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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들어서다≫에 관한 설교 교통 (5)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쳐들고 읽고 심지어 하나님 말씀 중의 대표적인 부분을 다 마음에 새기고 귀중한 보물로 여기며 또한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 생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고 구원받고 온전케 함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동시에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았고 하나님 말씀의 게시(揭示)에 따라 자신과 맞춰보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숭배와 신임을 사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개인의 경영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하나님의 영광을 사취하고 훔친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칭찬을 얻으려고 망상한다. 여러 해가 지나도 이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칭찬을 얻기는커녕,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준수해야 할 도를 찾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공급하고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경외가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점점 깊어졌고 하나님에 대한 질투가 점점 심해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상상이 점점 부풀려졌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이론적 공급과 인도 하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하였고 마치 식은 죽 먹는 듯하였으며 마치 자신의 인생 목표를 찾은 듯하였고 마치 자신의 사명을 찾은 듯하였으며 마치 새 생명을 얻은 듯하였고 마치 구원을 받은 듯하였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 말씀을 낭랑하고 유창하게 암송하는 중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경로를 찾은 듯하였으며, 마치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늘 하나님과 대면하는 듯하였다. 그들은 또 늘 “감동”되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고 늘 하나님 말씀 속의 “하나님” 인도에 의해 마치 부단히 하나님의 고심을 깨달은 동시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도 깨닫고 하나님의 경영도 깨닫고 하나님의 실질도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도 알게 된 듯하였다. 이런 기초상에서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한 듯하였고 마치 하나님의 존귀를 더욱 인식한 듯하였으며 마치 하나님의 위대함과 비범함을 더욱 느낀 듯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 표면의 인식에 젖어 마치 그들의 믿음이 증가되고 고통받을 심지가 견고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심화된 듯하였다. 그들이 실제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인식과 생각은 다 그들의 일방적인 소망에서 온 상상과 추측임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어떠한 검증도 이겨 내지 못하고 그들의 소위 영적인 것과 분량은 하나님의 시련과 검증을 전혀 이겨 내지 못한다. 그들의 심지는 다만 모래 위에 세워진 공중누각에 불과하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소위 인식도 다만 그들이 머리로 상상해 낸 성과에 불과하다.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에 “꽤 공을 들인” 이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한 믿음인지, 무엇이 진실한 순복인지, 무엇이 진정한 헤아림인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인지를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이론, 상상, 지식, 은사, 전통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까지 다 가져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밑천과 무기로 삼고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근거로 삼는다. 동시에 또 그들은 이런 밑천과 무기를 하나님을 알아가는 비법으로 삼고 하나님의 검증과 시련, 하나님의 형벌 심판을 맞이하고 대응하는 비법으로 삼는다. 최종에 그들이 얻는 것은 여전히 종교 냄새로 가득한, 봉건 미신으로 가득한, 전설적인 것과 기괴한 것과 묘연한 것으로 가득한, 하나님에 대한 정론(定論)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정의(定義)는 하늘만 믿고 하느님만 믿는 사람과 똑같고 하나님의 실제,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등등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은 다 그들의 인식과 어긋나고 관계도 없고 몫도 없으며 심지어 상반된다. 이리하여 그들은 비록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설 수 없는데, 진정한 원인은 그들이 여태껏 하나님과 서로 알고 지낸 적이 없고 여태껏 하나님과 진정한 “접촉”과 교제가 없었던 데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서로 잘 알 수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과 따름과 경배가 생길 수 없었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이와 같은 관점과 태도로 그들은 결코 아무런 수확도 없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영원히 들어설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의 추구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고 그들이 영원토록 구원받을 수 없음을 뜻한다.

만약 하나님을 다년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다년간 누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정의한 것과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정의한 실질이 같다면 이것은 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얻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그가 전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중의 실제와 진리, 하나님의 뜻,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그와 관계도 없고 몫도 없는 것이다. 즉 이런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에 공을 들여도 쓸데없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글귀이기 때문에 그가 얻는 것도 필연적으로 글귀인 것이다. 하나님이 한 말씀은 표면상에서 볼 때 알기 쉽든지 아니면 심오하든지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필요를 공급하고, 사람의 일상 처신의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와 방향을 공급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로서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해야 하는가의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보장이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자 사람이 굳세지고 일어서게 되는 견고한 방패이다. 그에게는 피조된 인류로 하여금 정상적 인성을 살아내게 하는 진리의 실제가 충만하고, 인류로 하여금 패괴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올무에서 나오게 하는 진리가 충만하며, 피조된 인류에 대한 조물주의 간곡한 가르침과 권면, 격려와 위로가 충만하다. 그는 사람을 인도하고 깨우쳐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깨닫게 하는,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고 사람이 모든 정의와 미선(美善) 사물을 살아내고 소유할 수 있는 보장이며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가늠하는 준칙이자 사람을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고 광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항로 표지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실제 경력 중에서만이 진리의 공급을 얻고 생명의 공급을 얻게 되며, 어떤 것이 정상적 인성인지, 어떤 것이 의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이 진정한 피조물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복인지를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구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며,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믿음인지, 어떤 것이라야 진정한 경배인지를 깨닫게 되고, 천지만물의 주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며,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만물을 주재하고 이끌고 만물에게 공급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나타나고 역사하는지를 깨닫고 알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실한 경력과 체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터득이 없다. 이런 사람은 곧 전형적인 산송장이고 전형적인 빈껍데기인데, 조물주와 관련된 모든 인식은 그와 관계도 없고 몫도 없다. 하나님의 안중에 이런 사람은 여태껏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고 여태껏 하나님을 따른 적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신도라고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고도 인정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를 진정한 피조물이라고도 인정하지 않는다.

교통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설 수 없는데, 진정한 원인은 그들이 여태껏 하나님과 서로 알고 지낸 적이 없고 여태껏 하나님과 진정한 ‘접촉’과 교제가 없었던 데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서로 잘 알 수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과 따름과 경배가 생길 수 없었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이와 같은 관점과 태도로 그들은 결코 아무런 수확도 없게 되고……” “그들은 비록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에 있을지라도” 즉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비록 교회생활을 하고 있고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도 교통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설 수 없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주된 원인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줄 모르고 하나님과의 진실한 교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 있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자신의 이론과 상상, 지식과 은사, 전통적인 것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밑천과 무기로 삼고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토대로 삼는다면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만약 사람의 은사와 관념, 상상과 도리를 철저하고 분명하게 분별하지 않고 철저히 포기하고 배반하지 않고서 진리를 추구한다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든지 간에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게 되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진실로 경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늘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은사와 지식 그리고 소질이나 도덕관에 만족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을 밑천으로 삼고 ‘내가 이런 밑천이 있는데다가 하나님 말씀의 도리를 깨달았고 많은 영적인 도리도 깨달았으니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어.’라고 환상을 갖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 부류가 아닙니까? 이 일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고 합니까? 어떠한 사람이 곧 적그리스도의 본성입니까? 방금 읽은 그 단락의 하나님 말씀이 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집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의 은사와 지식과 소질에 만족하면서 형제자매님들을 얕보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특히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게다가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고 얼마간의 영적인 도리를 깨달은 것을 가지고 터무니없이 과장하면서 그 어떤 사람도 그들의 눈에 차지 않는데, 이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본성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이 박식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소질을 뽐내고 자기의 관념과 상상을 내세우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이런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밑천이라고 여기며, 더군다나 약간의 영적인 도리를 깨달아서 얼마간의 하나님 말씀을 해석할 수 있으면 그는 모든 사람을 뛰어넘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마땅히 그를 중용해야 하고 그들이 바로 하나님 집의 인솔자 일꾼의 적임자라고 여깁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원인은 바로 그들이 지식과 은사와 소질을 모든 것보다도 귀중히 여기고 심지어 진리보다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오만하고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며 안하무인이어서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럼 그들의 오만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그 원인은 그들이 소질이 높고 은사가 있으며 지식이 있기에 오만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만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밑천이며 밑바탕이므로 그들은 자신의 상상과 관념, 지식과 소질을 밑천으로 삼는 것입니다. 밑천이라고 하면 바로 자본인데, 이 자본과 밑천이 그들로 하여금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게 하며, 누구의 수리 대처도 받아들이지 않게 합니다. 그들은 ‘당신이 무슨 근거로 저를 수리 대처하는 겁니까? 제가 어디가 당신보다 못합니까? 제가 어디가 당신보다 부족합니까?’라고 여깁니다. 그들은 이런 심리이지 않습니까? ‘내가 당신보다 못한 게 뭔데 감히 당신이 나를 대처하다니, 당신은 나를 대처할 자격이 없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무슨 증거로 아니라고 말합니까? 그들은 진리가 없어서 사역을 할 수 없고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진리로써 자신의 패괴 실질을 인식하여 자신을 해부할 수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진리의 실제가 추호도 없는 것입니다. 비록 진리의 실제가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느 누구에게도 불복하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불복함”은 무엇에 근거해 온 것입니까? 그의 보잘것없는 밑천에 근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난 소질도 높고 당신보다 지식도 있고, 은사도 있고 말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으니 당신보다 나아. 인품과 지식으로 보나 소질이나 총명을 논해도 어느 한 가지가 당신보다 못한 것이 있는가,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일 수는 없어.’ 그들이 이런 생각이겠죠? “그들은 비록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설 수 없는데” 이 말씀에 근거하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 확정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지식과 소질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자기의 관념과 상상이 영원한 진리이고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참으로 들어설 수 없는데”, 이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즉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데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은사와 소질, 관념과 상상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생명 성품이 변화되어 도달한 효과이고 역시 생명이 자라남에 있어서의 필연적인 결과이지 지식과 도리를 많이 쌓아서 달한 효과가 아닙니다. 지식과 도리를 아무리 많이 쌓아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목사와 장로들이 한평생 하나님을 믿었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그 근원입니다. 하나님을 다년간 믿고도 왜 하나님을 모르겠습니까? 결론이 나왔습니다. 즉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단지 지식과 도리를 장비하는 것만 중요시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데에만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생명 성품이 시종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인들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큰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바로 연구하는 데에만 중요시하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없을까요? 이 문제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들이 자신의 지식과 소질과 두뇌를 밑천으로 하나님 말씀과 성경을 연구하고 또 이런 연구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관념이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 관념으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효과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도 영원히 정확하게 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원인을 분명히 보았겠죠. 하나님 집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기를 중요시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진리를 연구하는 데에만 중요시하므로 그들은 머리로 연구하는 부류의 사람이지, 진리를 추구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이 연구하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이렇게 나아간다면 위험해집니다! 연구할수록 관념이 더 많아지고 더욱 독선적이고 오만해지며 연구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연구하는 것과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효과가 왜 같지 않겠습니까? “연구”하는 것은 제삼자의 입장에 선 것이고 적대되는 입장에 선 것이어서 마음가짐이 잘못된 것이고 “추구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선 것이어서 순복이 있고 앙망이 있으며 의지함이 있기에 마음가짐이 옳은 것입니다. “연구”하는 마음가짐은 중립파이고 적대되는 입장이기에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일이 임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일이 왜 임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세요. 꼭 순복하겠습니다. 비록 모른다고 해도 저는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겠습니다.’ 그는 이런 마음가짐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연구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입니까? ‘이것이 무슨 문제인지, 하나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 깨우쳐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이 일에 순복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깨닫게 되면 그때 가서 순복할 것이고 깨닫지 못하면 순복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적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적대하는 마음가짐에 순복이 있겠습니까? 앙망이 있겠습니까? 의지함이 있겠습니까? 헤아림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의심하고 부인하고 대적하고 거절하고 구경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마음가짐이 틀리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마음가짐이지 않습니까? 그들의 마음가짐이 틀렸습니다. “마음가짐이 틀리다”를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즉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서 순복하는 마음을 갖추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도 아니며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헤아림이 없고 순복이 없습니다. 그 외에 또 구경하는 태도와 의심하는 태도, 부인하는 태도와 거절하는 태도, 조사하고 연구하는 태도가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바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가 적세력임을 증명합니다. 큰 붉은 용도 종교계의 지도자도 다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입니까? 연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약점을 잡자는 뜻이 있지 않습니까? 부인하는 뜻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관념에 맞지 않는 점을 발견한다면 정죄하려는 뜻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연구하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 부류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집에서 교회 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한들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참으로 걸을 수 없으며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법칙입니다.

“그들은 이론, 상상, 지식, 은사, 전통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까지 다 가져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밑천과 무기로 삼고”,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특징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다 이런 마음가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만 자대하여 누구에게든 불복하고 수리 대처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집의 그 어떤 인솔자 일꾼이든 다 얕잡아보면서 전적으로 약점만 잡으며 남의 흠을 들춰내 생트집을 잡으면서 이러쿵저러쿵 마구 논하면서 순복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최종에 모두 도태될 대상입니다. 이 사람들은 겉으로 봐서는 인성에 그리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연구하는 그의 이 마음가짐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양심과 이지가 있습니까? 진리를 대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연구하는 태도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영문인지 연구해 보고 도대체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생명으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좀 연구해 봐야겠어.” 그가 이렇게 연구하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조사합니까 아니면 먼저 받아들입니까? 먼저 연구합니까 아니면 먼저 순복합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듣자마자 진리가 좋아서 다른 사람이 “당신은 아직 잘 깨닫지 못했으니 먼저 줄 수 없어요.”라고 하면 그는 “안 돼요! 저에게 주세요! 저에게 주세요!”라고 하면서 낚아채듯 진리를 가슴에 움켜잡고 내놓지 않고 ‘내가 지금은 몰라도 잘 먹고 마셔서 받아들일 거야.’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진리에 대해 의심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무슨 마음가짐입니까? ‘당신이 준다 해도 먼저 안 받을 거야. 분명히 깨닫기 전까지는 뭐라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두고볼 거야.’ 이것이 바로 진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입니다. 참으로 진리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깨닫지 못해도 먼저 받아들여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실행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도 실행하고, 아는 것도 순복하고 모르는 것도 순복할 거야.’라고 하는데, 이것은 구하는 사람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알아보고 인식한 다음에 받아들였습니까 아니면 먼저 받아들이고 그 후에 경력하면서 인식했습니까?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아주 좋아서 ‘이건 진리야, 너무 좋아! 난 받아들일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먼저 연구해 보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연구할 필요 없이 받아들일 거예요. 틀림없어요! 받아들이고 나서 다시 알아가면서 추구하면 돼요.”라고 대답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먼저 받아들이고 나서 추구하고 경력하고 인식합니다.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진리를 대하는 2가지 태도를 분명히 보았겠죠?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수리 대처를 대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이겠습니까? ‘인솔자 일꾼들이 말한 게 맞아. 내게 결점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이건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 것이니 빨리 받아들여야 해. 만약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 조금 맞거나 반만 맞아도 진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니 받아들여야겠어. 다른 사람이 말한 것 중에 일부분이라도 진리가 있기만 하면 받아들일 거야.’라고 하면서 먼저 순복하고 받아들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수리 대처를 대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이겠습니까? “당신이 말한 것이 100% 정확해야 받아들이고 반만 차이가 있어도 저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또 이런 부류가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100% 정확하다 해도 태도가 좋아야 받아들이고 태도가 나쁘거나 말이 딱딱하면 저는 안 받아들이겠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태도는 “당신이 저를 수리 대처해선 안 돼요. 제가 한 것이 좀 부족한 것은 정상이니 당신의 수리 대처가 아무리 맞다 해도 듣기에 불쾌하면 저는 안 받아들일 거예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겠습니까? 경력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호랑이 엉덩이를 만질 수 없는 격”입니다! 그럼 하나님 집에서 당신의 성질에 따라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데는 당신의 성질에 따를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환경에 이런 교회 생활이니, 당신이 만일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순복할 수 있고, 만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고 순복할 수가 없으며, 발을 붙일 수가 없으므로 도망하거나 피할 것입니다. 이것을 “적자생존”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서 일부분 사람들이 한동안 하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야, 이 사람들, 정말 좋구나, 나쁜 사람이 없고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아! 이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니 정말 마음이 유쾌하고 즐겁고 해방받고 자유로워. 누가 해코지할까봐 근심할 필요도 없고 누가 약점을 잡아서 문제삼고 시끄럽게 굴까 근심할 필요도 없어요. 이 사람들은 가족보다 더 친절해서 당신에게 정말 병이 생기거나 재난이 있거나 환난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정말 도와줄 사람이고 누구도 구경만 하지 않고 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줘요. 이 사람들은 너무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수리 대처 하나도 감당할 수 없고 수리 대처가 임하기만 하면 먼저 머리부터 복잡해지면서 기도도 하지 않고 진리도 구하지 않고 순복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럼 하나님 집의 수리 대처에는 원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사역하면 문제가 생기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가로막음이 되며, 저렇게 사역하면 합당치 않아 쉽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쉽게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되며 하나님의 역사 발자취를 가로막기 때문에 당신의 이런 문제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이 당신을 수리 대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리 대처를 해도 악의가 없으며 오히려 당신을 도와줘서 자라남이 더욱 빠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집의 수리 대처에 악의가 있습니까? 당신은 수리 대처를 받은 사람이 격리되고 제명되는 것을 보았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리 대처를 겪고 생명의 자라남이 빠른 사람들은 격리되지 않았고 제명되지 않았고 억눌림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발탁되어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인솔자 일꾼들이 어느 누가 수리 대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바로 수리 대처를 받는 과정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수리 대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니 인솔자 일꾼이 되려 하지 말고 가서 그냥 일반 형제자매로 있으세요. 하나님 집의 인솔자 일꾼마다 많은 수리 대처를 경력했지만 몇이나 넘어졌습니까? 넘어진 사람이 몇 안 됩니다. 넘어진 사람은 소수이고 그들은 다 개별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요. 많은 사람이 처음 경력할 때는 어려운 점이 조금씩 다 있고 좀 고통스러워 눈물도 흘리고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기도 하지만 일정한 시간을 경력하고 나면 기도도 하고 구하기도 하면서 다시 일어섭니다. 다음에 수리 대처를 경력할 때는 저항력이 생겨서 진리를 구할 줄 알고 수리 대처가 임할수록 더욱 진리를 구하고 더욱 자신을 반성하면서 생명의 경력이 정상 궤도로 들어가게 되며 생명이 부단히 자라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어떠한 심판 형벌도 다 순복할 수 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으로 되고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으로 됩니다. 그럼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도달하게 된 것입니까? 즉 수리 대처를 통해, 하나님 말씀의 끊임없는 심판 형벌을 통해 이르게 된 것이며 역시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을 경력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내막입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이르려면 사람의 육체가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수리 대처는 그중 한 가지입니다! 지금 일부분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이 수리 대처를 경력함에 있어서 가장 취약하고 연약하며 가장 패역한 편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즉 그들이 늘 그들의 지식과 관념, 소질과 두뇌를 밑천으로 삼고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훌륭하며 완전무결하다고 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불복하면서 수리 대처가 조금만 임해도 참기 어려워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과 진정한 접촉과 교제가 있었겠습니까? 여기에 “진정한 원인은 그들이 여태껏 하나님과 서로 알고 지낸 적이 없고”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과 알고 지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조금도 모르고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어서 무엇이 하나님의 역사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종교의 형식적인 교회 생활, 즉 하나님 말씀을 좀 읽거나 기도를 좀 하는 것을 교회 생활이라고 여기면서 이렇게 지내는 교회 생활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것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지 않습니까? 은혜시대의 신도들은 무엇이 수리 대처인지, 무엇이 진정한 교회 생활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고 어떻게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전혀 모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과 알고 지낸 적이 없고 다만 은혜시대에서 “강보” 속에서, “요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만 누리면서 여태껏 성인으로 자라나지 못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지식인들이 와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이러합니다. 그들은 종교 안에서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엄청난 착오입니다! 사람이 관념과 상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너무나 위험합니다! 이러면 너무 쉽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진정한 원인은 그들이 여태껏 하나님과 서로 알고 지낸 적이 없고 여태껏 하나님과 진정한 ‘접촉’과 교제가 없었던 데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서로 잘 알 수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과 따름과 경배가 생길 수 없었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이와 같은 관점과 태도로 그들은 결코 아무런 수확도 없게 되고”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결코 아무런 수확도 없게 될 것입니다. “아무런 수확도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즉 마지막까지 믿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아무런 수확도 없이 가난하고 눈이 멀고 가련하고 벌거벗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영원히 들어설 수 없게 될 것이다.” 영원히 들어설 수 없게 된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들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들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부분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아서 최근 2년간 경력이 별로 없지만 만약 10~20년 믿는다면 우리도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영원히 들어설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 즉 하나님께 있어서 성령이 그들의 몸에서 영원히 역사하지 않을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이 부류 사람들을 대하시는 태도입니다. 그들이 만약 하루라도 육체를 배반하지 않고 그들의 지식과 관념과 도리를 배반하지 않으면 성령이 영원히 역사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영원히 들어설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의 추구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이런 추구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합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은 바로 영원히 하나님과 합하는 데에 이를 수 없으며 영원히 하나님과 대립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들이 진리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만약 진리가 있는 이런 환경 속에서 100년을 믿는다면 그래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과 합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이 말은 사람의 상상이지 하나님의 뜻에는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추구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영원토록 구원받을 수 없음을 뜻한다.” 이 말씀은 심각한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은 어떤 뜻이겠습니까? 이 부류의 사람은 도태될 대상이고 만약 그들이 갖은 악을 다 저질렀다면 징벌을 받을 대상임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분별함에 있어서 주로 무엇을 분별합니까? 즉 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누가 진리를 의심하고 진리를 연구하고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몸에서 아무런 변화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늘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포부는 있는데 펼칠 기회가 없고, 만사가 꼬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리마인데 늘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수심에 잠겨 고통스러워한다면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천리마가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야 천리마이며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당나귀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으면서 멋지게 본때를 보이려 하고 또 자신을 나타내려 하는데, 이것을 야심이라고 합니다. 어떤 야심이 있습니까?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정말 능력이 있으면 세상에 나가서 본때를 한번 보여보세요,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진리를 추구해야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지위도 얻으려 하고 또 사람 위에 서려 하는데,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지 당신의 집이 아닙니다. 당신의 집이라면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며 하나님이 권세를 잡고 진리가 권세를 잡습니다. 당신이 세상의 그 방법을 하나님 집에 가져와 쓰려 하고 상전들을 시중들던 방법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면 길이 틀린 것이고 상대를 잘못 찾은 것입니다. 당신은 은사가 있으면 하나님 집에서 반드시 당신에게 지위를 주어야 한다고 여깁니까? 하나님 집에서는 지위를 따지지 않고 본분만 합니다. 당신이 진리를 깨달아서 인솔자 본분을 하기에 합당하면 당신을 인솔자로 선거하고,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고 어떤 본분을 하든지 다 충성할 수 있으면 당신을 뽑아 다른 중요한 본분을 하게 합니다. 당신의 분량에 근거하고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인식 정도와 순복하는 정도에 근거해서 당신이 어떤 본분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은사는 있으나 본분을 함에는 엇나가고 방해만 하므로 이런 사람은 계속 쓰지 않고 도태시키고 제명합니다. 아무리 은사가 있어도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고 결국 진리가 없으면 안 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모없습니다. 일부 중요한 본분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안배해 놓은 것입니다. 본분은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훈련시키는 데에 쓰는 것입니다. 진리가 있는 사람을 훈련시켜야 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훈련할 기회가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집에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엔 굳게 설 수 없고 틀림없이 도태될 대상입니다.

다음 계속해서 다섯 번째 단락을 교통하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다년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다년간 누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정의한 것과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정의한 실질이 같다면 이것은 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얻지 못했음을 뜻한다.” 즉 다년간 하나님을 믿은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견해나 정의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견해나 정의와 같다면 이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아무것도 얻지 못했음을 증명합니다. 지금 당신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은 사람에게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정의합니까? 어떻게 인식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그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곧 하느님과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당신이 하나님을 시인하는 이방인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서 그도 “전능하십니다! 비도 오게 하고 바람도 불게 할 수 있고 농사도 사람이 얼마를 짓는 것에 관계없이 관건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이런 논법이 다년간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의 논법과 같은데, 그럼, 하나님을 믿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헛되이 믿은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만약 교회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다년간 경력한 사람이 종교에서 다년간 믿은 사람과 하나님에 대해 인식하고 정의한 것이 같다면 당신들이 보기에 이 사람은 진리를 얻었습니까, 얻지 못했습니까? 얻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헛 믿었습니다. 그럼 이 사람의 결국은 무엇이겠습니까? 종교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똑같은 결국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확이 똑같고 얻은 결과와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다 일치하여 그들의 결국이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근거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어느 부류의 교회에 있든지, 설령 당신이 하나님 집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으면 마지막 당신의 결말은 종교에서 다년간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의 결말과 똑같은 것이며 또한 여전히 도태되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좀 보세요, 하나님 집에 흐리멍덩한 사람들이 아주 많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말하라고 하면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엄격하게 말하면 이런 사람을 형제자매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부분 사람에 대해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호칭일 뿐이지 실질에 따라 가늠한다면 꼭 자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얻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그가 전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경력할 줄 모르고 아직도 진실한 경력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그에게 생명 경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 경력이 없으면 그에게 하나님 말씀의 실제가 없으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가 없으면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으며 정확한 정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럼 무엇을 하나님 말씀을 경력한다고 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분명하게 연구하고 나서 실행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연구하기 전에 먼저 실행하고 경력한 다음에 진입하는 것입니까? 어떤 길이 맞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의 뜻)한 사람이 되라고 하면 저는 그렇게 실행할 것이고, 하나님이 저에게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하면 순복할 것이고, 하나님이 저에게 하나님께 의지하라고 하면 저는 어떤 일에서든 다 하나님께 의지할 것이고, 하나님이 저에게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람을 앙망하지 말라고 하면 저는 하나님 요구대로 할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경력할 줄 알면 됩니다. 한동안 경력하다 보면 당신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즉 “저는 무엇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람을 앙망하지 않는 것인지, 무엇이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경력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경력해야 합니까, 아니면 연구해야 합니까? 경력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떠한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고 경력할 수 있으며 운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뭘 말해 줘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러면 잘못된 거지, 어리석고 우매한 거야!”라고 느끼면서 뭐라고 말해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모두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가 인성이 나쁘고 진리를 의심한다면 바로 “양가죽을 쓴 이리”임에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양가죽을 쓴 이리는 풀을 먹지 않고 양을 먹으려고 작정하는데, 다른 야심이 있고 목적이 바르지 않습니다! 지금 진리에 대한 교통을 많이 듣고 그도 진리라고 시인하지만 입만 놀렸지 실행하지 않고 실제로 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을 불신파라고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않으면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해도 간판만 내걸고 복을 얻어려는 속셈을 갖고 온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바로 불신파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중의 실제와 진리, 하나님의 뜻,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그와 관계도 없고 몫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과 관계도 없고 몫이 없습니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 이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없을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구원받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의 경영과 관계도 없고 몫도 없습니다.

“즉 이런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에 공을 들여도 쓸데없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글귀이기 때문에 그가 얻는 것도 필연적으로 글귀인 것이다.”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이 부류 사람들입니다. 그가 알려고 구하는 것은 다 글귀 도리이므로 마지막에 그가 얻게 되는 것도 여전히 글귀 도리입니다. 그가 진리를 구하지 않으므로 진리를 얻을 수 없으며, 영적인 도리를 알아놓고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여기고 추구하기에 마지막에 그가 얻게 되는 것도 역시 글귀 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도리만 말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설교할 수 있지만 자신은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는데, 이런 사람은 다 거짓 인솔자이고 적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왜 칭찬하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그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은 그의 본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교통하는데, 이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것을 기만이라 하고 이것을 외식한다고 합니다. 그가 유대교의 바리새인들과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똑같지 않습니까? 그가 늘 글귀 도리만 말하고 자신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그의 속셈은 기만이고 외식이기에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십니다.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미리 이 부류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고 저주하셨습니다. 지금 그들을 보면 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이 오셔서 예배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시거나 설교하시지 않고 그들을 구원하시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해도 하나님은 그들과 같은 바리새인을 구원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에서 그들은 이미 저주를 받은 대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는 종교 지도자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니 전해 들어왔다 해도 쓸모없다. 그들은 바리새인이어서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그들을 정죄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무릇 글귀 도리를 많이 말하는 사람, 진리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 속합니까? 거짓 인솔자에 속합니다. 그들이 만약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면 적그리스도로 정하고, 악을 행하지 않았다면 거짓 인솔자로 정합니다. 거짓 인솔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이어서 적그리스도와 아주 비슷한데, 단지 악을 얼마 행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악을 얼마 행하지 않았으면 거짓 인솔자이고 갖은 악을 저질렀다면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다 한 부류이고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쁜 짓을 했고 어떤 사람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제명시키고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은 먼저 남겨둬서 효력할 수 있으면 효력이나 좀 하게 하고 효력할 수 없으면 설사 교회에서 제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를 도태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은 표면상에서 볼 때 알기 쉽든지 아니면 심오하든지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이 말씀이 아주 관건입니다! 많은 그릇된 자들이 하나님이 인성에서 말씀하신, 비교적 간단명료하여 알아듣기 쉬운 말씀은 진리가 아니고 말씀하신 것이 특별히 심오한 말씀 속에는 틀림없이 진리가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사람의 관념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그릇된 자입니다! 그릇된 사람이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을 하심에 있어서 모두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하며 가장 간단명료하여 이해하기 쉬운 말씀으로써 가장 심오한 진리를 알아듣도록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일을 하심에 있어서 언제나 원칙만 있고 규례가 없으며, 하나님은 말씀하심에 있어서 실제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효과에 도달할 수 있으면 그렇게 말씀하시고 깨닫기 쉽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말씀하시며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고심은 무엇입니까? 즉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시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기만 하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약 지금 어떤 그릇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간단명료해 틀림없이 진리가 없고 진리가 아닐 거야, 심오한 말씀을 해야 진리야.”라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가장 심오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언인데, 예언은 심오합니다. 예언 자체는 한 가지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기에 사실 진리라고 할 수 없고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없습니다. 예언도 물론 진리를 위해 증거하는 것이지만 예언 자체가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가장 간단명료한 말씀이야말로 진리이며 그 속에 더 깊은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무엇이 가장 깊은 진리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가장 깊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언급하실 때, 간단하고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씀으로 하셨습니까 아니면 가장 심오한 말씀으로 하셨습니까?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가장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씀 속에 담긴 진리가 가장 깊으며, 가장 심오한 말씀 속에 꼭 깊은 진리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먼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간단하고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씀일수록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람의 생명 진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모두 간단하고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씀으로 하신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진리가 가장 깊은 것이기에 하나님이 이 2가지 방면에 대해 가장 간단하고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데에 규례가 없고 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목적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 발표하신 말씀은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기 쉽게 해야지 만약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면 효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은 표면상에서 볼 때 알기 쉽든지 아니면 심오하든지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다.”,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이 말씀이 매우 관건입니다! 진리를 언급하기만 하면 왜 생명 진입과 연결하여 말씀하겠습니까? 여기에 의의가 있습니다. 그럼 생명 진입과 진리는 어떤 관계입니까? 진리는 사람이 생명 진입하는 실제입니다. 그럼 진리와 생명은 어떤 관계입니까?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생명이 자라나려면 반드시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진입하는 데에 의지해야 달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생명을 경력하는 대상입니다. 생명 경력이란 무엇을 경력하는 것입니까? 바로 진리를 경력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한평생 하나님을 믿으면서 경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입니까, 아닙니까? 진리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경력하면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얻는 것은 진리입니다.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많이 경력할수록 얻게 되는 진리가 더 많으며, 얻은 진리가 많을수록 당신의 생명이 더 진입되며, 생명 진입이 많이 될수록 생명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럼 생명이 자라나는 것과 진리는 무슨 관계입니까? 즉 당신의 생명 안에 얻은 진리가 많아지고 진리에 대한 경력이 많아지고 뚜렷하게 깨닫게 되어 진리가 당신의 생명으로 되면 당신의 생명이 자라난 것입니다. 생명 진입의 최종에 어떤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까? 즉 생명이 자라난 것입니다. 그럼 생명이 자라남은 무엇을 통해 도달하게 된 것입니까?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자라난 것인데,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많아지면 생명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럼 이 생명은 어떤 성질의 생명입니까?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바로 진리가 사람의 생명으로 된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 안에 받아들이는 진리가 많아질수록 당신의 생명은 더 자라나며, 생명이 자라날수록 진리에 대한 당신의 인식은 더욱 깊어지고 얻는 진리도 더욱 많아집니다. 본래 사람의 생명은 어떤 요소였습니까? 사탄의 독소와 사탄의 철학이며, 사람의 관념과 상상, 지식과 도리였습니다. 지금 당신의 생명 실질은 무엇입니까? 많고 많은 하나님 말씀 속의 진리가 당신의 생명에 들어가 당신의 생명을 차지하였고 당신의 생명으로 된 것입니다. 그럼 당신의 생명속에 지금 진리를 얼마 받아들였습니까? 어느 정도의 진리가 당신의 생명으로 되었습니까? 당신의 생명은 지금 하나님을 알고 순복하는 생명에 도달했습니까?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많은 소유소시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당신의 생명 안에 다 받아들였다면 당신의 생명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생명이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생명입니다. 이러면 당신의 생명 실질이 변화된 것이 아닙니까? 생명의 실질이 다 변화되었다면 당신의 성품도 변화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명 성품이 변화가 되었다면 생명도 변화되었으며 성품도 변화된 것입니다. 그럼 당신이 변화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실질이 다 변화되었는데 사람의 겉모습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탄의 독소로 완전히 침점된 사람은 어느 부류의 사람입니까? 악인이고 지식인이며 정치가이고 이방인 속의 가수와 영화배우들인데, 그들은 다 천왕이 되려 하고 황후가 되려 합니다. 그들은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독소로 침점되어 모두 사탄에 속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점유된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많은 진리를 생명으로 한 이 부류의 사람에 대해 이방인들은 뭐라고 부릅니까? “신화분자(神化分子)”라 하고 “신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신화”되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점유되었으며 하나님께 점유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점유된 것을 영적인 용어로 어떻게 말합니까? (하나님께 얻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얻어졌다고 합니다.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당신은 지금 진리에 얼마큼 진입했습니까? 당신이 진리에 많이 진입하게 되면 당신의 생명 실질도 변하게 되는데, 그러면 사탄 본성에 속한 생명이 아니라 진리에 속한 생명이며, 당신 안에 진리가 있고 진리를 얻게 되면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성품이 다 변화되며, 변화된 후에는 당신이 무슨 일을 처리하든 모두 진리에 근거하게 됩니다. 진리에 근거해서 말하고 진리에 근거해서 대하며 원칙에 근거해서 대한다면 당신은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이며, 진리가 있기만 하면 귀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만들어진 사람이고 구원받고 온전케 된 사람이며 바로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 되는 게 좋습니까, 아니면 사탄에게 속하는 사람이 되는 게 좋습니까?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사탄에게 속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좋지 않습니까? 사탄의 본성 안이 모두 독이기 때문입니다! 다 사탄의 여러 가지 독소입니다. 사탄의 독소가 많으면 바로 악성 종양이고 독극물인데, 그것들이 합쳐지면 곧 하나의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놈의 뱃속에 들어찬 것은 온통 사탄의 독소이고 독극물이고 음모와 간계이고 고약한 심보이고 진리가 조금도 없으니 사탄이 아니고 뭡니까! 만약 우리가 진리에 진입한 것이 아주 많아서 진리가 우리를 점유하게 되면 우리의 생명은 곧 진리가 있는 생명이 될 것이고 우리 안에 있는 많은 진리가 우리의 생명 실제로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진리가 있는 생명으로 된다면 바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진리 안에 어떤 특징들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이 밖에 또 선하고 공의롭고 공평하고 원칙이 있으며 긍휼이 있고 포용이 있으며……정상적 인성의 소유소시를 다 갖추었고,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떤 일에 대해 모두 꿰뚫어 볼 수 있고 어떤 일을 처리하든 모두 원칙이 있고 살아감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밖에 모릅니다. 이같이 하나님을 끝까지 믿게 되면 하나님의 신분에 대해, 하나님의 지위에 대해,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에 대해 모두 하나의 정확한 정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은 무엇입니까? 조물주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신분은 무엇입니까?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다 있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 합격된 피조물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이 합격된 피조물은 어떻게 생기는 것입니까? 바로 사람이 진리의 실제에 많이 진입하여 하나님이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다 심령 깊은 곳에 받아들여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고 우리의 소유소시로 되게 하며 우리의 생존 토대로 되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합격된 피조물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류가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를 하나의 합격된 피조물로, 진정한 인류로 만드는 이것은 바로 사람이 마땅히 얻어야 할 영광입니다. 합격된 피조물, 이것은 피조물의 최고의 영광이며 하나님께 “합격”되었다는 일컬음을 받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지식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여 남보다 뛰어나려 하고 사람 위에 올라 서려 하고 사람의 숭배를 받으려 합니다. 이 사람들은 마지막에 무저갱에 던져져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의의가 있지 않습니까? 아주 의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번 다시 돌아보세요. 진리를 좀 얻었습니까? 생명 진입이 있습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은 수리 대처를 아주 잘 받아들이고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배치하고 안배한다 해도 원망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이며 생명이 진입되는 시작이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사람입니다. 수리 대처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불신파이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고 언제나 원망을 털어놓으며 고통을 조금도 받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좀 함으로써 하나님께 축복을 얻고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수리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인데, 심하게 배척하고 허영심이 너무 강하고 정이 너무 깊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한 자매님이 저에게 뭐라고 말했을까요? “저에게 인솔자만 시켜 주면 하나님 집에서 저를 어떻게 대해도 괜찮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듣기에 이 말은 어떤 말인 것 같습니까? 적그리스도가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는 늘 인솔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지배하는 대로 할 수 없고 그에게 인솔자 본분을 주는 전제 하에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대해도 다 괜찮다고 하고 죽어도 원망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하는 말이 아닙니까? 만약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저를 어떻게 안배해도 저는 다 순복할 것이고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다 해도 다 순복할 것입니다. 제명만 하지 말아 주세요.” 이 말이 어떻습니까?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차원이 틀립니다. 거짓 인솔자의 말은 어떻게 분별합니까? 이 한 마디가 그를 가장 잘 대표합니다. 즉 “저에게 인솔자만 시켜 준다면 제가 어떻게 사역하고 설교를 하든지, 힘들어서 죽을지라도 괜찮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뜻은 바로 “당신은 제가 어떻게 하든지 어떻게 글귀 도리를 말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저에게 인솔자만 시켜 주면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아무런 원망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사역하고 설교하면서 어떻게 힘든 것을 꺼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그는 죽도록 지쳐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는 “제가 진리의 실제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저에게 인솔자를 시키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거짓 인솔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말합니까? “당신이 저를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게만 해 주면 저는 그 어떤 고통도 달게 받겠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나에게 권력을 주면 내가 하나님 선민을 장악하고 내 맘대로 결정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가 본분을 하거나 글귀 도리를 좀 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선민을 휘어잡으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가 하나님 선민을 통제하기만 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그가 사람을 통제하려 들 것입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말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적그리스도의 말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어떤 말입니까? “하나님께만 순복하고 사람에게는 순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보세요, 이 말이 그냥 듣기에는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만 순복하고 사람에게는 순복하지 않는다.” 이 말을 누가 틀렸다고 말하겠습니까? 정말 맞는 말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하지만 일부분 사람의 입에서 쓰일 때에는 이 말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고 그 “사람”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맞는 말 한 마디로 사람을 미혹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과 적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과 적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적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그들의 가장 음험한 계략인데, 일반인들은 간파해 내지 못합니다. 맞는 말로 사람을 미혹하고 하나님과 대항합니다. 이 놈은 아주 음험한 놈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어떤 상황 하에서 반드시 하나님이 증거한 사람에게 순복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하나의 전제가 있는데, 즉 교회의 행정과 교회 생활을 하나님은 보통 관여하시지 않고 모두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책임지게 하셔서 “이 방면에서 네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순복하지 않는다면 바로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성의 사역을 하시고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은 인성의 사역을 하며 교회 생활과 교회 행정의 사역을 합니다. 당신이 교회 생활과 행정 상에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순복하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고 방해하는 것이며 바로 변칙적으로 하나님과 적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저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그리스도께 순복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복하고 교회 생활과 교회 행정 상에서도 하나님께 순복하고 그리스도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만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만은 순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더욱 확연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교회 생활과 교회 행정에 관해서는 사역을 하지도 않는데, 네가 나에게 순복한다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 그것은 명분만 세우는 것이 아닌가? 네가 누구를 기만하려 하는가? 내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에게 그런 사역을 하도록 안배하였는데, 네가 그에게 순복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말하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공공연하게 하나님과 맞서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은 이런 사람을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직접 그를 제명시키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이 저를 제명시켰지만 그리스도께서 저를 제명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저를 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제명시켰으면 그것은 교회의 최고 권병입니다.

무엇이 적그리스도의 말인지 분별할 줄 알았겠죠?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분별할 줄 알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발표하셔서 인도자가 되시고 목자가 되셨으며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은 바로 교회 생활과 교회 사역을 협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서 역사하시는 방식인데, 이 방식에 당신이 불복하게 되면 당신은 곧 도태되고 맙니다. 은혜시대에 세례 요한이 주를 위해 길을 닦았지만 길을 다 닦고 나서 옥에 갇힌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숭배하고 그를 앙망하므로 반드시 그를 옥에 가두어야 그 후에 사람들이 그를 앙망하거나 숭배하지 않고 모두 예수님께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예수님의 사역 범위 내로 돌아왔겠지만 그가 예수님을 몰랐기에 쉽게 넘어지고 제거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거되고 나니 예수님의 사역이 더 순조로워졌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위해 길을 다 닦고 나서 예수님이 정식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시자 그가 옥에 갇혔습니다.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것이 잘된 일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이 한 그 말은 그가 잘못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도대체 정말인가, 거짓인가? 만약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라면 나를 감옥에서 구해 주실 거야. 그래야 그리스도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아니야.’라는 생각과 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가 진심으로 예수께 순복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를 대적한 것이므로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가 너무 지혜롭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정확하고 모두 진리이며 절대 틀릴 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세요, 이 걸림돌과 장애물은 하나님께 있어서 조금의 오차도 없이 모두 안배가 있고 모두 처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첫째는 하나님의 행사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음을 보게 되며, 둘째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범하는 것을 허용치 않음을 보게 되며, 셋째는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은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처음에 성령의 흐름 속에서 대륙의 집사회가 있었는데, 저는 열 몇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아직 나타나지 않으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증거되자 대륙의 집사와 사도들 중에 일부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어떤 일을 하셨겠습니까? 한번은 대륙의 사도들이 허난(河南)성에서 사역 회의를 하던 중 경찰 2명이 왔다고 보고를 받았지만 50~60명 되는 사람들은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일이니 순복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두 경찰에 의해, 그것도 현장에서 찾은 밧줄에 하나하나 묶여 감옥에 잡혀 들어가 모두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이 감옥에 잡혀 들어가자 성령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증거되자 대륙에 있는 집사와 사도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다 와서 구하게 되었는데, 단번에 다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사도와 집사들이 감옥에 잡혀가지 않았다면 그들 다수는 모두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어떻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그 사람들을 감옥에 갇히게 한 다음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했습니다. 누가 엇나가고 방해하면 그를 징벌하고 죽음에 처하게 합니다. 이런 한 마디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방해가 없다.” 이 한 마디를 어떻게 해석할까요? 사람이 보기에는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함이 너무 흉악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고초가 많고 하나님의 역사에 가로막음이 너무 크고 방해가 너무 많습니다! 큰 붉은 용의 방해만 해도 작지 않습니다! 종교계 목사들의 방해는 또 얼마나 큽니까! 패괴된 인류 세계의 방해가 얼마나 큽니까! 왜 방해가 없다고 합니까?”라고 하고,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보세요, 모순되잖아요, 모순투성이네요!”라고 하지만 영이 통하는 사람은 “조금도 모순되지 않아요. 이것은 모두 진실한 말이고 실제적인 말이에요.”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환경과 이런 어려운 점을 하나님은 일찍이 안배해 놓으셨고 일찍이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어느 단계에 이르러 어떤 사람이 무슨 효력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어느 때에 해결해야 할지도 다 안배해 놓은 것이며 때가 되면 하나님께는 해결할 방법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예상 밖의 방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일들과 사람이 본 것은 모두 하나님이 안배해 놓으신 것이고 예상 중의 일이며 모두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께는 방해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즉 하나님의 계획과 안배 이외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할 새로운 것들이 없으며, 하나님의 계획 내에서 사람이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다 안배해 놓으신 것이고 모두 예정이 있으며 모두 때가 있고 모두 안배와 합당한 처리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황불 못까지도 다 안배해 놓았고 어떤 사람이 그곳에 있게 되는 것도 다 안배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있어서는 방해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아주 평온하고 아주 타당하며 일분 일초의 오차도 없으며 그 어떠한 세력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 방면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동시에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다.” 여러 방면에서, 여러 각도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이 한 방면은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또는 생수의 원천이며, 그 외에 또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필요를 공급하고, 사람의 일상 처신의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와 방향을 공급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로서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해야 하는가의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보장이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자 사람이 굳세지고 일어서게 되는 견고한 방패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각 방면에서의 터득과 인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진입해야 할 진리 뿐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정확합니까? 정확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또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생수의 원천”이라고 하면 여기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즉 당신이 날마다 사용해야 하기에 고인 물이 아니고 생수라는 것입니다. “생수이다”라고 하면 무슨 뜻입니까? 즉 언제나 새로운 공급이 있고 낡은 것이 아니며 한 마디 말씀을 하고 나서 사람에게 백년, 천년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늘 신선한 생수를 우리에게 공급한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것”이란 바로 하나님이 늘 새로운 일을 하시고 늘 새로운 말씀을 하셔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역사하시면서 늘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을 공급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생수의 원천입니다. 열두 편의 말씀이 발표됐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고 지금 하나님과 마주하게 되어 너무 좋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이 열두 편의 말씀을 다 먹고 마시고 나면 또 새로운 말씀이 있을까요?” “이제는 새 말씀이 더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당신이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분은 생수의 원천이시고 항상 새롭기 때문입니다. 이 열두 편 말씀을 다 정리한 후이면 또 새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언젠가 제가 “제가 해야 할 말은 다 했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왜 또 설교하고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날마다 여러분과 교통하는 데도 여러분이 듣기 좋아하고 더 듣고 싶어 하는데, 역시 새로운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수의 원천입니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말은 어떻습니까? 역시 새로운 공급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고 성령의 깨우침에서 온 것이지 낡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과 설교를 하고 있는데, 매번 예배하면서 반복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반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새로워졌고 낡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빛비춤이 있으며 새로운 길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서 온 것은 이렇게 기묘하여 사람이 꿰뚫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는 설교를 듣고 나면 어떻게 들어도 사람이 어쨌든 조금이라도 유익한 점을 얻게 되기에 다들 듣기 좋아합니다. 언제나 유익한 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람이 늘 아무렇게나 구구절절 늘어놓는다면 사람에게 유익한 점을 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성령께로부터 온 것이면 사람은 유익한 점을 얻을 수 있고 늘 이렇게 얻고 나면 점점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수의 원천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계속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날마다 말씀하시고 시시각각 말씀하신다고 그렇게 이해하지 마세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먹고 마심이 어느 정도 되면 새로운 말씀이 나오고 한동안 지나 당신의 먹고 마심이나 말씀에 대한 교통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또 새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을 생수의 원천이라 하고 영원히 쉬지 않고 흐른다고 하며 아무리 써도 끝이 없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지금 우리가 여기서 누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날마다 얼굴에 빛이 감돌고 해방되고 자유로우며 누림이 있고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종교계에는 기근이 들어 날마다 겨와 나물을 먹고 있습니다! 굶주림이 어느 정도입니까? 곳곳에 주검이 널려 있고 아무런 기척도 없는데 다 죽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계속 역사하지 않으니 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결국에는 뿔뿔이 흩어지고 믿음이 식어지고 서로 아귀다툼하다가 예배당에서, 광야에서 실족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누리고 있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필요를 공급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가장 큰 필요는 무엇입니까? 진리이고 생명의 공급입니다. 물질적 생활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물질적 생활이 아무리 좋다해도 그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필요를 공급하고”라고 하신 이 말씀은 바로 생명의 필요이지 물질적인 필요가 아닙니다. 그럼 지금 당신이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큰 필요는 무엇입니까? 쇠고기입니까 아니면 진리입니까? (진리입니다.) 버터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말씀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사람의 일상 처신의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라고 하셨는데, 처신함에 있어서 최저 기준이 있어야 하고 법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법칙은 무엇입니까? 즉 사람에게 하나의 정확한 길이 있어야 하고 처신함에 있어서 원칙과 최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신조의 최저 기준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있습니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떠한 시험에 부딪치든지 하나님을 부인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최저 기준입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다.’는 이런 신념만 있으면 당신은 생존할 수 있는 희망이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이 있으며, 당신이 만약 이 최저 기준을 떠난다면 위험하게 될 것이고 쉽게 침륜될 것입니다. 그럼 지금 당신이 이렇게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는데, 당신에게 처신함에 있어서의 신념과 신조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지금 일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사람의 생명이기에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며, 그렇게 되면 바로 살아있는 송장입니다. 당신이 만약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처신함에서의 원칙과 신조와 법칙을 총결해 내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살아있는 송장입니다. 살아있는 송장을 달리 말하면 무엇입니까? 사람의 탈을 쓴 짐승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처신함에서의 법칙과 신조를 얻을 수 없으면 바로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인 것입니다. 당신이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얻으십시요. 처신함에서의 신조와 법칙을 얻는 것은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반드시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과연 하나님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매우 관건입니다.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는 데의 토대는 무엇입니까? 먼저 정확한 인생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정확한 인생의 길이 없다면 당신의 그 “의의 있는 인생”이란 헛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정확한 인생길이란 무엇입니까? 단지 좋은 사람만 되는 것입니까? 진리를 떠난다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빈말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어느 누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까지 가서 몇이나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모두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외쳤으나 마지막에는 다 나쁜 사람으로 되었고 다 침륜되었습니다. 이는 어찌 된 일입니까? 헛소리만 쳐서는 필요 없고 먼저 정확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 정확한 길이란 무엇입니까? 곧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길을 걷지 않는다면 의의 있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고 좋은 사람이 된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만일 당신이 정확한 인생의 길을 걷지 않으면, 즉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람됨에 있어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처신함에 있어서의 법칙과 신조로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았겠죠?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와 방향을 공급하고”라고 하셨는데,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약 말세의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길에 들어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겠습니까? 한 권의 ≪성경≫에만 의지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구원을 받는 데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이 일을 또 분명히 알았으니 이러면 진보한 것이 아닙니까? 차츰차츰 다 뚜렷이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만 의지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죄짓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 성품이 변화되는 데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는 데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성실한 사람도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은 다만 사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고 사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며, 사람이 범죄하는 것은 사실이고 인류가 모두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지만 주께서 죄를 사해 주신다는 것만 알게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주님은 사랑이시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실 수 있으며 사람이 늘 죄를 범하면 그분은 늘 사해 주시며, 사람이 한평생 죄를 지으면 그분은 한평생 사람의 죄를 사해 주시는 분이며, 주님은 바로 죄를 사해 주는 주님이시고 사람은 바로 죄를 짓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운 것이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모릅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은 긍휼하시고 자비로우셔서 줄곧 사람의 죄만 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것만 얻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라고 말하면 “못 봤습니다. 사람이 계속 죄를 범해도 그분이 징벌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사해 주시기에 단지 긍휼과 자비만 있으시지 하나님이 만약 공의롭다면 큰일나죠.”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실 수 있어요.”라고 하면 “보지 못했어요.”라고 말하고 “하나님은 전능과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면 “보지 못했고 경력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은혜시대에서 사람들은 그저 요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죠?

지금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말씀들을 발표하셨습니다. 즉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와 방향을 공급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로서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셨습니다.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그분은 참으로 진리의 성령이 입은 육신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육신을 입고 이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하셔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시며, 또한 구원받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방향과 목표를 분명하게 가리켜 주시고 또한 우리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도록 이끄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그리스도 즉, 실제의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고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시는 사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은 바로 속죄하는 사역인데, 사람을 속량해 왔습니다. 속량해 온 후에는 사람의 범죄하는 본성을 해결하지 않았고 그것을 다음 단계에서 해결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이 사역을 하시는 것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역이 은혜시대에서 하신 사역보다 훨씬 더 크지 않습니까? 해결하는 문제도 훨씬 많지 않습니까? 이 단계 사역의 사역량은 엄청나게 큽니다! 필요한 여러 가지 효력품과 받침물도 매우 많습니다! 큰 붉은 용과 모든 패괴된 인류와 인ㆍ사ㆍ물이 다 효력하는 도구입니다. 공정량과 사역량이 아주 큽니다! 하나님이 모든 진리를 발표하셨는데 이 모든 진리에는 다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방금 읽었습니다.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고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의 필요를 공급하고, 사람의 일상 처신의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와 방향을 공급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로서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해야 하는가의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보장이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자 사람이 굳세지고 일어서게 되는 견고한 방패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세에 하시는 사역인데, 즉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사역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이 말세에 매우 큰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예수 그리수도께서는 은혜시대에 단지 죄를 사하는 한 가지 사역 즉 “속죄제”의 사역을 하셨는데, 그 사역량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역량은 매우 크고 하시는 일도 매우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세에 매우 큰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분 사람들이 “하나님이 매우 큰 일을 하셨다는데 저는 왜 보지 못했죠? 그런데도 큰 일이라고 할 수 있나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대답해 보세요, 이 일을 크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이 매우 큰 일을 하셨는지 보지 못했다고 할까요? 그것은 그가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눈먼 사람이 볼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대해 경력이 얼마나 깊은가에 달린 것입니다. 경력한 것이 깊으면 보이는 것이 클 것이며, 경력한 것이 얕으면 보이는 것도 작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경력하지 못했다면 그럼 하나님이 말세에 하시는 사역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임을 볼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당신은 볼 수 없습니다. 마치 한 가정의 부부가 아이를 하나 낳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어릴 때 그의 부모가 그를 양육하는 수고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가 어느 정도로 자라야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가 자기의 자식을 기를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 부모님이 나를 양육하시는 게 정말 쉽지 않으셨구나, 많은 고생을 하셨구나. 정말 ‘자식을 키워보지 않으면 부모의 은덕을 모른다’는 말이 맞아!” 그때서야 부모 노릇하기가 정말 쉽지 않음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경력 해야만 하나님이 말세에 매우 큰 일을 하셨음을 알게 되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경력했습니까? 당신에게 이러한 깨달음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위험합니다. 당신이 경력하지 못했다면 눈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사역량이 너무나도 큽니다! 이는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며 세기를 뛰어넘는 사역입니다! 이 단계 사역은 말세를 끝마칠 수 있으며 천년 하나님 나라를 가져올 수 있고 다음 시대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단계 사역은 너무나도 큽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매우 큰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이 천지개벽하는 사역이며 천지를 새롭게 바꾸는 사역이라고 대담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시대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제작한 영화와 간증이 다음 시대에서 전면적으로 유행되기 시작하고 조류를 타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집의 영화와 하나님의 말씀 낭송을 왜 계속 새롭게 바꿉니까? 그것은 지금 시작된 하나님나라시대의 조류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보고 나서 “야, 시대가 바뀌려나봐!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셨어! 이것 봐, 인터넷에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인데,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의 세계가 되겠어! 이렇게 인터넷도 다 변했으니 시대가 바뀌려나봐!”라고 말합니다. 이러면 하늘 땅을 바꾼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이 신호를 보았습니까? 하나님 집의 영화들을 조금전에 인터넷에 업로드했는데, 벌써 조회수가 얼마나 올라갔습니까? 정말 빠르네요, 점점 더 빨라질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선민들이 다 좋아하고 저도 보았는데, 정말 좋습니다! 조급해 마세요, 차츰차츰 이방인들도 다 보기 좋아할 것입니다. 세상의 영화는 사람들 심령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집에서 제작한 간증과 영화만이 그들 심령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고 그들 심령의 기근과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역인데, 사람의 말로 말하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하는 것은 다 정의로운 사업입니다. 당신은 이 본분을 하고 그는 저 본분을 하여 이런 본분을 한데 합쳐놓으면 이것이 바로 정의로운 사업입니다. 이 정의로운 사업을 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며 당신은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한 걸음씩 진리를 얻게 되고 한 걸음씩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이르러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지금 일부분 사람들은 수리 대처를 좀 받으면 부끄러워 견디기 어려워하고 괴로워합니다. 그 체면이 몇 푼어치라도 됩니까?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진리를 받아들여야 존엄이 있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치욕입니다! “사람은 체면을 지키고 나무는 껍질을 지킨다”고 하는데, 사람이 지키는 체면은 무슨 체면입니까? 그것이 진리가 있는 체면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사탄의 체면이고 귀신의 체면입니다. 사탄과 귀신의 체면을 살아내면 존엄이 있습니까? 존엄은커녕 수치입니다! 만일 당신이 수리 대처를 좀 받게 되면 마땅히 ‘이것은 매우 영예롭고 영광스러운 것이고 하나님의 높임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 것이야!’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수리 대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신의 분량이 너무 작아서 가련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진리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까? 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까?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하는 의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당신을 피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합격된 피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합격된 피조물이라면 조물주를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조물주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은 무엇입니까? 조물주이십니다. 조물주라고 말하면 그 의의가 깊습니다. 그분은 조물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 피조물은 조물주 앞에서 어떻게 사람의 처신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사람의 직책을 다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엇에 의거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며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그의 안배에 순복하고 그의 요구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에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고지상한 분이시고 조물주이시기에 그분께 경배하는 것은 불변의 이치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진실로 그분께 경배한다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며, 당신이 그분께 경배하지 않으면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경배하는 것은 사람의 직책이며 순리에 맞는 일입니다. 당신이 그분께 경배할 때는 당신이 위치에 바로 선 것이고 잘 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정한 피조물이 되라고 요구하시는데, 마지막에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을 조물주라고 확정할 때 당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처신함에 있어서의 직책은 무엇인지,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물주의 뜻은 무엇인지, 사람에 대한 그분의 요구는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이런 것을 당신이 깨닫게 되면 당신은 그분의 말씀에 의지해 살 것이며 범사에 그분을 앙망하고 의지하며 절대적으로 그분께 순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배는 일종의 의식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며 그분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고 지배에 순종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의 총칭이며 경배에 내포된 뜻입니다. 당신에게 악령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언제나 그곳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맹목적으로 경배하거나 숭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원하시지 않고 규례와 의식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서 있지 않습니까? 그래선 안 됩니다.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어도 경건하지 않으니 엎드려야 합니다.”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엎드리는 것도 경건하지 않으니 이마가 바닥에 닿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의식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모른다면 온종일 엎드려 있어도 소용없고, 당신이 하나님을 안다면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그분께 순복할 수 있고 마음으로 그분을 존경하여 높이며 그분께 경배할 수 있고 그분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해결됩니다. 이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에 대해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부모 앞에서 늘 머리 숙여 단정하고 예의 바르게 ‘아빠, 엄마’라 부르고 ‘말 잘 들어야 한다, 효도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지만 늘 말만 한다고 됩니까? 그럼 부모들이 참으로 원하는 자식은 어떤 자식들일까요? 정상적 인성이 있는 정상적인 사람인데, 활발하고 천진하고 생기가 넘치며, 부모와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부모들의 동반자가 될 수 있으며 말을 잘 듣고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지 않으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경배하는 의식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이 “순복과 경배”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즉 당신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며 조물주로 경배할 수 있고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에 절대적으로 순복하고 그분의 말씀에 의지해 살 수 있고 조물주의 요구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마음속에 조물주에 대해 늘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늘 잘못된 관념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곧 우상을 경배하는 것과 같다고 여깁니다! 당신에게 이런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고 당신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요구하는 의의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분을 경배하라고 요구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당신에게 정상적 인성의 이지와 양심, 직책과 의무를 살아내라고 하는 것이고 당신이 하나님을 조물주로 그분의 지위를 확정하여 하나님을 조물주로 대하면서 그분에게 순복하고 마지막에 그분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된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계시록≫에서 말한 그 네 생물이 하나님 앞에서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찬미하는데 그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그들이 그곳에서 종교 의식을 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만약 이 일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했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찬미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는데, 이 한 마디를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워서 묘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일단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만 하면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뭘 더 말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하나님이 너무 위대하여 천만 마디의 말로도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숭경하는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고 느끼므로 끊임없이 찬미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우리가 이러한 유일하신 조물주를 경배하여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그분을 경배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으며 하나님께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유한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여러분은 함부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내가 말씀을 쓸 때, 한 가지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바로 인류의 언어가 너무 유한한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셔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가 없다.”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세계, 특히 이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이 방면의 말씀에 대한 경력이 없거나 말씀이 적어서 가련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단계에 오셔서 말씀의 사역을 하시고 우리가 날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서 경력이 있게 된 이후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좀 써낼 수 있고 하나님을 알게 된 생명 경력을 조금 써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런 것은 종교계의 사람들에게도 없고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일 온 인류가 하나님의 역사를 몇 백 년, 몇 천 년 더 경력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이 방면에 대한 언어가 갈수록 풍부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쓰실 때, 인류의 언어가 결핍하여 어떤 말은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만족스러우시겠습니까? 아직 만족을 얻지 못하셨습니다. 그럼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또 말씀을 발표하신다면 어느 때에 가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완전하게 다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날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기에 절대 완전하게 다 말씀하실 수는 없습니다! 알겠죠? 오늘날 인류의 언어가 완벽하지 못해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그런 언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 인류에게 이런 경력이 없어서 사람이 백년, 천년이 더 지난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에 대해,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조물주의 영광과 위대함, 그분의 성품과 사랑스러움, 그분의 선함과 공의로움을 인류가 영원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복하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영광스럽습니다! 이 말씀을 당신이 경력해 보세요.

“그는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보장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만약 날마다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생존해 나가는 보장이 있을 것이고 생존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의 생명도 정지될 것이고 역시 멸망하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흥미가 없어서 다른 사람이 진리를 교통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가버립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을 하나님 말씀을 배반하고 하나님 말씀을 떠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바로 사망이고 바로 멸망이며 생존해 나갈 수 없습니다. 오늘 어느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있습니까? 누구도 떠날 수 없으며, 떠나면 죽는 것이고 떠나면 끝장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보기에 큰 붉은 용이 뭘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한창 효력을 하고 있고 받침물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효력을 다하고 받침물 노릇이 다 끝나면 하나님의 사역도 끝나게 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내일은 유황불 못에 있게 됩니다. 당신의 믿지 않는 가족들은 내일 어디에 있겠습니까? 역시 유황불 못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고 크게 통곡할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아직도 그들에 대해 감정이 있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믿지 않는 가족들은 다 마귀이고 사탄입니다! 이 말이 듣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귀 사탄의 그런 통제를 받고 있는데, 그럼 당신이 그들의 통제를 받으면서 사탄과 마귀를 위해 살고 육체를 위해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자기의 생명 성장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가장 우매한 것이고 진리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가장 큰 패역인 것입니다!

현재 일부분 사람들이 안일함을 탐하고 가정에서 믿지 않는 친족들의 통제를 받아 하나님을 위해 본분하기를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오늘 그가 진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이후의 생존을 위해 살지 않고 죽은 자들을 위해 살고 죽은 자들의 구속을 받는다면 이런 사람은 언젠가는 꼭 후회할 것입니다. 버림을 받을 때, 병이 생길 때, 병상에 누워 있을 때가 되면 그는 “아, 내 육체가 오늘 이렇게 무너질 줄 알았더라면 하나님을 위해 많이 일하고 본분을 좀 많이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후회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지 않으면 당신이 병원에 누워서 어떤 말을 한다 해도 다 늦었습니다. 당신이 병원에 누워있지 않으려면 진리를 잘 추구해야 하고 본분을 잘 해야 하며, 당신이 만약 지금 진리를 잘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잘하지 않는다면 내일 당신에게 위험이 있을 것이고, 생존해 나갈 수 없을 것이며 엄중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것입니다. “사람에겐 조석으로 변하는 화복이 있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조석으로 변하는 화복”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내일 죽고 사는 것을 알겠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이 오늘 진리를 추구하면 내일 하나님이 당신을 살게 한다는 것을 알 것이며, 오늘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내일 어떤 재난이 임할지 모릅니다. 밤의 장막은 누가 가져온 것인지, 누가 명정한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대낮에는 하루 동안 햇빛 속에서 아주 즐겁게 살았는데 느닷없이 밤의 장막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밤의 장막이 찾아오면 사람의 심령은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아! 이 하룻밤에 어떤 일들이 생길까, 이 하룻밤이 도대체 복일까, 화일까? 모를 일이구나.” 어떤 사람은 이튿날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일어나지 않아 사람들이 “왜 일어나 식사하지 않지?”라고 말하면서 가봤더니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바로 이런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보장”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잘 먹고 마시지 않으면 당신의 생존에 위험이 닥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곧 위험이 닥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몸이 건장하고 젊어서 지금의 평균 수명대로 산다면 70~80세는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고 사람에게는 조석으로 변하는 화복이 있다”고 했듯이 그 재난은 노인들에게만 안배해 놓은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 죽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 지금 괴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죠? 이 괴상한 병은 병원에서도 연구 결과를 얻지 못하였고 의학상에도 기록이 없으며 이 괴상한 병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전문가들도 고개를 가로젓고 여러 가지 측정기도 검사해 내지 못하고 검사를 다 하고도 무슨 원인인지 모릅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엄중한 “에볼라 바이러스” 온역이 돌고 있는데, 걸리기만 하면 끝장이며 사망률이 거의 100%입니다! 온역이 오자 사람은 모두 죽을까봐 두려워합니다! 당신이 만일 죽는 것이 두려우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또 죽기도 두려워합니다. 이 사람들의 패역함이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죽을지언정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바로 사탄의 본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징벌을 받고도 시인하지 않고 “병이 생기는 것은 자연법칙입니다.”라고 고집합니다. 그럼 병치레를 하십시요.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백하지 않고 잘 회개하지 않으면 죽고 사는 것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병은 자연법칙에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옷을 적게 입어서 추위로 감기에 걸리는 것은 자연법칙입니다. 그러나 괴상한 병에 걸리게 되면 어떻게 자연법칙이라고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쉽게 걸리지 않는데 당신만 걸렸으니 이것이 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징벌과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되면 사람은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신이 만약 범죄하거나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했다면 도망하려 해도 도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면 수습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중심에서 사역을 방해하고 엇나가고 있으니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사람의 한 번의 과오는 염려하지 않지만 두 번은 엄중한 과오이고 누차 엇나가고 방해한다면 마땅히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일단 하나님이 정말 노하신다면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무엇에 의지해야 생존해 나갈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늘 엇나가고 방해한다면 당신은 위험한 것이고 생존해 나갈 수 없으며 의심할 바 없이 꼭 죽을 것입니다. 경하면 징벌과 징계를 받을 것이고 중하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80세가 되고 나이가 찼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에게 심지가 있고 하나님을 증거하려 하고 그래도 본분을 하려 하면 “내가 너에게 수명을 연장해 주어 20년을 더 살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60여 세까지 살았는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서 “너는 벌써 갔어야 했는데, 죽어버려라.”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일찍이 죽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장수하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아마도 생존해 나갈 수 없을 것이고 아마도 일찍 요절하거나 제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마구 엇나가고 함부로 방해하면 징벌받을 위험이 있고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자 사람이 굳세지고 일어서게 되는 견고한 방패이다.” 사람의 육체도 날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영적 양식도 날마다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영의 생명이 자라지 않으며 영의 생명은 육체의 생명보다 더 중요합니다! 육체는 아무렇게나 먹어도 다 되고 겨와 나물을 먹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명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자라지 않으며,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생명이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다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생명이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간증문을 쓰라고 했더니 그가 쓴 글에는 진리가 없고 너무 얕아서 봐줄 수가 없습니다. 글귀 도리를 말하라면 “아주 능란하여” 며칠이라도 말할 수 있지만 글은 한 편도 쓰지 못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글귀 도리는 글로 될 수도 없는데, 어디에 쓰겠습니까? 의의가 없습니다. 글도 쓰지 못하면서 무슨 글귀 도리를 말하는 겁니까? 지금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서 어떤 간증도 해낼 수 없고 어떤 사역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제가 당신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당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육체의 생명은 언제든 끝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탄에게 넘기고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그때 당신은 끝장이고 세상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는 나의 경영 범위 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에게 어떤 재난이 임하면 당신에게도 수시로 임할 수 있고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당신은 일부분 형제자매들이 죽거나 병이 생기거나 온역에 걸리거나 집이 무너지고 홍수가 나고 기근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보세요, 죽는 사람은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분명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인성이 나쁜 사람이고 온갖 악행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좋은 사람이 죽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는 아주 열심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그에게 열심이 있어도 진리가 없으면 역시 엇나가는 것이고 앞뒤 없이 한동안 열의에 차 있지만 여전히 속셈과 목적을 갖고 믿은 것이지 절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영 안의 일용할 양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육체의 일용할 양식도 당신에게서 거두어 가십니다. 어떤 사람은 늘 안일한 환경과 안일한 가정 속에서 살므로 하나님께서 “네가 배부른 흥정을 하면서 본분도 하기 싫어하니, 그럼 좋다. 내가 너에게 기근이 임하게 하여 배를 곯게 할 것이니 어디 진리를 추구하는지 보자.”라고 말씀하시면서 거두어 가십니다. “네가 언제나 너의 그 육체적 가정을 좋아하지 않는가? 늘 가정의 온화한 생활을 누리려 하지 않는가? 좋다, 내가 너의 가정을 깨뜨리고 너의 그 가족과 불신파들을 다 죽게 하고 망하게 할 것이니 너에게 가정이 있는지 두고 보자.” 그때가 되면 당신의 가정은 곧 깨지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어떤 일용할 양식이 가장 중요할까요? 육체가 잘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아니면 영 안에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까? 후자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는 육체의 양식을 초월합니다! 육체의 양식은 어떻게라도 연명해 갈 수만 있으면 되지만 영 안의 먹고 마심을 당신이 일단 저버린다면 당신의 생명은 곧 죽음이고 아무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먹고 마심이 아무리 좋아도 필요 없고 하나님이 인류를 진멸할 때면 일부 사람들은 밥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재난이 임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각국에 지금 재난이 다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재난이 많게 되면 사람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위협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죽을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고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하나님 말씀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게 되면 당신은 생존할 수 있고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위험에 처하게 되어 쉽게 진멸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굳세지고 일어서게 되는 견고한 방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무엇에 의지해서 살아갑니까? 무엇이 사람 생명의 방패로 될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입니다. 진리가 있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진리가 없으면 나뭇잎이 떨어져도 놀라 도망갈 것입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있으면 어떤 재난도 두렵지 않고 죽고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어도 하나님께 순복하며 죽든 살든 두말없이 하나님의 지배대로 합니다! 진리가 있으면 마음이 태연하고 두려움이 없이 평안할 것이며 진리가 없으면 온종일 안절부절못하고 바늘방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육체의 생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육체 속에 사는 사람은 모두 죽음의 통제를 받고 있기에 다 죽기를 두려워하며, 진리를 얻은 사람들은 죽든 살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기 때문에 죽는다 해도 역시 복이며 산다면 더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얻은 사람에게는 견고한 방패가 있으며 진리를 방패로 하는 것은 바로 살아가는 데에 토대가 있게 된 것이고 반석 위에 선 것입니다. 진리를 방패로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방패로 하는 것이므로 모든 것에서 다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그 어떤 인사물의 통제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그 사람은 자유로이 해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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