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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집 (a) 하나님 말씀 에 관한 설교 교통

【142-A-3】

선지자는 왜 성육신이 아니라고 합니까? 선지자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만 할 뿐, 그 자신에게는 진리 실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발표하신 진리는 바로 그 자신의 소시(所是)입니다. 그분이 평소에 하시는 말씀, 하시는 사역은 그분이 발표하신 진리와 하나로, 완전히 일치하며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곧 진리, 길, 생명입니다. 이렇게 인식하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그분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것에는 다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있으며, 모두가 하나님 성품의 유로이고,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소시이며, 모두 그분이 발표하신 진리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고 말씀하시는 원칙은 완전히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말씀과 실제가 병행된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말씀하셨으면 거기까지 행하시기에 하나님의 사역에서 말씀과 실행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는 땅의 하나님이 바로 하늘 위의 하나님이고, 하늘 위의 하나님의 화신이며, 하늘 위의 하나님이 성육신하셨고, 하늘 위의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우리가 땅에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그리고 그분의 정상 인성에서 본 그분의 유로는 다 하늘 위의 하나님의 소유소시였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은 제가 꿰뚫어 보지 못하기에 저는 반드시 땅에 계시는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말씀 몇 마디만 하셨는데, 제가 듣고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저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 할까요? 저는 “땅의 하나님이 계시니 참으로 좋아. 관건적일 때 내가 묻기만 하면 알게 되니까. 만약 하나님이 땅에 계시지 않거나 사역을 마치고 진리를 다 발표하신 다음 곧바로 승천하신다면, 내가 땅에서 사역하면서 어떤 일들을 꿰뚫어보지 못할 때는 쉽게 편차가 생길 거야. 또 쉽게 잘못을 범할 수도 있을꺼야. 비록 이전의 시대에서 범하는 것보다는 크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범할 거야. 그러므로 땅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관건적일 때 키를 잡아 주시니 온당한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지금 길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진리인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시자 화를 내시며 몇 마디 훈계하셨습니다. 훈계하신 다음 그 사람에게는 관념이 생겼습니다. “땅의 하나님은 사랑이 없어. 그분은 사람에게 왜 이렇게 엄할까?”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봅니까? 말해 보세요. 누군가는 “하늘 위의 하나님은 사람을 긍휼이 여기십니다. 땅의 하나님은 사람에게 긍휼과 사랑이 없지만, 그분에게는 하늘 위의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공의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와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는 긍휼과 사랑을 더 많이 나타내셨고,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위엄을 더 많이 나타내셨습니다. 이런 차이가 아닙니까? 하지만 긍휼과 사랑이든, 공의와 위엄이든, 다 하나님의 성품이고,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며,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관념이 있든 불복하든, 반드시 정확하게 대해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훈계하실 때 엄한 말씀을 하시면, 그는 “하나님께는 긍휼과 자비가 없으니 하늘 위의 하나님과 같지 않아. 하늘 위의 하나님은 사람을 영원히 긍휼과 사랑으로 대하지만 땅의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랑이 없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논단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어떤 잘못을 범했습니까? 하나님을 논단하고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을 긍휼히 여기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또 헤아려주고 온화한 태도를 취하면 그것이 긍휼과 사랑입니까? 당신은 또 때가 되면 “하늘 위의 하나님은 공의야, 땅에 계시는 하나님께는 공의가 없고 긍휼만 있어, 그럼 맞지 않잖아?”라고 말을 번복할 것입니다. 보세요, 말을 번복하면서 또 이런 말을 하여 일구이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논단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긍휼이 여기시면 당신은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고 공의가 없다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공의롭게 대하면 당신은 또 하나님께는 긍휼도 사랑도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말하든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이 임할 때 어떻게 대할까요? 그는 먼저 반성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나님께서 저를 훈계하시니 저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저는 당신이 예수님께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셨던 것처럼 하시지 않는다고 느껴집니다.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시는 성품과 은혜시대의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성품이 왜 좀 다릅니까? 왜 은혜시대에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성품은 대부분 긍휼과 사랑이었고,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성품은 대부분 공의, 위엄, 진노입니까? 왜 그런가요?” 그는 이렇게 진리를 찾고 구하여, 결국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시대의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의 원래 성품이고, 은혜시대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의 원래 성품의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의 일부분 성품이었구나.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를 위주로 한 성품이지 긍휼과 사랑을 위주로 한 성품이 아니었기 때문이구나.” 이렇게 진리를 찾고 구하니 분명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서 늘 하나님을 논단합니다. 이 일에서 어떤 문제를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이 만약 공의를 위주로 한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쉽게 하나님을 논단하게 되고 대적하게 되고 쉽게 관념이 생기지 않을까요? 너무 쉽게 생깁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관념이 생기는 주요 원인은 무엇입니까? 근원은 바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바로 하늘 위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육신을 입으셨다고 하여 그 육신이 사람이 하나님의 실질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알아가는데의 가로막음이 될 수 있습니까? 가로막음이 될 수 없습니다. 육신이 아무리 정상적이고, 아무리 정상적인 인성이 있을지라도 나타내시는 실질은 사람과 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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