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A-4
【139-A-4】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어떤 결말이겠습니까? 모두 훼멸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시는데, 그럼 그런 사람들이 어떤 결말이겠습니까? 훼멸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들은 어떤 결말이겠습니까? 틀림없이 구원 받고 살아남아 하나님 나라에 이끌려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려면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합한다’고 하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하시든지 다시는 관념이 없고, 패역이 없고, 대적이 없이 모두 순복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신다면 또 관념이 생길 수 있고 논단할 수 있고 대적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한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논단하고 하나님을 정죄한다면 그 사람도 논단하고 정죄하고, 큰 붉은 용이 먹칠하고 모독한다면 그 사람도 따라서 먹칠하고 모독한다면,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그리스도께 대적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와 적이 된 사람인 바, 결말은 멸망으로서 큰 붉은 용과 같이 훼멸됩니다. 이제는 분명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럼 저는 그리스도와 어떻게 합해야 합니까? 저는 자신의 관념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근거 없는 풍문에 귀를 기울이기를 좋아해서 자신의 관념과 맞지 않는 일을 들으면 안에는 관념이 있고 논단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는데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 너무 적으면 틀림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대적과 패역이 아주 많을 것이고, 진리를 아는 것이 많으면 그리스도에 대한 순복과 시인도 많을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발표한 모든 진리를 다 알게 되면, 그리스도에 대한 순복이 완전해지고 훨씬 더 진실집니다. 그때 진실로 그리스도께 순복할 수 있고, 진실로 그리스도께 경배드릴 수 있으며,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이고, 인성을 지닌 하나님이며, 진리의 화신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와 완전히 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구원 받은 사람이고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은 모두 천년하나님나라에서 왕권을 잡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시대에서 왕권을 잡고 철장으로 열국을 관할할 것인데, 그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것이 아주 적고, 얻은 진리가 아주 적은데 인간성은 괜찮아 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과 말씀에 아무런 관념이 없고, 대적하는 것이 없다면, 그런 것을 정말 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합한다는 것은 일을 보는 관점에서 서로 일치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서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인해 진리에 부합되는데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진리를 아는데 도달한 효과로 비롯된 것인 바,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어느 정도이면 일을 보는 관점도 어느 정도까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을 보는 관점이 모두 달라졌다면 진정한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있게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지내고 대화하는 데에서 관점이 완전히 일치하게 됩니다. 한 좋은 사람이, 설령 그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견해가 없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이 관점이 없다면 진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본다면 그런 사람은 진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말하는 관점이 진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그가 일을 하는 원칙이 진리 원칙과 같지 않으므로 또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인성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는 어떻든 말하지 않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도대체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이 맞는지를 여러분은 보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 가운데 세우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와 합한다는 것은 사람이 진리를 아는 정도에 근거하여 확정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설령 일을 하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은 역시 죽은 나무 토막이고 영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그리스도와 합하는 데에 도달하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반드시 그리스도가 발표하신 모든 말씀을 잘 먹고 마시고 상고하여 그리스도가 발표한 말씀에서 훨씬 더 많은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와 합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설령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을 처리 하는 데에 원칙이 있어 하는 일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고, 진리에 부합됩니다. 그 사람이 한 일 자체가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십시오. 그리스도와 합하는 데에 도달하려면 일함에 있어서 있어야 할 원칙은 누구도 회피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십시오, 일하면서 말하지 않고도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가 있으면 마찬가지로 할 수 있고, 진리가 없으면 설령 말하지 않는다 해도 실행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드러내는지 안 드러내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고,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근거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안다면 틀림없이 원칙에 맞는 일을 할 것이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와 합할 수 있는 데에 도달한 사람들은 다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지 인간성이 좋고 무골호인인 그런 사람들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늙은 중이나 늙은 여승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인간성이 좋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데 하나님과 합할 수 있겠는지를 알아보십시오. 모두가 안된다고 합니다. 왜 안되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 진리가 없으므로,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언제나 진리를 교통 하지 않는 사람은 한 평생을 믿어도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설교 교통을 듣기만 하면 흐릿하게 잠만 자고, 하나님 말씀을 보면 잠드는 그런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허리멍덩한 사람입니다. 흐리멍덩한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설령 그리스도를 만나고 관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합하게 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봅시다. 『사람은 모두 예수의 참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모두 예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나는 어떤 형제자매든지 예수를 만나고 싶지 않다거나 예수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람의 소망입니다. 사람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예수를 만나기 전, 즉 너희가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너희는 예수가 어떤 모습일지, 말씀은 어떻게 하실지, 어떻게 생활하실지 등등의 매우 많은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정말로 그를 만날 때에는 너희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텐데, 그 원인은 무엇인가? 너희는 알고 싶은가?』라고 하셨는데, 알고 싶습니까? 다 알고 싶어하니, 우리 아래로 더 읽어봅시다. “물론 사람의 생각을 홀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리스도의 실질을 바꾸려는 생각은 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실질은 신성이고, 진리입니다. 그리스도는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이고, 길이고, 생명인데, 그럼 진리가 없는 사람이 그분을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몇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합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뭐라고 했습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반 마디도 많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말이 통하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으면 그리스도와 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합할 수 없겠습니까? 그것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웬 일입니까? 공통언어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통언어가 없다면 한 마디만 말해도 견해가 갈라져 분쟁이 생깁니다. 관점이 일치 하지 않아 쉽게 변론을 일으키고 쉽게 논쟁을 일으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도 많든 적든 진리를 좀 안다면 그리스도께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 그리스도가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을 물으신다면 “저는 꿰뚫어 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할 것이고, 그리스도가 또 말씀하시면 순복하는 마음으로 듣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 대항이 없고, 패역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사람은 항상 터무니없고 오만 자대하고 독선적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가 발표한 진리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서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다고 여기면 관점을 발표하여 자신의 견해와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그리스도께 높게 보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드러낸 결과 그리스도께서 보시더니 더욱 역겨워 합니다. 그것은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기미가 드러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 앞에서 손짓 발짓하며 연기를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대항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전문가 앞에서 재주를 뽐내듯이 손짓 발짓하며 뭘 연기하는 것입니까? 마귀 사탄을 연기하는 것입니까? 뭘 알고 있습니까? 누구에게 연설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께 설교를 하고 자신을 나타내려는 것입니까? 큰 문제입니다. 토박이 말로 해석한다면 그것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전문가 앞에서 재주를 뽐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실질을 바꾸려는 생각은 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사람이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실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황당무계한 논리와 사람의 관념 상상을 들으신다면 말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아시고 반감을 느끼십니다. 만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께서 그래도 이지가 조금 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그런 사람과는 말도 몇 마디 건네실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의 그따위 학식을 나타낸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람을 혐오하실 것이고, 그런 것을 모두 터무니없는 논리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직도 뽐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몇 푼 되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따위 헌 물건 짝이 값이 있기나 합니까? 진리입니까? 진리의 그림자도 안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를 보면 아주 잘 생긴 것 같습니다. 풍채가 당당하고,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고, 아주 우아한 것 같지만, 뱃속에는 오히려 터무니 없는 논리와 허튼 소리만 가득할 뿐입니다. 이제는 얌전해졌을 것입니다. 맞습니까? 심판을 받은 거죠, 제멋대로 제 자랑을 하다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신선으로 여기고 성인(聖人)으로 여기지만, 그리스도를 신성의 실질이 있는 정상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상상으로 그리스도를 신선이나 성인으로 여긴다면 맞겠습니까?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만약 그런 상상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틀림없이 관념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본래 신성 실제가 있는 정상적인 사람인 것을 생각지 못하고 뜻밖에 만나게 된다면 “아, 아주 평범한 사람이네요. 이런 사람이 도대체 그리스도가 맞을까요? 그가 어떻게 하나님일 수가 있나요?”라고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관념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원래 그리스도를 성인으로 신선으로 상상했던 사람이 보통 사람이었으니 즉시로 관념이 솟아 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상상으로 그리스도를 보고 실패하는 원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신성 실질이 있는, 외모가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가 외모는 평범하고 정상이지만 그분은 진리 실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는 외모로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되고 바다 물은 저울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관점이 조금 있다면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보고 관념이 생기고 그리스도를 대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이지가 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나깨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하나님과 적이 되고,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의 잘못이 아니란 말인가? ” 관념 속에서 상상하는 사람은 과오를 범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너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너희의 믿음과 충성심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는데 ”, 많은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믿음이 있고 또 하나님께 충성심이 있으므로 충분히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막연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만 있다면 정말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만 갖춘다면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데, 무엇에 근거한 것이겠습니까? 믿음과 충성심은 하나님이 칭찬받는 조건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대표할수 있겠습니까? 역대 이래 성도와 사도는 모두 믿음과 충성심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순직까지 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왜 자격이 없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인식한 사람이 아니었고, 성정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없다면 진리를 아는 것이 너무 얕아서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이 없습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 크고 작고, 충성심이 있고 없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과 충성심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대표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대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과 충성심만 있는 그런 사람을 진리 실제가 있고 구원 받는 기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충성심만 갖춘 사람을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설령 큰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해도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진리가 없고 성정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진리를 교계의 사람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막연한 하나님만 믿는 한, 영원히 알 수가 없습니다. 헛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