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1집 (a)하나님 말씀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1-A-4】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복한다〉는 찬양을 듣고, 전에 한 형제가 어떻게 말했는지 아십니까? 이 찬양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노래를 잘 불러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복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어떤가요? 어떤 사람은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가장 큰 복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있으니, 하나님 사랑하는 것만 추구하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생명 진입에서 관건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거야. 난 나 자신을 인식하는 일만 중요시할 거야! 자신을 깊게 알게 되면, 생명 성정이 변화될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관건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거야. 내가 성실한 사람이 돼서 거짓말만 안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습니까? 하나님 역사에 순복한다는 것은 그저 말씀 한 마디만 실행하면서 경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한 마디는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하고, 말씀 한 마디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대표하지 못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한다는 것을 가리켜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에 진심으로 순복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진심으로 순복한다는 걸 말합니다. 아셨습니까? 주로는 역사에 순복하는 걸 말합니다. 심판과 형벌, 책망과 징계, 시련과 연단을 거쳐야 마지막에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 대단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제가 어떤 부분에서 노력을 들였는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는 걸 중요시했습니다. 그다음 자신의 패괴된 본성 실질을 대조해 봤습니다. 둘째, 본분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할 수 있도록 이 부분을 중요시했습니다. 셋째,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중요시하면서 정상 인성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는데, 사치하지 않고 욕망을 품지 않게 되었습니다. 넷째, 깨달은 모든 진리로 말미암아 더 많은 진리를 경력하게 되었고, 인식이 있게 되어 실제를 어느 정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경력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게 되고, 변화도 어느 정도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느 방면에서나 다 조금씩 진리 실제를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에 마음을 들일수록,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일수록 더 많이 얻게 됩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상고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겉면의 행위로 종교적인 규례만 지키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아무리 오래 지킨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것과 성정 변화를 중요시하고, 일을 보는 관점의 변화를 중요시하고, 하나님 알아가는 것을 중요시해야 나중에 진리 실제를 살아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라는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얻는 하나의 경로입니다. 만약 늘 순복하려는 마음이 없고, 항상 복 받을 마음을 품으면서 항상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를 추구하고, 항상 누구보다 잘난 사람이 되려고 하면서 늘 높은 지위를 추구한다면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태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도태된다”는 건 뭘 말하냐고 묻습니다. 그건 성령의 역사를 잃기 쉽고, 하나님께 내버려지기 쉽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한쪽에 두고 거들떠 보시지도 않는다는 걸 말합니다. 이런 게 바로 하나님께 도태된 겁니다. 일단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 스스로는 아무리 믿어도 소용없습니다. 사람들이 교계에서 주님을 믿는데, 성령께서는 거기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계에서 아무리 믿어도 백년을 믿건, 천년을 믿건 소용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죽으면 또 지옥에 가야 합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하나님의 심판·형벌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은 무조건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 중에서 일부분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말씀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 순복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대하면 됩니다. 그리고 맞서지 말고, 논단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이 말씀은 너무나 깊어서 내가 다 아직 깨달을 수 없으니, 우선 내려놓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다 보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맞지도 않고, 사실에도 부합되지 않아.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소한 일을 크게 떠벌려 흠만 잡아. 이건 하나님의 말씀 같지 않아.’ 그렇게 말끝마다 논단하지 마세요! 만약 마음에 정말로 그런 관념과 생각이 있거나 또는 그런 말을 한다면, 그건 어떤 문제일까요? 그것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일까요? 그러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집의 사역에 엇나가고 방해되는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인성도 없고 양심도 없고, 또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냐고 책망하자, 그가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난 하나님께만 순복하지, 사람에겐 순복하지 않아.’라고 합니다. 그럼, 그 사람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일까요?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늘 관념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항상 저촉되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지 않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밖에,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그 사람은 대처 수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이건 사람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질책하시는 게 아니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처하신다면, 순복하겠어. 근데 사람이 대처하는 거라면, 순복하지 않아! 난 하나님께만 순복하지, 사람에겐 순복하지 않아.’ 이건 어떤 문제일까요? 이것은 가장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을 통해 대처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쓰시면서 역사하실 때, 모세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사람들을 대처하고 질책할 때, 사람들이 순복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게 아닙니까? 그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겁니다. 모세가 사람들을 대처하거나 책망할 때,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께 순복하지 사람에게는 순복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면, 그건 무슨 문제일까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장 크게 패역하고, 하나님을 가장 교활하게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정확한 말로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가장 적절하고 가장 합리적인 말로,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가장 교활하게 대적하는 게 아닙니까? 그건 성질이 심각합니다. 그 밖에,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형제자매들을 통해 사람을 대처하시고, 가로막고,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 인사물(人事物)을 통해 사람을 징계하고, 책망하고, 가로막으십니다. 그런 일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죠!

만약, 어떤 수리 대처가 임하든 다 사람의 이론에 따라 “난 하나님께 순복하지, 사람에게는 순복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하나님 역사에 순복하는 걸까요? 어떤 사람은 순복하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왜일까요? 인식하기 쉽지 않죠? 우리가 말하는 건 실제입니다. 하나님 역사가 실제적으로 임해 생기는 여러 가지 정형들에 대해 사람들은 분별할 줄도 모르고 실행할 줄도 모릅니다. 여전히 실행의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일에서 세부적인 정확한 실행이 없으면서도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건 빈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여긴다면, 뭘 가지고 본인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나요? 하나님께 순복하는 실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순복하는 실제가 어디 있습니까? 얘기해 보실 수 있나요?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저를 대처하시지도 않으셨는데, 어떻게 순복합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저를 대처하신다면, 전 무조건 순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가요? 좀 실속이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날마다 사람을 수리 대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하나님은 지금까지 저를 한 번도 징계하신 적이 없어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질책하셔야만 하나님이 사람을 책망하시는 거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저를 책망하신 것도 아니고,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이 오셔서 저를 책망하신 것도 아니고, 성령께서 친히 나타나서 책망하신 것도 아니라면, 그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겁니다. 사람에게서 비롯된 거라면 저는 순복하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식으로 깨닫는 것이 맞나요? 어디가 잘못 됐죠? 그 사람은 어떤 것들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데는 세부적인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련이란 뭘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련이란 큰 환난 같은 것들이 임하는 거죠! 질병이 임한다거나 생활고가 온다거나 박해를 받는다거나 하는 걸 다 시련이라고 하죠. 큰 붉은 용에게 붙잡힌 것도 시련이고, 암에 걸린 것도 시련이고, 가정에 누가 죽은 것도 시련이고, 천재지변이나 사람을 통해서 임하는 재앙도 다 시련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될까요? 시련이란 뭘까요? 사탄의 시험이란 뭘까요? 어떻게 설명할까요?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진리의 세부적인 것을 말하기만 하면 모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드러내십니까? 어떤 사람은 패괴가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드러내는 거라고 합니다. 그럼 흘러나오지 않을 때는 드러내지 않으셨나요? “드러내지 않았죠. 패괴가 다 감춰져 있었으니까요. 패괴가 흘러나오면 그때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신 후에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도태시키십니다! 아무튼 패괴를 유로하기만 하면 드러난 거죠. 드러나게 되면 도태되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 맞는 말일까요? 제멋대로 규례에 씌우는 겁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 드러내십니다. 특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마지막에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계속 드러내고, 계속 연단하며, 계속 정결케 하십니다. 드러난 건 도태된 걸 대표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생명 경력에는 모두 드러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에서 패괴를 유로하게 되었는데,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깨우쳐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니, 자신이 유로한 그런 패괴 실질을 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드러난 게 아닌가요? 그렇게 드러내는 건 뭘 위한 걸까요? 정결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식하게 해서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겁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정결함을 받은 겁니다. 만약 진정으로 깨닫지 못해 회개하지 못한다면, 정결함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드러나 도태되는데, 그렇다면 그건 어떻게 된 걸까요? 그런 자들은 적그리스도와 악마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일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게 하시는 겁니다. “아, 저건 마귀구나! 제대로 봤어! 저 사람이 뒤에서는 저런 짓을 하고 있었구나. 저걸 전에는 알 수 없었지. 말하는 걸 들을 땐 얼마나 듣기 좋았는데, 뒤에서 하고 다닌 그런 사실의 진상을 이렇게 까발리니까 알게 되는 거지!” 그런 것이 바로 드러나게 되어 도태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악인과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추악함과 패괴된 진상, 그리고 사탄의 몰골이 일단 철저히 폭로되면, 그것이야말로 드러난 것이고, 도태된 겁니다. 아셨나요?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런 사람도 항상 어느 정도 패괴를 유로는 하지만, 진리를 찾고 구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게 되어 참된 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드러내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또한 그 사람에게 정결함을 받아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겁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들에게도 드러나게 되는 일이 있지만, 그건 도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아셨죠?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 패괴를 유로하여 드러나게 되는 그 성질과 진리를 증오하는 적그리스도, 악마들이 드러내는 그 실질에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차이가 있습니다. 패괴 유로와 사탄의 본성 실질은 다릅니다. 악마가 작심을 하고 살인하는 걸 보세요. 그 속셈이 드러나는 순간, 그건 죽을 죄입니다. 그게 바로 도태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마음으로 규례를 지켰거나 혹은 진리를 깨닫지 못해 미련한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하거나 혹은 육체가 방탕해 하나님께 패역하고 진리와 위배되는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성질과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성질은 다릅니다. 그건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악을 행해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는데, 그 사람은 방해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무너뜨리고 혼란케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 그 성질은 드러나게 되면 다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역을 잘하기 위해 했는데, 본인에게 경력이 없고 길도 없어,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호의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다가 사역을 잘하지 못해 실패한 겁니다. 그런 것들과 적그리스도, 악인이 방해하여 사역을 무너뜨리는 그 성질이 같나요? 그건 성질이 다릅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돈을 보관하다가 몰래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다고 핑계를 댑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교회의 돈을 보관하다가 정말 조심하지 않아 사기를 당해 도둑이 가지고 도망가게 됐습니다. 이 두 일의 성질이 같을까요?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일에 대해 다르게 처리하고, 처리하는 원칙도 다릅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그 사람이 일을 저지른 성질에 근거해 처리를 합니다. 한 사람이 거짓을 꾸민 그 실질은 하나님의 제물을 횡령한 것인데, 그 실질은 악마이기에 반드시 출교시켜야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변함없이 하나님 집의 사역을 수호하였고, 또 하나님 집을 위해 대가도 많이 치렀으나, 일시적인 우매무지로 속임수에 걸려들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사기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과오에 속하기 때문에 출교시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엄하게 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과오에 해당하고, 어떤 사람은 사탄의 본성이 크게 폭로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처리하는 원칙도 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