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9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 대한 설교 교통

【129-A-8】

이방인들이 말합니다. “신은 정말 존재해요! 전 신을 인정해요.” “신을 본 적 있어요?”, “보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내리시는 비를 봤어요! 비가 필요하면 비를 내려 주시고, 바람이 필요하면 바람을 주셨고, 햇빛이 필요하면 햇빛을 주셨어요. 흐린 날씨가 필요하면 그것도 주셨고, 더운 날씨가 필요해도요, 추운 날씨가 필요해도 다 주셨어요. 너무나 진실하고 실제적이에요! 신은 그렇게 실제적이고 진실합니다. 뭐, 비록 그분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는 못하지만, 사람에게 주는 느낌은 여러 가지로 다 있었고, 다 실제적이고, 조금도 차이가 없어요.” 그래서 이방인은 마지막에 이런 결론을 내릴 겁니다. “하늘에 순응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하리라”, “일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그 일의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는 실제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도달한 효과는 이방인이 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고, 더 실제적입니다. 이방인은 신이 주신 바람, 비, 우뢰, 번개, 햇빛, 이슬을 누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건 뭘까요? 모든 진리의 공급과 양육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입니다. 그래서 더 실제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역사를 경력하는 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가장 큰 축복이고, 창세 이래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그런 축복을 누리게 됐고 얻게 됐습니다. 진리를 찾고 구하여 진리를 얻으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이제 분명하게 보셨나요? 범사에 진리를 찾고 구하는 건 계속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범사에 진리를 찾고 구하면 잘못을 적게 저지르게 되고,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한다면 진리를 더 많이 얻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되고, 진리에 더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면,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질문(1):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이게 맞는 말인지 형제님이 교통해 주세요.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이 말은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진리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꽤 실제적이고 간단하지 않은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인류는 진리를 바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논점과 논조, 수많은 이론에 대해 관념과 상상으로 분명하게 측량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일들을 관념과 상상으로 확정하고 “이게 진리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몇년 지나지 않아 진리가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은 과학으로 “이게 진리야.”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 역시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지 않아 또 과학으로 부정해 버립니다. 그런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아인슈타인, 뉴턴, 그런 과학자들의 이론은 원래 전부 진리라고 불렸습니다. 근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부정됐습니다. 그 사실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라고 하는데, 진리를 점검하는 게 실천만으로 충분할까요? 사람의 실천이 그렇게 완전할까요? 그렇게 완벽할까요? 사람의 실천에 원칙이 있습니까? 사람의 실천 범위는 얼마나 클까요? 그런 것들은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십 년 실천하고 ‘진리’라고 확정한 후, 후세들이 이어서 실천하다가 100년 정도 지나니 그것이 또 부정됐습니다. 어느 실천이 정확할까요? 어느 실천이 진리를 정확하게 인증했을까요? 그렇게 말만 하는 것이 충분할까요? 그건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 말이 곧 진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맞는 말이긴 하나, 진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기준이다”란 이 말이 성립은 되지만, 많은 진리, 그리고 너무 깊은 진리는 평생 실천해도 다 경력하지 못하기에 확정하지도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설명할까요?

지금 온 인류는 6천년 동안 사탄에게 패괴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사탄을 알고 있나요? 사탄이 말한 그런 말들은 그릇된 논리일까요, 진리일까요? 인류에게 결론이 있나요?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라고 하는데, 그럼 자신이 행한 것이 맞는지를 점검해 봐야겠죠! 그래서 그 말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만으로 볼 때는 맞는 말입니다. 그 공식이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천을 거쳐야 합니다. 그 실천의 범위는 얼마나 클까요? 얼마나 걸려야 할까요? 어떤 진리를 경력하여 인증할 수 있을까요? 사탄의 패괴에 대해, 그 그릇된 것들에 대해 경력하고 검증해 냈나요? 공자 노자가 꺼낸 것들을 가지고 그렇게 오랜 세월 실천했는데, 인증이 됐나요? 도대체 맞는 건가요, 틀린 건가요? 결론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또 어떤 사람은 “그럼 하나님이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우리가 경력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잖아요.” 합니다. 그럼 그 점을 놓고 봤을 때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는 말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진리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옛날 중국의 여성은 천년 가까이 전족을 했습니다. 천년 가까이 실천한 것으로 전족이 맞는 일인지 틀린 일인지를 증명했나요? 결론이 있나요? 인류는 이런 황당한 많은 일들을 오랜 세월 경력했지만, 누구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류가 실천이라는 방법만 갖고 진리를 증거할 수 있을까요?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아주 정확한 것 같고,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사람이 아무리 경력하고 아무리 믿어도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은혜시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경력과 인식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리를 얻었나요?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아무리 경력해도 소용 없습니다. 사람의 경력과 실천으로 달할 수 있는 효과는 너무나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 몇 세대, 천년, 2천년을 실천한다 해도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모든 것이 공허하고 실제적이지 못하고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교통하면 어떻습니까? 받아들일 수 있으신가요? 어쨌든 저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실천해도 결과가 없고, 아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려면 성령의 역사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모든 것이 다 헛수고입니다. 사람에겐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실천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2): 지금 저희가 예배드릴 때 대부분의 경우에 각자 자신의 것을 얘기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 결부해서 개인의 경력을 말하고, 저 사람은 하나님의 또 어떤 말씀으로 어떤 일을 가지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교통할 줄 모릅니다. 주제를 중심으로 어떻게 교통해야 서로 보완할 수 있고, 한 방면의 진리에 대해 순수한 터득을 가질 수 있고, 길이 있게 될까요? 예배가 끝나고 나면 얻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실행해야 예배가 더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경력해서 진리를 경력할 수 있을까요? 맹목적으로 경력해도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하고 누군가 잘 인솔해야만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제가 이렇게 교통하고 나면 스스로 실행할 수 있지 않나요? 제가 현장에 직접 가서 여러분에게 닥치는 일들을 한 가지 한 가지씩 세세하게 말하고 알려 줘야 할까요?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만한 분량도 없다면 될까요? 예전의 실패는 어떻게 된 겁니까? 진리를 찾고 구한다는 건 예배에서 교제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교통을 듣고 나서 돌아가 어떻게 묵상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공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진리를 확실하게 교통할 수 있으면 얻을 수 있고, 예배에서 확실하게 교통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는 것에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분량이 아주 작습니다. 예배에서 교통하는 것으로 도달하는 것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개인적으로 경력하는 것에만 공을 들이고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될까요? 왜 안 될까요? 예배에서 다들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고 서로 글귀 도리가 아닌 실제로 교통한다면 그래도 효과가 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교통을 했는데 빛 비춤이 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실제적으로 교통을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빛 비춤과 실제를 결부하고, 거기에다 자신의 인식을 더하면 적지 않은 것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저 사람이 교통하는 빛 비춤은 나도 있고 너무 얕아. 저 사람 교통이 실제적이긴 한데, 나도 있어! 모든 면에서 다 확실하고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 들을 거야!” 이런 태도를 가지고 예배를 하면 성과가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높은 수준의 설교만 듣기 좋아합니다. 높은 자의 설교, 높은 자가 교통해 주는 것만 즐겨합니다. 일반 형제자매가 사투리에 생활 용어까지 쓰고 말이 많으면 ‘난 조만한 깨달음과 실제는 묵상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만약 좀 높은 사람이 말하면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잘 말씀하시네. 찬성하고 받아들이겠어’ 합니다. 그런 마음 자세로 예배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건 교만방자하고 독선적인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겉보기에 학력이 낮고 표현 능력도 별로인 것 같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느 정도의 실제와 빛 비춤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할 줄 모르고, 말을 이렇게 들을 줄 모르고, 사람을 이렇게 대할 수 없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