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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 관한 설교 교통 (1)

『지난번 집회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화제를 교통했다. 그 화제는 무엇인가? 너희들이 기억했는가? 내가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지난번에 교통한 화제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이다. 이 화제는 너희에게 있어서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어느 부분이 너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가? 너희는 어느 부분의 화제에 대해 가장 흥미를 느끼는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에서 어느 부분이 너희가 가장 듣고 싶은 화제인가? 나는 너희가 이 문제에 대답하기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어디서나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 어디서나 모두 그의 역사 중에서 유로(流露)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사실상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전체 경영 계획 중에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이 3자는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교통한 하나님의 역사 내용은 성경에 기록된 아주 오래전에 발생한 일이다. 이런 일은 모두 사람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고 사람 몸에서 발생한 동시에 하나님의 참여도 있고 하나님의 발표도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매우 가치 있고 의의 있다. 하나님이 인류를 갓 창조한 후 인류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인류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의 성품을 인류를 향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류와의 접촉이 있은 이후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부단히 그의 소유소시(所有所是)와 그의 실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 볼 수 있든 없든,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어쨌든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면서 그의 성품을 유로하고 그의 실질을 발표한 것은 사실이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인류와의 접촉과 하나님 역사에 따라 부단히 발표되고 유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태껏 사람에게 무엇을 감춘 적이 없고 무엇을 숨긴 적도 없으며, 조금도 남김없이 그 자신의 성품을 공개하고 나타내고(원문: 釋放) 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알고 그의 성품과 실질을 알기를 바라지 인류가 그의 성품과 실질을 영원한 비밀로 여기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인류가 하나님을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여기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인류는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인류만이 진정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 수 있고 빛 속에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다.

하나님이 발표하고 유로한 말씀과 성품은 그의 뜻을 대표하고 그의 실질도 대표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접촉할 때 어떤 말씀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떠한 성품을 유로했든지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소시가 무엇이고 실질이 무엇인지를 보았든지 이는 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 인류가 얼마를 느낄 수 있든지, 얼마를 이해할 수 있든지, 얼마를 깨달을 수 있든지 모두 하나님의 뜻 즉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는데,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요구하고, 사람에게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요구하고,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이를 수 있는지를 요구한 것이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실질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성품인지, 하나님께 어떠한 소유소시가 있는지는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동시에 발표한 것인데, 거짓이 없고 위장이 없고 감춤이 없고 꾸밈이 없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고 언제나 분명히 보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가? 하나님이 유로한 것, 발표한 것은 다 하나님 자신의 소유소시이고 다 하나님 자신의 참된 성품의 세부적인 것이고 각 방면의 것인데, 무엇 때문에 사람은 보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사람은 투철히 인식하지 못하는가? 여기에는 하나의 아주 중요한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창세 이래로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은 것이다. 시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즉 갓 창조된 사람에게 무엇을 하였든지 사람은 그저 하나님을 하나의 동반자로 여기고 하나의 의지할 대상으로 여겼을 뿐 결코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나 이해가 없었다. 즉 사람으로 하여금 의지하게 할 수 있는 이런 한 분의 대상, 사람 안중의 이런 한 분의 “동반자”가 발표해 낸 것이 하나님의 실질임을 몰랐고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임도 몰랐던 것이다. 한 마디 간단한 말로 하면, 그때의 사람은 하나님을 조금도 알아보지 못하고, 천지만물이 하나님이 만든 것인 줄도 몰랐으며, 하나님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몰랐고, 더욱이 하나님이 어찌된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하나님도 그때에 사람에게 그를 알고 그를 이해해야 하며 그가 한 것을 깨닫고 그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는 인류가 창조된 가장 최초의 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율법시대의 사역을 하려고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 몸에 얼마간의 일을 한 동시에 사람에게 얼마간의 요구도 제기하기 시작했으며 사람에게 어떻게 제사를 드리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그때서야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간단한 개념이 있게 되었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그 한 분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 일정한 거리가 있게 되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얼마만한 높은 인식이 있어야 하고 얼마만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역사하는 절차에 따라, 그가 역사하는 상황에 따라 사람에게 서로 다른 요구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는가?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성품을 보았는가? 하나님은 아주 진실하지 않은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아주 합리적이지 않은가? 그는 인류가 창조된 가장 이른 시대에서 사람에 대해 정복 사역을 하지 않았고 온전케 하는 사역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에게 그리 많은 말씀을 하지 않은 정황에서는 사람에 대한 그의 요구가 아주 낮았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사람에게 어떤 행위가 있든지 심지어 사람이 그를 거스르는 일을 좀 하였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다 용서할 만한 것이었고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는지를 알고 있고 사람 몸에 무엇이 구비되었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요구 표준을 줘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설령 그때의 요구 표준이 아주 낮다고 해도 하나님의 성품이 위대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고 그의 지혜와 전능이 한 마디 빈말임을 뜻하지도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 자신을 알려면 오직 하나의 경로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의 발걸음을 따르는 것과 인류에게 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께 그의 본체를 인류에게 나타내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사람은 요구할 수 없고 함부로 요구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면 이미 진실한 하나님 자신을 본 것이고 이미 하나님의 본체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결과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이 부단히 앞으로 발전함에 따라 하나님이 사람과 무지개로 언약을 세운 것을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삼은 후 하나님의 마음은 더욱더 절박하게 그와 합심할 수 있는 사람을 얻으려 하였고, 또한 더욱더 절박하게 땅에서 그의 뜻이 통행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얻으려 하였으며, 더욱이 땅에서 흑암 세력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속박을 받지 않을 수 있고 그를 증거할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을 얻으려 하였다.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오랫동안 바란 것이고 하나님이 창세 이래 줄곧 기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든지, 사람과 언약을 세우든지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심정도 변하지 않았으며 그의 계획과 소망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하려고 한 것은 창세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바란 것이다. 즉 인류 가운데서 그가 얻으려는 사람을 얻고, 그의 성품을 알고 인식할 수 있고 그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고 그를 경배할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을 얻으려고 한 것이다.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은 진정 그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의 지심인(知心人)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오늘, 우리 계속 하나님의 발자취를 좇아 하나님의 역사의 발걸음을 따름으로써 “봉인하여 보관한” 지 오래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및 하나님과 관련된 세부적인 것을 찾아내고,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실질을 알아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각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하고 또한 각 사람으로 하여금 점차 하나님에게 다가가게 하고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도록 하자.』

“‘봉인하여 보관한’ 지 오래된 하나님의 마음”, 무엇을 “마음”이라 하는지 알겠죠? 바로 내심의 생각입니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려면 우선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진리를 깨닫는 데에 이르려면 우선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여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바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도리로 삼고 보통 말과 규례로 삼아 대하는데, 이러면 진리를 깨닫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을 텅 빈 규례로 삼고 당신이 이해한 그런 뜻으로 삼고 마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규례를 말씀하시고 당신에게 한 마디 빈말을 알려 주시고 끝내시는 것처럼 간주하고 이 말씀을 하실 때의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도달하려는 효과를 다 소홀히 하고 다 배척한다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 빈말, 하나의 도리, 하나의 규례로 대한다면 영원히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럼 “진리를 깨닫는다”는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과 생각 그리고 도달하게 되는 효과를 깨닫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당신은 하나님께서 하신 이 한 마디 말씀의 진실한 의의를 알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 생각, 뜻, 요구와 도달하게 되는 효과를 모두 배척하고 모두 한쪽에 놓고 이 두 가지를 갈라놓는다면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은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규례로 지키고 도리로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도리로 대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냐하면 도리는 사람마다 말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패괴된 인류 중에 도리를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각종 악령도 도리를 말할 줄 모르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탄은 도리를 제일 잘 말할 줄 알고 거짓말을 제일 잘 만들어내며 각종 사탄 악령도 많은 도리, 좋은 도리, 듣기 좋은 도리, 깊은 도리를 조작하여 인류를 미혹합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예컨대 악령이 편찬한 각종 불경을 사람들이 들어보고는 “이것도 맞네, 정말 좋아!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게 하는구나.”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다 도리가 아닙니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바로 지상공문이고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이전에 큰 붉은 용의 창시자인 마오쩌둥 토적도 많은 도리를 조작했습니다. “마오쩌둥 어록” “마오쩌둥 사상” 그 말도 괜찮습니다! 중국 사람은 이런 말을 보고 나서 그를 “붉은 태양”으로 높이 받들었죠! 하지만 그 사람의 실질은 무엇입니까? 마귀이고 사탄이고 악령입니다. 나중에 그것이 한 것이 모두 어떤 일이었습니까? 그것이 한 말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한 것은 전부 듣기 좋은 말이고 다 사람의 관념에 제일 부합되는 말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미혹되고 말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말만 봐서 되겠습니까? 진리를 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보고 나면 다른 사람도 말할 수 있고 듣기 좋은 말은 누구나 다 할 줄 알지만 소용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말씀만 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씀의 도리 방면만 보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릴 줄 모릅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영이 통할까요?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만 10년, 8년을 읽어도 나중에 조금의 진리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줄 압니까, 모릅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도리로, 표면의 말씀으로 삼고 그렇게 읽습니다. 읽고 나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구할 줄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의 뜻을 구할 줄도 모릅니다. 결과는 어떠합니까? 많은 도리를 기억하고 하나님 말씀의 글귀는 기억했지만 해낸 일은 진리 원칙이 조금도 없고 심지어 제멋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비밀을 사람에게 밝히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마치 세상적인 글을 읽는 것과 같고 책 속의 지식을 읽거나 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전혀 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말씀의 배경, 사람에 대한 하나님 말씀 속의 뜻, 하나님이 말씀하여 이르려는 효과, 하나님이 말씀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인식이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을 읽을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이방인의 말을 읽는 것과 같다면 이런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10년, 8년을 믿어도 큰 붉은 용에 대해 간파하지 못하고 조금의 분별도 없습니다. 큰 붉은 용이 어떤 말을 하든지, 어떤 거짓을 꾸미든지, 어떤 거짓말을 하든지, 어떻게 하나님을 공격하고 논단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먹칠하든지 그는 일부분을 받아들일 것이고 또 반신반의할 것입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큰 붉은 용에 대해 인식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인식이 없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여러 해 동안 믿어도 이방인의 그런 귀신 말에 대해, 사람을 미혹하는 불경의 말에 대해, 사탄의 말에 대해 지금까지도 분별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읽을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원칙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이 하나만 해도 사람이 하나님을 몇 년을 믿어야 하고 진리를 얼마 깨달아야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는 지금 많은 도리와 영적 경력(역주: 체험)을 말할 수 있어요! 그럼 제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을 수 있겠어요?” 이 말이 성립됩니까, 성립되지 않습니까? (성립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많은 영적 도리를 말할 줄 안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으면 여전히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 집에서 지금 하나님 말씀 낭송 동영상, 시가 동영상과 생명 간증 동영상을 만들고 있는데, 세계 각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하나님 집의 많은 동영상을 세계 각 인터넷에 올리지 않고 있는데 그들에게 한 가지 핑계가 있습니다. 하나님 집의 이런 동영상은 합격이 돼야 올릴 수 있고 불합격이면 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의 이런 동영상은 모두 불합격이라고 여기면서 오직 동영상 심사팀에서 합격이라고 인정해야 각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진리가 있습니까, 실제에 부합됩니까? (부합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동영상 사역을 책임지고 있는데 “이런 동영상은 아직 인터넷에 올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당신이 인터넷에 올리지 못하는 이런 동영상은 당신 눈에 불합격이어서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라고 묻자 그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당신한테 하나님 집의 이런 동영상이 불합격이라고 했습니까? 제가 불합격이라고 했습니까? 많은 동영상은 제가 보면서 감동받고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제가 불합격이라고 했습니까?”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어떤 동영상은 확실히 작은 문제가 좀 있습니다. 사소한 작은 문제는 수정할 필요는 있지만 불합격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파악하지 못하고 불합격으로 처리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그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원칙이 없습니다. 그럼 이 일에서 어떻게 하면 원칙이 있는 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은 아주 심각합니다! 원칙이 있음을 어떻게 확정하는지 여기에도 일부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몇몇이 서로 교통하면서 2~3일, 3~5일 구하지 않으면 일반인은 정말 깨닫지 못합니다. 우선 하나님 집의 이런 동영상은 합격이라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이 일을 먼저 확정해야 합니다. 현재 다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집의 이런 하나님 말씀 동영상, 시가 동영상, 생명 경력 간증 동영상이 비록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다 합격이라고 인정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이런 합격된 동영상을 세계 각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마땅합니다.) 그럼 만약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 집의 대부분의 동영상이 불합격이라고 여기면서 동영상 심사팀의 결정만이 정확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말은 바로 그릇된 논리입니다. 지금 동영상 심사팀 사람들이 진리가 있습니까?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습니까? 그들은 진리가 없고 일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는 것은 그들에게 진리가 없음을 증명합니다.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으면 그에게 진리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당신이 어느 방면의 실행에서 원칙이 있으면 그 방면에서 진리 실제가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방면의 일에서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으면 그 방면에서 진리 실제가 없음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사실이니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만약 일부 동영상에 사소한 문제가 발견되어 그 후 해결했다면 해결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정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원래 동영상을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네.) 그럼 만약 어떤 사람이 동영상에 사소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후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직접 내리고 그 문제를 다 수정한 후 새것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이렇게 하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또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렇죠? 그럼 이런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습니다.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어리석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미 그 동영상에 사소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도 왜 인터넷에서 삭제하지 않고 새것이 만들어진 후에야 원래 것을 바꿀 수 있다고 합니까? 이것은 고의로 문제가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게 아닙니까?” 이런 말이 성립됩니까? (성립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성립되지 않습니까? (이런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인데, 이것이 중대한 일입니다. 만약 작은 문제 때문에 인터넷에 올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큰일을 그르치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 밖에, 이런 사소한 문제는 이방인이나 종교인들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그들에게는 아주 좋아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속으로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증오합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하루라도 더 빨리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왜 삭제합니까? 당신은 그들이 분량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이 동영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 역사를 논단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없다면 사소한 문제가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수정하는 것은 더 좋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수정하지 않아도 이방인이 보기에는 이미 아주 좋습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삭제하려고 합니까? 바보짓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문제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눈 뜬 소경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무슨 일이든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동영상이 아직은 그리 완벽하지 않고 그리 이상적이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각 채널에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것은 고려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이렇게 좋은 동영상을 만약 그런 채널에 올리지 않는다면 손해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만약 당신이 정말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고려해 봐야 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고려해 보지 않고 당신의 관념으로 “불합격이고 수정이 끝나지 않으면 안 올릴 거야”라고 한다면 당신은 곧 살인귀로 됩니다. 하나님 집에서 보기에, 진리가 있는 사람이 보기에 아직 완벽하지 못하고 아직도 사소한 문제가 존재하는 동영상이지만 이렇게 많은 좋은 동영상을 불합격으로 처리한다면 이것을 살인귀라고 합니다. 이 일이 이렇게 막혀서 너무 아쉽습니다! 하나님 집의 동영상이 전 세계에 공개되는 데에 적어도 3개월을 지체했습니다!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를 줄 수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가능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동영상을 수정하는 것은 더 완벽해지게 하는 것이지 결코 그것이 불합격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이 동영상을 즉시 폐기하고 수정을 다하면 그때 올리세요.”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수정은 해야 합니다. 만약 완벽해야 한다면 여러분 생각에 언제 수정이 끝날 수 있겠습니까?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괜찮습니다. 당신이 10번이고 20번이고 아무리 수정해도 다 수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10번, 20번을 수정해도 다 수정하지 못하고 10년, 8년을 수정해도 다 수정하지 못한다면 이런 동영상을 올리지 않을 겁니까? 이는 그릇된 자가 아닙니까?

그러면 인터넷 각 채널에 동영상을 올리는 원칙은 무엇이겠습니까? 즉 동영상을 각 채널에 올리는 최저 표준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마땅히 연구 토론해야겠죠? (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늘 처리하지 못합니다. 마땅히 이런 기반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첫째, 경력 간증 동영상은 진실한 것이어야 하고 긍정적인 효과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한 부분이나 진리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기껏해야 적절하지 못한 문제나 사소한 문제가 좀 있는 것은 그래도 합격입니다. 다른 한 방면의 표준은 다수의 하나님 선민들이 보았을 때 도움이 되고 보고 나서 좋다고 느껴지면 합격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이 표준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첫째, 이 동영상은 거짓으로 꾸민 것이 아니고 진실한 것임을 확정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 낭송과 시가 동영상이라면 더욱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실한 것이고 진리이며 시가도 역시 진리입니다. 동영상의 소재가 하나님 말씀 진리와 어긋나지 않고 저촉되지 않고 모순되지 않으면 합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지의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니고 원칙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선민 다수가 보기에 아주 좋고 도움이 되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동의하면 합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표준이 합당합니까? (합당합니다.) 동영상의 합격 여부는 진리가 있는 사람의 표준에 따라 요구해선 안 됩니다. 만약 진리가 있는 사람의 표준에 따라 요구한다면 문제가 있겠지요. 저보고 보라고 하면 다 문제가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는 사람마다 다 있습니다. 저의 요구에 따르면 완벽하지 않을 뿐이지 불합격은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이미 합격되었습니다. 그것이 만약 정말로 불합격이라면 제가 보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뭘까요? “이 동영상은 크게 틀렸습니다! 당장 없애버리세요!” 저는 이런 지시를 내릴 것입니다. 어떤 그릇된 자는 이해하는 것이 치우치고 그릇됩니다. 제가 어느 동영상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자 그는 단번에 큰 몽둥이를 휘두르는 식으로 그 동영상을 잘라내려고 하는데 당신은 제멋대로 규례에 맞추고 영이 전혀 통하지 않네요. 제가 제일 증오하는 자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여러 해 믿어도 아무런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함부로 규례에 맞추는데 너무나 쓰임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방인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가며 일을 처리하고 생각해 볼 것입니다. ‘무슨 뜻이지? 이 동영상이 문제가 있다고 했지 불합격이라고는 하지 않았어. 그럼 아마 이 동영상이 아직 완벽하지 않고 조금 고쳐야 할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걸 불합격이라고 한 게 아니고 잘라버리라는 건 아닐 거야. 그래서 잘라내선 안 되고 사정을 봐주고 함부로 처리하지 말아야지.’ 당신이 사고력이 있다면 많이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어느 동영상에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칼을 휘둘러 잘라내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원칙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조금도 없는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리고 소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런 소질도 없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제멋대로 규례에 맞춥니다. 어느 날 당신이 하나님께서 저를 대처하시고 저의 패괴 성품 문제를 폭로하시는 것을 보게 되면 저까지도 단번에 싹 잘라버리고 제명하면 그만이겠네요! 당신은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 대륙에서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실 때 저를 들춰내시고 대처하셨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서 온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즉시 저를 차가운 시선으로 대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저와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뜻인즉 “이번에 당신은 끝장이야, 당신은 도태됐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입니까? 나중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계속 저를 인솔자로 쓰시니 또 재빨리 저를 웃는 얼굴로 대하고 또 아첨하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카멜레온”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제일 증오합니다. 눈치를 보며 행동하고 겉과 속이 다르고 잘 드는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격, 즉 처세에 능수능란한데, 당신은 완전히 마귀입니다. 당신은 진리가 있습니까? 당신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진리에 근거해 사람을 대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제가 어느 인솔자를 대처하고 어느 인솔자를 증오하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을 마귀로 여기고 제명합니다. 그는 제가 누군가에게 부드럽고 온화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즉시 그 사람을 인솔자로 기용합니다. 제가 누군가에 대해 조금 부드럽고 온화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가 분량이 작고 이제 금방 믿었는데 제가 그를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를 대처할 수 없는 것은 그에게 진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금방 믿고 분량이 작아서인데, 당신은 그를 진리가 있는 줄로 여겼습니다. 당신이 제가 누군가에 대해 엄한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의 문제가 심각하고 제가 그를 증오한다고 여기면서 즉시 적그리스도로 삼아 제명하는데, 당신은 제가 왜 그를 엄하게 대처하는지 압니까? 그에게 분량이 있고 그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길면 마땅히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해야 합니다. 그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왜 제가 그를 공격한다고 이해합니까? 저는 그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잘 훈련하여 그 사람이 나중에 순복(역주: 순종)이 있고 회개가 있고 변화가 있으면 저는 또 크게 쓸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마음을 압니까? 늘 제멋대로 규례에 맞추네요. 지금 적지 않은 인솔자 일꾼은 진리 실제가 없고 사탄 철학에 의해 살고 있으며 늘 눈치놀음하고 늘 상면의 말투를 주시하고 살피면서 일을 처리합니다. 저는 이런 인솔자 일꾼에 대해 매우 메스꺼움을 느낍니다. 당신은 진리 원칙에 근거해 혼자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신이 늘 저의 말투를 살펴서 뭐합니까? 제가 그곳 상황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제가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지금 진리를 추구합니까? 이전엔 정말 아주 좋았는데.”라고 말해도 당신이 보기에 그가 지금은 적그리스도여서 그를 제명하고 저에게 “그가 이전에 아주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의 현재 상황에 근거해 제명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께 알고 계시라고 특별히 알려드립니다.”라고 이렇게 말한다면 저는 당신이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음에 탄복할 것입니다. 일부 인솔자 일꾼들은 이렇지 않습니다. 제가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감히 제명하지 못하고 그를 제명하면 저의 미움을 살까봐 겁내는데,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것은 사탄 철학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없습니다.) 그럼 그에게 진리 실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런 인솔자는 사탄 철학에 의해 살고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는데 하나님 선민의 인솔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까? 당신은 제가 악인을 감싸는 사람이라고 여깁니까? 당신은 제가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임을 모릅니까? 당신이 이렇게 하면 제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하고 당신에게 호감을 가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당신을 혐오하고 당신에 대해 메스꺼움을 느낍니다. 당신이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으니 저는 당신에 대해 메스꺼움을 느낍니다. 이전에 제가 반감을 느끼고 혐오하던 사람이 현재 진리를 추구하고 회개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있다면 저는 다시 그를 기용하고 다시 그를 크게 쓸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합당합니까? (합당합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여러분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감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사탄 철학에 의해 산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알아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만족스러움을 얻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가장 좋기는 사탄 철학을 벗어버리고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는 총명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어른이 되다”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독립적으로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독립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며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데에 이르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말하든지 당신은 실제 상황에 따라 당신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하고 저의 구속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저의 속박을 받는데, 제가 그곳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제가 상황을 잘 모르면서도 남을 지배해 함부로 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많은 일에서 당신이 저에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물었는데 제가 어떻게 답했습니까? “당신은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왜 실제 상황에 근거해 문제를 처리하지 않습니까? 저에게 물어봐서 뭐합니까? 당신이 저한테 물으면 당신은 폐물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설명합니다. 당신은 빨리 물러나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으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고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새신자라면 원칙이 없는 것은 정상입니다. 당신이 10년, 20년을 믿어도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없다면 당신이 전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당신은 너무나도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다. 설마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려면 20년, 30년 진리를 추구해야 도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소질이 좋고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3~5년이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10~20년 동안에도 도달하지 못하면 이는 폐물입니다. 소질이 너무나 낮고 흐리멍덩한 사람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우리가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에서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 마땅히 진리를 구해야 합니다. 이래야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집의 이런 동영상이 도대체 합격되는지의 여부를 당신은 왜 저와 교통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불합격으로 정해 놓고 각 채널에 올리지 않으면 이 “불합격”은 누가 말한 것입니까? 당신이 생각한 것입니까 아니면 동영상 심사팀에서 생각한 것입니까, 아니면 제가 당신에게 말한 것입니까? 당신은 무엇 때문에 제멋대로 동영상을 올리지 않습니까? 제가 전에 여러분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동영상을 각 채널에 올렸습니까?”라고 제가 물어보니 당신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빨리 올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여러분에게 빨리 올리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지금까지도 올리지 않았고 업로드할 만한 소부분만 올렸다고 말했습니다. 긍정적인 일 하나 하는데 왜 가로막음이 이렇게 큽니까?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데 왜 가로막음이 이렇게 많습니까? 이런 장애물은 누가 설치해 놓은 것입니까? 마귀 사탄이 설치해 놓은 것이 아닙니까? 이 마귀는 각종 비열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으면서 동영상을 올리지 않고 업로드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살인귀입니까? 정말로 사탄의 공범자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이 당신을 지배했단 말입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자오위안(招遠) 사건”에 관해서도 제가 형제자매들에게 이틀이나 교통했습니다! 이 사건은 의문점이 몇 곳 있는지, 이 사건 배후에 숨어있는 음모가 무엇인지, 나중에 하나님 선민에게 글을 쓰라고 했는데 써낸 글이 어떻습니까? 아마 절반가량은 거의 합격이지만 절반가량은 아직 불합격이니 더 수정해야 합니다. 일부 글에는 쓸데없는 말이 많고 애매모호한 말이 많고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일부 말들은 어떤 작용을 일으킵니까?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사람을 오해하게 하는데 그것은 파괴 작용을 일으킵니다. 일부 말들은 긍정적인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어떤 군더더기 말은 그 속에서 혼란시키는 작용을 일으키고 걸림돌 역할을 하는데 그는 분별해 내지 못합니다. 매 한 마디 말은 하나의 긍정적인 효과에 도달해야 하고 긍정적인 효과에 도달하는 데에 조금도 부작용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라야 쓸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일부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사람들이 보고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데, 이 말은 긍정적인 효과에 방해를 줍니다. 그 말은 흐릿하여 분명하지 않고 표현하려는 뜻이 정확하지 않으며 어떤 말은 남을 두둔하고 또 어떤 말은 쉽게 사람들을 오해하게 합니다.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사람의 마음이 맑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한 사람을 보니 그의 입이 왼쪽으로 비뚤어졌다가 또 오른쪽으로 비뚤어지고 정신이 이상해졌다가 또 정상적인데, 이것은 대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한 가지 겉면의 일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겉면의 일도 분명히 보지 못하고 분명히 정리하지 못하는데, 이런 사람은 진리가 있습니까?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꿰뚫어 볼 수 없겠죠? 제가 많은 말을 교통한 후에도 여전히 이런 흐리멍덩한 말을 써낼 수 있는데, 그럼 만약 제가 한 마디도 교통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닥쳤다면 일부 사람들이 미혹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일부 사람들이 미혹당할 수 있습니다. 미혹당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의 두뇌와 소질은 어떠합니까? 너무 낮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기껏해야 규례를 지키는 효과에 도달할 뿐입니다. 늘 하나님에 대해 편면적인 인식만 있고 늘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 편면적인 인식만 있다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온전케 되는 데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만약 인솔자가 된다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멋대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함부로 규례에 맞추고 하나님 선민을 억누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소질이 좋고 오만한 성품이 좀 있는 사람을 보면 “당신은 오만 자대하고 적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한 명을 제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좀 치우치고 그릇된 것을 보면 “당신은 멍청이이고 악령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또 한 명을 제명합니다. 사람이 적극적으로 본분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불신파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또 한 명을 제명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를 주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일을 처리할 때 함부로 규례에 맞추기 때문에 하나님 선민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억누르고 배척하고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어서 하나님 선민을 이끌어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가장 복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말합니까?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흑암 속에서 살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흑암 속에서 살면 성령 역사가 없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으며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속박과 각종 마귀 사탄의 그릇된 논리의 방해 그리고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속박을 받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행할 길이 없으며 그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는 어떤 문제든 해결하기 쉽습니다. 척 보면 분명해지고 척 보면 알게 되며 원칙이 있게 됩니다. 원칙이 있고 진리가 있으면 어떤 일을 하든 마음속이 평안하고 마음속에 누림이 있으며 어떠한 고통도 없고 어떠한 방해도 없으며 완전히 광명 속에서 살면서 진정한 해방 자유를 누립니다. 보세요,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일을 처리함에 늘 원칙이 없고 근거가 조금도 없으며 일을 함에 있어서 흐리멍덩합니다. 사람이 진리가 없으면 나무 인형입니다! 나무 인형이면 당신이 그를 지배하려 해도 분명하게 지배하지 못하고 언제 어느 새 또 다른 것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그를 지휘하려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지키려고 해도 지키지 못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으시게 하고 누림을 얻으시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는 사람은 당신이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다 하여 하나님도 당신을 좋아하시고 하나님 선민도 당신을 좋아한다고 여기지 마세요.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누림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 일을 처리한 것을 척 보면 흐리멍덩하고 원칙이 조금도 없고 말하는 것이 흐리멍덩하고 생각이 조금도 뚜렷하지 않은데, 누가 보고서 누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슨 일을 처리하든지 원칙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좋아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칭찬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큰 인내로 사람을 구원하시면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가 지금 너무나 흐리멍덩하여 내가 너를 기다려야겠다. 너를 보면 누림이 없다. 잘 추구하고 잘 먹고 마셔라.” 당신이 진리를 깨닫는 분량에까지 자라나고 일을 함에 원칙이 있어야 하나님이 보시고 누림이 있고 위로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관건이 아닙니까? (관건입니다.)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관건이 아닙니까? (관건입니다.) 어떻게 실행해야 합니까? 한 가지 일이 닥치면 당신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원칙이 있는 걸까? 이 일을 함에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잡아야 하지?’ 한 사람을 처리할 때에도 원칙에 근거해야지 자신이 처리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한 가지 일을 하려면 당신의 원칙이 무엇인지, 근거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해야지 분명히 말하지 않고 함부로 처리해선 안 됩니다. 당신이 다 처리하고 나서 제가 당신에게 “이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었습니까? 어떤 원칙에 근거해 처리했습니까?”라고 물을 때 당신이 어떤 어떤 원칙에 근거해 처리했다고 말하면 “잘 됐네요! 좋습니다! 원칙이 있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처리하고 어떤 어떤 원칙에 근거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처리하든지 당신이 근거한 원칙을 말할 수 있고 어느 한 마디 하나님 말씀 진리에 근거했는지를 말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라야 진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어떤 원칙에 근거했느냐고 물어도 당신이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원칙이 없고 처리할 때 원칙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 원칙대로 처리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물어봐도 당신은 근거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 당신이 한 가지 일을 설명할 때, 하나님 선민에게 한 가지 일을 공포할 때 우선 원칙을 내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인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 사람들이 들어보고 “원칙에 부합되네요, 우린 말할 것도 없이 찬성이에요!”라고 하면서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원칙을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해서 다른 사람이 “당신의 원칙은 어디에 있습니까?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고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는 것은 어디에서 체현됩니까? 하나님 집에서 일을 함에는 모두 원칙이 있습니다. 당신이 인솔자 일꾼인데 일을 함에 원칙이 없으면 하나님 선민들이 찬성하지 않고 당신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옳은 것이고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는 지위가 낮고 당신은 지위가 높으니 하나님 선민은 당연히 당신 말을 듣지요.”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맞습니까? 당신이 진리 원칙대로 일해 보세요. 시간이 오래되면 사람들이 여전히 당신을 옹호할 것입니다. 처음에 당신이 2가지 원칙을 견지했을 때 하나님 선민들이 당신을 잘 몰라 당신에 대해 의심이 좀 생기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칙을 견지하면서 1년, 2년, 3년, 5년, 오랫동안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면 하나님 선민들이 당신을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 보세요, 제가 하는 이 말을 당신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선민은 다수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한 가지 일을 제가 말해야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일부 사람, 적그리스도, 악령들이 하나님 집에서 제명되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그들이 하나님 집의 사람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한다면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은 원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사람을 당신이 인정하면 당신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당신은 바로 마귀 사탄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예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정확하게 말해서, 사탄의 심부름꾼입니다. 사탄 큰 붉은 용이 그를 하나님 집에 보내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러 오게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선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를 인정함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근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셔야 우리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그를 인정하시지 않으면 우리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일치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하고 하나님의 원칙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선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짓 그리스도와 한 무리이고 어떤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와 한 무리인데, 이들이 하나님 안중에 하나님 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실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뜻이 맞습니까? (네.) 영이 통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이 보고는 “그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됩니까? 진리에 부합됩니까?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지 않는데 당신은 왜 그를 믿는 자라고 말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눈이 멀었음을 증명합니다. 눈먼 사람은 어떤 말을 하기 좋아합니까? 터무니없는 말을 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가에 근거해 그가 하나님 선민인지 아닌지를 정하십니다. 눈먼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 이름을 믿기만 하면 거짓 그리스도이든 아니면 적그리스도이든, 교회 생활 속에 있든 없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논리입니다. 사람의 논리는 진리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사람의 이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고 어리석은 말이고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며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지금 일부 사람들은 적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여기는데,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눈먼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결국 일이 닥치니 사탄 편에 서고 큰 붉은 용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 편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두둔하고 이쪽의 도움을 받으면서 몰래 저쪽을 위해 일하고 눈 뜨고 허튼소리를 하는 것에 속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믿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 집의 교회 생활 속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내주는 사역 안배도 그의 몫이 없는데 그가 어떻게 자기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설사 교회에 있다 해도 마땅히 제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고 둘째는 하나님 집에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찡신(靜心)” 그 거짓 그리스도 무리에게 책을 주거나 사역안배를 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에게 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인터넷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한 무리 모아놓고 사람을 미혹했습니다. 적지 않은 제명된 자들이나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집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그에게로 찾아갔는데, 그는 “브로커”가 되어 적지 않은 사람을 낚아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을 잘도 지어냅니까? 하나님 집에서 그를 인정합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인정합니까? 당신은 누구 편에 선 것입니까? 허튼소리입니다! 이는 바보입니까, 아닙니까? “찡신” 그 무리들은 바로 마귀 악령입니다. 그가 인터넷에서 너무나 사람을 미혹해 참 도를 찾는 일부 사람들을 다 자기에게로 끌어갔습니다. 그리고 또 “라오테(老鐵)”, “후이신(慧心)” 그 한 무리도 악령인데 거기서 사람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정하십니까? 당신은 거기서 허튼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 무리 사람을 제일 증오합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도태되고 제명된 자들입니다. 어떤 자는 아예 하나님 집에 들어온 적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가 어느 무리 사람이든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나는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라고 하면 이것은 사탄과 같은 관점이 아닙니까? 이 무리 사람을 이용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겁니까? 하나님도 그들을 인정하시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인정합니까? 당신이 인정하면 당신도 악령, 적그리스도 그 무리임을 증명합니다. 당신도 제명되어야 합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가증스럽습니다.) 무릇 영이 통하지 않는 인솔자 일꾼은 일단 시련이 임하고 영적 싸움이 임할 때에 남을 두둔하고 사탄을 대신해 말하며 늘 함부로 규례에 맞춥니다. 그가 악령 마귀인지 아닌지 관계없이 그가 입으로 “나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요.”라고 말하기만 하면 당신이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마땅히 제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합니다.) 마땅히 제명해야 하고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 발견하는 족족 제명해야 합니다. 자기 편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두둔하는 이런 바보는 하나님 집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중에서 악령, 적그리스도는 어떤 놈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는 사탄의 심부름꾼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도록 사탄이 보낸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당신이 그래도 그들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발견하는 족족 제명해야지 절대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악령이고 멍청한 놈이고 마귀입니다. 함부로 규례에 맞춰봐요! 저는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가장 미워합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제가 당신에게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모두 도태되고 하나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성령께서 영원히 그에게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집에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함부로 규례에 맞추는 사람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많습니다.) 당신을 제명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을 알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왜 하나님 집에서 당신을 경시하겠습니까? 당신이 영이 통하지 않고 엇나가는 일을 하고 일이 닥치면 늘 규례에 맞추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밉살스럽지 않습니까? (밉살스럽습니다.) 당신이 그 큰 붉은 용의 군병, 사탄의 군병, 사탄의 입, 사탄의 필치를 보세요, 소질이 높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사탄의 그 군병들의 소질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앞잡이들도 큰 붉은 용을 위해 말할 줄 아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말할 줄 모릅니다. 당신이 말하기만 하면 자기 편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두둔하고 이쪽의 혜택을 받으면서 몰래 저쪽을 위하는데 당신은 무지합니다! 바보입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것은 제일 역겹습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시련이 임하면 간증을 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확실히 간증을 서지 못합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시련이 임하면 그의 효력 생애도 끝나고 도태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저 표준과 최저선은 무엇입니까? 입으로 죄짓지 않는 것입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함부로 말해 입으로 죄짓고 이쪽의 혜택을 받으면서 몰래 저쪽을 위하는데 사탄에게 꼬투리만 잡히고 사탄에게 비웃음만 당하고 사탄의 웃음거리로만 됩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함부로 일하지 말고 당신이 누가 영이 통하고 진리를 깨달았는지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에게 물어보세요.

만약 일부 사람들이 적그리스도, 악령이어서 제명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가 이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여태껏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고 그가 사탄의 간계를 품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러 온 사람이니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시지 않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무릇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엇나가고 방해하는 사람은 전혀 믿음이 없고 엇나감과 방해만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심부름꾼이고 간첩입니다. 당신은 “그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시지 않고 하나님 선민도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정확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원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말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는 말할 줄 모릅니다. 말하기만 하면 남을 두둔하고 심지어 사탄을 도와 말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간증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하면 첫째는 진리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둘째는 지혜가 있고 하나님 편에 선 것입니다. 이 말은 매우 적절합니다! 늘 귀신 말을 하고 늘 남을 두둔하는 말을 하고 늘 진리에 부합되지 않은 말을 하면 사람을 역겹게 합니다. “맞습니다. 그는 이전에 믿은 적이 있습니다.” 허튼소리를 하고 있네요! 그것이 믿은 것입니까? 당신은 무엇을 “믿은 적이 있다”고 하는지 압니까?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그가 믿은 적 있다고 말합니까? 믿은 적이 있다고 한 당신의 그 말은 사탄의 논리이고 사탄의 관념입니다. 사탄의 관념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는데, 이러면 합리적입니까? 이러면 공평합니까? 무엇을 믿은 적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까? 그것을 믿은 적이 있다고 하지 않고 방해한 적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방해한 적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저는 이런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우리는 그를 본 적도 없습니다. 그는 믿는 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부정하면 끝입니다. 이러면 얼마나 지혜있고 얼마나 시원스럽습니까! 간증을 할 때가 되면 그릇된 논리만 말하고 귀신 말만 하고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는데, 정말로 마귀 사탄에게 속하는 자입니다. 사람의 말을 하기가 왜 이렇게도 어렵습니까?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간증을 할 수 없습니까? 제가 다시 여러분께 참말을 하겠습니다. 이 흐름 속에 있는 모든 어리석은 사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사람은 다 도태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소질이 낮아 늘 어리석은 말만 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는 자, 사탄을 위해 말하고 간증하는 자는 다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있고 원칙이 있고 지혜가 있는 그 사람들을 남겨두십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 제28편 말씀을 펼쳐봅시다. 두 번째 단락 13번째 줄부터 읽겠습니다. 『너희는 정말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는가? 진심으로 증오하는가? 무엇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여러 번 묻겠는가?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런 질문을 거듭 반복하겠는가? 너희 마음속에서의 큰 붉은 용의 형상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가? 정말로 없애버렸는가? 정말로 “아비”로 대하지 않게 되었는가? 모든 사람은 다 내가 묻는 말에서 나의 뜻을 알아차려야 한다. 민중의 분노를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거나 “스스로 출로를 찾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의 얽매임에서 해방되어 나오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급해 하지 말라, 나의 말이 모든 것을 성취할 것이니 아무도 간섭할 수 없고 아무도 내가 하려는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온 땅의 기풍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땅 위의 요괴들을 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릴 것이다. 나는 이미 일을 시작하였다. 나는 큰 붉은 용이 사는 곳에서 나의 형벌의 시작 사역에 착수할 것이다. 나의 형벌을 이미 전 우주에 쏟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내가 온 땅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에 큰 붉은 용과 각종 더러운 귀신들은 틀림없이 나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땅에서의 나의 사역이 완성될 때, 즉 심판 시대가 끝날 때 나는 정식으로 큰 붉은 용을 형벌한다. 나의 백성은 꼭 그것에 대한 나의 공의로운 형벌을 볼 것이고, 꼭 나의 공의로 인하여 칭송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꼭 나의 공의로 인하여 영원히 나의 성호를 찬양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식으로 너희의 본분을 하고 정식으로 온 땅에서 영원토록 나를 찬미할 것이다!

심판 시대가 최고봉에 이를 때 나는 결코 나의 사역을 서둘러 끝내지 않고, 형벌시대의 “증거”에 결부시켜 모든 자민(子民)으로 하여금 다 보게 하여 더 좋은 효과에 도달하게 한다. 소위 “증거”란 큰 붉은 용을 형벌하는 나의 방법인데, 자민들로 하여금 다 직접 보게 하여 나의 성품을 더한층 인식하게 한다. 자민들이 나를 누릴 때는 큰 붉은 용이 “형벌을 받을” 때이니 그것의 민중들로 하여금 일어나 그것을 배신하게 한다. 이것은 나의 계획이고 자민을 온전케 하는 나의 방식이며, 모든 자민들이 생명이 자라나는 좋은 기회이다.』

“심판 시대가 최고봉에 이를 때 나는 결코 나의 사역을 서둘러 끝내지 않고, 형벌시대의 ‘증거’에 결부시켜 모든 자민(子民)으로 하여금 다 보게 하여 더 좋은 효과에 도달하게 한다.” 이 말씀 속에 뭔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더 아래로 봅시다. “소위 ‘증거’란 큰 붉은 용을 형벌하는 나의 방법이다.”에서 이 “증거”는 무엇입니까? 이 증거는 큰 붉은 용의 미친 듯한 반격과 하나님 선민에 대한 박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대적할수록, 창궐할수록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더욱 심할 것이다.” 그럼 지금 이 증거가 오지 않았습니까? (왔습니다.) 큰 붉은 용의 새로운 핍박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형벌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모든 자민으로 하여금 다 보게 한다”라는 이 뜻은 큰 붉은 용이 어떻게 하나님 선민을 박해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공격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모독하는지를 네가 다 보지 않았느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모두가 사실이라고 인정한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것을 형벌하시면 하나님 선민은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없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형벌하실 때는 그가 여전히 그것을 위해 말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나님 선민으로 하여금 직접 보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완전히 공의롭다는 것을 시인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양심이 없어 사실을 조금이라도 보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크게 형벌하실 때는 내키지 않아 큰 붉은 용을 위해 말할 것이고 큰 붉은 용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귀신 본성입니다! “자민들로 하여금 다 직접 보게 하여 나의 성품을 더한층 인식하게 한다.” 사람은 보았으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고 보지 못했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면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패괴된 인류의 귀신 몰골입니다. 사람은 참 곤란합니다! 그 입을 보세요, 왼쪽으로 비뚤어졌다가 또 오른쪽으로 비뚤어지는데 그의 입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민들이 나를 누릴 때는 큰 붉은 용이 ‘형벌을 받을’ 때이다.” 지금 큰 붉은 용은 형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형벌을 받는다는 여기에 따옴표가 있는데 실제로는 그것을 훼멸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 국가가 첫 번째로 훼멸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다른 국가가 먼저 훼멸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국가가 그리스도를 추적했습니까? 다른 국가는 그리스도를 추적하지 않았습니다. 큰 붉은 용만이 기를 쓰고 그리스도를 추적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증오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도태될 운명입니다. 그가 사탄에게 속하는 자여서 하나님은 그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원수이면 역시 당신의 원수가 아닙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선민에게 그것의 박해를 받게 하시겠습니까? 큰 붉은 용이 만약 그를 박해하지 않는다면 그가 늘 “큰 붉은 용 만세”를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는 큰 붉은 용을 숭배합니다! 큰 붉은 용은 한 국가입니다! 영명(英明)한 지도자입니다! 큰 붉은 용의 경찰은 정의의 상징이고 서민을 위해 일을 처리하고 가정과 국가를 보호하고 지킵니다!”라고 말할 것인데, 나중에 큰 붉은 용이 그를 박해하고 때리고 구타하고 고문을 들이대자 그는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는 그가 숭배하는 자들이 아니고 그의 마음속에서 지위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실정이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사람들은 박해를 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받아야 합니다.) 그가 큰 붉은 용을 옹호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큰 붉은 용을 옹호하고 그것의 허튼소리를 믿으면 이로 인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통받아야 합니다. 그가 고통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가 고통받지 않으면 큰 붉은 용의 사악한 진상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증오할 수 없고 그것을 배반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큰 붉은 용에게 넘겨주어 고문과 시달림을 좀 받게 하는 것은 그에 대한 구원이고 그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를 큰 붉은 용에게 넘겨주어 이렇게 고문과 박해를 받고 이렇게 고통을 받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로 큰 붉은 용을 배반할 리가 없고 큰 붉은 용의 형상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힐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의 오성홍기가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휘날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혀 한번 쓴맛을 보게 하는 것은 너무나 필요합니다! 지금 큰 붉은 용의 새로운 박해가 또 왔습니다. 창궐하게 소굴에서 나와 전면적으로 출동하여 하나님 선민을 박해하니 어떤 사람은 놀라서 집도 버리고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모르고 어디로 숨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고통받으면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가 충분히 고생을 겪고 모든 고통을 다 받고 나서 마음속으로부터 철저히 미워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훼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받침물로 하여 효력을 하도록 허락하신 것도 역시 정도가 있습니다. 큰 붉은 용이 어떻게 하든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땅에서의 나의 사역이 완성될 때, 즉 심판 시대가 끝날 때 나는 정식으로 큰 붉은 용을 형벌한다. 나의 백성은 꼭 그것에 대한 나의 공의로운 형벌을 볼 것이고, 꼭 나의 공의로 인하여 칭송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꼭 나의 공의로 인하여 영원히 나의 성호를 찬양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식으로 너희의 본분을 하고 정식으로 온 땅에서 영원토록 나를 찬미할 것이다!” 이 말씀은 아주 의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을 받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사람이 땅에 살아남아 다음 시대의 자민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큰 붉은 용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로 인해 지극히 칭송할 수 없다면, 만약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형벌하시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미할 수 없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 자민이 아니고 여전히 훼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선민은 마음속으로부터 큰 붉은 용을 철저히 증오하고 큰 붉은 용을 철저히 배반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는 조건이고 살아남는 조건입니다.

아래 이 단락에 “자민들이 나를 누릴 때는 큰 붉은 용이 ‘형벌을 받을’ 때이니 그것의 민중들로 하여금 일어나 그것을 배신하게 한다. 이것은 나의 계획이고 자민을 온전케 하는 나의 방식이며, 모든 자민들이 생명이 자라나는 좋은 기회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생명이 자라나는 좋은 기회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생명이 자라나다”는 여기에서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철저히 큰 붉은 용을 배반하고 큰 붉은 용의 통제를 벗어나 더는 그것에게 결박당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부터 큰 붉은 용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때면 하나님 선민들이 진정으로 큰 붉은 용의 독소를 벗어버리고 그것과 단절하는데, 이것이 생명이 자라나 가져온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당신 안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있고 당신 안에 아직도 큰 붉은 용을 숭배하는 요소가 있다면 당신에게는 생명이 없으며 당신은 큰 붉은 용에게 속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자라나는 것은 바로 큰 붉은 용의 독소, 큰 붉은 용의 지위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철저히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큰 붉은 용이 치열하게 싸울 때 만약 하나님 선민들이 큰 붉은 용의 간계에 대해, 큰 붉은 용의 사악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하고 명확히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의 생명이 자라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 큰 붉은 용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위해 이긴 간증을 할 수 없다면 이런 사람은 생명이 없고 진리가 없으며 하나님께 구원받을 대상이 아닙니다. 보세요, 적지 않은 바보들이 큰 붉은 용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한다는 것을 듣고는 분별이 없어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모릅니다. 그는 큰 붉은 용이 말한 것도 어쩌면 옳고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여깁니다. 그가 아직도 큰 붉은 용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 선민”이란 정의는 바로 진정으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하고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큰 붉은 용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자민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자민”이란 이 개념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많은 바보들은 하나님과 큰 붉은 용의 싸움에서, 겨룸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을 증거할 때 늘 큰 붉은 용을 두둔하고 많은 말을 해서 늘 큰 붉은 용에게 꼬투리를 잡히고 이용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얻어지지 못하고 여전히 큰 붉은 용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만 하면 남을 두둔하고 큰 붉은 용을 감싸고 어리석은 말을 하는데 흐리멍덩하고 혼탁하여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큰 붉은 용의 독소, 큰 붉은 용의 사악에 대해 모두 진실한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 자민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효력하는 자에 속하고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보려는 자에 속하며 말썽을 일으키는 자에 속합니다. 제가 또 여러분에게 솔직한 말을 하겠습니다. 무릇 큰 붉은 용이 제일 창궐할 때 즉 지금부터 시작해 만약 사람이 여전히 혼탁하여 확실하지 못하고 여전히 미혹을 받거나 혹은 감히 믿지 못하고 물러간다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 도태될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간증이 없고 진정으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하지 않았고 큰 붉은 용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28편 말씀의 게시≫에서 하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각국의 정세는 상당히 혼란스러운데, 그것은 하나님의 형장(刑杖)이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땅의 상태로부터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다. “물이 포효할 것이고 산이 무너질 것이며 큰 강이 터질 것이다.”라는 것은 형장이 땅에서 하는 시작 사역이다. 이리하여 “지상의 가정은 다 ‘파열’되어 더는 ‘모자 간의 상봉’의 시기가 없고 더는 ‘부녀 간의 모임’의 시각이 없으며 땅의 모든 옛 모습은 다 나에 의해 타파된다.” 이것은 온 땅에 있는 가정의 상태인데, 물론 전부일 수는 없고 단지 대체적인 상황일 뿐이다. 다른 한 방면은 이 흐름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후의 경력(역주: 체험)에서 처하게 될 광경을 가리키고, 말씀의 형벌을 겪고 이방인들이 재난을 겪은 후 지상의 사람에게 더 이상 친족 연결이 없고 모두 시님 사람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임을 예시한다. 그래서 더는 “부부가 한데 모이는” 날이 없고 더는 “모자 간의 상봉”의 시기가 없으며 더는 “부녀 간의 만남” 시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땅의 사람은 모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사분오열될” 것인데, 이것은 사람 몸에 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이다. 하나님은 전 우주 아래에 이 사역을 보급하려 하기 때문에 기회를 이용해 “감정”이란 이 두 글자를 사람에게 “천명”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가정을 타파하러 온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게 하는데, 하나님이 형벌로써 전 인류의 모든 “가정 분쟁”을 해결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땅에서의 하나님의 마지막 일부분 사역을 마무리 지을 수가 없다. 마지막 한 부분의 말씀은 사람에게 인류의 가장 연약한 점을 분명히 지적해 준다. 사람은 모두 “감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피하지 않고 사람에게 전 인류 중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폭로한다. 무엇 때문에 감정을 벗어버리기 어려워하는지? 설마 양심의 표준을 넘었단 말인가? 양심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가? 감정이 사람을 도와 난관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안중에 감정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설마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큰 붉은 용의 이 새로운 핍박과 박해, 미친 듯한 반격은 하나님을 위해 효력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분명히 보았겠죠? 이것을 통해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의 가정, 사람 간의 감정상의 한계를 깨뜨려 누구도 누굴 돌볼 겨를이 없게 합니다. 감정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의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감정을 벗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보았네요. 이것은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의 효력을 통해 사람을 큰 붉은 용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이 이 회오리바람과 폭풍을 일으킨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것입니다. 마지막에 사람을 드러내어 키질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키질한 것은 작은 것인데 그것은 작은 바람입니다. 마지막에 또 큰 바람이 옵니다. 그 바람이 심하게 키질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적지 않은 가정들이 철저히 파탄될 것입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이혼하고 가정을 버려 가정이 없습니다. 시님에 속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사람입니다. 앞으로 이혼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겠죠? 파탄될 가정도 더 많아지겠죠? 시님의 사람은 자기의 그 아내(남편), 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이 마땅할까요? (마땅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형제,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이 마땅할까요?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없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시님의 사람이지 세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땅 위의 요괴들을 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릴 것이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무릇 사탄에게 속하는 자는 다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릇 사탄에게 속하는 자 즉 무릇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논단하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정죄하는 자는 다 요괴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훼멸하실 것입니다. 특히 종교계와 큰 붉은 용은 더 심합니다. “나는 이미 일을 시작하였다. 나는 큰 붉은 용이 사는 곳에서 나의 형벌의 시작 사역에 착수할 것이다. 나의 형벌을 이미 전 우주에 쏟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내가 온 땅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에 큰 붉은 용과 각종 더러운 귀신들은 틀림없이 나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틀림없이 벗어날 수 없다”는 무슨 뜻일까요? 당신이 세상에서 아무리 형통해도, 아무리 권세가 있어도, 어떤 나라로 도망친다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온 땅을 감찰하시고 하나님께서 지구상의 일에 대해 손금 보듯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어디로 도망친다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람들이 훼멸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눈 깜짝할 사이의 일입니다. 10년도 눈 깜짝할 사이인데 하물며 3~5년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곧 무엇이 임하는지 아십니까? 재난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재난이 내리게 되면 잇따라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형벌하시고 그것을 훼멸하십니다. 큰 붉은 용을 형벌하는 데는 과정이 있습니다. 한 번에 훼멸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이 점차적으로 심해지다가 나중에 그것을 훼멸하는 것입니다. 한 번에 훼멸한다면 사람의 사상을 돌려세우지 못하고 생명이 자라나는 것도 늦어집니다. 형벌을 통해 하나님 선민으로 하여금 생명이 자라나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데에 이르게 한 다음 어느 정도까지 형벌하고 나중에 그것을 훼멸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형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즉 재난을 내리셨습니다. 재난을 내리는 이 과정은 바로 하나님 선민이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이고 큰 붉은 용을 인식하고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면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훼멸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형벌에서 훼멸하기까지의 기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내란이 일어납니다. 내란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땅을 떠나십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떠나신 후에는 재난이 커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시온에 돌아가신 후 하시는 첫 번째 일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즉시 셋째 하늘로 돌아가서 큰 붉은 용을 훼멸하기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 한 단락 읽겠습니다. 『사람은 다시는 나의 영과 육신을 분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땅 위에서 높은 하늘로 올라갔고 사람은 모두 나의 본래 모습을 보고 다시는 나를 사분오열하지 않으며 나도 다시는 사람의 멸시를 참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과 함께 큰 용광로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람은 여전히 나에게 의지하고 의식 속에서 나의 존재가 있음을 느낀다. 이로 인하여 무릇 순금에 속하는 것이라면 불의 연소 중에서 점차 나에게로 모인다. 이때가 바로 각기 종류대로 되는 때이다. 나는 각종 “금속”을 전부 유별대로 나누어 모두 자기 가족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때에야 만물은 다시 소생하기 시작한다……』 “무릇 순금에 속하는 것이라면 불의 연소 중에서 점차 나에게로 모인다.” 여기에 “순금”을 언급했는데 순금에 속하지 않는 일부분 사람은 위험합니다. 하나님께로 모여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모여들지 않는다”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물러가고 도태되고 큰 붉은 용에게 노략당한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의 박해 속에서, 시련 속에서 단호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 단호히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과 서로 교제하면서 확고하게 하나님 편에 서는 자, 죽어도 사탄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마지막의 영적 싸움에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자, 이런 사람은 순금에 속합니다!

아래로 더 봅시다. 『사람의 뒤섞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화로에 던져 불태운다. 그러나 사람을 모두 깨끗이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상하도록 하기 위해 그중에서 정품을 제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요구하는 것은 잡질이 없는 순금이지 잡질이 있는 더러운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 모두 근심과 고뇌가 가슴에 꽉 차는데, 마치 내가 그를 해부한 다음 수술대 위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듯하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오해하는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오해합니까? 현실적인 마음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내가 사탄에게 노략당하고 사탄에게 박해당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죽게 하시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실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까? 만약 내가 정말로 사탄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이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이런 일에서 사람에게 의심이 있고 뒤섞임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은 뒤섞임이고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순금을 언급했는데, 즉 사람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류하고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해야 사역이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사역이 끝날 때의 그 장면을 일부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보기에 괜찮다는 일부 사람들은 떠났고 보기에 별로인 사람은 힘이 넘치고 굳게 서고 순금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그 장면은 사람의 상상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통해 하며 심지어 소극적이 되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현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현실이 어떠하면 바로 그러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당신이 좋다고 여기던 그 사람이 떠났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 좋습니까? 어디가 좋습니까? 은사만 있으면 좋습니까? 잘 생기기만 하면 좋습니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일부분 사람들이 떠난 후 어떤 사람은 너무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들을 위해 안타까워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 근심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이는 모두 견식이 없고 진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때 가서 보세요, 별별 장면이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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