뜻에 맞는 사람을 기용하여 썼다. 그녀는 자기를 대단히 신뢰하는,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을 중용하고 자기와 관계가 좋은 사역팀의 자매(성령 역사를 잃음)를 배치하여 동영상 사역과 글 쓰는 사역을 전면적으로 책임지게 했다. 그 자매가 아예 자기를 알아가지 않고 실제 사역을 하지 않고 사역할 때 과정만 중요시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영상팀의 책임자 사이를 이간시키고 동영상팀의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책임자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동영상팀의 책임자들 간에 조화롭게 협력할 수 없게 되었고 동영상팀의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할 때 불만이 많아 3개월 동안 동영상 사역이 효과가 없었다. 장○○는 일부러 성령 역사가 없는 사역팀의 인원을 구역 인솔자로 선거하고 그 사람에게 적그리스도가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을 책임지고 삭제하도록 안배했다. 그 사람이 사역에 효과가 없자 또 마쥔에게 산깐 구역에 와서 적그리스도가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을 삭제할 것을 제의하면서 고의로 하나님 집의 사역에 엇나가고 방해를 주었으며 하나님 선민을 곤경에 빠뜨렸다. 장○○는 직권을 남용하여 진리를 추구하고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했으며 누가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그를 바로 규정하고 분별하면서 억눌렀다. 한 구역 인솔자가 그녀가 편지를 써서 구역 동영상팀에서 경력 간증 동영상을 제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역안배를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고 또 일부러 2명의 협력자 자매님을 오도(誤導)하여 그 구역 인솔자의 터득에 문제가 있지 않는지를 분별하게 하였다. 그녀는 사역팀의 자매가 사역 중의 문제를 반영한 것을 듣고 동영상팀, 문장팀의 책임자가 반영한 문제와 다르니 알아보지도 않고 조사하지도 않고 동영상팀과 문장팀의 책임자를 해임시키려고 했다. 한 접대 본분을 하는 사람이 장○○가 쓴 편지 글이 높은 위치에 서서 사람을 교훈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니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인솔자 일꾼만이 적그리스도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접대 본분을 하는 사람도 본성이 오만하여 인솔자 일꾼을 통제하려고 하면 적그리스도로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접대 본분을 하는 사람은 통제를 받고 적그리스도로 되어 제명당할까봐 감히 그녀에게 의견을 제기하지 못했다.

장○○는 극히 진리를 증오하고 상면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곳곳에서 하나님 집의 사역의 진전을 가로막았으며 진리에 부합되는 다른 사람의 건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 집의 사역에 협력하지 않으면서 다른 목회 구역에서는 서로 잘 협력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질투하고 또 흑백을 전도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그릇된 논리를 만들었다. 협력자 자매님이 찌진(冀晉) 구역을 언급하기만 하면 사람을 앙망한다느니, 사람을 숭배한다느니라는 말을 하면서 사람들이 다 자기의 말을 듣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협력하지 않으면 그녀는 흐뭇해했다. 2014년 4월에 상면에서 각 목회 구역에 해외에 인재를 제공하라고 요구하자 협력자 자매님이 즉시 산깐 구역의 인재를 상면에 제공하자고 하니 그녀는 그 자매님을 대처하면서 “상면에서 요구하는 사람이 어떤 인재인지 알기나 해요? 제공할 인재는 배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가면 쓸 수 있어야죠.”라고 말하여 상면의 요구를 가로막고 제지했다. 5월에 하나님 집에서 핍박 부류의 동영상 간증문에 거짓으로 꾸민 현상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라고 요구할 때 협력자 자매님이 어떤 글을 확실하게 분별하지 못해 “찌진(冀晉) 구역에서 확실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글을 상면에 묻는데, 우리도 상면에 물어볼까요?”라고 제의하니 그녀는 자매님을 엄하게 대처하면서 “찌진 구역, 찌진 구역, 자매님은 사람만 앙망하네요. 무슨 일을 하나 진리 원칙이 없고 사람만 따르네요.”라고 말했다.

장○○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조금도 수호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 선민의 생사를 고려하지 않았다. 상면에서 환경이 열악한 시기에는 전화해선 안 된다고 여러 번 요구했지만 그녀는 저장 구역에 환경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전화로 저장의 접대집과 연락해서 자기 옷을 부쳐달라고 했으며 아울러 1시간 가량이나 문자를 주고받았다. 접대집 자매님의 귀띔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저장에는 환경이 없고 자매님이 자기만 보호한다고 교활하게 변명했다. 그녀는 자기의 목소리가 큰 붉은 용에게 감시되고 있다는 핑계로 협력자 자매님으로 하여금 대신 전화하게 했는데 자매님의 안위(安危)와 하나님 집의 이익을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상면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기도 휴대폰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2명의 협력자 자매 중 한 사람에게 휴대폰을 갖고 있으라고 했으며 사역팀 인원에게도 휴대폰을 준비해 두었다가 긴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접대집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 책을 몽땅 교회에 내고 컴퓨터와 MP3기기로만 하나님 말씀을 보라고 했으며 하나님의 최신 말씀마저도 소책자로 인쇄하지 못하게 해서 먹고 마시지 못하게 했는데, 변칙적으로 책을 몰수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가로막았다.

6월 중순에 장○○를 해임한 후 그녀에게 그의 악행을 해부하여 교통해 줄 때 그녀는 자기의 악행에 대해 조금의 인식도 회개도 없었고 겉면으로 “이제 마음이 놓여요. 하나님 집에서 마음대로 처리하세요.”라고 말하고 그 후에는 오히려 하나님 집에서 자기를 처리한 것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하면서 집을 떠난 지 여러 해 되어 돌아갈 곳도 없으니 자기를 B조에서 예배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형제자매들을 미혹하여 자기를 위해 의분을 느끼게 했다. 지금도 여전히 죽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

장○○는 본성이 극도로 오만하고 야심이 많고 음험하고 악랄하며 매우 교활하다. 왕노릇 하려는 자기의 야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별의별 궁리를 다하여 자기의 경영을 했는데,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배척했다. 공공연하게 하나님께 대항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고 허물고 파괴했는데 바로 사탄의 심부름꾼이고 전형적인 적그리스도 악마이다! 이미 하나님의 성품을 촉노(觸怒)했고 민중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명의를 내걸지만 하나님을 고의로 대적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걸지만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악마들이고 모두 바른길에 들어서는 사람을 고의로 방해하는 마귀 두목들이며 모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무릇 갖은 악을 행하고 민중의 분노를 일으킨 거짓 인솔자, 거짓 일꾼은 모두 적그리스도이기에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라는 2012년 12월 15일 사역안배에 근거해 하나님 집에 다년간 숨어있던 고급 악령 장○○를 교회에서 쫓아냄을 지금 선포한다.

이에 특별히 통고한다!

이 통고는 산깐 목회 구역의 각 소구역, 저민 목회 구역, 산깐 목회 구역에 하달한다.

이 부류의 적그리스도에 대해 여러분은 분별할 수 있습니까? 이 부류의 적그리스도들은 하나님 집에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숨어있으면서도 왜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이는 사람들, 특히 각급 인솔자 일꾼들이 마음속에 아직도 사탄 철학이 있고 분량이 너무 작아 적그리스도에게 속는 것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저는 적그리스도 악마를 적발하는 편지가 적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렇게 큰 해를 받고도 왜 적발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많은 일들이 발생했는데도 다 잠자코 있고 적발하지도 않는데 인내심이 정말 크네요. 그럼 지금 이런 일이 왜 발생했을까요? 그녀와 접촉한 일부 사람들이 그녀가 한 이런 일을 알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럼 그들은 알고서도 왜 적발하지 않았을까요? 당신이 그녀에게 과오가 조금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녀가 회개하면 되니 괜찮습니다.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회개하지 않고 갖은 악행을 저질러도 그 사람들은 적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일부 지역의 사람들에게 “당신들과 같은 인솔자 일꾼들이 적그리스도를 적발하지 않더니 당해도 쌉니다! 그녀한테 망쳐지고 지체돼도 쌉니다! 다 당신들이 무지몽매한 탓이죠.”라고 말했습니다. 홍콩 교회의 “런나이(忍耐)”가 갖은 악행을 저질렀어도 아무도 적발하지 않았습니다. 인솔자 일꾼들이 다 “런나이”를 위해 말했는데 결국 홍콩 교회가 “런나이”에게 적어도 3~5년은 지체되었습니다. 물론, 이 3~5년 사이에 일부 새신자들은 상황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적발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믿은 지 5~6년, 7~8년 되는 오랜 신자임에도 왜 그녀를 적발하지 않았습니까? 일부 적그리스도들이 교회에 그렇게 오래 존재해 있는 것은 하나님 선민의 각성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폭로하지 않으면 상면에서 어떻게 알고 처리하겠습니까? 일부 적그리스도들은 현지 교회에서만 폭로한다면 되겠습니까? 효과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현지 사람들은 그의 통제를 받는데, 남의 미움을 사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새신자여서 분별이 없고 진리를 모르기에 일부 적그리스도들이 연속 몇 년간 악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상면에서 몰랐으니 말이지 알았다면 일찍이 대체했을 겁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에만 의해 적그리스도를 폭로할 수 있을까요? 역시 도달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당시에 분별할 줄 몰랐고 조금은 발견했지만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보세요, 이것은 사람의 분량이 작은 것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언제인가 적그리스도가 현지 교회에 의해 드러난다면 하나님 선민의 분량이 커졌음을 증명합니다. 현지에서 누군가가 폭로한다면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편지가 있으면 저는 즉시 목회 구역에 회답해 그들에게 “반드시 잘 조사하고 확인하여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 합니다. 만약 있다면 즉시 처리하십시오.”라고 알려 줍니다. 저는 적그리스도의 단서를 잡으면 가만두지 않고 꼭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맙니다. 지금 이 적그리스도 “창카이”가 드러나니 속이 시원합니다! 만약 저에게 한 가지 일이라도 발견되었다면 일찍 그녀를 대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일이 발생하기를 기다려서 제명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저민 구역에서 아무도 반영하지 않고 아무도 그녀를 적발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의 독소, 철학이 적지 않은데, 아직도 세상에서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고도 왜 편지로 상면에 반영하지 않습니까? 이 일로 인해 저는 저민 구역의 구역 인솔자들과 이런 일의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증오합니다. 왜 위에 반영하지 않았습니까? 왜 위에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홍콩 교회의 “런나이”가 거기서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속이고 억누르며 혼자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해도 회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작은 것은 용서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민 구역에 구역 인솔자만 해도 적지 않고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 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집의 사역안배와 하나님 집의 원칙을 알 만큼 아는데, 왜 회보하지 않았겠습니까?

일부 사람들이 제명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있다면 “창카이”와 똑같습니다. 보세요, 지금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권력과 이익을 다투고 있죠? 또 하나님 집의 설비, 하나님 집의 도구를 자기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쓰지 못하게 하는데, 재산을 나눌 작정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집의 것이지 당신의 것입니까? 당신이 뭘 믿고 쓰지 못하게 합니까? 당신이 뭡니까? 당신에게 무슨 권력이 있어서 당신의 것이라고 합니까? 그것이 당신 돈으로 산 겁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이 만약 지위가 있다면 적그리스도가 아닐까요? 일부 사람들은 지위가 없으니 교회에 지금까지 있게 된 것이지 만약 지위가 있었다면 일찍 제명되었을 겁니다. 당신이 담대히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습니까? 당신이 한 이 말에서 당신은 진리가 조금도 없고 바로 불신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역사를 수호하지 않고 늘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라면 하나님 선민은 폭로할 권한이 있고 교회에서도 처리할 권한이 있습니다. 만약 진실한 회개가 없다면 격리시키고 사정두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오만 자대하여 늘 자기의 능력이 크고 하나님 집에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데, 이 관점은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럼 제가 먼저 당신을 격리시키겠으니 당신이 없으면 안 되는지 보겠습니다. 이런 관점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땅히 욥을 본받아야 합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니 방법을 다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본분을 잘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양심이 있고 이지가 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할 수 없다면 양심 없고 이지 없는 짐승입니다! “창카이”, 이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제명되었습니다. 20여 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배우자도 구하지 않고 집도 버리고 직장도 버렸지만 이렇게 많은 악을 행했습니다. 집도 버리고 직장도 버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진심으로 믿는 것 같지만 그녀를 보면 진리를 조금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진리를 깨닫고 비록 깨달은 것이 깊지는 않지만 깨달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왜 조금도 실행하지 않았을까요? 그럼 그녀가 집도 버리고 직장도 버린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분명히 보셨겠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일까요? 구원받기 위해서일까요? 복을 받기 위해서이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인데, 그놈은 바로 사탄의 심부름꾼이니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 지금 둥베이(東北) 구역에서도 일부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들이 계속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선민이 줄곧 적발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1~2년 전부터 있었는데 일부 적발 편지는 환경이 열악한 시기에 하나님 집에서 먼저 처리하지 않지만 중요한 편지는 다 남겨둡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다 명확히 조사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악을 행한 그 어떤 사람도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다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인데, 이것을 “죄는 지은 대로 가고 덕은 닦은 대로 간다.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기가 되지 않았고 시기가 되면 다 갚는다.”라고 합니다. 지금 환경이 허락되지 않아 일부 일들은 정지되었습니다. 급해 마십시오! 큰 붉은 용이 무너진 후에도 여전히 갚을 것이고 응징할 것입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한 무리씩 응징하는 것입니다! 저민 구역의 제명 통고를 보십시오. 몇 호입니까? 1856호입니다. 1천 8백여 명을 제명했는데, 이것은 한 목회 구역에서 이번에 제명한 것입니다. 이전에 제명한 것은 이 숫자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패괴된 인류 중에 악인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깨끗이 제거할래야 제거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악인이 아직도 이렇게 많은데, 이방인 중에는 악인이 많겠습니까, 적겠습니까? 80% 다 악인입니다. 악인, 악령, 더러운 귀신, 별의별 것들이 다 있습니다! 소수의 좋은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다 악인, 무뢰한, 토적, 불량배, 더러운 귀신, 악령, 불구, 멍청이, 정신병 환자들입니다. 이렇게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 확실히 욥을 온전케 하였음을 보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욥의 시련에서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를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제일 관건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당신이 일을 하는 원칙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임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것은 매우 관건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첫째, 당신은 틀림없이 진리가 없습니다. 둘째, 당신은 인성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인성이 없고 짐승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만드신 사람은 다 인성이 가장 좋은 사람이고 인품이 합격된 사람인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하나님나라시대에 인품이 불합격이고 인품이 좋지 않으면 구원받기 쉬울까요? (쉽지 않습니다.) 인품이 좋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창카이”를 놓고 말하면 사역안배에 대해서는 무엇이나 다 압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을 대처하고 수리할 때는 사역안배로 가늠하고 자기가 일을 처리할 때는 사역안배에 따라 하지 않습니다. 이건 어떤 놈입니까? 이건 너무나 간사하고 너무나 쉽게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일반인은 정말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도대체 사역안배를 어기는 일을 얼마 했습니까?”라고 캐물었습니다. 보세요, 그녀가 얼마나 듣기 좋게 말하는지, 마치 그녀가 가장 잘 사역안배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 같지만 그녀 자신이 일을 처리할 때는 오히려 조금도 사역안배에 따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까? 겉과 속이 다르고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거짓말만 하고 기만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역안배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고 여기게 하였는데 결국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렇게 대처받으니 굴복하고 얌전해졌습니다. 이 수단이 얼마나 악랄합니까! 이 사람은 사람을 쓰는 것이 일관적으로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고 자기 뜻에만 따르고 완고하게 자기의 관점을 고집하며 누가 말해도 듣지 않는데, 너무나 독선적이고 오만하며 다른 사람과 전혀 상의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제안을 해도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고 제멋대로 하면서 자기 뜻을 고집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리가 조금도 없으면서 또 이렇게 완고하고 독선적인데, 어떻게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완전히 악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그 일을 시인하지 않고 반성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않았고 아무리 큰 악을 행해도 회개의 태도가 없었습니다. 그 밖에, 어디에 가서 사역하든 이전에 어디에서 실패했든 그녀는 자기를 반성하지 않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전에 어떠어떠한 악을 행했고 어떠어떠한 과오가 있었어요. 이번에는 하나님께 잘 기도하고 회개해서 다시 시작하고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놈은 고집불통인데, 죽어도 회개하지 않고 마지막에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순전히 사탄의 심부름꾼이고 도처에서 하나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면서 갖은 악을 행하여 제명되고 도태되었으며 죄가 너무 커서 용서할 수 없고 죽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다’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태된 것이고 결말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녀 스스로도 “이제 마음 편하네요.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처리해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끝내는 끝장나고 제명되어 하나님을 믿는 생애가 끝나고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악을 행하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는 생애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지금 아직도 방해하고 아직도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데, 다른 사람이 사역을 좀 하면 질투하고 그다음 공격하고 이간질을 합니다. 이런 사람도 아주 나쁩니다! 본심이 좋지 않은데, 이것은 심술이 바르지 않고 매우 간사한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드러나니 어떻습니까? 보셨겠죠? 이런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누가 사역을 좀 하면 질투해서 안에 미움이 생기고 그다음에는 이간질하는데, 논단하고 공격하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의 사역을 방해하면서 일을 성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행위가 아닙니까? 당신이 정말로 정상적 인성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한 것이 좋으면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주 정상이겠죠! 다 본분을 하는 것인데, 당신은 왜 순복할 수 없습니까? 누가 당신보다 훌륭하고 누가 할 줄 알고 누가 진리를 실행하면 당신은 왜 순복할 수 없습니까? 당신은 왜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이것이 사탄의 귀신 본성이 아닙니까? 이것이 정상적 인성입니까? 당신에게 사탄의 귀신 본성이 있는데 무슨 좋은 놈이겠습니까? 당신에게 양심 이지가 있습니까? 당신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하나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행패를 부리려면 집에 가서 가족에게 행패를 부리십시오. 당신 가족에게 행패를 부리십시오. 하나님 집에서 행패를 부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 집은 당신이 행패를 부리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집은 하나님 선민이 본분을 하는 곳이니 당신이 행패를 부리면 하나님 선민은 당신을 제한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하나님 선민 중에서 좀 명망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명망이 있습니까? 당신의 귀신 본성이 드러나면 아무런 명망도 없고 당신이 바로 마귀입니다. 당신이 여기에서 본분을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당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이고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이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당신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가짜이고 숫자만 채우는 것이며 복을 받고 싶어 여기에 와서 외식하는데, 누굴 속이려고 듭니까? 당신이 악을 행하고 일을 잘못해서 일반인이 질책하면 받아들이지 않고 인솔자가 교통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데, 척 보니 당신은 마귀이고 양가죽을 쓴 이리입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을 들춰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패괴를 유로(流露)한 다음 스스로 반성해야 하고 인솔자 일꾼이 당신에게 교통해 주면 즉시 과오를 시인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야말로 총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회개의 태도가 없는데, 척 보니 바로 마귀가 원형을 드러낸 것이고 좋은 놈이 아닙니다. 여우 꼬리가 끝내 드러난 것입니다. 당신을 따라 달아나고 당신과 함께 다니는 자가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까? 역시 마귀이고 마구 소란 피우는 자들입니다. 악인을 따라 달아난 자, 악인을 위해 교활하게 변명하는 자는 무슨 놈입니까? 눈먼 자이고 멍청한 놈입니다! 지금 각 부류의 사람들의 결말이 이미 정해졌습니다. 여러분에게 솔직히 알려드리는데, 이것은 바로 마귀가 원형을 드러낸 것이지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8~10명 적어져도 적은 게 아닙니다. 다 도태시키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고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데 척 보니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 와서 무슨 제멋대로 행동합니까? 능력 있으면 세상에 가서 제멋대로 해 보세요.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과오가 있으면 자신을 진실로 반성하고 통회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2가지 태도가 없으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면 바로 악인이고 불신파이며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런 일도 분별할 줄 모르면 당신은 바보이고 영이 통하지 않습니다. 일은 바로 이렇게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르지 못하는 자는 바로 드러나고 도태된 자인데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은 지 1년밖에 안 되어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것은 정상입니다. 만약 믿은 지 5~6년이나 7~8년 되고 이미 얼마간의 진리를 깨닫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런 사람은 끝장입니다. 하나님을 여러 해나 믿어도 여전히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른다면 이런 사람은 드러나고 도태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든 다 생각해 봅니다. ‘아차, 난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거야.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해. 나는 진리를 실행해야지 악을 행해선 안 돼! 본분을 제멋대로 함부로 해서 하나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면 안 돼.’ 사람을 대할 때도 그는 늘 ‘아, 하나님 뜻에 안 맞아, 하나님이 칭찬하시지 않으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보실까?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욥이 한 일을 보세요,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었기에 늘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했는데 이것이 바로 욥의 인품입니다. 욥의 간증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의 이 간증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간증을 굳게 서는 것인지 등 면에서 욥을 본받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모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면 당신의 경지는 더욱 높아집니다. 진리를 추구해서 향상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지,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만족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 수 있는지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러면 곤란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의 마음만 생각하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집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 집의 모든 물건과 설비는 다 하나님 집에서 지시하고 안배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당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것입니까? 당신은 하나님 집을 자기 집으로 여겼습니까? 하나님 집이 바로 당신 집이고 당신의 집이 바로 하나님 집이라는 것은 누구의 논리입니까? 하나님 집은 하나님 선민의 집이지 어느 개인의 집이 아닙니다. 당신이 이런 말을 하면 타당합니까? 그것이 진리에 부합됩니까? 당신이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비웃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솔자로 세우셨습니까? 당신을 주인으로 세우셨습니까? 당신은 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스럽게 말합니까? 사람은 말함에 이지가 있어야 합니다. 말함에 이지가 없는 것을 뭐라고 할까요? 그것은 진리가 없어서일까요? 그것을 뻔뻔스럽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하고 허튼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보세요, 큰 붉은 용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큰 붉은 용은 허튼소리만 해댑니다. 보세요, 그것들이 하는 그런 말은 곳곳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법으로 삼고 그것이 바로 법입니다. 당신은 무슨 물건짝입니까? 당신은 무슨 법을 대표합니까? 당신의 하찮은 목숨은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이면 끝장나고 없어집니다. 한 마디 말이면 지옥에 내려가게 할 수 있는데, 당신이 그래도 법이라고! 분수를 모르고 무모하게 날뛰는데, 너무나 이지 없고 오만 자대(自大)하고 무법천지이며 허튼소리를 해댑니다.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이지 있게 말해야지 제멋대로 날뛰지 말고 혼자서 결정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믿었으면서 헛되이 믿었습니까? 이런 이지마저도 없으니 말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인성이 없는 것이 드러나서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색한데, 그런 말은 사람 말이 아니고 너무나 이지 없어서 큰 붉은 용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큰 붉은 용이 한 말은 척 들어보면 사람 말이 아니고 허튼소리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막무가내인 사람은 짐승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 일부 사람들이 말썽을 일으키려 하는데 교회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잘 교통하고 형제자매들이 다 말하고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가 말썽을 일으켜도 안 되는데, 꼼짝도 할 수 없게 할 것입니다. 당신이 좋은 사람 되는 것은 됩니다. 좋은 사람이 되면 형통합니다.

구원받는 것을 추구하려면 반드시 욥을 본받고 욥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를 좋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르는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되고 틀림없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의 길을 걷고 자기의 길로 치우치고 갖은 악을 행한다면 바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속담에 “불의한 짓을 많이 하면 반드시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라고 한 것은 거짓이 조금도 없습니다! 지금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고 여기고 어떻게 허튼소리를 하든, 어떻게 제멋대로 하든 하나님이 보지 못한다고 여기는데, 이런 사람은 눈이 멀지 않았습니까? 어디가 눈이 멀었을까요? 제가 알려드리죠. 하나님은 영이시고 은밀히 계십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인간이 하는 것을 신이 지켜보고 계신다”, “머리 석자 위에 신령이 있다”라는 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닙니다! 일부 형제자매들은 고문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곁에서 동반하시고 하나님께서 곁에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직접 느꼈기에 믿음이 커지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하신다. 비록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바로 곁에서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경력이 없다면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이 없다고 여겨지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을 신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은 아주 틀림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저지르는 악,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마음속에 두셨고 기억하셨습니다. 당신은 회개하지 않으면 끝장입니다. 지금 사람이 하는 모든 말, 사람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하나님께서 다 감찰하시고 보고 계시기에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언젠가는 선과 악이 다 보응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응이 임할 때는 이를 갈면서 슬피 울어도 모든 것이 다 늦었습니다. 그때면 당신도 적그리스도 “창카이”처럼 “이제 마음이 편해요. 하나님 집에서 마음대로 처리하세요.”라고 말할 것인데,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으나 구원받을 여지도 없습니다! 이것을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이미 저지른 악행을 돌이킬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일을 저지른 다음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하기 전에 만약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악을 피하고 멀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당신은 악을 조금 줄이고 적게 행하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자제와 단속으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단속할 수 있는 힘은 너무나 유한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진리만이 사람을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합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께 의탁하지 않고 매사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면 악에서 떠나지 못하고 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시련과 연단을 주시고 징계와 형벌을 주시면 혹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면 악에서 떠나는 것이 효과에 도달하고 가망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없고 하나님의 수리와 대처가 없고 징계와 징벌이 없다면 악에서 떠나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인류가 깊이 패괴되었기에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믿지 않는데 지금 제가 솔직히 알려 주겠습니다. “교회의 사람 중 대부분이 만약 인솔자로 된다면 다 적그리스도이고 다 제명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절반에서 대다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솔자 본분을 하지 않아 제명되지 않은 것이지 일단 인솔자로 되기만 하면 제명될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 인솔자 본분을 하지 않을 때와 인솔자 본분을 할 때가 성품이 다르단 말입니까? 처리 방법이 왜 다릅니까?” 한 가지면은 사람이 보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있는 것과 권력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권력이 있으면 큰 악을 행할 수 있고 권력이 없으면 악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악은 권력을 통해 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권력을 줘선 안 됩니다. 그에게 권력을 주지 않아도 그는 권력을 다투고 권력을 빼앗으려 하며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럼 일단 권력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입니까, 아닙니까? 무릇 권력과 이익을 다투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지 않고 권력과 이익을 위해 하나님 집의 사역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데,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이는 100% 적그리스도입니다. 그가 권력과 이익을 다투기 위해 교회 사역을 방해할 수 있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지위가 없어 드러나지 않은 것이지 일단 지위가 있으면 다수가 다 제명될 것입니다.

사역안배에서 하나님 집에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첫 부류는 하나님 선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충성된 효력자, 인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도태될 사람인데, 교회에서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 마구 소란을 피우는 사람입니다. 악인이 방해하기만 하면 언제나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추종자 몇몇이 마구 소란을 피우는데, 이 몇몇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는 사람입니까? 선두에서 말썽을 부리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바로 추종자가 생기는데 이 추종자는 뭐하는 자일까요?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가 아닐까요? 이것을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라고 합니다.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는 전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찾아 따릅니다! 그럼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는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는 사람을 따를 수 있을까요? 따를 수 없습니다. 보세요, 교회에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정의감이 있고 진리가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며, 누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면 나는 이들과 협력해서 이들 편에 설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선민이고 구원받을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편에 서있는 이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님 자민에 속하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악인이 말썽을 부리고 소란을 피우기만 하면 언제나 추종자가 몇몇이 있는데 무릇 악인을 따르는 그 몇몇은 뭐하는 자들일까요? 악인의 공범자, 악인의 앞잡이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무릇 걸핏하면 악인을 따르는 자, 걸핏하면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 걸핏하면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라면 도태될 대상입니다. 당신은 그가 오늘 교회에서 제명되지 않았다는 것만 보지 마십시오. 그는 절대로 좋은 놈이 아닙니다. 그는 도태될 부류입니다. 지금 일부 악인들이 무엇 때문에 대열에 제대로 설 수 없을까요? 그가 무엇 때문에 늘 부정적 인물의 편에 설까요? 그가 부정적 인물 편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할까요? 그가 분별할 줄 모르는 것일까요? 그가 어떤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지 몰라서일까요? 그는 압니다. 알면서 왜 부정적 인물의 편에 설까요? 그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의 본성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틀림없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지금 교회에서 무릇 걸핏하면 부정적 인물의 편에 서고 걸핏하면 따라서 마구 소란을 피우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이런 사람은 절대로 좋은 놈이 아니고 절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절대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걷는 길은 잘못된 길이고 그는 불의를 좋아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양성할 가치가 있을까요? 하나님 집에서는 악인을 양성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지금 일부 새신자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1~2년, 3~5년이 되기에 좀 제멋대로 해도 하나님 집에서 당신을 용서하고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교회에서 재삼재사 권력과 이익을 다투고 질투 분쟁하고 패거리를 짓고 이간질한다면 영원히 성령 역사를 잃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고 성령도 절대로 이런 사람에게서 역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심보가 나쁩니다. 누구에게 능력이 있으면 질투하고 걸핏하면 남을 질투하는데 젊은이들이 매우 심각합니다. 일반적으로 40~50대, 50~60대 사람은 질투가 심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능력이 있으면 탄복하고 찬성하면 됩니다. 누가 우리보다 나으면 그 사람에게서 배우면 됩니다. 뭐 어떻습니까? 젊은이일수록 질투심과 경쟁심이 더욱 크고 승부욕이 강합니다! 이렇게 젊은이들은 이 질투가 너무나 심각한데 좀 극복해야 합니다! 남을 질투하면 무엇이 생깁니까? (배척하고 억누르고 논단합니다.) 만약 인성이 좋고 마음씨가 착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 불만이 좀 있어도 마음속으로 미워하다가 맙니다. 만약 질투로 인해 남을 논단하고 배척하고 깎아내린다면 공격으로 됩니다. 질투가 공격으로 되면 바로 악행입니다. 만약 남을 질투하는 사람이 인성이 좋지 않고 인성이 악랄하다면 그의 질투가 무엇으로 될까요? 미움으로 되어 원한이 맺히고 살해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질투하는 사람은 그의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를 보아야 합니다. 인성이 좋으면 기껏해야 조금 원망하고 미워하다가 마는데 며칠이면 없어집니다. 만약 인성이 좋지 않고 인성이 악독한 사람이 일단 남을 질투한다면 남을 미워하는데, 어떤 일이든 다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투심이 너무 강하면 자신을 망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포용력과 관용을 배워야 하며 권력과 이익을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공허한 것입니다. 그걸 다투어서 무슨 소용있습니까? 누가 우리보다 나으면 그에게 시키고 그에게 순복하고 그의 말을 들으면 됩니다. 항상 잘난 척하지 마세요. 잘난 척하면 좋은 점이 없고 먼저 도태됩니다. 만약 20~30대, 30~40대 젊은이가 성품이 오만하거나 질투하고 경쟁하고 자기를 나타내기를 좋아하고 과오가 있다 하여 한두 가지 잘못으로 모든 것을 부정해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그와 달리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합니다.) 배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이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어쨌든 경력이 얕으니 말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넘어지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니 다른 사람에 대해 관용해야 합니다. 만약 누차 타일러도 고치지 않는다면 포기해도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처음 실패하고 넘어지면 반드시 관용하고 참을성 있게 부축해야지 절대로 한두 가지 잘못으로 모든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력하는 것은 몇 년 내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10여 년 믿고 누차 수리 대처를 겪어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도태될 것이고 성령도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재삼재사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권력과 이익을 다투고 사람들과 맞서 싸우며 누가 그보다 나으면 질투하고 경쟁하며 조금도 순복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이러면 도태될 것입니다. 처음 두 번의 좌절과 실패는 양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는 뭘 증명합니까? 조금도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은 기억하십시오. 만약 그가 처음으로 실패하고 넘어졌다면 한두 가지 잘못으로 모든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부축하면서 또 두 번째가 있는지 없는지 보아야 하고 그의 본성 실질이 무엇인지 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어도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태껏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람은 틀림없는 악인이고 적그리스도입니다. 본성 실질을 꿰뚫어 보고 다시 결론을 내려야 적합합니다. 본성 실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먼저 결론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은 법에 근거하는데, 법은 원칙이 없으며 규례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당신이 법을 어기기만 하면 당신에게 규례를 씌우고 법으로 제재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 원칙에 근거하여, 사람의 본성 실질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합니다. 당신의 본성 실질이 좋고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데 그런 부류의 과오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본성이 좋지 않고 악인에 속한다면 당신이 어긴 데에 따라 가차없이 엄중 처벌합니다. 오직 진리만이 공평과 공의를 체현할 수 있고 법은 공평과 공의를 체현하지 못합니다. 법에 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규례이고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본성 실질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이야말로 진리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진리에 근거하여 사람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공평하고 공의로운 것입니다. 이 말을 기억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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