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2집 (b)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2-B-8】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다시 오실 거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약속하셨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성령이 다시 오신다는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영만 다시 오신다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럼 예수님께서 재림을 약속하신 건 무슨 뜻일까요? 다시 도성육신으로 인자가 되어 인간 세상에 오신다는 겁니다. 성령이 다시 오신다는 것이라면, 재림하신 분은 여전히 영체일 것이고, 성령의 역사일 뿐일 겁니다. 그리고 사람은 보지 못할 겁니다. 또 ‘주가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도 도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신다면 반드시 다시 도성육신하실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유대 땅에 나타나 역사하신 것과 같이 인자의 모습으로 말세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실 겁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두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27), 그리고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누가복음 17:25)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보시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권을 장악한 자들로부터,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온 교계로부터 정죄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대에 버림받은 게 아닙니까? 세대에 버림받으신 겁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예언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이미 응하여 이루어졌죠. 지금 교계에 가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면 “틀렸어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정죄하는 거면 절대 참 진리가 아니고, 교계가 정죄한 거라면 절대 참 진리가 아니에요.”라고 합니다. 그들은 왜 그토록 공산당 정부를 믿는 걸까요? 왜 교계를 그렇게도 믿는 걸까요? ‘교계는 큰 바벨론’이고, ‘교계는 큰 음녀’라는 사실을 왜 믿지 않는 걸까요? 왜 그들은 계시록의 예언을 믿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을까요? 그들은 왜 중국 공산당 정부와 교계가 하는 정죄를 사실이라고 믿을까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그릇되고 황당하지 않습니까? 너무 그릇됩니다. 그렇게 그릇되고 황당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쉬울까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교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제 갓 믿기 시작한 형제자매님들은 교계 예배당에 가서 복음을 전할 용기가 있으신가요? 예배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위험이 따릅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공격하고 훼방하고 정죄하고 사진까지 찍어 쫓아낼 겁니다. 그런 일들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다 사리도 밝고 인성도 좋고 그리고 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정죄하거나 반대하지 않을 거고,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믿어요.”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분은 예배당에 가서 한번 체험해 보시면 됩니다. 교계인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직접 체험해 보시면, 교계의 다수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게 될 겁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 교계를 정죄하셨는데, 주로는 교계의 지도자, 즉 교계를 장악한 적그리스도들의 사악한 세력을 정죄하신 겁니다. 그래서 성령은 교계에서 역사하시지 않고, 교계에서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사람이 끝까지 교계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교계와 같이 죽게 되고, 같이 멸망하게 될 겁니다. 교계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교계를 벗어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건 절대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이 제가 하는 말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지 묻습니다. 이 말은 제가 한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으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교계에서 나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100%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 말은 제가 한 겁니다. 인정하지 못하겠으면 하나님 말씀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교계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건 절대적인 겁니다. 아시겠죠? 예수님의 이름만 지킨다면 절대 구원받지 못할 거고, 지옥으로 떨어져 멸망될 겁니다. 어떤 사람은 또 예전에 주님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고 묻습니다. 주님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에 대해선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세 사역을 하시기 전에 주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구원받을 수 있나요?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잖아요.”라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에는 은혜시대의 기준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십니다. 은혜시대는 은혜시대의 기준이 있고, 율법시대에는 율법시대의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걸 믿으세요. 은혜시대에 교회당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죽은 다음 천국에 간 사람이 대부분일까요, 아니면 소부분일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죽어서 다 천국에 간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결정하고 규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보면 안 됩니다. 그건 잘못된 겁니다. 은혜시대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던 사람은 죽은 뒤에 영혼이 지옥에 있지 않고 영계의 어딘가에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배만 불리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혀 준행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사람들은 죽어서 이방인들처럼 지옥에 떨어집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앞의 영혼들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말세에 다시 돌아와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말세에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 환생하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말세에 다시 환생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에서 검증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단계 역사야말로 진정으로 전 인류의 최종의 결말과 귀숙을 결정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오늘 읽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중요한 진리를 하나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훑어보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만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걸 인정해도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지 못합니다. 일이 닥치면 또 의심하게 되고, 특별한 일이 임하면 또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을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맞을까? 정확할까? 정말 맞을까?’ 또 의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몇 년 경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진노가 어떻게 발표되는지,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로 찌르는지를 체험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지 않는다면 설령 하나님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진실로 보았다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참으로 알았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기란 정말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다수의 선민들이 모두 얻어 낸 결론입니다. 제 개인의 경력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형제님이 하나님께 온전케 됐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몇 년 정도 경력하고 난 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알게 되면, 그때 성령이 쓰시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직접 경력하기 전에는 누가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신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을 믿으십니까? 다들 이 말을 믿기 어려워합니다. 이런 일은 그 누구도 한 마디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령 그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저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대적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참으로 순복하고, 하나님이 부탁하신 일에서 충성을 다해 본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정도의 분량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가장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온전케 되는 최저 기준입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된다”는 이 말은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셨나요? 누군가 제게 “당신은 자신이 온전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해 드립니다. “저는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전 부족하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물어보신다면 전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이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저는 반드시 정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온전케 된 사람이다 하시면 그것은 단지 온전케 되는 최저 기준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최저 기준은 뭘 말합니까? 우린 다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사람입니다. 설령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고 정결함을 받았다 해도 그걸 참으로 거룩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저는 참으로 거룩해진 게 아니라, 단지 정결함을 받아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조금 있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좀 있어 악을 행하지 않게 됐을 뿐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정결케 되었다고 해도 ‘거룩’이란 두 글자는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정말로 거룩해졌냐고 물어보면 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거룩에는 절대 이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감히 하지 못합니다. 또 “그럼 당신에게는 아직도 더러움과 패괴가 있다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있습니다. 그러나 큰 악행을 할 수 없고, 명확한 악도 행할 수 없습니다. 강도짓을 하거나 겁탈을 하거나 살인 방화를 하거나 법에 정죄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건 예수님을 믿을 때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생각이 다 거룩해졌을까요? 아닙니다, 멀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에는 아직도 더러운 것이 있고, 패괴된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진리로 그것들을 제압하고 반박해서 서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단지 그 정도의 경력이 있고, 그 정도의 효과에 도달했을 뿐입니다. 만약 저 같은 정도가 온전케 된 거라면, 그것은 말세에 온전케 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높지 않다는 겁니다. 오르지 못할 정도로 높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진리를 추구하면서 10년, 20년 경력한다면 이를 수 있다는 겁니다. 저를 아주 좋게 상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신다는 말씀을 아주 높게 상상한 겁니다. 누가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몇 명이나 도달하겠습니까? 사람이 너무 높게 상상했기 때문에 다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제가 여기에서 본분하는 것을 보신 분들은 저와 오래 지내보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본분하는 일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교통하는 면에서, 또 제가 일을 처리하는 관점과 저의 인생관, 가치관, 그리고 인성 면에서 아직 어떤 패괴 유로가 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여러분이 한번 보세요. 보고 가늠해 보세요. 이 정도가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최저 기준입니다. 여러분이 이 기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은 패괴된 인류에게는 현실적인 기준이 아닐까요? 이 기준은 현실적입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높지 않습니다. 사람의 상상대로 요구하면 아무도 도달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생각은 비현실적인 겁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정말 거룩하게 되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뵐 자격이 있나요? 어떻게 당신을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합니다. 제가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정결케 된 것도 사실이고, 구원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거룩 앞에서 우리 패괴된 인류는 자격이 없습니다. 거기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십니다. 패괴된 인류가 아무리 정결케 되고, 아무리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거룩하게 됐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거룩’이란 이 두 글자는 패괴된 인류가 지금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도달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방금 한 말을 들어보면 전 당신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요.”라고 합니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의 관점이기 때문에 전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이 인정하든 안 하든 소용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진리를 잘 추구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몇 년간 경력한다면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겨 악을 멀리하고 충심으로 본분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무엇이 구원받는 것인지, 자신이 온전케 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금방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런 일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여전히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갖게 됩니다. 몇 년 정도 경력하고 나면 제 말이 비교적 실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나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설령 정결케 되어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거룩이라는 면류관을 사람에게 씌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쓸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되어 있긴 하지만 그 거룩이란 뭘 말할까요? 일정한 기준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는 최저 기준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에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는 높지 않다”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다시 이 말씀에 근거해 생각해 보세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위기 11:45)이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에 그 ‘거룩’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거룩과 같은 걸까요? 만약 하나님의 거룩과 같은 거라면 사람은 하나님이 되지 않겠습니까? 영원히 불가능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릴 수 없습니다. 그건 사람의 언어가 온전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어떤 말은 영적인 일을 번역하다 보면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려워 당장은 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번역하는 사람이라면 인류의 언어에 대해 가장 많이 체득해 보셨을 겁니다. 인류의 어휘는 너무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상상에 맞고 아주 적절한 용어를 찾으려고 해도 없습니다. 그래서 번역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게 사실 아닙니까? 특히 번역을 하는 사람은 다 각국의 어휘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영적 생명에 관한 용어가 너무 부족해 적절한 용어를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쓰실 때, 가끔 중국의 어휘는 풍부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어떤 용어들은 한참씩 고민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은 글자에만 매달리지 말고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에 영이 있어서 그 의미를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깨닫는다면 순수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온전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논쟁하지 않겠습니다. 온전케 됐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여 하나님께 정복되었고, 또한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데에서 어느 정도 효과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고, 인성이 좀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터득하시면 됩니다.

오늘의 교통은 여기까지 하고 묵도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