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2집 (a) 하나님 말씀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 관한 설교 교통

【132-A-3】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서 밝히신 걸 교통해 보도록 합시다. 이 말씀의 두 번째 단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지금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함의(含義)를 깨달아야 한다. 이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한 하나님을 믿는 데에 내포된 뜻은 다 너희의 긍정적인 진입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실질에 대해 해부하려고 하는데, 물론 이것은 부정적인 면을 드러냄(원문: 反面)으로 너희를 인도하려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영원히 너희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의 경건과 충심을 자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밝히지 않으셨다면 어떨까요?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영원히 너희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의 경건과 충심을 자랑할 것이다.” 이 말씀은 사실이 아닙니까? 믿기지 않는다면 교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라고 물어 보십시요. 그럼 아마 “네, 물론이죠, 의심할 나위 없죠. 제가 얼마나 많은 걸 버리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아세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당신은 경건한 신자입니까?” “물론이죠.” “그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있습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죠. 저는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교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그렇게 확신합니다. 예전에 우리도 주님을 믿을 때는 그랬습니다. 교계 사람들에게 관념이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너무 뒤떨어졌어요, 너무 패역해요, 너무 외식적이에요!”라고 하지 마세요. 실은 우리도 교계에 있을 때, 다 그런 꼴이었고, 그들과 똑같았습니다. 조금도 더 나은 데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점이 뭘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여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진면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효과가 있게 된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보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교통하든 반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 앞에 안정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교통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순복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우리는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심판과 형벌을 경력했습니다. 비록 경력한 시간은 서로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의 말씀에 심복구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음성이구나. 이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구나.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고 계시는구나.”라면서 거기까지 알게 됐습니다. “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게 됐어, 이게 가장 실제적인 사랑이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심판하시는 건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 위해서야! 정결케 하는 건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온전케 하시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만 진정으로 천국으로 들림받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하면서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모두 순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고 형벌하시든, 그런 말씀들을 듣고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많은 가책을 받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참 아들이면 징계하고, 사생자면 징계하지 않죠! 우리가 바로 진정한 의미상의 하나님 선민이고, 국도시대의 하나님 선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만한 순복이 있게 되었고, 예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께 가장 위안이 되는 일입니다. 어떤 분은 역대 성도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얻도록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자, 오늘날 이렇게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건 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고, 정해 주신 복이란 걸 깨닫고 너무 기뻐 춤을 춥니다. 그러다가 심판과 형벌에 관한 말씀을 보게 되자 울면서 도망가 버립니다. 복을 받는 건 괜찮지만 심판하고 형벌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또 은혜를 베풀어 기쁨을 누리게 하는 건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고통받게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을까요? 참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 어떻게 행하시든 다 하나님 앞에 순복하고 말씀에 순수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밝히시면 그것이 우리의 진면모라는 걸 깨닫고 순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님,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것이 다 맞습니다. 저는 당신께 순복하겠습니다.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이니 반항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정결케 될 때까지 순복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이렇게 기도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렇게 순복하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참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 가장 열납되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장 칭찬받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늘 자신을 과시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전부 “아니에요! 저는 그렇지 않아요. 이건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전 안 그래요! 저는 그 사람들보다 낫습니다. 온 교계에서 제가 가장 경건하고, 가장 충성심이 많고, 믿음도 제일 큽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일까요?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일까요? 늘 잘난 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늘 틀렸다고 여긴다면 큰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너무 패역하고,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인 겁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밝히신 내용 중에 어떤 건 자신에게 부합되지 않고, 어떤 건 자신에게도 확실히 존재한다고 하고,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존재하는 건 인정하고 순복한다고 합니다. 그럼 인식하지 못한 부분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어떤 말씀은 너무나 깊습니다. 본성을 매우 엄하게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럼 아직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당할까요? 순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순복하는 걸까요? 하나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진실한 말을 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단순하게 그대로 털어놓으면 됩니다. “하나님, 이 말씀은 제가 아직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깊다고 생각되는데, 저는 아직 분량이 작아 여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 당신의 말씀은 진리이고, 절대 틀릴 리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순복하겠습니다.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기다려서 다시 하나님과 교통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런 일에서 어떤 태도인지 아십니까?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은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감찰을 제대로 못하신 거 아닌가? 여기서는 감찰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네! 다른 건 사실에 부합되는데, 여기 말씀은 사실과 맞지 않아! 틀렸어. 그래서 이 말씀은 인정 못해! 틀렸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입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분량이 작은 것이지, 3년, 5년 후에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10년 후에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리도 그렇게 교만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3년, 5년을 경력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땐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지금 보니까 전혀 틀리지 않아”라고 하면서 후회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는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지 않고, 사실을 과장했다고 했었는데, 저는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그렇게 경력했습니다. 교만 자대하고 독선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은 심판에 관한 말씀이 너무 엄하면 가슴에 찔리고, 괴롭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그런 곳을 보게 되면 그냥 넘기고 다음 페이지 보면 돼! 말씀을 보다가 편안하고 사람의 관념에 맞으면 그 페이지 계속 보면 돼! 자꾸 심판에 관한 말씀만 봐서 자신을 괴롭힐 거 뭐 있어? 축복에 관한 말씀이나 많이 보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마음을 나눈 말씀들은 얼마나 좋아, 보면 볼수록 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다 그런 식으로 경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후회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의 뺨을 때립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가장 엄한 말씀과 인류를 폭로하신 가장 엄한 말씀을 보게 되면 얼른 밑줄을 긋습니다. “빨리 줄을 그어 놔야지.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진입해야 할 부분이야! 여기에서 진리를 찾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여기에 있어! 빨리 줄을 그어 놔야지!”라고 합니다. 그 반면에 축복에 관한 말씀, 위로의 말씀, 그리고 사람의 관념에 맞는 말씀을 보게 되면 “안 볼 거야! 중요하지 않아,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그런 말씀들이 가장 중요해. 거기에 생명 진입이 있고, 거기에서 성정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거기에서 순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참된 태도가 있는 거야! 이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거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위로할 수 있는 거야.”라고 합니다. 지금 보면 새 신자들 가운데 대부분 사람들의 정형이 우리가 금방 믿고 말씀을 읽기 시작했을 때의 정형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패괴가 다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경력해 왔는지를 여러분에게 교통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치욕이고, 우리의 패괴 유로입니다. 여러분이 인식하고 깨달아 교훈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말씀을 계속 교통하겠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내가 만일 너희 마음 깊은 곳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지 않는다면, 너희 각 사람은 모두 면류관을 자신의 머리에 쓸 것이고, 모든 영광을 다 자신에게 돌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까? 사실에 부합됩니다. 너무 정확합니다. 패괴된 인류는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의 추한 진면모를 폭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다 잘난 척만 할 겁니다! 누가 과시할 줄 모릅니까? 저도 자신을 과시할 줄 압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도 추구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어요! 저는 경건한 사람이에요.” 이런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아 사람들이 듣지는 못했지만 저는 간혹 속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 마음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저도 인정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모두 면류관을 자신의 머리에 쓸 것이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렇게 경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아주 잘난 척하면서 제 자신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다고 여겼을 겁니다. “누가 물러선다 해도 난 절대 물러서지 않아! 난 하나님께 가장 순복하는 사람이고, 죽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거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시면 난 다 버릴 수 있어. 직장도, 가정도 다 버릴 수 있어.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이 가장 커.” 이런 자화자찬은 어떻습니까? 큰 면류관을 씌우지 않았나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너희의 교만하고 자대(自大)하는 본성이 너희를 부추겨서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게 하며, 너희의 그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게 하여 너희의 속셈, 관념, 사치스러운 욕망, 탐욕스러운 두 눈을 빛 속에서 폭로시킨다.” 우리가 이런 패괴를 유로하고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고 또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면서 우리의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고, 자신의 관념과 속셈, 사치스러운 욕망, 탐욕스러운 두 눈이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근원은 뭘까요? 어떻게 초래된 걸까요? 하나님은 “너희의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이 너희를 부추겨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은 정확하게 말하면 뭘까요? 바로 사탄의 본성이고, 사탄의 성정입니다. 그럼 우리가 사람이 늘 죄짓고 늘 패괴를 유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근원을 찾지 않고 패괴가 유로되면 억제합니다. 거짓말을 한 다음에 “이번에 거짓말을 했지만 다음에는 거짓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거역과 대적을 유로한 다음에도 “이번에 거역하고 대적했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관념이 생겨 불복한 다음에도 “이번에는 관념이 있었지만 다음엔 관념이 없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런 패괴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바로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입니다. 이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은 쉽게 해결될까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주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상관없이, 심지어 평생 동안 믿고 주님을 위해 화비했어도 패괴 유로는 끊이질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죄를 짓고는 자백하고, 자백하고는 또 죄를 짓는 악순환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죽는 날까지도 주님께 죄를 자백해야 했습니다. 어떤 죄를 자백해야 했을까요? “주님! 제가 오늘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님, 오늘 또 육체를 방종했습니다. 육체의 누림을 탐했습니다. 주님, 오늘 또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늘 이렇게 기도하면서 죄를 자백하지만 죄짓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건 틀림없지만 왜 지나고 나면 또 끊임없이 죄를 지을까요? 왜 어떻게 해도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요?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정말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도시대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죄짓는 그 근원을 알려 주셨습니다. 근원은 바로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이고, 바로 사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탄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로 그 본성이 우리를 지배해 이것을 하게 하고 저것을 하게 합니다. 우리를 부추겨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고, 우리를 부추겨 육체의 누림을 탐하게 하며, 우리를 부추겨 명리와 지위를 좇게 하고, 우리를 부추겨 거짓말로 자신의 체면을 지키게 하며, 우리를 부추겨 늘 자신을 수호하게 하고, 늘 복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분투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에 대해 여러 가지 관념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각종 거역과 대적을 초래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되고, 마지막엔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합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다 사탄의 그 본성으로 인한 것입니다. 화근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국도시대에 와서, 하나님은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사탄의 그 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왜 드러내셨을까요? 바로 사람들에게 인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알게 되면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은 진리가 많아지고 진리가 우리의 생명이 되면 사탄의 본성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붕괴되고 무너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