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4-A-7】

우리, 계속해서 다음 구절 말씀을 교통합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늘 종교 의식을 행하고 늘 외식하는 사람을 싫어하시고 축복하지 않으시며 더욱이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쓰지 않으신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그 사람은 폐인이 되어 쓸모가 없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는 본분이 다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면의 본분을 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성령의 인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이고, 모두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과 인도 가운데서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다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잘할 수 없죠. 왜 효력자는 온전케 될 수 없습니까? 왜 바울처럼 사역하면서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아도 온전케 될 수 없습니까? 여기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교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인정하지 않으실까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거나 또는 고난도 많이 받고 대가도 많이 치렀는데, 나중에 하나님은 왜 칭찬하지 않으시고 도태시키십니까? 왜일까요? (그런 사람이 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것은 한 방면입니다. 또 어떤 원인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는데, 이것이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사람이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 역사를 얼마큼 체험하고 경력하고 인식했으면 그만큼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늘 성령의 역사를 접촉하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를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왜 자라지 못할까요?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이렇게 오랫동안 믿었는데, 여태껏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은 적이 없고, 하나님을 느껴 본 적도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저는 하나님을 느꼈어요, 하나님은 정말 계세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봤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만져 봤습니까?” “만져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정말로 계신다는 걸 어떻게 아셨죠?” “저는 마음속으로 성령의 역사를 느꼈고, 하나님 영의 행사를 느꼈어요. 하나님 영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느꼈고, 하나님 영이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도 느꼈고, 이끄신다는 것도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랐고 진실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계셔요. 하나님은 사람을 이끄시기도 하고 또 사람을 깨우쳐 진리를 깨닫게도 하십니다. 성령께서 저에게 역사하셔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정결케 하심을 느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경력하면서 성령의 행사를 느끼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느끼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주된 방면입니다.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이 이런 경력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효과에 도달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커지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 드리려는 마음도 생깁니다. 그럼 이런 효과는 어떻게 도달하게 된 것입니까?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과 말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며 성령의 역사를 얻어 도달하게 되는 효과입니다.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많이 체험할수록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되고, 성령 역사를 체험하고 경력한 것이 적을수록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적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작은데, 이것은 다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령의 역사가 있고, 많은 일에서 하나님과 진실한 기도가 있으며,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게 되며, 많은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깨닫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런 하나의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한다는 것은 뭘 말한 것입니까?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속 말로 하나님과 교통하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 역사를 얻으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본 것처럼 하나님이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진실하세요. 하나님은 절대 막연하지 않아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정말 진실하고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거든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진실하고 살아 계신 분이세요! 단지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의 행사와 깨우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저는 다 느꼈어요. 경력한 것이 많아요! 느낀 것도 많구요! 다 이 마음속에 있어요. 자기 눈을 믿으면 안 돼요.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다 봤어요. 마음으로 느낀 것이 눈으로 본 것보다 백배, 천배 더 진실해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성령 역사를 많이 느낄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 알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알겠죠? 사람이 늘 하나님과 이렇게 교제하면 늘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느끼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갈수록 정상적이 되며 갈수록 진실하게 됩니다. 교계 사람들처럼 공기에 대고 기도하라고 하면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안 맞아요, 그건 중언부언하라는 거잖아요? 마음속에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경건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고 싫어하실 거예요.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으십니다. 느끼지 못할 때가 있어도 이렇게 하나님께 말할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성령 역사를 느낄 때면 경건함을 좀 보이고, 느끼지 못하면 허튼소리를 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너무 어리석습니다! 어떤 때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나는 은밀한 중에 너의 기도를 듣고 있고, 은밀한 중에 너를 감찰하고 있다. 나는 네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진실한지, 나를 경외하는지, 나에 대해 경건한지를 볼 것이다.” 그래야 사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일 늘 그렇게 역사하셔서 여러분에게 성령이 이렇게도 역사하시고 저렇게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고, 뒤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령은 당신에게 느끼게 하실 때도 있고 느끼지 못하게 하실 때도 있는데, 사람에게 숨기고 얼굴을 가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있는지, 참된 순복이 있는지, 참된 경외심이 있는지의 여부를 보십니다. 제가 말한 것을 다 알아들으셨겠죠?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바로 이렇습니다. “때로는 성령의 역사를 경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령이 저에게 숨기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감찰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숨기셔도 저는 하나님과 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속 말을 합니다.”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생명과 믿음이 절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랍니다.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기도할 때는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기도가 정말 영적이었고 말도 아주 잘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계속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후 이런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이런 느낌이 사라진 후에 저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숨기셨을까?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거지? 내가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노엽게 했지? 그렇다면 빨리 죄를 고백해서 다시 그 느낌을 되찾고 싶어. 그런 느낌이 없으면 나는 못 살아! 어떻게 해서든 회복해야겠어, 성령이 나를 뚜렷하게 감동시키고 인솔하시면 내가 느낄 수 있어. 이런 영 생활을 회복해야 돼.” 이런 생각은 맞습니까?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정말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늘 초자연적인 느낌을 구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에 늘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이 늘 나타나시고 영이 감동을 주시고 인솔하셔서 점점 더 뚜렷하게 느끼게 한다면, 분량이 작고 아직 ‘어린애’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부모가 늘 갓난 아기 곁에서 보고만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기는 ‘으앙’하고 울며 찾습니다. 왜냐하면 아기의 눈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말하면서 아기를 다독이면 아기는 잠들고 조용해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포대기 속에 있는 아기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보살피십니다. 만약 철이 든 대여섯 살 아이한테 부모들이 밖에 일하러 나가면서 “아가야, 집에 있어.” 하면 아이는 “응.” 하고 대답합니다. 부모들이 밖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는 좀 있다가 “왜 아직도 안 오지?” “엄마, 왜 아직도 안 와, 어디 갔어?”라며 ‘으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한참 울고 나니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울긴 왜 울어?” “반나절이나 안 보이니까 무서웠어.” “엄마가 밖에서 일한다고 했잖아.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들어와서 너랑 놀겠니? 말 잘 들어, 엄마 밖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 “알았어.” 그제야 아이는 두세 시간 정도 울지 않고 버팁니다. 만약 한 살 더 먹으면 부모가 5시간을 비워도 괜찮고, 두 살 더 먹으면 부모가 밖에 나가 반나절 일을 하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갈수록 철이 듭니다. 사람의 생명도 이렇게 자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셔서 제가 하나님을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늘 이렇게 구한다면 맞습니까? 틀렸습니다. 그럼 뭘 구해야 합니까? 효과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 역사를 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효과에 도달하게 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기도를 다 하고 나서도 하나님을 만지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저는 진리를 깨달았고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이러면 족합니다. 저의 기도가 효과에 도달했습니다.”라고 합니다. 꼭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 밖에서 일해도 돼요, 근데 내가 배고플 때, 나한테 밥하고 김치만 주면 돼요. 엄마 아빠가 밖에서 일하고 있는 거 알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구하고 이렇게 하나님과 지내면 좋습니까?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저를 인도해 주셔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게 하시고, 어떻게 해야 당신을 만족케 해 드릴 수 있는지만 알게 해 주시면 됩니다. 저는 명확한 느낌을 달라고 구하지 않고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주시기만을 구하겠습니다.”라고 이렇게 그저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사람이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구한 후에 3, 5일 혹은 7, 8일 동안 그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깨닫게 되고 길이 생기고 빛 비춤이 있게 되면, 그 일에 대해 점점 더 환해집니다. 오늘은 조금 빛 비춤이 있게 되고, 다음날에는 더욱 환해지며, 이틀 뒤에는 꿰뚫어 보게 되며, 3일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어 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시니 알겠습니다. 요즘 저는 이 일에 대해 꿰뚫어 보게 됐습니다. 이게 다 당신께서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당신을 만족케 해 드려야 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보시고 “네가 깨달았구나, 성과를 얻었구나, 답을 얻었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실제적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정상 관계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정상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 마음속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이렇게 교제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면서 이루어질 때까지 이렇게 한 가지씩 처리하고 한 가지씩 간구하는 것입니다. 간구할 때는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고, 이루어질 때는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대로 합니다.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깨닫게 되고,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믿는 길을 가면 자신도 모르게 진리를 더 많이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갈수록 실제적이 됩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실제적이 되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갈수록 참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갈수록 실제적이 되며, 자신도 모르게 일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생명 성정이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과 진실로 교제하는 가운데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되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이렇게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길입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듬고, 마지막에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아 진리를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알게 되면 그렇게 하게 됩니다. 경력하면서 이런 부류의 일은 이렇게 처리하고 이렇게 경력하는 것입니다. 패괴를 유로하고 과오가 있어도 역시 이렇게 처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며, 마지막에 자신을 인식한 후에 진실로 뉘우치는 마음이 생기고 진실한 회개가 생기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 저는 이 일에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떤 부분에서 잘못을 했는지, 이제는 당신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당신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꼭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것이며, 다시는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이러면 됩니다. 과오가 있어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복잡한 일이 닥쳐도 어떻게 진리를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각종 어려움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역자 간의 협력하는 관계에서 꿰뚫어 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어떤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대해야 하는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또 어떤 애로 사항이 있는지, 모든 문제를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겨야 하며 진리를 찾고 구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1년 동안 이렇게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제하는 과정이 많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1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얻는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많습니다.) 1년에 10여 가지 일을 참으로 경력할 수 있으면 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의지해서 해결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진실로 회개했습니다. 저는 이런 어려움을 가지고 한두 달 기도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에 자신이 어떻게 포기했다고 말하면 그것이 바로 진실한 경력입니다. 1년에 10여 가지 일에서 기도를 통해 진리를 찾고 구하여 철저히 해결하면 그 경력은 아주 풍부한 것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기도하고, 날마다 쓸데없는 말을 하며, 마지막에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자기 뜻대로 하고, 다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교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백배 낫지 않습니까? 교계 사람들은 외식하는 바리새인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어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교계 사람들은 가는 길이 두 갈래 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면 자신의 패괴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알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