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9집 (b) 하나님 말씀 <‘믿음’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설교 교통

【129-B-6】

진실한 믿음은 무엇으로 증거해야 할까요? 어떤 말로 표현해야 가장 적절할까요! 방금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은혜시대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주님에 대한 인식과 예수님에 대한 논법, 그리고 깨달음들을 전부 예로 들어 꺼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말들을 들으시고 정말 실망하고 낙심하십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불합격이라는 걸 충분히 증명하죠. 그럼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합격된 것일까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은 곧 말세의 그리스도이시고, 도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합니다. 이 두 마디만 가지고 될까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당신들이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실 겁니까? 얘기해 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간증과 관련이 됩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걸 간증해야 하는 겁니까? 우리가 간증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것 자체가 간증이 됩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말도 간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간증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는 본분이 간증일까요? 역시 간증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저희는 하나님을 따르면서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수년간 본분을 했습니다. 이게 간증이 아니라면 뭐가 간증입니까?”라고 합니다. 그건 수년간 힘을 쓰고, 수년간 효력만 한 거죠. 왜 이렇게 말할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한 마디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본분하는 마음 자세가 틀린 것입니다. 복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그 본분은 불합격이고 또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속셈과 목적이 있는 거래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본분도 하고 힘도 많이 썼고, 다른 사람이 땀 흘린 만큼 흘렸고, 다른 사람이 대가를 치른 것만큼 치렀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은 합격되게 본분을 했다고 하고, 제가 한 본분은 효력이라고 합니까? 이건 불공평하지 않나요?”라고 합니다. 때가 되면 이렇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지금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금 여러분 스스로 얘기해 보세요. ‘난 합격되게 본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는 분은 손을 들어 보세요. 드실 수 있습니까? 그럼 ‘내가 지금 하는 것은 정말 효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은 왜 자신이 본분하고 있는 걸 효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들은 “저는 대부분의 경우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원칙에 따라 본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라고 합니다. 진리의 원칙을 알지 못하고 본분을 했다는 것만으로 효력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자신이 심복구복해야 성립됩니다. 스스로 머리 숙이게 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나요? “난 확실히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한 게 아니야. 복을 받기 위해 한 거였어. 사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했지만 아직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참되게 아는 게 없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없어. 그래서 내가 화비하고 바치는 건 순전히 복 받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지! 이런 사실에 따라 내가 하는 본분은 효력이라고 단정할 수 있어.” 혹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이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본분의 실질이 효력이라는 걸 아주 분명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럼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저는 효력자가 되는 게 싫어요. 저는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할 수 있는 합격된 피조물이 되고 싶고, 진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럼 자신이 효력하는 것을 진실된 본분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요? 그 길을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면 되죠! 그렇게 천천히 하나님을 알게 되면 제가 하는 본분도 자연히 합격되지 않을까요?”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많은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늘 복을 받으려는 마음 자세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은 곧 효력에 속하고, 충성되게 본분을 하는 것은 기꺼이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피조물로서 기꺼이 자신의 본분을 다해 조물주를 흡족케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그런 인식이 있다면 사람이 하는 본분에는 거래가 없게 됩니다.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 본분을 하는 것이고 조물주를 흡족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본분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치가 않아! 이렇게 본분하지 않으면 난 사람도 아니고 살 자격도 없지! 그래서 이렇게 본분을 하는 거야. 정말 기쁘고 즐겁구나!” 이런 인식이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이고 진정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은 관련이 있을까요?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은 양심과 이지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달으면 하나님을 알게 되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자연히 우러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본분을 합격되게 할 수 있습니다. 보시면 지금 다들 충성되게 본분을 하고 있고 또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련이 닥치고 죽음이 닥쳐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될 때, 어떤 말을 하게 될까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때도 후회하지 않고 “저는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래도 피조물의 본분을 좀 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한번은 사람답게 살 수 있었고, 진정한 사람이 됐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다 공의로우신 겁니다! 지금 이건 예전에 제가 하나님을 많이 거역하고 대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 것은 입으로 말한다고 해서 되는 걸까요? 입으로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행해야 합니다. 충성되게 본분하는 것만으로도 안 됩니다. 마지막에 검증을 거쳐 증명이 돼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검증을 거쳤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높이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에게 독자를 주었으니, 너는 아들을 제물로 내게 바치라. 그럼 내가 너를 인정하리라’ 아브라함은 정말 바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던 겁니다. 욥은요?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셨지만, 그것으로 인해 욥은 간증을 굳게 서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에게는 체포되는 시련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간증을 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검증을 거쳐 실증된 사람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들이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아무렇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간증과 여러분이 하는 본분은 검증을 거쳐 실증됐습니까? 검증을 거쳐 실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언젠가 일이 임할 때면 곤란해질 것입니다.

말씀 한 단락을 보시겠습니다. “현재 나는 다만 나의 직분 내의 사역을 할 뿐인데, 모든 밀단을 다 묶어 두고 그 가라지도 그 중에 함께 묶어 둔다. 이것이 바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이다. 내가 타작할 때 그 가라지들을 깨끗이 키질해 낸 후 알곡은 곳간에 넣고 그 가라지는 불에 태워 재가 되게 한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은 단지 모든 사람을 단으로 묶는 것일 뿐이다. 즉, 철저히 정복하는 것이다. 그다음 타작하기 시작하여 모든 사람의 결말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 어떻게 나를 만족케 해야 하고, 나를 믿는 정상 궤도에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너의 지금의 충성과 순복이고, 지금의 사랑과 간증이다. 설령 네가 지금 무엇을 간증이라고 하고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모를지라도, 너는 마땅히 너의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하는데, 너의 유일한 보배로운 충성과 순복을 나의 손에 바쳐야 한다. 내가 사탄을 패배시키는 증거는 사람의 충성과 순복에 있고 내가 사람을 철저히 정복하는 증거도 사람의 충성과 순복에 있음을 너는 알아야 한다. 네가 나를 믿음에 있어서의 본직 사역은 바로 나를 위해 증거하는 것이고, 나에게 충심무이(忠心無二)하고 끝까지 순복하는 것이다. 내가 다음 단계의 사역을 전개하기 전에 너는 어떻게 나를 위해 증거해야 하겠는가? 너는 또 어떻게 나에게 충성하고 순복하겠는가? 너는 네가 하는 기능에서 충성을 다하겠는가 아니면 내팽개치고 그만두겠는가? 너는 설령 죽을지라도, 멸망할지라도 기꺼이 나의 모든 안배(安排)에 순복하겠는가 아니면 중도에서 도망쳐 나의 형벌을 피하겠는가? 내가 너를 형벌하는 것도 나를 위해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나에게 충성하고 순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지금의 형벌은 다음 단계의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고, 이후의 사역을 막힘없이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그래도 좀 총명해져 네 개인의 목숨과 네 생존의 의의를 무가치한 한 줌의 모래나 흙으로 여기지 말기를 권한다. 너는 나의 이후의 사역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가? 너는 내가 이후에 어떻게 역사하고 사역을 어떻게 전개하는지 아는가? 너는 마땅히 나의 역사를 경력하는 의의를 알아야 하고 더욱이 나를 믿는 의의도 알아야 한다. 내가 이처럼 많은 사역을 하였는데, 어찌 네가 상상한 것처럼 중도에 그만둘 수 있겠는가? 내가 이렇게 큰 공정을 시작하였는데, 어찌 헐어 버릴 수 있겠는가? 내가 시대를 끝마치러 온 이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너는 내가 시대를 시작하고 또한 사역을 전개하며 더욱이 국도의 복음을 확장한다는 것에 대해 더욱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의 사역은 단지 시대를 시작하는 것이고, 이후에 복음을 확장하기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며, 또한 다가올 날에 시대를 끝마치기 위해 기초를 닦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사역은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전혀 아니고, 또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런 가치도 의의도 없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너에게 알리겠다. 너는 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더욱이 나의 영광을 위해 네 자신을 바쳐야 한다. 나를 위해 증거하는 것은 더욱이 내가 일찍부터 바라던 것이고, 나의 ‘복음’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더구나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다. 너는 마땅히 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