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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와 하나님 역사가 도달할 효과≫에 관한 설교 교통 (1)

우리들이 하나님의 교통을 몇 번 듣고 나서 대다수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은 너무나 실제적임을 느꼈고, 지금 하나님의 사역을 경력(역주: 체험)할수록 하나님은 더 실제적이고 더 진실하신 분이라고 느끼며, 더군다나 하나님과 마주하면서 믿고 있다고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많이 깨달음으로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런 사람은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므로 비록 하나님을 수년간 믿었으나 참된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단지 문자 상의 많은 도리만 아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지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을 수 없기에 독단적이고 지위와 명예 그리고 이익만 추구하며, 이기적이고 비열하여 하나님 집 이익을 상관치 않거나 고려치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바로 도태되는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확실한 수확은 무엇입니까? 바로 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함에 있어 참된 순복(역주: 순종)이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합격된 본분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은 곧 진리의 실제로 진입한 사람입니다. 무릇 진리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완전히 도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통을 시작하셨을 때,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기본적인 요구를 제시하셨는데, 그 요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도를 준행 :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입니다. 이 한 가지 요구의 실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실행 원칙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비록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약간 두려워하지만 그런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없고 기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사람이 약간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된 인식이 있을 때에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비로소 참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사에 순복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그리고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반항이나 원망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에 순복하는 첫 번째 태도입니다. 둘째,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집의 안배가 바로 상면의 사역 안배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해야 하는데, 사람의 운명과 결말 그리고 마지막 거처에 관해서도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태도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3가지 방면의 태도를 구비했다면 곧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첫 번째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난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맞을까? 내 맘속에 정말 하나님이 계시긴 한데!”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이고 길이고 생명임을 부인한다면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함부로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하나님께 대적하고 순복이 없는 사람은 100%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의 사역 안배에도 순복할 수 없고 여전히 논단하고 대적하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집의 사역 안배에 대적하고 거절한다면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수리 대처, 시련과 연단에 순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의 지배와 안배에도 순복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나라시대의 행정에 관한 규정입니다. 하나님의 행정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에 대해 반드시 순복해야 하는데, 주로는 그의 사역 안배에 반드시 순복해야 합니다. 만약에 사람이 함부로 하나님의 행정 규정에 어긋나고 성육신 하나님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순복할 수 없다면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수 있다면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율법시대에 모세를 대적했던 사람들은 다 훼멸되었고 은혜시대에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정권 잡은 자들을 포함해 유다까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혹은 대적했던 사람들도 다 보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시대에 만약 사람이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더 나아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대적하고 참된 순복이 없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인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보아하니 정해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하나님께 대적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분명히 끝장이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 대해 만약 약간의 관점과 선입견은 있지만 사역 안배에 순복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어디까지나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시종일관 대적하고 논단하고 정죄하고 대립하면서 순복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끝장입니다. 이것은 기본상 정확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높이 존경하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있으며 함부로 하나님을 경솔히 대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고 어떤 일을 하신다 해도 다 순복할 수 있고 함부로 논단하지 못하고 논단할 수도 없으며 더더욱 대적할 수도 없습니다. 관념이 있을 때는 마음속으로 진리를 구해야지 제멋대로 퍼뜨려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퍼뜨리면 당신을 정죄하실 것이고 퍼뜨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기에 그나마 괜찮지만 퍼뜨린다면 문제가 됩니다. 당신이 관념을 퍼뜨리면 바로 죽음을 퍼뜨리는 것이고 당신은 바로 사탄이며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다시피 종교계에서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다 받아들였고 받아들이지 않는 마귀에 속하는 자도 다 원형을 드러내 하나님을 아주 심하게 대적하고 있는데, 이런 자들은 곧 철저히 훼멸되어 끝장날 것이니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하나님을 다년간 믿었거나 혹은 하나님을 한평생 믿었는데 마지막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멸망하게 된다면 이 결말은 아주 비참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비극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최신 교통을 듣고 나서 ‘내가 이렇게 수년간 하나님을 믿었지만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달지만 확신조차 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은 마치 토끼가 새끼를 품은 것처럼 쉴새없이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이런 긴 시간의 교통과 반성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에는 확신이 섰습니까? 모두 확신할 수 없는 것 같군요. 어째서 확신할 수 없습니까? “말해서 뭐합니까? 악을 많이 저질러서 그렇죠.”라고 어떤 사람은 분명히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저는 관념을 많이 퍼뜨리고 논단을 많이 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렸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교회에서 권력과 지위를 다투어 교회를 소란케 한 사람이 됐습니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다년간 믿었어도 정성을 들여 하나님 말씀을 읽은 적이 없고 진리를 추구한 적도 없고 다 제멋대로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보다시피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나타나시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시고 각 사람의 결말을 선포하시니 사람들의 눈이 다 휘둥그레졌습니다. 조급해 하지 마세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지나 하나님께서 교통을 몇 번 더 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가슴치며 애곡하고 이를 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자신감으로 가득차 기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발표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교통 가운데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적지 않게 말씀하셨음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로지 소수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심판 형벌 가운데서 순복하였고,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심판 형벌 그리고 수리 대처를 받아들여 생명 성품에 약간의 변화가 있고 마지막에 간증을 섰습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은 노를 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있었을 때, 바로 왕으로부터 멸시와 착취 그리고 통제를 받아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고 따르지 못해 하나님께 애원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도착했으나 가나안 땅에 아직 이르지 못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우리들을 고생시키는가? 여기에 먹을 고기가 있는가? 누림이 있는가? 그래도 애굽에 있을 땐 매일 고기를 먹지 않았는가?”라며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니 어떻게 됐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 쓰러져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그런 말이 모순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애굽에 있을 때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면 왜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것을 누렸다면 왜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들을 구원해 애굽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했습니까? 그래 놓고는 광야에 이르러 먹을 고기가 없으니 또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정말로 그렇게 누렸습니까? 그들이 한 말들이 너무나 터무니없고 황당하며 억지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시니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 버려두고 상관치 않으셨으므로 모두가 광야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같은 경우로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이끌어내어 교회 안에서 생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도록 하셨는데, 하나님께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원망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아주 좋았는데, 당신이 기어코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해서 믿었더니 매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게만 하고 본분을 시키면서 돈도 주지 않고 더군다나 환경까지 열악한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보호해 주시지 않습니까? 왜 우리에게 이렇게 큰 고난이 닥치게 하십니까? 왜 큰 붉은 용이 우리들을 붙잡아 핍박하게 합니까?”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광야에서 쓰러진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 무리들과 똑같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들을 세상에서 교회로 이끌어 교회 생활을 하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방면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 열악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시련하고 연단하셔서 정결케 하시려고 우리로 얼마의 고난을 받게 하시는 겁니다. 이런 고난 역시 우리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에 패괴된 것이 너무 많고 사탄 성품이 있어 하나님을 쉽게 논단하고 대적하므로, 반드시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연단과 시련을 받아들여 마지막에 정결케 된 후에야 비로소 국도로 이끌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금 원망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원망하는 말의 그 실질은 무엇입니까? “저는 하나님을 따르고 믿은 것을 후회합니다. 이럴 줄 미리 알았더라면 믿지 말걸 그랬어요.” 이것이 아닙니까? 만약 당신의 마음속에 정말로 이런 원망이 있고 이런 속셈이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러면 문제입니다. 광야에서 쓰러진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이 “우린 애굽에서 고기를 먹었었어요.”라고 말한 것처럼 지금의 사람들은 “제가 세상을 추구했더라면 한 달에 몇 천 위안씩 벌 수 있어서 더 잘 누렸을 거예요,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겠죠. 제가 세상에 있었으면 가정이 파탄날 수 있었겠어요? 진작 원만하고 행복한 날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당신이 하나님을 따른 것을 후회하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없으며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잠시 받는 고통이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인데, 당신의 안목이 짧고 오로지 육체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를 준행 :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한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악에서 떠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악에서 떠난다는 것은 죄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일반적인 죄는 범하지 않으니 악에서 떠난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데, 당신이 행한 모든 것에 의(義)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의로운 행위에 다다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의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행한 것이 의나 진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해야 악에서 떠날 수 있는데,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한 것은 분명히 의를 행한 것이 아니고, 의를 행한 것이 아니라면 엄격히 말해서 역시 악입니다. 다만 어떤 악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당신 제멋대로 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악이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뜻대로 한 일은 원칙에 따라 말하면 악이 아니겠습니까? 새신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에 자연스런 일이지만 정말 8~10년 믿은 사람들은 다 경력해 봐서 무릇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은 틀림없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방해하는 일이며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고 유로(流露)하는 것은 모두 패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까? 다 원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대다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어떻게 얻지? 이건 도리가 아니야. 만약에 도리라면 이해하기 쉽고 바로 이해하면 얻은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라는 글은 어떻게 쓰고 말하는지 아는데, 마음에는 없고 있는 것은 다 막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영적인 생명이지 도리나 규례가 아니고 깨닫기만 하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러분은 하나님 사랑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얻습니까? 얻기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깨닫고 입으로 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규례는 우리가 지키겠다면 지킬 수 있지만 진리는 잡는다고 잡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생명 실질에 속하므로 진리를 추구하고 인식하고 깨달아 마지막에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얻는 것과 도리를 깨닫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3~5년 믿으면 도리는 다 알 수 있지만 진리를 얻으려면 최소한 8~10년은 걸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믿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8~10년 믿었는데 왜 얻지 못했습니까?” 8~10년 동안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한해서 말한 것입니다. 당신이 정식으로 진리를 추구하기 시작하여 8~10년이 되면 분명히 얻을 수 있다고 보장합니다. 당신이 8~10년을 제멋대로 믿으면서 시간만 채운다고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며느리 생활도 오래면 시어머니가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시어머니로 된 것입니까? 이것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차면 되는 것이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단지 시간만 채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려면 당신이 착실하게 경력하고 실행하고 인식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술을 배우고 무공을 연마하는 것처럼 매일 그럴듯한 무술 자세를 한 번씩 연습하여 1년이 되면 자연적으로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많은 요령과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까? 그것은 생명에 속하기 때문에 당신이 많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이 2가지 조건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생명 성품 변화와 행위 변화는 같은 것입니까? 행위의 변화가 쉬운 것은 본성에 관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전에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지금 하나님을 믿고는 나쁜 일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방인도 “저 사람이 변했네요. 전에 비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됐고 완전히 다른 모습이네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행위상의 변화입니다. 본성 안의 변화를 행위상의 변화로 대체할 수 있습니까? 본성 안의 변화는 생명 성품의 변화입니다. 생명 성품의 변화는 꼭 무엇을 통해야 도달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얻어야 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으면 생명을 지배하는 그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의 육체 생명을 지배하는 것은 사탄 철학이고 사탄의 논리와 법칙이고 각종 사탄 독소이므로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오만, 자대(自大), 자고(自高), 독선, 아울러 이기심, 간사, 비열함이고 또한 사악이고 탐욕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사탄의 독소와 형상을 살아내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본성 안에 사탄의 것으로 점유되어 있는 것이 근원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야 하는데 생명의 근원 즉 우리의 생명을 지배하는 진리를 마음속에 받아들여 진리로 우리들을 지배하게 하여 진리가 우리의 생명이 되면 우리가 살아내는 모습이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품 변화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진리를 얻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에게는 약간의 변화가 있고 진리 실제가 확실히 조금 있으며 써놓은 간증문도 무게가 있는데, 이 사람은 진짜 실제가 조금 있습니다. 더욱이 일부 형제자매들이 감옥 안에서 모진 고문을 받을 때 굳게 선 간증 동영상을 보고 저는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진리가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미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되었고, 그를 때려 죽인다 해도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어 그가 간증을 굳게 섰고 온전케 되었기에 진리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큰 붉은 용 앞에서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간증으로 증명했고 말한 것이지 사람이 제멋대로 비위를 맞추려는 그런 한두 마디가 아닙니다. 이런 간증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사탄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구호는 잘 외치지만 잡혀간 후에는 어땠습니까? 모진 고문 앞에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비굴하게 유다가 됐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의 앞잡이가 됐습니다. 이런 사람은 왜 실패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진리를 얻어서 생명으로 하지 못했고 진리와 관계가 없기에 마지막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사탄에게 투항해 반역자가 됐으며 유다가 되어 하나님과 교회를 배반하고 하나님 집 인솔자 일꾼들을 배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징벌받는 부류의 사람이고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이러면 끝장인데,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실패로 끝났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으로 끝을 맺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한 말입니까? “모진 고문 앞에서 내가 목숨을 구걸할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걸까?” 만약 사람이 정말로 믿음이 있다면 맞아 죽을지언정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꿋꿋하게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뛰어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간증에 근거하여 결론 하나를 얻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까? 진리를 얻은 사람 즉, 목숨을 잃을지언정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생명과 진리를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렇게 드높은 간증을 하려면 토대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해야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느 날에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르는데, 어떤 사람이 “저를 사탄과 큰 붉은 용에게만 넘겨주지만 않으면 무조건 간증을 설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틀렸습니다! 만약 재난이 닥쳐 가족 중에 몇 명이 죽었다면 당신은 간증을 설 수 있습니까? 어떤 시련이 닥치든 진리가 없으면 간증을 설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갑작스레 재난으로 잃었다면 당신은 도대체 남편을 사랑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시련으로 당신을 드러내실 때입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어떻게 시련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독생자를 주시고 그 후에 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에게 그렇게 많이 주었으니 그만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 말씀이고 진리인데, 달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간증입니다. 당신에게 간증이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간증을 굳게 섰는지의 여부를 보십니다. 만약 당신이 간증을 굳게 서지 못했다면 당신이 얻지 못했음을 증명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을 벌하시고 보응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욥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욥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로 만사형통케 하시고 마지막에 사탄과 내기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는데 넌 믿느냐?”라고 묻자 사탄이 “저는 믿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좋다, 그가 너의 권세 하에 있으니 그럼 네가 시험해 봐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시련이 욥에게 임하도록 허락하시자 사탄이 그를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합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에서 구하고 되새겨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생트집을 잡거나 일리가 없는 게 아니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모두 의의 있어. 하나님은 진리시니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정말로 만족케 할 수 있다면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어.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이 주시지 않았다면 역시 달라고 하시지 않으므로 그렇게 많은 고통과 시련은 없겠지만 하나님의 축복도 없을 거야.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니까.’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 그렇게 많이 주십니까?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를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하기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면 그에게 시련도 주십니다. 시련의 의미는 역시 시험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축복을 주었으니 네가 나에 대한 경외와 순복이 있는지 그리고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는지”를 보려 하십니다. 사람의 말로 하면 “내 체면을 세우고 영예를 떨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얻으려 하시기에 이렇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 큰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병(역주: 권세)이 있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므로 시련은 사람에게 있어서 너무나 가치가 있고 사람 생명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는 사람은 이 일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고 이해할 수 없어서 터무니없이 “하나님은 저에게 주시고 왜 또 거두어 가십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말은 억지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터무니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셨다면 당신을 시련할 권리가 있으시고 그분이 당신을 시련하시는 것은 의의가 있습니다. 당신으로 더 큰 축복을 받게 하고 축복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의 말로 하면 당신을 안중에 두었으므로 당신에게 연단의 고통을 주고 진리를 깨닫게 하며 견식이 넓어지게 하고 하나님에 대한 하나의 인식이 있게 하며 참된 인생을 살아내게 하시는데,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높이심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이런 인식이 있다면 어느 날 당신이 징벌받고 도태될 때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두말없이 무조건 순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다 공의이고 진리인데, 저희들이 사리 분별하지 못하고 호의를 무시했습니다. 저희는 사람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합당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고분고분 순복할 것이고 당신에게 당장 죽으라고 하면 머리를 내놓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 이런 인식이 있다면 자신의 결말을 고려할 때, 자신의 결말과 마지막 거처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자신에게 참으로 좋은 결말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은 어떻겠습니까? (정말로 좋은 결말이 없다면 그것은 분명히 제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지금 제가 하는 일이 틀림없이 하나님 뜻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정확히 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대 성도들에게 행하신 것이든 아니면 오늘의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벌하시고 많은 간증을 선 사람들을 축복하시든,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보았기 때문에 지금 저에게 이런 일들이 닥치면 정확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공의이므로 순복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며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처리하셔도 좋습니다.) 이러면 맞습니다. 이런 인식이 있다면 아주 좋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효력자 시련 속에서 받았던 느낌을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그때는 1991년 11월이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발함에 따라 “이 도의 흐름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효력자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11월에 발표하신 ≪그리스도 최초의 발표와 간증≫ 중의 몇 편에서 명확히 말씀하신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보자마자 그 즉시 다 실망하였고 애곡의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울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울었고 몰래 눈물을 훔쳤으며, 어떤 형제님은 목놓아 울었고, 많은 자매님들은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으며, 어떤 사람은 뒤에서 눈물을 흘렸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울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효력자 시련을 언급하세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 효력자 시련이 사람의 결말을 박탈해 갔기 때문입니다. 효력자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도태되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효력을 다했으면 마땅히 떠나야 되고 결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애곡하기 시작했고 한 사람도 좋은 심정이 아니었고 뭘 먹어도 맛있는지 몰랐습니다. 1991년 11월, 12월 그리고 1992년 1월까지, 그 3개월 동안 대부분의 형제자매들이 다 고통을 받고 얼굴에 기색이 조금도 없고 낯빛이 어두워져 검었는데 마음속 고통의 억눌림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실제 상황이었는데, 결말이 박탈되고 나니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전에 저희들이 한 형제자매네 집에 갔었는데, 그 집에서 키우는 사냥개가 형제자매들을 보면 좋다고 꼬리를 흔들어대면서 마치 제 식구를 만난 듯 처음 봐도 안 짖었었는데, 효력자 시련이 시작된 후로 다시 그 집에 갔더니 그 개가 짖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 갔던 사람을 보고도 짖어대고 오는 사람마다 물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끝장이구나! 개까지 다 우릴 보고 짖으면서 이방인으로 대하네.”라고 말했고 연세가 많은 어떤 형제자매들은 “죽는 게 틀림없어, 살지 못할 거야.”라고 하면서 관까지 다 준비해뒀습니다. 그때 저는 인솔자라 어떤 일이 있어도 품위를 지켜야 돼서 다른 사람은 울어도 저는 울지 않았는데,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제가 언제 울었겠습니까? 기도할 때만 몰래 울어 겉으로는 제가 우는 걸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자존심이 좀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구나. 우린 예전에 왜 그 정도로 패괴되었을까? 왜 하나님과 같이 왕노릇 하고 이긴 자가 되고 처음 익은 열매만 되려고 추구했을까? 추구하는 소망과 속셈이 다 이런 거였으니. 어떻게 이렇게 이지가 없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나서 “찰싹 찰싹” 제 뺨을 때렸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이지가 없고 수치를 모르는 것이 미웠고 제가 너무 무지하고 우매하고 어리석어 미웠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얌전히 머리 숙여 효력이나 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런 속셈이 없었어야 했고 큰소리치는 게 아니었는데, 봐라, 수치당하고 체면이 깎였잖아.’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이런 속셈이 생긴 거지? 아, 하나님을 믿는 데에 패괴 성품이 있었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복을 얻고 영생을 얻기 위한 것이었구나. 패괴 성품이 근원이었어. 아, 사탄에게 이렇게 오래 패괴됐는데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어떻게 없겠어? 분명히 다 있지. 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었으니 그런 속셈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야.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 원망할 필요 없이 내 패괴가 너무 깊은 걸 탓해야지, 다른 걸 말해서 뭘 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몸과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또 이런 한 가지 생각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복 받기를 추구하지 말고 효력하기만을 추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나보고 다시 믿으라고 한다면 복 받기를 추구하지 않을 거야,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복이 있다고 해도 그 어떤 복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해서 진정한 사람 모습을 살아낼 거야. 효력만 잘해도 좋겠다.’ 당시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3개월의 연단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고 이런 생각들은 점점 더 성숙해졌는데, 무엇을 느꼈을까요? ‘나는 너무 깊게 패괴되어 복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했고 자신을 너무 높게 보았는데 결과는 어떤가? 하늘에서 “떨어져” 패가망신 했잖아.’ 이런 생각이 있게 된 후에 계속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없었기에 역시나 자신이 너무 깊게 패괴되고 우매하며 너무나 거만한 자신의 근원을 원망했습니다. 그런 후 어떻게 제 자신을 위로했겠습니까? 그때는 진리가 없어서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40세가 됐으니 죽어도 가치가 있어. 고대의 적지 않은 명인들도 30~40세까지 살다가 죽었는데 내 나이도 괜찮아. 40세에 죽어도 가치가 있어. 왜 가치가 있지? 나는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 효력을 했지만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효력을 했는가? 그들 모두 효력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효력을 했기 때문이지. 더군다나 우리는 인솔자 본분을 몇 년간 하면서 하나님을 몇 년 섬겼으니 비록 하나님 뜻과 합하는 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파격적으로 높여주신 거야.’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니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3개월 연단 받다가 2월이 되어 하나님이 저에게 “현재 하나님의 뜻은 자민(子民)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모두가 자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듣고 나서 믿기지가 않아 “자민이 된다구요? 누가 자민이 된다는 거예요?” “다 자민이라구요? 다 효력자이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또 자민이 된 겁니까?”라고 여쭤 봤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은 시련이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시련을 겪고 나서 지금 다시 자민으로 된 거군요.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월 20일, 하나님께서 그 말씀 한 편을 발표하셨고 통지하여 대집회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효력자의 시련이었는데 도달한 효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앞으로 난 하나님을 믿으면서 누가 뭐래도 복 받기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해 효력을 잘 할 거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면 틀림없어. 절대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하거나 무슨 큰 복을 받으려고 추구하지 말자. 그건 실제적이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못해. 만약 도달하지 못하면 망신만 당하게 될 테니까.’ 제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어떻습니까? 여러분 중에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직 시련이 없어서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효력자여서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이것은 실제적인 과제이지 않습니까? 이 과제는 우리들이 마음대로 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정말로 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몇 편의 최신 말씀에서 기미가 보였죠? 못 보셨습니까? 신호가 왔습니다.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다 나타내고 선포할 것입니다. 신호가 왔으니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만약에 사람이 효력자 시련을 경력했다면 지금과 같은 이런 사실이 다시 임하면 쉽게 순복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네가 만약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면 넌 어떻겠는가?” “조건 없이 순복하고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두말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효력자 시련의 토대가 있었기에 지금에 와서 예전처럼 순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이런 시련과 사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즉 소극적이지 않고 예전과 같이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한다면 이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말로는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이며 물러난다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무슨 문제인지? 양심이 없는 거죠? 그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라 칭함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효력을 해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알아들었겠죠? 그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이런 시련과 이런 사실이 임하면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하고 결말이 없다고 선포하실 때, 그가 예전처럼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으며 본분을 다할 수 있으면 옳은 것으로, 이런 사람은 인성이 조금 있고 최소한의 양심도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속셈을 품고 내려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문제입니까? 수치를 모르고 낯가죽이 두꺼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어서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려는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닌데, 복을 받으려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진리를 추구해 진리를 얻어 참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면 좋은 결말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안배에 따를 뿐이고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당신이 스스로 좋은 결말이 있어야 된다고 판단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참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기만 하면 되고 결말이 좋고 나쁨은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시든 다 공의로운 것이고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이 사람, 우리의 추구, 우리의 생명이 국도에서 생존하기에 적합하다면 우리를 국도로 이끄실 것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생명과 성품이 국도에 있기에 적합하지 않고 지옥에 놓기에 적합하다면 우리는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안배이고 절대로 틀림없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일을 봐야 하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했다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지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서 이지가 있고 순복이 있는 오늘의 이 경지에까지 오게 된 것이 쉬운 일입니까? 진리를 얼마나 깨달아야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할 때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새신자는 도달하지 못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의 말은 무슨 뜻이에요? 저는 왜 들을수록 어리둥절해지죠?” 새신자는 도달하지 못할 수 있지만 다 그렇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소질이 좋고 터득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고 2~3년 믿어서 진리를 조금 깨달은 사람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교통한 내용들을 종교계에 가져간다면 다수의 종교계 목사들과 지도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펄쩍 뛰고 책상을 치며 일어날 것입니다. “예? 뭐라구요? 우리에게 복을 주지 않겠다구요? 우린 당신을 고소하고 예수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이것은 어떤 생명 성품입니까? 사탄이 아닙니까? 그들의 경지는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종류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이기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으며 경지가 다르고 공통된 언어가 확실히 없으므로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저의 말이 매우 적합하고 모두가 여러분의 마음속 말이라고 느낀다면 좋은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고 심도가 있으며 사람 모양이 약간 있고 정상인의 양심과 이지(理智)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지금은 수확이 있지 않습니까? 이 수확은 무엇입니까? 점점 더 사람의 모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저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몇 년 전에는 말할 수 있었습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까? 이 경지가 있었습니까? 이것은 점점 더 사람의 모양이 있고 사람 같지 않습니까? 아직도 오만함이 있을 수 있습니까? 교계의 내부를 보세요, 특히 그 지방교회 즉 자오후이(召會)에서 복 받는 것을 언급하면 무슨 분위기입니까? 사탄 분위기이고 너무 오만하여 하나님과 같이 왕노릇 하려고 하고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 같고 지금 다 셋째 하늘에 올라가려고 하고 예수님과 형님 동생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이지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지금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사람 모양이 조금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받은 것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제가 올해 나이 60이 넘었는데 마흔 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집의 인솔자 본분을 시작했습니다. 이 20여 년간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반성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믿었는데 난 뭘 얻었지? 어떤 일들을 했었지? 내가 걸어온 길이 맞는 것일까? 난 과연 진리를 얻었나? 내 행동에 아직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증오하시고 미워하시는 점이 있지 않을까?’ 저는 하나님의 뜻과 합하지 않는 부분과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부분, 그리고 100%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없고 분량이 부족해 만약 하나님께서 정말 결말을 선포하신다면 비록 반항과 원망은 없어도 마음속으로 조금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이 말해 보세요, 이런 고통과 괴로움은 무엇입니까? 긍정적인 것입니까? 약간의 소극적인 정형(역주: 상태 혹은 상황)과 조금 실망하고 낙담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탄의 패괴에 속하는 것입니다. 비록 밖으로 드러내거나 뚜렷하게 유로되지는 않았지만 심령 깊은 곳에 여전히 이런 것들이 있고 완전하게 정결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계속해서 저와 함께하게 해 주시고 더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떠날 수 없고 더 깊고 중한 시련을 받아 깨끗함을 입어 거룩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까지 믿든지 저의 결말과 마지막 거처를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안배하시게 하며 제 자신의 요구는 없습니다. 본분을 함에 있어 진리의 원칙에 부합되고 합격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양심과 이지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서 악에서 떠난다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악”은 무엇입니까? 바로 개인의 속셈과 욕망이고 특히 복을 받으려는 속셈입니다. 하나님께 늘 요구가 있고 사람의 욕망이 있으며 항상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 악입니다. 이방인은 무엇을 악으로 여깁니까? 방화, 살인, 절도를 악이라고 여기지만 우리는 개인의 속셈과 욕망을 악이라 하며, 당신에게 올바르지 못한 속마음과 욕망, 이기심 그리고 복을 얻고자 하는 속셈은 제가 보기에 살인이나 방화를 하는 악보다도 더 심각합니다. 악을 멀리함에 있어 뒤섞임과 속셈 그리고 욕망이 조금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이 약간의 속셈과 욕망을 갖고 있지만 한 가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잘 하고 충성심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 안에 숨어있던 속셈이 나쁘고 안에 더러움이 있고 패괴와 뒤섞임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이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예를 들어 당신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본분하는 데에 공을 들였는데, “내가 너의 결말을 선포하겠다. 너에게 좋은 결말이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네가 그렇게 충성을 다해 본분할 수 있는가?”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좋다, 그렇게 해 보거라.” 이런 대화가 있고 나서 당신이 정말로 말한 대로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결케 된 것이고 크나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속셈과 욕망을 갖고 복을 받으려는 속셈으로 본분을 한다면 비록 충성하고 간증을 선다 해도 이것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고 느끼고 사람들이 찬성한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므로 당신의 이런 간증은 사탄 앞에 이르지 못하고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도 없습니다. 악에서 떠나는 것과 이것은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복 받으려는 속셈을 철저히 해결한 후, 다시 우리의 충성심, 순복, 참된 사랑, 진실한 믿음, 진실한 경외를 살펴본다면 이는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면 바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지 않습니까?” 또 틀렸습니다. 복을 받는 것과 연관시키지 마세요. 당신은 어째서 무슨 일이든 복을 얻는 것을 입에 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해도 역시 복을 언급하지 마세요. 우리는 논할 자격이 없고 입에 구린내가 나기에 그런 말을 하면 듣기 거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들과 관계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욥이 하나님을 믿을 때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것이 복 받기 위해서였습니까? 베드로가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한 것이 복 받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이 복 받기 위해서였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이고 책임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조물주를 대함에 있어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이래야 본심이 바르고 이렇게 일을 보고 일에 임해야 옳은 것입니다. 걸핏하면 복과 연관시키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 이 한 무리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뜻과 소원을 완성하기 위함이고 그분의 경영 계획을 위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복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분의 소원과 계획을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안배하십니까?”라고 하는데, 또 말을 잘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인데, 당신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서 뭘 합니까? 이 일에 늘 관심을 갖지 말고 우리는 구원받는 것과 진리를 추구함으로 참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속셈을 해결하는 문제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큰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으려는 속셈을 해결했습니까? 만약에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말을 선포하시면 실족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지와 본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이 되는지의 여부 그리고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각 사람은 돌아보고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을 드러낼 때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도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바라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어떻게 실행하는지 지금 분명히 압니까? 길이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면 길이 생겼습니까? 우선 무엇부터 해결해야 합니까? 복을 받으려는 속셈과 욕망을 근본에서부터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제가 수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렇게 큰 힘이 났던 것은 큰 복의 분깃을 보았기에 비로소 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저에게서 복 받으려는 소망을 거두어 가려 하신다면 저는 마치 김 빠진 공처럼 풀이 죽어 힘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풀이 죽을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진실한 믿음이 없습니다. 복을 받으려는 속셈을 없애기만 하면 그의 믿음은 김 빠진 공이 됩니다. 여기에서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복을 얻으려는 속셈이 지배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간증이 있습니까? 진리 실제가 있습니까? 간증이 없으며 당신의 이런 행위로는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도 없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복을 받으려는 속셈을 갖고 전력을 다해 본분을 하지만, 수리 대처가 오면 풀이 죽어 힘이 없고 소극적이 됩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대처(역주: 질책)가 조금 온 것은 무슨 시련도 아닌데 풀이 죽으니, 정말 진리가 너무 없고 믿음도 너무나 작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에 근거해 하나님을 믿습니까? 어째서 대처만 하면 소극적이 될 수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결말을 선포하시게 된다면 그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겠습니까? 요즘, 제가 어떤 형제자매들을 그렇게 엄격하게 대처했는데, 그럼에도 그들은 뒤에서 울긴 해도 소극적이지 않고 계속 본분을 하고 있는데, 저는 이런 사람이 마음에 들고 괜찮은 사람이고 참으로 좋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이라 계속 믿는다면 빠르게 변화되고 진보할 수 있습니다. 수리 대처도 감당할 수 없고 정확히 대할 수도 없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사람의 본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바르지 않은 본심의 조종 하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신의 믿음은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교통하면 어떻습니까?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제가 왜 이 화제를 교통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곧 시련이 닥치게 되고 이 단계를 경력해야 하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비교적 현실적입니다. 앞으로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선포할 것인데, 어떤 사람은 애곡하고 이를 갈 것이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행한 악에 대해 가슴을 치고 후회하거나 혹은 어떻게 보완할까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걱정할 것입니다. 이것은 욥의 그 한 마디 말이 응한 것입니다. 욥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 거기서 도대체 왜 하나님을 믿는지에 대해서 힘써 반성했고 마지막에 한 마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이 말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으면 재앙도 받아야 하는지를 말했는데, 바로 사람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사람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탄에게 패괴돼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탄에게 패괴되었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고 인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봐야 합니다. 진리이고 하나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다른 사람은 대적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대적합니까? 모두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인데, 그는 왜 순복할 수 있습니까? 그는 왜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왜 하나님에 대해 사랑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어째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우린 왜 받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다른 것은 이유가 될 수 없고 결국에는 우리가 인성과 양심이 없고, 너무 악하고, 너무 못됐으며,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다 구원받을 수 없고 다 징벌받는다면 전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되어서라고 하겠지만 만약 일부분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 일부분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무엇입니까?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원받고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부분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도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은 어떻게 도달했습니까? 그는 진공 속에서 살아서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단 말입니까?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똑같이 교회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은 도달할 수 있는데 우리는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너무 사악하며 양심과 인성이 없기에 자업자득이고 보응을 받은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이런 말을 교통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에게 먼저 예방 주사를 놓아 미리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기를 추구하려면 우선 착실하게 이렇게 실행하여 자신의 속셈을 정결케 하고,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며, 양심적으로 본분을 잘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을 받으려는 이 욕망과 속셈을 없애야 하며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효력하는 것도 하나님의 높임이고 은총이기에 완전히 만족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을 때, 그가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를 드렸듯이 우리에게도 최소한 욥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에 있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 일부 악을 행했었지만 지금 진리를 조금 깨달았기에 악을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전에 행한 저의 악으로 저를 도태시키실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그럴 수 있습니까? 이 문제는 대답하기 쉽죠? 당신이 지금 회개했다면 이전의 악은 한 번에 없어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회개했다면 간증이 있어야지 간증이 없으면 안 됩니다. 당신이 지금은 그런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지금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이전에도 당신이 늘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되면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그런 환경이 다시 임한다고 했을 때, 당신에게 간증이 있다면 이 간증으로 당신이 비로소 회개했고 변화됐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이전에 잡혀서 유다가 됐었는데 “만약 나중에 다시 잡히면 저는 유다가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해도 이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이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잡혀 들어가 혹독한 고문 앞에서 당신이 참으로 간증을 굳게 선다면 이것이 진짜입니다. 당신이 지금 붙잡히지 않았는데 잡힌 후에 유다가 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상상이고 실제가 아닙니다. 구약 율법시대에 다윗이 음란죄를 지었는데, 그때 음란을 범한 후 회개했습니까? 간증이 있습니까? 간증이 있습니다. 간증이 있어야 비로소 회개하고 변화됐음을 설명할 수 있지, 간증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전에 무슨 잘못으로 하나님을 범했는데 지금 진실로 회개했다면 간증이 있어야지 간증이 없으면 안 되며 빈말만 하고 상상에 따라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한 사람이 되려면 사실과 간증에 근거해 말을 해야 합니다. 상상에 따라 말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참되지 않고 허위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반드시 인식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함에는 몇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 경로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과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서 즉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시는가 하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단순하게 이해하는데 이러면 너무나도 편면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포함되는 범위는 아주 넓지만 실질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바로 거룩함과 공의로움입니다. 이것이 가장 관건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과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은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가 큽니까?”라고 말하는데,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당신을 심판하고 형벌하시겠습니까? 그분이 공의롭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심판 형벌이 당신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심판 형벌이 임하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무엇을 설명합니까?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은 더럽히거나 거스르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더러운 것으로 물들이려 한다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노를 발하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더럽히면 당신 스스로 미움을 사는 것이 아닙니까? 대놓고 말하면 죽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볼 수 있는가에서부터 시작해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매 마디 말씀 안의 긍정적인 사물의 실질이 곧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입니다. 그 심판 형벌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발하신 심판 형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방면의 사람의 대적과 패괴가 마침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받침한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거스르면 하나님 말씀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사람을 심판하는 매 한 마디 말씀 속의 긍정적 사물의 실질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어느 방면을 심판하시면 그 방면이 곧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인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는데,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 경로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인식하는지 알았겠죠? 이 경로가 어디에 있는지 아셨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수년간 믿고도 자신이 어떤 심판 형벌을 받았는지 모르고 “하나님께서 언제 저를 심판하셨습니까? 저는 왜 경력하지 못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상황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어찌된 일입니까? 그 사람도 늘 집회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지만 시종일관 심판 형벌을 받은 느낌이 없습니다. 이런 경력이 없고 이런 고난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신문이나 교과서를 읽는 것쯤으로 여겼으므로 근본적으로 어떤 심판 형벌도 받지 않았고,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이지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통도 별로 받지 않았고 언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았는지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며 심판 형벌이 없는 것을 그는 ‘내가 다 잘해서 심판 형벌이 나에게 임하지 않은 거야.’라고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위험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때 의기양양하여 자신에게 약간의 소질이 있고 자신이 약간의 성경 지식도 깨달았으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심지어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어떻습니까? 그에게 많은 공을 들여 전도해서 그가 마침내 참 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집에 와 교회 생활을 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무엇이 진리 실제인지 알게 되었고 이전에 온통 권력이나 휘두르고 사람들과 성경 지식을 겨루었을 뿐이지 지금까지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았음을 비로소 알고 나서 “저는 진리 실제가 없군요.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가 있죠? 다 진리 실제여서 오늘 저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난 후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수년간 믿어도 진리 실제가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고, 하나님이 너무나 실제적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집에서 권력을 휘두르겠습니까? 아직도 다른 사람과 성경 지식을 겨루겠습니까? 겨루지 않을 것입니다. 소용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비웃음거리만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집의 형제자매들이 쓴 경력 간증이 아주 좋은 것을 보고 자기도 쓰려고 해 봤지만 아무리 해도 쓸 수 없어 나중에는 펜을 던져버리고 자신이 수년간 헛 믿었고 아무런 진리 실제가 없음을 보고 부끄러움을 조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아주 많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난 후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고 점차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해 머리를 숙이고 실제를 중요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과정이고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반드시 경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 이런 경력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저와 같습니다. 지금부터 진리를 추구하면 됩니다. 지식과 도리를 말하지 마십시오, 소용없으니 실제를 말해야 합니다.

지금 어떤 형제자매들은 제가 어떻게 대처해도 소극적이지 않고 예전처럼 본분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제 말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데, 이것은 진보이고 순복이 있는 것입니다. 종교 안에 이런 순복이 있습니까? 종교 안에서 누가 누구에게 순복한 적이 있습니까? 누구나 다 불복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제가 한 마디 하거나 어떻게 말하고 화를 내도 다 순복하는데, 간단치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고 사람의 모양이 있고 순복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누가 어떤 어투로 말하고 어떻게 화를 내며 말하든 말한 것이 진리에 부합되고 실제에 부합되면 순복하고 다른 말이 필요 없는데, 이것이 진보가 아니겠습니까? 종교 안에 있으면 이런 진보가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집에 있으면 당신은 진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한 말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형제자매들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더 큰 진보가 있습니다. 저에게 지위가 있고 권력이 당신보다 크고 성령이 사용하는 사람이어서 당신이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저에게만 순복하고 하는 수 없이 따른다면 이것은 참된 간증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보통 형제자매들이 비록 지위가 없고 사람이 볼품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얕잡아보지만 그가 한 말이 진리와 실제에 부합되어 당신이 순복할 수 있고 받아들이며 공손하게 대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당신에게 정말로 순복이 있고 생명 성품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간증은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 순복하는 간증보다 더 큽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것을 해낼 수 있습니까? 평범한 자매가 한 말이 진리에 부합되면 당신은 순복할 수 있습니까? 들을 수 있습니까? 또 그에게 약간의 흠과 부족한 점이 있어서 당신보다 못하지만, 그의 말을 당신이 들어보고 다 옳고 진리에 부합되면 그에게 “자매님이 한 말이 제가 말한 것보다 진리에 부합되기에 자매님 말을 듣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정말로 이렇게 담대하게 선포하고 매번 이렇게 말한다면 누구나 다 탄복할 것입니다. 진리에 순복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진리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어떤 사람의 입으로 교통했든지 다 하나님 말씀이고 권병이며, 지고지상한 하나님의 권병이므로 정말 순복할 수 있다면 이것을 비로소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사람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제가 말할 때에는 당신이 순복할 수 있으나 일반 형제자매가 말할 때에는 순복할 수 없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간증이 없습니다. 그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당신에게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든지 아무런 조건 없이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이 당신에게 최고의 권병이 된다면 당신은 바로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누가 당신을 보든지 다 탄복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절대적으로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야. 그에게는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고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교통하든지 진리에 부합되면 그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처럼 다 순복할 수 있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욥이 해내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해내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다 해냈습니다. 그럼 당신이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여기에서부터 진입하세요! 누가 말한 것이든 당신이 듣기에 진리에 부합되면 “자매님의 교통이 진리에 부합되고 바로 저의 부족함이니 저는 받아들이고 순복하고 그렇게 실행하겠습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자매님이 듣고 감동되어 “야, 생각지도 않게 제가 아무렇게나 한 마디 했는데 순복하고 받아들이네요. 제가 자매님에게 이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제 자신도 다 실행하지 못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선민이 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권병 하에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구원을 받고 흑암 권세에서 벗어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참된 간증이고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의 권병 아래에 순복한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에 일부 사람들은 순복할 수 있고 어떤 어투로 말하고 화를 내도 역시 순복하는데,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형제자매들 앞에서도 이런 순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며 그를 인정하시는데, 이러면 값진 것입니다. 단지 그리스도와 저에게만 순복할 수 있고 형제자매들이 당신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은 듣지 않는다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몇 번 볼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당신과 몇 번 만날 수 있고 몇 마디나 말할 수 있습니까? 대부분 경우에 당신이 교회에서 생활하기에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간증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봐가며 일처리합니다. 지위가 있는 사람이 말하면 듣고 지위가 없는 사람이 말하면 듣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의 제일 큰 어려운 점이고 제일 큰 치명상이라고 말합니다. 늘 지위를 바라보면 위험합니다. 누구에게 지위가 있으면 순복하고 지위가 없으면 순복하지 않는 사람은 사탄 권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지위의 속박과 얽매임을 받고 있으며 진리 실제가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실행과 진입의 원칙을 지금 알았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순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실행할 것입니다. “3살짜리 어린애가 나에게 하나님 말씀 한 마디를 전달하고 나의 한 가지 결점을 질책해도 난 받아들일 거야. 이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니 순복하고 땅에 엎드려 받아들일 거야.” 노아가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을 전달하신 것입니까? 누가 전달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 사자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영체입니까 아니면 육신입니까? 사람은 모릅니다. 율법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달했는데, 그들의 직책은 사자와 같고 천사와 같았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면 어떤 사람은 들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을 때 니느웨 성 안의 국왕도 듣고 즉시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으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인지, 하나님이 나타나셨는지 아니면 사람이 전달했는지를 따졌습니까? 그들은 누구였든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명망이 높은지, 무슨 명분이 있는지, 어떤 지위가 있는지를 개의치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만 하면 즉시 순복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은 사람을 드러냅니다. 사람의 무엇을 드러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의 여부를 단번에 시험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3살짜리 어린아이가 한 마디를 해도 당신이 듣기에 성령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 엎드려 받아들이면서 “성령이 이 사람을 보내 날 질책하고 날 드러내려고 하신 것이니 순복해야 돼.”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린애를 대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온 것입니다. 이방인이 황제의 성지(聖旨)를 받을 때 내시가 성지를 전달하면 사람들과 대신들 모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이것은 황제가 규정한 것이고 성지를 보면 황제를 본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누가 감히 꿇지 않을 수 있습니까. 무릎을 꿇지 않으면 목이 날아가고 황제를 기만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성령께서 어떤 사람을 감동케 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교통하든 공손하게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이 정도로 하나님 말씀의 권병에 절대적으로 순복하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 아래에 엎드린다면 이것이 바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바로 진정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준입니다. 만약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평범한 형제자매가 그렇게 교통한 말을 내가 어떻게 듣겠는가? 내가 그에게 머리를 숙여? 그가 하나님을 몇 년 믿었는데? 뭔 지위가 있다고? 무슨 자격으로 나랑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거야?” 그는 거만하고 이지가 없는 말을 100마디 준비해 놓고 100가지 이유로 당신을 거절하고 당신에게 자격이 없다고 여깁니다. “자격이 없다”, 다섯 글자인데, 여러분이 해부해 보세요. 이 다섯 글자가 무슨 뜻이겠습니까? 무슨 문제입니까? 누가 이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무엇을 사탄의 성품이라 하고 무엇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다섯 글자가 당신이 곧 사탄이라는 초상화를 그린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욕하고 조상 8대까지 욕했어도 정죄되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격이 없다”라는 말 한 마디에 정죄되어 도태됐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당신이 조상 8대를 욕하는 것은 사람을 상대로 한 패괴 유로지만 “자격이 없다”라는 이 말은 하나님을 겨냥한 것이어서 본질이 달라 같이 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더러운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이 다섯 글자를 말하면 당신은 문제가 되고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제가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무엇을 하나님을 범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이 한 마디가 하나님을 범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침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그와 이 진리를 교통하면서 그 문제를 제기했더니 “당신은 자격이 없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자격이 없다”는 말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며 성령 즉, 성령의 역사를 겨냥한 것이고 하나님을 상대로 한 것이기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범한 것입니다. 겉으로만 일을 보지 말고 실질을 봐야 하며 누구를 상대로 한 말인지를 봐야 하는데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해도 심각한 일이 아니고 조상 8대를 욕한다 해도 기껏해야 당신의 패괴 유로이고 인성이 나쁘다고만 할 뿐 하나님을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이 “자격이 없다”라는 한 마디를 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도 말한 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노하시는 걸 보지 못했고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죽을지 당신은 모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성경에 이런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이 그 사람을 정죄하셨습니까?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지만 예수님이 유다를 저주하셨습니까? 많은 일들에서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죽었고 더군다나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에 당신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면 당신은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고 죽게 됩니다. “대적하면 죽는다”는 이 말은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에서 하나님을 모독했었는데 받아들인 후에 계속 이 일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모독한 적이 있는데 도대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 일은 마치 가시처럼 그의 마음에 박혀있어서 빼고 싶지만 어떻게 해도 빼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끝장이라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듣지 못했고 모르고 있지만 사실, 제가 보기엔 위험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위험합니다. 이전에 효력자 시련이 임했을 때 저는 제 자신을 미워했는데, 무엇을 미워했겠습니까? ‘왜 이렇게 오만하고 어리석지?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해 말씀하시는데 난 기어코 성령의 계시라고 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로 여겼고,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대해 자매라고 하면서 그가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고 했으니.’ 저는 저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심판 형벌했으며, 어떤 때는 저에게 하나님을 조금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말씀하시면 늘 나만 상대하시고 질책하시지?’ 제가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약간 언짢았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저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후회했으며 제 뺨을 때린다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패괴 성품은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오만 자대(自大)하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계속 저를 쓰시고 저에게 일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공을 세워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시 거듭나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전에 제가 눈이 멀고 무지하고 인성이 없었지만 지금부터 다시 새 사람이 되어 공을 세워 속죄하는 마음으로 복을 받든 안 받든 효력만 한다 해도 끝까지 충성하겠습니다.”라고 뜻을 세웠습니다. 이 일에서 어떤 문제를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사탄에게 너무나 깊이 패괴되었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게 너무나 쉽고 게다가 밥 먹듯 하며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대적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씀을 교통하는데 들어보니 옳지 않고 우리를 탄복시킬 수 없으면 우리는 남을 얕잡아보면서 그 사람을 자격이 없다고 하는데, 이 말은 너무나 일상적이지 않습니까? 너무나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사탄 본성이 있으므로 당연히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여 악을 행치 않거나 악을 적게 행하는 데에 도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고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이 정말로 느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이래야 비로소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안전하지 않아 너무 위험하고 마음속으로는 수시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다 해도 입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말을 가리지 않고 말하고 싶은 대로 아무말이나 함부로 해 입과 말로 쉽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진리를 추구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필요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정말로 있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적인 길에 진입함과 동시에 우리도 상대적으로 안전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합니까? 생명 성품이 철저히 변화되어도 위험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좀 있거나 일부분만 있는 것으로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고 쉽게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느꼈겠죠.

여러분은 하나님의 교통을 다 듣고 나서 마음이 특히 무겁고 억눌리고 고통스럽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 고통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저와 같다고 말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오만 자대하고 복을 받기를 추구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했기에 여러분의 지금 심정을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때 이렇게 경력해 왔기 때문에 저 역시 여러분의 느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얘기한 경력은 여러분에게 적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은 다 적용할 수 있습니다. 패괴는 다 같기에 저의 경력이 바로 여러분의 경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교통한 말들의 대부분은 다 여러분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이고 모두가 여러분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속 말일 것입니다. 지금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말을 선포하신다면 당신은 반항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에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그리고 악을 멀리하는지의 여부가 드러납니다. 당신이 원망할 수 있다면 악에서 떠난 것입니까? 악에서 떠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악이 당신에게 여전히 존재해 당신은 하나님을 또 원망하거나 소극적이게 되고 본분을 내팽개칠 수 있으며, 또한 본분을 하지 않거나 도피할 수 있는데, 당신에게 악이 아주 많고 구원받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느낌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길이 있습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겠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도달하려면 몇 년의 공은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3~5년은 돼야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몇 년 경력했습니까? 20여 년입니다. 1991년부터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해 말씀하시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23년입니다. 23년 동안에 저는 이 정도 분량밖에 안 되지만 여러분은 저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직접 양육해 주는 사람이 있어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가 없이 제가 20여 년의 경력으로 여러분을 직접 양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저를 양육해 줄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저는 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지만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저의 이 분량에 도달하고 진리 실제로 진입하는 데에 저처럼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일 필요 없이 절반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10여 년이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려면 우선 몇 가지 주요한 문제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범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몇 가지 큰 죄는 범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서 우리에게 3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어떤 3가지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지, 네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지 절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둘째,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에게 어떤 지위를 주었든지, 너에게 어떤 사역을 담당하게 하였든지, 하나님이 너를 높여주어 어떤 본분을 하라고 하였든지, 네가 이전에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이 화비(역주: 들이다, 바치다, 쓰다, 지불하다의 뜻)하고 봉헌했든지 절대로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지 말라. 셋째, 하나님과 겨루지 말라. 네가 하나님이 너의 몸에 한 일과 안배한 일과 너에게 임한 일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순복할 수 있든 없든 절대로 하나님과 겨루지 말라.” 첫째,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둘째,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지 말라. 셋째, 하나님과 겨루지 말라.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아십니까? 자신 있게 정확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저의 경력과 인식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교통함에 있어서 누구도 함부로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고 자신의 경력과 인식만 말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실 권리가 있으시지만 우리들은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식을 교통하는 것이기에 제 말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참고만 하면 됩니다.

첫째,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다들 무슨 뜻인지 압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정형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뭔지 깨닫지 못하면 시험하려고 하고 하나님이 도대체 존재하시는지의 여부를 확신하지 못해도 시험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떠한지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여전히 시험하고 싶어 하며, 도대체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몰라도 시험해 보려 하고 그 답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이 가장 쉽게 하나님을 시험하지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시인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다만 시험하는 방면이 다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만약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한다면 도대체 복을 받을 수 있을지 꿰뚫어 볼 수 없기에 하나님 말씀 속에서 근거를 찾거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증을 해 주시거나 누가 저에게 답을 알려 주면 답을 알고 나서 제 길을 결정하고 선택하겠습니다.” 이것의 실질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릇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모두 시험하고 있고 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시험이라고 하는지 지금 알았겠죠? 시험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여러 가지 시험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런 시험 방식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도대체 나를 원하실까, 싫어하실까? 성령이 역사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난 왜 느낌이 없지? 좋아, 죄를 지어 보자. 돈 벌러 가봐서 성령의 징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겠어.’ 이것이 시험이 아닙니까? “좋아요, 제가 본분을 하지 않고 세상으로 돌아가 볼래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나타나시는지.” “제가 죽으려고 자살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제지하시는지 봐야겠어요.” 이것이 다 시험입니다. 이렇게 시험한다면 이런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당신이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한다고 해도 믿음이 없음을 설명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께 협력하는 것은 다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거나 공개적으로 당신에게 약속해달라고 시험하지 마세요. 만약 이런 속셈이 있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한 종파에서 온 사람이 지위 다투기를 좋아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모모 종파에서 지도자로 있었기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와서도 지도자가 돼야 합니다. 저는 성령이 사용하시는 사람에게 불복합니다. 그가 무슨 자격으로 인솔자 본분을 합니까? 제가 그와 맞서 겨뤄 보려고 하는데, 이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겠죠?” 그러므로 그는 함부로 저와 대항하고 저를 들춰내고 정죄하면서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떤 태도를 보이실지, 그가 믿는 분이 도대체 참 하나님이신지 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시험이 아닙니까? 이러면 위험합니다. 이 시험은 너무나 큽니다. 그가 “난 하나님과 다투지 않고 이 사람과 먼저 다투어야 겠어.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성령이 수호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테스트할 수 있어.”라고 하면서 지위를 다투려 하는데 이 시험도 작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적그리스도와 제명된 적그리스도 그리고 무릇 교회 인솔자와 지위를 다투는 적그리스도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율법시대의 모세와 맞서는 것과 같은 실질이어서 위험합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하나님께서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선포하실 때 이 부류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들어보세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어떤 실질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직접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이기에 이 시험의 실질은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면 성령께서 자연히 당신의 몸에 역사하여 일깨워 주시고 빛비춤을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하나님은 참된 분이셔서 바로 당신 곁에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당신 곁에서 환경을 이용해 역사하시고, 당신을 일깨워 주신다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이러면 충분합니다. 만약 당신이 개인의 속셈과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하나님에 대해 사치스러운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거나 얕든지 간에 늘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어떤 일은 뚜렷하고 어떤 일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재물 그리고 세상을 탐내 세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징계가 있는지의 여부를 보는데, 이런 시험은 지위를 다투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보다는 낫고 성질상으로도 조금 가벼운 것입니다. 어떤 시험은 대적하면 바로 죽는데 일부 가벼운 시험은 하나님의 성품을 완전히 범한 것은 아니어서 그리 심각하지 않으므로 괜찮고 죽음은 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면 위험합니다. 쉽게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압선을 건드려 전기에 맞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인데, 그 자체가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며, 당신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인데,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당신은 왜 또 하나님을 시험합니까? 당신에게 무슨 자격이나 지위 그리고 무슨 능력이라도 있습니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입니까?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그럴 자격이 없고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고 그렇게 많은 증거도 있고 다 성령 역사의 증거인데, 당신이 아직도 하나님을 시험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 줄 뻔히 알면서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 문제를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다음은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다”, 이 일은 일반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늘 인솔자가 되려 하고 하나님 집에서 늘 지위를 얻으려 하며 그에게 지위를 주면 믿고 지위를 주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이 지위를 다투는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솔자 본분을 하게 해야 하나님을 믿고 그렇지 않으면 안 믿을 거야.’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높은 인솔자 본분을 해야지 낮은 인솔자 본분은 안 할 거야.’ ‘나에게 결정권이 있고 권력을 잡아야 하나님을 믿고 그렇지 않으면 안 믿을 거야.’ ‘나보고 따르라고만 하면 난 믿지 않을 거고, 소극적이고 본분도 잘 하지 않을 거고, 매일 육체 가운데 살면서 술마시고 고기나 먹으면서 무위도식하고 그럭저럭 지낼거야.’ 이것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는 것 아닙니까? 소극적인 파업이 아닙니까?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는 것은 거래하는 것 아닙니까? 또한 노골적으로 지위를 다투는 즉, 사탄의 실질과 적그리스도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늘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하나님 집에서 천하와 하나님 집을 장악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며 독단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에 속하고 이렇게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면 분명히 죽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전에 하나님 집에서 제명한 적그리스도는 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대적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직접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지위를 주지 않으면 저는 잘 믿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를 수 없으며 본분을 잘 하지 않을 것이고 대충대충 할 것입니다. 당신이 저에게 지위를 주면 효력해도 되고 힘들어 죽어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지위를 위해 살고 지위가 바로 그가 추구하는 목표이며 지위가 바로 그의 생명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거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기어코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려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속하고 하나님께 직접 대적하는 사람으로 이런 실질은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죽습니다.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만약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지위가 있든 없든 그는 진리를 추구하고 어떤 본분을 하라고 해도 두말없이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합니다. 그러므로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과 지위를 다투기 위해 늘 머리를 짜는 사람 모두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 그리고 일하는 것도 다 지위를 위한 것이며, 입으로 말하는 것 역시 지위인데, 완전히 지위를 위해 말하고 일을 처리하며 바쁘게 뛰어다니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반드시 죽고 결말이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과 겨루지 말라”, 겨룸은 바로 하나님과 논쟁하여 맞서는 것이고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이며 논쟁이 끝나지 않으면 기어코 이치를 따져 자신의 이유만 계속 말하는데, 순복하지 않고 불복하는 이것을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라 합니다. 이 겨룸의 방식 또한 같지 않은데, 어떤 사람은 지위가 있어서 지위를 이용해 손에 쥔 권력으로 하나님과 겨루려 합니다.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가 바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하나님과 겨루려 합니다. ‘상면에서 어떻게 교통하고 사람에게 어떤 실행의 길을 주며 사역을 어떻게 안배하든, 난 실행하지 않고 내 자신의 방식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선민을 이끌고 통제하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역을 할 것인데,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지위와 권력이 없어도 하나님과 겨룹니다. 즉 ‘나에게 지위를 주지 않으면 소극적으로 하거나 본분을 안 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믿지 않을 거야. 나에게 지위를 주면 그때 가서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본분을 잘 할 거야.’ 대다수 사람들은 지위를 얻기 위해 하나님과 겨루고 소극적이고 태만하여 대항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재물을 얻기 위해 믿고, 어떤 사람은 가정에 닥친 어떤 어려운 일이나 재난을 피하기 위해 믿었는데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니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추구도 하지 않고 잘 믿지 않을 것이고 저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역사에 순복하지 않으며 집에 있어도 본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복음도 전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각종 환경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개인의 요구를, 또 어떤 사람은 개인의 속셈과 목적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겨루려 합니다. 여기에서 “겨룸”의 뜻이 바로 하나님과 맞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고 어떤 일이 닥치게 하시든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복하며 원망치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이 조금만 닥쳐도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면서 “재난을 해결해 주시지 않거나 저에게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저는 믿지 않고 본분도 하지 않으며 태만하여 소극적으로 일을 할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 겨룸입니다. 인솔자가 되고 나면 “제가 권력이 있게 되었고 당신이 저에게 인솔자 본분을 하라고 허락한 이상, 제 방식대로 인도할 것이고 제가 어떻게 하든 관여해서는 안 되고 제가 인도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며 성령께 쓰임받는 분도 저를 간섭할 권리가 없고 저는 제 생각대로 인도할 것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이런 상황입니다.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다.’ 제가 좌지우지합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과 겨루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 안에서 모진 고문을 견디기 힘들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만약 그들이 더는 저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해 주신다면 저는 당신을 시인할 것이고 간증을 설 것이며 만약 그들이 저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는 것을 허락하셔서 제가 견딜 수 없게 한다면 저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과 겨루는 데에는 별의별 방식이 다 있고 아무튼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이유와 변명이 생기거나 한 가지 어려운 점만 생기면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하며 하나님께 목숨을 바치지 못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께 목숨을 바친다면 어려운 점이 없어집니다. 제가 경력 간증 동영상을 한 편 봤는데 고문이 너무 혹독해 사람이 견디지 못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어떻게 됐습니까? 영혼이 육체를 떠나 아무리 때려도 감각이 없었습니다. 이 일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는지의 여부를 떠나 만약 하나님께서 죽음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당신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목숨을 바치기만 하면 다 되는 일이 아닙니까? 당신이 직접 ‘하나님, 그들이 저를 때려 죽인다 해도 당신을 믿겠습니다. 죽는다 해도 목숨을 바치고 살아서 나갈 생각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어떤 고문도 괜찮아. 마음대로 하라고 해. 이를 악물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견디지 못하면 죽는다 해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한다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무슨 이유를 따질 게 있습니까? 단지 죽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위해 살고 죽고 자식을 위해 뭐든 다 하다가 마지막에 자식이 병에 걸리면 자신의 장기를 잘라내 자식에게 주어서라도 살리려고 하는데, 이렇게 죽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당신이 목숨을 하나님께 바치면 안 됩니까? 당신은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으면서 하나님께 목숨을 바치는 것은 안 됩니까? 당신에게 믿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사실 하나님을 등한시한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게 많이 대적하고 많은 빚을 졌는데 당연히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정말로 목숨을 내놓고 맞아 죽었다면 영혼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겠습니까! 유감이 없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잘한 것입니다! 당신은 “저는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 왔지만 실패만 했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마지막에 사탄의 모진 고문 앞에서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실패를 승리로 바꾸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한 번의 승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죽어도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실이 이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언젠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속에 위로를 조금 느낄 수 있게 말이야. 내 목숨은 가치가 없어, 언제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지금은 자격이 안 돼. 만약 하나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시면 가장 좋을 텐데, 내가 하나님께 목숨을 바치면 되는 거니까.’ 이 소망은 실현되기가 어렵겠지만 당신에게 목숨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이런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고난을 받고 대가를 치르고 충성하는 데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본분을 함에 있어 충성하고 진리를 실행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 원칙이 있고 마지막에 많은 진리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면, 아마도 어느 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당신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이고 헛되이 살지 않은 것입니다. 비록 이전에는 전부 실패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마지막 한 번에서 이겼고 결국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성공과 실패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최후에 실패한다면 문제지만 최후에 성공한다면 헛되이 살지 않은 것이고 그나마 한 번 성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최소한 이 3가지를 구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지 말고 하나님과 겨루지 말아야 합니다. 이 3가지는 큰 악입니다. 만약에 이 3가지를 범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다면 죽을 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지 않는 죄라면 어떤 징벌과 고난을 받아도 다 어렵지 않습니다. 목숨을 바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3불(三不: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지 말라. 하나님과 겨루지 말라.)”을 지킬 수 있습니까? 이 3가지를 지킬 수 있다고 보증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최저 기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고, 이 3가지를 지킬 수 있다면 최소한 하나님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거래하지 말아야 하고 개인의 추구가 없어야 하며 복 받기를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근거해 살고 믿음으로 일하고 믿음에 근거해 모든 것을 버리고 믿음으로 화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매사에서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고 교회에서 안배하는 대로 순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한평생은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솔자나 다른 사람이 당신을 발탁하지 않는다고, 당신이 한평생 따르는 자로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풍수는 돌고 도는 법”입니다. 어느 날 인솔자나 일부 하나님 선민이 당신을 발견하고 “야, 이 사람에게는 정말로 진리 실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를 뽑아 인솔자 본분을 하게 하겠습니다.”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보세요, 그러면 당신이 선거로 뽑힌 것이 아닙니까? “풍수는 돌고 도는 법”, 그것은 이방인의 말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바로 성령의 역사는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보기에 제가 일을 함에 있어서 사람을 규정합니까? 어떤 때에 한 사람이 한 일이 저를 화나게 하면 당시에 제가 화를 내며 호되게 질책하지만, 나중에 그에게 변화와 회개가 있고 제가 보기에도 정말로 변화가 있다면 화를 낼 수 있겠습니까? 그에 대해 선입견이 사라지게 되는데, 당신이 정말로 변한다면 저는 어떤 선입견도 없어지고 일은 옛말이 되며 없었던 일이 됩니다. 저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전에 저는 어떤 사람을 아주 미워했었습니다. 이방인의 말로 한다면 그를 얕잡아보았고 그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인성이 없어서 저의 안중에 아예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가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뜻밖에도 그에게 정말로 변화가 있네요. 이 사람을 발탁해서 본분을 하게 하고 사역을 안배해 주고 지켜보세요, 잘한다면 다시 발탁하세요.”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한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세상만사가 변화무쌍하여 자신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위를 다툴 필요 없이 하나님의 안배에 따르면 가장 좋고 영원히 틀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금이라면 언제가는 빛을 발할 것이고 흙덩이라면 언젠가는 도태되어 누가 발탁해도 안 되므로 지위를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과 겨루지 말라”, 지위가 없다고 지위를 다투지 말고 지위가 있어도 하나님의 뜻과 요구대로 본분을 해야지 손에 쥔 권력을 휘두르거나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독차지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력이기에 하나님의 권병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 단지 본분을 할 뿐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본분을 주신 것이지 지위를 주신 것이 아니고 권력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어떤 형제자매들이 인솔자 일꾼을 하다가 나중에 자신이 진리 실제가 없음을 발견했거나 하나님께 한 가지 일로 미움을 사게 되었고 하나님 선민에게 해를 끼쳐 스스로 물러나는 것을 봤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지(理智)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는 사람입니까? 그에게는 순복과 이지가 약간 있는데, 이것은 진보한 것입니다. 저는 사직한 이 시람에게 변화가 있을지, 만약에 그에게 다시 인솔자 일꾼을 시키면 전보다 나아질 수 있을지, 그리고 회개할 수 있을지를 보고 나서 만약 할 수 있다면 저는 그에게 계속하라고 하고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 우선 한동안 경력하게 할 것입니다. 그는 이지가 있어서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이 자라남에 지체가 될까봐 염려하며, 만약에 정말로 하나님 선민을 망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에서 잘못되면 천고의 죄인이 되어 되돌릴 방법이 없게 될까봐 염려합니다. 그가 이 원인으로 인해 사직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좀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얕잡아보지 않고 중용하며 이런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스스로 인책사직한 것만 보지마세요. 이런 사람은 앞으로 희망이 있기에 저는 이런 사람을 중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오직 진리를 추구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성령께서 당신에게 날마다 역사하시고 일깨워 주시며 빛비춤을 주시므로 점차적으로 당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다시 더 많은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이 3가지 계명 즉, 3가지 충고를 지킨다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를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의 도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