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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집 (a) 하나님 말씀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 관한 설교 교통 (1)

【151-A-4】

지금 많은 사람은 명목상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교회 생활도 합니다. 제가 “지금 하나님 집에 한 가지 중요한 사역이 있는데, 거기 가면 고생해야 합니다. 누가 가고 싶나요?”라고 물으니 다들 손을 듭니다. “그런데 거기 가면 매일 두 끼 밥에 고기도 없고, 게다가 매일 8시간 사역해야 되고, 예배도 봐야 됩니다. 모기도 많고, 여러가지 불편한 환경이 많습니다.”라고 말하자, 어떤 사람은 얼른 손을 내립니다. ‘그럼 못 가지. 거기가 천당인줄 알았네. 감옥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나보고 거기 가서 고생하라고? 어림도 없어!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건 맞지만, 그런 고생은 안 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순복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 예를 들어, 대륙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위험한데, “누가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까? 복음팀에 가고 싶습니까? 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드세요.”라고 하니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라고? 에휴, 위험하잖아. 난 안 가.’라고 생각합니다. “왜 손을 안 들어요?”라고 물으니 “에휴, 전 진리를 잘 몰라요.”라고 말합니다. 사실은 겁이 많아 잡힐까 봐 무서워 손을 못 드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임할 때마다 뒷걸음질치는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습니까? 순복이 없습니다. 순복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할 수 없고, 하나님 집의 모든 안배에 순복할 수 없는데, 이것은 필연적입니다. 하나님 집의 모든 안배에 순복할 수 없는데, 그럼 어느날 하나님이 그에게 환경을 배치하여, 큰 붉은 용에게 잡혀 옥살이하게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안 가면 되겠습니까?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지 않으면 안 되지만, ‘탈출’할 수는 있습니다. 큰 붉은 용이 심문하자, 그는 “저는 유다가 되면 안 됩니다.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큰 붉은 용이 “배반하지 않겠다고? 그럼 어디 고문을 당해 봐!”라고 합니다. 고문 앞에서 그는 다 털어놓고, 배반했습니다. 배반하고 나서 큰 붉은 용이 “자백서와 각서에 사인해!”라고 하니 얼른 사인합니다. 하지만 사인할 때 눈물을 글썽입니다. 이 말씀이 참 도이고,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고문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인하지 않으면 고문을 당해야 돼. 그리고 고문을 당하고 나서도 몇 년이나 옥살이할지 몰라. 난 감옥에서 한 평생 보낼 수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백서에 사인했습니다. 자백서에 사인하고 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력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지니, 녹초가 되어 즉시 쓰러진 것입니다. 한 무더기의 진흙이 된 것이죠. 매일 속으로 울고, 속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징벌받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일락천장이 된 것이고, 아름다운 소망이 철저히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이런 결말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맡겨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환경을 배치하여 사람에게 그런 환경이 임하게 하는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 가지 일로 사람이 유다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유다가 되고 싶지 않아도 안 됩니다. 자신도 어쩔 수 없죠.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고생도 안 하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런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번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번에 하나님 집과 단절되고, 하나님께 도태되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인솔자와 일꾼을 배양할 때 어떤 사람을 배양합니까?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을 배양합니다. 전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늘 글귀 도리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배양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외식하는 바리새인입니다. 알아들으셨죠? 누가 진리를 실행하면 하나님 집에서 그 사람을 배양하고, 하나님 선민은 그런 사람을 추천해도 됩니다. 전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글귀 도리만 말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기 쉽고, 만약 성정이 교만 자대하고 야심이 크다면 틀림없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를 보면, 흔히 다 은사가 있고 머리가 총명하고 일 처리할 때 수단이 좋습니다. 그 부류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그 어떤 악을 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거짓 인솔자입니다. 또 그 부류 사람은 다 바리새인입니다. 말만 하고 행동은 없고, 사람을 아주 잘 미혹합니다. 입만 살았지 마음속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전혀 자신의 진실한 경력을 말하지 않으며 자신을 털어놓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인솔자와 일꾼이 되었다 하더라도 드러나고 도태될 것입니다. 흔히 인솔자와 일꾼이 되면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은 인솔자와 일꾼이 되기 전에는, 누구도 그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왜 인솔자와 일꾼이 되니 악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지위와 권력으로 사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권력을 얻게 되면 지위의 복을 누리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기 쉽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본성인지, 어떤 사람인지 아주 빨리 드러나게 됩니다. 드러나면 사람들이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좋은 사람이나 악인이나 모두 지위와 권력 앞에서 그 실체의 좋고 나쁨이 드러나게 됩니다. 지위와 권력으로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까? 본분으로도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정인지는 본분을 하면 가장 빨리 드러나게 됩니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거나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치욕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것은 말씀을 거꾸로 행하는것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이 길이 바른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람의 말로 하면 이것은 하늘을 거스르고, 바른길을 가지 않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대역무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치욕입니다. 지금 하나님 믿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책망과 훈계가 임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받아들이고 순복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은 어떤 표현입니까? 이런 사람은 성도의 품격이 있고, 순복하는 표현이 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 치욕을 당한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사람은 누구나 탄복할 것이고 “이런 사람을 왜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지? 이런 사람은 정말 드물어. 책망과 훈계 앞에서 다수 사람은 이치를 따지면서 반항하고 불복하고, 또 그것을 영웅적 기개라고 생각해. 그러나 이 사람들은 안 그래. 이 사람들은 고분고분, 성실하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 순복하고 받아들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치욕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은 성도입니다. 이젠 어떤 사람이 성도인지 알겠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저런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 믿는 사람이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예요.”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하나님 믿는 사람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하면 이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알았죠? 그럼 하나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치욕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거나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치욕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을 도태시킬까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성도의 품격이 없으며,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반드시 도태시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떤 일에서 순복이 없거나 이치를 따졌거나 혹은 좀 반항했다면, 어떤 느낌이 있을까요? 파리를 먹은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만약 이방인이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잘했다! 배짱이 있네!”라고 한다면 그는 “마귀 사탄이 날 조롱했고, 난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었어. 난 오늘 하나님께 너무 많이 빚졌어. 난 살 자격이 없어. 정말 밧줄에 목 매어 죽고 싶다. 난 오늘 하나님을 모욕했어. 나에게 있어 정말 가장 큰 치욕이야.” 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변화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행위의 변화가 아니라, 성정의 변화이고,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하면 이런 사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괴롭고, 극히 후회하고 자신을 증오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했다면, 설사 사탄이 조롱하고 비웃고 훼방해도 이런 사람은 마음에 누림이 있습니다. “오늘 난 이치를 따지지 않고 순복했어. 이건 하나님의 은혜야! 나에게 드디어 증거가 좀 있게 되었고, 순복하는 표현과 진리를 실행하는 표현이 있게 되었어. 정말 기쁘네!” 마음속의 그런 평안과 위로와 누림은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이 바로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불복하고 이유를 따지지만 마지막에는 순복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비웃고 훼방해도 마음속에는 누림과 위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고통스럽고 진리를 실행하면 마음속에 위로와 즐거움이 있게 되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이미 진리를 실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기만 하면 고통스럽고 괴롭고 극히 후회하고 심지어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기가 아직도 어려울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기가 어렵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이 어렵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오히려 쉬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기가 너무 어렵고 진리를 실행하기가 어렵고,하나님을 거역하기가 쉽고, 세상의 조류와 육체를 좇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세요. 똑같이 하나님을 믿지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의 일처리 원칙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는 성실한 사람이 되기 싫어요!”라고 합니다. 보세요. 이치대로 말하면, 그렇게 오래 믿은 사람은 거짓말이 점점 적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이방인처럼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이방인이 어떻게 거짓말하면 똑같이 그렇게 거짓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래 믿었든지 간에, 아직도 이방인처럼 말하고 일처리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은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있으면서 떠나지 않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런 사람은 사탄의 심부름꾼이고 기회주의자이며, 복을 얻기 위해 섞여 들어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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