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4-A-3】

생명 진입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요? 생명 진입을 하는 길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우리가 믿는 분은 하나님이지, 어느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온전케 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의 관건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달했다면, 우리의 생명 진입에는 뿌리가 있게 되고, 토대가 있게 되고, 보장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직접 미치게 되는 결과는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의 역사가 없이 단지 주의 이름을 위해 이것저것을 하면서 수고하고 분투하는 것뿐이라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공로는 없다 쳐도 수고는 했잖아요! 뭐, 그것도 없다면 몸이 피곤하기라도 했잖아요.”라고 말합니다. ‘피곤’은 어떤 것인가요? 생명인가요? 진리인가요? 피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피곤은 뭔가요? 헛된 것이고 헛수고한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면, 그건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 아래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고, 구원받아 온전케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정상 관계부터 맺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는 도대체 어떤 관계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정상 관계는 피조물과 조물주의 관계를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해 순복하고, 하나님으로 대해 믿으면서 하나님께 참으로 순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관계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과 참으로 교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바로 당신의 하나님이 되고, 당신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정상 관계가 아닙니까? 만약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가 정상이 아니라면, 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부정적인 관계, 잘못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걸 꿰뚫어 볼 수 있으십니까?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복을 받고 목적을 달성하고, 하나님을 이용해 평안을 얻고 재난에서 벗어나 죽지 않으려는 겁니다. 이런 것이 정상 관계일까요? 그리고 또 하나 거래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구원하셔서 재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죽지 않게 해 주시고,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신다면, 전 당신을 위해 무엇 무엇을 할 거고, 무엇 무엇을 바칠 거고, 당신을 위해 고난도 얼마 얼마를 받겠습니다.”라고 하는 이런 건 거래 관계가 아닌가요? 하나는 하나님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건데, 그건 올바른 관계가 아닙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겁니다. 자신의 수고로 하나님의 축복을 맞바꾸려는 것입니다. 이건 거래에 속하기 때문에 역시 올바른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는 다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아닙니다. 아셨나요?

떡으로 배만 불리고 하나님을 믿어 복 받기만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일까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합니다. 바울이 갔던 길, 바울의 모든 행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어떤 관계입니까? 바울은 주로, ‘예수님, 당신이 하늘에서 저에게 빛을 비춰 당신이 바로 주님이시고, 그리스도라는 걸 보여 주셨습니다. 그건 당신을 위해 헌신하라는 게 아닙니까? 전 당신을 위해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게요. 저는 모든 고난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고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건 주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바울과 주님의 관계는 사실, 주님을 이용하는 것이자 주님과 거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목적, 바울이 주님을 위해 헌신한 건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알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또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거나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좀 받고 대가도 좀 치른 뒤에는 득의양양해져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4장 7절, 8절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것이..........” 보세요, 바울은 주님께 면류관을 요구했습니다. “주님, 당신이 공의로우시다면 반드시 당신의 공의에 따라 제게 면류관을 주셔야 합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습니다. 면류관을 주세요.” 이 말을 하는 순간, 바울이 그동안 고생하면서 사역했던 목적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저는 주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주님께서 높여 주신 거고, 주님의 은총이십니다! 주께서 제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주셨는데, 이건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겁니다. 아니면 제가 주님을 대적했던 그 죄대로라면 저는 훼멸돼야 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성령의 인도와 이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제게서도 효과를 보았습니다. 저는 확실히 주님에 대해 알게 됐고 하나님의 전능을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전도하지 못합니다. 설사 복음을 전한다 해도 아무런 성과도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입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에 대해 좀 알게 됐고, 드디어 인간다운 모습을 좀 살아내게 됐으며, 양심과 이지가 좀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시 무엇을 맡기시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계속 전력을 다해 헌신할 겁니다. 저는 의의 있는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했었다면, 하나님을 믿는 목적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비교적 정상인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분별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도대체 정상인지 아닌지 꿰뚫어 보지 못하고, 도대체 어떤 관계가 정상적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진리들을 다 발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곱씹어 보기만 하면 ‘이 말씀들은 모두 진리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또 어떤 것이 사람과 하나님의 정상 관계인지, 어떤 것이 사람과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지를 모두 밝혀 주셨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주님을 믿는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꿰뚫어 보지 못할 겁니다. 그것을 보면 우린 정말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게 됐고, 하나님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일도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읽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면, 모두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여 하나님의 만족을 얻어야 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촉하여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 이 한 구절의 말씀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절마다 진리입니다. 마침표가 있는 데까지 한 구절인데, 그 안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이 구절 말씀의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면, 모두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해야 한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거나 사랑하거나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면 반드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으며, 영원히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흡족케 하는 비밀을 밝혀 주셨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도 좋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추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해야 합니다. 바로 “모두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여 하나님의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이 말씀입니다. 사람이 만약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접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만족을 얻는 것과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경로를 단번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역대로 주님을 믿었던 사람들 가운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에서 실패했을까요? 사람들의 종교식 기도에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하나님을 이용해 복을 누리려고 하던 그 사람들은 어떤 잘못을 한 것입니까? 그들이 하지 못한 건 뭐고, 잃은 건 뭡니까? 하나님을 믿은 모든 사람들의 실패를 하나로 종합한다면, 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지 않았다는 걸 현실적으로 하면 어떻게 말할까요? 그들의 기도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만족을 얻지 못했고,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한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예를 들어 봅시다. 예를 들려면 일단 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예로 들어야 됩니다. 자, 말씀해 보시죠! 바울은 하나님의 영과 마음으로 접촉한 건가요? 어떤 분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어떤 증거라도 있나요? 실례를 들어 보세요. 이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말만 하면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건 틀렸어요. 내가 봤을 땐 그렇지 않아요. 그건 당신들의 견해일 뿐이에요.”라고 할 겁니다. 보세요! 그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한다”는 것과 입으로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반드시 한 구절씩 세세하게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묵상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곱씹어 보지 않고 그저 “전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해요.”라고 말하면서 지나가 버리면 사람들은 “당신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과 접촉한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어떤 실제적인 표현들이 있죠? 제게는 실행의 길이 없어요. 제가 보기에 그건 빈말 같네요. 입으로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같네요, 별반 차이가 없네요.”라고 말할 겁니다. 그런 식으로 말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깨닫기 쉬울까요? 그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것과 입으로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나요, 없나요? 차이가 있겠죠? 어떤 땐, 입으로 하는 말이 꼭 마음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뭘 대표할까요? 어떤 때, 입으로 하는 기도는 머리에서 나온 겁니다. 대뇌를 통해 사고하고, 대뇌에서 일단 생각이 만들어지면 그런 말이 몇 마디 튀어 나옵니다. 그건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머리에서 나온 말과 마음에서 나온 말에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분들은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다음에 생기는 유형의 말이라면 어떤 성질일까요? 그런 유형의 말들을 분별할 줄 아십니까? 그럼 지금 하나님께 마음에 있는 말을 한 마디 하고, 그다음 머리에서 나오는 말을 해서 한번 대조해 보세요.

자, 마음속 말을 해 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얻었습니까? 마음속 말을 하면서 기도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말씀을 보고, 묵상한 다음 기도합니다. 일정기간 기도를 통해 자신의 패괴된 진상을 알게 되고,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내신 건 조금도 틀린 게 없습니다! 처음에는 관념이 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말씀은 폭로하시는 게 좀 지나친 것 같았고, 좀 정죄하는 것 같았고, 좀 과장된 것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경력을 하고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적절하시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 앞에서 제 진상을 똑똑히 보게 됐습니다. 저는 정말 개같은 놈입니다. 바로 마귀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 말은 어떻습니까? 진실하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 시작해서부터 인류의 패괴된 진상에 대해 날마다 더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의 말씀에 대해, 당신께서 폭로하시고 심판하시고 정죄하신 말씀에 대해 관념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 말씀들은 다 진리이고, 다 사실입니다!” 이런 말은 실제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제 머리에서 나온 말, 텅 빈 도리적인 말을 좀 해 보세요. 그런 말을 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저는 당신께서 절 사랑하고 높여 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본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대로 말했습니다. 바로 그런 겁니다. 도리적인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 입으로만 한 겁니다. 머릿속에서 생각해 낸 겁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재림하신 예수님이시고,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타나심이고, 당신은 천지 만물의 주재자이십니다. 저희는 영원히 당신을 믿을 것이고,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희는 당신께 순복하기 원하고,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 원합니다.” 이건 빈말이 아닌가요? 이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인가요? 전부 빈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