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4-A-6】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겠습니다.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있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인 후에야 차츰차츰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생기게 된다.” 또 말씀 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어떤 진리를 발표하셨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한 구절의 말씀마다 다 진리이기에 여러분은 한 구절을 읽고 나면 묵상해야 합니다. “이 구절 말씀의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이 구절에서 어떤 진리를 발표하셨을까? 꼭 깨달아야 돼!” 여러분은 헛 읽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눈으로 훑어보고 그냥 지나가면 안 됩니다. 대충 훑어보고 나서 “됐어. 진리는 내 마음속에서 자동으로 나타날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그런 기능이 있습니까? 사람이 깊이 묵상하지 않고 찾고 구하지 않으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이 구절에서 어떤 진리를 발표하셨겠습니까?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있으려면”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의 ‘정상적인 영적 생활’은 무엇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까? 바로 정상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정상적으로 진리를 교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정상적인 영적 생활에 속합니다. 우선 영적 생활이 정상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영적 생활이 정상적이 되면 사람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우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인 후에야 차츰차츰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생기게 된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는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제 마음을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한 절차로 다 맡기면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다 맡기는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자기 자신에게 맡긴 것입니다. 이 한 마디로 하나님께 맡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는 받지 않았다. 나는 쓸데없는 말과 빈말 그리고 나를 기만하는 말을 한 마디 받았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입으로 하나님을 기만하면 안 됩니다! 입으로 하나님께 대응하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 마음을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기도하면 일이 곧 이루어집니다.”라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한 마디 하시면 일이 곧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한 마디 말하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이 이루어졌습니까? 하나님을 기만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이고, 죄를 범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이고, 거짓말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정상적인 절차가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이것은 첫 번째 절차입니다. 어떻게 안정합니까? 하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당신 앞에 왔습니다. 지금 당신과 중요한 일을 하나 교통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떤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나님과 한 가지 일을 교통하는데,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혹은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고 묵상하고는 “아, 진리가 있어. 새로운 빛이 있어. 계속 묵상해야지.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 말씀에 몰입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 말씀에 몰입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킨 것이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려는 것 역시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안정한 후에는 어떻습니까? 다른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의 일, 가정의 일, 육체적인 일은 마음에서 전부 사라지고, 그 시각 자신과 하나님만이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절차입니다. 두 번째 절차는 “온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인 후”인데, 완전히 몰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 마음’은 완전히 하나님께 기울이고 하나님 말씀에 몰입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그때면 “차츰차츰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의 온 마음이 하나님께 쏠리는 것은 이방인의 말로 하면, 곧 ‘두 사람의 세계’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고 “나와 하나님, 하나님과 나뿐인데, 내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차츰차츰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차츰차츰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생긴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기도로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제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는 것이며, 진리를 찾고 구하여 효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무릇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은 다 정상적인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영적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 일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당신께 아이도, 부모님도 맡기겠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축복해 주시고 보호해 주세요, 아멘!” 이렇게 두어 마디 기도하고 가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입니까? 온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이는 것입니까? 이런 사람은 기도할 때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듯 하나님께 대충 두어 마디 하고는 얼른 달아납니다. 완전히 형식적인데, 마치 교계 인사들의 기도와 같습니다. 밥 먹을 때 얼른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또 시간을 보니 서둘러 출근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한 끼 식사를 축복해 주세요. 하나님, 이 한 끼 식사는 당신이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영원히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고,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갚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나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일하러 갑니다. 이런 기도가 소용 있습니까? 소용없습니다. 마음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형식적이고 대충 건성으로 해서 기만하는 것이며 순전히 종교 의식입니다. 늘 이런 기도를 하면 종교 의식이 되는데, 의의가 없고 하나님이 혐오하십니다. 만약 시간이 없으면 기도할 필요가 없고 마음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 더러운 말들로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상투적인 말이고 공허한 도리이므로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실제를 중시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면 어떻게 기도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서 또 자신의 그런 수작을 억지로 하나님께 더하는데, 그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고 종교 인사의 소행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역사의 안받침물이 될 수밖에 없는데, 마치 하나님 집의 장식품과 같다. 이들은 숫자를 채우는 사람이고 폐물에 속하는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비유하고 묘사하셨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 역사의 안받침물이 될 수밖에 없는데, 마치 하나님 집의 장식품과 같다. 이들은 숫자를 채우는 사람이고 폐물에 속하는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 구절에서 어떤 일을 말씀하셨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도대체 어떤 것에 속합니까? 그 밖에 또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의 실질은 숫자만 채우는 것이고 폐물에 속하는데, 하나님은 절대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사용하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폐물이 아닙니까? 그 사람은 쓰레기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쓰레기가 되기를 원합니까? 모두가 원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왜 도태되고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까? 그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없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으며, 늘 종교 의식을 따르고 바리새인을 본받으며, 마지막에 하나님에 의해 폐품, 쓰레기로 처리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역사의 안받침물이 될 수밖에 없는데’라고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마치 하나님 집의 장식품과 같다’라고 하는데, ‘장식품’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합니다. 안받침물은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바로 효력하는 것입니다. 어떤 효력을 합니까? 예를 들면, 하나님 선민들이 아마도 무엇을 외식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놓고 해부해 보면 무엇을 외식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이 무엇을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는데, 이럴 때 안받침물은 또 쓸모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의 실질을 해부하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안받침물의 역할을 합니다. 만일 그들이 없으면 사람들이 깨닫기 쉽지 않은데, 이것을 안받침물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알겠죠? 그러면 무엇을 안받침물이라고 합니까? 사역을 할 때 그저 부정적인 것만 말해서 효과에 도달하지 못하면, 나중에 이런 안받침물을 놓고 해부하면 효과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교회 안에 악인이 존재하고 악령이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시고, 적그리스도의 존재를 허락하시고, 떡으로 배불리려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시는데, 그들의 존재를 허락하시는 것은 어떤 목적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역사에서 어떤 사람을 도태시킵니까?”라고 합니다. “악인, 악령, 적그리스도, 불신파입니다.” “그럼 무엇이 적그리스도입니까? 무엇이 불신파입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럼 출교당한 적그리스도 중에 대표적인 인물 하나를 놓고, 떡으로 배불리려는 불신파 하나를 놓고 말하면 됩니다. 그런 인물은 다 존재했었고 다 교회에서 출교당한 것입니다. 그런 인물들의 예를 내놓으면 모두가 무엇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지, 무엇을 거짓 인솔자라고 하는지, 무엇을 악인이라고 하는지, 무엇을 악령이라고 하는지, 무엇을 불신파라고 하는지를 바로 철저히 알게 됩니다. 그럼 사람들이 철저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까? 바로 그런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안받침물, 생생한 부정적인 인물들을 내놓고 해부함으로써 모두가 분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안받침물은 이런 효력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서 이런 효력을 하는 자들인데, 이런 효과를 보는 것입니다. 알겠죠? 그럼 어떤 사람이 “저는 모르겠어요. 하나님 집은 하나님이 권세를 잡고 계시는데, 왜 악령, 적그리스도, 악인, 불신파들이 하나님 집에 잠입하는 것을 허락하시나요?”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큰 붉은 용이 이렇게 미친 듯이 하나님 선민을 박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데, 하나님은 왜 그것을 훼멸하지 않나요? 마지막 사역을 다 끝마친 후에 다시 그것을 훼멸하려고 하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지금 이 문제를 설명하기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것들을 안받침물로 삼아 움직여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안받침물은 하나님 역사 가운데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 그런 안받침물은 먼저 훼멸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훼멸하실 때는 한 국가 한 국가 훼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훼멸되는 것은 큰 붉은 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받침물의 말로입니다. 알겠죠?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도 안받침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