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9집 (b) 하나님 말씀 <‘믿음’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설교 교통

【129-B-3】

저는 어떤 사람들이 지금 본분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본분을 잘하는 게 가장 좋은 간증이라고 말하면 관념을 가지면서 완전하게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깨닫든 저는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교통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터득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복인 거고, 그만큼 총명한 겁니다. 터득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 교통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교통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본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성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에게 연약할 때가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 연약해질 수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 환경을 두려워하고 용기가 없고, 믿음이 너무 작아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분량에 따라 요구하시지,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분량이 작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높이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우리는 진리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몇 년 믿었는데도 여전히 작은 분량을 갖고 있으면 안 되겠죠. 몇 십년을 믿고도 자신의 분량이 작다고 하면서 그걸 핑계로 본분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 될까요? 말이 안 됩니다. 우리 이런 것을 평가하지 맙시다.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더듬으면서 진리를 찾고 구하면 되는 겁니다.

본분을 하는 것도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근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꼭 외국에 나가서 본분을 해야만 본분하는 거야. 외국에 가서 하는 게 아니면 본분을 한다고 할 수 없지.’ 이런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 그럼 예를 들어서, 열악한 환경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심지어 하나님 말씀 책을 숨겨 두고 읽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믿음은 어떤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 기도나 좀 하면 끝나는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진실한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의 믿음은 너무 가엽지 않나요? 어떤 사람들은 “저는 큰 붉은 용이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핍박과 환난이 없어지면 그때 잘 믿을게요. 제가 열정이 많으니까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소용 있을까요? 큰 붉은 용이 무너질 때, 마침 대재난이 닥치고 하나님이 이미 땅을 떠나셨다면 아무리 열정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소용 없습니다. 증거할 기회는 다 지나갔습니다. 다른 사람은 큰 붉은 용이 무너질 때, 만인 가운데서 하나님이 승리하신 간증을 하는데,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큰 붉은 용이 날뛰면서 통치할 때는 동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겁쟁이인데 무슨 간증이 있을까요? 큰 붉은 용이 무너질 때 나설 면목이 있을까요? 수치를 당하게 되고 면목이 없어 나서지도 못하고 간증도 없게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증거하는 데에도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순금은 불을 겁내지 않는다”, “환난 속에서 진심을 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건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접촉하면서 또 명언을 하나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말은 타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 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참된 믿음은 어떤 배경에서 드러나게 될까요? 바로 열악한 환경에서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의 선민을 광적으로 박해하고 탄압할 때, 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보세요, 지금 온 교계에 큰 붉은 용이 가정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는 상황이 임했습니다. 근데, 그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숨어버렸습니다. 큰 붉은 용이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핍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잔혹하게 탄압할 때, 그 사람들은 수수방관하고 있었습니다. 집권당에게 순복한 것입니다. 그 마음이 주님께 순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집권당의 박해를 받는다면,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권을 장악한 집권당에 대항하는 것은 형벌을 자초하는 거라고 여깁니다. 주님을 그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신도들은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광적으로 대적하고 정죄하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과감하게 일어섰습니다. 가정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본분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본분을 하면서 위험한 고비를 수없이 겪었지만 다 하나님께 보호받아 굳게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견지한다면, 대재난이 쏟아질 때, 진정으로 굳센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큰 붉은 용이 무너진 후에 증거하고 본분을 하려고 합니다. 그건 어떤 사람들입니까? 불신파와 비슷하고 교계의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좀 전에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믿음’을 언급했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율법시대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는지,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는지, 예수님을 어떻게 불렀는지, 그런 예와 실정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율법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믿었고 또 고만한 정도의 인식뿐이었고, 은혜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을 그 정도 밖에 알지 못했고, 예수님을 그렇게 대했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인자하신 예수님이라고 불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스승님,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이는 예수님을 최고의 선지자, 최고의 의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은혜시대에 예수님을 그렇게 증거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랫동안 믿었지만 주님에 대해 그 정도 밖에 알지 못했고 그렇게 부를 줄밖에 몰랐습니다. 주님이 매우 실망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는데,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는데다 무지한 말까지 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참된 간증이 있을까요? 없죠. 그뿐만 아니라 그 바보 같은 소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참되게 알지 못한다면 자신의 본분을 잘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간증이 없을 뿐더러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에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축복하실까요?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역대 이래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지막까지 믿어도 하나님을 참되게 알지 못하고, 그저 구세주, 최고의 의사, 랍비, 긍휼과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이라고만 부른다면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참된 간증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주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태된 사람들에게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이 주님을 믿는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주님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본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태된 거네요. 그럼 마찬가지로 주님을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바친 사람이라면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지 않나요?” 이렇게 묻습니다. 칭찬받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행한 것은 주님을 위한 것일 수 없습니다. 그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거죠. 바울과 같습니다. 공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고난받으면서 사역한 거지, 주님을 사랑하거나 주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통행하기 위해 한 건 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떤 고난을 받고 어떤 대가를 치렀더라도 그건 다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증거한 것이고, 자기의 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은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렇게 말했을 때, 증거하는 것이란 도대체 뭘까요? “증거하는 것이란, 고난받고 사역하며, 좋은 대가와 진실된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피의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성립되나요? 왜 성립되지 않죠?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으신가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왜냐고 묻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게 두려워할수록 전 왜냐고 물어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여러분에게 진리를 찾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안 물어 봐도 여러분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묻지 않아도 되나요? 묻는다는 건 참답게 대하는 것이고, 근원을 캔다는 것이고, 또한 진리를 찾고 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으면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 맞아, 왜 그럴까? 잘 생각해 봐야겠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읽고 노력을 들이고, 잘 생각해 보면서 반드시 이 일, 이 근원, “왜 그럴까”에 대해 분명한 답을 찾아야겠어.’ 그렇게 노력하고 공을 들이면 성과가 있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성과가 있다면 제가 물어 본 것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생각도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참되게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이 가치가 있을까요? 별로 큰 가치가 없고, 참된 간증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힘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구원을 조금씩 알게 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본분을 하는 마음 자세가 점점 순결해지고, 점점 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됩니다. 본분을 하기 위해 고난 받고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충성을 다할 수 있다면, 그 본분은 아름다운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본분을 시작할 때는 열성으로 내려놓고 버리고 본분에 힘을 쓰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합니다. 예전에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하루 8시간을 일했다면, 지금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8시간 또는 10시간을 씁니다. 그렇게 본분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시험이 임하게 될 때, 처음에는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고 좌절을 당해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공급을 받아 일어서게 됩니다. 소극적이었던 것이 굳세어지고, 대충했던 것이 충성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때면 본분을 하는 그 경지와 품질, 실질은 다 향상된 게 아닙니까? “본분을 하면서 첫해는 열심만 가지고 했었죠! 그다음 해는 책망과 질책을 좀 경력하면서 진리를 좀 깨닫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야 예전에 하나님께 너무 많이 빚졌다는 걸 깨달았고, 너무 양심이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때서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우심을 보게 됐습니다! 앞으로 사랑스러운 하나님을 위해, 저를 향한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본분을 잘하겠습니다. 본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살 자격도 없고, 사람도 아니죠.” 이렇게 이듬해는 다른 사람으로 확 바뀌었습니다. 첫해와 왜 달라진 걸까요? 어떻게 된 걸까요? 그렇게 본분을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사람에게 책망, 질책, 시련과 연단이 임하게 한 후,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도 하루하루 변하게 되는데, 변할수록 하나님을 점점 알게 되고, 하나님을 점점 더 헤아리게 되고, 점점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 순복하게 됩니다. 생명 성정은 그렇게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에 따라 본분을 함에 있어서 충성심이 있고 순복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도 헤아리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임하든 진리를 찾고 구하고, 진리를 깨닫고 난 뒤에는 실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분하는 효과도 점점 좋아지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점점 원칙이 있게 됩니다. 사람이 본분을 함에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있는지, 하나님께 순복하는지가 드러나게 되고, 또한 본분하는 가운데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진실로 헤아리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입으로 “하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해야 됩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이 그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걸 본분에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입으로만 말하지 않았지만 볼 수 있지 않나요?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무엇을 두고 있으면 실제적인 대가와 행동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입니다. “그 사람이 본분을 하는 건 우리랑 달라요. 우린 이 일을 대충했는데, 저 사람은 그러지 않았어요. 원칙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구속을 받지 않더라구요.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 지켜 보니까 알겠어요. 그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께 충성하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범사에 진리를 찾고 구하네요. 그 사람은 하나님과 한 마음으로 늘 하나님 편에 서네요.” 그 사람이 본분을 하는 데에서 그렇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케 하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보였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간증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간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