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낭송)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139집 (a)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한 설교 교통

【139-A-2】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한 이 말씀의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 자체가 바로 진리이고 사실입니다. 이 부분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매우 중요합니다. 왜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상고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정말 어떻게 믿어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고 비로소 구원받아 온전게 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특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이긴자 되고 싶어 하는데 이긴자의 기준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제대로 깨달은 것 같지 않다고 단정합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이 바로 그 방면의 진리에 관련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사람이겠습니까? 그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말세에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한 무리의 사람을 온전게 하시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의미입니까? 즉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약 진리를 모른다면 그 일을 꿰뚫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어느 정도까지 믿었습니까? 진리와 생명을 얻었습니까? 어떤 효과에 도달했습니까? 하나님께 온전게 된 사람이 맞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보통사람들은 말할 엄두를 못내고 대답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정말로 문제의 실질을 꿰뚫어 보고 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준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라고 말할 사람들이 아주 많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런 사람은 온전케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확실하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나는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죄를 적게 짓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고 하기는 하는데 그 말의 근거가 뭔지를 물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를 물으면 똑같이 대답하지를 못합니다. 현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이 하나님께 온전게 된 것인지, 하나님께 온전게 된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게 되면 절대로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준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안 짓고가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온전게 됐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즉 무조건 하나님께 순복하여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셔도 관념이 없고, 논단하지 않고, 대적하지 않으며 모든것을 순복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이고 온전게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됐다’를 가장 현실적인 말로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 말씀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게 되는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리스도와 합하다’, 이 말을 어떻게 인식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와 합한다는 것을 해석하려면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하나님임을 시인하고 언제든지 의심하지 않고 또한 끝까지 따른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이 말은 마치 이치 같고 그다지 실제적이 못됩니다. 그럼 대체 뭐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까? 또 어떤 사람은 “난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역하든 관념이 없을 것이고 다 순복 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어떻습니까? 실제적인 느낌이 있습니까? 말은 맞지만 체험해서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상상해서 나온 것입니까? 만약 상상해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도 역시 이치이고, 체험해서 나온 것이라면 좀 실제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해보십시오, 그리스도께 관념이 없으려면 쉽겠습니까? 다들 쉬운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 쉽지 않겠습니까? 체험이 있는 사람은 근거를 말하고, 체험이 없는 사람은 명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이치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일이 그리 쉽겠습니까? 배우자를 찾는 사람을 보십시오. 부부가 한 집 식구가 되어 서로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거의 99%의 부부 사이가 다 깨진 상태입니다. 부부간마저 맞지 않는데 그럼 부자간은 맞을 수 있겠습니까? 모녀간은 맞을 수 있겠습니까? 다 맞지 않습니다. 온 패괴 인류가 다 맞지 않습니다. 마귀와 마귀가 맞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들지간에는 서로 더 잔인하게 죽이고 권위를 다툽니다. 중국 고대 황제를 보십시요. 부자지간에 서로 학살하고, 형제지간에 서로 학살하고, 자매지간에 서로 학살했는데, 그건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한 최고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께 순복할 것을 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는데 최종에 어디에 도달하겠습니까? 어떤 목표에 도달하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한다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만약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리가 맞습니까?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은 그저 한마디 간단하고 실제적인 보통 말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교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진리를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영원히 인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부정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대적까지 하기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모두 적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 하셔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면서 사람에게 요구한 최고의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합하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 무조건 순복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무조건 순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영원히 하나님과 합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상상한 하나님, 막연한 하나님과 어떻게 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속 없는 말이고 모두 비현실적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시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치 교계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처럼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정말 예수님과 합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예수님과 합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속에 전혀 지위가 없고, 그들은 종래로 예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만약 예수님이 정말로 그들 중에서 부활하여 나타났다면 그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요? 벌써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정확히 말한다면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이고 ‘주 예수’이 세 글자를 믿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설교하고 말씀하고 역사하신다면 벌써 도망쳤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떡으로 배불리고 주님을 속이고 주님을 이용해서 천국의 복을 누리려는 사람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발표한 모든 진리를 듣고 나서도 그들은 모두 거절하고 부정하며 대적했는데, 그것은 뭘 증명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주 예수님과 합하지 못하고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와 합했는지를 무엇으로 확인해 봅니까? 주로 사람이 진리에 대한 태도로 봅니다. 진리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 순복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리스도에 대해 순복할 수 있고 경외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리에 관심 없다면 절대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외모는 인성이지 신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외모만 본다면 그리스도를 알아 볼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외모는 인성입니다. 그의 신성은 인성에 숨어 있다가 말씀하고 사역 할 때만 드러나고, 아니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첫째,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패괴이고, 다 사탄의 성정이고, 다 사탄의 독소와 사탄이 일을 보는 관점 그리고 사탄의 논리법칙인데, 만약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지낸다면 합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합할 수 가 없습니다. 일을 보는 관점이 다르면 틀림없이 논쟁하고 대항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가장 관건적인 문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외모가 신성의 유로가 없고 신성의 느낌이 없기에 사람은 그분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이라는 느낌을 조금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외모만 봐서는 아무도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신성의 실질이 있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란 것을 알아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처럼 한 마디만 말해도 바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다면 사람은 보자마자 “우와,한 마디만 말해도 바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 났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맞아요.”라고 하면서 다 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만약 신성 실질이 외모에서 유로하지 않는다면 외모는 그저 정상적인 인성이라 그처럼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성에서 사람은 아무리 봐도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성이기에 평소에 하시는 말씀도 모두 평범한 사람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은 전부 사람의 말인데 어떻게 하나님일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외모로는 인성밖에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의심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평소에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만약 설교하지 않고 사역을 하시지 않는다면 그분이 하시는 말씀도 인성의 언어뿐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을 보고 그분도 눈물을 흘리고 울기까지 했었습니다. 사람은 보자마자 “이것은 인성 표현이 아닌가? 그저 평범한 사람이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겉으로 하시는 말이 전부 인성의 언어이자 사람들은 더 쉽게 사람처럼 대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리스도와 접촉할 때 첫째, 쉽게 그분를 사람처럼 대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확실히 신성 실질이 있는 성육신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지 않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육신이 사람보기에 눈에 띄지 않고 용모도 출중하지 않고 위대하지도 않으니, 사탄 본성이 있는 사람은 교만하고 자대하여 그리스도를 얕보며 말합니다. “당신같이 키도 나보다 작고 용모도 나보다 예쁘질 못하고 입은 것도 나보다 기품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있어?”, 이것 보십시오. 사람은 그리스도의 외모가 보잘것 없고 눈에 띄지 않자 곧 바로 그리스도를 폄하하고 얕보고 경멸하는데 이것이 무슨 본성입니까? 이것은 사람의 교만한 본성으로서 사람에게 있는 사탄 본성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사탄 본성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사람을 봅니까? 먼저 키가 큰지, 잘 생겼는지를 봅니다. 만약 키도 크고 돈도 많은데다 잘 생기기까지 했다면 ‘엄친아’라고 하면서 존중하고, 그와 반대이면 깔봅니다. 어떤 사람은 저랑 같이 있으면 저의 키가 그보다 머리 반정도 작으니 얕잡아 보면서 말합니다. “당신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고? 내가 당신보다 더 웅장한데 성령은 왜 나를 사용하지 않지?” 나중에 어떤 상황에서 존중하게 되었습니까? 그 자신이 일을 하거나 본분을 한다면 되는게 없을 때, 자신보다 잘 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을 본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견해도 상대적으로 좀 좋아지고 비로소 탄복합니다. 사실 앞에서 탄복하고, 본분 앞에서 탄복하고, 진리를 교통하는 데에서 탄복하고, 실제 살아냄에서 탄복합니다. 보십시오. 사람은 굳이 겨루어 봐야 비로소 탄복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길고 짧음은 대봐야 안다고 한번 대봐서 길고 짧음을 알아야 고개를 숙입니다. 한번 겨루어 보지 않는 한 그런 사람은 늘 외모만으로 사람을 봅니다. 외모만으로, 즉 사람의 생김새 그리고 키로만 사람을 봅니다. 그건 사람의 사탄 본성이 아닙니까? 그럼 그런 사탄의 본성을 가지고 또 교만 자대한 성정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접촉한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패괴된 인류가 만약 몇년의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정상적인 인성에 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접촉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증오하고 혐오하고 역겨워하실 것입다. 만약 사람이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체험 했다면 정상적인 인성이 좀 있게 되어 사람을 존중할 줄 알게 되고, 아무나 맞는 말을 하면 진리에 순복할 수 있고, 설사 다른 사람이 틀린 말을 하더라도 정죄하거나 함부로 논단하지 않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을 갖지게 됩니다. 인성과 양심 이지가 정상적일 때 사람이 그리스도와 접촉한다면 하나님의 눈에 들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은 이 사람이 인성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너무 높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진리를 많이 알아야만 중시하는게 아니라 양심 있고 이지 있으며 말할 때 정상적이고 인성이 있다면 하나님쪽에서는 통과됩니다. 가끔 패괴를 좀 유로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이해를 해주십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제가 그리스도와 접촉하는 시간이 꽤 오래 됐고 그런 일은 제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패괴를 유로 했을 때 하나님이 저를 그렇게 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가끔 유로한 패괴를 용서 해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인성이 불합격이라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인성이 나쁘다면 반감을 느끼십니다. 만약 사람의 인성이 특별히 교만하고, 사탄 독소가 너무 많고, 사람을 폄하하고 공격하고 논단하고 항상 사람을 우롱 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증오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장 증오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악당 그리고 짐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은 너무 인성이 없으니 출교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그리스도와 합하려면 단지 정상적인 인성만 갖춘다고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진리를 알아야 하겠습니까? 성실한 사람에 관한 진리를 알아야 하고 말을 성실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진리도 알아야 하며, 피조물로서 서야 할 위치 그리고 사람이 갖추어야야 할 이지, 해야 할 본분, 져야 할 책임, 이런 측면의 진리를 모두 갖추어야야 합니다. 이래야만 사람의 양심, 이지가 합격 되어 하나님과 지내거나 접촉한다면 하나님한테 정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 말씀:139-A-1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 대한 설교 교통

다음 말씀:139-A-3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