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2집 (a) 하나님 말씀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 관한 설교 교통

【132-A-8】

어떤 사람들은 많은 일이 임했을 때, 진리가 뭔지, 규례가 뭔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해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지? 이방의 사탄의 말은 진리가 아닌가? 성인들의 책에 있는 명언들은 진리가 아닌가? 이방인들의 명언도 듣기 좋은데, 그건 진리가 아닐까? 교계에 유명한 사람들이 했던 멋진 말들은 진리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리인지 많은 사람들은 분별할 줄 모릅니다. “사람이 자신을 위할 줄 모르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사탄의 말이 있습니다. 그게 진리입니까? 이런 뚜렷한 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진리입니까? “착한 사람은 일생이 평안하다.” 그 말은 진리일까요? “모든 것이 하찮고 오로지 독서만이 고상하다.”라는 말은 진리인가요? 지식이 진리인가요? 철학이 진리인가요? 과학은요? 법은요? 다 아닙니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일이 임하면 분별할 수 있습니까? 구체적인 일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분별하지 못합니다. 자녀가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은 사람이 교육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된 걸까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하셨다면 그대로 되는 겁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만, 그것은 교육의 결과가 아닙니다.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좀 있게 해 주고, 규칙적인 생활을 좀 하게 할 뿐입니다. 그저 그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세계관은 교육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 실질도 교육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는 것은 사람이 좋다고 하는 교육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됩니다. 큰 붉은 용이 있는 곳에 데려다가 몇 년만 교육받게 하면 그 사람은 끝납니다. 큰 붉은 용의 독소로 꽉 찰 것입니다.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사탄은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 교육을 한다 해도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본성이 어떠면 그냥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커서 마귀가 될 사람은 결국 마귀가 되고, 사탄이 될 사람은 역시 사탄이 됩니다. 늑대는 태어나서부터 늑대인 것과 같습니다. 개 젖을 먹이면서 개처럼 키워도 여전히 늑대입니다. 본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중국 이방인들 속담에 “인생은 팔자소관이라, 모든 것이 다 운명대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는 아니지만 사실에 부합되는 말입니다. 이 말이 맞는 말일까요? 맞는 말이고, 사실에 부합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진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팔자소관’이란 것도 하나님께서 안배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시간 몇 분 몇 초에 태어나는지, 거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과 운명이 그 몇 글자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누가 하나님을 언제 믿게 되는지, 언제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일이 닥치게 되는지, 어떤 결말이 있게 되는지는 하나님께서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정하신 것은 정하신 것이지만 사람이 진리를 추구한다면 운명을 다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에게 운명을 바꿀 수 있도록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 한 가지를 남겨두셨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수년간 효력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여 생명을 얻어 자민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사람은 선택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한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풍수나 세력에 의존해서는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세력과 수단으로 물질적인 이득과 혜택은 조금 얻을 수 있겠지만, 결말은 바꿀 수 없습니다. 죽어야 할 사람은 어쨌든 죽게 되고, 멸망돼야 할 사람은 어쨌든 멸망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리를 추구한다면 운명은 바뀔 수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진리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노하지 않으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진노는 그것으로 인해 다 사라지게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사람의 운명도 바뀌게 되고, 그 자녀들도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천대까지 복을 베푸십니다. 그리하여 자녀들도 따라서 복을 받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을 미워한다면 자녀들도 같이 불행해지고, 삼사대까지 그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보세요, 무서운 겁니다. 사람의 운명은 진리를 추구해야 바꿀 수 있습니다. 몇 십만, 몇 백만 위안씩 들여서 배운 그 지식으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이고, 멸망이고, 침륜입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진리를 추구해서 진리를 얻게 된다면,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따라서 다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되어 사탄의 성정을 정결케 하고, 사탄의 본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사람에게 진정한 인생과 영생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진리는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진리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도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행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도, 요구하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진리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 축복받게 되고, 궤사한 자가 된다면 훼멸될 것입니다. 한번 진리가 맞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 되면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나요?”라고 묻습니다. 예, 맞습니다. 성실한 사람만 된다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왜냐면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갖추라고 요구하신 진리를 실행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보호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100%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다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 길로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람이 이 길을 가지 않는다면 멸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이방인들이 구별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교통하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문제 답변

질문 (1)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경력해야 합니까? 그리고 또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다음과 같이 답변함: 이 문제를 간단히 교통해 보겠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일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서 사람의 패괴가 정결케 되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곧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이죠. 그리고 그 과정은 진리가 있는 환경이라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진리가 있는 환경’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바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본분을 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면서 협력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 그 효과는 가장 좋고, 가장 이상적이 됩니다. 어떤 분은 “저는 그런 환경이 안 돼요. 가정 살림도 어렵고, 생계를 위해서는 직장에 다닐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교회 생활에 참여한다거나 본본을 할 여건이 안 돼요.”라고 합니다. 그런 분들은 집에서 경력하시면 됩니다. 설교 교통을 듣고, 형제자매 두세 사람씩 모여서 접촉도 하고, 교통을 좀 해도 됩니다. 하지만 진리가 있는 교회 환경에서 본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과는 효과의 차이가 많이 있겠죠?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다 똑같이 경력하는 겁니다. 진리가 있는 교회 환경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면서 점차 진리를 깨닫게 되고, 마지막에 패괴 성정이 정결케 되고, 하나님에 대해 갈수록 많이 알게 되고, 하나님과 점점 더 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합하게 되면 하나님께 순복하니 즐겁고 행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니 즐겁고 행복한 겁니다. 사는 것도 점점 더 행복해져 마치 셋째 하늘에서 사는 것과 같죠. 이것이 진리가 있는 교회의 환경에서 경력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효과가 가장 좋습니다. 만약 이런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직장도 다니고 일도 하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남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도 좀 보고, 설교 교통도 좀 듣고, 진리를 교통해도 됩니다. 하지만 교회 생활보다 못하고, 얻는 것도 적고, 진보도 느릴 것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경우는 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에 속합니다. 아셨나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다가 핍박을 받게 되고, 어떤 사람은 책망과 질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실패하고, 무너지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출교되었다가 다시 회개하고, 선행을 예비해 어쨌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수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은 일들을 경력했습니다. 하지만 다 어느 정도 진리를 얻게 되었고, 큰 유익을 얻어 생명 성정도 다 어느 정도 변화됐습니다. 바로 교회 안에서 그런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좌절과 실패를 통해 서로 적응하고 충돌하면서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확실히 변화가 좀 생겼습니다. 또한 얻게 된 진리 생명은 너무 많고, 얻은 것도 너무 풍부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입니다. 많은 일들을 경력하면서 사람들은 많은 성과를 얻었고, 많은 진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교회 생활이 우리를 배양시키고 단련시킨 게 아닙니까? 우리가 교회 생활을 통해 그렇게 성장하면 점차 패괴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과 합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대재난이 올 때는 다 살아남게 될 겁니다. 살아남게 된 뒤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실현되면 그리스도 나라의 사람이 됩니다.

질문 (2): <하나님을 경외하려면 최소한 기본 양심과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교통에서 하나님이 “기본 양심이 없고 인성 품격이 없는 사람, 즉 인성 품격이 극히 악랄한 사람, 인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느냐?”라는 문제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예배에서도 교통해 보았지만 아직 밝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형제님이 다시 한번 교통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과 같이 답변함: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드러낸 말씀입니다. 또한 사람의 일종의 패괴 정형을 드러낸 거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난 뒤, 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본 양심이 없고 인성 품격이 없는 사람, 즉 인성 품격이 극히 악랄한 사람, 인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무엇을 통해 생기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정말 기본 양심도 없고, 인성 품격도 없고, 인격 자체가 아예 없다면 그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기본 양심도 없고, 품격도 없고, 인격도 없다면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책망과 질책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런 사람을 상대로 아무리 정확하게, 사실에 맞게 책망한다 해도 반항할 것입니다. 심지어 욕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그럼 이제 이 질문의 답이 나온 겁니다. 하지만 우리 다수의 사람들은 지난날 자신이 사탄에게 패괴된 모습을 돌아보면, 정말 교만하고, 자대하고, 독선적이고, 미련한 일들도 했었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거짓말도 하고, 또한 자신의 이익만 지키려고 하고, 체면을 지키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과 엄격하게 비춰 보니, 자신에게는 정말 기본 양심도 없고, 인성 품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인격조차 없는 뻔뻔한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게 되죠. 하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고 형벌하시든 다 순복할 수 있게 되죠. 그런 경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난 전에는 기본 양심도, 인성 품격도 없었어! 인격 자체가 아예 없었지.”라고 하면서 그 점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책망과 질책이 임해도 인식할 수 있고, 순복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고 형벌하시든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이런 사람과 앞에서 말했던 사람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앞에서 말한 그 사람은 기본 양심과 인성, 인격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고, 후자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심판과 형벌에 순복할 수 있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겉으로는 “아, 나는 기본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고, 사람도 아니구나. 진리라곤 전혀 없고, 거짓말만 하는구나!”라고 인식하지만, 그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 사람은 기본 양심과 인성 품격이 없고 인격이 없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패괴를 인식한 것입니다. 원래 전혀 인식하지 못한 사람과 구별이 되죠. 아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답이 없는 이방의 짐승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짐승이고,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할까요?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가 최고라고 할 겁니다. 짐승이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욕하고 싸우려고 달려들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면의 행실도 그런 자보다 좀 낫습니다. 그런데도 심판과 형벌을 통해 자신은 짐승이고, 인성이 없고,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인성이 없는 것이고, 누가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걸까요? 분별하실 수 있겠죠?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인성이 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만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끝난 겁니다. 그게 진짜 인성이 없는 거죠. 이런 구별점이 있지 않나요?

질문 (3): 어떻게 해야만 성령 역사에 유의할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답변함: 성령 역사에 유의하려면 우선 성령께서 어떤 역사를 하시는지, 성령이 역사하시는 원칙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원칙은 주로 사람을 깨우쳐 주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때가 더 많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해 주는 것을 위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을 받은 사람, 참 도를 이제 막 받아들인 사람에게 시련이 임하고 환난이 닥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때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감찰하십니다. 시련과 환난이 닥치면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절대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서 빨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묵상해 보세요. 그때가 바로 성령께서 가장 잘 깨우쳐 주실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중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찾고 구할 때, 성령의 역사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시련과 환난에 부딪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때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고 육체의 안일을 탐할 때, 그리하여 마음에 공허한 느낌이 들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화가 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때도 성령의 역사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몇 가지 관건적인 시간, 관건적인 시각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찾고 구한다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역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