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9집 (b) 하나님 말씀 <‘믿음’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설교 교통

【129-B-8】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할까요? 진리를 추구하면서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범사에 진리를 구해야 하고, 어려움에 부딪치면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어려움에 부딪치면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진리 원칙을 교통해야 합니다. 다 같이 교통하면 길이 생기고 일도 원칙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처리하고 나면 마음이 정말 편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편안하고 든든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돈으로 그 느낌을 살 수 있을까요? 살 수 없습니다. 진리를 실행하면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면 마음은 더없이 평온하고 더없이 든든합니다. “예전에는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행복이 바로 이런 느낌인가 봐요.”라고 합니다.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평안하고 든든하고 홀가분한 느낌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누리도록 주신 것입니다. “네가 진리를 실행하면 나는 너에게 평안함과 든든함을 줄 것이고, 네가 누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증거하고 진실된 간증을 하게 되면, 네 마음을 더 즐겁게 해 주고, 누림이 있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충성을 다해 본분할수록 마음에는 더 누림이 있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함을 느낍니다. 제가 어떤 형제자매를 크게 책망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보고 속으로 ‘세상에, 저렇게 심하게 책망하시는데도 순복할 수 있다니? 난 왜 순복할 수 없을까? 저 형제님은 정말 분량이 크네. 정말 순복을 잘하네’라고 생각합니다. 책망받은 사람은 마음이 고통스러워 끊임없이 생각해 보고 반성해 봅니다. ‘내가 왜 잘못을 했을까? 왜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을까? 정말 어리석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도 합니다. 계속 기도하면서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진리는 약간 알게 됐지만 생명 성정은 별로 변화되지 않았구나.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어기고 제멋대로 할 수 있었던 거구나. 그래, 알았어! 내겐 생명 성정이 변화된 간증이 없어. 예전에 좀 변한 줄 알았는데. 내가 일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좀 생겼으니, 생명 성정도 변화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이 일을 통해 따귀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드는구나. 이제야 나에게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걸 알게 됐어. 앞으로 계속 고분고분, 성실하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야 하고 착실하게 진리를 추구하면서 본분이 합격될 때까지 잘 해야겠어!’ 이렇게 노력하고 또 한동안 지나게 되면 성과가 보이게 됩니다. ‘이제는 본분을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게 어렵지 않아. 이제는 본분을 하면서 어려움에 부딪쳐도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어. 이제는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육체를 배반할 수 있고, 내 관념과 생각에 의지하지 않게 됐어. 이젠 내 자신을 믿지 않을 거야. 진리에 순복해야지! 누가 정확하게 말하면 그대로 행할 거야.’ 이렇게 실행하면서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 누림을 맛보게 됩니다. ‘아, 내 생명이 자라났나 봐! 이번에 육체를 배반하고 진리를 실행했더니, 내게 더 큰 평온과 기쁨을 주셨어. 이게 생명이 자라나는 경험이구나. 이번에 고난받은 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 이번의 책망과 질책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었고 하나님의 더 크신 사랑이었고, 더 진실된 사랑이었어. 하나님께서 날 너무나 사랑하시는구나! 날 버리지 않으셨구나! 한쪽에 두고 내버리신 게 아니셨구나!’ 이렇게 경력하면서 몇 년이 지나면, 하나님께 순복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고통스럽고, 순복하면 기쁨과 평안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게 정말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할 때가 훨씬 많아졌고 하나님을 거역할 때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생명이 자라난 게 맞나요? 그 정도까지 경력하고 나면 그 사람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번에는 정말 변했습니다. 진리를 행할 때가 더 많아졌고 육체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하던 일이 아주 적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성정이 변화된 간증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본분을 하는 것에 자신을 위한 의도라든가 불순물이 들어 있을까요? 거래가 있을까요? 혹은 축복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고,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과 본분은 진실된 간증이 아니겠습니까? 마귀가 저쪽에서 또 참소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참소하려는 거냐? 저 사람이 본분을 어떻게 하더냐? 저 사람이 나를 위해 충성되게 본분을 했고, 사람이 되고자 본분을 한 것이다. 그래도 부인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탄 마귀는 생각해 보고 “그러네요! 저 사람이 하는 말은 제가 보기에도 하나님만을 위하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 사탄은 “저 사람은 더 이상 참소하지 말아야겠구나! 참소해 봤자 실패할 거고, 나도 수치를 당하게 될 테니까! 참소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합니다. 어쩌면 그 사람의 시련은 그렇게 면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배후에서 그 사람이 한 말들 속에 여전히 개인의 속셈이 있고, 개인의 축복을 받기 위한 것들이 있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마귀는 또 참소할 것입니다. 마귀가 참소한다면 또 시련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하는 것인지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십니까? 그걸 말로 표현하는 것도 간증입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도 역시 간증입니다. 본인이 행하는 것과 본분 자체 또한 간증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 같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의 아름답고 드높은 간증이 이루어졌나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위한 간증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제 확실해지셨나요? 적절한 말로 표현하실 수 있으십니까? 어떤 분들은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입으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릅니다. 말하고 보면 도리이고 빈말이고 거짓말이어서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실까 봐 두려워합니다. ‘난 그냥 실제 행동으로 보여 드려야지! 충성을 다해 본분할 거야. 본분으로 보여 드려야겠어.’ 그러면 더 좋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본분하고 간증을 하는데, 왜 가끔은 재난과 환난에 부딪치게 될까요? 그건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그 재난이나 환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게 맞나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가끔은 사탄의 참소도 있습니다. 그런 시련에 부딪치고 그런 시련을 통해 그 일을 밝히고자 하신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우리의 언행,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보시고 사탄도 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하는지, 하나님께 속하는지, 그런 일을 가지고 영계에서 논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욥의 일도 영계에서 논쟁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온전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탄이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이런이런 일이었습니다.”라고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를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권세 아래에 욥을 시험하는 걸 허락하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영계에서는 그런 일이지만, 물질세계, 인간 세계에서는 욥에게 시련이 닥치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 가운데 임한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럼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욥이 살던 그 시대는 하나님께서 말세의 사역을 하지 않으셨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하지 않으셨습니다. 욥의 그 시대는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시련이 닥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간증을 굳게 섰습니다. 그 시대에 욥의 간증은 최고였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욥의 그 시대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렇게 많은 진리를 갖고 있고, 하나님도 이렇게 많은 실상과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 세상이나 영계를 막론하고 영계의 전쟁에 속한 배후 실정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간증이 욥의 간증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불합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시련과 환난이 임하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이때가 바로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날 때인 것입니다. 평소에 사람에게 어떤 일들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따지지 않으십니다. 욥에게 시련이 임했을 때도 하나님은 옆에서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각종 카메라며 녹음기며 쭉 꺼내 놓고 욥이 말하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욥이 어떻게 간증하고,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셨습니다. 사탄도 그곳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 내기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보려고 했습니다. 사람은 시련이 임하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영계에서도 보고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야. 일상적인 일은 보지 않으시고 관여하지도 않으실 거야. 혹시 보시더라도 간혹 보고 계실 거야. 괜찮아. 우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 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까요? 정말 없습니다. 영계의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이 뒤에서 저지른 떳떳치 못한 일들은 하나님이 감찰하지 않으실까요? 다 감찰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사람이 뒤에서 행하는 것과 마음에 생각한 것과 뒤에서 다른 사람과 한 말들 전부 다 그 사람의 간증과 관련됩니다.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