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42집 (b) 하나님 말씀 <땅의 하나님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에 관한 설교 교통

【142-B-8】

우리, 예를 하나 들죠.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없었을까요? 다 있었습니다. 어떤 관념이 있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영원히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노아, 너한테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다고 알려 주셨는데, 왜 우리한테는 안 알려 주신 걸까? 노아, 네가 우리보다 나은 게 뭐가 있어서, 하나님이 너한테 알려 주셨으면 우리한테도 알려 주셨을 거다.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알려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이게 다수 사람들이 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관념이 있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많았을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대적할 때 보면 어떻게 말했죠? “하나님이 당신에게 계시하면 우리에게도 계시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왜 너만 쓰시겠냐?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도 쓰실 거다!”, 이런 식으로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용납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권병을 주셔서 그들을 멸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때 250명의 족장은 다 훼멸됐습니다. 땅이 벌어지면서 그들을 산 채로 삼켰죠.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땅이 입을 벌리자마자 그들은 바로 떨어졌습니다. 그럼 그들이 자발적으로 뛰어내렸을까요? 땅이 벌어지면서 그들을 빨아들였습니다. 그들이 내려가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됐습니다. 흡입력이 있어서 자석처럼 그들을 빨아들였습니다. 무조건 그랬을 것입니다. 어찌 됐든, 알 수 없는 힘이 제어하고 있어서 그들이 내려가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됐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도 정말 많은 관념 상상을 가지고 있어서 노아의 말을 다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한테만 알려 주시겠냐고, 하나님께서 정말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다면 우리에게도 알려 주셨을 거야. 당신만 잘났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말했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정말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 정말 그런 능력이 있으실까? 얼마나 큰 홍수가 나야 사람을 다 멸할 수 있겠어? 불가능해! 그동안 비가 온 거 보면 많아 봤자 무릎이나 가슴까지 오겠지. 어디, 전 인류를 멸할 만한 게 있었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실 수 없어. 그럴 능력이 없어. 그건 과학의 법칙을 벗어나는 것이고 과학에 어긋나는 거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지금 중국에서 홍수를 연구한다는 걸 보세요, 어느 해에 홍수가 가장 컸는지 역사 기록이 다 있다면서 100년에 한 번 오는 홍수의 수위는 얼마큼 높았고, 천년 만에 오는 홍수의 수위는 얼마큼 높았었는지 기록이 있는데, 홍수로 온 인류가 멸망됐다는 그런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었고, 홍수로 세상이 훼멸됐다는 것은 신화 전설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럼 이런 일에 대해 항상 관념으로 가늠하고 가늠하다가 그 결과는 어땠나요? 홍수에 멸망됐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가늠하기만 하면 결국에는 하나님께 멸망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99세가 되었는데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재산은 많았지만 갈수록 몸이 약해지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렇게 많은 재물을 베풀어 주셨는데, 누가 물려받아야 됩니까? 저에게 아들 하나 주실 수 없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열두 살까지 키워 놓으니 정말 뛰어노는 모습을 봐도 보배처럼 귀해 보입니다. 그렇게 흐뭇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너는 아들을 내게 제물로 바치라”, 그때, 아브라함은 멍해졌습니다. “어?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어떻게 된 거지? 하나님께서 주셔 놓고 왜 또 달라고 하시지? 아니야, 하나님과 이렇게 말하면 안 돼! 이건 이지가 없는 거야. 설마 하나님께 진짜 아들을 바치라는 것일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신데, 이랬다저랬다 하실 분이 아닌데. 아, 이걸 어떡하지?” 기도해야겠죠! “하나님,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당신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저는 관념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아들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니까 두말없이 “하나님, 당신께 순복하겠습니다.”라고 준비합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건 어떤 곳을 찾아서 땔감을 쌓고 아들을 죽인 다음 불을 붙여 태우는 것입니다.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자기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족속이나 이방인들과 지내면서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지역을 다투고 재물을 다투면 다 양보했었습니다. 싸우려고 하지도 않고, 죽이려고 하지도 않고, 손해를 볼지라도 양보를 했던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하면 어떻게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그 사이에 아브라함은 날마다 울면서 눈물로 지새우지 않았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연약함이 없었을까요? 장담하지만 연약함이 있어서 손 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를 얼마나 했겠습니까? 틀림없이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 후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순복하자! 말이 필요 없어. 이치를 따지지 말자. 그렇게 하면 난 내 자신을 증오하고 내 뺨을 칠 거야!”라면서 그래도 행하고, 순복했습니다. 그렇게 순복하는 순간, 바뀌었습니다! 괜히 놀랐고,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오랜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듣게 됐던 그 순간이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을 겁니다. 기뻐서 땅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오늘에서야 당신을 좀 알게 됐습니다. 당신은 너무 좋으십니다!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아브라함은 곧바로 순복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우리에게 임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순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사탄이 헛소문을 퍼뜨린 것도 아닙니다. 그때는 큰 붉은 용이 있기도 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죽이라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이 사람에게 임하면 관념이 없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관념이 생깁니다. 사람은 곧바로 “하나님, 왜 이랬다저랬다 하십니까? 저에게 주셨다가 왜 다시 찾아가십니까?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사람인 우리도 그렇게는 안 합니다. 더구나 당신은 하나님이시니까, 그렇게 하시면 더 안 되죠.”라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 같이 패괴된 인류는 꼭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아브라함이 성경을 본 적이 있나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들었을까요? 그때 성경이 있었나요? 그때는 모세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었고, 율법시대의 역사는 시작도 안 됐는데, 어디에 성경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말씀, 그 행사에 대해 관념을 가지지 않고 순복했습니다. 그래서 큰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같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일이 닥치면,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임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임했더라면 불신파로 드러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드러났을 거라고 합니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겪을 자격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아브라함은 성경 없이도 어떻게 믿었나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고, 순복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 관념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셨는데, 아이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면서 다시 찾아가시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순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순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도 관념을 갖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도 다 순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몇 마디가 말로는 쉽습니다. 몇 글자 안 되지만 행하기에는 너무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큰 붉은 용의 그깟 유언비어, 교계의 그깟 허튼소리, 부정적인 선전을 아브라함 앞에 가져간다면, 아브라함에게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을 넘어지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그게 뭐죠? 하나님께서 이런 것보다 더 사람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하시고, 이보다 백배 더 심하게 하셨어도 아브라함은 다 순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셔도 아브라함은 다 순복했는데, 그런 관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근데 지금 사람은 왜 그렇게 관념이 잘 생깁니까? 먼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지 아닌지부터 생각해 보세요.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면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아도 다 순복해야 합니다. 고분고분 순복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순복해야 합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영원히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도, 큰 붉은 용의 부정적인 선전 단 한 마디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인지, 하나님의 역사가 다 진짜가 맞는지를 의심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나요?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욥의 믿음을 보세요, 그게 진실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셔도 관념을 가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간증에서 가장 관건이 되는 말은 어떤 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까? “설령 하나님께서 사람을 장난감처럼 여기고 우롱하실지라도 사람이 또 무슨 불평할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무슨 자격이 있겠습니까?”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보세요, 이게 믿음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도 다 순복할 수 있다면 큰 붉은 용의 그깟 허튼소리가 다 뭐겠습니까. 설령 온 교계와 큰 붉은 용이 하는 말이 진짜라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게 진실한 믿음이 아닌가요? 그게 진실한 믿음입니다. 왜 이렇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참 하나님이시라는 걸 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시다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것을 봤기 때문에 큰 붉은 용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다.”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 해도 다 하나님이시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아이들을 물에 던지시면 하나님이 아닐까요? 그래도 믿으실 겁니까? 여러분이 아이 둘을 낳았는데, 하나님 말씀 한 마디에 두 아이가 다 죽게 된다면, 그래도 믿으시겠습니까? 지진을 일으켜 여러분의 집을 다 허물어 버리시면, 그래도 믿으시겠습니까? 다들 그래도 믿겠다고 하십니다. 왜 그래도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은 그런 것들이,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라는 그 실질, 그 실제에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해도 그것은 사탄이고, 하나님께서 사람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하시고 인류를 훼멸하시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하셨다 해도,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아닌가요? 어떤 사람은 그럼 긍정과 부정을 어떻게 구분하냐고 합니다. 어떤 것을 긍정적인 것이라고 하는지, 어떤 것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하는지, 어떤 것을 바른 것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틀린 것이라고 하는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 그런 건 어떻게 분별하냐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다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곧 진리이십니다. 사탄의 모든 말, 사탄의 모든 일은 다 악한 것이고, 다 나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한 일이나 말은 다 그릇된 것이고, 다 부정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규정하면 정확합니다. 사탄이 사람에게 좋게 보이는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여전히 사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훼멸하고 인류를 징벌하시는 일을 얼마나 하시든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 아닙니까?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우리, 예를 들죠. 아버지가 자녀를 어떻게 때리고 욕하든 여전히 아버지입니다. 그 사람이 자녀를 어떤 식으로 대해도 아버지입니다. 좋게 대해 주든 나쁘게 대해 주든, 용돈을 주든 용돈을 안 주든 다 자녀의 아버지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왜 이렇게 말할까요? 그 사람이 자녀의 아버지인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이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그 사람이 한 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가지고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정확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어떤 일들에서는 왜 그게 진리인지 모르겠고, 사람에게 어떻게 유익한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잘 찾고 구하면 됩니다. 설교 교통도 듣고, 하나님의 말씀도 더 많이 보고, 많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건적인 것, 분명하게 설명하기 힘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혹시 성령께서 깨우쳐 주셔서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날 가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 무릇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것은 다 진리이고, 다 긍정적인 사물이라는 걸 다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렇게 경력하는 건 어떻습니까? 다들 좋다고 하시네요. 항상 하나님을 규정하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법을 배우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얻는 비결입니다!

땅에 계신 하나님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절대 하나님을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규정하는 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규정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고, 진실하십니다. 사람이 모르면 관념이 있으니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서 함부로 논단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어느 날 사탄의 헛소리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하다가 지옥에 떨어져서 지옥 불에 태워지고, 벌레에게 뜯길 때 가서 “하나님, 저를 구해 주세요. 하나님, 저를 구해 주세요!”라고 할 때면 하나님은 “네가 나를 믿었느냐? 네가 나를 믿지도 않았는데, 내가 널 구해서 뭘 하겠느냐? 나는 날 믿지 않는 자는 다 멸하여 지옥에 넣고, 다 죽어야 하고, 다 멸망돼야 한다고 말했었다. 네가 나를 믿지도 않고 무슨 자격으로 널 구해 달라고 부르짖느냐? 내가 너보고 믿지 말라고 했느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사람은 뭣 때문에 안 믿었죠? 사탄의 헛소리 한 마디 때문에 안 믿은 거 아닌가요? 사탄이나 찾아가라 그래야죠, 누가 사탄의 말을 믿으라고 했습니까? 사탄이 말을 하면 왜 다 믿는 건가요?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건가요? 자신의 잔머리에 속은 것이고 자신의 간계에 걸려든 것입니다. 사탄이 손발을 묶었습니까? 사탄이 허튼소리 한 마디 한 것을 왜 들었습니까? 그런 건 쌉니다.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보응입니다. 본인이 하나님을 몰라 놓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은가요? 그래서 사탄의 헛소리를 믿고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은 나중에 다 보응을 받습니다. 그때 가서 사람이 하나님께 구해 달라고 할 것 같습니까? 그럴 염치도 없을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거들떠보기라도 하실까요? 그때는 하나님께 어떻게 말을 해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진리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실은 아무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헛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헐뜯고, 그렇게 훼방하는 걸 하나님께서 왜 허락하셨을까요?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인지, 누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누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누가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사탄의 헛소리를 믿지 않는지를 보시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그러니까 하나님 교회를 ‘체에 걸러’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악인을 걸러 내는 것입니다. 그 갖가지 체가 바로 사탄이 날조한 여러 가지 헛소문과 거짓말입니다. 한쪽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체를 갖다 놓으니 밖에서 고찰하려던 사람들이 그 체에 걸립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들어올 수 있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걸려서 체 밖에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