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들어서다≫에 관한 설교 교통 (6)
『만약 하나님을 다년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다년간 누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정의한 것과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정의한 실질이 같다면 이것은 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얻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그가 전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중의 실제와 진리, 하나님의 뜻,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그와 관계도 없고 몫도 없는 것이다. 즉 이런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에 공을 들여도 쓸데없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글귀이기 때문에 그가 얻는 것도 필연적으로 글귀인 것이다. 하나님이 한 말씀은 표면상에서 볼 때 알기 쉽든지 아니면 심오하든지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필요를 공급하고, 사람의 일상 처신의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와 방향을 공급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로서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해야 하는가의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보장이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자 사람이 굳세지고 일어서게 되는 견고한 방패이다. 그에게는 피조된 인류로 하여금 정상적 인성을 살아내게 하는 진리의 실제가 충만하고, 인류로 하여금 패괴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올무에서 나오게 하는 진리가 충만하며, 피조된 인류에 대한 조물주의 간곡한 가르침과 권면, 격려와 위로가 충만하다. 그는 사람을 인도하고 깨우쳐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깨닫게 하는,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고 사람이 모든 정의와 미선(美善) 사물을 살아내고 소유할 수 있는 보장이며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가늠하는 준칙이자 사람을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고 광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항로 표지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실제 경력 중에서만이 진리의 공급을 얻고 생명의 공급을 얻게 되며, 어떤 것이 정상적 인성인지, 어떤 것이 의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이 진정한 피조물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복인지를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구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며,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믿음인지,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경배인지를 깨닫게 되고, 천지만물의 주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며,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고 이끌고 만물에게 공급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나타나고 역사하는지를 깨닫고 알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실한 경력과 체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터득이 없다. 이런 사람은 곧 전형적인 산송장이고 전형적인 빈껍데기인데, 조물주와 관련된 모든 인식은 그와 관계도 없고 몫도 없다. 하나님의 안중에 이런 사람은 여태껏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고 여태껏 하나님을 따른 적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신도라고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고도 인정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를 진정한 피조물이라고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진정한 피조물로서 당연히 조물주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당연히 사람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하며, 당연히 피조물의 직책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당연히 어떻게 조물주를 경배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조물주의 뜻과 마음의 소리와 요구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인식하고 헤아려야 하며,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조물주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말씀은 다 진리이고 다 실제인데, 이런 진리는 어떤 방면을 포함합니까? 그 내용은 너무나 많습니다. 첫째,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둘째,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필요를 공급하고, 사람의 일상 처신의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와 방향을 공급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로서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해야 하는가의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보장이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자 사람이 굳세지고 일어서게 되는 견고한 방패이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각 방면의 효과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진리가 도대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해야 되고 이런 방면에서부터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에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는 피조된 인류로 하여금 정상적 인성을 살아내게 하는 진리의 실제가 충만하고, 인류로 하여금 패괴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올무에서 나오게 하는 진리가 충만하며, 피조된 인류에 대한 조물주의 간곡한 가르침과 권면, 격려와 위로가 충만하다. 그는 사람을 인도하고 깨우쳐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깨닫게 하는,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고 사람이 모든 정의와 미선(美善) 사물을 살아내고 소유할 수 있는 보장이며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가늠하는 준칙이자 사람을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고 광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항로 표지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의의와 진리의 실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에 대해 도대체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 말씀을 잘 상고해 보면 진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생기게 되고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에 대해서도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럼 이 몇 마디 말씀을 어떻게 인식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의 경력에 근거하여 확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한 것이 너무 적어 다른 사람이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당신이 모른다면 진리에 대해 인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진리에 대해 인식이 좀 있다면 “진리는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있고 사람을 인도하여 생활할 수 있게 하고 사람에게 믿음을 더해 줄 수 있으며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몇 가지만 말해서 되겠습니까? 이 몇 가지만 말하면 부족하므로 당신은 반드시 진리의 여러 가지 면 즉 사람의 무엇으로 될 수 있는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살아내게 할 수 있는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보장을 얻게 할 수 있는지를 다 말해야 합니다. 이래야 당신이 진리의 의의에 대해 투철하게 경력한 것이고 분명하게 인식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힘이 없습니까? 그 원인을 따져보면 바로 사람이 진리의 실질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진리의 실질을 아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서술에 근거하여 당신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경력하여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된 후이면 당신은 진리의 가치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대한 진리의 의의를 알게 됩니다. 그래야 사람이 비로소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지금 우리는 조금씩 다 알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이며 그 외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그 자체의 실질이 바로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것은 다 진리입니다. “다 진리이다”라는 것은 바로 각 방면의 진리, 모든 진리, 전부의 진리를 말하는 것인데, 이는 다 하나님의 소유소시입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면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서도 인식이 있게 되고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서도 인식이 있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어도 진리에 대해 인식이 없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른다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인식은 제로이고 설사 그가 많은 도리를 말할 수 있다고 해도 빈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관건은 무엇입니까? 먼저 진리를 얻어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을 통해 우선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진리를 인식해야 하며 나중에는 진리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인식하게 되고 진리의 실질을 분명하게 말하고, 사람의 가치와 사람의 인생과 사람이 생존하는 데에 대한 진리의 의의가 도대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진리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보애하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하나님을 대표하고 진리가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부분 사람들은 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다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고 엄격하게 말하면 바로 불신파입니다! 하나님 선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여러 해 믿은 사람이 계속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불신파가 아닙니까? 거짓 신도가 아닙니까? 이것은 추호도 의심할 바 없습니다. 보세요, 교회 안에 추호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말하고 행하는 것은 다 무엇입니까? 악언, 악담과 악행입니다.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한 대부분 말은 무슨 말입니까? 다 사람의 관념이고 사람의 그릇된 치우침이고 사람의 패역이고 다 그릇된 이론이며 다 진리에 부합되지 않으며 그가 한 일은 대부분 다 엇나가고 방해하고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것이고 다 기만인 것입니다. 그럼 이런 사람은 불신파가 아니겠습니까? 불신파가 말하고 하는 것은 전혀 진리 실제가 없고 성령 역사가 없기에 하나님 선민이라 할 수 없고 형제자매로 대할 수도 없으며 그는 반드시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그가 방해하지 않고 효력을 좀 할 수 있다면 남겨두고, 만약 방해하고 대충대충 하며 속이기만 한다면 효력을 한다고 해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기에 마땅히 도태시켜야 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합당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끝났고 사람을 드러낼 때이므로 이런 사람을 마땅히 처리해야 합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교회에 남겨둬도 되지만 악을 행한다면 도태시켜야 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한 번 악을 행한 것이 작은 악이면 용서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지만 큰 악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그 즉시 제거해야 합니다. 유다가 되는 자는 마땅히 제거해야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큰 손해를 가져오고 큰 골칫거리를 만든다면 단번에 제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아서 붙잡혔을 때 큰 붉은 용에게 보증서와 회개서에 사인을 해 주긴 했지만 인성이 좋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단지 분량이 적은 사람이라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가 팔아먹지도 않았고 유다가 되지도 않았고 교회에 그 어떤 문젯거리도 가져오지 않았다면 과오로 처리하고 제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하나님을 10년, 20년 믿은 사람이 회개서에 사인을 했다면 이런 사람은 드러난 사람이기에 마땅히 도태시켜야 합니다! 유다가 되어 형제자매와 교회 인솔자를 다 팔아먹었다면 새신자든 오랜 신자든 일률적으로 제명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교회에 손해를 끼쳤고 교회 사역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과오인 것입니다!
이 한 단락의 말씀은 진리의 서술에 대해, 사람의 생명 진입에 대해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람이 만약 진리에 대해 인식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이상이 없고 무엇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는지 모르며 사람이 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모르고 사람의 생존에 대한 진리의 의의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럼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복 받기만을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실제 경력 중에서만이 진리의 공급을 얻고 생명의 공급을 얻게 되며, 어떤 것이 정상적 인성인지, 어떤 것이 의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이 진정한 피조물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복인지를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구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며,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믿음인지,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경배인지를 깨닫게 되고, 천지만물의 주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며,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고 이끌고 만물에게 공급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나타나고 역사하는지를 깨닫고 알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실한 경력과 체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터득이 없다. 이런 사람은 곧 전형적인 산송장이고 전형적인 빈껍데기인데, 조물주와 관련된 모든 인식은 그와 관계도 없고 몫도 없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실질과 사람 생존의 관계를 아주 분명히 서술하셨고, 계속해서 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떤 문제에 대해 알아야 하는지 즉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마땅히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관건입니다! 우선 “어떤 것이 정상적 인성인지를 깨닫게 되고”를 말해 보겠습니다. 이 진리는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도대체 무엇이 정상적 인성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잘 몰라서 무릇 사람의 인성 방면에서 나온 것이면 다 패괴라 하고 패괴 유로(流露)라고 말하는데, 이런 논법이 정확합니까? 그는 사람이 기분이 안 좋아도 패괴 유로라고 하고 소극적이 되고 마음이 괴로워도 패괴 유로라고 하며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려도 패괴 유로라고 하고 생각이 나빠도 패괴 유로라고 말하고 심지어 감기에 걸리고 병에 걸려도 징계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것도 패괴 유로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맞습니까? (틀립니다.) 어디가 틀렸습니까? 그는 무엇이 패괴된 인성인지 무엇이 정상적 인성인지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고 정상적 인성과 패괴 유로에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몰라 이 두 가지를 헷갈려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분별할 줄 모릅니다. 분별할 줄 몰라 함부로 규정짓고 함부로 맞추는 바람에 결국 새신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약 진리를 교통한다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해결하지 못합니다. 어떤 표현은 정상적 인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일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압니까?”라고 물어볼 때, “저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하면 “진리가 없네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논법이 적합합니까? “내일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 압니까?” “그건 몰라요.” “당신이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알겠어요?” 이것은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화를 내면 그는 “패괴 성품이네, 패괴 유로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 함부로 규정하고 함부로 맞추는 것에 속합니다! 정상적 인성 안에 화내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질을 부리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는 것에서 무엇이 정상적 인성의 유로이고 패괴 유로인지 분별할 줄 압니까? (압니다.) 어떻게 분별합니까? (부정적인 사물이나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일을 보고 화내는 것은 정상적 인성입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정상적 인성에서 화를 내는 것은 사람이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인데, 필요한 경우엔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려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격이 아주 좋아서 사탄이 하나님을 공격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보고도 “허허” 하고 웃으면서 “당신은 사탄이군요, 난 당신에게 화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화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정상적 인성이 있습니까? 정상적 인성에는 진실한 애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가족에 대해 정이 있다면 이것은 정상적 인성입니까? (예.) 어떤 사람이 가족에 대해 정이 하나도 없다면 이것이 맞는 것입니까? 정확히 말하지 못하겠죠? 아직 진리를 확실하게 몰라서 그렇습니다. 정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진리가 있는 사람은 정에 의지하지 않고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사랑하는 것을 단념할 수 있다고 터득하면 정확합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진리를 깨달았는데 어떻게 아직도 정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건 정상적 인성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데, 이러면 또 틀렸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늘 편차가 있고 늘 그릇되게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정상적 인성 방면을 보고 관념이 생깁니다. 무엇 때문에 관념이 생깁니까?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이실 수 있을까?” “어!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감기에 걸릴 수 있지? 하나님이라면 감기에 걸리지 말아야 되잖아.”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예수님은 우셨어요. 그렇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우실 리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예수님이 우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이 눈물에 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또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네요, 아무것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상적 인성이 있으시기에 정이 있지만 그분은 정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알았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무엇이 정상적 인성인지 무엇이 패괴 유로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관념이 생길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에 대해 관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당신이 진리가 없어서 그리스도의 정상적 인성을 분별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어코 그리스도의 인성을 없이하려 하고 “그분이 전부 신성이어야 저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스도는 왜 정상적 인성의 일면이 있어야만 합니까? 이 일면은 어떤 작용을 일으킵니까? 많은 사람은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셨기에 반드시 정상적 인성의 육신을 입어야 인자이고 그래야 인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상적 인성의 일면이 없다면 인자가 아닙니다. 인자라고 한다면 곧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이고 사람에게서 태어났다면 인자의 일면이 있습니다. 그럼 왜 그분을 또 하나님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것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합니까? 그분에게 또 신성의 실질이 있어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신성의 일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성의 사역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도 발표할 수 있는데 왜 반드시 정상적 인성이 있어야 할까요? 이 정상적 인성은 포장된 것이어서 이방인들은 발견하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데, 이 속에 숨긴다는 뜻이 있지 않습니까? 낮추시고 숨긴다는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이 인성이 정상인 하나의 육신을 입으신 것은 마치 황제가 평복 차림으로 민간 시찰을 하는 것처럼 일부러 자신의 신분을 숨겨서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이 사람은 일반 백성이고 황제가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 결과 자신을 보호하여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정상적 인성은 한 방면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려 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접촉하기 쉽게 하려는 것이고 다른 한 방면은 자신을 숨기기 위한 것입니다. “숨긴다”는 것은 ≪성경≫의 어떤 말씀에 관련됩니까? “도둑 같이”라는 말씀에 관련되는데, 바로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모르고 아무도 알지 못하고 봐도 알 수 없는 것이 “숨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으신 것은 주요하게 3가지 방면의 의의가 있습니다. 한 방면은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과 잘 접촉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분과의 접촉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하고 그분의 역사를 경력하게 하려는 것이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을 접촉하기 쉽게 하고 그분을 알아가기 쉽게 하고 그분과 가까이 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께서 사탄 원수에 대해 자신을 숨기고 자신을 보호하여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이며 또 한 방면의 의의는 바로 사람의 패괴 유로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영이 통하지 않으면 늘 그리스도의 인성 방면만 보고 늘 관념이 있게 되고 늘 패역이 있고 늘 대적하고 늘 불복하며, 척 보고 생김새가 평범하면 오만 자대하여 얕잡아보고 멸시하고 깎아내리면서 사탄 본성을 드러내게 되는데 뱀을 동굴에서 나오게 하듯 패괴 본성을 유로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게 작용한 것이 아닙니까? (예.) 그럼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셔서 역사하시면 왜 효과가 가장 좋다고 하겠습니까? 원인은 이 3가지 방면의 효과와 3가지 방면의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경력하여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진리를 얻게 되면 마지막에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한 방면은 우리 자신이 진리를 깨닫게 되어 실제에 진입하고 생명이 자라나게 되는 것이며 다른 한 방면은 바로 진리를 깨달아 그리스도 즉 실제의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진실한 순복과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더 하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그분이 바로 실제의 하나님이고 바로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이고 바로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그분이고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며 바로 조물주의 화신임을 인식하게 될 때면 하나님 선민은 정식으로 실제의 하나님 즉 성육신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완전히 영광을 얻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느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늘 위의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땅 위의 실제의 하나님입니까? 만약 당신이 하늘 위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땅 위의 이 그리스도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직 진리를 얻지 못했고 실제의 하나님에 대해 아직도 인식이 없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당신은 언제 땅위의 하나님께 진실하게 엎드리고 경배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땅 위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늘 위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입니까? 이 사실은 사람을 아주 잘 드러내게 합니다. 당신이 만약 진실로 하나님을 안다면 땅 위의 실제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만약 이 한 분의 실제의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당신이 기도 드리고 경배하는 것은 여전히 하늘 위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땅위의 실제의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그분의 말씀을 경력하고 그분의 말씀에서 진리를 얻는 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효과에 도달하는데, 그때가 되면 비로소 우리가 말세의 그리스도를 경배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또 하늘 위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당신이 “제가 믿는 분은 말씀이 육신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실제의 하나님이지 하늘 위의 하나님이 아니에요. 저는 하늘 위의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어요.”라고 자신 있게 시인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고 서구인들이 하느님을 믿는 것과 같이 땅 위의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당신은 위험에 처하게 되고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려면 우선 모든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진리의 실질을 인식해야 합니다. 만약 진리의 실질에 대해 투철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어떤 방면이 있습니까? “어떤 것이 정상적 인성인지, 어떤 것이 의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이 진정한 피조물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복인지” 이런 것은 다 아주 관건입니다. 지금 이 몇 방면의 진리에 대한 인식을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의의 있는 인생입니까? 무엇이 정상적 인성입니까? 무엇이 패괴 성품입니까? 무엇이 진정한 피조물입니까? 진정한 피조물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사탄에게 패괴되어 피조물의 본분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피조물이 구비해야 할 진리에 닿지 못하면 진정한 피조물이 아니고 폐물이며 마땅히 도태돼야 합니다. 진정한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무엇을 구비해야 합니까?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조물주를 알아야 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잘해야 진정한 피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진정한 피조물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결함을 얻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여 본분을 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본분을 하지 않는 피조물을 진정한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는 피조물을 진정한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조물주를 알지 못하는 피조물을 진정한 피조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어떤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복인지”를 교통하겠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다년간 믿고도 진실한 순복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더 잘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긍정적인 진입이 없고 부정적인 대적과 패역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도 알아야 할 바이고 다 진리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구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며”, 이것은 다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해 드릴 줄 모르고 생명 진입에서 무엇이 하나님을 생각해 드리는 것인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가 있습니까? 정상적 인성이 있습니까? 사람에게 정상적 인성이 있다면 생각해 드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는 그것을 모릅니다. 마치 어린애가 어른의 일을 모르는 것처럼 어른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심정인지를 모르고 위로가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무엇이 헤아림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무엇을 급해 하시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마음에 두고 계시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시는지, 하나님의 희로애락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전혀 깨닫지도 못한다면 이런 사람이 무엇을 헤아림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무엇을 헤아림이라고 하는지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해 드려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이 진리 실제가 있겠습니까?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분량은 하나님을 생각해 드리는 정도까지 자라났습니까? 만약 이 분량이 구비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전혀 생각해 드릴 줄 모르는 것인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전혀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의 희로애락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을 생각해 드릴 줄 모르고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며 혹은 분량이 너무 작아 사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엇을 하나님을 생각해 드리는 것이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성령 역사가 없고 틀림없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으며 설사 인솔자나 일꾼이 됐다 해도 거짓 인솔자이고 거짓 일꾼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구비해야 하는지”, 이 두 방면도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왜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왜 본분을 합니까?”라고 물으면 “복 받기 위해서입니다. 본분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니 할 수 없이 하는 거죠!”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왜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깨닫지 못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왜 하나님 선민에게 자신의 본분을 잘해야 한다고 요구하시는지를 모른다면 그는 헤아림이 없고 더욱이 순복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구비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는데 사람이 만약 무엇이 진정한 사람의 모양인지, 왜 사람이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구비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이 사람은 사람됨에 성공한 것입니까 아니면 실패한 것입니까? 그는 사람됨에 있어서 성공하지 못했기에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지 못합니다. 그가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사람의 모양인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없는 사람이 살아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모양이 아니라 귀신의 모양이나 짐승의 모양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있기는 하지만 그의 행동거지에서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이 그의 행동거지를 보고 나서 다 메스꺼워하고 증오하고 반감을 가지며 미워합니다.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없는 데에는 어떤 행동들이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생각해 드릴 줄 모릅니다. 둘째, 진리를 추구할 줄 모릅니다. 셋째, 진실한 애증이 없습니다. 넷째, 어떤 일에 대해서도 분별할 줄 모릅니다. 다섯째,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고 주견 없이 대세에 쏠립니다. 여섯째, 무엇을 해도 쓸모가 없고 무슨 본분을 해도 잘하지 못합니다. 이 몇 방면의 행동에서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있습니까? 이 몇 방면의 행동거지를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성령 역사가 없으면 분명히 도태될 대상이고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지 역시 위험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배우자를 구하고 싶어 하는데 이는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있는 것입니까? 그는 “제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 배우자를 구하지 말라구요? 참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참을 수 없다구요? 당신이 진정한 사람이라면 자제해야지 늘 그것의 구속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고통이 조금만 있어도 참지 못하고 자신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이것도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람은 무엇을 구비해야 합니까? 절제, 인내, 자제, 이 몇 가지가 다 있어야 합니다. 이 몇 가지가 없이 늘 방탕한 사람은 한 방면은 스스로 모욕을 자초하는 것이고 한 방면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됨에 있어서 자제력이 있어야 하고 인내력이 있어야 하며 구속을 받아야 하고 염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정상적 인성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입니다. 정상적 인성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을 다 갖췄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람의 모양인 것입니다.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있는 사람은 배우자를 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고생스럽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고생스럽죠. 하지만 저는 절제할 수 있어요. 저는 수치심이 들어서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고 원칙 있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것을 정상 사람의 모양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습니까? 구속받지 않고 여기 저기서 사람을 유혹하는데, 이러면 정상 사람의 모양이 아니라 더러운 귀신과 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엄중하면 어떻게 됩니까? 쉽게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이성을 만나 눈에 들면 집적거리고 기회를 엿보는데 그에게는 속셈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골칫거리입니다! 이런 패괴된 생각, 패괴된 육체의 정욕을 그가 분명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자제하지 못하고 배반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평생 시집가지 않고 한평생 배우자를 구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한평생 과부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다 감탄하고 인정하고 칭찬하게 하는데 이것이 정상 사람의 모양이 아닙니까? 정상 사람의 모양이 바로 진정한 사람의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서 본분 하면서 시집 장가가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들의 살아냄은 단정하고 정직(역주: 정의롭고 솔직하다의 뜻)하여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늘 지키지 못하고 범하고, 쩍하면 다른 사람을 유혹하고 옳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위험합니다! 언젠가는 과오를 범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내버려지고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진리를 다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믿음인지,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경배인지를 깨닫게 되고, 천지만물의 주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며,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고 이끌고 만물에게 공급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이런 진리는 다 아주 관건입니다. 만약 이런 진리에 대해 분명히 모른다면 당신은 여전히 진리의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주된 방식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고 요구하신 진리를 완전히 깨닫고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가 일단 사람의 생명이 되면 사람은 간증을 선 것이고 자신의 본분을 지킨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어도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지 몰랐었다면 지금은 분명히 알았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기를 중시하고 하나님 말씀 속의 진리를 깨닫기를 중시하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이며 본분을 잘하기를 중시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기를 중시하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이 있어야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할 수 있고, 만약 진정한 믿음이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지만, 어떤 사람은 8~10년 믿었어도 하나님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많습니까, 많지 않습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다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이 없습니다. 지금 열두 편의 말씀의 교통과 상고를 거쳐 대부분 사람들은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지를 깨달았고 이제서야 진리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전에 하나님을 다년간 믿었지만 진정한 믿음이 없었기에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 왔으면서도 진정한 믿음을 구비하지는 못했는데, 이런 것을 주로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본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늘 가정의 얽매임, 육체 친인의 얽매임, 생활의 얽매임을 받아 그에게 본분을 하라고 하면 “안 돼요, 저의 집은 어렵단 말이에요! 식구들이 제가 없으면 안 되고 보살필 사람이 있어야 돼요. 믿지 않는 남편과 자식에게 밥도 해 주고 보살펴 줘야 해서 저는 본분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겠습니까? 그가 가정, 육체,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구속을 받고 피조물의 본분도 할 수 없는데 이런 사람은 진정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 없다면 그가 아무리 하나님이 있다고 시인하고 하나님을 진실하신 분이라고 시인한다 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비록 지금 제명되지 않았고 도태되지 않았다 해도 그의 믿음은 불합격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역이 철저히 끝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될 때에도 그가 여전히 피조물의 본분을 하지 않고 여전히 정식으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철저히 도태될 것입니다. 이 일은 마땅히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특히 큰 붉은 용이 미친 듯이 반격하여 하나님 선민을 잡고 핍박할 때 어떤 사람은 놀라서 물러갔거나 본분을 하지 않고 도망쳐버렸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겁쟁이에 속합니다. ≪계시록≫에 겁쟁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겁쟁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80년생, 90년생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직장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자기의 본분을 하는 것을 봤는데 이것이 믿음이 아닙니까? 이런 진실한 믿음을 구비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에게 선입견이 생겨서 “80년생, 90년생 젊은이들은 다 먹고 놀기만 좋아하지 해야 할 일도 안 하고 학교 다녀도 아무것도 안 배워서 대부분 다 폐물일 거야!”라고 말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정말 그렇고 다 사실이지만 저는 또 다른 하나의 사실을 봤습니다. 80년생, 90년생의 일부분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후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이 있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패괴가 얼마나 깊은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기만 하면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보았겠죠?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젊은이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들의 이런 믿음을 사람들은 다 찬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정말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따르고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하는 것을 보시고 위로를 느끼십니다! 제가 하나님과 이 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봐라, 80~90년생 젊은이들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건 대단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이가 얼마나 됐든, 70~80년생이든, 90년생이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당신을 구원하시고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며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다 공의로우십니다. 많은 종교가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경건한 면도 있지만 기어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도 역시 도태됩니다.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경배인지” 이것도 역시 하나의 아주 중요하고 아주 관건적인 진리이기에 사람이 반드시 진입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당신이 경배하는 분은 어떤 한 분의 하나님입니까, 말씀이 육신 된 실제의 하나님이 맞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경배할 줄 압니까? 만약 당신이 이 한 분의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으로 대하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순복한다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지만 만약 시종일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늘 관념이 있고 늘 패역이 있고 순복이 얼마 없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경배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고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고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고 하나님에 대해 사랑만 있고 순복만 있고 의지함만 있고 경배만 있고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고지상한 천지만물의 주재자로 경배하고 칭송하고 찬미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그 어떤 것보다 높다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경배가 있는 데에 도달한 것입니다.
“천지만물의 주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며,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고 이끌고 만물에게 공급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이런 말씀은 다 아주 중요한데, 도리로만 시인하면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천지만물의 주재는 하나님이시고 만물을 주재하시는 그분도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이렇게 도리만 말할 줄 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분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시고, 인도하시고, 만물에게 공급하시는지, 그 외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시고, 나타나시고, 역사하시는지 하는 이것은 다 진리입니다. 이런 것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된 것이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으며 진실하게 그분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분을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사람이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을 시인합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가장 지혜가 있으신 하나님이라고 시인합니까? 하나님께는 완벽한 지혜가 있으신데, 모든 피조물보다 높은 지혜이며 그 어떤 사람도 추량할 수 없는 지혜입니다. 이 점을 당신은 인식할 수 있습니까? 만일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그분을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 경배에는 무한한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한한 존경이 없고 진실한 인식이 없는데, 경배가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너무 얕은데 어떻게 그분을 하나님을 대하듯 칭송하고 찬미하고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시고, 인도하시고, 만물에게 공급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시고, 나타나시고, 역사하시는지 이런 것을 다 분명히 인식해야만 당신이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대해 진실로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심에 대해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입으로도 탄복할 수 있습니다. 이래야 비로소 당신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진실한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시는지에 대해 꿰뚫어 볼 수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시인하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시인한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몰라요.”라고 대답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당신의 인식이 너무 얕은 것 아닙니까? 당신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지 없는지, 사람을 온전케 하실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도대체 얼마나 인식한 것입니까? 만약 인식한 것이 너무 얕다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경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진실로 찬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것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어 마음속으로 탄복하고 입으로도 감탄하며 안목을 넓히고 무한한 숭경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감사와 찬미만이 진실한 것입니다. 그 경배는 하나의 자세가 아니고 어딜 가든 무릎만 꿇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무한한 숭경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과 숭경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지 모르게 되는 경지에 이르면 진정한 경배를 하게 됩니다. ≪계시록≫의 한 폭의 그림에 네 생물이 하나님 앞에서 밤낮 쉬지 않고 찬송을 드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로봇입니까? 누가 그들에게 날마다 그곳에서 그렇게 외치라고 정해놨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무한한 숭경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우러나온 것인데,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은 너무나 영화로우십니다!”라고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만 찬송하는 것입니다! 마치 한 물건이 너무나 예쁘고 좋아서 사람이 보기만 해도 마음속으로 “이 물건은 너무 예쁘고 좋구나. 뭐라고 형용할 수 없구나! 도대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지를 표현할 수가 없어.”라고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사람이 입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너무 아름답다! 너무 좋다! 너무 아름다워! 너무 좋아!”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고 몇 번을 말해야 마음속의 뜻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경배는 도대체 어떤 기초 위에 세워집니까? (하나님을 아는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을 앎이 어느 정도의 깊이가 되면 무한한 찬미가 우러나오고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찬미를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런 상황 하에서 그가 엎드리게 되면 마음으로 말을 하게 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며 어떤 언어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찬미를 표현해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과 마음속으로 본 것 그리고 마음속으로 느낀 것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네 생물이 하나님 앞에서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한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이 형용할 수 없음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참모습을 본다면 굉장할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그때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 대한 파격적인 높여주심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영화로우시고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그저 당신으로 하여금 좀 인식하게 할 뿐인데 당신이 변화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마음속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끊임없이 찬미할 것이고 밤낮 쉬지 않고 찬미할 것입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피조물의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을 뵙는 거야! 내가 하나님을 뵙지 못했다면 마땅히 무엇을 경배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고 무엇이 인류의 가장 큰 영광인지 몰랐을 거야.’라고 느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비록 하나님의 영체의 형상을 보진 못했지만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본 후에는 하나님의 낮추심과 숨기심,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희로애락,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찬미를 받을 만하다고 감복해 마지 않습니다! 영원한 찬미를 받을 만하십니다! 우리 인류가 영원히 본받고 영원히 찬양하고 영원히 칭송할 만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소유소시, 이런 진리, 이런 생명은 사람이 영원히 써도 없어지지 않고 다 쓰지 못함은 물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살아내기도 어렵습니다. “아, 하나님의 생명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까? 하나님의 실질은 어찌 그리 사랑스러울까? 난 언제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 언제 이런 소유소시를 살아낼 수 있을까?”라고 부러워하기만 할 뿐입니다. “난 왜 그렇게 되지 못할까? 하나님은 어찌 그리 아름다우실까?” 그런 심정은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고 난 후에 다시 사람의 소유소시와 대조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사람이 너무 비천하다고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너무나 비천하고 너무나 추악하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아름다우시고 너무나 위대하시고 너무나 거룩하십니다! 사람을 하나님과 비기면 사람은 땅 밑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 위에 있어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 언제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 소시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만분의 일 만 살아낼 수 있어도 만족스러울 텐데.’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면 사람의 첫 번째 느낌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은 창피하고 부끄러울 뿐이고 그런 다음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이런 느낌이 생긴 후에는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하고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한 후에는 최소한 오만하지 않고 독선적이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지 않겠지요? 패괴 성품이 일부분 해결되고 차분하게 자신을 낮추기 시작하고 머리를 숙이기 시작하겠죠? 더는 건방을 떨지 못하고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바로 이렇게 엎드러졌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아주 오만해서 다른 사람을 얕잡아봤었는데 나중에 경력하면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고 나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함부로 오만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패괴되고 오만한 제가 진리를 좀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일부 인식이 있게 된 후부터 자신이 밉고 메스껍기 시작했고 사람의 비천함을 보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보게 됐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 위대하심, 아름다우심, 선량하심과 비교해 보고 나서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오만했던 제 자신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말을 함에 있어서 이지가 좀 있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생명 성품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중 지금 어떤 사람들에게도 이런 표현과 변화가 있습니다. 단지 변화된 정도가 다를 뿐이고 차이가 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다 정상 상황입니다. 시련과 연단을 많이 경력하고 또 징계와 심판 형벌을 좀 받으면 오만한 사탄 본성은 자연히 철저히 무너집니다. 지금 어떤 사람은 절반 넘어졌고 어떤 사람은 말을 함에 있어서 이미 겸손해졌고 그다지 오만하지 않게 되었으며 어떤 때 누가 어떻게 대처하든 누가 어떻게 대하든 자신을 위해 변명하지 않게 되었고 이치를 따지며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변화가 있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사람의 모양이 조금 있습니다. 저도 보았고 관찰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이런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하나님이 발표하신 진리가 도대체 사람을 정결케 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느 정도까지 경력하게 되면 변화되는데 어느 정도 다 변화됩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변화가 좀 있게 될 때면 무엇을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인식이 좀 있게 되겠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게 되고 본분을 함에도 인식이 있게 되며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필요하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이런 변화가 있기란 쉽지 않았을 거야.’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하면서 많은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경력하였고 또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겪은 이런 경력이 있기 때문에 몇 년 후이면 당신은 그리 오만하지 않고 그리 독선적이지 않고 그리 자신을 나타내지 않게 됩니다. 누가 어떻게 당신을 대처하고 수리하든, 어떻게 당신을 대하든 정확하게 대할 수 있고 도리를 따져 논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며 자신을 위해 변명을 적게 하고, 적게 말하며, 오직 진리를 위해 말하고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형제자매들의 생명진입을 위해 말하며 자신의 전망과 운명을 위해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시든 다 괜찮아요! 옛 사탄으로 패괴되고 사람 모양이 조금도 없는 저와 같은 사람이 예전에 하나님을 그렇게 많이 대적했으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이지가 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순복이 좀 있지 않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해도 저촉함이 많이 적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게 되고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건은 어떻게 본분을 잘할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할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것인지, 이런 것만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것은 다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서 이러한 효과에 도달한다면 어떤 것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인지에 대해 다 조금씩 인식이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말씀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셔서 사람에게 공급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지에 대해 다 인식이 있게 됩니다. 이렇게 다 인식이 있게 된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복도 진실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심도 역시 진실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태껏 하나님을 경배한 적이 없고 여러 해 동안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도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 아닙니다. 그럼 어떤 기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고 어떤 기도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기도입니까? 진리를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도입니까? 자신을 위해 간구하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도입니까? 하나님께 입으로 감사와 찬미를 좀 드리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도입니까? 하나님께 맹세하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도입니까? 이런 기도는 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할 때, 마음속에 하나님을 존경하여 크게 높일 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음으로 인해 진실한 찬미가 생길 때, 그때야말로 비로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신분을 완전히 정확하게 알고 하나님을 조물주로 보고 이 한 분의 조물주가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분이기에 그분이 만든 만물은 다 마땅히 그분을 경배해야 하고 자신이 피조된 인류이기에 더욱 마땅히 조물주를 경배해야 한다고 인식할 때, 그때 당신이 다시 하나님께 기도해야 비로소 진실한 경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신분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고 어떻게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지에 대해 다 꿰뚫어 볼 수 없다면 진실한 경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치 한 사람이 그의 부친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부친의 신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 그에 대한 부친의 책임이 무엇인지, 도대체 책임을 다했는지 못했는지, 자식이 부친 앞에서 마땅히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 마땅히 어떻게 효도해야 하는지 이런 일을 다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진실로 부친께 효도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도대체 어떤 진리를 구비해야만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신분이 조물주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희로애락이 무엇을 대표하는지를 인식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물을 주재하시고 만물을 관리하시는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시는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 외에 피조물이 마땅히 서야 할 위치와 마땅히 해야 할 본분과 피조물의 직책이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다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조물주를 경배할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진정한 피조물이 되지 않았고 조물주에 대해서도 전혀 인식이 없다면 당신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그럼 이런 진리를 깨닫기가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까?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역사를 잘 경력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진리는 깨닫기 어렵고 아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자전거를 수리하는가를 연구한다면 그것은 너무 쉬워서 며칠이면 알 수 있겠지만 승용차 한 대를 수리하려고 연구한다면 어려워서 몇 달은 걸려야 됩니다. 전기 제품의 원리를 연구하려면 몇 년은 수고를 들여야 하고 한 가지 기술을 연구하려면 3~5년은 들여야 완전히 할 수 있고 한 가지 업무를 맡거나 한 기업을 경영하려면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기에 몇 년은 걸려야 됩니다. 하지만 구원받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려면 몇 년으로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는 몇십 년은 걸려야 합니다! 10~20년이나 30년 걸리고 어떤 진리는 한평생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한평생이 몇십 년 됩니까? 만약 당신이 20살부터 70살까지 진리를 추구한다면 기껏해야 50년입니다. 어떤 진리는 최소한 20년 걸려야 깨달을 수 있고 일부분 깊은 진리는 최소한 30~50년은 걸립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으로 놓고 말하면 하나님을 믿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최소한 10년은 걸려야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므로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기술 하나 배우려면 보통 3년 걸리는데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3년이라는 시간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두고 말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하겠습니까? 기초를 닦고 기껏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막 진입하기 시작하고 진리를 추구하기 시작하지만 생명 진입은 불과 얼마 안 됩니다. 그럼 만약 하나님에 대해 알려면 최소한 7~8년은 더 걸려야 하는데, 그 7~8년에다 기초를 닦는 3년을 더해야 하므로 최소한 10년은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경력입니다.
이 열두 편의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전의 말씀은 다 기초를 닦는 말씀이고 일부 비밀만 게시한 것입니다. 즉 3단계 역사의 비밀, 패괴된 인류의 실질, 일부 심판 형벌의 말씀, 하나님 역사의 경영 계획의 오묘한 비밀 이런 것을 다 게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면의 더 깊은 말씀은 주로 이 열두 편의 말씀에 있기에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이 열두 편의 말씀을 보고 난 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나와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검증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열두 편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외에 오늘 성령의 역사도 고조에 이르렀습니다. 보세요, 예전에 제가 진리를 교통할 때 생명 진입만 많이 말했지 하나님을 아는 방면은 아주 적게 말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편의 말씀을 발표하신 후부터는 제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교통하고 있는데, 성령께서도 크게 깨우쳐주시고 또 이렇게 역사하시니 성령 역사도 고조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결정적인 시기를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실 때 들어왔으니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이 2년 동안 얻은 것이 가장 많은데, 우리가 예전에 믿어온 그 몇 년보다 더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적극적이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본분에 협력하는 사람은 다 가장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들 중에 80~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많은데, 직장에서, 가정에서 다 나와 본분하려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세상의 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을 따르고 있고 큰 붉은 용이 미친 듯이 반격하고 붙잡고 있는 이 열악한 환경도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성령이 크게 역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7배의 강화된 영이 역사하기에 사람이 이렇게 큰 믿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교통하고 있는 것도 성령이 직접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시고 만물을 인도하고 공급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지 이런 일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최고봉에 이르렀고 또한 하나님을 아는 결정적인 시각이고 가장 소중한 시간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의 기회를 놓치면 사역이 끝날 때에는 당신이 아무리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도 너무 늦습니다! 그때가 되어 어떤 연로하신 형제 자매님은 “집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은 좋아졌어요. 자식은 직장을 다녀서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에 지금 저는 본분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겠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하나님 역사가 끝났기 때문에 당신이 돌아온 타이밍이 안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이 무너졌으니 저도 이젠 두렵지 않아요. 하나님을 따를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데, 큰 붉은 용이 무너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서 그것의 효력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받침물하는 역할을 끝낸 그때에야 와서 본분을 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 당신은 너무 늦게 알았고 너무 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이 아주 총명하다고 여깁니까? ‘큰 붉은 용이 가장 미친 듯이 날뛰고 있을 때 본분하고 하나님 따라선 안 돼. 그러다가 잡히면 무조건 죽을 거야! 큰 붉은 용이 무너진 후에 가서 따를 거야. 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지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큰 붉은 용이 너무 미친 듯이 날뛰니 일정한 시간 피해 있다가 큰 붉은 용이 무너지면 다시 하나님을 따라야지.’ 당신이 작은 주판알은 잘 튕겼는데 아쉽지만 기회를 놓쳤네요.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환경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시인하지 못하고 감히 본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언젠가는 흑암에 떨어져 통곡하고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볼찌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바로 이것이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공개적인 나타나심을 보게 될 그때면 애곡할 수 밖에 없음을 예언한 것입니다. 종교계의 사람들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일까봐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니겠지! 아니길 바래!” 이 말이 성립됩니까? 수만 번 되뇌어도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끝장입니다! 지금이라도 ‘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것은 다 진리이고 참으로 예수님의 재림이구나!’라고 알게 되었다면 빨리 믿고 엎드려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이러면 총명한 사람이고 아직도 “아니길 바래.”라고 말한다면 정말 우매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에 몫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안중에 이런 사람은 여태껏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고 여태껏 하나님을 따른 적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신도라고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고도 인정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를 진정한 피조물이라고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시지 않으면 그는 끝장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 가장 관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끝장이고 다 끝난 것이며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신데 어떻게 해야 그분이 인정하실 수 있겠습니까? 큰 붉은 용이 미친 듯이 날뛸 때 당신이 본분을 해야 진실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실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만 인정하고 본분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그분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인정만 해서는 소용없고 진실하게 본분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큰 붉은 용의 미친 듯한 박해를 받을 때 그분께 의지하고 그분께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당신을 구원하시고 당신과 함께하시며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고생을 다 받고 나서 그분께 순복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고 그분을 위해 간증을 설 수 있을 때에야 그분은 당신이 진실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인정은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합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사탄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당신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이 무엇을 말해도 소용없고 무엇을 말해도 다 텅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본분을 하는 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큰 붉은 용이 가장 미친 듯이 날뛸 때 누가 본분을 했는지, 누가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지, 누가 큰 붉은 용에게 놀라 넘어지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간증을 섰는지 이런 사실들은 많은 문제를 설명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큰 붉은 용이 무너질 때 일어나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설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다 하나님께서 이기신 증거입니다. 그때 가서 당신의 간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큰 붉은 용이 미친 듯이 덮칠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많은 하나님 선민들이 잡혀가서 감옥에서 고생하고 혹형받고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물을 때 당신이 “저는 집에 숨어있었습니다.”라고 말하겠습니까? 그것이 간증입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겠습니까? “저는 집에 숨어있었습니다!”라고 한 당신의 이 한 마디가 문제인데, 하나님은 당신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
지금 인솔자 일꾼들에게 은밀히 사역하게 하고 은밀히 영적 수양을 하게 했는데, 은밀히 영적 수양을 하면서 뭘 합니까? 본분하면서 간증문을 씁니다. 인솔자와 일꾼이 숨어있으면서 간증문 한 편도 써내지 못한다면 이 본분을 하지 못한 것인데 그때 가서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당신은 1년 동안 숨어있으면서 간증문 몇 편도 쓰지 못했는데, 이게 뭡니까? 도피고 도망이고 배반이고 간증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은 잡혀 그곳에서 혹형을 받고 고생을 하고 연단받고 있는데 당신은 숨어서 본분을 조금도 하지 않고 안일만 탐했으니 이것이 간증입니까? 이런 인솔자와 일꾼은 다 거짓 인솔자와 거짓 일꾼이고 마땅히 도태돼야 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본분을 잘하지 않았고 숨어있기만 했고 피해 있기만 했고 조금도 본분을 하지 않았고 간증문도 쓰지 않았으며 뒤에서 지휘하는 사역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도 헤아려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간증을 잃은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시고 더욱이 그를 진정한 피조물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은 분명히 제거될 것입니다. 지금 큰 붉은 용이 미친 듯이 덮치고 잔혹하게 붙잡음으로써 모든 사람을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드러낸 후 거짓 인솔자라면 반드시 교체해야 하고 적그리스도라면 반드시 제명해야 하고 악인이면 반드시 도태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인솔자 일꾼은 또 크게 한 번 물갈이를 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 선민을 도태시키고 드러내는 것은 이미 거의 끝났습니다. 이번 한차례의 대환난과 대시련에서 두려워하는 자, 믿음이 없는 자, 본분을 하지 않는 자, 간증을 하지 않는 자, 담대히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자,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 자들은 다 드러났습니다! 당신이 숨어도 되지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본분을 해야 할 때 하지 않는다면 간증이 없어진 것이고 당신이 뭘 말해도 다 듣기 거북한 것입니다! 본분을 너무 조금 하면 안 됩니다!
“하나의 진정한 피조물로서 당연히 조물주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조물주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도대체 조물주가 맞습니까, 아닙니까? (맞습니다.) 확신됐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조물주이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지위에 대해 다 분명히 알고 하나님을 확실하게 인식하여 그분이 바로 조물주이심을 았았다면 당신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절정에 이른 것이고 성공한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이 바로 조물주이심을 알지 못하고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조물주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그분이 어떻게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어떻게 만물을 관리하시는지 다 모르며 도대체 몇 분의 하나님이 있는지, 어떤 것들이 거짓 하나님인지 당신이 분명히 분별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흐리멍덩한 믿음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누가 참 하나님이고 거짓 하나님인지도 다 분명히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조물주인지 아닌지, 어떻게 만유를 주재하시는지에 대해 당신이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을 믿는다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당신의 믿음을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당신의 믿음은 여전히 헛된 것이고 철저히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지금 당신이 믿는 이 한 분의 유일무이하신 참 하나님은 조금도 틀림없이 바로 조물주이십니다. 하나님을 조물주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무엇에 관계됩니까? 이 한 분의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 역사하시고 인류를 인도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지에 관계됩니다. 그리고 또 어떤 방식으로 시대를 끝내려 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이후의 사람을 인도하시는지에 관계됩니다. 이런 일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하겠습니까? 피조물로서 정식으로 조물주를 경배하게 됩니다. 인식을 바로 하고 나면 경배하지 않겠습니까? 피조물이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경배하고, 조물주를 경배함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에 따르면 최후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되며 마땅히 있어야 할 마지막 거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완전히 성공한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영원히 흐리멍덩한 믿음입니다!
“하나의 진정한 피조물로서 당연히 조물주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당연히 사람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하며” “왜 만들어졌는지”, 이것이 아주 관건입니다! 피조된 인류의 직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왜 인류를 만드셨습니까? 인류를 만드신 데에는 어떤 의의가 있습니까? 진정한 인생은 무엇입니까? 인류가 생존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이런 일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이런 일을 꿰뚫어 본 후에야 당신은 참으로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낸 후에야 하나님께서 당신이 진정한 피조물이고 합격된 피조물이라고 칭찬하실 것인데, 당신이 합격된 피조물이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가장 높은 진리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안 됩니다. 이 진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의 진정한 피조물로서 당연히 조물주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당연히 사람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하며, 당연히 피조물의 직책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당연히 어떻게 조물주를 경배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조물주의 뜻과 마음의 소리와 요구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인식하고 헤아려야 하며,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조물주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 이 몇 가지 요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것은 피조물에 대한 조물주의 요구입니다. 첫째, 당신은 “조물주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둘째, “사람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하며” 셋째, “피조물의 직책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넷째, “당연히 어떻게 조물주를 경배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다섯째, “조물주의 뜻과 마음의 소리와 요구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인식하고 헤아려야 하며” 여섯째,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조물주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 이 몇 가지 요구는 피조물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로서 꼭 깨달아야 할 진리를 당신이 깨달았다면 당신이 바로 합격된 피조물이고 깨닫지 못했다면 당신은 합격된 피조물이 아닙니다. 이전에 진리를 교통할 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교통했었는데 지금 왜 갑자기 변했겠습니까? 피조물이 마땅히 어떻게 조물주를 대해야 하는지를 전적으로 교통하고 있는데, 이 화제가 변한 것이 아닙니까? (예.) 이 화제가 변한 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사역의 전환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왜 말씀을 함에 있어서 이런 전환점이 있을까요? 무슨 뜻인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 선민의 진리가 깊어졌고 하나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높아졌고 하나님 선민의 지위가 변해 피조물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또 높아졌음을 설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려 할 때 이 화제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즉 인류로 하여금 피조물에 대해 인식이 있게 했는데 무엇이 진정한 피조물입니까?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격된 피조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요구이고 하나님 선민이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런 방면의 진리에 대해 사람이 다 진입한다면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공에 가깝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 선민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하나님 선민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 진리는 너무나 높습니다. 저는 간단하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요구도 필요 없고 이런 것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 발자취를 따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의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위험하고 도태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어디까지 하시면 하나님의 말씀도 어디까지 하시는데 사람이 다 따라야 마지막에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한 구절 말씀에서 볼 때 하나님의 역사가 또 높아졌습니다. 지금 하나님 선민의 지위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신분은 조물주이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피조물과 조물주의 관계입니다. 이런 논법은 너무나 의의가 있습니다. 논법도 변했고 신분도 변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설명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바로 조물주이심을 인식했다면 우리의 지위도 따라서 높아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의 신분과 지위는 바로 피조물이다.” 보세요, 이것이 바로 높아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하나님의 신분에 대해 더욱더 정확하게 보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 자신의 신분도 확정됩니다. 그것은 바로 피조물인 것입니다. “피조물”이라고 말하면 마치 패괴된 인류라는 이 범위를 벗어난 것 같고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논법이고 새로운 호칭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에 대해 그분은 “너는 패괴된 인류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는 피조물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피조물이라고 말한다면 여기에는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할수록 우리의 경지, 우리의 지위와 우리의 신분은 다 따라서 높아지고 따라서 변하게 되고 부지중에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서 끝까지 가면 우리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조물주라는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에 대해서도 인식이 정확해지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호칭도 변하게 되는데 바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합격된 피조물이고 진리를 구비한 피조물이라고 부르실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끝났고 하나님께서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철저히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이 정도까지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진정한 마지막 거처를 얻을 수 있으며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도 안식에 들어가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