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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집 (a) 하나님 말씀 에 대한 설교 교통 (1)

【136-A-3】

“무릇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에 속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일상 생활에서 어떤 일이 닥치거나 혹은 본분하는 중에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할까? 어떻게 실행해야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까?”라고 하는데, 이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구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구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모든 일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인지, 어떻게 실행해야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한다는 뜻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자주 말하는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일로, 우리에게 실행의 길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다면, 누구에게 순복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어리둥절하여 “어머니께 순복하자니 아버지가 싫어하고, 아버지께 순복하자니 어머니가 싫어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당신 아버지든 어머니든 상관없이 진리에 부합되는 말을 하는 그 사람에게 순복하고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배우자를 찾았습니다. 만약 배우자가 그에게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한다면, 그는 속으로 궁리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해야 할까, 아니면 배우자에게 순복해야 할까? 내가 만일 하나님께 순복하게 되면 배우자는 나와 절교하자고 할텐데, 그럼 우린 헤어져야 하고, 만일 배우자에게 순복하게 되면 하나님을 저버린 죄로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질텐데, 도대체 누구에게 순복해야 할까?” 이럴 때는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순복하면 됩니다. 배우자에게 순복한다면 그 사람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합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실행해야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까?”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은 시간이 없어! 만일 내가 돈 버는 일에만 힘을 쓴다면, 대재난이 닥칠 때 목숨을 잃게 될 거야,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어? 맞아, 지금 당장 하나님을 믿어야 해, 아무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방면에서는 어떻습니까? 낮에는 일해서 돈 벌기 바쁘니 그저 여가 시간에 하나님을 믿는데, 그 어떤 체험도 없습니다.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피곤하여 밥을 먹고 나면 눈이 저절로 스르르 감겨서 잠이 들게 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따르며 믿는다고 하더라도 얻는 것은 너무나 적고 진보도 아주 느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저도 체험해 봐서 잘 압니다. 사람이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정력은 10시간 정도인데, 만일 그 정력을 일하고 돈 버는 데에만 다 쓴다면 끝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어도 얻는 것이 너무 적고 진보가 너무 느려 지체되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인데, 정확히 더듬은 후에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배우자를 소개해 주면 “난 결혼할 나이가 됐어, 결혼 상대가 아주 마음에 들어,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시험이 임하면 또 어리둥절해 합니다. “난 배우자를 찾아야 할까 ? 아니면 찾지 말아야 할까? 만일 배우자를 찾는다면 아주 즐거울 것이고, 한평생 헛되게 산 것이 아니야, 하지만 배우자를 찾아서 내 정력을 다 그에게 쓰게 된다면, 하나님을 믿는데는 쓸 정력이 없잖아, 그러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육체만 잠깐 즐거울 뿐이야” 지금 배우자를 찾는다면 어떤 결과가 있게 됩니까? 배우자를 찾으면 즐겁긴 하겠지만, 결국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자신의 앞날을 망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배우자를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집에서는 어찌 사람들이 배우자를 찾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지요?”라고 하는데,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들이 배우자를 찾는 것에 대해선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 누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까. 그것은 개개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왜 당신에게 스스로 선택하라고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지금은 비상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대재난이 일어날 때이고 재난이 곧 닥치게 됩니다. 인간의 결말과 귀착지를 결정할 때가 다가왔으니 비상시기인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비유로 묘사하면 적합합니까? 지금 전쟁이 터져서, 한창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난 배우자를 찾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라고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이 치열한데 배우자를 찾을 때입니까? 그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하나님 사역이 가장 긴박하고 가장 관건적이며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시기에 속하는데 바로 비상 시기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시간과 정력이 필요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저 이름만 올려놓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만 올려놓는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과 정력이 필요하며 또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배우자를 찾는다면 그건 바로 골칫덩어리로, 혹을 붙인 격이고 짐 보따리를 짊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배우자를 찾을 때, 만일 믿지 않는 상대를 찾았다면 큰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닥쳤을 때는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찾은 배우자가 아주 사납습니다. 그가 자신을 매우 엄하게 단속하므로 예배드릴 시간마저도 없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가 허락하지 않고 아주 철저히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의 운명은 아주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는 무엇에 의해 자신을 망치게 된 것입니까? 바로 결혼과 가정때문에 자신을 망친 것입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여러분을 한평생 망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금 깨달았습니까? 지금 많은 형제자매들은 솔로로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날마다 아주 즐겁고 행복하며 골칫거리가 전혀 없고 걱정도 없으며, 그들의 생명은 아주 빠르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반면에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또한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매일 꼬박꼬박 출근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데, 누가 시집가고 장가가라고 했습니까? 결혼을 하면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아내를 위해, 아내의 육체를 위해, 아내의 배를 곯지 않게 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도록 고생해야 하는데 밑도 끝도 없습니다. 그것은 혹을 붙인 격으로 당신을 한평생 짓누르게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배우자를 찾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 간단한 일입니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결혼하는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고, 이방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서도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며, 또 세계의 형세를 판단하는 일에서도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 밖에 가정을 대하고 관계가 친밀한 혈육 관계에서도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분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본분을 잘 해야만이 합격된 피조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와 사람의 결말, 그리고 사람의 귀착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함으로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첫째,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합니다. 둘째, 진리 실제로 진입할 수 있게 합니다. 셋째, 봉착한 어려움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알게 하고 생명 성정의 변화가 있게 합니다. 이처럼 네 가지 방면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알아들었습니까? 사람마다 자신이 범사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인지, 어떤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했는지, 하나님의 뜻을 더듬었는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배웠는지 등을 잘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경력 간증이 있습니까?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우리는 범사에서 찾고 구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단지 어떤 일에서 “내가 진리를 찾고 구했더니 정말로 깨닫게 되었어, 하나님은 정말로 나를 깨우쳐 주셨어, 나는 진리를 찾고 구하는 달콤함을 맛보았어”라는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여러분들 중에 손을 든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진리 실제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했고 어느 한 방면의 진리에 순복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은 깨달았지만 순복하지는 못했고 실행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왔습니다. 어떤 진리는 깨닫고 실행했지만 어떤 것은 당시에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는 분량이 너무 작아 실행해내지 못하였지만, 몇 년 후에는 실행해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명 진입의 진리는 한두 번 실행했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실행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몇 년을 실패하고 몇 년을 경력하고 나서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제가 성실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했던 것을 예로 들겠습니다. 얼마나 실패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현재까지 경력한 것으로 보면, 지금은 거짓말이 없거나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당신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100% 장담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저도 100%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대체로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특별한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저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30년을 믿었지만 아직도 완전치 못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 계속 저를 정결케 해주십시요. 제가 철저히 정결하게 될 수 있게 해주세요, 저의 생명 성정에 커다란 전환점과 더 큰 변화가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아직도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신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고, 대체로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고, 대체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대체로 왜곡되거나 궤사함이 없고,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특히 관건적인 중대한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장담할 수만 있다면 된 것입니다. 이 정도면 이미 구원을 받아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온전하게 된 사람들 중에 누가 감히 완전한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온전하게 된 사람들을 성인(聖人)이라고 말하거나, 완전히 거룩하고 더러움과 패괴가 전혀 없고 완전히 정결하게 되었다고 말해서도 절대 안 됩니다. 이런 관점은 맞습니까? 이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늘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사람이 능히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도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높지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또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낮지도 않습니다. 교계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아주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떤 죄든 지어도 돼, 하나님께서 다 사해 주실 거야, 하나님은 사랑이니까”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너무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교계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낮지도 않고 또한 우리 가운데 일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높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진리이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사람이 노력하고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능히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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