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B-7
【137-B-7】
형제자매들이 제기한 문제를 듣고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문제 (1) 인솔자 일꾼들이 제가 궤사한 사람이어서 배양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걸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바로 힘이 쭉 빠지고 제가 본분을 하는 건 그저 효력을 하는 것으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상면의 교통에서 “효력하는 자는 다 좋은 놈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고, 머릿속에는 늘 “배양할 가치가 없는 궤사한 사람”이라고 한 말이 떠올라 너무 괴롭고, 기운도 빠지고 자포자기하는 마음까지도 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또 가책이 많이 돼서 이대로 나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 말이 계속 맴돌면서 정형이 반복됩니다. 스스로도 이러면 아주 위험하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진입해야 이런 상황에서 굳게 설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 심판과 폭로가 임하면 소극적이 되는데, 어떻게 말해야 소극적이 되지 않을까요? “자매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니, 배양할 사람이네요. 자매님은 궤사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아이를 달래듯 말하면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아이를 달래듯 그런 말만 하면 될까요?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진 사람에게 반대되는 말, 달래 주는 말로 위로해 준다면, 소극적이 되지 않겠죠. 이렇게 사역하면 될까요? 안 된다고 하는 분이 있으시네요. 왜 안 됩니까? 그러면 효과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까요? 왜 안 됩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소극적이 되지 않아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기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시고, 사람의 패괴 본성을 해결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라는 것을 시인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하신 사탄 성정의 여러 가지 표현과 여러 가지 본성 실질을 유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매님에게만 있는 건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자매님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저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터득하지 못했네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하신 패괴 성정은 패괴된 모든 인류에게 다 존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였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패괴된 표현과 본성, 패괴된 진상은 사람마다 다 몫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인류의 각종 패괴는 누구에게나 다 존재합니다. 여러분들께만이 아니라 저에게도 여러분들과 똑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다만 겉으로 조금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확연히 드러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확연히 드러나는 나쁜 일을 했습니다.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든, 그 본성과 사탄 성정, 속셈은 다 같은 것입니다. 얘기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간음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행위로는 간음하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음란한 생각이 없을까요? 행위로는 도둑질하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탐욕스러운 생각이 없을까요? 진짜로 횡령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돈을 탐하는 생각이 없을까요? 다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런 상황이 없었던 것이고, 그런 지위나 환경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그런 지위나 환경이 있었더라면 저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못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도 8년이나10년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늘 강가에 서 있으면, 신발이 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말씀해 보세요, 사람에게 지위가 있으면 재물을 탐내지 않을까요? 명리를 향한 마음이 없을까요? 간음이나 음란을 범하기 쉽지 않을까요? 사람은 지위가 있으면 가장 잘 드러납니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인지는 그 사람에게 지위를 주면 몇 년이 안 돼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고, 원형이 철저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한 사람이 어느 지위에 있으면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몇년 동안 어느 지위에 있으면서도 지위로 인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나쁜 짓들을 다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그러면 이 사람은 상당히 괜찮다는 것입니다. 지위에 있으면서 정말로 그런 나쁜 일들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존경을 받을 만합니다. 저도 이런 사람에게 가장 탄복합니다. 지위가 없을 때, 이런 일 저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그런 조건이 없었거나 그런 적합한 상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직위도 없고, 생김새도 정말 잘생기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갈 여자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그 못난이가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성장(省長)이 되면, 품에 안기는 여자들이 없을까요? 품에 안기는 아가씨들이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생김새가 말이 아닙니다. 용모가 추하기 그지없어도 그 사람이 억만장자라면 품에 안기는 사람이 없을까요? 다들 있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재산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재산을 쟁탈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고, 어떤 나쁜 짓이든 다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패괴된 인류의 본성인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만약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만 근거해 “저는 이런 일들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한다면, 이 말이 성립될까요?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만약 정말 지위가 있어 여러 가지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 좀 설명됩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든지 다 탄복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이렇게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돈에 욕심이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그건 자신에게 지위가 없어 돈이 생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돈이 생겼어도 돈을 탐내지 않고 베풀어 줄 수도 있고, 부자가 되어도 베풀어 줄 수 있다면, 이것은 사람을 탄복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패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좋다거나 너무 훌륭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저는 예전에 제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었는데, 심판 형벌을 경력하고는 인식하게 됐습니다. 만약 저에게 예전에 지위가 있었다면, 저는 그 관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많이 탐했냐, 적게 탐했냐는 문제죠. 그리고 제가 여자를 막 만나는 그런 사람들과 비해도 꼭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몇 명을 만났느냐의 문제겠죠. 그때는 저에게 지위가 없었기 때문에 범하지 않았는데, 큰소리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때 범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정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임하면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실사구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의 진실한 정형을 폭로하셨으므로 받아들이고 순복해야지, 대적하거나 맞서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맞서면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은 모두 패괴된 인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예외인 사람이 있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아주 깊이 패괴되었다고 시인하는데, 어떤 사람은 왜 시인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순복하지 못합니까?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사람의 격, 마음씨, 진리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금방 “인솔자 일꾼이 말하기를, 궤사한 사람이어서 배양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것을 알았을 때, 바로 힘이 쭉 빠진다.”고 했는데, 설마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보다 더 엄할까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는 이보다 더 엄한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인류를 사탄의 후손이라고, 사탄의 종류라고 심판하셨는데, 자매님은 받아들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라고 시인한다면, 인솔자 일꾼이 자신을 궤사한 사람이어서 배양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왜 소극적이 되고 힘이 빠졌습니까?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이 말을 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였다면, 왜 사람의 한마디 말에 힘이 빠지고 소극적이 되겠습니까? 이건 무슨 문제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은 개의치 않아 하면서, 반대로 인솔자 일꾼의 말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며 마음에 둡니다. 인솔자 일꾼이 자신에게 배양할 가치가 없는 궤사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보다 더 잘 듣고 효과를 보는데, 즉시 소극적이 되고 김빠진 공처럼 힘이 쭉 빠집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오히려 인솔자 일꾼을 숭배합니다. 인솔자 일꾼의 말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 정도로 지위가 있고, 그 정도로 영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이런 사람은 아주 곤란합니다.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심판 형벌도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인솔자 일꾼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데만 신경 쓰고, ‘내가 인솔자 일꾼들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이미지이고 어떤 위치일까?’ 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맞겠습니까? 사람은 이런 일에서 아주 잘 드러납니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한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인식해 봐야겠어. 하나님 말씀에 패괴된 인류를 폭로하시는 진리가 이렇게 많고, 이렇게 많은 말씀들을 하셨는데, 나는 왜 마음에 두지 않았을까? 나는 왜 하나님 말씀에 마음을 쓰지 않는 걸까? 나는 항상 인솔자 일꾼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만 궁리하는데, 이건 명예와 지위를 너무 중요시 여기는 게 아닌가?’ 어떤 사람은 늘 인솔자 일꾼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인솔자 일꾼들이 자신을 발탁해 한자리 좀 올라서게 해 준다면, 목적을 달성한 겁니까?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상을 받고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속셈과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인솔자 일꾼이 당신의 주(主)입니까? 당신의 하나님입니까? 그들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당신을 높여 주고 당신을 쓰고 배양해도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습니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인솔자 일꾼들을 숭배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보실까? 내가 하나님 마음속에 지위가 있을까?’, 이런 데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주 위험합니다. 그 사람이 가는 길이 맞습니까? 그가 제기한 문제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은 인솔자 일꾼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이고,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인솔자 일꾼들이 자신을 배양하고 발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솔자 일꾼의 사역에 순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솔자 일꾼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런 사람이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위험합니다.
문제 (2) 인성이 괜찮고 진리를 추구하기 원하지만, 명예와 지위의 지배를 받아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환경에서 제 자신이 항상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게 드러나는 것을 보고, 제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여기면서도 또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며 정확하게 대하지 못하다 보니 본분을 할 때 속박을 받는데, 어떻게 실행하고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상면에서 교통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해 방식이 있고, 인식 방식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환경에서 자신이 항상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는 게 보여지니까, 자신은 실질이 나쁘다고 여기면서도 또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대하지 못하다 보니 본분을 하면서 속박을 받게 되는데,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고 사탄 본성이 있기에, 흔히 모두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길을 선택하게 되고, 모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기 전에는 모두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모두 곁길을 가는 잘못을 범할 수 있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잘못을 범할 수 있으며, 과오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과오들이 자주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흔히 있는 일입니다. 무릇 적그리스도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단 드러나기만 하면 도태되는 것이 아니고, 일단 과오가 있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어 반드시 도태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실 사람, 다시 말해 진리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모두 곁길로 간 적이 있었고, 과오가 있었으며, 패괴 유로가 있었습니다. 사역을 할 때는 저를 비롯해 모두 사람의 뜻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다들 맞다고 하시네요. 그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이 곁길로 갔다고 해서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여기는 것이 맞습니까? 이런 생각은 분명히 틀린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을 실질이 나쁘다고 합니까? 모두가 사탄의 본성이 있고 사탄의 성정이 있는데, 어느 누구의 실질이 좋습니까? 실질이 좋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거치지 않고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있을까요? 어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성령께서 특별히 역사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그 사람의 인식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길로 갔다고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에게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다 보니 본분을 하면서도 항상 속박을 받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왜 회개하지 않습니까? 왜 계속 잘못을 고집하려고 합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본 적이 없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나 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령의 계시고, 성령께서 음성을 발하신 줄로만 여기고, “일곱 영의 말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쓰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편 한 편 이 제목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지금도 그 원본이 모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금방 음성을 발하셔서 말씀하실 때는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지 못해 관념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어,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마치 선지자가 하는 말 같아요. 계시를 받았어요.” 언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셔서 성육신의 진리를 게시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황연대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어떻게 이렇게 눈이 멀었으면 하나님을 몰랐을까? 어떻게 이런 잘못을 범할 수 있을까?” 더욱이 또 하나님과 높고 낮음을 겨루었으니 너무나 비열했습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하고 추악했습니다. 이런 잘못들을 모두 범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다 죽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은 완전히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굽은 길을 얼마나 많이 갔든, 패괴를 얼마나 많이 유로했든, 하나님의 심판을 경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회개를 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하며, 진리에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어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철저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만 하면, 첫째로, 하나님을 논단하지 않고,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늠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다 순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과 관점에 맞지 않아도, 즉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고 우리를 정결케 하신 다음 다시 지옥에 버리신다 해도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조물주이시기에, 그분이 어떻게 하시든 모두 진리이고 다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해 이런 경외심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다 순복한다면, 이것은 성정이 변화된 표현이 아닐까요? 사람에게 이런 성정 변화의 증거가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더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논단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모두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는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것이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며, 진리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찾고 구하기에, 논단하지 않고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온전케 된 것입니다. 바로 온전케 된 사람입니다. 온전케 되지 않은 사람은 이런 일들에서 늘 잘못을 저지릅니다. 한 번 대적하고는 다음번에 또 범하고, 두 번 대적하고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번에 또 범하면서 범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것이며,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온전케 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논단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설사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시인하며, 최소한 사람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임을 시인합니다. 겉으로는 책잡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만약 물고 늘어진다면 죽을 것이고, 그러지 않는다면 당신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논단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영원히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은 진리이시기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그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면 사람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보면,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당신이 보세요, 어떤 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주권 잡는데, 왜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가 존재합니까?” 이런 사람은 영이 통하는 겁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들의 존재를 일찍이 안배해 놓으신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안받침물이 되는 자들이고, 효력하는 자들입니다. 그럼 알곡과 쭉정이는 왜 일찍 갈라놓지 않았을까요? 이는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그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자신의 실질이 좋지 않다고 여긴다.”라고 말했는데, 실질이 나쁘다는 건 무얼 말합니까?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 드러났는데, 그럼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까? 관념이 안 생길 수 없습니까?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없습니까? 자포자기하지 마세요! 만약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다면,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진리를 교통하든,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진리에 순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도태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자신의 실질이 좋지 않다고 여겨도 그건 소용없습니다. 어떤 것을 실질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합니까? 가장 주요한 것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진리에 순복할 수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는 실질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진리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 사람이 “저는 정말 실질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마 정말로 끝장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에 속한 자이기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전에 당신의 본성 실질이 좋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만약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복할 수 있다면, 이제는 변화되고, 사탄의 본성과 사탄의 성정이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지금 자신을 규정할 때인가요, 아니면 진리를 찾고 구하며 받아들일 때인가요? 다들 진리를 받아들일 때라고 하십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사 맞고 약을 먹고 나서 정상적으로 밥 먹고 정상적으로 활동하세요.” “저는 실질이 좋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무슨 실질이 나쁩니까? 주사 맞고 약을 먹고 나서 밥을 먹고 운동해야 합니다.” “저는 실질이 좋지 않으니 운동 안 할래요. 저는 실질이 좋지 않으니 밥도 안 먹을래요.”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정신병이 발작한 것입니다. 이러면 큰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쉬울까요? 항상 자신의 실질이 좋지 않다고 규정하지 마세요. 어떤 실질이 좋지 않습니까? 사탄에게 패괴된 후 누구에게 정상 인성이 있습니까? 만약 정상 인성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은 당신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인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과 정결케 하심에 순복할 것인지, 진리를 실행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계속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며 자신을 규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계속 떠들어 대면서도 자신이 이것을 진리라고 시인하는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진리에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선택이 없다면, 그것은 실질만 나쁜 것이 아니라 아마 신경에도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 형제자매는 소극적이 되지 마세요. 제가 한 말이 아마 귀에 좀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진리를 찾고 구하면 됩니다. 제가 귀에 거슬리게 말했을지라도 악의는 없습니다. 단지 여러분을 자극해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고 항상 자신을 규정하지 말게 하려는 뜻입니다. 듣기 싫었다면 양해하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말을 급하게 합니다. 직설적이고, 아무 말이나 다 해 버리는데, 타고난 성격입니다. 비록 생명 성정은 좀 변화되었지만, 성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생명 성정 변화는 성격이 변화되었는지로 가늠할 수 있습니까? 생명 성정의 변화와 성격은 관계가 없습니다. 성격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격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의 용모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