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4-A-5】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도리적으로 매우 간단하고, 실행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다고 한다면 어떤 점에서 어려울까요? 사람은 분량이 너무 작기 때문에 늘 사탄의 교란과 사탄의 궤계 그리고 사탄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데,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사탄의 교란과 사탄의 시험에 속하는 이런 겉면의 것 외에, 우리 자신의 애로 사항에서 어떤 것들이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에 방해가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애로 사항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이고 허영심과 체면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 가지 방면입니다. 가장 주요하게는 우리가 어떤 때는 지위를 좋아하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이런 것들에 묶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과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에 영향을 주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또 어떤 때는 우리가 자신의 교만한 본성의 지배로 아주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늘 하나님보다 앞서려고 하고, 늘 혼자 결정하려고 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관리하려고 하고, 또한 하나님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하나님께 찾고 구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이런 성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의 걸림돌이고 장애물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사람이 교만하고 독선적이면 궁리해 보다가 “됐어, 이렇게 하자!”라고 하는데, 누가 “하나님께 기도했나요?”라고 물으니, “하나님께 기도하든 안 하든, 뭐 이렇게 해야 되니 기도할 필요 없어요.”라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하니, 성령 역사가 없어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 많지 않습니까?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자신은 무엇이든 다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효과가 있는지 보세요. 어떤 사람은 설교할 수 있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설교할 수 있어요. 머리 속에 든 것도 많고, 성경 지식도 아는 게 많아요. 성경의 대표적인 하나님 말씀을 거꾸로도 줄줄 외울 수 있어요. 입만 벌리면 설교하게 돼요.” 결국 설교를 하게 되니 실제가 전혀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별로 진실한 도움을 주지도 못했으며, 텅 빈 이론만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말한 것이 다 맞고, 다 성경에 부합되지만 사람의 생명 진입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사람이 진리를 깨달음에 있어 어떠한 빛 비춤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역이 가치가 있을까요? 추호의 가치도 없습니다. 사람은 왜 하나님과 진실한 기도로 교통하지 않을까요? 왜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을까요? 진리를 찾고 구하는 발걸음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교만 자대(自大)한 사탄의 본성입니다. 자신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러면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형식적으로 할까요? “하나님, 저는 피조물이니 당신을 위해 화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저는 당신을 위해 사역하고, 설교하러 나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셔서 저의 재능을 다 발휘할 수 있고, 또한 저의 말재주와 은사를 다 발휘할 수 있게 해주시길 원하며, 당신을 만족케 하길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면 좋습니까? 어떤 사람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어떻게 좋지 않은가요? 여기에는 찾고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는 성령 역사가 없어도 설교를 잘할 수 있고 사역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매우 높게 봅니다. 이것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정을 지닌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이런 것은 어떤 성질의 기도일까요? 어떤 것을 유로했을까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았고, 사람의 재능과 은사를 꿰뚫어 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이런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령 역사가 그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높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탄의 성정을 유로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일까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하는 것은 더더욱 없으며, 교만하고 독선적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고, 기도를 해도 마음에 없는 말로 몇 마디 할 뿐입니다.

그런 기도가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는지, 그런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적인지, 이제는 기본적으로 분별할 수 있겠죠? 여러분이 매일 하는 기도에는 어떤 것이 부족한지, 어떤 성정이 유로되는지,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는지, 이런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하루의 생활을 인도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저에게 악한 일이 닥치지 않고, 제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하나님의 얼굴 빛 속에서만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길 원합니다. 아멘!” 기도는 마쳤지만 마음은 아직도 움직이지 않았고, 입은 많이 움직였지만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다 좋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도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는 어떤 성질을 띠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한 것일까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공기로 대하고,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정확할까요? 이 사람의 기도를 들어보면 아직도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실제적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공기로 삼았나요? 이렇게 기도하면, 대충대충 하여 하나님을 속이고 기만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런 사람이 경건할까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경건한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은 저의 설교 교통을 듣고 나서 제가 사람을 논단하고, 교계의 목사와 전도사만 논단하고 또 사람을 정죄한다고 함부로 판단합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이것은 어떤 성질일까요? 해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저주하신 것에 대해 불만이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계의 목사와 전도사,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것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불복합니다. 또한 바리새인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보면 기뻐하고, 하나님이 바리새인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을 보면 반대하는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일까요, 사탄 편에 선 사람일까요? 그런 사람은 교계의 목사와 전도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끊임없이 정죄하는 것을 보면 기뻐합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정죄하고 바리새인을 저주하니 불만스러워하고 가로막고 정죄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교계 적그리스도 단체의 집 지키는 개가 아닙니까? 그 성질은 엄중합니다. 당신같은 종교인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진리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면서 논단합니까? 제가 한 그 말이 함부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드러내심에 근거해서 말한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지, 사람의 관점이 아닙니다. 제가 한 그 말이 근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근거해서 말한 것인데, 누가 정죄하고 대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진리를 증오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질은 이 성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이 성질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런 사람이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최종에 알게 될 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끊임없이 대적하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발표하고, 얼마나 많은 비밀을 밝히셨든지 그런 사람들은 받아들이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은 계속 사탄의 편에 서고, 교계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연구하고 글귀를 따지면서 하나님께 캐묻습니다. “왜 이렇게 말합니까? 왜요? 왜요? 왜요?”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또한 이런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습니다. 당신이 만약 2천년 전에 예수님을 믿었다면,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저주하실 때, 당신도 예수님께 항의했을 것이고, 예수님을 반대하고 정죄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보지 못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지, 정말 보게 된다면 틀림없이 바리새인의 편에 서서 예수님을 정죄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지, 맹목적으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한 말이 진리에 부합되는지 의심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논단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입니다! 만약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정확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진리를 찾고 구해야 지혜가 있습니다. 늘 자신이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는 게 뭡니까? 당신은 아무것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진리마저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마저도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사람의 설교 교통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지도 모르는데, 뭘 안다는 겁니까? 아무것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