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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집 (a)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한 설교 교통

【139-A-8】

문제 해답

문제(1)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하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알아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겠습니까?

아래와 같이 답변 : 이것은 주로 사람의 진리를 깨닫는 능력에 관련됩니다. 현재 하나님 집에는 설교 교통도 있고 인솔자 일꾼의 교통도 있으며 어떤 때는 형제자매가 함께 예배드리면서 하는 교통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측면이 다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아주 편리합니다. 이와 같이 진리가 있는 환경에서 정말 소질이 좋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몇 년 믿으면 모두 수확이 있고 진리를 얻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지 8년, 10년 되어도 얻은 진리가 아주 적고 깊이가 없습니까?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은 사람의 자질과 관계가 있습니다. 자질이 좋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빨리 얻고 몇 년 믿으면 아주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자질이 나쁘고 오랫동안 믿었어도 설교 교통만 듣고 스스로 체험할 줄 모르고 진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여전히 적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방금 우리가 한 단락 읽었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심판하는 말씀이 없겠습니까? 모두 심판하는 말씀이고 모두 사람의 각종 정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모두 심판하는 말씀이라면 읽은 후 형제자매들은 무엇을 알았습니까? 하나님의 어느 측면의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해 사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과의 접촉에서 사람의 패괴, 그리고 패역과 대적을 모두 폭로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목적과 효과, 그리고 의의는 무엇입니까? 형제자매들은 순수하게 받아들였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에서 반드시 채취해야 할 절차입니다.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은 사람을 드러내고 온전케 하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자신을 알게 하고 또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효과에 도달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하시는 내막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지혜와 전능,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는 의의를 묵상하지 않고 또 여기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깨달으라 하고, 얻으라 하고, 알라고 하시는지를 더듬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줄 모른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교통한 것을 보면 어떤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나온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고 있지만 어떤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문자로는 없지만 말씀 속에 숨겨져 있고 말씀의 뜻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중국 사람의 속담에 “말을 들을 때 그 속뜻을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 속에 말씀이 있고 뜻이 있고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묵상할 줄 모르고 생각할 줄 모르고 체험할 줄 모르고 찾을 줄 모르면 이 말씀 밖의 뜻, 즉 말씀 속에 숨겨진 뜻을 영원히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도 적지 않게 읽었고 본분을 한 시간도 짧지 않는데, 진리를 아는 것이 너무 얕고 늘 글귀의 뜻에만 머물러 있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사람의 자질과 관계 있고, 그 밖에 사람이 묵상하고 생각하고 진리를 찾는 것에 서투른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방금 어떤 문제를 언급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해야만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진입해야 합니까? ”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체험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방금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였는데 형제자매들은 그런 정형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지적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까? 실제 정형이 맞지 않습니까? 모두들 맞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지적하신 정형은 한,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고 말세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모든 하나님 선민의 정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에서 지적하신 사람의 이런 정형은 사람의 패괴 유로가 아닙니까? 사람의 관념 상상이 아닙니까? 나중에 생기는 결과가 무엇인지 모두 보았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 저를 심판하고 지적하시는 말씀이기에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여기며 받아들인다면 또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저는 무엇을 갖추어야 합니까?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이런 패괴 유로와 패괴 근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한 동안 진리를 찾고 구하기만 하면 효과를 보게 되고 8,9년 믿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한 시간 묵상하고 “해결됐다. 하나님의 이 말씀의 진리를 얻었고 체험도 마쳤다.”라는 식이 아닙니다. 이렇게 간단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 말씀의 진리를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체험해야 그런 관념과 상상, 패괴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3,4년이 되어야 우리는 그런 문제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예를 들면, 한 가정에 아이가 열 살이 되었습니다. 부모가 그 아이에게 앞으로 결혼하고 가업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면 알아듣겠습니까?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하는 말을 맞다고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부모가 하는 말이 맞다고 인정할지라도 그 분량을 갖추었겠습니까?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런 분량을 갖추지 못하고 그가 부모의 깊은 뜻을, 즉 자식이 하루 속히 성장하여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결혼하여 자립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몇 년 걸려야 이해할 수 있고 알 수 있겠습니까? “애를 키워 보지 않으면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고, 그가 애를 키우고 가업을 일으킬 때는 열 몇 살 때에 부모가 하신 말의 고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최소한 십 여 년이 지나야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5, 6년에 될 수 있겠습니까? 열대여섯 살이라도 안됩니다. 반드시 가업을 일으킬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체험하려면 보통 말씀을 보기 시작해서부터 완전히 아는데 최소한 몇 년 걸려야 하겠습니까? 3, 4년에 체험했다는 것은 시간이 아주 적게 걸린 것인데 자질이 좋아 꿰뚫어 보는 사람이고, 길어도 7, 8년에는 무조건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1, 2년이면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어떤 일은 연한이 필요한 거니 연한이 걸려야지, 몇 일내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늘 저에게 “저에게 되도록 빨리 진리를 알게 할 수 없겠습니까? 몇 일내로 하나님 믿는 비결을 저에게 다 알려주십시오. 저에게 일 년만에 사역할 수 있게 하면 안 됩니까?”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에게 생명에 관련되는 일을 가지고 허풍을 떨고 있냐고 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과 이렇게 교통할 수 있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얼마나 많이 사역해야 하고 사람이 얼마나 오래동안 체험해야 하겠습니까? 30년은 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자질이 비교적 좋은 사람이라도 최소한 15년~20년을 경력해야 하는데 이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시간 개념이 없이 상상만으로는 안됩니다. 여러분 중에 일부 사람은 지식이 있고 자질이 확실히 높으며 인품도 좋지만, 이런 사람도 십 몇 년을 체험하지 않으면 설교하는 내용에 여전히 도리가 많습니다. 만약 십 몇 년을 체험한 후라면 실제적인 말이 많을 것이고 진실한 체험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 몇 년후 일부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거고 어떤 사람은 저보다 월등할 것입니다. 현재는 지식도 많고 언변도 좋지만 체험한 것이 너무나 얕습니다. 최소한 십 몇 년 후면 어떤 사람은 저보다 월등하게 될 것입니다. 단기간 내에는 시간이 너무 짧아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적어도 3~5년을 체험해야 합니다. 3~5년이 지나서 다시 보면 너무나 진실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사람의 정형을 투철하게 지적하셨으니 자신을 완전히 알고 말씀을 직접 체험하게 되며, 이 말씀에서 사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요구도 어느 정도 갖추게 됩니다. 최소한 3~5년을 체험하고 이 말씀을 다시 읽으면 특별히 친절하고 실제적인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에게 주는 도움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는 데 아주 깊은 의의가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진리를 교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았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더욱 의의가 있습니다. 최소한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에 도달할 수 없고 합하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되고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긍정적으로 하든 반면적으로 하든 어떻게 말씀하시든 효과에 도달하면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지혜로운 것으로서 단어 선택도 모두 의의가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방금 언급한 문제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심판을 체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에 도달할 수 있겠는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실행의 길만 얘기하면 소용이 없고 실제적으로 교통해야 합니다.

문제 (2) 현실 중에서 진리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자신의 행위 및 패괴 유로에 대해 많은 경우에는 해부하여 인식하고 당시에는 아주 중시합니다. 그러나 한 동안 시간이 지난 후 역시 옛 길을 갑니다. 하나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너희가 자기를 '애호'할 수 있고 자기를 귀중히 여길 수 있으며, 자기의 처소를 너무 중요하게 보면서 오히려 자기의 행위와 과오를 너무 희미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면 마음이 좀 조급합니다. “자기의 행위와 과오를 중시한다.”는 이 방면의 진리를 어떻게 실행하고 진입해야 하는지 상면에서 교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과 같이 답변: 이 측면의 진리는 어느 한 측면만 중요시하면 안 됩니다. 먼저 하나의 크고 결정된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것은 큰 목표입니다. 큰 목표 안에 또 사소한 원칙이 있고 생명 진입의 원칙이 있습니다. 생명 진입의 원칙에 이 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너희가 자기를 ‘애호’할 수 있고 자기를 귀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애호’는 따옴표가 있는데 ‘애호’ ‘귀중히하다’는 무엇을 말씀한 것입니까? “자기의 처소를 너무 중요하게 보면서 오히려 자기의 행위와 과오를 너무 희미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럼 처소는 어떤 기초위에 건립된 것입니까? 사람이 실제를 중시해야지 처소만 위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과오와 나쁜 행위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똑똑히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와 과오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시급히 해결해야 합니다. 그럼 과오와 행위를 해결하는 데 무엇이 필요합니까? 진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진리가 없으면 행위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진리 있으면 행위도 변해 과오가 자연적으로 없어집니다. 진리가 없으면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될수 없고,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의 뜻에 합하도록 변화시키려고 해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진리의 깨달음에 의하여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진리가 사람 안에서 주권을 잡고 진리가 위치가 있으면 그런 사람의 행위는 자연적으로 진리의 단속을 받고 진리의 규제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사람이 말하다가 부지중에 관점들이 유로 되고 부지중에 자신의 태도가 폭로됩니다. 그것은 무엇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까? 사람의 속셈과 관계가 없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좀 깨달으면 사람의 그릇된 태도와 속셈은 변화되고 진리에 의해 정결해집니다.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속셈과 태도가 비열하고 패역이고 수치스럽고 가장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보기만 하면 배반하게 되고 자연적으로 발아래에 짓밟게 되고 모두 뒷전으로 버리게 됩니다. 잇따라 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광명정대하고 단정하고 성실하고 진리에 맞는 표현인데 이는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그럼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까? 스스로 억제한 것입니까, 아니면 진리를 깨달아 변화된 것입니까? 진리를 깨달아서 가져온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전에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숭배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몇 년 후에 다시 숭배하던 사람과 접촉하더니 “와, 이 사람은 간사한 말만 하는구나, 너무 간교하고 위선적이며 가장을 하네”하면서 잇따라 그 사람을 증오하고 역겨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 몇 년이라는 시간때문에 사람에 대한 태도가 변한 것입니까? 계속 접촉하지 않아서 변한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변한 것입니까? 그것은 많은 진리를 깨닫고 가장하고 기만하는 거짓 모습을 분별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대한 태도가 변한 것이고 오늘 보더니 예전과는 달라진 것니다. 진리를 깨닫게 된 사람은 부지중에 변화가 생깁니다. 변하려고 하는지 않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변하고 싶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변하지 못하고, 변하지 않으려고 해도 진리를 깨닫게 되면 부지중에 변화가 생깁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들은 종교 목사와 장로를 숭배하면서 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도 다 맞고 높다고 여겼고 자신은 왜서 그렇게 말할 수 없냐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몇 년 체험하고 실제가 좀 있은 다음 다시 그 사람들의 말을 듣더니 “와, 전부가 텅 빈 논리이구나! 언변도 괜찮고 지식도 있는데 실제만은 없네. 실제가 없이 도리들을 말하면 외식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하면서 한눈에 꿰뚫어 보았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재능은 어디에서 배운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변화되었고 단번에 그를 꿰뚫어 보았습니까?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세요. 여러분들의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변하려 해도 소용없고 변하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상면의 설교교통에 근거해 정리함

해외 문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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