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에 관한 설교 교통 (2)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해서부터 역사하기 시작하였다. 시초에는 아주 간단한 사역이었다. 이 사역은 비록 간단하지만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성품이 그중에 발표되어 있다. 비록 현재 하나님의 사역이 높아져 하나님이 그를 따르는 각 사람의 몸에 구체적인 사역을 많이 하였고 사람에게 많은 말씀을 발표하였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본체는 사람에게 숨긴 것이다. 비록 그가 두 차례로 말씀이 육신 되었지만 성경이 기록되어서부터 지금까지 누가 하나님의 본체를 본 적이 있는가? 너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하나님의 본체를 본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하나님의 본체를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 즉 하나님의 참모습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너희가 모두 일치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즉 하나님의 본체나 하나님의 영은 모든 사람에게 숨긴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 하와를 포함해, 하나님이 열납한 의인 욥까지 포함해 모두 하나님의 본체를 본 적이 없다. 그럼 하나님이 그의 본체를 의식적으로 숨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놀라게 할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분의 본체를 숨기신 것은 사람이 너무나 미소하고 하나님이 너무나 크시기 때문이며 사람이 볼 수 없고 보면 죽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매일 그분의 사역을 경영하느라 바쁘시기에 아마 사람에게 나타나 보게 할 시간이 없으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에게는 하나의 결론이 있다. 이 결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전혀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보여 주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사람에게 숨겼다”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한 한 가지 일인데, 즉 하나님이 일부러 사람에게 그의 본체를 보여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다 알아들었겠지? 하나님이 여태껏 사람에게 그의 본체를 나타낸 적이 없는데, 너희는 하나님의 본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틀림없다! 하나님의 본체가 존재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체가 얼마나 크고 어떠한가에 관한 것은 인류가 연구 토론해야 할 문제인가? 아니다! 대답은 부정이다. 하나님의 본체에 관한 화제는 우리가 연구 토론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 무엇이 우리가 연구 토론해야 할 문제인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정식 화제를 교통하기 전에 다시 방금 전의 화제로 돌아오자.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여태껏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나타내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일부러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숨겼는지? 원인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피조된 인류가 비록 하나님의 몇천 년의 역사를 경력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이런 인류가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과 적대되는 인류이니 하나님이 그와 적대되는 인류에게 나타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여태껏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나타내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일부러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숨겼는지의 유일한 원인이다. 이젠 너희가 하나님 성품을 인식하는 중요성을 잘 알았겠지?』
이 단락 말씀에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했습니까? 첫 번째 문제, 하나님께서 3단계 사역을 하셨고 특히 마지막 한 단계에 사람에게 수많은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 한 가지 사실을 말씀하신 후 다음으로 또 한 가지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본체는 사람에게 숨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3단계 사역을 하셨는데 그 중 두 단계는 성육신의 방식으로 하신 것입니다. 성육신의 방식은 모두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의 본체는 여전히 사람에게 숨긴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육신과 하나님의 본체는 무슨 관계입니까?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하나님의 본체를 대표합니까, 대표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셔서 사람에게 나타나셨는데 정확하게 말해서 사람에게 나타내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많은 말씀을 발표하였다.” 여기의 “많은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는 데에 관한 모든 진리를 발표하셨음을 말하고, 이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합니다. 현재,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았는데, 마지막에 도달하게 될 효과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이르는 것입니다. 비록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셔서 우리가 직접 그분을 따르고 섬길 수 있지만 우리가 본 하나님의 얼굴은 다만 말씀이 육신 된 기간의 하나님의 형상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본체의 나타나심도 아닙니다. 이것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본체는 사람에게 숨긴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에게 그분의 본체를 나타내시지 않겠습니까? 이 단락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일부러 그분을 따르는 사람에게 그분의 본체를 숨기시겠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인류가 너무나 더럽고 패괴되어 하나님의 본체를 볼 자격이 없습니다.) 바로 이 한 마디 말씀인데, 보통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전혀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보여 주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왜 전혀 보여 주려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패괴된 인류는 사탄 성품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으며 순복(역주: 순종)이 없는데 그 실질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속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류에게 나타나실 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성품을 체현합니까?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더럽고 패괴된 인류에게 나타나시지 않음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존귀하고, 하나님의 실질이 거룩하기에 더러운 인류는 하나님을 볼 자격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그와 적대되는 인류에게 나타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분과 적대되는 인류에게 나타나실 리가 없습니까? 여기에 하나님 성품 방면의 근원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분과 적대되는 인류에게 나타나실 리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거룩한 실질을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즉 더럽고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만약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면 하나님의 느낌은 어떻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예.) 하나님께서 더럽고 패괴된 인류를 향해 나타나신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아주 고통스럽고 아주 괴로우실 것입니다. 마치 가장 보기 싫은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은 그런 고통스러운 느낌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더럽고 패괴된 인류이기에 나는 너에게 나의 얼굴을 보여 주고 싶지 않다. 나는 너를 보면 괴롭고 고통스럽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기에 더러움과 패괴를 보기를 원치 않으시고 이런 사람을 접촉하기를 원치 않으시며 공통 언어 또한 없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여기에 찾아볼 진리가 있죠? 하나님의 마음은 선하기에 사람이 상처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아주 완곡하게 하셨고 이 뜻을 직접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또 하나님의 어떤 소유소시를 볼 수 있습니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긍휼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처받을까봐 차마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점을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습니까? (보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단락에 이 몇 가지 뜻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마땅히 상고해 봐야겠죠? (예.) 이 몇 가지 뜻이 결국 어떤 문제를 밝혔습니까?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의 본체를 보려는 사치한 욕망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해결되었죠? (예.)
“원인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피조된 인류가 비록 하나님의 몇 천 년의 역사를 경력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이런 인류가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과 적대되는 인류이니 하나님이 그와 적대되는 인류에게 나타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여태껏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나타내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일부러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숨겼는지의 유일한 원인이다. 이젠 너희가 하나님 성품을 인식하는 중요성을 잘 알았겠지?” 여기에서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인류에게 그분의 본체를 숨기신 원인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 말씀은 또 어떤 문제를 말씀하셨습니까? “이젠 너희가 하나님 성품을 인식하는 중요성을 잘 알았겠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중요성은 몇 방면이 있습니까? 즉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 방면의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즉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면 이후에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볼 희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런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보았습니까? 그 외에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사람이 이후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자 또 유일한 조건을 예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만일 이 조건에 도달한다면 하나님의 본체가 사람에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를 예시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기교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시가 있는 이 말씀 방식은 아주 의의가 있습니다. 사람의 사유로는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여기에서 말씀하신 몇 마디 말씀은 아주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이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 어떤 단어를 골라 쓰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여기에는 모두 찾아볼 진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비밀을 알려 주었는데, 즉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3단계 사역을 하셨는데 그중의 두 번은 말씀이 육신 되어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체를 왜 여태껏 인류에게 나타내시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이 가장 큰 비밀인데, 하나님께서 오셔서 모든 비밀을 다 열어놓으신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종교계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교계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본체로 오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닙니다. 패괴된 인류가 아직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자격이 있다고 합니까? 여기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면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이를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실질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제일 주요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과 관계됩니까? 너무나 관계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하나님의 실질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한 마디 “이젠 너희가 하나님 성품을 인식하는 중요성을 잘 알았겠지?”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중요성만 말씀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속에 또 하나의 예시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다 경력하고 나서 만약 정말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였다면 당신은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볼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길과 과정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즉 진리를 추구하는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려면 우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야 우리는 완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이후에 사람이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가 하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는 이 일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기억해 두세요,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는 이 일의 의의는 너무나 크고 사람이 언어로 똑똑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은 전체 피조물을 놓고 말하면 가장 큰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의 의의가 어느 정도 큽니까? 가늠할 수 없기에 사람은 형용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이 그렇게 큰 의의가 있다구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큰 의의”, 이 몇 글자를 우리는 형용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의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깊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그 효과, 영향과 발생한 변화가 얼마나 클지 사람이 가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다른 행성과 전 우주를 보았는데 나중에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우주에서 돌아왔다고 해도 무슨 변화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견식이 늘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황제를 보았고 어떤 사람은 대통령을 보았지만 돌아와 이틀 기뻐하다가 사흘도 못 가 사그라들었습니다. 무슨 변화가 있습니까?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과 비길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본다면 가져올 변화와 결과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가장 큰 비밀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형용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일의 의의는 너무나 깊은 것이고,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을 사람이 한평생 경력해도 다 경력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면 어떤 효과를 가져오겠습니까? 사람이 순식간에 어떤 모양으로 변하겠습니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아마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장 큰 비밀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본체를 본 후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지, 어떻게 상상해야 되는지 길이 있습니까?” 저는 당신에게 한 가지 경로만 알려 줄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천사와 이십사 장로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 장면을 보세요, 그 장면을 보고 나면 아마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장면입니까? 천사와 이십사 장로들이 늘 하나님 곁에서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한 것인데,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격동되어 하나님에 대한 찬미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규례가 아니고 형식에 그치거나 혹은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너무나 기묘하십니다!” 사람의 영과 마음이 모두 감당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계시록≫에 묘사한 것은 단 그 몇 마디뿐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본체를 보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말씀을 보고 나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성령이 만약 우리를 일깨워 주셔서 하나님의 위엄을 보고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릴 것이며 자신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볼 자격이 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이런 느낌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 패괴된 인류가 만약 하나님의 본체를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정말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산 사탄이 아닌가? 너무 더럽고 패괴되었고 살 자격도 없어!” 수치스러워 죽을 지경입니다. 성령이 깨우쳐 주시면 우리는 몸 둘 바를 모르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당신이 말해 보세요,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있습니까? 정말로 자격이 없습니다! 이전에 저에게 이런 경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가끔 하나님의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받을 때면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데, 그러면 자신을 증오하고 자신의 귀뺨만 때리는 것만이 아니라 몸 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저는 정말 죽어 마땅해요. 빨리 죽어야 됩니다, 살아서 뭐하겠습니까, 살아있는 게 하나님만 욕되게 할 뿐입니다!” 성령의 깨우침이 있으면 바로 이런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모두 죽고 싶고 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자격이 없고 몸 둘 바를 몰라 할 것이며 당신은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 말씀을 당신에게 먹고 마시게 하며 성령이 조금씩 당신을 깨우쳐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조금씩 소생하게 하고 조금씩 후회하게 하고 조금씩 패괴를 벗게 하고 조금씩 변화되게 하여 나중에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때에야 당신은 하나님의 본체를 볼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본다면 큰일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보기만 해도 죽게 되고 후회하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십사 장로는 영체로 하나님을 보면서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마음속의 격동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지니이다! 찬양을 받으실지니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말한 것입니다. 당신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크면 뭇천사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찬미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시고 더욱이 사람에게 규례를 지키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실 때, 사람들이 보게 되면 끊임없이 찬미할 것인데, 더 적합한 언어가 없고 그 무엇으로도 이것을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고 더 좋은 언어가 없고 언어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들은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영광의 나타남을 형용한다면 사람들이 보고 나서 어떤 느낌이 들까요? 첫째, 우리가 보지 못했기에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적합한 언어가 없습니다.
이전에 제가 ≪하나님의 마음만큼 더 좋은 것은 없다≫라는 노래를 썼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좋고 가장 선하고 가장 공의롭고 가장 실제적이고 사람을 가장 잘 보살필 줄 안다고 느꼈습니다. 이 정도 인식했을 때 ‘어떤 언어로 표현할까?’라고 생각하다가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해 ≪하나님의 마음만큼 더 좋은 것은 없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제2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히신 부분의 말씀을 보고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더 좋은 것은 없다”라는 표현이 너무나 얕았던 것입니다! 이 그림을 다 보고 나서 어떻게 “더 좋은 것은 없다”를 형용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친히 그에게 옷을 지어 입히셨겠습니까?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만드실 때 땅의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아담을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아주 간단하고 쉽게 사람을 만드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 말씀을 보면 아담을 만드신 후 그에게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나서 저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단지 피조된 인류와 조물주의 관계뿐만이 아니고 간단한 이 한 마디 말로 형용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무엇으로 보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가족으로 보고 자식으로 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어로 어떻게 해석합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아끼다”인데 자신이 낳은 것으로 보셨습니다. 이 한 마디로 형용하면 합당합니까? (합당합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아끼시기에 직접 그를 위해 옷을 지으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심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셨습니까? 손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독 아담에게 옷을 지어 입히실 때 하나님은 친히 손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손으로 만드신 것은 무엇을 대표합니까? 저는 여기까지 보고 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정이 어느 정도로 깊은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제 자신의 생명 성품이 변화가 좀 있다고 느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저는 제가 얼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오만 자대(自大)하고 스스로 높은 체하고 독선적이고 여전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사람의 모양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나서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의 고만한 변화가 뭐 대단합니까? 여전히 더러움과 패괴가 아니겠습니까? 여전히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여전히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하나님의 무사(無私)와 비미은장(역주: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의 뜻)에 비교하면 사람은 너무 오만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아무런 물건짝도 아니고 그다지 변화가 없다고 느껴졌고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고 하나님을 섬길 자격도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전에 저는 항상 제 자신이 실제가 좀 있다고 여겼었는데,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실제라고 하는지 반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 실제를 하나님의 실제와 비교하면 그것을 실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근처에도 못 갔고 언급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그래도 괜찮다고 여겼고 좀 변화가 있다고 느꼈었는데 무슨 실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비교해 보면 천지차입니다! 사람에게 무슨 변화가 있다고 말도 하지 마세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신 다음 일이 없으면 상고해 보세요. 당신이 이 말씀을 한 단락씩 세심하게 보다 보면 이 속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많은 말씀을 발표하였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본체는 사람에게 숨긴 것이다.” 이 말씀을 아주 온화하게 하셨고 지혜롭고 부드럽게 하셔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데, 아주 잘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또 무엇을 언급했습니까? “이 결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전혀 인류에게 그의 본체를 보여 주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왜 보여 주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인류가 모두 보고 싶어 하는데 하나님이 인류를 한번 만족시켜 주시면 되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다른 것은 말하지 말고 “……려고 하지 않는다” 이 세 글자만 상고해 보세요, “직접 너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다. 직접 알려 주면 네가 상처받을까봐 걱정된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을 볼 자격이 없다. 그것은 인류가 더럽고 사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네가 생각해 봐라, 반성해 봐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이 무엇인지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연약을 이해하시고 사람의 마음에 조그마한 상처를 주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의 실질에 선량함이 있음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비할 바 없이 선량합니다! 아주 뚜렷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까지 보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생각하니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사랑스러움이 없고 아주 이기적이고 비열하지만 하나님께는 아주 많을뿐더러 또한 남김없이 표현하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음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비밀, 즉 하나님께서 왜 인류를 향해 나타나지 않았는지를 밝히셨습니다. 그다음 어떤 문제를 제기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려면 반드시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까? 여기에서 또 하나의 비밀을 밝혔습니다. 즉 3단계 역사가 끝난 후 하나님은 일부분 사람들을 향해 나타나시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실질을 아는 일부분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다는 뜻이 있겠죠. 여기에서 이 비밀을 밝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숨은 뜻이 있기에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여러분은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래야 하나님의 뜻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볼 수 없으면 안 보면 되죠. 본다고 해도 그렇게 큰 복은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당신은 이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은 다시 말해서 가장 큰 복이고 하늘의 넘치는 복입니다. 이전에 이방인이 황제를 보면 복이 아주 크다고 여겼고 황제의 얼굴만 봐도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문무대신이 황제 앞에서 감히 머리를 들고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모두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황제가 “머리를 들고 말하거라.”고 말해야만 머리를 들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시종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이 황제를 만나는 것도 이런데 피조물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본다는 것은 패괴된 인류가 황제를 만나는 것과는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지금까지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본 피조된 인류가 있습니까? 이런 일은 있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3단계 역사가 끝난 후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도록 온전케 하신 후에야 이런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영화롭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효력하는 것도 아주 영광이라고 느끼는데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보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것이 전 우주에서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닙니까? 이 일을 마음속에 새겨둬야 맞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전 우주에서 가장 의의 있는 일입니다. 우리만 가장 의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에서 가장 의의 있는 일이기에 그 어떤 일도 이 일과 비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여주심이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여주심입니다. 이것은 도리가 아니고 입으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당신이 만약 이 사실을 보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네, 좀 높여주시는 것 같아요.”라고 느끼겠지만 급해 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다 경력하고 나면 이것이 도대체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여주심인지 아닌지를 알게 됩니다. 이 말씀은 여기까지 교통하도록 하고 앞으로 당신이 자신의 경력으로 도대체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여주심인지 아닌지를 실증하세요. 그때면 당신은 명확히 알게 될 겁니다.
『하나님의 경영이 있어서부터 그는 줄곧 전심전력으로 그의 사역을 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그의 본체를 숨겼지만 줄곧 인류를 동반하면서 인류의 몸에 역사하였고 그의 성품을 발표하고 있었고 그의 실질로써 전 인류를 인도하고 있었고 그의 권능으로써, 그의 지혜로써, 그의 권병(역주: 권세)으로써 각 사람 몸에 역사하여 율법시대와 은혜시대가 있게 되었고 지금의 하나님나라시대가 있게 되었다. 비록 하나님의 본체를 사람에게 숨겼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와 인류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뜻을 조금도 남김없이 사람에게 나타내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였고 경력하게 하였다. 즉, 인류는 비록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인류가 접촉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은 완전한 하나님 자신의 발표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닌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각도에 서서 사역을 하든지 모두 그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였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으며 그가 해야 할 말씀을 하였다. 하나님이 어떤 각도에 서서 말씀하든지 셋째 하늘의 높은 자리에 서든지 아니면 육신의 각도에 서든지 심지어 하나의 평범한 사람의 각도에 서서 사람에게 말씀하든지 그는 마음과 뜻을 다하였고 그 어떤 기만도 없고 그 어떤 숨김도 없었다. 그는 역사하는 기간에 그의 말씀을 발표하고 그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며 그 자신의 소유소시도 발표하는데,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다! 그는 그의 생명과 소유소시로써 인류를 인도하고 있다. 이리하여 인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인도 하에 율법시대 즉 인류의 요람 시대를 지나오게 되었다.』
여기 말씀에서도 몇 가지 문제를 명확히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경영이 있어서부터 그는 줄곧 전심전력으로 그의 사역을 하고 있었다.”는 첫 마디 말씀입니다. 이 한 마디는 우리가 마땅히 무엇으로 실증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3단계 사역을 하심에 있어서 줄곧 정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매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많은 일을 하셨고 많은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이 많지 않습니까? 역시 많지만 하나님나라시대보다는 좀 적습니다. 비록 내용은 같지 않지만 당시의 배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에게도 적지 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주로 어떤 방식으로 말씀을 발표하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첫째는 그분께서 사람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에게 율법, 법도, 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에게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 선지자들은 적어도 10명 정도 되는데 어떤 선지자든 모두 적지 않게 말했습니다. 선지자들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선지자는 몇 명입니까? 이사야가 가장 큰 선지자인데, 가장 많이 말했고 또 예레미야, 에스겔이 있는데 모두 비교적 많이 말했습니다. 그 외에 표적과 기사를 비교적 많이 행한 선지자로는 엘리야, 엘리사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구약 성경에 기재되지 않은 선지자 에스라도 많은 말을 했습니다. 사실 어떤 선지자든 다 적지 않게 말했는데, 그들의 말을 성경에 기재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 외의 많은 서신에도 기재했습니다. ≪제2경전≫에 보면 선지자가 한 말이 적지 않게 기재되어 있고 성경에도 이런 선지자가 한 말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약에 선지자와 종을 통해 발표하신 말씀은 적어도 백만여 자 정도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 에스라는 몇 날 며칠을 말했지만 성경에는 기재되지 않았고 ≪제2경전≫에 기재되었거나 혹은 민간에만 널리 전해졌습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적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 기재된 말씀을 포함하여 신약 성경에 기재되지 않은 것도 적지 않으며 성령이 각 지방 사도에게서 하신 사역을 기재한 책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각 시대에 하나님은 세부적인 사역을 많이 하셨지만 기재된 것은 소부분이고 기재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이 있어서부터 그는 줄곧 전심전력으로 그의 사역을 하고 있었다.”는 말씀을 실증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인 만큼 사람이 견식이 없다 해도 이 말씀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관점과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견식은 유한하기에 사람이 견식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았음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았다면 얼마나 살았습니까? 세상 구경을 얼마나 했겠습니까?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사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일생에 또는 최근 몇 년 동안 볼 수 있고 경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적고 우리가 보지 못한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많고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접촉하는 것이 너무나 적기에 하나님께서 매 시대마다 하신 많은 사역을 매 시대의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증거해야 알게 됩니다.
다음 한 마디, “비록 그는 그의 본체를 숨겼지만 줄곧 인류를 동반하면서”에서 “그는 그의 본체를 숨겼지만”은 무슨 뜻입니까? 비록 우리가 그분의 본체를 보지는 못하지만 그분은 오히려 줄곧 인류를 동반하십니다. 이렇게 말하면 알기 쉽죠? “줄곧 인류를 동반하면서”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경력으로 이 한 마디를 실증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이렇게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부 인솔자 일꾼이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하나님께서 줄곧 그를 동반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체포되어 혹형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했는가를 볼까요? 그들은 “제가 고통받을 때 하나님께서 줄곧 저의 곁에서 저를 동반하고 계셨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요.”라고 말합니다. 무릇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런 느낌이 있습니다. 이 한 마디 말은 아주 실제적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말한 경력 간증에 근거하면 “비록 그는 그의 본체를 숨겼지만 줄곧 인류를 동반하면서”, 이 한 마디 말씀은 진실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줄곧 인류를 동반하면서 인류의 몸에 역사하였고 그의 성품을 발표하고 있었고 그의 실질로써 전 인류를 인도하고 있었고” 한 방면은 그분의 성품을 발표하시고 다른 한 방면은 그분의 실질로 전 인류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이 맞습니까? 왜 여기에서 그분의 실질로 전 인류를 인도하고 계신다고 언급하셨겠습니까? 왜 말씀으로 전 인류를 인도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여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특별한 의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실질은 줄곧 사람에게 나타나고 숨기지 않으십니다. 즉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권능은 줄곧 인류를 동반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줄곧 사람에게 공개된 것이고 사람에게 나타낸 것임을 마땅히 터득해야 합니다. 당신이 한 단계 경력할 때마다, 성령 역사를 경력할 때마다,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마다 매 한 가지 진리를 깨달을 때마다, 직접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게 됩니다. 보세요, 우리가 어느 말씀을 읽든, 어떤 일을 하나 경력하든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해 생긴 인식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모두 하나님의 실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에 하나님은 그분의 실질로 전 인류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다 경력하고 나면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실질을 완전히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향해 나타나시고 이렇게 인류에게 역사하시기에 최종에는 인류가 틀림없이 하나님의 실질을 볼 수 있는 효과에 도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는 매 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에 몇 가지 방면이 포함됩니까? 사람에 대한 긍휼과 관용, 사람에 대한 인내와 기다림, 사람에 대한 징계와 말씀의 심판, 말씀의 형벌을 포함하지만 사실이 임하는 것은 아주 적습니다. 말씀의 심판 형벌이 어떤 때는 엄격하지만 사실이 임했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무엇을 알게 됩니까?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너무 고생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게 해 주시고 사람이 상처받지 않게 보호해 주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매 시각마다 모두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를 인도하고 동반하면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의 권능으로써, 그의 지혜로써, 그의 권병으로써 각 사람 몸에 역사하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더욱이 실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와 은혜시대가 있게 되었고 지금의 하나님나라시대가 있게 되었다.” 이 “이리하여……게 되었다”는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단계마다 높아지고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며 줄곧 하나님나라시대까지 역사하셨음을 뜻합니다. 마지막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고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히 사람에게 공개되고 사람에게 나타났으며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께서 완전히 영광을 얻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다음 또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본체를 사람에게 숨겼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와 인류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뜻을 조금도 남김없이 사람에게 나타내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였고 경력하게 하였다.”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한 사람은 모두 이 한 마디 말씀을 실증할 수 있고 모두 자신의 진실한 경력과 인식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나라시대에서만 이런 수확이 있고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은 이런 경력과 인식이 없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만 보았습니다. 사람이 무슨 죄를 범하든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줄곧 용서해 주시고 줄곧 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사해 주고 또 사해 주시면서 관용과 인내 외에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에 대해 자비로우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의 사람은 하나님의 어떤 성품만 인식할 수 있었습니까? 긍휼과 자비 방면의 성품이고 하나님의 공의, 위엄, 진노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와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더 많이 인식했습니까? 공의로운 성품입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완전히 공의이고 위엄 진노, 심판 형벌이 가득합니다. 공의로운 성품은 어떤 방면에서 나타납니까? 즉 사람에 대해 심판 형벌, 수리 대처, 시련 연단하시는 데에서 나타나는데, 다 노기와 위엄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시대에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도달하게 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며 최종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여 얻게 되는 가장 큰 수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된 효과에 도달하였고 하나님에 대해 일부분의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공의로운 성품 방면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고, 또 전능, 지혜 방면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으며 소유소시에 대한 인식도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은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서도 얕은 인식이나마 얼마간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 나타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소시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발표되어 우리에게 경력하게 하고 인식하게 하는 것임을 보게 되었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거룩함을 하나도 숨기지 않으셨고 다 우리와 마주하고 있고 우리들로 하여금 마주하여 경력하고 인식하게 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시대의 역사이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 도달하신 효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이런 인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말씀은 다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데, 조금도 틀림없다!”, 이 말씀을 모두 실증할 수 있겠죠?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대표하지 않는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게시한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님의 소유소시가 모순되고 오차가 있는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실증합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하나님의 소유소시의 발표이고 하나님 성품의 발표이며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실증을 얻었겠죠? 실증을 얻은 후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실을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났습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실은 한 마디 진리를 증명합니다.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곧 진리, 길,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여 도달한 효과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루신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역사하셔서 도달한 효과이고 우리가 말씀이 육신 되신 이 한 분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역사를 경력하여 도달한 효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단계 사역이 확실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목적에 이르렀음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한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권병을 실증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실증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가 말세의 그리스도의 역사를 다 경력한 후에 다시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는 이 사실의 신뢰성이 높아지고 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바로 말씀으로 성취하신 것이고 조금도 틀림없음을 믿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전능을 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히 모든 것을 성취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 중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대표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말씀하면 꼭 그대로 하고 그대로 하면 꼭 이루어지며 이루어지면 꼭 영원까지이다.” 이 말씀의 권병은 대단합니다!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인류는 비록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인류가 접촉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은 완전한 하나님 자신의 발표이다.” 이 한 마디는 실증을 얻었고 이것은 사실이라고 우리가 방금 말했습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각도에 서서 사역을 하든지 모두 그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였고……” “그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였고” 이 말씀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이해합니까?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어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셨죠? (예.) 하나님은 반 마디 거짓말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오셔서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직접 알려 주십니다. 말씀이 육신 되신다고 하셨으면 육신이 되셨으며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체를 나타내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면 사람에게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말씀해 주셨고 반 마디 거짓말도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람이 들으면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진실하고 틀림이 없으며 반 마디 거짓도 없고 너무나 진실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의 방식에서 지혜의 방식을 쓰시든 아니면 어떤 각도에서 말씀하시든 다 아주 진실하고 다 아주 실제적이며 사람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또 지혜와 권병, 능력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탄과 각종 악령이 하는 말을 보도록 합시다. 그것은 그것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람에게 말합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신분으로 사람에게 말합니까? 그것은 늘 하나님으로 가장하려고 하고 광명 천사로 가장하려고 하며 권위 따위를 가장하려고 하면서 여태껏 함부로 그것의 진실한 신분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왜 함부로 그것의 진실한 신분을 드러내지 못합니까? 그것이 일단 진실한 신분을 드러내면 사람이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해 가장하고 위장하며 기만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것의 진실한 신분을 드러내려면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내가 바로 그 천사장이고 내가 바로 그 사탄이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큰일나지 않겠습니까! 그것의 진실한 신분이 바로 악령이기에 그것은 섣불리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심에 있어서 모두 그분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시고 사람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지위,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에게 전부 공개하셨고 하나님의 본체를 제외하고 전부 공개하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유독 하나님의 본체만 사람에게 숨기셨는데, 이것은 의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합니다. 그 외에 패괴된 인류는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기 전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이고 변화가 없으며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에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의의 있고 찾아볼 진리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그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것도 깊이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패괴된 인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분량은 논할 나위도 없고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 역사를 한평생 경력한다 해도 얼마나 큰 변화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다지 큰 변화가 없습니다. 제가 여태껏 경력해 오면서 변화가 좀 있는 줄 알고 어떤 때는 정말 자만했었는데, 이 한 편의 말씀을 보고 나서 그때 정말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는 전에 제 자신이 변화가 좀 있다고 느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이번에 이 한 편 말씀을 보고 나서 부끄러웠고 “별로 변한 게 없어, 이러면 진실로 온전케 되는 것과는 아직도 너무나 차이가 크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체를 보려고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욕망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으니 오해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를 볼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고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극대한 높여주심인 것입니다.
계속 더 읽읍시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각도에 서서 사역을 하든지 모두 그의 진실한 신분으로 사람을 대하였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으며 그가 해야 할 말씀을 하였다. 하나님이 어떤 각도에 서서 말씀하든지 셋째 하늘의 높은 자리에 서든지 아니면 육신의 각도에 서든지 심지어 하나의 평범한 사람의 각도에 서서 사람에게 말씀하든지 그는 마음과 뜻을 다하였고 그 어떤 기만도 없고 그 어떤 숨김도 없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칙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마음과 뜻을 다해 인류에게 역사하시고 “그 어떤 기만도 없고 그 어떤 숨김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면서 본분에 마음을 다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에 마음을 다합니까? 패괴된 인류가 일을 하는 것은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비할 수가 없습니다. 인식하셨죠? 사람이 일을 하면서 정성을 다합니까? (다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을 함에는 어떤 것들이 뒤섞여 있습니까? 대충대충 하여 속이고 기만하고 감추고 속셈에 간사가 너무 많고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이것은 모두 패괴입니다! 우리 다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봅시다. 마음과 뜻을 다해 역사하면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발표하시며 그 밖에 어떤 기만도 없고 어떤 숨김도 없습니다. 사람은 정성을 다하지 않고 늘 개인의 속셈이 있으며 욕망의 뒤섞임이 있고 또 대충대충 대하고 속이며 기만과 간사, 사치한 욕망 그리고 거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 숨긴 것을 사람에게 전혀 알려 주지 않고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감추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하나님과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 패괴된 인류의 마음속에는 뭔가 나쁜 것이 많습니다!
더 봅시다. “그는 역사하는 기간에 그의 말씀을 발표하고 그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며 그 자신의 소유소시도 발표하는데,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다!”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무슨 성품을 대표합니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입니까? 조금도 남김없이 사람에게 나타내고 보여 주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고 얻게 하십니다. 이 속에 이기적인 것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은 일을 함에 있어서 이기적이고 비열함이 있지 않습니까? 거래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눈치를 보며 움직이지 않습니까? 감정에 따르지 않습니까? 좋아하는 사람과는 더 말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말도 안 하고 늘 숨기고 다 말하지 않고 늘 거래가 있고 개인의 속셈과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하고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서 어떻게 뒤섞임이 이렇게 많을 수 있단 말입니까? 뒤섞임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많이 존재하는 것은 다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봅시다. “그는 그의 생명과 소유소시로써 인류를 인도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사역하여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과 진리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증거하는 것으로 하나님 선민을 인도하고 있습니까? 혹은 자신이 경력(역주: 체험)하고 얻은 진리 실제로 하나님 선민에게 공급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사역을 하고 본분을 합니까? 글귀도리만 말하고 듣기 좋은 말로 기만하면서 하나님 선민을 인도하는데, 자신을 위장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높이 보게 하고 자신을 자랑하여 옹호하게 하며 사역을 하는 것이 늘 자신을 위해 말하고 늘 자신의 이익만 지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 선민을 인도하고 하나님 선민을 공급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역사 원칙과 대조해 보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역사 방식을 알게 된 후 마땅히 어떻게 하나님을 대해야 하고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하겠습니까? 마땅히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마땅히 진리 실제를 말하면서 하나님을 잘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하나님 선민에게 분명하게 증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따르게 해야지 사람을 숭배하게 해서는 안 되고 인솔자 일꾼을 숭배하게 해서는 안 되고 우리 자신을 숭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인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인도 하에 율법시대 즉 인류의 요람 시대를 지나오게 되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인도 하에 율법시대 즉 인류의 요람 시대를 지나오게 되었다.” 이 한 마디는 무엇을 말씀했습니까? 하나님의 3단계 역사에서 가장 최초의 율법시대는 인류의 요람시대를 대표합니다. “요람시대”는 무슨 뜻입니까? 즉 영아시대입니다. 어린아이가 눈을 떴든 뜨지 않았든 부모의 원 모습을 볼 수 없고 봐도 못 알아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류에게 역사하시면서 사람에게 본체를 나타내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만 공개하여 인류에게 보여 주셨으며 인류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고 경력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시대, 은혜시대, 하나님나라시대의 역사 원칙입니다. 아주 실제적이고 아주 의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전능도 대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 견식은 유한한 것입니다. 견식이 유한하기에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어떤 방해를 받겠습니까?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다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 항상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와 상상, 그리고 자신의 견식에 근거하여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합니다. 이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다. 합당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견식과 이해가 얼마나 되든, 우리가 도달할 수 있든 없든, 경력이 있든 없든 우선 하나님 말씀이 실제적인 것이고 진실한 것이며 모두 진리라는 것을 확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이런 하나의 전제를 확정하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합당합니다.) 그다음 다시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구하고 얻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경로가 가장 좋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입니다. 제일 삼가해야 할 것은 당신의 관념과 상상 그리고 견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규정하기만 하면 당신은 하나님 말씀을 읽는 데서 분명히 실패를 가져올 것이며 성령이 깨우쳐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이 우선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면 하나님 말씀을 읽는 방식과 본심이 틀린 것이며 불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음을 뜻합니다. 당신이 항상 학자로,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대한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쉽게 거스르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자신을 높이 여기는 마음 상태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난 지식이 있고 머리가 좋아서 보기만 해도 하나님 말씀이 맞는지, 진리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합당한지 볼 줄 알고 분별할 줄 알아.’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어떤 성품입니까? 사탄 학자가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바로 이런 마음 상태입니다. 그는 늘 사람의 각도에서 학자의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심사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오만이 아닙니까? 이러면 이지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경건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우선 자신을 내려놓으면 안 됩니까? 최소한 먼저 기도는 해야죠!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패괴된 인류입니다. 너무나 오만하여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마음 상태가 바르지 못합니다. 지금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감찰해 주세요.’ 당신이 우선 이런 기도를 하고 나서 다시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마음 상태가 바르게 됩니다. 먼저 규정하고 먼저 연구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 정상적인 마음 상태로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것은 아주 관건입니다. 당신이 만약 경건한 사람이라면 우선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경건하지 않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연구하지 말고 규정하지 말고 늘 자신이 괜찮고 뭐든지 다 안다고 여기지 말자. 사실 패괴된 인류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마음 상태가 아주 관건입니다. 이 마음 상태는 사람의 성품을 대표합니다. 마음 상태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좋은 효과가 없고 성령의 깨우침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지금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제일 큰 복이 아닙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날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의 경력은 모두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를 알아가는 데에 얼마간의 수확이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하나님을 아는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와 얼굴을 마주하여 우리를 구원하고 온전케 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까? 이것은 특별한 은총이고 파격적인 높임입니다. 전 세계의 전 인류에서 우리만 하나님 앞에 와서 본분을 하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나타나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나타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품, 그분의 소유소시를 날마다 우리 이 한 무리 사람들에게 나타내십니다. 종교인과 이방인은 누구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만 이런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하는데 눈이 좀 멀지 않았습니까? 영적인 눈을 아직 뜨지 못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안은 흑암합니다. 심령이 흑암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친히 말씀하셔서 우리를 온전케 하심을 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지금 이 열두 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까? 비록 하나님 본체의 나타나심은 아니고 하나님 성품의 나타남, 소유소시의 나타남이지만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고 우리에게 경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임이고 우리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사람이 볼 수 없다면 정말로 성령 역사가 없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정말로 이상(異象)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렇게까지 하셨는데 사람이 아직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영 안이 너무나 마비되었고 성령 역사가 너무나도 없는 것입니다.
가끔 수리 대처를 경력하면 좋지 않습니까? 수리 대처를 경력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수리 대처를 경력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말씀의 심판 형벌이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것은 가장 좋은 나타남이기에 당신으로 하여금 시야를 넓히고 인식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당신에게 하나님 말씀의 나타남이 없고 수리 대처가 없다면 당신이 진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체험했습니다. 그가 수리 대처를 몇 번 경력한 후 기도하고 구하니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는 후회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 주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성령 역사에 협력하여 진심으로 본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까? 그분은 성령 역사의 방식으로 성령의 깨우침을 통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의 나타남을 알게 하는 이런 한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당신에게 나타내신 것이고 당신에게 보여 주신 것이며 당신에게 회개와 변화를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면 의의 있지 않습니까? 만약 사람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면서 시종 수리 대처가 임하지 않고 시종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보지 못했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한 방면으로는 분량이 너무 작고 아직 영적 눈을 뜨지 못했고 정식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못한 것이고 그 밖에 당신이 주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았고 소극적으로 피동적으로 방비하고 있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임할까봐 두려워하고 수리 대처가 임할까봐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피하는 것이 아니라면 왜 주동적으로 본분하지 않습니까? 주동적으로 일을 좀 하고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주동적으로 하나님 역사를 수호한다면 드러난 문제도 역시 우리가 반성할 기회이고 하나님 성품의 나타남을 보는 기회이기도 하며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늘 감추면 안 좋습니다. 당신이 경력하면서 소극적이고 피동적이면 손해를 보기 마련이고 얻는 것이 적습니다! 날마다 처세 철학대로 살고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잘 먹고 마시지도 않고 잘 경력하지도 않고 더욱이 본분도 잘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동적인 협력이 없고 소극적으로 피하고 소극적으로 방비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교회에서 당신을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니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본분을 시키고 신경을 쓰지 말자고 말합니다. 이러면 도태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 말씀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단락을 읽읍시다. 『율법시대 이후 하나님이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었는데, 그때 말씀이 육신 된 시간은 33년 반이었다. 이 33년 반 동안의 시간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 긴 편인가? (길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명이 일반적으로 30여 년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3년 반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리 긴 것이 아니지만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께 있어서는 이 33년 반의 시간은 긴 것이다. 그가 하나의 사람━하나의 평범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담당하였는데, 이는 그가 보통 사람이 담당할 수 없는 사역을 담당하려 한 동시에 보통 사람이 이겨 낼 수 없는 고통도 이겨 내려 하였음을 뜻한다. 은혜시대에, 역사하기 시작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이 기간에 예수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이것은 비록 지금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 중에서 너희는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는가, 없는가? 기록된 이 사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세부 사항이 있든지 어쨌든 그 기간에 하나님이 한 사역은 험난과 고난으로 가득했다. 하나의 패괴된 사람에게 있어서 33년 반 동안의 시간은 길지 않고 고통을 좀 받는 것은 별것 아니지만 거룩하고 아무런 흠도 없는 하나님께 있어서 그가 모든 사람의 죄를 참아야 하고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해야 하는 이 고통은 너무나도 큰 것이다. 그가 조물주이고 만물을 주재하고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지만 그가 인간 세상에 왔을 때는 패괴된 인류의 유린과 참해를 이겨 내야 하였고 그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인류를 구원하여 고해(苦海)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는 오히려 사람에게 정죄를 받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하였다. 그가 받은 이 모든 고난은 다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이다. 그가 이 고통을 받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을 뜻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당한 그의 굴욕과 치른 대가를 뜻하며 인류가 곧 하나님에 의해 십자가 위에서 구속되리라는 것도 뜻한다. 이 대가는 피의 대가이고 생명의 대가인데, 그 어떤 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그가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를 구비하였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담당할 수 있었고 그런 사역을 담당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 어떤 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은혜시대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이 유로(流露)한 성품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소유소시의 유로가 있지 않는가? 인류가 인식할 만하지 않는가?
이 시대에서 사람은 비록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에게서 속죄제를 얻었고 또 하나님에 의해 십자가 위에서 구속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시대 그 기간에 하였던 사역에 대해서는 아마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 발표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또 누가 생소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각 경로로부터 하나님이 서로 다른 시기에 한 사역의 내용을 알고 또는 이런 사역을 하는 동시에 발생한, 하나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았을 뿐이다. 이런 내용과 이야기는 기껏해야 하나님에 관한 일부 정보나 전설에 불과할 뿐, 그것들은 하나님의 성품이나 하나님의 실질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알든지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에 대해 깊은 이해와 인식이 있음을 뜻할 수 없다. 율법시대와 마찬가지로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비록 성육신의 하나님과 거리가 없는 한번의 친밀한 접촉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거의 공백이나 다름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는데, 우리가 은혜시대의 성육신께서 받으신 고통에 대해 이전에는 어떤 인식이 있었고 지금은 마땅히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보도록 합시다. 이전의 인식과 하나님 말씀에서 밝힌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생각해 봐야 할 바입니다. 똑같이 “33년 반”에 대한 것이지만 사람의 관념과 하나님의 말씀은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차이가 큽니다. “30여 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요. 예수님이 받으신 그런 고통은 일부 패괴된 인류가 받은 고통과 별로 차이가 없어요!”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이러면 틀립니다. 여기의 차이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육신 하나님께서 받으신 고통은 왜 패괴된 인류가 받은 고통과 성질이 같지 않고 느낌이 같지 않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상고해 봐야 할 문제이고 첫 번째로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에서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이후 사람은 또 어떻게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것인지, 이것은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도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가 있고 마땅히 진입해야 할 실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셔서 그분이 받으시는 고통과 패괴된 인류가 받는 고통은 느낌이 다르다고 언급하셨는데, 그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은 늘 하나님을 위해서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위해서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질과 다릅니다. 그분은 더러움이 없고 패괴가 없고 죄가 없지만 오히려 인류의 모함, 핍박, 박해, 정죄를 받으시는데 이런 고통은 사람이 죄를 범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결과의 고통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고 아무런 흠도 없는 하나님께 있어서 그가 모든 사람의 죄를 참아야 하고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해야 하는 이 고통은 너무나도 큰 것이다.” 이 한 마디 말씀을 당신이 상고해 보세요, “이 고통은 너무나도 큰 것이다.” 당신은 인식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정말 인식할 수 있다면 하나님 성육신이 받으신 고통이 확실히 너무나 크고 사람이 감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한 마디 말씀에 대해 당신이 만약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 이해가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당신이 그저 자신의 관념으로만 하나님의 고통을 가늠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하나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언급하셨습니다. “그가 조물주이고 만물을 주재하고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지만 그가 인간 세상에 왔을 때는 패괴된 인류의 유린과 참해를 이겨 내야 하였고 그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인류를 구원하여 고해(苦海)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는 오히려 사람에게 정죄를 받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하였다. 그가 받은 이 모든 고난은 다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이다. 그가 이 고통을 받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을 뜻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당한 그의 굴욕과 치른 대가를 뜻하며 인류가 곧 하나님에 의해 십자가 위에서 구속되리라는 것도 뜻한다. 이 대가는 피의 대가이고 생명의 대가인데, 그 어떤 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그가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를 구비하였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담당할 수 있었고 그런 사역을 담당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아주 깊은 의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분명 죄가 없는데 사람에게 정죄당하고 상처를 입고 짓밟히면서 굴욕을 당한다면 사람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기꺼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라면 원망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런 고통을 받으면 계속 억울함을 하소연합니다! 심지어 계속 “하느님은 불공평해!”라고 욕하고 변명하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마음 상태가 있는데 이것이 진실로 고통받는 것입니까? 그는 고통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고통을 받는 것에는 불복과 분함이 있고 억울함이 있으며 원망이 가득하기에 그런 고통은 억지로 참는 것이지 진실로 고통받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받으시면서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으셨고 천부의 뜻에 순복하셨으며 인류를 사랑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고통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고통을 받으시는 것과 사람이 피동적으로 참는 것은 성질이 다릅니다. 이 한 마디 말씀을 잘 상고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억지로 참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죄를 기꺼이 담당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신 고통은 그 어떤 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고통을 받으시는 의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통을 받으실 때 그분의 성품, 그분의 아름다움, 그분의 거룩함, 그분의 선함과 나타내신 소유소시는 영원히 사람의 찬미를 받으실 만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 간증입니까? 찬미할 만합니까?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신 고통의 의의가 너무나 깊고 너무나 의의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난 후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신 고통을 대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신 고통에서 하나님의 사랑,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값없는 희생,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치르신 하나님의 대가를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아름답고 거룩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는 패괴가 없고 죄가 없으며 거짓과 허위가 없으며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모든 무고한 고통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고통을 받으신 여기에는 너무나 의의가 있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아야 하고 가장 주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한 실질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치르신 하나님의 대가가 무엇을 대표하는가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렇게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의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이 쉽습니까? 너무나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너무나 다루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고 무엇이 사랑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런 고통을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패괴된 인류의 짓밟힘, 참해, 핍박을 받으시겠습니까? 이런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오히려 원망은 조금도 없으시고 기꺼이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고 패괴된 인류에게서 오는 박해를 기꺼이 참으실 수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무사(無私)한 것입니까! 사람의 말로는 이런 사랑을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도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왜 아직도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까? 우리는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렇게 거룩한 한 분의 하나님이시고 성품이 아주 선하고 아름답고 공의롭고 신실한 하나님이신데 사람은 왜 사랑할 수 없단 말입니까? 왜 그분에 대해 아직도 오해할 수 있고 의심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 패괴된 인류는 진실된 사랑이 없고 진실된 증오가 없고 분별도 없으며 마치 짐승과 같아서 정상적인 사유 이지가 없음을 설명합니다.
지금 큰 붉은 용은 이방인의 형사 범죄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뒤집어씌우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가 벌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큰 붉은 용은 이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했다고 사건을 조작했는데 어떤 사람은 분별할 줄 모릅니다. 이렇게 간단한 한 가지 일도 분별할 줄 모르는 걸 보면 패괴된 인류의 사유가 아주 단순한 것이 아닙니까? 패괴된 인류가 불가사의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대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과 구원에 대해 그는 꿰뚫어 보지 못하고 눈이 멀었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셔도 모릅니다. 패괴된 인류와 마귀, 마왕이 어떻게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어떻게 말해도 그는 다 믿습니다. 이것이 사악한 인류가 아닙니까? 사악을 숭상하는 인류가 아닙니까? 흑백을 전도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당신이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왜 큰 붉은 용의 허튼소리를 믿습니까? 하나님 선민이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선민이 복음을 전하면서 악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일부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믿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왜 패괴된 인류가 구원받기 어렵겠습니까? 왜 하나님의 역사가 험난하겠습니까? 즉 이 패괴된 인류가 너무 사악하고 너무 터무니없고 너무 도리를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떤 허튼소리든 다 듣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진리만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험난하게 된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이 뭐라고 말하면 그는 그대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좋고 다 진리인데도 한 마디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이 사악한 인류에게 노하시고 마지막에는 그것을 훼멸하시는데, 죽어 마땅합니다! 죄 값을 받아야 하고 마땅히 재난을 내려야 합니다. 이 인류는 너무나 사악합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은혜시대에 인류를 구속하시고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으셨지만 진실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으십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사람이 사랑할 만한 분이시고 인류의 찬미를 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런 간증을 하는 사람이 몇 명 안 되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몇 명 안 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패괴된 인류가 양심이 있습니까? 너무나 양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극대한 인내심으로 역사하고 말씀을 발표하고 진리를 교통하고 계십니다. 마지막까지 역사하여 일부분 사람을 온전케 한 후에 나머지는 다 훼멸해야 되기에 가련해 할 가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큰 붉은 용이 왜 이방인의 살인사건을 크게 떠들어대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겠습니까? 그것은 왜 이런 일을 하려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분석할 줄 압니까?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큰 붉은 용이 하나님 선민을 박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려던 것이 목적에 이르지 못하고 철저히 실패하고 수치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1991년에 하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셔서부터 큰 붉은 용은 2014년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줄곧 박해하고 체포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선민을 대량으로 감옥에 잡아넣고 그런 후 또 혹형을 가하고 노동교육을 시켰지만 석방된 후 어땠습니까? 이 한 무리 사람들의 간증을 이루었습니다. 이 한 무리 사람들은 다수가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해 인터넷에 올려 전 세계에 공개했습니다. 그것이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진압하기는커녕 오히려 전 세계의 인터넷에 간증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지 않겠습니까? 그것의 그렇게 많은 죄악이 백일하에 사실로 드러나 전 세계의 국민들이 모두 큰 붉은 용이 어떻게 하나님 선민을 박해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했는지의 이 확실한 사실 증거를 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화가 치밀어 또 한 번 미친 듯한 반격을 하기 시작했는데, 죄를 뒤집어씌운 것은 바로 이 배경 하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은 ‘2012년에 크게 체포하고 2013년에 혹형과 노동개조로 크게 박해를 했으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연기처럼 사라졌거나 얌전해지고 몇 안 되는 잔여 세력도 함부로 활동하지 못할 거야! 이러면 안심할 수 있어!’라고 여겼었는데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한동안 잠잠하다가 갑자기 인터넷에 그렇게 많은 간증 동영상과 간증문을 올려 그것들을 들춰내고 또 영어, 한국어, 일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공개하자 그것들이 질겁했습니다! 그것들은 비밀리에 회의를 열어 “안 돼, 또 새로운 작전을 짜서 눌러놓고야 말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안건을 조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머리를 짜 오랫동안 모략하고 조작한 안건입니다! 중국 속담에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쉽게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큰 붉은 용은 매 한 가지 큰 일을 하기 전에 모두 발판을 찾으려 합니다. 어떻게 발판을 만듭니까? 먼저 한 가지 안건, 한 가지 사건이나 사례를 조작한 다음 이 일을 이용해 여론을 조성하고 그다음 아주 정당하게 진압합니다. 이것이 큰 붉은 용의 일관적인 수단입니다. 이번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하나님 선민에 대한 그것의 각종 혹형, 구류, 체포 등 그들이 쓴 수단을 전 세계에 공개하자 그것이 화가 나서 개가 담을 넘는 격으로 이런 한 가지 허위 안건을 조작한 것입니다. 사실은 이방인의 살인사건인데,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뒤집어씌우려 한 것입니다. 생각대로 되겠습니까? 뒤집어씌우지 못합니다! 지금 서방의 매체와 정계의 요원은 다 일부 증거를 잡고 “공산당이 종교신앙을 박해하는 것은 정말 사실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박해를 받은 사실은 서방 사회에서 공인을 얻었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중공이 당신들에게 일부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거짓말을 조작한 것이 맞군요. 우리가 다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그들이 말한 것은 확실히 다 거짓말이라서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산당이 말한 “눈을 파내고 귀를 잘라낸다”는 그런 말은 다 아무렇게나 엉터리로 꾸며낸 것입니다. 어디 한 건이라도 있습니까? 그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외쳤지만 한 건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공공연히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훼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국가의 집권당으로서 사실 근거를 내놓고 말하지 못한다면 이게 무슨 집권당입니까? 거짓말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정당이 아닙니까? 민주국가에서 집권당이 근거가 없음에도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민주국가에서 당신이 공개적으로 국민을 기만하면 그 정부는 전체 사직을 해야 하고 관직에서 빨리 물러나야 됩니다. 중국에서 집권하는 공산당은 사실 근거도 없이 마음대로 말하는데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당은 무슨 성질입니까? 이것을 악당이라고 합니다! 늘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폭력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국민을 진압하는데 이런 하나의 악당이 그렇게 할수록, 더 미친 듯이 반격할수록 그것의 사악한 추태는 점점 철저히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일부 국가에서 이 일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것이 좋은 일입니까, 아니면 나쁜 일입니까?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선민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큰 붉은 용을 드러내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런 일이 닥치면 물러서고 주눅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선민은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증거하는 이런 본분, 이런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마땅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바로 진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당신이 증거할 줄 모르고 사실 진상을 모른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실 진상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3살짜리 애입니까?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큰 붉은 용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지가 있습니까, 양심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결정적인 시각일수록 더 하나님을 의심하고 더욱더 하나님이 진리임을 믿지 않고 오히려 큰 붉은 용의 말을 믿는데 이런 사람은 큰 붉은 용의 자손이 아니겠습니까? 이 전쟁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은 빨리 격리시키고 B조로 보내야 합니다. 큰 붉은 용이 한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빨리 제거해야 하고 제명해야 합니다. 하나님 집에는 이런 사람이 필요치 않습니다. 당신이 큰 붉은 용을 믿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거짓이고 불신파이며 사탄의 심부름꾼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가 보기엔 큰 붉은 용이 말한 일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의심이 생겨요.”라고 말한다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빨리 내보내세요.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여태껏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며 이런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정예함이지 인원수의 많음이 아니다.” “사람의 정예함”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원하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 안에 필요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바로 진리임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고 모두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는 사람이며 모두 진실하게 큰 붉은 용을 배반하는 사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일에서 큰 붉은 용의 편에 서거나 혹은 제3자의 입장에 선다면 이런 사람은 바로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사람이고 바로 하나님 집에서 도태시키려는 사람이기도 하며 절대로 좋은 놈이 아닙니다. 진실로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사탄이 전쟁할 때 하나님이 진리임을 믿을 수 있고 마구 뒤얽혀 복잡한 상황 하에서도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사물의 진상을 인식하기를 구하는 이런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변고나 좀 복잡한 일에 부딪치면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 집을 의심하는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진실한 믿음이 없다면 그가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끼어들어서 숫자만 채우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교회에 숫자만 채우는 사람이 많으면 좋습니까, 아니면 교회의 사람이 순결하면 좋습니까? (순결하면 좋습니다.) 우리는 순결해야 하고 숫자만 채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의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고 일이 좀 임하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을 여러분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겠습니까, 아니면 원칙대로 처리하겠습니까? 상황을 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에 대해 분별이 없고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큰 붉은 용을 모른다고 해도 최소한 마땅히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마땅히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하나님 말씀이 절대적으로 진리이고 사실의 진상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 있다면 당신과 같은 사람은 바로 진리를 의심하고 진리에 흥미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간혹 나쁜 사람이 있나요, 없나요? 만약 있다면 안 믿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성립됩니까? 어떤 종교 안에 나쁜 사람이 조금도 없겠습니까? 교회에 간혹 나쁜 사람이 있지만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대표합니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대표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반드시 제명해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악인을 얼마나 제명했습니까? 하나는 적그리스도를 반드시 제명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악령을 반드시 제명해야 하며 또 동성애자와 악인을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 이 4가지 종류는 반드시 제명해야 할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을 제명하지 않은 것은 일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지 일단 그가 악한 일을 행하고 드러나면 즉시 제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대표하지 않고 어떠한 사람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대표할 수 없으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다수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다수 사람만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는데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당신은 도대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아니면 어느 한 사람을 믿습니까? 당신이 만약 이 문제를 분명히 할 수 없다면 당신이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 아닙니까! 만약 교회에 한 악인이 나타났거나 혹은 한 사람이 나쁜 일을 했다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무슨 잘못을 범한 것입니까? 그는 흐리멍덩하게 믿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이 도대체 사람인지 하나님인지, 아니면 교회의 어느 한 적그리스도인지 아니면 어느 한 악인인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믿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당신은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구속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습니다. 만약 교회에 나쁜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제가 믿는 것은 그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거룩하심입니다. 그 나쁜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분명히 일어서지 못하고 언젠가는 도태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죠? 관건은 지금 당신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당신이 믿는 것이 하나님이지 어떤 사람이 아니고 더욱이 어느 교회가 아님을 정말로 깨닫는다면 당신은 어떤 인ㆍ사ㆍ물의 구속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만 믿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훼방하려 한다면 저는 당신을 용납할 수 없고 일어나서 반박할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저는 당신과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며 당신의 제의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당신이라는 마귀 사탄에게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조그마한 일이어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의 이해와 당신의 인식은 너무나 황당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을 대표합니까?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는데,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께 책임을 떠밀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은 이방인과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최종에 어떤 징벌을 받는지 압니까?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세 역사에 선택하여 쓰시는 받침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정적인 일을 통하여 하나님 선민을 온전케 하시고 하나님 선민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면 지금 큰 붉은 용이 한 이 모든 악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면에서 받침 역할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고 박해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이 너무나 가증스럽고 너무나 사악하고 너무나 비열하다는 것을 보았기에 “오히려 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불러일으켜 주었고 진심으로 마음을 굳게 다지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는 마음을 더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큰 붉은 용이 받침 역할을 해 있게 된 효과입니다. 그 외에 어떤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복을 얻기만 바라는데 큰 붉은 용의 미친 듯한 핍박과 박해를 통해 그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고 쫓아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에 효력을 한 것이 아닙니까? 큰 붉은 용의 박해와 핍박, 이런 열악한 환경이 없다면 그런 불신파와 투기자, 떡으로 배불리려는 사람을 물러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큰 붉은 용이 받침물 역할을 해 있게 된 효과입니다. 그러므로 큰 붉은 용이 무슨 일을 하든 일부 사람들은 이로 인해 미혹받고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을 배반했는데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러간 사람, 소극적이고 연약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아주 정상이라고 느낍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지혜로우십니다! 그가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이 닥쳤을 때 마땅히 진리를 구해야 합니다. 진실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닥치든 진리를 구할 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 그는 사물의 진상을 알아볼 줄 알고 그 기회를 빌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친근해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이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임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사탄의 사악과 사탄이 사실을 잘 왜곡하고 흑백을 전도하며 없는 사실을 꾸며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각종 죄악을 저지를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정말 총명한 사람이라면 곧 큰 붉은 용의 악랄함과 파렴치함을 볼 수 있고 더더욱 큰 붉은 용을 증오할 수 있으며 흔들림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일이 좀 임했다고 하나님 집을 떠나간 사람을 아쉬워하지 않고 이런 사람은 가치없고 쭉정이에 속하며 바람에 날려간 것이라고 여깁니다. 키질할 때 알곡에 속하지 않는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어떤 새신자들은 그렇게 많은 진리 교통을 듣고도 결국에는 외적인 이런 일로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한차례의 폭풍도 견뎌 내지 못했으니 그는 순금이 아니라 모래먼지이며 알곡이 아니라 쭉정이이기에 바람에 날려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만약 하나님을 1~2년 믿은 형제자매가 큰 붉은 용이 인터넷에서 부정적으로 선전하는 글을 보고 나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면 이런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관건은 매 한 가지 일에 대한 당신의 관점과 견해를 보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의 그 실질을 간파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하나님의 성품을 정말로 인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질에 속하는 사람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몇 년 믿은 사람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가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질의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몇 년 믿어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면 이것은 바로 악령이고 원수입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에 패괴된 인류에게 공의와 위엄을 완전히 나타내지 않으셨을 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셨습니다. 당신이 감히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을 모독한다면 더욱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얻지 못합니다! 이 한 마디는 믿는 사람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 모두를 포함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모두 사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 말씀에서 만약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심 있게 도와주려고 하고 그의 행위를 세심히 관찰하려고 하고 또 진리를 교통해 주려고 하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입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조금도 모르고, 어리석은 사랑입니다.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은 바로 성령의 화신입니다! 은혜시대에도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 주 예수님을 모독한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사랑을 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와서 당신이 아직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에 대해 사랑을 논한다면 당신은 은혜시대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원칙이 있는 사람보다 뒤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마귀만 사랑하니 당신의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큽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원수는 사랑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사탄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이름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독과 공격을 받으실 때 그는 사탄을 사랑했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었고 하나님 편에 설 수 없었으며 사탄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탄을 동정하는데, 이런 사람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줄을 잘못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지 않는 사람 편에 섰고 사탄에 속해 하나님을 공격하는 사람 편에 섰으며 하나님의 적대세력 편에 섰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닙니까? 비록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사탄 편에 서서 사탄을 위해 말하며 사탄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멸하신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 실제가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원칙이 없습니다. 마귀, 사탄, 악령, 큰 붉은 용에게 사랑을 논한다면 이런 사람은 바보가 아닙니까?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은 진정한 형제자매를 적그리스도라고 몰아붙이면서 제명하고, 정말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며 진리도 교통하고 행위까지 세심히 관찰하는데,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어디서나 사탄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가 한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가 인솔자 본분을 맡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 그는 사탄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그가 사탄에게 속하지 않는 사람을 사탄 편으로 몰아붙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사람을 하나님 집으로 데려온다면 이 성질은 엄중합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태도를 세심히 관찰해야 됩니까? 원수의 행위에 대해서도 세심히 관찰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2년 믿었든 1년 믿었든 막론하고 그가 이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많이 먹고 마셨는데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시인하지 않고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공격할 때, 하나님 집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먹칠할 때, 그는 즉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한 마디를 하고 큰 붉은 용이 하는 말이 옳다고 믿으면서 큰 붉은 용 편에 서고 큰 붉은 용을 위해 말을 하고 하나님을 공격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가 그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또 하나님 집에서 1~2년 교회 생활을 했음에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데, 이런 사람에게 그래도 진리를 교통해 주고 그의 행위까지 세심히 관찰해야 된다면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인솔자 일꾼이 어느 지경까지 어리석어야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에 대해서 태도를 세심히 관찰하고 진리를 교통해야 합니까? 바로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갓 받아들였을 때는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좀 있고 일부 하나님 말씀에 대해 관념이 좀 있고 하나님께서 엄격하게 말씀하신 것을 보거나 유언비어를 듣고 관념이 좀 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관념이 좀 있을 뿐이고 잘 모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만약 이미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를 설명합니까?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도 진리임을 시인하지 않다가 큰 붉은 용의 한 마디 유언비어, 훼방, 먹칠을 하는 말을 들으면 즉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데 그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의 본질은 바로 큰 붉은 용이고 악령입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도 진리를 교통하고 행위를 세심히 관찰하다니,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로 어리석습니까?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악령에 대해서는 진리를 교통하고 그것의 행위를 세심히 관찰하면서 진정한 사람에 대해서는 과오만 있을 뿐인데도 그를 적그리스도로 몰아붙이면서 교회에서 제명하려고 합니다. 악인, 악령에 대한 그의 이 태도는 마치 이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큰 것 같지만 과오가 있는 진정한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적그리스도로 몰아붙이면서 교회에서 제명하려고 합니다. 그의 악독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긍휼과 자비는 사탄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당신이 말해 보세요, 악령에 대해서는 사랑이 가득하고 진리를 교통하고 그의 행위까지 세심히 관찰하는데 그에게 정말로 사랑이 있습니까? 저는 그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저는 그가 형제자매들에 대해 악독하고 하나님에 대해 사랑이 조금도 없을까봐 걱정이고 그가 사탄만 사랑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걱정입니다. 그의 그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처럼 가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까? (제명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습니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제명합니까? 적그리스도를 제명하는 것이 정말 맞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은 적그리스도도 다 제명하는데 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 이런 사람을 제명하면 안 됩니까? 이것은 무슨 논리입니까? 당신의 이 사탄 논리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을 다 제명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를 제명하는 데에 대해 분명히 관념이 생길 것이고 분명히 반대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은 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10여 년 믿었음에도 이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보세요, 한국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을 제명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합니다. 그들은 믿은 지 기껏해야 3년밖에 안 되지만 태도가 아주 명확하고 입장이 분명하며 애증이 분명합니다. 중국의 하나님 선민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지 10여 년, 7~8년, 5~6년 되지만 진리를 교통하고 행위까지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정도로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믿은 햇수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한국 형제자매들은 믿은 지 2년 좀 더 됐지만 이 일을 간파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말을 듣기만 하면 그들은 가슴 속에 증오로 가득찼고 분노가 끓어올랐으며 그 마귀 악령을 꼭 제명하고야 말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사람을 만류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형제자매들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절대로 함부로 전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대로 처리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린 당신에게 전하지 않고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어떤 형제자매들은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2년 되었지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이런 사람에게 진리를 교통하려고 하고 그의 행위까지 세심히 관찰하려 하고 그에게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데, 귀신에게 홀렸습니까? 이제 저는 일부 사람들이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몇 년 교통했습니까?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어야 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교통했는데, 그 원칙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사탄에 대해서는 사랑을 논하고, 증오하지 않고, 저버리기는커녕 오히려 사랑을 논하는데, 이것이 무슨 원칙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의 원칙입니다. 사람이 진리 실제가 있는지의 여부가 이 한 가지 일에서 철저히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일에 대한 사람의 관점은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하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잘 설명합니다. 확연한 산 귀신, 악령으로 사람을 드러내니 결국 5~6년, 7~8년 된 사람도 적지 않게 드러나게 됐는데, 아무런 진리 실제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무엇이 거짓 인솔자이고 적그리스도입니까? 이런 사람을 분별할 줄 압니까?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랑을 논하는데 그가 적그리스도나 거짓 인솔자를 얼마나 잘 대해 줬을까요, 아주 순종 잘하고 온갖 방법으로 치켜세웠을 것입니다. 이 무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입니까? 이 의문이 점점 더 커집니다! 이런 사람이 분량이 어떤지 알 수 있겠죠? 원수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게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확연히 드러난 하나의 악령, 적그리스도, 악마도 분별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진리를 교통하려 하고 그에게 또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어요?”라고 묻습니다. 그가 술 마시고 취해서 한 말이겠습니까? 당신은 3살짜리 애입니까? 이걸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잠꼬대를 하면서 말한다 해도 안 됩니다. 당신도 마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말했냐고 물어보는 것은 무슨 논리입니까? 그럼 당신도 부정적인 선전을 보면 하나님을 모독할 수 있다는 말이네요! 하나님 말씀을 2년이나 봤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하지 않다가 부정적인 선전 한 번 보고 바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본성 실질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뚜렷한 문제를 뭘 분별할 게 있습니까? 무슨 상황을 보겠다는 겁니까? 그래도 아주 원칙이 있다고 느끼고 있네요! “제가 일을 얼마나 세심하게 처리하는지 보세요, 저는 쉽게 논단하지 않고 배경을 보고 원인을 조사할 거예요.” 이번에는 아주 세심하게 했네요. 당신이 확연히 드러난 마귀, 악령에 대해서도 배경과 원인을 조사해 밝히려고 하는데 뭘 조사한단 말입니까?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좋은 사람이라면 제멋대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큰 붉은 용의 백성들도 큰 붉은 용의 선전을 보고 나서 완전히 큰 붉은 용의 편에 선 사람이 없고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이 허튼소리 하는 거야, 우린 그것들의 말 안 들어. 그것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 “큰 붉은 용이 말하는 것은 언제나 사실을 왜곡하고 흑백을 전도하는 거니까 그들의 말은 믿을 바가 못 돼.”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떻게 봅니까? 멍청하기 짝이 없고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다년간 도를 들었고 이렇게 다년간 하나님 말씀을 읽었는데도 “마귀나 원수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 데에 대해 그것들의 행위를 세심히 관찰하고 원인을 잘 밝힌 후에야 규정할 수 있다”고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이렇게 원칙을 얻어낸다면 이것이 하나님을 믿은 당신의 수확입니까? 실수할까봐 이전보다 신중하게 처리하고 사랑해야 된다고 하면서 사탄에 대해 절대로 쉽게 판단하지 않고 사탄의 사정을 봐주고 진위를 조사하려 하고 배경에 근거해야지 똑같이 논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제일 큰 수확입니다! 당신도 진리를 얻지 못했네요! 무릇 이 일에서 태도를 표시하면서 “행위를 관찰하고 진리를 교통하여 구원할 수 있으면 구원하고 회개하라고 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리 실제가 하나도 없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솔자라면 반드시 대체해야 됩니다. 대체할 수 없는 교회의 인솔자라면 회개서를 쓰고 잘 인식해야 되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깊이 반성해야 되고 소구역 인솔자라면 반드시 대체해야 합니다. 지금 몇몇 소구역 인솔자는 진리가 없어 대체되었습니다. 일반 신도라면 책임을 추궁하지 않지만 그에게 자신이 진리가 없고 분별할 줄 모르며 사람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악령, 악마에 대해서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조금도 분별이 없는 멍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가련합니다. 이렇게 작은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난감해서 이렇게 돌려 말하고 저렇게 돌려 말하는데 그렇게 돌려 말할 게 뭐가 있습니까? 딱 한 마디입니다. “악령은 제명하고 하나님의 원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 일은 교통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말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사고를 낼까봐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하고 나니 시끄럽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듣기 싫어하고 제가 말버릇이 고약하고 너무 직설적이고 너무 사정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에게 유익한 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가 좀 완곡하게 좀 점잖게 말한다면 여러분에게 틀림없이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좀 엄격하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노골적으로, 듣기 싫게, 귀에 거슬리게, 마음에 찔리게 말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효과를 위해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집에서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까? (전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인성이 아주 좋고 효력하기를 원한다면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해야 됩니다.) 맞습니다. 또 한 가지 일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인성이 아주 좋고 솔직하고 효력하기를 원하고 또 하나님을 믿고 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전할 수 있습니다. 인성이 좋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이며 효력할 수 없다면 이런 사람에게 전해야겠습니까?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그가 믿고 싶어 하고 기어코 따라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 일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인성이 나쁜 사람이 만약 오고 싶어 한다면 그를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가 악을 행한 이후에 다시 내쫓으면 됩니다. 만약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악인인지 모르지만 그의 생김새가 좋은 사람 같지 않다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생김새가 보기에 악인이고 좋은 사람같지 않으면 빨리 단절해야 하고 기도도 하지 말고 받아들이지도 말고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생김새가 흉악한 사람은 꼭 악인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김새가 아주 좋지만 역시 악인인데, 이것은 우리가 꿰뚫어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생김새가 흉악한 사람은 분명히 악인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생김새가 너무 악한 사람은 빨리 방법을 써서 돌려보내야 하고 받아들이지 말고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3년 후에 드러나면 교회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 일이 아주 간단하죠? 만약 누가 이렇게 한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은 각종 사람에 대해 정확한 실행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각종 사람에 대해 정확한 원칙이 없고 원칙을 함부로 사용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는지의 여부는 무엇에 근거하여 가늠합니까? 그가 각종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근거합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각종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진리에 부합되는지의 여부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지의 여부를 가장 잘 나타냅니다. 여러분은 이 일에 대해 마땅히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 일은 아주 엄중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큰일이지 보잘것없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을 여러분이 모두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대적하면 죽는다!” 그 “대적함”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일반적인 패괴 성품 유로(流露)의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팽팽하게 맞서는 대적입니다. 큰 붉은 용이 참 도인줄 뻔히 알고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뻔히 알고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인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이런 대적을 가리킵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했다면 어떻게 이런 사탄에 대해 긍휼 자비를 논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사탄에 대해 긍휼 자비를 논한다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대적입니다. 당신이 이전에 이 일에 대해 인식이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음을 설명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하나님의 성품을 잘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면 쉽게 사탄 편에 서게 되고 쉽게 사탄을 도와주고 옹호하고 두둔하고 감싸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사람에 대해 원칙이 있는데, 주로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좋은 사람에게는 과오가 있더라도 우리는 긍휼을 베풀어야 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인 줄 알면서 하나님을 공격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악독한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긍휼 자비를 논하시지 않는데 당신이 그에게 긍휼 자비를 논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멍청한 것이 아닙니까? 사탄 편에 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아주 엄중한 문제로 원칙에 관계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에서 여러분에게 태도를 밝히라고 합니다. 만약 일반 형제자매이고 인솔자 일꾼이 아니라면 책임을 추궁하지 않겠으니 당신은 자신이 진리가 없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알면 됩니다. 이후에 당신이 어떻게 추구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인솔자 일꾼이라면 큰일납니다. 당신은 사역할 자격이 안 돼서 할 수 없고 반성해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일반 교회 인솔자라면 우선 그런대로 계속해도 되고 당신과 책임을 추궁하지는 않겠지만 반성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 일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당신이 만약 소구역 인솔자라면 반드시 대체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인솔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 몇몇 소구역 인솔자는 불합격이어서 대체되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그저 너무 멍청해서 인솔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당신은 원칙이 없어서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를 형제자매로 대하고 사탄 편에 서서 사탄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은 적그리스도를 제명하는 데에 대해 분명히 관념이 있고 분명히 저촉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데 누가 형제자매입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을 논단하지 않고 어떤 때 관념이 좀 있더라도 입으로 하나님을 논단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 하나님을 공격하는 말을 하는 자는 바로 원수이고 두말할 것 없이 즉시 제명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원칙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로 진리가 있다면 당신의 부모, 당신의 아내(남편), 자녀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을 때, 당신은 즉시 그들과 선을 분명히 긋고 “그들은 원수입니다.”라고 한다면 맞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나 인솔자 일꾼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면 당신은 즉시 적발한 후 그를 당장 제명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며 정의감이 있고 애증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 일은 너무나 사람을 잘 드러냅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리입니까? 사람의 관념과 상상, 사람 육체의 애호가 진리입니까? 이 한 가지 문제는 각 사람에게 있어서 모두 도전입니다. 당신이 상상한 많은 일,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지금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하고 진리와 대조하니 어떻습니까?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아무런 의의도 없으며 아예 잘못된 것입니다. 그 잘못된 것을 이전에는 왜 그것이 맞고 좋다고 여기고 고집하면서 누가 나쁘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때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대해 분별이 있게 된 후에야 이전에 좋아했던 것, 좋다고 봤던 그런 일을 지금에 와서 인식하고 반성하기 시작했으며 그것들의 진실한 면목을 보게 되었고 이런 것이 다 잘못된 것이고 다 부정적인 사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진리가 사물을 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꾼 것이 아닙니까? 진리는 사람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나서 다시 주위의 이방인을 둘러본다면 우리가 있는 국가정부, 관원, 유명인사들의 관점이 정확한 것이 얼마나 됩니까? 모두 황당한 것이고 모두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전에 가장 좋아했던 유명인사가 연설하면 ‘그가 연설한 것은 모두 맞아, 이 말은 정말 좋구나!’라고 여겼었는데 당신이 진리를 좀 깨닫고 나서 다시 그들의 연설을 들어보고 그들의 말을 본다면 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다 틀린 말이고 다 황당한 말입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일부 유명인사가 한 말과 강연을 볼 때면 어떤 정론가가 한 말은 정말로 별로이고 황당합니다! 긍정적인 것이 없고 진리가 조금도 없어서 저는 마음속으로부터 그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멸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진리가 저를 변화시켰고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켜 제가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 정말로 분별이 있게 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을 몇 년 믿고 어떤 진보가 있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이 진보를 가늠합니까? 이렇게 보면 됩니다. 당신이 숭배하던 사람이 한 말, 그들의 사람 됨됨이, 그들의 일을 보는 관점, 그들의 가치관이 도대체 정확한지 아니면 잘못되었는지를 다시 보세요. 당신이 이런 일을 잘 안다면 당신은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변했는지의 여부, 당신의 영적인 생명이 자라났는지의 여부, 사물을 보는 당신의 관점이 바뀌었는지의 여부가 다 분명해집니다. 당신이 만약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정말 사악하고 정말로 모두 부정적인 사물이고 정말로 황당한 것임을 보았다면 당신은 정말로 진리를 깨달았고 진리가 정말로 당신을 변화시켰고 당신은 확실히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참으로 진리에 대해 인식이 있어 세상에 대해 이런 분별이 있고 큰 붉은 용과 마귀 사탄이 어떤 유언비어를 날조하든 사탄의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사탄을 더 증오하고 큰 붉은 용을 더욱 증오하며 더욱더 하나님을 따르기로 굳게 결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한 것입니다. 사탄이 미친 듯이 반격할 때일수록 하나님 앞에 마음을 안정시켜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여 사탄의 간계를 분별하고 확고히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영적 전쟁의 결정적인 시각일수록 더욱더 냉정하고 더욱더 진리를 구해야 합니다. ‘이 간증을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합당할까? 어떻게 해야 사탄의 간계를 반격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해야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꼬투리 잡지 못하게 하고 진실한 간증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진리를 구해야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욥에게 사탄의 시험이 닥쳤을 때, 그가 모두 몇 마디 말을 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의 세 친구와 교통한 그런 말은 제외하고 간증을 굳게 선 것에 관계되는 것은 모두 몇 마디뿐입니다! 그중 하나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입니다. 이 한 마디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음을 설명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의 아내가 한 말에 반격을 한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또 한 마디는 그가 부인에게 한 말입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그의 부인이 여기에서 직접 사탄을 대표해 그를 시험하자 그는 직접 반격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이 한 마디는 아주 무게가 있습니다! 욥의 이 세 마디 말은 무엇을 대표합니까? 욥이 하나님을 믿고 얻은 진리를 대표하는데, 이것은 그가 경력해 낸 진리이며 그가 진리를 얻었음을 뜻합니다. 이 세 마디 말은 완전히 진리에 부합되고 그가 간증을 굳게 선 표징입니다. 보세요, 그가 율법시대에 선지자들이 전달한 하나님 말씀과 모세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성도들의 간증을 많이 읽고 율법시대의 하나님의 이런 역사를 다 경력한 다음 마지막에 이 세 마디 말을 한 것입니다. 이 세 마디 말은 그가 진리를 얻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했습니다. 이 세 마디는 너무나 의의 있습니다! 이렇게 큰 사탄의 시험 앞에서 그가 세 마디를 한 것은 욥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간증이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효과를 봐야 하는데 이것이 욥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 마지막에 도달한 효과입니다. 이 효과는 바로 그의 간증이고 한평생 하나님을 믿고 얻은 그의 수확입니다. 그가 70세일 때 이런 시련을 받았으니 욥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최소한 50년 됩니다. 50 여 년에 진리에 부합되는 세 마디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세 마디 말이 바로 아름다운 간증이며 그가 하나님을 50여 년 믿고 얻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우리 각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돌이켜봅시다. 당신은 하나님을 몇 년 믿었습니까? 당신은 무슨 간증을 했습니까? 당신이 사탄의 시험 앞에서 무슨 말을 했습니까? 어떤 유명한 말을 한 것이 당신이 간증을 굳게 섰음을 대표하고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대표하며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있음을 대표하고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음을 대표합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다년간 믿었어도 쓸모있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진실한 간증에 속하는 말,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다년간 믿었어도 수확이 있는 것입니까? (없습니다.) 당신은 사람이 듣고 나서 진심으로 탄복할 수 있는 몇 마디 경력 간증의 말이 있어야 합니다. 보세요, 욥의 이 몇 마디 말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누가 들어도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거둬 갔는데 왜 찬송해야 합니까?’ 이것은 사람이 너무나 이상하다고 느끼는 일입니다. 욥의 입에서는 이것이 간증입니다. 이것은 모순되지 않고 이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보세요, 욥의 그 몇 마디 말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객관적이고 무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잡혀서 혹형을 다 경력하고 나서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능력이 있어요! 너무나 권병이 있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사탄의 시험을 이겼어요.” 또 어떤 사람은 “환난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두 경력 간증의 말입니다. 이것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지 글귀 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간단한 일입니까? 효과가 있어야지 없으면 안 됩니다. 진실한 수확이 좀 있어야 되고 진실한 간증이 좀 있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경력을 다 하고 나서 어떻습니까? 마지막에는 간증이 없고 원망이 적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떤 놈입니까? 이것이 바로 귀신의 본성입니다. 진리는 얻지 못하고 원망만 가득 내뱉는데, 귀신 배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