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1집 (a)하나님 말씀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1-A-6】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이 ‘진심’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럼 무엇을 진심이 아니라고 할까요? 진심이 아니면 늘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고, 늘 다른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면류관을 얻고 상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위를 얻어 남보다 뛰어나게 되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화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죽지 않는 결말을 얻어서 대재난에서 벗어나려고 화비하죠. 이런 속셈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몇 가지 속셈이 있으면 큰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혐오하시고 증오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털어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 부당한 속셈들은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어떤 사람을 교만 자대하고 사탄의 부류에 속한다고 심판하고 형벌하시면 “사탄의 부류요? 저는 아닌데요.” 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말 위험합니다. 심판하는 말씀이 자기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이치를 따지면서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거나 혹은 그런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고 자기에게는 비춰 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본분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처하면 안 됩니다. 대처하기만 하면 반항하면서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처하지 않으면 말없이 열심히 하면서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지만 대처만 하면 바로 마귀 사탄으로 변해서 노발대발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일까요?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양처럼 하나님께 목숨까지 맡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든 순복하고 이치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어떻게 하시든 다 순복한다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께 얻어질까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지 20여 년이 된 형제자매들이 꽤 많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늘 이치를 따지면서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했었습니다. 수리 대처가 임하기만 하면 펄쩍펄쩍 뛰면서 패역과 본성을 유로했습니다. 그렇게 유로하니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 3일이 지나면 얌전해졌고 괴로워했죠. ‘내가 왜 또 펄쩍 뛰었지? 마귀 본성이 발작해서 순복하지 않았어. 순복하지는 않고 이치만 따지고, 내 관념과 상상을 다 진리인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하고 저촉하는 말들을 했구나.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했구나.’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뉘우치지 않겠습니까? 그 며칠간 아무도 대처하지 않으니 마음이 괴로웠고, 그 고통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나면 어떤 결과인지 알겠습니까? 연단을 받게 됩니다. 마음이 괴로워도 말하지 못하고 자신을 증오할 뿐입니다. 그러고는 맹세하죠. ‘하나님, 다음에 또 대처하시면 그땐 꼭 순복하겠습니다. 꼭 실제적으로 순복해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다시는 반항하지 않고, 이치를 따지지 않겠습니다. 제가 또 이치를 따지면 저주하고 징벌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니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심판과 형벌이 임했습니다. 근데 몇 분도 참지 못하고 또 펄쩍 뛰면서 하나님께 변명을 늘어놓고 이치를 따집니다. 그렇게 따지니 다른 사람들은 ‘이치를 따지시네요, 그럼 좋습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참 잘했어요.’라면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면 또 힘없이 주저앉아 연단받고 징벌받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괴로워하죠. 나무라거나 책망하지도 않았는데, 매우 괴로워합니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왜 또 그랬지? 지난번에 기도하면서 순복하겠다고 굳게 다짐까지 해놓고, 왜 또 그랬을까? 왜지? 사탄 본성 때문이야. 이게 아직 바뀌지 않았어. 죽어도 뉘우치지 않아. 에휴, 진짜 깊이 뿌리박혔네! 강산은 바뀌기 쉬워도 본성은 바뀌기 어렵다더니 진짜 그러네!’ 이렇게 생각하니 또 몰래 눈물을 흘리게 되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탄 본성이 너무 깊이 뿌리박혀 구제불능이라는 걸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 이젠 대처하지도 마시고, 그냥 징벌해 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좀 괜찮아졌습니다. ‘이젠 이 옛 사탄, 육체와 결사전을 벌여야겠어. 꼭 징벌받아서 죽이고 말 거야!’ 그렇게 마음이 또 평안해졌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도 안 돼서 일이 임하고 수리 대처가 임하니 또 펄쩍 뜁니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왜 이러는 거지? 왜 계속 변화되지 못하지?’ 이렇게 경력하는 것이 정상일까요? 아닐까요? 이런 사람이 도태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경력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정상이라고 해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렇게 해도 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제멋대로 음란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과오입니다. 한두 번은 있을 수 있어도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그러나 패괴 성정을 해결할 때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런 공식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알아들으셨죠? 사람의 사탄 성정이 정결케 되는 것은 한두 번이나 서너 번에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약한 불에서 천천히 연단하고 천천히 제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을 보세요. 젊었을 때 결혼해 서로 사랑했지만 며칠 못 가서 싸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두어 번 말다툼 하다가 나중에는 손찌검을 하고, 그러다가 발길질까지 합니다. 그렇게 평생을 싸우면서도 이혼은 하지 않습니다. 몇 살이 되면 더 이상 싸우지 않을까요? 60세 정도 되면 싸울 기운도 없고 따질 기운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때리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죠. 그때가 되면 노부부가 아주 금슬이 좋지 않겠습니까? 화목하게 지내면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럴 기운이 없어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60여 세가 되면 한평생을 다 경력해 봤고 받을 고난도 다 받은 것입니다. 그때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이나 정상 인성을 다 갖추게 되는 거죠. 젊었을 때 유로한 사탄 성정이나 불같은 성격을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보면 그게 뭐냐면서 혼자서도 역겨워서 지난날은 생각하기도 싫어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뭐든 순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대하든 마음으로 순복합니다. 그때면 무엇이 정상 인성이고, 무엇이 양심이고 이지인지 알겠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말하는 것도 정직하게 하고, 일도 성실하게 합니다. 또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이고, 사람의 생각에 부합되고, 모든 일이 다 술술 잘 풀립니다. 왜 그럴까요? 생명이 성숙해진 게 아닐까요? 젊어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많은 진리를 깨닫고, 실패도 많이 겪고 나니 이제는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힘들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쉬워지고,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도 쉬워지고, 형제자매들에게 순복하는 것도 쉬워집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을 너그럽게 대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도 쉬워집니다. 또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것도 쉬워지고,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도 쉬워지죠. 뭐든 다 쉬워지고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다시 부정적인 일을 하라고 하고, 명예와 이익과 지위와 허영심을 위해 어떤 일을 하라고 하면 하지 않을 것이고, 수치스럽다고 여길 겁니다. 그러면 육체를 배반하고, 육체에 속한 그런 일을 포기하기는 더욱 쉬워집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쉽고, 육체를 배반하기는 더욱 쉽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근데 갓 믿기 시작할 때는요?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육체를 배반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육체를 배반하는 게 쉬워지는 건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도달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배반하기 쉬우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반드시 쉬울 거고, 진리를 실행하기 쉬우면 육체를 배반하는 것도 쉽습니다. 이것은 서로 같은 것입니다. 생명 경력이 어느 한 정도에 이르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나 육체를 배반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육체를 내려놓는 것은 더 어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일을 하면서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죠. 이런 것은 다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남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도 어렵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좀 하는 것뿐인데, 자신의 책임을 다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새 신자인 것을 보고는 새 신자에게 필요한 것에 따라 도와주면 되니까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만약 개인을 위해 일하거나 혹은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하려고 한다면 수치스럽다고 느끼고, 마음이 편하지 않고, 비열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정도의 생명 경력은 하나님께 순복해서 얻은 게 아닐까요? 맞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해서 생긴 효과죠. 계속 순복하다 보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또 계속 진리를 실행하다 보면 그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늘 성실한 사람이 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어느 날엔가는 그것이 어렵지 않고, 다 쉬워질 것입니다.

그럼, 이런 효과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은 첫째,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둘째, 모든 진리를 실행하면서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고,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떠나지 못하죠. 또 하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못하죠.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얻어진 게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하나님께 얻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얻어지면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드디어 얻었다고 느낍니다. 그럼 여기에서 ‘얻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많은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크게 말하면, 하나님을 얻었고 또 하나님께 얻어졌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얻어지면, 하나님을 떠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 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증거합니다. 그런 사람이 살아내는 것은 바로 가장 의의 있는 인생입니다. 그런 사람이 말을 하고 일을 하면,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흡족해하시고 위로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인류를 창조할 때부터 최종에 인류를 어느 정도까지 온전케 할지 생각했느니라. 지금 그 계획을 드디어 이루었느니라.”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 하나님과 완전히 합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마음을 기울여 참답게 듣고 묵상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선택이나 취향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분부에 따라 실행하죠. 하나님은 사람을 이 정도까지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럼 그것을 무엇에 의해 이루실까요? 바로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에 의해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다 경력하고 나면 그런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많은 형제자매들이 날마다 본분을 하고,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날마다 진리를 교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게 아닐까요? 이렇게 경력하고 실행하면서 10년, 20년 지나면 성과가 있고, 어느 정도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소질이 뛰어난 사람은 소질이 뛰어난 만큼 효과가 있고, 또 소질이 낮은 사람은 소질이 낮은 만큼 효과가 있습니다. 1년 경력하면 그만큼 효과가 있고, 10년 경력하면 그만큼 효과가 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