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1집 (b)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131-B-5】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면 그 마음가짐과 목적이 다릅니다. “난 면류관을 위한 것도 아니고, 상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야. 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될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거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려고 하는 거야.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지불하신 대가가 너무나 많아, 너무 많은 고난을 받으셨어.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난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라고 합니다. 그럼 본분을 다 했을 때는 이미 늙었고, 또 죽는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으니 “하나님의 안배대로 하겠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제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입니다.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진리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정결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복을 얻고자 하는 속셈이 없고 자신의 전망과 운명을 위해 분투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정결케 된 게 아닐까요? 정말 정결케 된 것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들이 재산을 빼앗거나 물려받기 위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키워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효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인품이 어떻습니까?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부모에게 효도하겠습니까? 재산을 물려받고 빼앗으려고 효도하는 것입니다. 이것 보세요, 그런 마음가짐은 어떻습니까?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습니까?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유익한 점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탄 마귀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더 이상 사탄에게 묶여 있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제일 주요한 건 진리란 뭔지, 그러니까 무엇이 진리인지, 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진리가 인류에게서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고,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 우리들의 어떤 것을 정결케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온전케 할 수 있는지, 우리를 무엇으로 만들 수 있는지입니다. 이런 것을 통찰할 수 있나요? 이런 걸 분명히 깨달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기꺼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진리를 얻는 건 지식을 배우는 것과 다릅니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든 3년, 5년, 아무리 길어도 10년 정도 배우면 거의 다 배웁니다. 하지만 진리는 3년에서 5년 정도 추구하면 그 길을 좀 찾게 됩니다. 3년에서 5년 정도면 효과를 조금 볼 수는 있지만 진실로 완전하게 진리를 얻으려면 평생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진리의 가치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하고 왜 진리를 추구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진리이고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가 뭔지를 몰랐고, 맹목적으로 진리를 정죄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이 방면에 대해 여러분과 교통을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읽은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의 귀숙을 정하시는 데에 관한 가장 관건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귀숙을 정하실 때는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정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진리란 무엇이냐, 도대체 무엇을 진리라고 하느냐, 하나님은 왜 사람의 귀숙을 정하실 때 다른 건 안 보시고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만 근거하시냐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평생 수고하며 사역했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무조건 들림받아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들림받지 못한 거죠. 주님께서 그들을 한쪽에 버려두시고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때부터 주님을 의심하고 심지어 주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사람이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서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일하고, 수고하고 대가를 지불해 놓고는 주님께 상을 바란다면, 너무 그릇되지 않습니까? 그건 사람이 그릇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사람이 그릇되고 망령되면 치우치기 쉽고, 착오가 생기기 쉽고,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꼭 이럴 거다, 꼭 저럴 거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 보면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죠! 판단을 잘못하면 어떤 경우에는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말하자면, “전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겠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수님의 이름이 더 믿음직스러워요, 성경적 근거도 있고요. 전 그냥 성경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생각 하나의 차이로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습니다. 결과는 징벌을 받아서 버려졌고 천국에 들어갈 기회도 잃게 됐습니다. 천국의 꿈이 철저히 깨지고 만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죠? 생각 하나의 차이입니다! 대세의 흐름을 따라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면 끝입니다. 무조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교의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주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습니다. 유대교 신자들도 다 교계의 지도자들을 따라 주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유대라는 나라는 훼멸됐고, 유대교는 2천년 동안이나 황폐했습니다. 그게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닌가요? 생각 하나의 차이로 예수님을 부인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재앙이 떨어진 것입니다. 국도시대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시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드러내는 시련이 다시 한번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계 목사 전도사들의 말을 따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계속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결국 교계는 황폐해졌고, 큰 바벨론이 됐습니다. 큰 바벨론으로 됐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바벨론은 이방인의 성입니다, 훼멸된 성이죠. 교계가 이방인의 큰 성 바벨론이 됐다는 건 바로 하나님이 그들을 전부 이방인으로 처리하고 불신파로 처리하신다는 뜻입니다. 전부 훼멸하신다는 뜻이죠.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국도시대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몫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사람의 말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몇 페이지 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건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많은 목사들과 영적 위인들의 책들을 봤지만, 이런 말씀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직감이 있는 사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처녀가 아닌가요? 슬기로운 처녀는 어떤 면에서 슬기로운 걸까요? 하나님의 음성임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직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임을 인식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이 오셨고 영체가 아닌 육신에 오셨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셨는데, 그 음성을 들어보니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님의 음성이었어요. 그분이 말씀을 하실수록, 우린 더 많은 걸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이 바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오셨다는 걸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음성을 발하셔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근데 받아들인 사람들이 실제로 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교계에서 나온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고집하지 않고 ‘주 예수’라는 이름만 붙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돌아오신 예수님이 맞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에 내놔도 다 기적입니다. 근데 그릇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중국에 오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중국은 독재국가 아닙니까. 우리 나라보다 후진국입니다. 하나님이 중국에 계신다면 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민주 국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곳에 오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게 맞는 거죠. 독재 국가는 낙후한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에 오셨다면 안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만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셨다고 해도 자기 나라에 오신 게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성정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 관념에 부합돼야 한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조물주이십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셔서 하신 말씀을 보고는 확실히 하나님의 음성이 맞다고, 진리라고 합니다. 근데 하나님이 중국 사람으로 성육신하셨다는 이유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미국 사람, 영국 사람, 프랑스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죠.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받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누구 탓일까요?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한 탓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이 너무 그릇되고 교만한 탓일까요? 자기가 교만한 걸 탓해야 됩니다. 자업자득이죠. 운이 나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교만하라고 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안 믿는다고 하면서 교계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안 받아들였으니 자기도 안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또 교계 흐름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온 교계를 훼멸하시는지 두고 보겠다고 하죠. 이렇게 하나님께 도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렇게 도전하는 사람은 어떤 성정이죠? 너무 교만자대합니다. 감히 하나님께 도전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얘기 중에서 어떤 건 인정하고 어떤 건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인정하고 안 하고는 개인이 터득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하는 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나머지는 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깨닫고 인식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은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복하고 대항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한다면 손해 보는 건 누구겠습니까? 손해 보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이 없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지휘하는 대로 움직이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도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를 돌아봅시다.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기까지 대략 10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100년은 노아가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한 100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100년 동안 노아를 통해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려 한다는 증거를 들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근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노아, 너 미쳤구나.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앉았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다는 말씀을 왜 너한테만 하신 거야? 어떻게 멸하시는데? 우린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살아오면서도, 홍수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 하나님께서 왜 하필 너한테만 말씀하시고 우리한텐 왜 안 하신 거야? 난 이거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 하나님이 우리한테도 말씀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을 봤다면, 그럼 믿을 거야! 근데 하나님이 너한테만 말씀하시고 우리한텐 말씀 안 하셨으니 믿지 않을 거야! 우린 불가능하다고 봐.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데. 네가 하는 말 증거 있어?”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을까요, 적었을까요? 틀림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 노아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 노아를 믿어 주지 않았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네가 방주를 다 만든 다음 홍수가 나는지 지켜보겠어. 그리고 홍수가 안 나면 그때 가서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거야.”라고 말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난 인정 못해. 하나님이 어떻게 홍수로 멸하는지 한번 두고 보겠어.” 이렇게 따지고 드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틀림없이 있었을 겁니다. 어느 날, 방주가 다 완성되고, 각종 동물들이 방주에 다 들어가고 노아 일가 여덟 식구도 다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과 동물들을 방주에 들여보낸 다음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40주야를 내리셨죠. 40주야면 물이 얼마나 됐을까요? 그 당시 하늘 아래 제일 높은 산까지 다 물에 잠겼습니다. 그러니까 키가 제일 큰 사람이 산 정상에 서 있어도 잠겨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때 어린아이들이 많았을까요, 적었을까요? (많았습니다.) 틀림없이 많았습니다. 다 물에 잠겨 죽었습니다. 성경에 12살 아래의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 긍휼과 사랑이 없으신 걸까요? 하나님의 성품이 자비롭고 긍휼이신 건 맞습니다. 하지만 공의롭기도 하십니다. 율법시대를 보세요. 하나님을 증오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3, 4대까지 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복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증오하고 광적으로 대적하는 자들의 후손이 축복을 받을까요? 만약 그런 사람의 후손이 마침 한두 살, 즉 열두 살도 안 된 아이라면 멸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 아이들은 왜 멸망당했을까요? 그건 그 조상이 하나님을 증오하고 대적해서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또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워서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긍휼과 사랑이기에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이 다 있습니다.

우리, 그러면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신 다음을 봅시다. 니느웨라고 하는 성읍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요나를 그 성에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40일이 지나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멸하실 것인데, 지금 회개해도 늦지 않다고 알리게 하셨습니다. 성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게 됐고, 왕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왕은 백성들을 이끌고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성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요나는 가기 싫어했습니다. 왜 가기 싫어했을까요? 요나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어.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축복해 주시지 말아야 돼! 너희 같은 이방인들은 아예 싹 다 훼멸되는 게 맞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참 옹졸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옹졸하고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징계하신 뒤에 다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다시 갔죠. 요나가 말씀을 전하니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습니다. 온 성이 다 회개했고, 그래서 다 용서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11)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이 만을 보시고 차마 그들을 멸하지 못하셨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가 있지 않습니까?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소돔 성 하나가 전부 훼멸됐다고 해서 하나님께 공의와 위엄만 있고 긍휼과 자비는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니느웨 성은 예외적입니다.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이 만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 사람들이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께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해 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성을 멸하지 않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