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B-2
【137-B-2】
지난번 예배에 이어서 네 번째 단락을 교통하겠습니다.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은 심판 사역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하시려는 사역인데,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셔야 할 사역입니다. 이런 사역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인류 가운데서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러한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 대신할 수 없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아마 “율법시대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해 하신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심판 사역은 왜 사람을 사용해 하실 수 없나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지 않을까요?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실 때에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셨습니다. 하지만 말세의 심판 사역은 무엇 때문에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지, 여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은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심판 사역의 정의를 알려 주셨습니다. 심판 사역은 어떤 성질의 사역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심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렇게 터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 사역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다.’ “진리로 인류를 정복한다.” 다 같이 곰곰이 묵상해 봅시다. 사람은 왜 이 심판 사역을 할 수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어 진리를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식하고, 이렇게 터득해도 맞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고, 진리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표하시고 심판 사역을 하시면 안 될까요?”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안 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어떤 사람은 아마 선지자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선지자도 역시 사람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으니, 선지자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으로 심판 사역을 하면 안 될까요? 다들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 안 될까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과 하나님 자신이 언제 어디서나 진리를 발표하시는 효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자신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아닌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신분으로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언제 어디서나 진리를 발표하셔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유로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이런 효과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은 하지만 그 자신이 진리가 아니기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유로할 수 없는 데서 생기는 이런 효과, 이 둘의 효과에는 어떤 구별이 있을까요?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에 대해 참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는 여기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고,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도록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데, 왜 안 될까요? 왜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할까요?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신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뜻인즉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이 사역을 하면 적합하지 않기에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으로 심판 사역을 하신다면, 될까요? 왜 안 될까요? 그렇게 하면 어떤 방면의 효과에 도달하지 못합니까?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선지자를 사용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면 단지 전달한 하나님의 그 말씀에 대해서만 조금 인식하게 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에 대해서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하지 못할까요? 선지자 그 자신의 실질이 인성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인성의 실질인데, 신성의 소유소시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절대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보시면, 비록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을 좀 교통해 낼 수는 있지만, 제가 유로하는 것은 여전히 인성의 소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진리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제가 유로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소시이지,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 아시겠죠? 비록 제가 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유로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아예 미치지도 못합니다. 이런 점에 근거하여 우리는 선지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든지 선지자의 실질은 인성이지 신성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유로할 수 없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도 유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는 신성의 실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 사역을 하실 때 어디서나 수시로 진리를 발표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유로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에게서는, 우리가 그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효과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설령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아주 유한하죠. 아주 유한한 것입니다! 지금 이 일에 대해 꿰뚫어 볼 수 있겠죠?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신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셔서 율법시대의 사역을 하셨으니, 당연히 말세의 심판 사역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실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우리가 이 점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지만 교계의 사람들은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많은 진리에 대해 모르겠습니까! 우리는 그들보다 너무나 많이 얻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이 책은 전부 진리의 발표인데, 하나님께서 창세하신 이래 인류가 하나님의 몇 단계 역사를 경력하면서도 여태껏 얻은 적이 없었던 진리이며, 여태껏 모르고 있었던 진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고 있기에 이런 진리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두터운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말씀해 보세요, 교계에 있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아주 많은 목회자들은 다 학문도 있고 지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말세의 역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하신 것을 발견할 수 없을까요? 왜 이런 사실을 보지 못할까요?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마태복음 13:15, 사도행전 28:27)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성경을 안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불쌍하게 보이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진리 실제가 좀 있는 사람이 진리를 교통하고 설교로 공급을 한다고 하면, 저는 교계의 목사보다 백배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교계 목사가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안경까지 쓰고 강단에 서 있으니 “와, 멋있네! 우리 목사님, 기품이 있으셔.”라고 하지 마세요.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설교 내용에는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은 다릅니다. 겉모습은 번듯하지 못해도 진리 실제 몇 마디만 교통하면 교계 사람들이 놀라워합니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며 “이 말씀은 어디에서 온 거예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왜 우리가 믿는 것과 다르죠? 우리가 말씀 나누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이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궁금해합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죠? 똑같이 성경을 읽고, 똑같은 참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렇게 실제적인가요? 그 인식이 왜 우리보다 더 깊은가요?”라고 말합니다.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한 효과입니다. 그들은 심판 형벌을 경력한 적이 없기에 성경을 100년 동안 읽으며 연구한다고 해도 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성경을 가장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지만, 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계속 아버지 하나님을 높이고 ‘삼위일체’를 높였습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할까요?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 알았더라면 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교계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논리, ‘삼위일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바로 종교인사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다 보니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생긴 것입니다. 심판 형벌이 우리 몸에서 도달한 효과는 너무나도 뚜렷합니다. 우리가 오늘 그 주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니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