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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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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집 (a)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한 설교 교통

【139-A-7】

하나님은 “너희들의 믿음은 물론 칭찬할 만하지만 너희들의 의지력은 그리 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지력이 그리 강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진리가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일종의 기만과 일정한 한도로 하나님께 헌신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의지력이 길고 짧은 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습니까? 사람의 속셈과 관련이 없습니까? 그리고 사람의 믿음과 관련이 없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순복과 관련이 없습니까? 모두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더욱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의지력이 어떠한지는 간단한 일이 아니며 아주 많은 측면의 진리 실제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너희들의 의지력은 그리 강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문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헌신이 진심이 아니면 그 사람에게 큰 의지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긴 의지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진실한 순복이 없고 진실한 합함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충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를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그럴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네가 정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지낼 때에는 독선적이고 자신을 높이는 것들이 너의 언행에 조금씩 묻어 나올 것이고, 그에 따라 너의 사치한 욕망과 불복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마음도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에, 너의 교만이 갈수록 심해져 그리스도와 수화상극(水火相剋)이 될 때면 너의 본성은 전부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는 전반 과정입니다. 본성이 조금씩 점차적으로 깊어지고 심해져서 완전히 폭로하게 됩니다. 하루 사이에 모두 폭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만에 원수이고 마귀라는 것을 폭로하는데 그런 사람은 본성이 사악하고 너무 분명하기에 겉면을 보기만 하여도 좋은 놈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겉면을 보면 좋은 사람이지만 사실 그의 실질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동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천성이 비교적 교활하고 비교적 괴사해서 더욱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단순하고 마음을 열기에 폭로하는 시간이 좀 짧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고 내성적인 편이어서 폭로하는 시간이 좀 길어 각종 일을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이 폭로하는 시간이 길고 짧은 것은 다 구별이 있고 사람의 본성 실질과 성격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가 되면 너는 관념을 덮어 감출 수 없게 되고, 원망도 자연스레 ‘표출’하게 되며, 너의 그 비열한 인성도 다 드러나게 된다. 그때가 되면 너는 자신의 패역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러한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너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여기고, 사람에 대해 너무 각박하다고 여길 것이며, 만일 더 괜찮은 그리스도로 바뀐다면 완전히 순복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의 패역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드러나면 그리스도를 원망하고 그리스도께서 핍박해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좋고 상냥하고 사랑이 있으면 그렇게 많이 폭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생억지가 아닙니까? 생억지라고 합니다! 생억지를 부리는 사람을 형용하는 관용어가 있는데 어떻게 형용합니까?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억지를 부리고 늘 자기를 위해 궤변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사람에 대하여 너무 각박하다고 여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과 본성 실질의 폭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맞습니까?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쉽다면 사람의 본성 실질에서 폭로한 것은 거짓이겠습니까? 그것은 진짜가 아니겠습니까? ‘좀 좋은’ 그리스도라면 사람의 어떤 패괴는 폭로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패괴가 없다고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본성이 좋습니까?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말해보십시오. 어떠한 그리스도든지 우리의 본성 패역을 모두 폭로하게 한다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안에 숨겨져 있게 한다면 좋겠습니까? 모두 폭로하면 좋다고 여깁니다. 왜 폭로하면 좋습니까? 쉽게 자신을 알 수 있어 패괴가 치료받을 수 있고 정결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폭로하지 않으면 영원히 자신을 알 수 없을 것이고, 자신의 패괴 된 진상을 꿰뚫어 볼 수 없어 패괴도 영원히 치료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어떠한 그리스도가 좋습니까? 우리를 구원하는데 유리한 점이 있습니까? 호랑이를 유도하여 산에서 내려오게 하고, 늑대를 유도하여 굴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 그리스도야말로 좋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높고 크고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는 그리스도라면 우리의 그런 패괴와 패역과 대적이 폭로될 수 있겠습니까? 폭로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패역 본성을 모두 폭로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 사역과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정결케 하는 데에 이롭지 않겠습니까? 다들 이롭다고 합니다.

우리는 패괴된 인류의 몸에서 한가지 공동한 약점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의 패역과 패괴가 얼만큼 드러나야 우리는 그만큼 알고 시인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은 늘 시인하지 않고 더욱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공동한 약점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그래도 비교적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는 사람이고 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지가 있는 사람이라야 그만큼 할 수 있습니다. 이지가 없는 사람은 본성이 폭로되어도 시인하지 않고 우발적인 특수한 상황이지 보통 상황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하고, 그런 특수한 상황도 핍박해서 나온 것이고 자신의 원 모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폭로한 것과 유로한 것을 그 자신도 알지 못하니 가끔 그렇게 한 것이라고 여기며 자신의 본성 실질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사람은 모두 사실을 보지 않으면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공동한 약점입니다. 저도 이렇게 체험해 왔습니다. 패괴를 얼마 만큼 유로해서야 시인했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만약 유로하지 않으면 자신이 아주 좋고 일반적인 사람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 인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훈계하고 폭로하면 “와, 저는 마귀고 사탄입니다. 저는 적그리스도이기에 마땅히 제명되어야 하며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들이 진짜입니까? 거짓입니까?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허풍치는 것입니까? 정말로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면 저보다 낫고 투철하게 안 것입니다! 허풍치는 것이라면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칭하는 것이고 외식하는 것이고 바리새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습니까? 제가 그 사람을 훈계하고 악행을 폭로하기만 하면 자신의 뺨을 치면서 “저는 마귀이고 사탄입니다.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남이 보게 되면 “와, 말하기도 쉽지 않은데, 참 대단하네요. 말하면서 뺨도 칩니다. 이런 걸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거라지요. 진실함을 볼 수 있네요!”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속임수에 넘어갔다, 대단히 어리석다고 하니 그 사람은 어찌 어리석다고 하느냐고 합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어느 점이 마귀 사탄이고 어느 말이 마귀 사탄의 말인지를 말해보라고 하세요. 무조건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에게 자신이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 자신의 인성은 어떤지, 자신이 사람인지, 인성이 있는지, 양심이 있는지를 묻고 그것을 알려달라고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인성이 어떻냐고 물으면 그런 사람은 잠잠해집니다. 자신이 인성이 없고 짐승이라고 말하지 않고 늘 “마귀 사탄”이란 말로 기만하고 가장해서 속임수로 고비를 넘기려고 합니다. 그것은 속임수가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실제가 아니고 큰소리며 실질과 진상을 감춰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한 일이 너무 비열합니다. 저는 인성이 없습니다. 너무 양심과 이지가 없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비교적 실제적인 말입니다. 자신이 마귀 사탄이라는 말로만 요약하고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고, 인성에서 제일 비열한 곳이 어디인지 말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기만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말하기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모두 인성측면에서 가장 비열한 점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의 돈을 훔쳤다면 “아, 이 일은 비열해서 언급해서는 안되, 입을 열 수 없어.”라고 하고, 남을 강간했다면 “아, 사람에게 빚졌어. 입을 열 수 없어. 이 일을 언급해서는 안돼!”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이런 부류의 잘못과 패괴를 검토하고 반성하라고 하면 그저 “아이고, 저는 마귀 사탄입니다.”라는 말만 하면 끝입니다. 그것은 덮어 감추는 것이 아닙니까? 마땅히 어떤 말을 해야 비교적 진실하고 실제적인 사람입니까? “오늘에야 제가 인성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짐승입니다! 저는 남의 돈을 훔치고 남의 여인(아가씨)을 강간했습니다. 저는 과부를 속이고 가련한 고아를 이용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런 비열한 일들을 여러 사람앞에서 폭로한다면 그런 사람을 성실하고 진정성이 있게 자신을 알았다고 합니다. 너무도 비열하여 말하기 거북한 일일수록 더 공개하는 사람은 용기가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에 대해 정말 탄복합니다. 패괴를 말하면 “저는 마귀입니다. 사탄입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속이려는 것입니까? 말하기 거북한 말은 왜 하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입은 육신의 형상이 무었 때문에 너무나도 평범하고 정상적인지를 알고 있습니까? 모두 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어떠한 육신이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 사역을 하기에 가장 적합하겠습니까? 높고 큰 형상이겠습니까 아니면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형상이겠습니까? 어떤 형상이 좋겠습니까? 모두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형상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면 좋겠습니까 나타내지 않으면 좋겠습니까? 모두 나타내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이 평범할수록 정상일수록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수록 사람을 드러내기에 더 유리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조금도 나타내지 않을수록 하나님의 지혜를 더 나타냅니다. 최종에까지 체험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아주 많은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고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남과 유로를 보고 아주 많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점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제가 방금 말한 세 측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종에 어느날엔가 어느 정도로 체험하고 나서 하나님, 즉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발표하신 모든 말씀이 다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성육신의 하나님은 전능하고 지혜로우셔 마침내 한 무리 사람을 온전케 하고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람을 믿는다고 말할수록, 그런 사람들은 더 힘을 내서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할수록 그런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일수록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공격하며 논단할수록 그런 사람들은 더욱 따르며 그분께 더욱 충심하고 순복합니다. 이는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심합의 (同心合意)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언제든지 그런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서 있으며 사탄에게 공격당해 넘어가지 않고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으며 끝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패괴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세 사역이 최종에 온전게 하고 얻은 한 무리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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