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30집 (b)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사람은 가장 복 있다>에 대한 교통 설교

【130-B-2】

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깊고, 너무 엄하다, 이렇게 엄하고 또 심판하고 형벌하는 건데, 사람이 언제 생명 성정이 변화돼서 하나님과 합하고, 진실로 정결함을 받을 수 있겠냐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기만 하면 어떤 사람은 한숨을 쉬면서 “하나님 믿는 게 정말 어렵네요! 예수님 믿는 건 쉽거든요. 날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마음껏 놀고, 놀다가 죄를 지으면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또 놀고, 놀다가 죄를 지으면 그때 또 자백하면 돼요. 날마다 죄를 짓고 자백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면서 그렇게 믿으면 돼요. 이게 주님을 믿는 거죠. 심판 형벌 안 받아도 되고, 진리 실행 안 해도 되고, 진리를 교통할 필요는 더 없죠. 주님을 믿는 게 얼마나 편합니까! 방해받을 게 없어요. 사는 거나 결혼하는 것도 영향받을 게 없고, 아이 낳는 것도 그렇고 거기다 돈 벌고 즐기는 것도 영향받는 게 없으니,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게 더 좋고 행복해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외국에 가서는 “여기 민주주의 제도, 정말 좋네요. 능력만 있으면 뭐 돈도 벌 수 있고, 또 돈 벌어서 누리는 것도 다 자기 마음대로죠. 이런 곳에 와서 잘 누리지 못한다면 그건 완전히 자기 손해예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하는 걸 기뻐하실까요? 이런 말은 바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성경 잠언 1장 32절에 아주 중요한 말이 있죠.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사람은 살면서 의의 있는 일을 해야 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얘기해 보세요.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떤 길이 바른길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바른길입니다. 그 외에는 다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길은 넓고 사람마다 믿는 방식도 다 다르죠. 신앙은 자유니까 저마다 터득하는 게 다 다르고, 저마다 추구하는 게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저마다 믿는 방식이 다 다른 거죠.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길을 가야 하나님의 뜻에 맞아 온전케 되고 축복받을 수 있을까요? 이 일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필요하죠. 제 말이 안 믿어지면 제가 한 말을 적어 놨다가 나중에 보세요. 지금 이 길을 선택하지 않고 나중에 정말로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된다면, 이 말 때문에 한동안 눈물을 흘릴 것이고, 안타까워하고 후회할 것입니다. 제 말에 내기 걸 믿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사실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중에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길을 가야 하나님 뜻에 맞을까요? 딱 한마디입니다. 바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길입니다. 이해하시겠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길은 하나님께 축복받는 길입니다. 또 사람이 지극히 거룩한 자를 아는 데에 이르는 가장 총명한 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사람이 거룩해지는 길,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거룩한 사람이 되고 의인이 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은 바로 거룩해지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대부분 다 맞다고 생각하는데, 깨닫는 게 너무 적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깊어요! 언제면 이런 말씀들을 다 제 생명이 되게 할 수 있죠? 언제면 이런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을까요? 또 언제면 이런 말씀들의 진실한 생명을 살아낼 수 있죠? 100년, 200년, 아니 평생을 가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 심지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심지도 있고 추구하려고도 하기는 하는데 정말 될 수 있겠냐, 가족도 있고 돈도 벌어야 되는데, 언제 그럴 정신이 있겠냐고 합니다.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일까요? 은혜시대에 주님을 믿을 때, 유행했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막바지가 바로 하나님의 시작이다. 사람은 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요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깨닫게 되고, 마음이 갈수록 더 환해집니다.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어려운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이렇게 교통하는 건 담소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길게 하고 싶으면 길게 하고, 여러분이 원하면 날마다 해도 되죠. 어려울 것이 없죠.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이렇게 하는 것이 쉽습니까? 이런 것에 어떻게 도달하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한다 해도 저는 중요시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육체를 생각할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은 연약해져도 자신은 연약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배반해도 자신은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던 베드로와 같은 것입니다. 그에게 그런 심지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온전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만 있다면 어려울 것 없습니다! 이 말을 믿습니까? 성령이 역사해 주시고 인솔하시고, 인도하시고, 환경을 안배해 주시면, 우리는 기도만 하면 영 안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 안에서 말하게 되고 성령 안에서 일을 판단하게 되죠. 또 뭐든 다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고, 뭘 보든 마음이 환하고, 뭘 하든 수월하고, 뭐든 다 쉽고 행할 길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깊이 체험해 봤었죠. 저는 전에 많이 배우질 못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 하나님을 믿고 나서 이렇게 본분을 한 뒤로 뭘 보든 다 알게 됐고, 마음이 환해져서 쉽고 간단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런저런 일이 저한테는 다 작은 일이라 딱 보면 무슨 문제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 말로 문제를 지적해 주면 여러분이 바로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적합한지를 알게 되며, 제 말대로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해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얻기만 하면 뭐든 다 수월하고 뭐든 다 쉽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마태복음 11장 30절에 나오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진리를 추구하면서 그것이 너무 힘들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성령이 역사하면 아무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또 간단한 예를 들겠습니다. 이런 일을 경력해 본 사람이 많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잡힐까 봐 두려워합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사람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적어도 반죽음이 될 때까지 때립니다. 어떤 사람은 잡히고 나서 처음에는 두려워 ‘주님, 저를 보호해 주세요.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세에 역사하시면서 보통 초자연한 일을 하시지 않죠.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이 받아야 할 고통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사람에게 간증을 하라는 거죠. 왜 간증을 하라고 하실까요? 간증을 하는 의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에 속죄제로 되는 사역을 시작하셔서부터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는 말세의 심판 사역으로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끝마칠 때까지, 이 전체가 바로 사탄과 싸우는 사역입니다. 어떻게 싸우는 걸까요? 하나님이 사탄과 직접 싸우는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사람을 빼앗는 싸움입니다. 사탄이 “이 인류를 내가 이미 다 패괴시켰으니, 당신은 이젠 이 인류를 얻지 못해. 하나님, 당신이 어떻게 하든지 이 인류를 온전케 하지 못할 거야. 이 인류는 모두 당신을 배반할 것이고, 모두 당신을 믿지 않을 거야.”라고 하니, 하나님은 “그럼 나는 인류 가운데서 일부분 사람만 온전케 할 것이다. 나는 이 일부분 사람들을 얻어 너를 부끄럽게 할 것이다. 마지막에 너의 죄를 정하고 너를 패배시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싸움 아닙니까? 욥에게 시련이 임한 그 배후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사탄이, 또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시니 사탄은 이에 불복하는 태도로 말했습니다. “아니야, 만약 당신이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할 거야.”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네 권세 아래에 있으니, 그럼 시험해 보아라. 그가 나를 배반하는지 네가 보라.” 그래서 땅에서,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평온무사할 때, 한 무리 강도들이 와서 욥의 물건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뒤에 또 한 무리가 와서 얼마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몇 무리 강도들이 욥한테서 다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몇십 년 동안 욥에게 축복해 주신 가업과 재산이 하루 아침에 전부 빼앗겼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영계의 전쟁과 관련되지 않습니까? 관련이 큽니다. 그럼 만약 영이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한테 이런 일이 임한다면 그 사람은 유물론의 관점으로, 법관의 관점으로, 법률의 관점으로 그 일을 볼 텐데, 그러면 골치 아프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 일이 임하자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이 아닐 거야. 이건 하나님께서 빼앗으신 거야.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네. 내가 어디서 하나님의 노를 샀을까? 나는 계속 하나님을 경외했고 악을 행한 것 같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왜 거두어 가실까?’ 욥은 그 일을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 욥의 믿음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많이 읽고 나서야 그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됐지만, 욥은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이 종잡지 못했던 것도 아주 정상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욥보다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가 오늘 얻은 것이 욥보다 더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늘 얻은 것이 역대 성도들이 얻은 것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시대의 성도들을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은혜시대의 모든 성도들도 뛰어넘었습니다. 모세를 뛰어넘었고, 이사야의 계시를 뛰어넘었고, 또한 베드로도 뛰어넘었습니다. 왜 우리가 얻은 것이 역대의 성도들을 뛰어넘었다고 하는 걸까요? 그건 바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런 말씀들을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런 진리의 비밀들을 전부 밝히셨고, 전부 발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얻은 것이 역대 성도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