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2집 (a) 하나님 말씀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 관한 설교 교통

【132-A-6】

지금 어떤 사람은 “대재앙이 오면 아이들이 죽습니다. 애들은 무고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왜 아이들을 지켜 주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유치한 말입니까! 지금 중동 쪽 전란으로 다마스쿠스는 폐허가 되었는데, 각국 난민들 가운데 어른, 아이, 노인들까지 다 있습니다. 그럼 이건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원망할까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었으니까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으시다고 원망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 정도의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자가 먹잇감을 잡아 죽이는 것을 보고 “너무 잔인해요, 너무 불쌍해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가련함과 수치스러움은 보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건 보지 못하죠. 그런 사람은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인류를 증오하지는 못할망정 동정하다뇨? 어느 편에 선 겁니까? 사탄의 편에 선 건가요? 하나님 편에 선 건가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운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마지막에는 모든 인류를 다 구원하실 것이고, 하나님은 누구라도 다 구원하실 겁니다.”라는 허튼소리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요? 노아 시대에 노아의 가족 8명만 방주에 오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홍수로 죽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가운데는 노인, 여인, 어린아이들, 심지어 갓난 아기들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 죽었죠. 그러면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부류에 속하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고 계십니다. 그럼 이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시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허락하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큰 일도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안배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진리를 어떻게 찾고 구해야 할까요?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그걸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논단하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을 원망하고 논단한다면 불신자에 속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재앙으로 처리하십니다. 재앙이 닥치면 불신자는 모두 죽게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기 때문이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결말이 같을 수 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거기에 진정으로 믿는다면 설령 패괴 유로가 좀 있다 해도 그 사람은 하나님께 어느 정도 순복하고 경배하게 됩니다. 비록 아직 정결케 되지 못한 부분이 있고, 간혹 거짓말도 섞고, 심지어 과오도 있겠지만,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이 여전히 그 사람에게는 유효합니다. 그래서 살아남게 되는 겁니다. 사탄이 또 참소할 수 있을까요? 사탄은 참소할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이 있기 때문에 속죄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효력이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속죄제는 그런 사람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됩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2~3년 정도밖에 경력하지 못했는데, 재앙이 떨어진다면 아직 정결케 되지 않은 저희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물어 보고 싶은 사람이 많겠죠? 많을 겁니다. 아마 90% 정도는 다 그런 의문을 갖고 있을 겁니다.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분명해지셨나요? 아시겠습니까? 제가 좀 전에 어떻게 말했죠? 설령 아직 완벽하지 못하고, 패괴 유로도 좀 있고, 심지어 거짓말도 하고, 과오도 있다 해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진리 실제가 좀 있기 때문에 살아남게 되는 겁니다. 그런 과오가 있다 해도 죽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한번 음란을 저질렀다고 해서 죽게 되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의 속죄제가 그 사람에게서 효력이 발생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20~30년 정도 경력해서 진리를 얻고 온전케 된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 봅니다. “이긴 자라는 칭함을 받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에게는 패괴가 전혀 없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패괴 유로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긴 자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그런 사람들에게 영원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대신해 그 죄를 담당하셨고, 이미 사해 주셨기 때문에, 사탄도 감히 참소하지 못하고, 참소할 권리도 없는 겁니다. 그럼 말세에 하나님께 온전케 된 이긴 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긴 자가 됐을까요? 그들은 아름답고 굳센 증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답고 굳센 증거는 뭘까요?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사탄이 광적으로 하나님의 선민을 박해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간증을 굳게 선 것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따르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하고 또한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추구해 마지막에는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수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다 하나님 편에 서서 넘어지지 않고, 사탄에게 잡혀가지 않고, 끝까지 지킨 사람들을 이긴 자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긴 자의 증거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전쟁이 있다고 합시다. 한 개 연대 정도 되는 병력이 산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그곳을 방어하면서 지킨다고 합시다. 거기에서 적군의 공격을 10번 이상 막아내 마지막에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진지를 지키던 사람들은 한 개 중대 인원밖에 남지 않고 다 전사하게 됩니다. 그럼 그 한 개 중대의 사람들이 최후의 이긴 자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끝까지 견지하게 된다면 즉, 대재앙이 떨어지는 그때까지 견지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긴 자인 것입니다. 그 기간에 사탄의 수차례 시험과 공격, 박해에도 쓰러지지 않고 굳게 섰을 때, 바로 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싸우면서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족케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긴 자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이해할 수 있으시죠? 어떤 사람은 “마지막까지 견지만 하면 이긴 자예요”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죠. 많은 시련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서야 이긴 자가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련에서 실패합니다. 타협합니다. 사탄에게 용서를 빕니다. 그다음엔 교회에서 머릿수만 채우면서 따른다 해도 그건 이긴 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남편(아내)의 핍박과 위협을 받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으면 이혼해! 또 본분하면 끝이야!”라고 하면 “누구랑 살든지 맘대로 해, 난 본분하고 난 하나님을 따를 거야! 이혼해, 바로 수속할게.”라고 하면서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사탄에게 체포되어 기소되고 실형을 받습니다. 하지만 자백서에 서명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아 몇 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옵니다. 이게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선 간증입니다. 어떤 분은 남편도 버리고 자식도 버립니다. 넘어지지 않고 굳게 끝까지 하나님을 따릅니다. 그들이 바로 이긴 자죠. 각가지 상황이 다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 간증을 섭니다. 그런 사람들은 끝까지 본분을 다하고, 본분을 하면서 진리도 추구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대적도 점차 줄어들고, 저촉하는 마음도 점차 줄어듭니다. 마지막에는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와 합하게 되었다고 느끼게 되면서 아무런 저촉도 없고, 관념도 없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이긴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끝까지 따랐음에도 관념과 패역도 없애지 못하고, 교만 자대도 해결하지 못하고, 또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아 대충 때우고 기만하는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을 이긴 자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시련도 임하지 않게 됩니다.

지난 예배 때, 어떤 형제자매님들이 계시록에서 말하는 ‘짐승의 표’는 어떻게 된 거냐고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해석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이 해석하지 못합니다. 또한 사람에게 해석할 자격도 없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역사가 그 일을 성사시키고 그 일을 이루시는 걸 볼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겁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전능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예언은 사람이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해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표’에 대한 저의 조그마한 깨달음과 생각만 교통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혹시 어떤 분이 이렇게 설명하면 받아들일 수 없고, 찬성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각자의 깨달음이 있고, 각자의 선택이 있고, 또한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어떻게 깨닫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참답게 찾고 구하면서 절대로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진리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경력하면 됩니다. 늘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만하고 자대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예언은 사람이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억지로 해석한다면 100% 틀릴 것이고,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지 마세요. 자신의 관점과 인식을 말한다면 만약 편차가 생기더라도 그 근원이 정확하고, 길도 정확하고, 또한 효과도 좋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방면의 진리를 교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계시록에 나온 ‘짐승’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건 사탄의 정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탄의 정권은 뭘 말합니까? 각국의 정권, 큰 붉은 용의 정권을 가리키죠. 각국의 정권 중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속한 거라면 그리스도의 나라겠죠. ‘짐승’은 각국의 정권을 말하는 것이고, ‘큰 음녀’는 교계를 말하는 겁니다. 어떤 건 천주교를 말하고, 어떤 건 기독교를 말하는 겁니다. 어떤 교든 다 음녀이고, 세상과 음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정하지 맙시다. 저는 성경을 해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간단하게 대략 이렇게 갈피만 잡아주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나신 것은 사탄과 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사탄의 사악한 세력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국도시대의 사역을 하십니다. 그분은 어떤 사역을 하러 오셨을까요? 첫 번째, 자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겁니다. 두 번째, 이 시대를 끝마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국도시대의 선민들입니다. 국도시대의 자민은 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일로 인해 온 교계와 그리고 마지막엔 전 세계가 다 그리스도와 싸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선민들은 세계 각종 짐승과 음녀의 박해를 받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고 하셨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어떤 분들은 그럼 ‘짐승의 표’는 뭘 말하는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짐승의 표’는 구체적으로 뭘 말하고 있는지, 지금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사실을 한가지 알려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사탄과의 많은 싸움, 사탄에게 빼앗기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박해하려고 하고, 또 우리를 핍박해서 감옥에 넣고, 살길을 끊어 버리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각종 시련이 닥치면 누군가는 사탄에게 잡혀가는 일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사탄에게 잡혀간 다음, 일단 사탄 편에 서서 말을 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의 믿음은 불합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불신파라고 하십니다. 불신파는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그런 게 짐승에게 잡혀 간 것에 속합니다. 사탄에게 잡혀가거나 투항한다면 하나님 편에서 봤을 때, 짐승의 표가 있게 되는 겁니다. 지금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큰 붉은 용이 와서 잡아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계속 믿으면 옥살이시킬 거야! 징역 몇 년 때릴 거야! 남편(아내)의 직장도 잃게 되고, 자식들 대학입시 자격도 박탈시킬 거야! 그리고 가족들 일자리도 다 막아 놓고, 살길도 다 끊어 버릴 거야!”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짓거리 아닙니까? 어쨌든 각종 시련이 다 닥치게 됩니다! 오늘 임하지 않았다면 내일 임할 것이고, 내일도 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임하게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시련이 임하게 하십니다. 왜 시련이 임하게 할까요? 시련이 없다면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환난 속에 빠뜨리지 않으면 충성을 볼 수 없고, 진심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그 진심과 충성심과 순복을 반드시 드러내야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매 사람에게 다 그렇게 요구하십니다. 국도시대는 그렇게 점검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렇게 점검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해, 어떤 관문에서 사탄에게 사로잡히거나 ‘짐승의 표’를 찍게 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영영 잃게 되는 겁니다. 말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으로 들림받은 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싸움과 큰 환난이 닥치게 될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지 계시록에서 찾아보세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온 자”(계 7:9),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계 7:14), 그런 구절들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한 걸음도 뒤처지지 않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긴 자들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을 위해 증거한 사람도 있고, 순교한 사람도 있습니다. 순교한 영혼들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예수님을 위해 증거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말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는 딱 보면 몇 부류의 사람들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결말이 있게 되는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지, 사탄에게 사로잡혀 간 자들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몇 부류의 사람들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