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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에 관한 설교 교통 (1)

『사실상,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한 것이지 숨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태껏 의식적으로 그 어떤 사람도 피한 적이 없고 여태껏 의식적으로 자신을 감추어 사람에게 그를 알지 못하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한 적도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은 시종 공개된 것이고 시종 솔직하게 각 사람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면서 각 사람과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을 각 사람 몸에 하고 있다. 그는 이런 사역을 하는 동시에 부단히 그의 성품을 유로(流露)하고 있고 또한 부단히 그의 실질로써, 그의 소유소시(所有所是)로써 각 사람을 인도하고 각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다. 매 시대, 매 단계에서 좋은 환경이든 아니면 열악한 환경이든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된 것이다. 그의 소유소시도 각 사람에게 있어서 모두 공개된 것이다. 마치 그의 생명이 끊임없이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고 사람을 부축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부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은 감춰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이 부류의 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살고 있지만, 비록 하나님을 따르고 있지만 여태껏 하나님을 알아보지 않았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일단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그의 결말이 임했음을 뜻하고 그가 하나님의 성품에 심판받고 정죄받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협력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즐겁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하나님을 믿으며 자기 마음속의 상상 속의 하나님, 관념 속의 하나님을 믿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과 “떨어질 수 없는” 한 분의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진실된 하나님 자신에 대해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상대하려고도 하지 않고 더욱이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발표한 말씀으로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이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절정에 이르렀고 하나님을 마음속 깊이 믿었다고 여긴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상상과 관념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규정이 그들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진실된 하나님 자신은 그들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일단 그들이 진실된 하나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게 되면 그들의 행위, 그들의 믿음, 그들의 추구가 정죄받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실질을 아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데에 이르도록 주동적으로 찾거나 기도하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은 지어낸 것이고 공허한 것이고 막연한 것이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그들의 상상과 똑같은 하나님이어서 그들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또한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싶을 때에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은혜가 되게 하고, 그에게 축복이 필요할 때에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축복이 되게 하며, 그에게 역경이 닥칠 때에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를 담대해지게 하고 그의 방패가 되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 사람들의 인식은 단지 은혜와 축복, 이 범위에만 머물러 있고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이해도 상상과 글귀 도리의 변명에만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분 사람들은 절실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싶어 하고 진실로 하나님 자신을 보고 싶어 하며, 확실히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고 싶어 한다. 이 일부분 사람들은 진리의 실제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정복과 구원과 온전케 함을 얻기를 추구한다. 이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주의를 기울여 매번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과 하나님이 그를 위해 안배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체험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찾는다.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경력 중에서 더욱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고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보기 위해, 그들 마음속에 한 분의 참된 하나님이 존재하게 하기 위해,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어 더는 상상과 관념 속에서 살지 않고 더는 막연한 가운데서 살지 않기 위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가장 알아보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과 실질이다.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이 사람의 경력(역주: 체험) 중의 수시로의 필요이고 사람의 일생 동안의 생명 공급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더욱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에 더 잘 협력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자기의 본분을 잘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두 부류 사람의 태도이다.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보고 싶고 하나님 자신을 알고 싶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고 싶고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하게 느끼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일관되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고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심지어 부인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 또한 진실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마음을 점유하게 하려 하지 않고 자기의 욕망만 만족시키려 하고 자기의 상상과 자기의 야심만 만족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이 일부분 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가정과 직업도 버렸지만 그들의 악행은 끊임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제물을 훔쳐먹고 어떤 사람들은 제물을 낭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암암리에 하나님을 저주하기까지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위를 이용해 계속 자신을 증거하고 높이면서 하나님에게서 사람을 쟁탈하고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수단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숭배하게 하고 늘 사람의 마음을 농락시켜 사람을 통제하려고 한다. 심지어 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에게 자기를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하여 자기를 하나님으로 대하게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는 패괴된 사람이고 자기에게도 패괴가 있고 오만이 있으니 자기를 숭배하지 말고 자기가 한 것이 얼마나 좋든지 다 하나님의 높여주심이고 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전혀 말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그가 사람 마음속의 지위를 잃을까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전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지도 않는다. 그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 원인은 그가 전혀 하나님을 알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을 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이 화제의 이 몇 글자는 비록 간단하지만 각 사람에 대한 의의는 다르다.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하나님과 적대되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바로 정죄이지만 진리의 실제를 추구하고 늘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 없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하려 한다는 것을 듣기만 하면 머리가 띵해지고 마음에 저촉으로 꽉 차는데 얼마나 답답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듣고 나서 이 화제는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고 그의 생명 경력 중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일부분 내용이고 관건의 관건이고 하나님을 믿는 데의 토대여서 사람이 그것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그의 필요라고 느낀다. 비록 이 화제는 각 사람에게 있어서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생소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화제는 그래도 이 자리에 앉아있는 각 사람마다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하고 반드시 알고 이해해야 할 바이다. 네가 이 화제를 어떻게 대하든지, 어떻게 취급하든지, 이 화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이 화제의 중요성은 홀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실상,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한 것이지 숨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진리이고 실제이며 더욱이 사실의 진상입니다. 그럼 이 말씀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로부터 이 사실을 완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공개된 것이고 숨긴 것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으면서도 그분을 모를까요?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공개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이 공개된 것이고 그 어떤 한 사람에게도 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 말씀이 발표된 후 하나님 선민에게 공개되지 않고 종교계에 공개되지 않고 심지어 전 세계에 공개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공개된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도 공개된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도 공개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 때문에 공개된 것이겠습니까? 일부분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대부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들이 몰라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국에 은밀히 강림하여 하신 역사에서, 이 “은밀함”은 하나님의 성품이 숨겨졌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체로 공개적으로 나타나시지 않고 성육신의 방식으로 나타나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 못하기에 사람에게 숨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역사, 그분이 발표하신 말씀, 그분의 성품은 공개된 것이며 여태껏 숨기지 않았습니다.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발표하신 말씀은 중국 전역에 거의 다 전파되었고 전 세계에도 거의 다 전파되었습니다. 사실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고 하기보다는 각국에 다 전파되었다고 하는 게 낫습니다. 외국에 있는 중국인, 그리고 영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에서 다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공개된 것이 아닙니까? 단지 일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뿐인데, 그들은 진리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기에 보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아 그들에게 있어서는 숨긴 것입니다. 숨긴 것은 하나님께서 의식적으로 숨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발적으로 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것은 그 개인의 문제입니다. 누구에게도 전해서도 안 되고, 영어로 번역해서도 안 되고, 일어로 번역해서도 안 되고, 한국어로 번역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력을 다해 힘껏 복음을 확장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전 인류를 향해 시종 공개되고 숨기지 않았음을 설명합니다. 그 외 이방인들에게 숨기셨습니까? 이방인들에게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어렴풋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이방인들 중에서 악을 많이 행한 사람은 모두 보응을 받았는데 그들이 이 사실을 보지 못했겠습니까? 하느님이 천둥으로 적지 않은 악인을 격살하셨는데, 그들이 이 사실을 보지 못했겠습니까? 게다가 민간에 그렇게 많은 예언과 전설이 있기에 이런 사실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인정할 것이고 영이 없는 짐승만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영이 있는 산 사람이라면 다 인정하고 얼마큼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한 것이지 숨긴 것이 아니다.”라는 이 말씀은 사실이고 진리이며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이렇게 다년간 우리에게 공개되었고 우리도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믿고 따랐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도 모를까요?” 당신이 “모른다”는 것과 “하나님의 공개”는 모순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모른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거나 소질이 너무 낮은 이 두 가지 원인으로 초래된 것입니다. 사람의 소질이 너무 낮아 닿을 수 없기에 교통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안 되고 또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하나님의 성품이 아무리 공개되어도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 말씀에 더 이상 궁금한 게 없겠죠.

아래에 하나님께서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태껏 의식적으로 그 어떤 사람도 피한 적이 없고 여태껏 의식적으로 자신을 감추어 사람에게 그를 알지 못하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한 적도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은 시종 공개된 것이고 시종 솔직하게 각 사람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하게”란 그 어떤 꾸밈도 없다는 말인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든 당신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보게 하시고 사탄의 가공을 거치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인식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말하는 것이 어떤 때에는 솔직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 다 솔직하고 거짓말이 한 마디도 없으며 뒤섞임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거룩에 거짓말이 없고 꾸밈이 없고 속임이 없음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지, 모두 솔직하게 각 사람을 대하고 아주 투철하게 말씀하시며 사실대로 말씀하시고 하나면 하나이고 둘이면 둘이며 한마디로 정곡을 찌르시는데, 조금도 꾸밈이 없으십니다. 사람이 어떤 문화 수준이든지 어떤 소질이든지 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의 뜻을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겠습니다. 왜 빙빙 돌려 말씀하셨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으며, 아무도 “하나님께서 정말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소질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주 명확하고 솔직하고 진실하고 투철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며 사람의 말보다 더욱 명확하고 더욱 투철하여 심지어 일부 종교인들은 “이것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왜 이렇게 평범하고 통속적입니까?”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평범하고 통속적이라고 꺼립니다. 이는 바로 당신을 깨닫게 하기 위해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인데, 그렇게 빙빙 돌리지 않고 그렇게 점잖치도 않으며 더욱이 그렇게 심오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잘 깨닫게 하기 위해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에 대해서도 깨달았겠죠? 하나님 말씀이 이렇지 않다고 의심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믿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예컨대, 당신이 한 사람에게 사실대로 말했는데, 그가 당신이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이런 사람에게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제가 말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세요. 저는 당신과 할 말도 없거니와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의 소질이 부족하고 경력이 얕고 터득이 낮아서 사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았거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 말씀을 의심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의심한다면 바로 불신파인 것입니다. 자기 마음으로 남을 짐작하는 사람은 비열한 소인입니다!

다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면서 각 사람과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을 각 사람 몸에 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는 3단계 역사 중에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의 사역을 하시는 것은 “각 사람과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을 각 사람 몸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각 사람”은 어떤 사람을 가리켜 말하겠습니까? 진심으로 그분을 따르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진심으로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일부 사람은 마음으로 믿지 않는데, 성령 역사가 있겠습니까? 일부 사람은 이름만 걸고 믿고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조금도 마음을 안정하여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고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데, 성령 역사가 있겠습니까? 그 외에 일부 사람들은 겉으로는 진심으로 믿고 얼마간 버리기도 하고 본분도 어느 정도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고 진리도 추구하지 않으며 더욱이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란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한 편이 있는데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가 이 말씀과 관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과 관계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즉 하나님 경영 중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하나님께서 그의 몸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습니다. 누가 실례를 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지 않아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종교계의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지 않습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까?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습니까?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는 전 우주의 영의 사역을 전부 회수하여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 말씀과 관계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계에는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회수하여 온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경영 중에 있지 않기에 성령은 그들의 몸에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또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실증합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막연한 하나님을 믿으면 5대 종교에 속하는 사람”인데, “사람을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하나의 교파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교파이다.” 이 두 구절의 말씀도 그들이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지 않음을 실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종교에 열거하셨는데, “5대 종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대상이 아닙니다. 보세요,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으면 이런 뜻을 연관시킬 수 있고 한 가지 일에서 하나님 말씀의 많은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이 일을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이 그의 몸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진리이고 사실입니다.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는 이런 사역을 하는 동시에 부단히 그의 성품을 유로하고” 이 구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또 하나님 역사의 원칙을 발견했는데, 사람은 이 일을 마땅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품을 유로(流露)하심에 있어서 주로 어떤 방면에서 나타내시겠습니까? 몇 가지 방식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상고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품을 유로하시고 그분의 성품을 발표하심에 첫째, 말씀을 통해 그분의 성품을 발표하시고 그분의 성품을 유로하시며 둘째, 성령 역사를 통해 나타내십니다. 주로 이렇게 2가지 방면에서 그분의 성품을 유로하십니다. 그분의 역사를 통해 그분의 성품을 유로하시는데, 여기에 또 여러 방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방면이 있을까요? 어떤 때는 말씀의 심판 형벌의 나타냄 그리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고 어떤 때는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통해 그분의 공의, 위엄, 진노를 나타내시고 또 어떤 때는 징계와 징벌을 통해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시며 어떤 때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그분을 위해 화비(역주: 들이다, 바치다, 쓰다, 지불하다의 뜻)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또 긍휼과 자비가 조금 있고 인내도 조금 있는데, 이것도 그분의 성품을 나타낸 것입니다.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경력이 깊을수록 더욱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경력이 얕은데, 계속 경력하십시오. 어떻게 경력하든 모두 실증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사역을 하는 동시에 부단히 그의 성품을 유로하고”란 이 말씀이 진실하지 않습니까? (진실합니다.) 이 구절의 말씀은 진리입니까, 아닙니까? (진리입니다.)

계속해서 봅시다. “부단히 그의 실질로써, 그의 소유소시(所有所是)로써 각 사람을 인도하고 각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 구절의 말씀은 어떤 방면에서 경력할 수 있을까요? 하나는 그분의 실질로부터, 다른 하나는 그분의 소유소시로부터입니다. 그럼 당신은 그분의 실질을 어떻게 인식했습니까? 그분의 소유소시를 어떻게 깨닫고 인식하고 얻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단히 그분의 실질과 소유소시로써 당신을 깨우쳐 주고 빛비춰 주셔서 인식하고 얻게 하시는데, 이것은 그분의 실질과 소유소시로써 당신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소유소시와 하나님 실질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시고 이런 진리에 진입하게 하시고 이런 진리를 실행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실질, 그분의 소유소시로써 당신을 인도하고 공급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교통하니 깨닫기 쉽죠? 당신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는 것이 당신을 인도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순복(역주: 순종)하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당신을 공급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하는데, 실질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일까요? 아십니까? 하나님의 실질은 공의와 거룩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실질이고 생명의 실질입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도 그분의 실질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거룩은 더욱이 하나님의 실질이고 생명의 실질입니다. 그럼 이런 생명의 실질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인식하고 경력하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이런 진리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빛비춰 주어 우리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십니다. 인식한 후이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실질과 그분의 소유소시로써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에게 공급하심을 설명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욱 진실한 경배와 진실한 순복이 생기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너무나 거룩하고 너무나 공의롭고 너무나 좋아서 사람의 사랑을 받으실 만하고 순복과 경배를 받으실 만함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실질, 그분의 소유소시로써 당신을 공급하고 인도하시며, 당신도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로 말미암아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을 때, 특히 그분의 실질을 인식하게 될 때, 당신이 그분을 따르려는 마음이 더욱 커지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욱 진실해집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분의 실질을 인식하게 하고 이런 방식으로 당신을 인도하시고 당신에게 공급하시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분의 실질, 그분의 소유소시를 인식하게 하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마음이 들어 있겠습니까? 사람의 실질에 따르면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갈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할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할 자격이 있습니까? 만약 거지나 한 더러운 귀신이 땅에 엎드려 당신을 경배하면서 당신의 자녀로 되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러고 싶겠습니까? 싫겠죠? 그럼 당신은 왜 그러고 싶지 않습니까? 마음속으로 무엇을 느꼈기 때문입니까? 더럽고 메스껍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더러운 귀신 악령이 당신을 보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싫겠죠? 당신은 아주 큰 수치와 치욕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소유소시로써, 그분의 실질로써 우리를 빛비춰 주시고 인도하시는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하나님께서 파격적으로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음을 깊이 느낍니다! 만약 당신이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마음을 털어놓고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겠습니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분의 실질, 그분의 소유소시로써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 알고 있었습니까? 이 한 마디 말씀을 당신이 이렇게 인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임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심히 패괴된 인류인데,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누림이 있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께서 우리 이 한 무리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도 극대한 굴욕을 참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이것이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임임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지만 사람은 자격없음을 모른다면 그것은 사람의 이지와 양심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 말씀을 이렇게 교통하면 아시겠죠? 이렇게 교통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보세요, 이것이 터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교통해야만 깨달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인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됩니까? (안 됩니다.) 비록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공개된 것이지만 우리의 소질이 너무 낮아 마치 영이 통하는 기관이 없는 것처럼 볼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기에 반드시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이 인도하고 깨우쳐 주고 공급해 주어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공개된 것은 거짓이 아니지만 사람에게 진리를 깨닫는 기관이 없기에 반드시 사람의 교통과 사람의 공급을 통해 성령 역사의 깨우침을 얻어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입니다.

그다음 구절 말씀입니다. “매 시대, 매 단계에서 좋은 환경이든 아니면 열악한 환경이든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된 것이다.” 앞 구절의 말씀을 깨달았으니 이 말씀은 깨닫기 더 쉽지 않겠습니까? 이 구절의 말씀이 진리가 아닙니까?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이렇게 하시고 은혜시대에도 이렇게 하셨으며 율법시대에도 여전히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에서든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된 것입니다. 그 외에 매 시대, 매 단계, 그리고 또 매 단계의 좋은 환경이나 나쁜 환경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까지 하나님의 성품은 여태껏 사람에게 숨긴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 다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문제일까요? (사람의 문제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동안 환경이 안 좋아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거니까 하나님은 저를 탓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성립됩니까? 환경이 안 좋아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먹고 마시지도 않았다면 당신은 비겁하고 불신파임을 설명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밥 먹는 것이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까? 받지 않겠죠. 만약 어떤 사람이 “환경이 안 좋아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의 생명이 크지 못했어요.”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성립되겠습니까? 이 말은 사리에 맞지 않고 억지부리는 것입니다. 환경이 있을 때, 당신은 밥 먹는 것을 지체했습니까? 밥 먹는 것은 지체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은 왜 지체합니까? 이것은 모순되지 않습니까? 만약 밥 먹는 조건마저 없거나 허락되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조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밥을 먹을 수 있다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열악하든 열악하지 않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단지 예배할 때, 사람이 많으면 안 되니 두세 사람이면 괜찮겠죠! 만약 두세 사람이 예배하는 것도 당신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담이 작다면 혼자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쯤이야 문제되지 않겠죠! 어떤 사람은 겁에 질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엄두도 못 내는데, 그럼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을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 자신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음을 탓해야 합니다. 당신은 왜 밥은 굶지 않았습니까? 능력 있으면 밥도 굶어 보세요. 밥은 굶지 못하면서 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로 겁에 질려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책을 남에게 맡기고 자기 집에는 한 권도 남겨 놓지 않았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배반이 아닙니까? 바로 배반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는 “매 시대, 매 단계에서 좋은 환경이든 아니면 열악한 환경이든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된 것이다. 그의 소유소시도 각 사람에게 있어서 모두 공개된 것이다. 마치 그의 생명이 끊임없이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고 사람을 부축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어떤 시대에서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을 알아갈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손해 보는 것은 그 자신이 빚어낸 것이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음 구절입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은 감춰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이 부류의 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살고 있지만, 비록 하나님을 따르고 있지만 여태껏 하나님을 알아보지 않았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의 성품은 감춰진 것”입니다. 이 “감춰진 것”은 누가 초래한 것입니까? 사람이 초래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성령 역사가 없으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문이 닫힌 것이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통로도 막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감춰진 것이다”에서 이 “감춰진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그가 보지 못하게 자신을 숨겼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무슨 뜻일까요? 요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점을 인식하고 깨닫는다면 이 구절의 말씀을 인식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감춰진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일까요? 바로 그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끊어놓으셨고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그의 몸에 역사하지 않으시면 그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몇천 년을 산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몇만 년을 산다고 해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비밀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그를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그가 만 년을 연구한다고 해도 헛수고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한 갈래 길밖에 없는데, 바로 성령 역사에 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 역사가 아니라면 인류는 영원히 하나님을 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 이 “감춰진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몇 구절 교통했는데, 이제는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럼 여러분은 먹고 마실 줄 압니까? 중점을 잡아야 합니다. 일부 하나님 말씀에 대해 당신은 경력하는 것으로써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인지, 무엇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지를 실증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경력이 없다면 이 말씀을 인식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감춰진 것이다.” 이 말씀에서 “감춰진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감추셨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감춰진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감춰서 경로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뜻입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한 후, 그들은 무엇 때문에 에덴 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겠습니까? 에덴 동산으로 가는 길이 봉쇄되었기에 돌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길이 물질적인 길일까요? (영계의 길입니다.) 영계의 길은 물질적인 것으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은 감춰졌다고 하겠습니까? 다음에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이 부류의 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살고 있지만, 비록 하나님을 따르고 있지만 여태껏 하나님을 알아보지 않았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을 가리킵니까? 알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 아주 힘있게 믿고 어떻게 해도 떠나지 않으며 때리고 욕해도 가지 않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더욱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형용하겠습니까? “가까이하다”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무엇으로 접촉합니까? 바로 마음과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기도하기 싫어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기 싫어하며 한가하게 먹고 마시는 안락함 속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한 번도 진실한 교통을 하려 하지 않고 한 번도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마음속의 얘기를 하려 하지 않고 더욱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려 하지 않으며 운명이 마땅히 자신의 손에 장악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비록 몸은 하나님의 경영 중에 있지만 마음이 하나님과 매우 멀리 떨어져있기에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숨긴 것입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어떤 결과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 되든지 여전히 마비되고 멍청한 죽은 사람이어서 조금도 생각이 트이지 않았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더욱이 진리를 실행할 줄도 모릅니다. 하나님 집에서 진리를 교통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의 원칙과 실행의 길을 교통하면 그는 알아듣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영 안의 일에 대해 문외한이며 “벽에 대고 말하는 게 나을 정도로 앞뒤가 꽉 막혀 아무것도 모릅니다.” 남들이 영 안의 일을 흥미진진하게 줄줄 말할 때, 그가 한마디 끼어들면 다른 사람이 듣기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방해가 됩니다! 그것은 문외한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런 유형의 사람은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하게 하고 메스껍게 해 사람이 다 그를 멀리합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많습니까, 적습니까? 적지 않습니다. 적어도 3분의 1이나 3분의 2는 차지합니다! 당신이 그에게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면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합니다. 그는 ‘만일 내가 복을 못 얻으면 손해를 많이 보잖아? 나보고 그렇게 많이 버리라고 하는데, 난 속지 않을 거야! 뭐라도 얻는 게 있어야 포기를 하든지 하지. 하나님께서 내가 언제 복을 받는다고 정하시면 그때 가서 버리고 대가를 치르면 되는 거야. 지금 다 치렀다가 하나님이 예정하고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괜히 헌금하고 쓸데없이 버린 게 되잖아? 당신은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어리석지 않아! 그렇게 되면 오히려 주식을 사는 것보다 못한 거야. 주식을 사면 그래도 좀 벌 수나 있지! 나는 손해 볼까 겁나니 확신이 없으면 많이 버리지 않고 화비하거나 대가를 치르지 않을 거야!’라고 여깁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얻기 위해서인데, 그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일까요? 거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한다면 손해 볼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손해를 봐도 저는 달갑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면서 아무리 손해를 많이 봐도 저는 기꺼이 원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후회합니까?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고 조금도 얻지 못한 사람은 아마 좀 후회할 것입니다. 그가 조금도 얻지 못한 것을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가 얻지 못한 것이 하나님 집에서 잘 인도하지 못해서일까요, 아니면 진리를 적게 교통해서일까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가 진리를 너무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었어도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조금도 얻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화비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돈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은혜를 얻기 위해서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얻으면 생명이 있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지 당신이 얻는 것은 진리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당신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것은 사람 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받게 하시는데, 그 속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이렇게 더럽고 사악하고 깊이 패괴되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어 우리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고 그분을 따르게 하며 얻게 하시는데, 이것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임입니다! 만약 당신이 계속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뵐 면목이 있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고심을 헛되이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얻지 못하고 진리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고의로 그들에게 숨기셨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진리는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가까이하지 않고 빛을 얻지 못하고 진리를 얻지 못했는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여태껏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고 하나님과 마음속 얘기를 하지 않았으며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닫히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 아닙니까? 성령 역사의 길을 막아버린 것이 아닙니까? 막아버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해 숨으십니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 하나님을 피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해 숨으신 것입니까? 당신의 멀리함으로 인해, 당신의 피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해 숨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진리가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실증하겠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진리를 교통하는 것이 일부분 사람에 대해서만 말합니까? 모든 사람에게 말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들었고 듣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왜 일부 사람들은 제명되고 격리되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다년간 믿으면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갖은 악을 다 행했기에 나중에 그를 제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신이 초래한 것입니다. 당신이 계속 그에게 진리를 교통한다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는 것이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일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믿자마자 하나님 집에서 그를 제명했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믿자마자 하나님 집에서 그를 B조에 보냈습니까? 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솔자, 소구역 인솔자 지위를 줬지만 나중에 악을 많이 행하여 격리되고 제명당했는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누구에게나 이미 충분한 기회를 주었는데 그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고 자업자득한 것입니다! 그는 지위만 추구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진리를 얻지 못했는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일단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그의 결말이 임했음을 뜻하고 그가 하나님의 성품에 심판받고 정죄받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마음 상태가 틀린 것입니다. 그는 악만 행했기에 심판과 형벌을 두려워하고 자기의 결말을 보기 두려워하고 정말로 격살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한 짓을 많이 하면 반드시 자멸하게 된다.”는 중국의 속담을 응한 것입니다. 그는 갖은 악을 다 행하고는 감히 하나님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마주하고 하나님을 이해하기만 하면 자기 스스로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아 마음이 편치 못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 때문에 회개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성품이 흉악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불의만 사랑하고 흑암만 좋아하며 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도태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협력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즐겁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하나님을 믿으며 자기 마음속의 상상 속의 하나님, 관념 속의 하나님을 믿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과 ‘떨어질 수 없는’ 한 분의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믿는 것은 참 하나님이 아니고 상상 속의 하나님이고 관념 속의 하나님입니다. 그가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은 그를 잘 대해 주고 그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황당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헛된 생각을 사실로 여기는데, 이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종교계의 사람들 다수가 이런데, 정말 황당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그 하나님이 사랑이셔서 그가 죄를 얼마나 지었든지, 무슨 죄를 지었든지 다 긍휼히 여기고 사해 주시며 예수님의 보혈이 그의 몸에서 영원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에게 진리의 말씀,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를 교통하면 그는 즉시 당신을 욕할 것입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이 말씀 안 읽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안 읽으면 그만이죠.” 그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이렇게 믿으면 당신이 어떤 죄를 짓든 예수님의 보혈이 당신을 씻어 줄 겁니다!” 이것이 그릇된 이론 아닙니까? 예수님의 보혈은 어떤 사람의 몸에서 유효할까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몸에서 유효하고 슬기로운 처녀의 몸에서 유효합니다! 미련한 처녀의 몸에서는 효과가 없고 참 도임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범죄하는 사람 몸에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목사들은 그릇된 이론으로 사람을 미혹하지 않습니까? 적그리스도들은 그릇된 이론으로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는데, 이 말은 맞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바보들은 아직도 이런 허튼소리를 믿으면서 날마다 멍청하게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자신이 상상하는 그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느 날엔가 화를 당하면 울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중에 그는 “제가 믿던 하나님이 진짜가 아니네요. 저를 구해 주지도 않으니 안 믿을래요!”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예수님을 상상 속의 하나님으로 여기다가 나중에 상상 속의 하나님이 “신령”하지 않을 때, 또 예수님을 원망하고 참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은 생트집을 잡는 것이고 막무가내인 것입니다! 이 구절의 하나님 말씀이 불신파의 마음속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에 대한 하나의 폭로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한 가지 정형을 폭로하는데, 즉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황당한 일이 바로 자신의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즉 늘 자신의 상상 속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자신의 상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대체하며 자신의 상상으로써 하나님의 실질을 대체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방적인 소망이 아닙니까? 이것은 사람이 우매한 것입니다! 보세요, 어떤 부부는 무엇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합니까? 부인이 항상 자신의 상상으로 남편을 대하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휴, 자기야! 이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하면 그녀의 남편은 “왜 안 돼?”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또 “자기는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라고 하면 남편은 “여보! 이렇게 하면 안 돼!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늘 그의 상상으로 상대방에게 요구하는데, 이것이 적합합니까? 이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당신의 상상은 표준이 아니고 진리가 아니며 누구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상상을 당신은 이룰 수 있습니까? 당신 자신도 이룰 수 없으면서 누구에게 요구합니까? 다른 사람도 진짜 사람이고 살아있는 실제 사람인데, 당신이 늘 당신의 상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대체하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면 맞지 않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제가 상상한 대로 저를 대해야 해요.” 이렇게 늘 자신의 마음속에서 상상하는 하나님으로 참 하나님께 요구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상상과 같겠습니까? 당신의 그 상상은 무엇입니까? 그 상상 자체가 공허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실제적이지 않고 환상이며 허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상상처럼 그러하시다면 당신이 하나님이 되었겠죠!

이전에 제가 일부 사람들을 대처했더니 그들에게 관념이 생겼는데, 그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제사장으로 쓰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쓰셔서 우리를 이끌게 하실 수 있습니까? 참 골치 아픕니다! 그는 저를 대처하기만 합니다. 저하고 말할 땐 좋은 말투가 없이 대처만 하고 저를 안 좋게 봅니다!” 그럼 제가 당신을 안 좋게 보는데, 누가 또 당신을 좋게 보겠습니까? 당신의 가족입니까? 당신의 친척과 친구들입니까? 제가 당신을 대처하는 것은 당신에게 틀림없이 문제가 있음을 설명하는데, 왜 인식하지 못합니까? 왜 자신을 반성하지 않습니까? 보통 형제자매를 제가 대처합니까? 당신이 인솔자로서 한 일이 황당해서 당신을 안 좋게 본 것인데, 잘못됐습니까? 제가 당신을 달래야 한단 말입니까? 또 당신에게 가식적으로 온화한 것처럼 가장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거짓을 꾸미지 못합니다! 분명히 당신 성품이 오만한데, 제가 “당신은 아주 겸손하네요! 정말 사랑이 있군요! 탄복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고 거짓말입니다! 저는 거짓말할 줄 모릅니다.

계속해서 읽겠습니다. “진실된 하나님 자신에 대해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상대하려고도 하지 않고 더욱이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발표한 말씀으로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이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절정에 이르렀고 하나님을 마음속 깊이 믿었다고 여긴다.” 이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자신의 심령 깊은 곳에 하나님과 진실한 교제가 없고 주관적인 소망에서도 하나님을 알려 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 오히려 많은 일을 했습니다. 겉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발표한 말씀으로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포장”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 말씀을 말하고 글귀 도리를 말하며 하나님 말씀을 아주 잘 외우는 것으로 항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뽐내고 자신을 드러내며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포장하려는 목적을 이룹니다. “제가 얼마나 영적입니까! 보세요, 제가 진리를 얼마나 많이 깨달았는지! 저와 하나님의 관계를 보세요! 제가 얼마나 사역을 잘합니까!” 그들이 이렇게 자랑한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속임을 당하고 미혹되어 “정말 믿기도 잘 믿고 진리도 잘 추구하고 사역도 잘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네요! 하나님이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보세요! 설교도 잘하지, 하나님 말씀도 인용할 줄 알지, 진리도 교통할 수 있고 하나님도 증거할 수 있으니.”라고 부러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그를 숭배하고 그를 치켜세우고 그를 찬성하며 속으로 탄복하면서 그를 에워싸고 돕니다. 이렇게 되자 그는 더욱 이렇게 생각합니다. ‘난 하나님을 정말 잘 믿었어! 내가 절정에까지 믿어서 하나님을 얻은 걸 다들 봤겠지? 당신들은 나처럼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인용해 설교하고 교통할 수 있어?’ 사실 그는 마음이 공허하여 하나님과 진실한 관계가 없고 진실한 성령 역사가 없으며 더욱이 성령의 온전케 함을 경력하지 못했고 하나님 말씀에서 고통을 얼마 받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공허한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사람은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글귀 도리는 유창하게 줄줄 말하지만 진리의 실제가 조금도 없고 하나님 선민을 공급할 줄 모르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의 모든 어려운 점에 대해서도 진리로 해결하지 못하고 글귀 도리만 말하고 자신을 자랑하기만 합니다. 이런 사람을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라고 하며 종교 목사들과 다른 구별이 없습니다. 단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만 내건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일 뿐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상상과 관념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규정이 그들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진실된 하나님 자신은 그들과 무관하다.” 이 구절에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그들의 상상과 관념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규정”이 그들을 이끌고 그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결코 진실된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 더욱이 성령 역사가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는 것이겠습니까? 진실된 하나님 자신일까요? 그들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의 그 한 분의 하나님을 믿는데 진실된 하나님 자신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 종교계의 사람은 진실된 예수님 자신을 믿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역시 그들의 관념과 상상 속의 그 예수님을 믿는데 진실된 예수님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신파에 속합니다! 실제 하나님을 놓고 말하면 그는 불신파이고 그의 관념 속의 하나님, 상상 속의 하나님, 막연한 하나님, 비실제적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지만 실제상 그들의 상상과 관념 속의 하나님을 믿는데 진실된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있어서는 불신파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여태껏 인정하지 않으셨고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그들이 설교하고 사역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의 사역과 설교는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을 해치는 것이기에 악을 행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정죄가 성립되지 않겠습니까? 진실하지 않겠습니까? 진실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는 진리이고 공의로운 심판 형벌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합니다. 그럼 만약 진실된 하나님이 나타나 이런 적그리스도, 거짓 인솔자에게 진노를 발하신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틀림없이 악에 받쳐 하나님을 적대하고 하나님과 날카롭게 맞서서 하나님 선민을 쟁탈할 것입니다. 종교계의 적그리스도들이 이렇게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집의 적그리스도도 인솔자 일꾼들과 적대하기 시작하고 인솔자 일꾼들을 정죄하고 성령이 쓰시는 사람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감히 하나님을 직접 대적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만약 직접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하나님 선민에게 버림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분노와 원한을 다 성령이 쓰시는 사람과 진리를 추구하는 인솔자 일꾼에게 집중시키고 이 사람들을 정죄하고 무너뜨려 지위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적그리스도가 나중에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사탄 본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진실한 몰골이 사탄의 본성이고 마귀 사탄이며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으로 이미 드러났음을 증명하는데, 원형이 끝내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최후에 정죄받고 징벌받고 도태됩니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여러분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 간단한 일입니까? 경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경력이 없이 머리로만 제멋대로 상상하고 제멋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길이 좀 생겼습니까? 그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 대해 깨닫지 못했는지 제기해도 됩니다.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언제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보아도 교통할 줄 모르고 상고할 줄 모르면 어떻게 진입하겠습니까? 그럼 진보하는 것이 안 보입니다. 늘 문제가 없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부단히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항상 새로운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늘 새로운 문제가 있다면 무엇을 증명하겠습니까? 당신이 정말 마음을 써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못하면 당신이 마음을 쓰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항상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겠습니까? 당신이 먼저 사람의 생명이 되는 말씀을 먹고 마셔서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 정도를 실행으로써 운용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운용할 수 있을 때, 나중에 당신이 관념과 상상대로, 사탄의 철학대로 살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진리대로 살게 될 때, 구원받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구원받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경로이며, 진리를 얻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입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3년 믿고 하나님 말씀 30구절과 30가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때 당신은 기껏해야 하나님 말씀 5구절과 5가지 진리밖에 실행할 수 없다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생명 진입이 깊을까요? 누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실행했는지를 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몸이 건장한 근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음식에 달렸는데, 먹어서 영양이 많고 영양 흡수가 잘 되면 그는 건장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어떤 사람은 아주 뚱뚱하고 키도 훤칠하지만 밥도 적게 먹고 흡수도 잘 안 된다면 그에게 힘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에게 왜 힘이 없을까요? 식사량이 너무 적고 그 외 당신 몸에 흡수된 영양 성분이 너무 적고 위가 약하기에 몸이 안 좋고 체질이 조금만 나빠져도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는 것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일을 시켜봐서 무거운 짐을 들 수 있는지, 멜 수 있는지에서 나타납니다.

사람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 분량이 큰지 작은지를 어떻게 가늠합니까? 진리를 얼마 깨달았는지, 진리를 얼마 실행했는지에 근거하면 틀림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분량이 크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에 근거해 말할까요? 진리를 교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한 방면이고 그 외에 그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이 있는지에 근거합니다. 이 2가지에 근거하면 됩니다. 당신이 “이 사람이 겉으로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정확하게 말하고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보는데, 매우 효과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외적인 눈이 좋아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능력이고 진리를 깨달은 능력이지 겉면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 외에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어떻게 도달한 것이겠습니까? 그가 경력이 깊고 무슨 일이든 다 경력했기에 어떤 일이 닥치거나 무슨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척 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는 것입니다. 그가 경력해 봐서 알기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그에게 이런 실제가 있고 이런 능력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당신이 경력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인솔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문제의 실질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지 못해 도대체 거짓 인솔자인지, 적그리스도인지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한 가지 일에서 그가 잘못했고 이 한 가지 일에서 말을 잘못했다는 것만 알았지 그의 실질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했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진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네.) 그럼 진리가 있다면? “당신이 그에 대해 더 말해 보세요, 두세 가지 일을 말하면 제가 그 일에서 그를 분별하고 해부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의 일을 본대로 분명히 말하고 그가 무슨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말한다면 저는 그와 지내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면 대단한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이 일에 대해 잘 경력하고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한 할머니한테 가서 어떤 소녀에 대해 어떤지 봐달라고 했을 때, 그 할머니가 정말 머리가 좋다면 한평생 살아왔기에 그 소녀를 평가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한평생 여자로 살아왔기에 그 소녀가 커서 어떤 인물이 될지,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될지 척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경력이 많으면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가정의 연장자가 머리가 좋다면 키를 잘 잡을 것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닥치거나 세상에 무슨 동란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보고 조언을 해 준다면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경력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외적인 일이니 경력이 많고 아는 것이 좀 있으면 좋습니다! 진리에 관계되는 일을 많이 경력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아주 쉽게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과 생명 진입에서 어느 절차가 가장 관건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관건입니다. 그럼 지금 당신은 진리를 얼마나 얻었습니까? 도대체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실행하고 경력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다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것도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서 연습도 하지 않고 훈련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당신이 인솔자가 되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합니다. 예를 들면 한 가지는 성실한 사람에 관한 진리인데, 아주 관건입니다. 이 진리를 투철히 경력하면 누가 간사한 사람이고 누가 성실한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하고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안 가는지 척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진리를 당신이 확실하게 경력했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과 적대하는 것인지 당신은 척 보기만 해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한 방면의 진리를 확실하게 경력하면 그 방면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다 아주 쉽고 식은 죽 먹기입니다! 당신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줄 알고 하나님 말씀을 경력할 줄 알고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명 진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관한 진리를 확실하게 경력했다면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라고 말할 때, 당신은 이 말을 듣자마자 그가 경력을 했는지 못했는지, 그가 진입했는지 못했는지를 알게 되므로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경력하는 가운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는 사역을 할 수 없습니까? 여태껏 진리를 실행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어떤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대해서도 다 진실한 경력이 없기에 사람의 생명 경력 진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간단해졌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무엇이 관건입니까?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얼마큼 실행하면 얼마큼 얻을 수 있으며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글귀로만 말한다면 진리를 조금도 얻을 수 없습니다.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가 바로 이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글귀로만 말하고 진리도 글귀로만 말한다면 아무런 진리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경력이 없고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경력”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방면의 진리에 대해 투철히 교통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까? 진실한 경력, 실행과 관계있습니다. 당신에게 만약 경력과 실행이 없다면 글귀로만 말하게 되는데, 당신이 아무리 말해도 실제가 없습니다. 방금 교통한 하나님 말씀 몇 구절은 제가 경력한 것이기에 저는 척 보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뜻이 무엇인지, 무엇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지를 압니다. 당신이 경력이 없으면 모르고 교통하다가 다른 화제로 넘어가고 교통하다가 상상에 의하고 교통하다가 오해가 생기며 교통하다가 실수하게 됩니다. 어떤 일들에 대해서 저는 경력이 없기에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저에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요?”라고 물으면 저는 “이 일은 제가 경력하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 이 일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으니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 집의 사역에 효과가 있고 어떻게 해서 하나님 집의 확장 사역에 유리하면 그렇게 하는 쪽으로 함께 연구 토론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제가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면 하나님 집을 해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그리고 나서 여러분의 의견을 물어보고 여러분에게 원칙을 알려 주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사역을 확장하는 데에 유리하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함부로 아는 척해서 됩니까? 아는 척해서 쓸모없습니다. 하나님 집을 해칩니다. 어떤 일이든 아는 척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다음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할까요?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에서 두 부류의 사람을 언급했습니다. 한 부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데, 그는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간절하게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며 진리를 얻고 싶어 합니다. 다른 한 부류는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진리를 대하기 싫어하고 더욱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싫어하며 일단 진리를 깨달으면 그가 한 것이 심판받아 마음이 불안해지고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 사람들은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 말씀에 대해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이고 참답게 구하지 않고 읽어도 형식만 갖추고 읽는다 해도 하나님 역사의 비밀을 알아보고 싶어서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려 하시는지를 봐서 하나님 역사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것일 뿐 결코 진리를 추구하거나 진리를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두 부류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진리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는가의 여부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를 수 있는가의 여부를 결정하며 나중에 두 부류 사람의 서로 다른 운명도 결정합니다. 지금 일부 사람은 사실 하나님 말씀을 적지 않게 읽었습니다. 5~6년, 7~8년, 어떤 사람은 심지어 10여 년 읽었는데, 진리를 조금이라도 실행했습니까? 그가 본분을 하는 것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진리의 실제가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람이 다년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것이 도대체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철저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가 하나님을 이렇게 다년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형식적으로 먹고 마신 것이 아닙니까? 건성으로 대한 것이 아닙니까? 그가 만약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정말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조금도 깨닫지 못하거나 조금도 실행하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못합니다. 그럼 그가 실행한 것은 다 무엇이겠습니까? 그가 무슨 원칙으로 일을 처리하고 본분을 하고 말을 했겠습니까? 틀림없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자기 뜻대로 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자기를 수호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도 사탄의 본성에 속하지 않습니까? 조금도 변화가 없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여전히 천연적인 옛 사탄이 살아있고 옛 사탄이 권력을 잡고 있는데, 이런 사람은 무용지물이 되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은 어디에 가서 본분을 하든지 환영을 받지 못하고 어느 교회에 가서 말을 하든지 듣는 사람이 없고 일을 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보는 사람마다 싫어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다년간 믿었어도 진리가 조금도 없으면 마치 한 마리의 파리와 같아서 어딜 가든지 환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파리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쥐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쥐는 어떤 놈입니까? 쥐는 전적으로 훔치는 놈인데, 양식을 훔쳐먹고 기름을 훔쳐먹고 제물을 훔쳐먹으며 누림을 탐하면서 캄캄한 구석에서 삽니다. 일부 사람들이 이런 쥐와 같은데, 무엇을 해도 남몰래 하고 조금도 광명정대하지 않으며 광명 속에서 살거나 광명 속에서 일을 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도 눈치를 살핍니다. 왜 눈치를 살피면서 말하겠습니까? 매번 말할 때마다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옆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사람이 있는지를 보며 어떤 사람과 말을 할 때마다 ‘말할까, 말까?’라고 고민하고 눈을 깜박이며 궁리한 다음 다시 말합니다. 이것이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닙니까? 아주 간사하지 않습니까? 보세요, 어떤 사람은 말을 할 때,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옆을 보거나 위를 보는데, 표정이 비정상입니다. 이것이 사람 말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사람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 사람은 사람다운 말을 하지 않고 사람다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권력을 잡으시는 것을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힘듭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진리를 실행하라고 하거나 그들을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하려면 그것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힘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될 놈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부르짖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입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겉치레로 하는 것이고 좋게 보이려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보세요, 이것이 겉치레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겉치레를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외식한다고 합니다! 겉으로 경건한 모습을 사람에게 보여 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게 하고 미신하게 하고 그를 받아들이게 하고 그를 존중하게 하지만 사실은 다 가장한 것이고 다 꾸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너무나 위장을 잘합니다.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기도는 왜 합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사람이 진리를 실행해야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해야 그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고 진심인 것입니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다 가장한 것이고 다 위장한 것입니다. 그는 실제의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막연한 하나님, 자기 마음속의 상상 속의 그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기에 그의 신앙은 거짓인 것입니다.

방금 이 단락의 하나님 말씀에서 주로 무엇을 말했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진리를 대하는 것과 하나님 역사를 대하는 두 부류 사람의 실질을 말했습니다. 이 두 부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 역사를 대하는지 하나님 말씀에서 해부했습니다. 해부한 다음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대했습니까? 당신의 모든 행위가 만일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처럼 그렇다면 당신은 빨리 인식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계속 그렇게 믿는다면 위험하며 철저히 자신을 망치게 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헛수고로 되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기간에 하나님 선민은 모두 자신의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은 본분을 하면서 자신의 진실한 간증을 글로 썼는데, 하나님 선민에게도 도움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매우 만족스러워하시면서 이런 좋은 간증글을 ≪이긴 자의 간증≫이란 이름으로 책을 인쇄할 계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의 간증문들을 반드시 먼저 검사해서 뒤섞임과 거짓을 없애야 한다. 거짓 간증이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의 간증은 반드시 절대적으로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함은 더러운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누가 이 책에 거짓 간증을 써넣은 것이 발견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정죄받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간증에 독극물을 넣고 하나님의 간증에 거짓을 꾸미고 거짓말을 섞어 사탄에게 약점을 잡혀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장 혐오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 집에서 일단 발견하면 즉시 제명해야지 절대로 가만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간증에 거짓말을 섞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고의로 사탄에게 약점을 잡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싸움을 하고 있는데, 당신이 암암리에 사탄을 도와주고 사탄이 약점을 잡도록 하나님의 간증에 거짓을 꾸미면 영계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거짓을 조작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뒤에서 거짓을 조작해 사탄에게 약점을 잡혀 나를 욕되게 하는데, 내가 너를 가만둘 수 있겠느냐? 나는 너까지 사탄과 함께 처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가장 혐오하십니다. 당신에게 간증이 없으면 간증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거짓을 조작하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당신이 공공연히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며 당신이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당신이 거짓을 조작하는 것은 사탄을 도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간증에서 약점을 잡아 하나님을 욕되게 하려 하지만 참된 하나님 자민의 몸에서는 약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탄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사탄으로 하여금 약점을 잡게 하여 영계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면 이것이 사탄에게 속한 앞잡이가 아닙니까? 이것이 사탄과 한패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유다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 아닙니까? (더욱 가증스럽니다.) 거짓이 섞인 간증은 다 없애야 합니다. 동영상도 전부 없애야 하며 거짓을 조작한 사람도 제명해야 합니다.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 거짓을 조작한 자는 전부 제명해야 하며 절대로 가만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앞잡이입니다! 사탄이 영계에서 하나님을 비웃습니다. “하나님, 보세요! 하나님 자민의 간증들이 다 거짓이 섞였고 과장이 섞였어요!” 일부 하나님 선민은 사탄이 영인 줄 모르고 그것이 일부 일들은 알고 있고 알면 참소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너의 간증은 다 거짓이야!” 보세요, 당신의 약점을 잡고 참소하는데, 하나님께서 거짓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서는 거짓을 만들어낸 사람을 제명해야 하고 절대로 가만둬서는 안 됩니다. 하나 잡으면 하나 처리합니다! 간증에 거짓이 섞이면 사탄을 크게 도와주는 것이고 당신이 사탄의 간첩이 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원수가 아닙니까! 일부 사람들이 처음에 간증을 할 줄 몰랐고 원칙이 없었던 것은 용서할 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서 조금씩 진리를 교통하고 원칙도 교통하니 이제는 분명해졌습니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공공연히 거짓을 조작한다면 하나님 집에서 사정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단호히 처리해야 합니다. 그럼 어떤 상황이라야 거짓을 조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간증을 굳게 섰다고 했을 때 진실한 간증의 기초에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조금 보태고 하나님 말씀을 좀 인용해 보태는 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이 아닐까요? 간증이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와 그가 인용한 하나님 말씀은 진실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감옥에서 기도를 할 때가 당신이 그 간증문을 쓸 때보다 더 많지 않습니까? 만약 당신이 간증에 다섯 번 기도했다고 썼을 때, 사실 감옥에서 다섯 번만 기도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몇 번 기도했겠습니까? 아주 많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항상 기도하는데 조금 있다가는 또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당신의 간증에 기도를 두 번 보태고 하나님 말씀을 인용한 것을 두 번 보태는 것은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의 기도가 적지 않고 쓴 것보다 많아서 일부는 당신이 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좀 보충해 사람들에게 더욱 도움이 된다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이 간증을 이미 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한 사람이 감옥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 말씀이 그에게 임한다면 한 글자도 빠짐없는 완전한 한 단락의 말씀이겠습니까? 대체적인 뜻이지 누구도 그렇게 많이 외울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생각나는 것은 보통 한 단락에서 몇 구절 말씀이나 대체적인 뜻인데, 그것은 사람의 기억이 유한하기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간증을 쓸 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다 써서 성령의 깨우침으로 생각난 한두 마디 하나님 말씀을 보충한다면 거짓을 조작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때 사람은 그렇게 많이 기억하지 못했고 기억한 것도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사람에게 생각나는 것은 다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하나님 말씀인데, 그 하나님 말씀에 의해 굳게 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더 보태는 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 단락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충하는 것은 더욱 거짓을 조작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간증이 진실한 기초에서만 보충할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간증을 서지 못하고도 그가 섰다고 말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그가 유다가 되고서도 유다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그가 징역살이를 하지 않고 구류만 됐었는데, 구류를 징역살이를 했다고 하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이 그를 한 번 때린 것을 그가 5~7번 때렸다고 말하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사실상, 어떤 사람은 자백서를 썼으나 쓰지 않았다고 하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이 몇 가지 일은 모두 문제의 실질에 관련됩니다. 이 몇 가지 일을 당신이 하고서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한사코 간증을 굳게 섰다고 말하면 이 간증은 거짓입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간증을 인정하지 않고 없앱니다. 이런 거짓 간증을 하나님 집에서는 반드시 제거하고 폐기해야 하며 그런 다음 거짓 간증을 한 이 사람을 제명해야 합니다. 그가 자백서를 썼다면 B조로 안배할 수는 있어도 A조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이것은 거짓 간증에 속합니다! 거짓 간증을 하면 유다와 마찬가지로 처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만하는 것이고 사탄에게 약점을 잡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간첩 역을 하는 것입니다! 거짓 간증을 하는 자에 대해서 반드시 엄격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어떤 간증이 거짓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뒤섞임만 좀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한 번 맞고서도 두 번 맞았다고 하면 뒤섞임이 조금 있는 것인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름 동안 구류당하고는 6개월을 구류당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간증이 기본적으로 사실이고 작은 부분에서 조금 보태고 조금 고치고 삭제하거나 줄이는 것은 됩니다. 하지만 간증은 반드시 기본적으로 사실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제입니다. 간증의 중요한 부분은 고치면 안 됩니다. 또 예를 들면 사람의 이름, 지점을 고치는 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만약 어느 도시에서 잡혔다고 말하면 조사당할 수 있기에 그 도시를 언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고치고 교도소 위치를 고치고 공안국의 이름을 고치거나 당신의 나이와 직장을 고치는 것은 큰 붉은 용을 속이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이 사람을 잡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며 간증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것을 고치는 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하지 않고 지혜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이 일을 알아볼 때, 이 사람을 찾을 때, 사실은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당신이 만약 만들어내거나 왜곡한다면 이 간증은 바로 가짜인 것입니다. 간증은 반드시 진짜이고 기본적으로 사실이어야 합니다. 간증에서 외적인 것을 고쳐도 되는 것은 사람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외적인 것을 고치는 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고친 것이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붉은 용이 당신을 잡을 수 있습니다. 간증의 실질은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 이것을 확정한 후, 어떤 부분은 고쳐도 되고 어떤 부분은 반드시 지혜를 강구해야 하는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지혜를 강구해야 할 이런 부분은 큰 붉은 용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고친 것이기에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가 굳게 서지 못했는데, 한사코 굳게 섰다고 말하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그가 구류만 당하고 징역을 선고받지 않았는데, 징역을 선고받았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그가 유다가 되지는 않았지만 자백서를 썼으면서 쓰지 않았다고 말하면 이것도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지 않고 그저 의식불명이었을 뿐인데 한사코 죽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에 속합니다. 어떤 사람이 보름 동안 구류당했으나 반년을 구류당했다고 하면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3~4번 구타당했는데 한사코 10여 번이나 구타당했다고 말하면 이것은 거짓을 조작한 것입니다. 그럼 어떤 부분은 고치면 안 될까요? 당신이 도대체 몇 번 구타당했는지는 기본적으로 사실이어야 하며 도대체 얼마 동안 잡혀있었는지 이것도 기본적으로 사실이어야 합니다. 징역을 선고했는지, 몇 년 선고했는지, 구치소에 얼마 동안 있었는지 이런 것은 다 사실이어야 합니다. 또한 당신이 설사 유다가 되지 않고 간증을 굳게 섰다 해도 자백서를 쓰지 않아야 진실한 간증입니다. 당신이 만약 간증을 굳게 서서 유다가 되지는 않았지만 자백서를 썼다면 이것도 진실한 간증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자백서를 썼지만 당신이 모르는 상황에서 강제로 손목을 잡혀 썼다면 이것은 괜찮습니다. 당신이 만약 얻어 맞아서 정신을 잃었음을 모른다면 이렇게 써야 합니다. “저는 얻어 맞아서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런 것은 거짓을 조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간증의 실질의 주요한 몇 가지 방면인데,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 간증하면서 기도한 횟수에 관해서 당신이 3~5번 기도했다고 썼지만 사실상 당신이 정말 3~5번만 기도했습니까? 백 번도 넘을 것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기도했고, 성령이 어떤 말씀과 어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 주셨는지 정리하여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이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상고나 터득 혹은 당신의 연약을 조금 덧붙일 수도 있습니다. 연약에 관한 말을 쓴 것이 완전하지 않고 구체적이지 못하면 몇 마디를 더 보태도 됩니다. 이것은 바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방면의 작은 부분이기에 덧붙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간증을 굳게 섰기에 당신의 기도에 틀림없이 이런 것이 있을 것입니다. 간증문에 5번 기도한 것을 썼어도 사실상 사람이 옥살이하면서 기도를 몇 번만 했겠습니까? 몇십 번, 몇백 번도 더 될 것입니다. 그 외 사람이 감옥살이하는 동안에 생각한 것, 상고한 하나님 말씀과 상상한 것 등 각 방면은 간증문에 쓴 것보다 훨씬 많은데, 다 쓴다면 몇 페이지가 아니라 몇백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쓴 것이 간단해서 당신이 완전하게 다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증이 반드시 진실해야 완전하게 할 수 있으며 진실하지 않으면 완전하게 다듬지 마십시오. 간증이 거짓이라면 당신이 아무리 많이 써도 여전히 지어낸 것입니다. 참된 간증은 당신이 조금만 덧붙이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참된 간증과 거짓 간증을 분별하는 원칙을 방금 다 말했습니다. 바로 이 몇 가지입니다. 무엇이 거짓을 조작하는 것인지도 다 말했으니 여러분도 다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거짓 간증을 하는 것은 어떤 성질의 문제입니까? 간단하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문제입니까? 그의 실질은 사탄의 앞잡이이고 유다보다 더 가증스럽습니다. 사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점을 잡아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에 유다보다 더 가증스럽습니다! 거짓 간증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을 명목으로 하지만 실질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탄으로 하여금 약점을 잡아 하나님을 공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싸움에서 사탄의 도구가 되고 사탄의 염탐꾼이 되어 하나님의 간증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가증스럽고 마땅히 더 저주받아야 합니다. 거짓 간증을 한 사람은 간증이 없는 사람보다 더 중한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렸고 하나님의 행정을 거스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제명해야 합니다. 경력 간증문은 반드시 진실해야 하고 절대로 거짓을 조작해서는 안 됩니다. 동영상으로 만들려고 하는 간증문은 반드시 먼저 확인을 한 후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어느 목회 구역에서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동영상을 만든다면 그것은 거짓을 조작하는 것에 속하기에 책임을 추궁해야 합니다! 이 사역은 목회 구역의 사역자가 직접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영화를 만드는 간증문은 반드시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고 진실함을 보증해야 합니다. 영화가 만약 진실하지 않으면 더욱 안 됩니다. 그럼 그런 영화도 폐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간증을 하는 것도 거짓을 조작한다면 이런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것은 마귀입니다! 마귀가 간증을 하는 것은 다 거짓을 조작하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평소에도 참말을 해야 합니다. 간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관련됩니다. 이 일에서 거짓을 조작한다면 얼마나 큰 거짓말을 해야겠습니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거짓 간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당신이 평소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개인의 일이지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거짓말을 좀 하는 것은 하나님과 별로 큰 관계가 없고 단지 당신의 인성 문제이고 패괴 성품 문제일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간증을 함에 있어서 거짓을 조작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중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것입니다! 이 문제는 성질이 엄중합니다! 사탄을 도와 약점을 잡고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에서 암암리에 사탄을 도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실패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간첩이 아닙니까? 이것이 사탄의 첩자가 아닙니까? 참된 하나님 자민의 간증은 다 진실한 것입니다. 하나면 하나이고 둘이면 둘이며 감히 거짓말을 반마디도 하지 못하고 거짓을 조금도 섞지 못합니다! 성경 속의 간증을 보십시오. 욥의 간증, 아브라함의 간증은 다 원말이고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쓴 것입니다. 누가 함부로 거짓을 섞는다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것입니다!

지금 수리 대처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수리 대처가 없으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이 없고 악을 행하기 쉽습니다. 수리 대처를 많이 경력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일부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을 읽기만 하면 완전히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역사를 통해야 하며 또 수리 대처와 시련 연단이 있어야 진리의 실제에 진정 진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수리 대처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이 방면에 대해 경력이 있게 되었고 어느 방면의 본분을 하든지 수리 대처를 떠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고 모두 오만 자대한 본성이 있기에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임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그래도 수리 대처입니다. 양심 이지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대처 수리를 대함에 있어서 비록 마음은 괴롭지만 그래도 순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순복할 수 있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대견한 것입니다. 수리 대처에 순복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고 다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이며 수리 대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매우 위험합니다. 첫째,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제에 진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둘째, 그들이 어떻게 믿든지 진리를 얻기 쉽지 않고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주 위험합니다. 교회에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수리 대처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압니까? 어느 부류의 사람이 시종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이런 사람은 어떤 성질에 속합니까? 이 일을 만약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무엇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겠습니까? 당신이 사람의 실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미혹되기 쉽고 사람을 잘못 따르기 쉬우며 원수를 친구로 삼기 쉽기에 사람이 수리 대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에 속합니까? 그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는 어떤 성질입니까?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어떠할까요? 바로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들이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틀림없이 진실로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과 진리를 깨닫는 것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사람이 만약 이 문제를 분명히 안다면 무엇이 진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도대체 무엇이 진리인지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무엇이 진리입니까? 진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심판 형벌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방면의 진리이든지 진리이기만 하면 사람에 대해서는 심판 형벌이고 사람에 대해서는 드러냄인 것입니다.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것, 사람을 심판 형벌할 수 있는 것, 사람을 정결케 할 수 있는 것,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리인 것입니다! 만약 진리가 사람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을 심판 형벌하지 못한다면 진리가 아니고 가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 아니십니까? 그런데도 그분은 우리를 심판 형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이 성립됩니까?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서 도대체 심판 형벌입니까, 아닙니까? 당신이 그분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서 그분이 심판 형벌이 아님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렇게나 한 마디 말씀을 찾아도 어느 한 마디 말씀이든 다 심판 형벌이고 다 드러냄이며 다 구원이고 다 온전케 함이며 다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너희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 이것이 심판 형벌이 아닙니까? 드러냄이 아닙니까? 정결케 함이 아닙니까? 빛이 아닙니까? 진리가 아닙니까?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사람에게 있어서 모두 심판이지만 단지 그때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몰랐을 따름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보세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런 말씀은 사람에 대해 다 심판 형벌입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 말씀을 읽을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말씀을 아는 것에만 그친다면 당신의 먹고 마심은 자신을 아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을 보고 참으로 자신을 반성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심판 형벌이 될 것이고 당신이 만약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자신에 비추어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그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일 뿐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합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진리는 사람에 대해 모두 심판 형벌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다만 사람이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렸습니다. 당신이 만약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바로 심판 형벌이며, 당신이 만약 읽는 데에만 그치고 “저는 이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이 말씀은 당신에 대해 아무런 효과도 없게 됩니다. 효과가 있는지의 여부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하신 그런 말씀을 들은 후에 무엇 때문에 ‘아, 이 말씀에 권병(역주: 권세)이 있고 능력이 있네.’라고 느꼈겠습니까? 무엇을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바로 사람에 대해 심판 형벌이고 드러냄이고 빛비춤이며 인도이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사람의 생명 격언으로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생명 격언인 이 말씀이 바로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말씀이 진리이고 사람을 드러낼 수 있으며 사람을 심판 형벌할 수 있기 때문이고 말씀이 사람을 정결케 할 수 있고 더욱이 사람을 인도할 수 있으며 사람의 빛이고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이런 방면의 효과에 도달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대하지 않았기에 그가 하나님 말씀을 형식적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인솔자 일꾼은 지금까지 사역을 함에 있어서 원칙이 없을까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역 안배가 있을 때마다 일찍 내려보냈고 몇 년 전에도 이런 교통을 다 했는데 그는 여태껏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사역 원칙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나에게 권력을 주고 지위를 줬으니 나는 마음대로 할 것이고 어떻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내가 보기에 어떻게 적합하면 그렇게 할 것이고 내가 보기에 어떻게 하는 게 맞으면 그렇게 하는 거야.’ 그는 하나님 집의 사역 안배를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는지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진리가 없고 하나님의 지위가 없기에 제멋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거짓 인솔자가 되고 만약 갖은 악행을 다 저질렀다면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악을 많이 행하지 않았으면 거짓 인솔자이고 악을 많이 행하였으면 적그리스도입니다.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구별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짓 인솔자입니까? 조금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고 실제 사역을 할 수 없으며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은 바로 거짓 인솔자입니다. 만약 거짓 인솔자가 악을 많이 행하고 하는 일마다 사역 안배를 어기고 다른 짓을 하거나 제멋대로 한다면 바로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구별이 있습니다. 이제 아시겠죠? 적그리스도가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거짓 인솔자가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적그리스도는 가증스럽고 거짓 인솔자도 좋은 놈이 아닙니다.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놈이겠습니까? 제명하지는 않더라도 교체해야 합니다. 만약 새신자여서 시간이 짧고 아무런 수리 대처도 겪지 않았다면 남겨두고 쓰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줍니다. 만약 사역을 다년간 하고도 시종 그 꼴이면 도태시켜야 하며 쓰지 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교체해서 배양해야 합니다. 이러면 적합하지 않습니까? (적합합니다.)

사람이 어느 방면의 본분을 하든지 진리를 찾고 진리를 추구해야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 데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늘 자신의 뜻대로 하고 자신의 상상대로 한다면 이렇게 본분을 하는 것은 불합격입니다. “불합격”이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바로 당신이 하는 사역과 당신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진실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본분을 해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니, 매사에 진리를 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형제자매들을 찬성케 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을 찬성케 할 수 있을지, 이런 효과에 도달하려면 난이도가 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난이도가 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리를 구하면서 해결해야 하며 진리의 원칙으로 해결해야지 대충대충 하면서 속여서는 안 되며 형식에 그치지 말고 제멋대로 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의 뜻에 따르지 말고 치러야 할 대가에서는 고생을 좀 해야 합니다. 늘 고생할까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고 고생할 심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고생을 좀 해야 하고 대가를 좀 치러야 합니다. 만약 고생할 수 없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대충대충 해서 속일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 내버려지고 성령 역사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당신이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없으면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한 번 주었는데 충심이 없고 또 한동안 지켜봐도 충심이 없으며 또 수리 대처까지 거쳤어도 여전히 충심이 없다면 성령은 이렇게 여러 번 “충심이 없는” 것으로 인해 포기하고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은 희망 없습니다. 몇 번이나 거듭 대충대충 하고 속였기에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일부 사람은 그 속의 비밀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저는 교회에서 악을 행하지도 않았어요!”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겉으로는 악을 행하지 않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에 성령이 먼저 당신을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포기하시면 설령 악을 행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도태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미 한 사람을 포기하신 것을 모르는데, 사람이 피동이 아닙니까? 사람은 모르죠? 사람이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이 알았을 때에는 암에 걸린 것과 같아서 이미 암 말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선민도 도태될 사람을 발견하고 교회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하면 이미 암 말기에 이른 것입니다. 암 초기에는 사람들이 다 모르고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은 도태되었다.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러한데 사람은 이런 줄도 모르고 “형제자매이니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어리석게 말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철저히 드러날 때는 이미 암 말기에 이른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징계와 수리 대처를 겪어도 여전히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것이 위험한 일이 아닙니까?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가 악을 행하지 않았으니 교회에서 나를 제명하지 않을 거야.’라고 여깁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며 사람을 드러내시는 것이 교회에서 제명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까? 교회에서 제명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 도태시키는 것과 큰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교회에서 제명했는지의 여부에 근거합니까? 제명되지 않은 사람을 다 구원하십니까? 드러나지 않아 사람의 육안으로 보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제명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제명할 때는 이미 암 말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중에서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시종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성령에 의해 도태될 것이고 그의 결말이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이 일을 꿰뚫어 봐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당신은 ‘교회에서 저를 제명하지 않으면 저는 틀림없이 구원받는 사람입니다.’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이렇게 생각하면 틀린 것입니다. 당신에게 실제 내막을 알려 주겠습니다. 예를 들면 한 교회에 50명이 있는데, 제명된 사람이 가장 많게는 10명, 적게는 5명 정도라면 당신은 이 50명 가운데서 적어도 40명은 구원받을 사람이라고 함부로 규정할 수 있습니까? 그럼 교회에서 도대체 얼마만한 사람이 구원받을 사람이겠습니까? 5분의 1이 제명되고 도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행정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실제상 하나님의 안중에 구원받을 사람은 기껏해야 8~10명이며 반도 안 됩니다! 만약 3분의 1이 구원받을 사람이라면 15명 정도만 구원받을 사람인 것입니다. 15명이 구원받고 교회에서 10명이 제명되면 나머지 사람은 도대체 구원받을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교회에서 보면 마치 구원받을 사람 같거나 효력자로 될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도태될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 편에서는 도태되었지만 교회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교회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무엇을 드러나지 않는다고 합니까? 예를 들면, 한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원칙에 따라 말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구원받을 사람인데, 그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비중을 얼마나 차지할까요? 3분의 1? 5분의 1? 10분의 1? 잘 모르겠죠? 만약 이 원칙대로라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라면 모두 도태될 사람입니다. 그럼 교회에서 도태될 사람은 비중을 얼마 차지하겠습니까? 반 이상 되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3분의 2는 됩니다. 그럼 이 일을 당신은 어떻게 봅니까?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제명한다 해도 3분의 2를 제명할 수는 없습니다. 3분의 1도 제명하지 못하며 5분의1을 제명하면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교회에서 제명했는지의 여부를 구원받는 원칙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원칙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이론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실제상 하나님 편에서 도태된 숫자가 하나님 집에서 제명한 숫자보다 더 많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제명한 후, 남은 사람 중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반 이상도 안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진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효력자라고 하겠습니까? 일부 사람들은 효력하는 것도 불합격입니다. 효력하는 것도 불합격인 사람은 바로 일관적으로 대충대충 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의 효력은 유명무실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며 생명이 없고 힘만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효력하는 사람은 나중에 구원받지 못하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구원받지 못할까요? 불합격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일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제물을 관리하게 했을 때 그는 눈독을 들여 훔치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도 여기에서 본분을 하고 있지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그가 본분을 하는 것은 무엇에 속하겠습니까? 효력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그에게 제물을 맡겨 관리하게 했을 때 그가 눈독을 들이지 않고 훔치지도 않고 충심으로 보관한다면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고 성실한 사람이며 틀림없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제물을 그에게 맡겼을 때 믿음직하지 못하고 다들 그를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 당신이 가늠해 보세요, 만약 50만, 100만 위안의 제물을 당신에게 보관하라고 한다면 당신 자신을 믿을 만합니까? 당신 스스로도 못 믿는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며 어떻게 믿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면 분명하게 말한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도둑놈이면서 구원받으려 합니까? 당신이 지금 힘을 쓰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지 당신은 믿을 만하지 못하고 좋은 놈이 아닙니다! “저를 믿지 못하면서 저를 써서 뭘 합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말이 적합합니까? 누가 당신을 썼습니까? 당신이 스스로 와서 효력한 것이지 하나님 집에서 당신에게 효력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는 것은 다 자발적인 것입니다. 당신이 복을 받으려고 기꺼이 와서 효력한 것입니다. 당신이 본성을 고치지 않고 옛병이 재발하여 예전처럼 눈독 들이고 훔치고 횡령하는데 당신을 도태시키지 않고 누구를 도태시키겠습니까? 당신과 같은 이런 도둑놈을 도태시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온 것은 스스로 복을 받으려고 온 것이고 하나님 집에서 당신을 오도록 허락한 것은 당신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어 훈련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옛병이 재발한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당신을 오라고 강요했습니까? “복을 받을 수 있는지 봐야죠. 그래서 저도 본분하고 싶고 효력도 하고 싶어요.”라고 하면서 당신이 스스로 시험하러 온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효력을 해도 쓸모없습니다! 상면에서 진리를 교통하는 것만 해도 몇 년간 교통했는데 사람이 실행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일이 닥쳐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한두 번 수리 대처를 거치고 나서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몇 년 지나면 큰일나는데,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고 도태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무엇을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다 아는데, 바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교통하고 그다음 진리를 실행하고 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하고 훈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훈련합니까?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경력하여 나중에 진리를 얻는 것을 훈련합니다. 오랫동안 훈련했는데도 진리가 조금도 없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실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무엇이든 다 아는데 진리를 실행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당신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도 뭐가 그리 당당합니까? 당신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진리를 사랑하지 않음을 설명하며 나중에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도태될 것인데, 또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무엇이든 다 알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당신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당신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당신을 도태시킨다.’는 한 마디면 끝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도 변명하면서 하나님께 “저는 어떤 진리든 다 아는데,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무리 해도 실행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제는 답안이 있죠? 당신을 도태시킵니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바로 이렇게 간단합니다. 당신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면 끝장인데, 천국에 들어가려구요? 시험에서 낙방되었습니다! 합격하지 못하고 도태되었습니다! 합격자 명단이 발표될 때 당신의 이름이 없으니 오지 마십시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어떤 사람이 본분을 하러 오면 하나님 집에서는 허락하고 환영하지만 몇 년 후에 본분을 하는 것이 시종 불합격이면 “돌아가십시오. 당신이 본분을 해도 쓸모없고 하나님 집에서는 당신이 본분하는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당신이 본분을 하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못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불합격이면 쓰지 않고 도태시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돈 한 푼도 벌지 않고 내가 왜 왔지?”라고 본분을 하면서 늘 억울해합니다. 만약 당신이 돈을 벌려고 여기에 왔다면 더욱 필요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당신에게 본분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가면 그 문은 돈 버는 문이지만 여기는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국도 훈련 장소이고 모두 기꺼이 온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돈 벌러 왔다면 잘못 온 것입니다. 세상에 가서 사탄에게 일해 주고 애굽에 가서 힘든 일을 하십시오. 힘들게 일한 다음 배만 불리고 며칠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터놓고 말하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진리를 얻은 사람은 본분을 할수록 누림이 있고 더욱 인생의 광명과 인생의 희망을 보게 되며 본분을 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알고 생명을 얻었다고 느낍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힘을 낼수록 실망하고 힘을 낼수록 마음속이 흑암하고 힘을 낼수록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그것은 자초한 것이고 자신을 탓해야 하며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데 무슨 누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까? 이 한 마디 말은 모든 사람을 말문이 막히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어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주 간단하고 아주 쉽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것이 사람의 마음 상태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어렵지 않겠습니까? 어려운지 어렵지 않은지 사실대로 말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참말을 한 마디 하는 것을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어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고통스럽고 참말을 하는 것이 쉽고 가장 편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람의 본성에 달린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참말을 하기를 좋아하고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꾸며낸 말을 한 번 하고 거짓말을 한 번 하면 죽은 파리를 먹은 것처럼 하루 종일 괴로워서 ‘그에게 다시 말해야지.’라면서 뉘우치고 다시 그 사람한테 “잘못 말한 게 있는데요. 그건 거짓말이니 다시 말할 게요.”라고 말한 다음 “이 말이 사실이니 그때 한 말은 없었던 걸로 해 주세요. 바르게 말해야겠습니다. 안 그러면 제 마음이 편치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거짓말을 한 마디 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대로 말하면 후회하고, 거짓말을 해서 사람을 속이면 속으로 좋아하고 기뻐하며 누림이 있습니다. ‘오늘 아주 수준 높고 기교있게 거짓말 잘했어.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거짓말 측정기로도 알아낼 수 없어.’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는 거짓말하기 좋아하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거짓말을 아주 쉽게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 아닙니까?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순복하겠습니다. 토 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홀가분하게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 “이 일을 해도 됩니까?”라고 여쭤 보았을 때, 하나님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으면 “알겠습니다.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주 쉬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딱 한 가지 일이 아주 어렵다고 말합니다. 남편이 마귀이니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면 남편만은 버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령을 내리시지도 않았고 당신을 강요하시지도 않았으니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이 한 마디 말씀만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인 일은 아주 어렵지만 대부분 일은 어렵지 않겠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함에 있어서 대부분 돈을 들여야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고통을 참고 단념해야만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많은 말씀의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첫째,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고 둘째, 감정상에서도 고통받지 않으며 셋째, 돈을 들일 필요는 더욱 없고 넷째, 힘들일 필요도 없으며 다섯째, 땀을 흘릴 필요도 없습니다. 일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함에 있어서 ‘예, 아니요’의 문제이고 “시인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마디 말씀을 하신 후, “맞는가?”라고 물으셨을 때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동의하는가?”라고 물으셨을 때 “예! 아멘! 순복합니다!”라고 하면 이것이 실행하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일부 일은 태도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일부 하나님 말씀에 순복하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말씀하시면 하나님 선민은 “단절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 한 마디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표명하며 단호히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일부 순복은 바로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고, 일부는 실행해야 하며 또 일부는 좀 버려야 하며, 또 일부는 감정을 끊어버려야 하고, 개별적인 일은 고통을 참으면서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하나님 말씀은 그래도 실행하기 쉬우며 많은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말한 것이 실정이 아닙니까? 예를 들면 일부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았는데,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를 들춰내고 “태도를 표명하십시오.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그가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저는 분명히 보았으니 관계를 단절하고 하나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당신에게 “당신이 인솔자이기에 적그리스도를 제명하십시오.”라고 알려 주면 “네, 적그리스도를 제명하라구요? 알겠습니다,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원칙에 따라 분별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열흘, 보름 동안 각처를 다니면서 알아보고 조사한 후 문제를 발견하고 그다음 제명하는 절차에 따라 자료를 정리하고 교회의 통과를 거쳐 제명하는 것을 두 달 안에 끝냅니다. 이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을 진리를 실행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제명하고 거짓 인솔자를 교체하는 것이 시간이 좀 필요할 뿐입니다.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서 일부 일은 과정이 있는 것이고 시간도 필요하며 일부 진리 실행은 한 마디 말씀이기에 행동 하나면 끝납니다.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나중에 진리를 얻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과정입니다. 당신이 먹고 마시고 교통도 했지만 나중에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소질이 낮고 마음 상태가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모르고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진리를 중요시하지 않고 형식에만 그치고 흐리멍덩한데, 나중에 어떻습니까? 진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심에 있어서 마음 상태가 바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교통한 다음 깨닫고 그다음 실행하고 경력하며 경력하고 나면 얻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은 멍청이여서 어떻게 해도 참 도를 깨닫지 못해 결국 성령께 도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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