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5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3

【135-A-2】

방금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말씀을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왜 이 말씀을 연이어 세 번 교통하는 걸까요? 주로는 이 말씀이 생명 진입의 기초이고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민이 진리와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 말씀을 경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경력해야 하는데, 그럼 도대체 뭘 경력해야 하고 뭘 실행해야 할까요? 방금 읽었던 시작 부분에서 하나님은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의 영적 생활과 사람의 생명이 자라나는 문제에 관련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아들으셨나요? 어떤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하냐고 합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고, 받아들이거나 순복하지 않고, 경력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보게 될까요? 손해를 보는 건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분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게 작은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걸 모른다면, 그런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될 것이고,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받아들일 수 있으신가요?

지금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보고는 잘 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행하면서 보니 ‘마음이 왜 이렇게 안정되지 않지? 하나님 앞에서 안정이 되질 않아, 잠시도 안정하지 못하겠어.’라고 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을 실행하려다 보니까, 이 말씀은 경력하기 참 어렵고, 정말 진입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누가 이 문제의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으신가요? 그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 적이 전혀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산 적도 전혀 없다는 걸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전혀 안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 건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그렇죠?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것에 진입하기 너무 힘들고, 실행하기 너무 힘들다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건 쉬울까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럼 어디에서 사는 걸까요? 누구 앞에서 사는 걸까요? 사람 앞에서 사는 사람이고, 사탄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은 어떤 관계일까요? 여기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려면 뭘 갖춰야 할까요? 어떤 걸 갖춰야 하나님 앞에서 안정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자녀가 부모 앞에서 사는 일로 비유를 해 봅시다. 많은 자녀들이 전혀 부모 앞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모님 앞에서 사는 건 재미없어! 난 세상에서 사는 게 좋아, 게임기 앞에서 사는 게 너무 좋고, 도박장에서 사는 게 너무 좋고, 유흥업소에서 사는 게 너무 좋아.”라고 하면서 부모 앞에서는 살지 않습니다. 이건 뭘 설명합니까? 마음속에 부모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를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부모가 하는 모든 일은 다 그 사람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부모가 관심을 가지는 일이나 좋아하는 것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 앞에서 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지 못하는 건 무슨 문제일까요?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겁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고, 또 하나님께 구원받으려고 하는데, 먼저 어떤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안정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 생각났어요. 제가 교회당에 있을 때, 거기 목사, 전도사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했는데, 한 번 하면 30분, 1시간씩 했었어요. 그건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게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기도만 하면 가슴 찢어지듯이 ‘펑펑’ 울었어요. 아마 그런 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걸 거예요. 나도 그 사람들처럼 기도하고, 그렇게 울고, 또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외워야겠어요. 그게 바로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거예요.” 이 말이 맞나요? (틀렸습니다.) 왜 틀렸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깨달음이 있고, 빛 비춤이 있고, 길이 있는 겁니다. 이 문제를 분명하게 말씀하실 분 있나요? 힘들면,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종교식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 게 아니라 벽 앞에서 안정한 거고, 테이블, 의자 앞에서 안정한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눈을 감는 순간부터 혼자 앉아 말씀을 외우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공기에 대고 말합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 게 맞나요? 아닙니다. 그건 혼자 앉아 중얼거리는 것입니다. 꿇어 앉아 있는 걸 보면 아주 안정된 것 같습니다. 손도 움직이지 않고, 머리도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는 또 계속 기도하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닫고 있으면서 입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 걸까요? 입으로만 ‘중얼중얼’ 거려서는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일단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고 마음을 나누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다음 성령의 감동이 있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안정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함께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접촉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다 털어놓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고, 입도 움직이고 있어서 마치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고, 하는 말도 마음속의 말이 아니고 머릿속의 말뿐입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거나 성경 구절들을 외우는 건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 게 아닙니다. 그런 건 성령의 역사가 없고 성령의 감동이 없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사람이 혼자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중얼거리고, 막연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공기에 대고 기도하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건 일방적인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의 역사도 없고 성령의 깨우침도 없기 때문에 그런 종교식 기도는 아무리 여러 해 동안 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서 집에 돌아가면 다시 늑대로 변하고 악인의 본성이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다시 제멋대로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경건한 겉면조차도 전혀 없습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 걸까요?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다는 건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마음속 말을 하고, 자기 마음속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고, 성령께 감동받아 진실하게 뉘우치고 자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효과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안정한 진실한 성과이기도 합니다. 매번 하는 기도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안정해서 한 것이라면 다 수확이 있을 거고,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우침을 받을 수 있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패괴 유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안정할 때마다 이 몇 방면의 효과가 있어야 정말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켰다는 걸 실증할 수 있습니다. 아셨죠? 기도의 효과가 전혀 없으면, 그건 하나님 앞에 안정한 게 아니라 교회당 안에 안정한 거고, 혼자 물질적인 것에 안정한 겁니다. 기도할 때 마음을 하나님께 열지 않는 것, 마음에 진실한 간구가 없는 것, 마음으로 하나님께 진리를 구하지 않는 것,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서 마음속의 것을 털어놓지 않는 건 다 하나님 앞에 안정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도리적으로는 다들 압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왜 하나님 앞에 안정하지 못하는 건지, 하나님 앞에 안정하고 싶은데, 길은 없는지 묻습니다. 종교식 기도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집의 자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럼 부모가 눈 감고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저 아이를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께서 혼내 주세요. 제 말은 안 들어서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주님, 당신은 전능하시잖아요,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끝입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는 게 맞습니까? 그 사람은 책임감 없이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애를 주께 던져 버리고는 주께서 기도를 들으셨는지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주께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애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듭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니 교육하지도 못하겠고, 애가 말을 듣지도 않네요! 저 애는 천성적으로 죄악 속에 태어나 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패역이 저보다 더 심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교육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마음을 털어놓아야죠! 계속해서 ‘주님! 사람은 당신께서 만드셨어요. 당신께서 저 아이를 제게 주셨지만 저는 교육할 능력이 없어요. 지금 저는 제 자신도 진리 실제가 정말 없고, 사람다운 모습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교육할 자격도 없고, 교육할 방법도 없습니다. 저 애는 말을 너무 안 듣습니다. 아마 저도 어렸을 때 저랬나 봅니다. 아이 탓만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꼴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요.’ 예, 이렇게 사람다운 말을 해야죠! 그럼 하나님이 보시고 “그래, 네가 가장 어려워하는 게 정말 그게 맞다. 거기에 눌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 그게 너의 마음속 말이지.”라고 하실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기도를 하다가 자기는 자식 교육도 잘 못 하고, 진리 실제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 위해 뭘 하지도 못하니 애보다 더 애 같고, 애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서 ‘애는 어려서 그렇다지만, 전 나이도 많은 게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네요.’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여기까지 교제하니 더 후회스러워 울기 시작합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 안정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럼 어떤 걸 하나님 앞에 안정했다고 할까요? (마음속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건 마음속 말을 한 게 맞나요? (맞습니다.) 실제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면,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안정하기가 쉽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서 할 말도 없으면서 말을 긁어모아서 한다면,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을까요? 얘기할 일도 전혀 없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안정하려면 쉬울까요? (어렵습니다.) 꼭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별일도 없이 찾아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뭔 일이 있어요?”라고 물으면 “흐흐, 일이 좀 있긴 한데요, 별일은 아니고 그냥 얘기나 할까 싶어서요.”라고 합니다. “그럼 얘기해 보세요. 뭔데요?” “사실은 뭐, 할 말도 별로 없어요. 근데 얘기는 좀 하고 싶고, 정작 하려니까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르겠네요.” “대체 뭔 일인데요?” “그냥 당신하고 얘기나 하고 싶어서요.” “뭔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아직 생각하진 못했는데, 그래도 얘기 나누고 싶어서요.” 얼마나 두서없습니까! 이건 어떤 사람이죠?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정상인의 이지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