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9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 대한 설교 교통

【129-A-7】

지금 우리 말세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실행하기 전에 우선 거래부터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무슨 득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이익에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늘 무슨 이득이 있는지, 어떤 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따집니다. “아무런 이득도, 복도 없다면 안 할 겁니다. 그렇게 하는 건 고생스럽고 힘들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지금 어떤 사람은 일하러 가면서 ‘내가 본분을 할 수 없게 되니, 일을 하라고 하네. 또 시간 남으면 복음 대상 찾는 본분을 하라고 하는데, 난 안 해! 나 보고 일하라고 했으니까 끝까지 갈 거야. 상관 안 하고, 본분도 안 하고, 돈 벌어서 결혼할 거야! 혹시 여기 외국에서 현지인 만나서 애라도 낳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 이런 생각이 어떻습니까? 사람됨의 최저 기준이 있습니까? 사람됨의 원칙이 있나요?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오늘은 일하라고 할 수 있고, 내일은 본분하라고 할 수 있고, 모레는 또 위험한 일을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본분이 그 사람이 하기에 적합하면 교회에서 형제자매를 보내 묻습니다. “자매님, 본분에 협력하실 수 있나요?” “아, 안 할래요,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좋습니다, 그럼 하지 마세요,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면 그만입니다. 겉으로 보면 그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상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그 사람은 순복하지 않았고, 반항하는 뜻이 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이고 대역무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포기하고 도태시키십니다. 외국에 나오긴 했지만 하나님 집에서는 본분을 할 사람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라고 하고, 여가 시간에 복음 대상을 찾는 본분을 하라고 했습니다. 근데 순복하지 않는 순간, 그 사람의 인품이 드러나게 된 겁니다. 그 일은 사람을 드러나게 합니다! 그 사람은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그건 하나님을 배반하는 표현이 아닙니까?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은 그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겠어! 이렇게 하는 게 진리에 맞다면, 좋아! 이번엔 진리를 실행하겠어! 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할 거야!’ 이렇게 간단한 일입니다. 그 일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은 바로 그렇습니다. 오늘은 일하라고 하고, 내일은 본분을 하라고 하고, 모레는 다시 일을 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반응을 보려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고,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어떻게 안배되고 어떻게 바뀌어도 불평 없습니다. 순복하겠습니다.” 보세요, 바로 이렇게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역사와 안배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은 바로 이렇습니다. 아주 간단한 한 가지 일로 사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가끔 어떤 사람들을 아주 엄하게 대처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악마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고 마음이 칼로 에이는 듯 괴로워합니다. 저녁이 되면 계속 생각합니다. ‘그건 형제님이 말한 거 맞지? 그래 맞아. 하나님이 하신 걸 대표할까?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다면 큰일 났네. 날 마귀라고 했는데, 그래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 말은 형제님의 개인 생각이었으면 좋겠어. 형제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하나님을 대표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그럼 희망이 있어.’ 이건 진리를 찾고 있는 걸까요? 그 사람은 자꾸 내막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거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가 악마라면 난 끝장이야. 내 운명과 결말이 어떻게 될지 걱정되네.’ 이 사람은 생각하는 근원 자체가 틀렸습니다. 그저 자신의 결말을 알아보려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진리를 찾고 구한다면 어떨까요? “상면의 형제님이 말한 게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든,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든 상관하지 않아. 어떤 배경에서 나를 악마라고 했을까? 내가 뭘 했길래, 뭘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그 일부터 살펴봐야겠어! 내가 한 일이 악마의 소행이 맞는지부터 말이야. 내가 한 그 일이 겉면으로는 일반적인 일이지만 실제로 엄중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다면 형제님이 그렇게 말하는 게 맞아! 사실에도 부합되는 거야. 그렇다면 순복부터 해야겠어! 내 자신을 저주하고, 육체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순복해야겠어!’ 이렇게 한다면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는 게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분별할 수 있으시죠? 그럼,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는 말은 실행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는 일도 잘하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 사람을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출교시키네. 그 사람이 살인이나 방화같이, 뭐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이런 일에 진리가 있는 건가? 진리에 부합되는 걸까?”라고 합니다. 그런 일에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생각없이 멍한 상태에서 황당한 논리를 말했는데, 악령으로 단정되어 제명당했어요.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사람이 술 마시고 취해도 허튼 소리를 할 수 있고, 가끔 금방 자다 깨면, 뭐 잠꼬대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멍한 상태에서 황당한 논리를 말했다고 악령으로 단정하다니요? 출교되다니요? 출교를 잘못 시킨 거면 어떡해요?” 그런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일에서 다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저, 제가 배우자를 구해도 될까요?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아도 될까요?” 합니다.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어떤 이는 “남자라면 장가 가고, 여자라면 시집 가야지! 다 컸으면 당연히 가정을 꾸려야겠죠. 그건 당연한 도리죠!”라고 말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은 평생 결혼을 안 하고, 진리만 추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데, 그건 진리에 부합됩니까, 안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요구를 하신 적이 있나? 난 진리를 찾고 구해 봐야겠어.” 그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결혼하면 안 됩니다. 육체가 너무 커서 결혼을 하고 나면 하나님을 버립니다. 배우자가 없을 땐, 마냥 즐겁게 하나님을 잘 믿던 사람이 배우자가 생긴 뒤에는 하나님을 굳건하게 믿지 않을 수도 있고, 살림에 빠져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울수록 더 잘 믿습니다. 오히려 생활이 편하고 안락해지면 진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은 확실히 다릅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각기 다른 사람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배우자가 없을 땐,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집에서도 핍박하고 남들도 비웃습니다. 하지만 배우자를 찾자 모든 일이 순조롭습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함께 본본을 합니다. 보세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배우자를 찾는 게 하나님을 믿는 데에 불리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배우자를 찾지 않아야 생명이 자라고 온전케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가 감히 규정할 수 있습니까? 감히 규정할 수 있을까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대해야 합니다. 각 사람의 상황과 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틀에 맞춰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모르면서 함부로 틀에 맞추면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틀에 맞추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혼을 했지만 결혼 상대를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인품도 좋고, 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면 형제자매들이 논단할까 봐 결혼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몰래 사귑니다. 그런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가 그런 사람을 억압하고 제한하면 될까요? 정확하게 이해하고, 정확하게 대해야 합니다. 늘 규례로 사람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비밀리에 연애하면 어떻습니까? 함부로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양다리나 세 다리 걸친 것도 아니고, 서로 사랑하는데 뭐가 문제가 될까요?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 합당하면 제한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범사에 찾고 구할 진리가 있습니다. 관념과 상상을 가지고 함부로 논단하거나 규례에 맞춰선 안 됩니다. 규례에 맞추기를 좋아하고 관념과 상상에 근거해 논단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리가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럼,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리를 찾고 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관념과 규례의 속박에서 벗어나 마지막에는 진리 안에서 진정으로 해방되고 자유로워집니다. 그게 바로 진리를 추구하여 도달하는 효과입니다. 사람이 진리 안에서 해방받고 자유로워지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진리 실행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영원히 막연하게 삽니다. 하나님께서 도성육신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신다는 건 인정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없고, 여전히 막연한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글귀 도리를 이해하는 걸 가지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착각합니다. 자신의 관념과 상상이 전부 진리에 부합되고 진리라고 생각하고, 자기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 건 전부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실까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외식하는 바리새인입니다. 위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건 다 글귀 도리뿐이고, 규례뿐입니다. 진리의 실제는 전혀 없습니다. 정말 진리가 있는 사람은 일을 해도 다른 사람을 속박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줍니다. 늘 다른 사람을 속박하고, 늘 이렇게 저렇게 실행하라고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다 바리새인입니다. 정말 진리가 있다면 왜 진리를 교통할 줄 모를까요? 왜 사람을 규례와 관념과 상상에서 나오도록 이끌지 못할까요? 본분을 하면서 그런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역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진리가 없다는 것을 더더욱 증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진리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정했습니다. 그럼 진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히 존재하고, 전부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걸 뜻하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그 사실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보여주는 것은 다 진리의 존재입니다. 또한 진리의 존재와 진리의 실제를 증명하고 있고, 마지막에는 진리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자 하나님 자신의 소유소시라는 걸 보여줍니다. 진리가 바로 하나님 성품의 유로이고, 하나님 역사에 대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발표를 통해 땅에서 하나님의 선민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는 진정 이 땅에 존재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경력하고 인식하고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도달한 효과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 실제에 온전하게 진입했을 때는 곧 하나님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경력이 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왜 하나님과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걸까요? 믿을수록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더 많이 느껴요! 예전에는 왜 이런 느낌이 없었을까요? 아무리 믿어도 그저 막연했었어요. 믿을수록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지금은 더듬을 수 있어요! 진리를 더듬을 수 있고, 실제도 더듬을 수 있어요. 진리 속에서 또 사실을 하나 보았어요. 진리는 확실히 하나님의 생명이고, 하나님의 생명 실제였어요! 모든 진리는 전부 하나님의 소유소시이고, 모든 진리는 다 하나님 성품의 유로이고, 하나님 생명의 유로였어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실제와 진리의 존재를 느낀다는 건 하나님을 본 것과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마주한 것과 같지 않을까요? 그런 효과에 도달한 게 아닙니까? 바로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