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4-A-8】

이 말씀은 여기까지 교통하겠습니다. 이어서 새 신자 형제자매들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겠습니다.

문제(1) 어떤 새 신자는 예수님을 믿을 때 바울이 겉으로 보면 아주 많은 것을 버리고 화비했고, 감옥에 들어가서도 각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 교회들을 돌보면서 온 유럽에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바울을 매우 숭배했습니다. 이 새 신자는 바울에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한 모든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답변: 이 문제는 답하기 쉽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울이 한 모든 것을 부인했습니까?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바울이 갔던 길을 해부해 보았을 뿐입니다. 은혜시대에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 화비했던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 화비하면서 확실히 아주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한 사역은 어떤 효과에 도달했습니까? 하나님을 만족케 했습니까? 성정이 변화된 간증이 있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 간증이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수고를 아주 많이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임을 입증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고생해서 사역한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맞았습니까? 다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이 비록 고생스럽게 많은 사역을 했지만, 행한 것들은 다 하나님의 뜻에 닿지 못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사역을 했어도 다시 옛 병이 도져 교만 자대(自大)하면서 자신을 아주 높이 보았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께 상을 요구하였고, 하나님께 면류관을 주실 것을 바랐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에서 은혜시대의 모든 사도와 제자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갔던 길은 다 옳지 않았고, 그 사람들은 진리와 생명을 추구하지 않았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사역을 아주 많이 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실질을 간파했죠? 지금 우리는 바울이 갔던 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교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통하는 건 바울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바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께 징벌받고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징벌받고 있는 것은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바울이 처음에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을 때부터 이미 드러난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제사장을 추종하기 위해, 교계에서의 직위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미친 듯이 예수님을 정죄했는데,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데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어느 정도까지 대적하고 정죄했습니까?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그렇게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음에도 바울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바울이 우매 무지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까? 만약 정말로 우매 무지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해 사람에게 속은 것이라면,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해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보았을 때 “아, 우리가 대적했던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구나, 내가 잘못 대적했어, 너무 후회돼. 난 속았어, 사람들에게 미혹된 거야. 진짜 우매 무지해!”라고 할 것입니다. 바울은 마땅히 회개해야 하고, 자발적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회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성을 잃고 미친 것처럼 계속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았습니다. ‘예수, 당신이 부활했으니 아마 하늘로 올라갔을 테지. 그래서 이제 당신을 잡지 못하니 난 당신의 제자들을 잡고, 사도들을 잡을 거야.’ 바울이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우매 무지한 상황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까, 아니면 고의적으로 예수님과 적이 된 것입니까? 그 성질은 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바울은 왜 또 예수님을 위해 화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큰 권능 때문이었습니다. 주께서 하늘로부터 바울에게 큰 빛을 비추어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주여, 뉘시니이까?”라고 하자, 주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바울은 무너졌습니다. ‘예수가 정말 하나님이었구나! 큰일 났다. 한 마디 말이면 나를 멸할 것인데, 내가 얼른 대답해야지. 예수를 위해 화비하면 그래도 목숨은 보전할 수 있을 거야!’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은 본인이 원해서 돌아선 건가요? 기꺼이 원한 건가요?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을 보고 하나님께 돌이키기를 원했습니까? 바울은 억지로, 어쩔 도리가 없어서 돌아섰습니다.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셔야만 믿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믿음은 보아야만 믿는 믿음이지,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이 육신에서 사역하시는 것처럼 겉모습은 인자이십니다. 인자는 하나님 영체의 형상을 조금도 지니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보고는 그분을 보통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없으나, 우리는 그분이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그분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에, “이분이 바로 도성육신이세요.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어야 돼요. 그리스도께서 이 세대에게 훼방을 받고, 교계의 정죄를 받으시지만 우리는 그분을 믿습니다. 그분은 바로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누굴 믿나요?”라고 물으면 “도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요!”라고 대답합니다. “네? 당신 참 무지하네요.” “무지하다고 말한다 해도, 저는 이것을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바울은 어떠합니까? 바울은 하늘 위의 하나님을 믿었지, 도성육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권병과 능력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께 향할까 봐 있는 힘을 다해 잡고, 정죄하고, 깎아내렸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야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 위의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면 바울은 영원히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면 바울의 믿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바울은 하늘 위의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보이시면서 바울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바울은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하신 데 대해 매우 증오하면서 미친 듯이 붙잡고 박해하며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을 드러낸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바울의 실질이 아닙니까? 바울은 그런 인간이 아닙니까? 바울은 어떤 배경에서 효력했습니까? 자신이 훼멸당하게 될 때 효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영체로, 큰 빛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에야 받아들인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큰 빛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시지 않았다면, 바울은 여전히 주님을 위해 화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전히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 그리고 큰 이적에 항복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도성육신이었고, 나사렛 사람의 아들이고 목수였다면, 바울은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완고함은 무슨 본성입니까? 적그리스도의 본성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순전히 효력에 속합니다. 아시겠죠? 바울은 효력하는 기간에 자신의 본성 실질을 인식했습니까?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한 것 때문에 얼마나 뉘우쳤나요? 눈물을 얼마나 흘렸나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바울이 면류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게다가 또 면류관까지 요구했으니, 정말 이지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자신의 죄명을 씻어 없애기만 해 줘도 다행인데, 거기다 또 공의로운 면류관까지 달라고 할 자격이 있습니까? 그런 자격이 있습니까? 이 문제에 이렇게 답하면 어떻습니까?

문제 (2) “말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너희의 사랑을 나의 앞에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진노가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을 상면에서 교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답변: 말세의 이 단계 사역은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하시는데, 사람이 만약 잘 경력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없겠죠. 말세의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이렇게 많이 하시고, 사람에게 이렇게 큰 구원을 가져다주시고, 또 하나님의 성품을 이렇게 많이 나타내 주시는데도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또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없다면, 이런 사람은 저주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어 마땅하고 살아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으면 나의 진노가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은혜시대에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고 말세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성품을 전부 사람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무엇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은 다 인류에 대한 가장 진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나타내시든, 어떤 효과에 도달하시든 모두 진실한 사랑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품을 다 경력하고 분명하게 체험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형벌을 경력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최종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서 제 자신이 바로 마귀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자신이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제가 완전히 망할 놈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어떻게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어떻게 참된 사람이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볼 때면 죽어 마땅하다고 여겨지는데, 여기서는 왜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도달하라고 하는 거죠? 말이 좀 모순되지 않습니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할수록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바로 완전히 마귀 사탄이라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전에는 인식하지 못해서 도둑질하거나 훔치거나 빼앗지 않고, 무슨 나쁜 짓도 하지 않았으니 제 자신을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고 나니까 자신의 성정이 천사장과 똑같이 교만 자대하고, 거만하고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이고, 심지어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물건짝입니까!” 여기까지 경력하고 나니 제 자신이 바로 지옥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옥에 떨어져 마땅하고, 지옥에 가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에 그 과오에 따라, 패괴된 진실한 정형에 따라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인식하고 난 후에는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은 바뀌고, 이지와 양심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참되게 화비하고, 또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통받아도, 대가를 아무리 많이 지불해도, 본분을 아무리 많이 해도 달가워하게 되고, 면류관이나 축복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힘을 다하고 효력을 다한 다음 하나님이 지옥으로 멸해 버리셔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바울과 다릅니다. “바울은 면류관을 따졌지만 난 그런 것을 따지거나 바라지 않아, 지옥에 떨어져도 괜찮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길 거야. 나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걸 봤어!” 이 정도까지 경력하면 상이나 면류관을 바라지 않고, 축복을 바라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게 됩니다. 자신은 복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달갑게 효력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본분을 다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인식하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이 최고봉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이 정도까지 인식했을 때, 하나님은 “너희 같은 사람들, 무릇 이런 인식이 있는 사람이 곧 내가 구원하려는 인류이고, 내 역사가 도달하려는 효과이다. 너희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자민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또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느끼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공의로운 하나님은 우리가 과오가 너무 많고, 완전히 마귀 사탄인 것을 보시고도 우리를 징벌하거나 지옥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또 우리를 국도로 이끌어 들어가 국도의 자민이 되게 하시는데,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랑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여기까지 경력하고도 여전히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지 못하고, 요만한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면 나의 진노가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이해가 됩니까? 만약 아직도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지 못한다면, 사람이라 칭할 자격이 너무 없고 양심이 너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이 뭐가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은 벌받아도 쌉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개돼지만도 못하고 양심과 이지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짜이지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