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신 말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들어서다≫에 관한 설교 교통 (2)

각 사람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에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앎과 진정한 이해와 진정한 인식이 있는가의 여부,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참으로 아는가의 여부, 하나님이 너에게 한 일과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定義)를 참으로 이해하는가의 여부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너의 곁에서 너를 동반하고 너의 앞길의 방향을 인도하고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너의 필요를 공급하는 이 한 분의 하나님에 대해 너는 도대체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는가? 너는 그가 매일 너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그가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원칙과 취지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가 어떻게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어떤 방식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너에게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아는가? 너의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아는가? 네가 그가 기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가? 그의 희로애락의 유래와 그 배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그의 실질을 아는가? 너는 네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아는가? 등등 이런 문제들은 네가 지금까지 알아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체득과 경력(역주: 체험)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푼 적이 있는가? 너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을 받고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역주: 순종)과 헤아림이 생긴 적이 있는가?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중에서 사람의 패역과 사람의 사탄 본성을 인식하고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었는가? 너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깨우침 하에 새로운 인생관이 생기기 시작했는가? 너는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과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구원을 느꼈는가? 만약 네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인지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푸는지도 모른다면 너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가 없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아본 적도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너는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네가 무엇이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인지 모른다면 너는 틀림없이 무엇이 순복과 헤아림인지 모르고, 적어도 너는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순복과 헤아림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한 적이 없다면 너는 결코 무엇이 하나님의 거룩인지 모를 것이고 더욱이 무엇이 사람의 패역인지도 모를 것이다. 만약 네가 전혀 참되고 정확한 인생관이 없고 정확한 인생 목표가 없고 여전히 앞으로의 인생길에 대해 막막해 하고 방황하며 심지어 주저하며 나아가지 못했다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은 적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지금까지 진정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보급을 얻은 적이 없다. 만약 네가 아직 하나님의 시련을 겪지 못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이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사람을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떠한 경력과 터득도 없다면 그는 분명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에 분명 실제 내용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인식도 분명 제로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하나님 말씀에서 “너는 네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아는가?”라고 하셨는데, 당신에게 만약 당신이 믿고 있는 이 한 분의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다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한 분의 하나님인지를 당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만약 당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다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한 분의 하나님인지를 모를 것입니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이 믿는 그 한 분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분에게는 어떤 실제가 있습니까? 그분의 성품에는 어떤 방면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어떻게 증거하겠습니까? 마음속으로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어떤 사람은 공허한 이론만 말할 것입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공의롭고 전능하신 한 분의 하나님이며 그분에게는 위엄과 진노가 있고 또한 긍휼과 자비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겠습니까? 이건 공허한 이론이지 실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건 저도 이미 다 알고 있고 당신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걸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말하라고 한다면 곧 자신의 경력에 근거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정말 경력이 있다면 당신은 많은 실제적인 인식을 말할 수 있기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주로 몇 가지 방면이 있어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고 주로 어떤 방면에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성품은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이고, 하나님께는 왜 또 진노가 있고 진노는 어떤 어떤 것에 대해 발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한마디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아직도 많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맞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매일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우리를 이끄시며 그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공급하고 안배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가 또 물을 것입니다. “그럼 이런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떤 경력이 있나요?” 그러면 당신의 경력을 말하면 되는데, 만약 당신이 이런 일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말해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네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아는가?” 이 한 마디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들을 가장 잘 드러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어느 방면부터 말하겠습니까? 모두 몇 방면을 말하겠습니까?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만유를 주재하시는지,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이고 그분의 전능과 지혜는 어디 있는지, 하나님은 인류를 어떻게 이끄시고 공급하시며 어떻게 시대를 개척하고 끝마치시는지, 그분은 은혜시대에 어떤 성품을 유로(流露)하셨고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어떤 성품을 나타내셨는지, 하나님의 원래 성품은 무엇이고 말세에 어떤 사역을 행하려 하시는지, 이런 것을 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경력이 너무나 유한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완벽하게 증거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경력이 얼마나 되든지 실제적인 인식을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단지 이론만 말하면 소용없고 누구도 당신의 이론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가장 실제적인 경력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이끄시는가를 말해야 하는데, 그분이 어떻게 당신을 이끄시고 어떻게 당신과 함께하셨고 어떻게 당신에게 공급하셨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일을 당신이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까? 그분의 성품은 왜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지, 그분의 실질은 거룩하신데 왜 사람에게 그분의 영체를 나타내시지 않는지, 그분은 왜 말씀으로 당신을 이끄시고 공급하시는지, 이런 일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만약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시련하시든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든 하나님을 원망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간증입니다! 하지만 이런 간증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의 믿음일 뿐입니다. 믿음은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존재와 전능 그리고 기묘하신 행사를 진실로 느끼며,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느낌으로 인해 진실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실질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가리킵니다. 이 몇 방면에 대해 당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게 되면 누가 당신에게 “당신이 믿는 이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입니까?”라고 물을 때 당신은 할 수 있는 간증이 많아서 한 방면씩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부터 하나님의 주재까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과 이끄심에서 인류에 대한 구원까지, 하나님 성품의 긍휼과 자비에서 공의와 위엄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을 매일 공급하고 부축하며 이끄심에서 구원과 온전케 하시는 데까지, 당신은 모든 면을 빈틈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경력에 대해 할 말이 많고 비록 많은 말을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모든 면에서 골고루 말하지 못했다고 느끼게 되며, 늘 할 말은 많은데 어떤 언어로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느끼게 됩니다. 당신에게 이런 느낌이 있을 때는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이런 느낌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느낌이 있습니다. 비록 실제적인 말을 많이 할 수 있어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언급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진실하시다는 것을 분명하고 투철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언어가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분이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거나 헤아릴 수 있어서 “하나님께서 매일 내 곁에 함께 계시고 날마다 나를 감찰하시는 것 같고 은밀한 곳에서 나를 이끄시며 나의 모든 것을 안배하시는구나.”라고 느낍니다. 당신에게 이런 분명한 느낌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단지 깊고 얕은 문제일 뿐이지 이미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만약 누가 당신에게 “당신이 믿는 이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한 분의 하나님이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당신이 할 말이 적다고 느껴지거나 느낌은 있는데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한 마디 말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까? 적어도 이런 한 마디 말은 적합합니다. “제가 믿는 이 하나님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너무나 진실하십니다! 그분은 저의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시고 공급하시며 저의 생활을 인도하시며 저의 모든 것을 안배하시고 저의 방패가 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저를 일깨워 주시고 빛비춤을 주시며 저는 날마다 그의 빛 가운데 살면서 그분의 축복과 모든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한 분의 하나님은 또 참되고 살아계시며 너무나 실제적이십니다!” 적어도 당신은 우선 이런 간증을 해야 하는데, 이런 간증은 사람이 다 경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간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더 이상 당신에게 숨기시는 하나님이 아니며 더 이상 비밀이 아님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비록 저는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매우 분명하고 실제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분이 정말 실제적인 하나님이심을! 저의 모든 것은 다 그분의 안배이고 그분이 정하신 것이며, 저의 하루하루는 모두 그의 이끄심과 보호 아래에서의 생활입니다. 이건 분명한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경력 간증이 있다면 이것은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미 경력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느낌이며 하나님에 대한 인지(認知)인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날마다 당신을 이끄시고 당신 곁에 함께 계시며 날마다 당신에게 공급하시고 보호하시며 당신을 감찰하시는 이런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도 경력하지 못했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 사람이 패역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고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으며 진리도 실행하지 않고 있는데,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갑자기 하나님의 징계가 특이하게 임할 때, 당신으로 하여금 이것이 징계 즉, 완전히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깊이 알게 하는데 여러분에게 이런 경력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경력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당신이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 못 보셨겠습니까? 그분이 당신 곁에 계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분이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에게 인내하셨겠습니까? 그분이 날마다 당신의 일언일행을 관찰하심을 느꼈으면서 당신은 고의적으로 그분을 거역한 것입니다. 당신이 그분을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내가 한 모든 것을 보셨어. 그분은 날마다 날 보고 계시고 날마다 날 감찰하고 계시니까.”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거역한 것입니다. 이 사실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 곁에서 함께 하시고 우리의 생활을 이끄시며 날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심을 실제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일거일동조차도 그분이 눈으로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미 경력했으면서 왜 담대하게 이렇게 간증하지 못합니까? 당신은 이런 일을 한두 번 경력한 것이 아닌데 “제가 믿는 하나님을 저는 비록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분은 정말 날마다 저의 곁에서 함께하시고 저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며 제가 행하는 모든 일은 그분의 감찰을 받으며 저의 일거일동 또한 그분의 안중에 있습니다.”라고 담대히 간증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막연한 부분이 있습니까? 아마도 이 말은 초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 경력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이런 경력이 있게 되었는데, 그럼 좀 더 깊은 경력은 없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성품은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아요! 제가 어떤 상황에서 어느 시기에 어떻게 강퍅했었고 진리인 줄 뻔히 알면서 실행하지 않고 육체를 챙기면서 하나님을 원망해 결국 하나님께서 저에게 노를 발하셨어요. 이런 일을 몇 번 경력하고 나서 저는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확실히 알게 됐어요!”라고 말하면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경력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공의라는 것을 확신하고 증명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바로 공의인데,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그분은 악인과 그분을 배반하거나 진리를 추호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하시지 않으며 연약하고 패괴를 유로(流露)하며 잘못은 있지만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구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한 적이 있고 과오를 범한 적이 있지만, 인품이 좋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인데,이런 사람에 대해서 그분은 계속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분은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긍휼이 있고 용서가 있으시지만 전형적인 악인에 대해서는 절대로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인 것입니다. 그 외에 그분은 종교계 내부의 적그리스도를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종교계 내부의 적그리스도와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모독하고 대적해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습니까? 벌을 내리셨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정말로 사람을 징계하고 벌을 내리셨다면 사람들은 벌써 돌이켰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벌을 내리심으로 돌이켰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상관치 않으시고 구원하시지 않는데,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각지에 있는 교회 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을 도태시키셨는데, 그들에게는 추호도 성령의 역사가 없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이끄시지 않고 사탄에게 넘겨 구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시종일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기꺼이 본분을 하지도 않는데, 이런 자들에게서 이미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완전히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각 부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고 이런 일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참된 인식이 생겼다면 당신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한 분의 하나님인지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그분의 성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참으로 구하지 않고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으며, 사람이 하는 여러 종류의 일에 대해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관심을 갖거나 알아보지도 않으며 그 밖에, 하나님의 성품은 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는지에 대해서도 여태껏 되새겨 생각해 보지 않고 더군다나 구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경력하고 얼마나 많은 일을 보았든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가 진리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각 부류 사람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람이 행한 여러 종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인지, 이런 일들을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한 진리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경력했든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결부하거나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어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이 추호도 없고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所有所是)가 그의 마음속에는 곧 “저는 하나님을 볼 수 없어 하나님을 알 수가 없어요.”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법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 성립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의 관념 속에서는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께서 친히 무엇을 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친히 누구에게 노를 발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친히 어떤 부류의 사람을 징벌하고 도태시키시는지를 봐야 비로소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지 입증할 수 있어요.’라고 여기는데, 이런 생각은 황당한 것입니다! 그는 눈으로 보는 것에 근거하지, 마음으로 입증하는 것에 근거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데, 이런 사람은 영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의 행사는 어떻게 나타냅니까? 어떤 때는 겉으로 보기에 소리가 없고 무슨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나타내신 하나님의 성품과 행사를 인식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로지 겉으로만 일을 보는데, 하나님을 앎에 있어 길이 없으면 안 되고 육안에 근거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던 사람에게 재난이 닥쳤다면 당신은 어떻게 보겠습니까? 예를 들면 욥에게 닥친 그 시련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겠습니까? 욥에게 닥친 그 시련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냈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소유소시도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볼 줄 모른다면 쉽게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지만 볼 줄 안다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욥의 세 친구는 하나님을 압니까? 그들은 욥이 시련 속에 있을 때 관념과 상상에 근거해 하나님과 욥을 논단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노여움을 샀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하나님이 행하신 것 같지 않고 그분과 무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모두 하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임하는 매 한 가지 일은 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만약 당신이 기도하거나 구하고 알아보지 않고 당신의 상상과 관념에 따라 일을 본다면 당신은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저는 그때 병에 걸렸었어요.”라고 말하자 다른 사람이 “당신이 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과 관계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데 당신이 “관계없어요. 병은 제 스스로 생긴 것이고 제 문제예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영이 통하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가정에 시련이 닥쳐 “이 일은 하나님과 관계있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데 “관계없어요. 객관적인 원인이에요.”라고 대답한다면 이런 사람은 영이 통합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을 행하시면 그 사람에게 그 일이 임하게 되는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당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징계하시면 그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이 임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이것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모두 효과에 도달하기에 당신으로 하여금 다 깨닫게 하십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세상에 닥치는 모든 재난은 다 징조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자연 재해든지 사전에 다 징조가 있습니다. 그 징조는 누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까?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까 아니면 동물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까? 자연 재해가 임하기 전의 많은 징조는 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경고하시는 것인데, 일부 명인과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셨어! 하나님께서 재난을 내리신 거야.’ 그는 마음속으로 이런 뜻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적지 않은 사람은 짐승으로서 사람의 영이 없고, 사람의 영이 진짜 있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 패괴된 인류에 대해 노하시고 여러 가지 재난으로 경고하시면서 인류에게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네가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 재난이 곧 너에게 임할 것이다. 네가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재난이 또 한 번 임해서 너를 훼멸시킬 것이다. 네가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또 한 번 재난을 더 내려서 더 많은 사람을 멸할 것이다.” 이렇게 한 번씩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행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십니다. 최소한 일부 사람들이 알게 하시는데 이것을 경고라고 하고 하늘의 뜻이라고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책망하고 징계하시려고 그 사람에게 재난을 내리실 때 그 사람이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분명히 압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임했는지를 분명하게 압니다. 어떤 때 본인이 잘 모르면 하나님께서는 또 주변 사람을 감동시켜 그에게 알려 주십니다. “당신에게 이 일이 임한 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노하신 것 같네요.” 어떤 때,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나 이웃 그리고 친구를 통해서 그에게 알려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당신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정당한 사람은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도 이러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모르는 일은 행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일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효과가 없고 헛수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언제나 사람들이 알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시지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실 때 사람들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셨고 마지막에 그분이 구원하시려는 사람에게 알려 주셨고 그분이 구원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소돔 성(城)안의 훼멸된 사람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재난이 닥칠 때 그들도 보긴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당신에게 어떤 일을 하시든, 그분은 당신에게 틀림없이 알도록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영적으로 똑똑히 알게 하시기에 지나고 나면 당신은 다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명확한 말씀과 음성은 듣지 못하지만 당신은 영적으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경력이 있습니까? 이런 경력을 한두 번, 여덟 번, 열 번 경력하고 나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그 시각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지, 하나님에 대해 당신의 심경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고,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으며, 어떤 헌신과 순복이 있었는지가 곧 사람과 하나님의 교제 과정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고 거역하며 대적을 했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구원하시려는 사람에 대해 분명히 내버려 두시지 않고 많은 일을 행하시는데, 많은 일을 행하신 후에는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심을 느끼지만 그래도 사람이 여러 번 하나님께 거역하고 대적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노를 발하시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또 인식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름을 용납치 않는구나!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하는구나. 하나님은 위엄이고 진노이심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야!”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이런 인식이 있게 된 후면 경외심이 조금 생기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이 생긴 후 다른 사람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한 분의 하나님이에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제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그분의 성품은 범함을 용납치 않습니다. 그분에게는 위엄과 진노가 있으신데 저는 겪어 본 적이 있어요, 제가 몇 번 거역하여 하나님이 저를 징계하셨어요. 한 번은 병에 걸렸고 또 한 번은 재해를 입었고 어떤 때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난관에 부딪혔었는데 하나님의 성품은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과의 교제 중에서 얻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입니다.

지금 많은 하나님 선민이 본분을 함에 있어 전보다 많이 착실해졌고 규범화되었으며 함부로 대충대충 하거나 기만하지 못하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성품과 겨루어 책망을 받고 매도 맞아봤기에 하나님 앞에서 점점 더 사람의 모습이 있게 되고 순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모범적이고 하나님에 대해 점점 더 진실함이 생겼으며 다시는 함부로 하나님을 기만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거역하고 대적할 때면 심령 깊은 곳에서 다 압니다. ‘하나님의 눈이 날 보고 있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니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해선 안 돼. 하나님께 잘 순복하고 하나님을 한 번만이라도 만족케 해드려야겠어!’ 사람이 이런 변화와 순복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일까요? 이제 말할 수 있겠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바로 경력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직도 이론을 말하려 합니까? 이론으로 개괄하고 귀납하려 합니까? 그러면 소용있습니까? 이론은 영원히 말하지 마세요, 소용없습니다. 당신의 경력 간증과 경력 인식을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10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몇 년간 하나님이 당신 곁에서 친히 이끄시고 함께하심을 느꼈습니까? 만일 당신이 “최근 1~2년 동안 느꼈고 지난 8~9년은 느끼지 못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 8~9년 동안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면서 줄곧 저를 떠난 적이 없음을 이제서야 느꼈어요! 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때는 눈이 멀었고 양심도 없어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고 하나님을 외면했었습니다. 이 2년 사이에 저는 심령이 소생되어 지극히 큰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고 따라서 저에 대한 하나님의 이끄심과 보살핌 그리고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저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저를 이끄시고 저에게 공급하시며 생명과 진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저는 다시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계속 양심없이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말하는 것이 실제이면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다 말하고 난 후 어떤 사람이 들어보고 “야,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군요!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시네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너무나 크네요! 사람이 너무 많이 거역했고 정말 양심이 없어요. 이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어요.” 대부분 사람이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금방 믿은 첫 몇 해는 양심이 없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최근 1년 사이에 사람이 자라고 철이 든 것 같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급 그리고 이끄심을 날마다 느낄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아낌과 보호를 보게 되었고 마음 깊이 새겨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당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도대체 어떤 인식이 있습니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입니까?” 여기에 대한 답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당신은 큰일이고 불신파임을 증명합니다. 만약 사람이 이 답을 내놓을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을 할 수 있다면 바로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을 이끄시고 아끼시며 보호하시지만 사람은 어떤 때는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드러내시지 않으시는 걸까요? 사실, 하나님은 날마다 이렇게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 곁에 함께 계십니다. 어떤 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원인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여 세상으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당신이 며칠 동안 오로지 육체의 일만 생각하면서 가족은 잘 있는지, 자식은 잘 있는지, 부모는 잘 있는지, 날마다 자신의 어려움 때문에 애타게 근심하고 생각한다면 그때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없을 때 당신이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멀리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한 것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체 안에서 살고 사람이 외적인 일과 육체의 일 그리고 사악한 일을 생각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는데, 곧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분은 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끼는데 저는 왜 느끼지 못하죠? 하나님께서 저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왜 여러분에게만 은총을 베푸시고 저에게는 은총을 베푸시지 않죠?”라고 말하는데, 지금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알았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문제입니까? 사람의 마음이 언젠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이끄심과 아낌, 그리고 보호하심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 문제의 근원이 바로 사람에게 있고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임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는 문제가 없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시종일관 사람의 곁을 동반하고 그분의 방식으로 인류를 이끄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는데, 당신은 경력한 인식을 그렇게 많이 말할 수 있는데 저에게는 왜 인식이 없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당신의 마음이 줄곧 하나님을 멀리했고 시종일관 하나님께 한 번도 진정으로 마음을 드린 적이 없으며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역사에 두지 않았고 시종일관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공을 들이지 않았으므로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당신은 하나님을 입으로만 믿었지 마음으로 믿지 않았고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역사에 두지 않았기에 여태껏 하나님과 진실한 교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당신이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어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네가 지금까지 알아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이끄시고 어떻게 역사하시며 어떻게 저를 구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느낄 수 없었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보살핌도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눈먼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영 안이 눈먼 것과 육체가 눈먼 것을 비교하면 어떤 것이 더 무섭습니까? 육체의 눈을 아무리 크고 밝게 뜬다고 해도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면 이 눈은 도대체 정말로 밝은 것입니까 아니면 가짜로 밝은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육체의 눈은 멀었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눈이 먼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눈을 뻔히 뜨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이런 사람은 소경이 아니겠습니까? 눈이 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가장 불쌍하고 눈을 뻔히 뜨고도 헛소리하며 하나님을 여러 해 믿고도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이끄심과 사랑 그리고 보살핌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을 비로소 눈먼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아,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추구하지 않는 건 정말 다르구나! 같이 하나님을 믿고 교회 생활을 하며 똑같이 본분을 하는데 남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그렇게 많을 수 있지? 우린 왜 말할 수 없을까?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아, 이게 바로 진리를 추구하고 추구하지 않는 것의 차이구나!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의의가 있고 진리를 추구하면 수확이 정말 많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몇 년만 믿으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역사도 볼 수 있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의의가 있다! 어쩐지 사람이 변하고 사람에게 늘 발전이 있으며 사람이 말을 함에 있어 점점 더 진리가 있고 실제가 있었어.’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효과입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체득과 경력(역주: 체험)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푼 적이 있는가?” 패괴된 인류에게 하나님과 말씀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늘 자신의 관념과 상상이 있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어떻게 생겼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경력과 인식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상상과 관념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대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가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 즉 사람을 변화시키고 온전케 하는 사역이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발표하신 진리가 일단 사람에게 인식되고 사람이 깨닫게 된다면 오해는 곧 자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많은 관념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간 경력한 후에는 관념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 실제적이고 너무나도 좋아.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진리 실제이고 경력할수록 진리를 더 많이 깨닫게 돼.’라고 느끼게 되는데,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관념과 오해를 제거하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만 있게 된다면 ‘이런 말씀은 다 진리이고 너무나 실제적이야.’라고 느끼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경력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 실제임을 보게 될 때 이런 진리 실제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일단 경력과 인식이 있게 되면 매 한 마디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이고 실제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첫 번째 인식입니다. 그럼, 이런 진리 실제의 말씀이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두 번째 인식입니다. 마지막에 당신이 깨달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실제 가운데서 이런 진리 실제는 완전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이고 전부가 하나님의 소시(所是)이며 생명 유로이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지혜 그리고 전능도 대표한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경력한 후에 도달하게 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이런 말씀과 매 한 마디 하나님 말씀은 다 진리이고 경력할수록 진리이고 실제입니다. 진리와 실제는 무슨 관계입니까? 진리는 바로 긍정적 사물의 실제이고 긍정적 사물의 실제가 바로 진리입니다. 그럼 이런 진리는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은 그분의 생명의 유로이고 하나님 성품의 유로이므로 당신이 이런 말씀을 경력한 후에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이고 생명임을 느낄 때 하나님에 대해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진리이시고 하나님의 생명은 너무나 귀중하고 너무나 사랑스럽구나! 하나님의 생명은 너무나 거룩하고 너무나 공의롭구나! 하나님의 생명은 너무나 아름답고 선하며 사람들을 흠모케 하고 우러르게 하는구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런 진리 실제를 나의 생명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은 이런 흠모함이 있습니까? 처음에는 진리를 갈망하다가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진리를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진리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귀중하고 너무나 사람을 흠모케 하는구나.’ 무엇을 흠모하겠습니까? ‘만약에 내가 이런 진리 실제를 살아낼 수 있고 이런 진리를 내 생명으로 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의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일단 진리를 깨닫게 되면 진리를 살아내기를 흠모하고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하려 하며 진리에 따라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리를 발표하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마시게 하고, 경력하게 하고, 진입하도록 하며, 얻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흠모하게 하고 그분의 생명을 흠모하게 하는 이런 효과에 도달하려는 것입니다. 흠모하게 되면 무엇이 생깁니까? 사랑하게 되고 찬미하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만 찬양하게 됩니다. 사람이 어떤 상황 하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찬미가 우러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비범하고, 위대하며, 거룩하고, 공의로우며, 아름답고 선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찬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보게 될 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이런 찬미가 있습니까? 진리에 대해 이런 진실한 사랑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흠모와 갈망하여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소유소시가 그토록 아름답고 선하며 거룩하고 공의로운 것임을 보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보게 되면, 우리의 생명과 성품 안에 있는 것은 다 무엇입니까? 추함과 패괴 그리고 사악하고 이기적이며 비열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추악한 생명을 보고 난 후에 자신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미약하고 추하며 패괴되고 사악하며 분토(糞土)와 같이 가치가 없음을 알고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참으로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할 때에 자신을 높이고 오만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이지(理智)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패괴되고 추한 자신을 보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것입니다. ‘살기 싫어, 이렇게 패괴됐는데 무슨 살아갈 힘이 있단 말인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어디 있는가?’ 이리하여 재 가운데서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뵐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러면 사람은 자신을 높이던 데서 낮추고 다시는 오만ㆍ자대(自大)하거나 자신을 뽐내며 기세등등하지 않고 자신이 뛰어나다고 느끼지도 않게 됩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면서 지금은 착실하게 하나님의 심판ㆍ형벌을 받아들이고 모범적으로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게 되는데, 이것이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이지와 인성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함으로 도달하게 되는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인데, 한 방면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제거하고 그 밖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음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추함과 패괴 그리고 사악함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보게 됨으로 인해 참된 후회가 생겨나고 후회하고 나면 사람의 성품에 조금씩 변화가 있게 됩니다. 오만함에서 자신을 낮춤으로 변화하고, 거역에서 순복으로, 세속의 야심을 가지고 추구함에서 착실함으로 변화되며, 모범적으로 본분을 하고 고분고분하며 모범적인 사람 됨됨이가 그 무엇보다도 낫다고 여기면서 착실하게 진리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 성품은 바로 이렇게 변화되고 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정한 효과에 도달한다면 사람에게 이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일부 진실한 인식이 생기면 사람의 생명 성품에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되기에 지금 우리는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해서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생명이 끊이지 않는 한 분발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의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런 생명 성품의 변화는 무엇에 의해 도달할 수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함으로 도달하는 효과이지 우리 자신이 단지 교회 생활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본분을 한다고 해서 이런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은 하지 않는데, 당신이 본분을 하지 않으면 수리ㆍ대처(역주: 교훈ㆍ질책)가 임할 수 있습니까? 누가 당신을 수리 대처하겠습니까? 당신이 집에서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당신을 대처하거나 수리하는 사람이 없다면 진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인솔자 일꾼의 대처가 직접 임하게 됩니다. 인솔자와 일꾼이 보기에 당신이 본분을 함에 있어 대충대충 하고 기만하는 것이 심각하다면 당신에게 수리와 대처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허락에서 온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하면서 이런 수리 대처가 임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 것이고 다 하나님의 높여주심입니다. 예전에 하나님 집에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과 많은 악을 행한 일부 사람들을 제명하고 본분을 중지시켰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처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도 대처 수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도태됨을 의미합니다. 수리 대처가 없으면 좋은 일입니까 아니면 나쁜 일입니까? 이전에 제가 일부 사람들을 너무 심하게 수리 대처하고 말투가 너무 무뚝뚝하고 너무나 엄해서 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고 원망하고 미워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 번의 수리 대처가 그들에게 있어 얼마나 많은 유익이 되고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를 경력하는 단 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지 않았다면 그가 변할 수 있겠습니까? 변할 수가 없고 변하려고 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생명 성품이 어떤 상황 하에서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지금 똑똑히 보았겠죠? 반드시 객관적인 환경 가운데서 수리 대처 및 심판 형벌이 임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징계와 일깨우심 그리고 빛비춤과 직접적인 채찍질이 있어야 비로소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몇 가지 환경이 임하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자신을 진실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반성하는 것에만 의지해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하나님 말씀 한 편을 주고 한 달 동안 보고 깊이 상고하라고 한다면 당신의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는 한 달 보면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고 많은 체험과 소감을 쓸 수 있어요.”라고 말하겠지만 당신의 생명 성품은 변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속으로 ‘그렇지 않을 거야, 내가 매일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고 상고한다면 결국에는 알게 돼. 정말 변할 수 없나 두고 볼 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마도 약간의 변화는 좀 있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바로 수리와 대처에 성령의 징계와 책망을 더하고 시련 연단의 정결함을 더해야 아주 현저한 효과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경력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 경력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야 합당할까요?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영적 수양을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참된 경력으로 진입하여 현실적인 생활과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징계와 수리 그리고 책벌(責罰)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시련 연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도대체 어떤 것이 가장 가치 있습니까? 수리 대처와 시련 연단은 모두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은 방에만 있으면서 말씀을 읽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력 가운데서 매 한 가지 일로 말미암아 당신을 드러내고 특히 당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에서 수리 대처하고, 심판, 형벌, 시련, 연단해야 비로소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어떤 방식이든 이런 효과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우리가 ≪성경≫ 한 권만 받쳐들고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완전히 정결함을 얻은 거야.’라고 여기는데, 사실상 정말 정결함을 얻었습니까? 조금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죄 사함을 받았으나 그들의 심령 깊은 곳의 패역과 대적 그리고 사탄의 본성은 정결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은혜시대의 역사는 오로지 하나의 속죄제일 뿐,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효과에는 근본적으로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심판 형벌의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역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오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없었더라면 우리 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은혜시대 교회에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세상에서 떠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과 형벌이 우리들을 지금까지 이끌어올 수 있었고 우리로 하여금 다행스럽게도 지금 하나님 앞에 살게 하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며 설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특히 말세에, 하나님 선민에 대한 큰 붉은 용이라는 “짐승”의 박해에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이 없었다면 이겨 내기 어려웠을 것이고 진작에 큰 붉은 용에게 삼킴을 당해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은 참으로 만유를 주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경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각종 인ㆍ사ㆍ물을 동원하여 효력하게 하심을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큰 붉은 용이 집권하는 중국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환경 하에서도 하나님의 선민이 지금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면서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도달한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은 지금 한마음이 되었고 큰 믿음을 갖고 있으며 각 사람마다 믿음이 전례없이 크고, 심지어 하나님께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대다수 사람들도 마음을 굳게 하여 생명도 도외시하며 하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세에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신 한 무리의 이긴 자들로 ≪계시록≫의 “십사만 사천의 이기는 자”라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인데, “십사만 사천의 이기는 자”가 바로 이 무리의 사람들 중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겠습니까? 큰 붉은 용의 눈에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이 무너졌고 사라졌고 존재하지 않겠지만 사실 “지하”에 숨어있어서 그것들이 보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인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고 충성하는데 이것은 그것들이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이전에 중국에서 발견된 제일 큰 “기적”, 진시황 지하 병마용이 발굴되어 “세계의 대기적 8위”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것들의 그 지하 병마용은 무엇입니까? 나무나 진흙으로 빚은 죽은 사람들인데 기적으로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선민이 온전케 되면 참되고 살아있는 사람이며 참된 간증인데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것입니다. 이것도 큰 붉은 용이 말한 것처럼 공산당은 강철로 만들어졌고 우리는 금강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선민이 오늘 온전케 되어 진실한 생명을 얻었는데, 이 생명은 무엇으로 구성되었습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구성되었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발표된 모든 진리가 우리의 믿음이 되고 우리의 사랑이 되고 우리의 실제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말세에 마침내 한 무리 사람들을 이루셨고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지금 만약 우리에게 경력을 말하라고 하면 우리는 많은 경력을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너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을 받고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역주: 순종)과 헤아림이 생긴 적이 있는가?” 이런 경력은 다 있습니다. 둘째,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중에서 사람의 패역과 사람의 사탄 본성을 인식하고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었는가?” 이런 경력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셋째, “너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깨우침 하에 새로운 인생관이 생기기 시작했는가?” 이것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너는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과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구원을 느꼈는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네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인지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푸는지도 모른다면 너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가 없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아본 적도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너는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역시 있는데, 하나님 역사에 의해 도태되는 사람입니다. 이 “있다”는 긍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 간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데 이러면 위험합니다! 방금 이 몇 가지 긍정적인 경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약간의 이해도 있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라는 한 사람의 질문에 당신이 “아! 제가 믿는 하나님은 너무나 참되시고 실제적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많이 경력해서 참된 인식이 많이 생겨났어요. 우리 하나하나씩 교통해 봐요. 하나하나 말해 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당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간증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아주 많은 경력 간증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인식은 틀림없이 더 참되고 도리나 빈말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그 어떤 진실한 경력이 없고 어떤 수리나 대처도 임하지 않았으며, 무슨 심판이나 형벌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도 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하나님 성품에 대한 당신의 인식은 제로이고 추호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런 사람은 바로 하나님에 의해 도태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수리 대처도 경력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무엇이 하나님의 징계이고 하나님의 채찍질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1~2년 된 새신자를 제외하고 이런 사람에게는 경력이 없는 것인데 만약에 당신이 하나님을 3~5년 믿고도 이런 경력이 추호도 없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것은 사람을 속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10년 믿었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믿었습니까? 집에서 믿었지 교회에서 믿지 않았는데 믿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집에서 믿은 것을 믿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교회에서 본분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경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징계가 어디에 있습니까? 수리와 대처가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당신을 심판하고 형벌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집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수리와 대처, 징계, 채찍질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하나님의 시련, 연단을 경력해야 합니다. 이 몇 가지를 다 경력하고 나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몇 가지의 경력으로, 또한 이 경력에서 받은 고통으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바꾸어 오는데,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너무나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순금으로도 바꿔 올 수 없는 보배입니다. 왜 순금으로도 바꿔 오지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이런 요 정도의 인식도 하나님 편에서는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요 정도의 인식으로 인해 네가 살아남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며 국도에 네 분깃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면 말해 보세요, 이런 요 정도의 인식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이것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갖고 있는 전 재산으로 이 인식을 사려고 한다면 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갖고 있는 돈을 다 꺼내 놓고 하나님께 “제가 이 돈을 다 하나님께 봉헌할 것이니 하나님께서 저를 국도에 들어가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한다면 목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헛수고입니다! 국도에 들어가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해 요 정도의 인식이라도 있으면 돈 쓸 필요 없이 성공한 것이고 국도에 몫이 있게 됩니다. 요 정도 인식이 돈보다 더 귀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당신은 하나님을 믿어서 뭘 얻었습니까? 여러 해 동안 온갖 고초를 겪고 심지어 큰 붉은 용에게 체포, 핍박,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하마터면 감옥에서 죽을 뻔까지 하면서 마지막에 얻은 건 하나님에 대한 약간의 인식뿐인데 가치가 있습니까?” 당신이 말해 보세요.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요 정도의 인식이 영원한 복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칭찬을 가져오며 곧 생명이고 실제이고 간증이며 하나님의 축복이고 긍정입니다. 그럼 지금 당신에게 요 정도의 인식이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이것을 원하시지 다른 것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잖아요? 모든 것을 버렸잖아요? 말해 보세요, 당신이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라고 물을 때, 당신이 이 인식을 내놓는다면 정말 값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보았거나 하나님과 대면한 적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앎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네요. 당신은 얻었어요.”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이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라고 묻는데 당신이 이런 인식을 내놓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인지 압니까? 그럼 당신은 위험하고 당신의 마지막은 미지수입니다. 그렇다면 요 정도 인식이 귀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값진 것이기에 당신이 하찮게 봐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요 정도 인식밖에 안 되지만 그 인식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압니까?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이 있습니다. 당신이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다 알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더욱 잘 아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부 하나님 선민들이 온갖 고난을 받고 옥살이를 하며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죽음의 시달림을 받은 것을 보면서 비록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왜 하나님을 따르려 하고 또 죽기까지 충성하려 할까?”라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이 안에 비밀이 있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역사에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이 고통받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압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압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슨 암시를 주셨기에 그가 그렇게 힘있게 하나님을 따르는지 압니까? 사람은 이것을 보지 못했기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간단합니까? 그 속에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타내시는 것, 유로(流露)하시는 것, 행하신 모든 것은 같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사람만이 스스로 깨닫고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에서 품은 마음과 마음 상태도 매우 중요하며 사람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관건이 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것에 근거하여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임했을 때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시고,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시며, 당신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더욱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기 서로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역을 행하셨는데 그 속에는 오묘함과 하나님의 행사가 있어서 누군가 경력하면 경력하는 사람만 알게 되지 제삼자는 영원히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힘이 점점 더 생기니 힘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당신에게는 늘 힘이 있는데 저는 왜 힘이 없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어디에서 힘이 생기겠습니까! 당신은 영원히 힘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때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얻게 되면 힘이 생길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100여 년 만들면서 왜 항상 힘이 있었겠습니까? 이 비밀은 오직 노아만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부모를 버렸는데 왜 그렇게 큰 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자신은 그가 왜 버리는지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욥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왜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그의 순수함을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오로지 욥 자신만이 왜 그렇게 했는지 알고 있었지 그의 세 친구와 아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이 일은 오묘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이 오묘함을 풀 수 있고 경력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변화가 생긴 거예요?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왜 변화가 없을까요?”라고 말하는데, 당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한 적도 없으며, 하나님의 수리 대처가 임한 적도 없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임한 적이 없기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의 수리 대처가 정말로 임하면 수리 대처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정말로 임한다면 심판 형벌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며,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가 임하면 무엇이 징계이고 책망인지를 알게 됩니다. 당신에게 이런 것들이 임하지 않고 경력해 본 적도 없다면 영원히 모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현재 대학을 중퇴하고 다니던 직장도 버렸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그는 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고 어리석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을 버렸고 가정을 버렸는데 그녀가 어리석어서입니까? 그녀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녀에게 왜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그녀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경력이 있었기에 미련없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녀에게 체험이 없다면 이렇게 큰 믿음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에서 오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한 데서 온 것입니다. 그녀가 직접 하나님을 보고 비로소 이런 믿음이 생겼기에 그녀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런 믿음이 없고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버릴 수 없습니다. 누가 어리석습니까? 누구도 어리석지 않습니다. 제 나름대로 다 총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어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위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사람은 다 제 나름대로 총명하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의 총명은 어리석고 어떤 사람의 어리석음은 총명합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정말 총명한지 당신은 말할 수 있나요? 진리를 추구하고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총명합니다. 제 몸만 챙기고 육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헛똑똑이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저는 가정과 직장만은 못 버려요. 버리는 당신들은 너무나 어리석어요. 저는 버리지 않아도 국도에 들어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데, 언젠가 애곡하며 이를 갈 때 누가 총명하고 누가 어리석은지 드러나게 됩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한 적이 없다면 너는 결코 무엇이 하나님의 거룩인지 모를 것이고” 여기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은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바로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식하게 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식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함은 더럽힘을 용납치 않고 하나님의 성품은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이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는 것으로, 수리 대처가 임하든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이 임하든 혹은 시련 연단이 임하든 간에 조금도 틀림없이 모두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하면 하나님 성품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면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에 대해서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인식하면 하나님의 성품은 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치 않는지를 알게 되는데,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람이 더럽히는 것을 용납치 않기에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범한다면 곧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나님을 거스릅니까? 사탄은 하나님을 항상 논단하고, 모독하며, 권위를 실추시키고, 하나님을 모함합니다. 하나님은 원래 거룩하신 분인데 사탄이 그분의 권위를 실추시키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기에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고 재난을 내리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은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 사악하고 패괴된 인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알고 있습니까? 바로 재난과 사실로써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인류에게 재난을 내리시면 영이 있는 사람은 곧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진노하셨어!”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실로서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당신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일을 하셔서 당신에게 임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많으므로 당신이 듣고 나서도 어느 말씀이 하나님께서 현실 생활 가운데서 당신에게 하신 것이고, 어느 말씀이 당신의 현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를 모릅니다. 그리하여 어떤 때에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일을 좀 하셔서 당신에게 임하게 하시면 결국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일은 다 경력해 봤을 겁니다. 어떤 때에 당신이 하나님을 거역하면 징계하시는데 징계하시면 당신이 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하나님을 거역해서 징계하시는구나.” 당신이 이렇게 말할 때 다른 사람은 몰라서 “하나님은 왜 저를 징계하지 않으실까요?”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그는 징계하지 않으시지만 당신을 징계하셔서 무엇 때문에 당신을 징계하셨는지를 알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실로써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수리와 대처는 하나님께서 사실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이런 사실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대해 또 실제적인 인식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경력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많은 사실로써 그리고 우리의 신변에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배설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와 교제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많은 일들에서 우리가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태도를 표시하거나 혹은 순복하고, 선택하며, 마음을 털어놓거나, 헌신하는데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참된 교제가 아니겠습니까? 사람과 하나님의 교제는 이렇게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하나님,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두말없이 당신을 따르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나님께 태도를 표시하고 다 버렸습니다. “어떻게 버리게 되었어요?”라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고 “어떻게 말씀하셨어요?”라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얼마간의 일을 하셔서 사람과 말씀하시고 교제하시면 사람이 마음속으로 다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않았습니까? (보았습니다.) 눈으로 본 것입니까? (아니요.) 어떻게 보았습니까? 그는 마음으로 뻔하고 조금도 흐리멍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순복하기를 원하면서 태도를 표시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마주하여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마주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임하는 것은 더욱더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대해 진실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지 않았습니까? 보았습니다. 보고 나서 사람에게 어떤 표현이 있습니까?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후회하며 자신에게 하나님을 섬길 자격과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음을 보게 되고 수치스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을 느낍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거룩함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이 있지 않습니까? 인식이 있게 됐습니다. 각 사람마다 이런 경력을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며 여러 번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력들이 우리들을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도록 하여 우리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이렇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이렇게 하나님과 마주한 경력이 있습니까? 다 있긴 하지만 단지 당신이 말할 줄 모르고 이렇게 기도할 줄 모를 뿐입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저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 일에서 당신이 저에게 말씀하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전에는 당신이 계심을 귀로만 전해 들었는데 지금은 당신과 마주하여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런 일을 경력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더 있게 되고 더 진실되게 하나님을 따르며 더 고난을 받고 더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으며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력은 사람에게 있어 귀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일생 동안 이런 일들을 한 번만 경력하고 하나님과 한 번만 마주해도 그의 믿음은 단번에 자라게 되고 다시는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더는 함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못합니다.

“만약 네가 전혀 참되고 정확한 인생관이 없고 정확한 인생 목표가 없고 여전히 앞으로의 인생길에 대해 막막해 하고 방황하며 심지어 주저하며 나아가지 못했다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은 적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지금까지 진정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보급을 얻은 적이 없다.” 이 말씀은 진실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여러 해 믿었어도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공급과 보급을 받은 적이 없어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에게 말씀을 공급하시고 어떻게 사람에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사람 몸에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저는 왜 보지 못합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는 늘 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적이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 됐는데 왜 아직도 경력하지 못했을까요?”라고 말합니다. 몇 년이 됐어도 경력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셨던 일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무엇이고,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어떻게 말씀으로 사람에게 공급하시는지, 어떻게 사람을 일깨우시고 깨달음을 주시는지,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 심판과 형벌, 시련 연단을 그는 지금까지 받아들이거나 경력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답은 틀림없이 “아니다”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붉은 용에게 잡혀 큰 붉은 용이 각종 고문 도구를 그의 앞에 꺼내 놓고 “말해”라고 하자 그는 곧 자백하고 모두 다 시인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있습니까?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문 도구를 아무리 많이 꺼내 놓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는 “내가 여기에 온 이상 살아서 나갈 생각없어. 고문 도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큰 붉은 용이 듣고 나서 “야, 이놈은 진짜로 믿는 놈이구나. 이놈은 분명 하나님을 만나봤을 거야. 이 한 마디에 드러나잖아.” “내가 잡혀 온 이상 살아서 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러니 살아서 나갈 생각도 없어.” 이때는 목숨까지도 내놓고 희생할 수 있는데 이것을 곧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고문 도구를 그 앞에 꺼내 놓거나 감옥 문을 열기만 해도 주저앉고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만 의하는 그런 믿음은 굳게 서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떠한 경력과 터득도 없다면 그는 분명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에 분명 실제 내용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인식도 분명 제로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떻게 생깁니까? 하나님을 본 사람만이 비로소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 적이 있다”는 무슨 말입니까? 눈으로 하나님을 봤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대면했으니 볼 필요가 없어. 하나님께서 이 사실로써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는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런 일들은 곧 사람과 대화하시는 거야. 하나님 말씀으로 실제 생활을 대조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니 난 하나님을 본 거야.’라고 느낍니다. 그러면 당신이 읽었던 하나님 말씀과 현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당신은 한 곳에 결부시킬 수 있습니까? 만약에 당신이 정말로 실제와 결합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의 행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 거지? 그분이 하신 말씀들이 사실이 맞나? 정말 나한테 임한 거야? 야, 내가 책에서 본 이런 말씀들과 실제 가운데서 경력한 하나님의 행사가 같구나. 하나님의 말씀과 실제는 병행하는구나!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한 분의 실제적인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고 너무나 실제적이야!’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 정도까지 경력한다면 이것이 곧 대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고 마주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복할 것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기에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100% 확신하며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본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많은 일에서 하나님과 마주한 적이 있다면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에게 변하지 말라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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