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9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 대한 설교 교통

【129-A-3】

사람이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하게 될까요? 첫 번째 효과는 바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 부복하여 경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효과는 더 이상 자신의 명리를 위해 분투하지 않고, 육체의 향락을 탐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효과는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서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찾고,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하면서 인생의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효과가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진리를 진정으로 알게 된 후에 도달하게 되는 효과가 맞나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알아요! 다 알겠어요!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쉬워서 금방 알 수 있네요.”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왜 깨달았다고 할 수 없을까요? 사람이 인식한 것에 이 세 가지 효과가 없다면, 정말 깨달았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진리는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하지만, 사람에게 진리로 인해 도달해야 할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죠. 진리의 글자 표면의 뜻을 아는 것으로는 정말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글귀 도리에 불과하고, 진리의 겉면만 아는 것으로 진실된 경험과 인식이 있다는 걸 대표하지 않습니다. 교계의 많은 목사들이 성경을 강해하는 걸 보면 아주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사람에게서는 아무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생명 성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악을 멀리하는 최소한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 걸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한다면 진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진리를 폄하하는 것이며, 진리에 대한 모독입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효과가 따라오게 됩니다. 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고, 여전히 조금도 변화되지 않은 옛 사람입니다. 일을 대하는 낡은 관점과 사탄의 낡은 논리만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는 조금도 순복하지 않고, 진실되게 경배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이름만 인정하는 정도에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그것은 기만이고 외식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글귀 도리를 조금 알아가지고는 여기저기서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다가 마지막에는 정죄받고, 성령의 역사를 잃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거짓 인솔자, 거짓 목자가 돼 도태됐죠. 왜 도태됐을까요? 진리를 멸시하고 경시하고 모독하고 우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겁니다. 진리를 눈으로 대충 한번 훑어 본다고 다 알게 되는 걸까요? 그게 진리일까요? 인간 세상의 지식처럼, 책 두 권만 읽으면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모두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깨닫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려야 할까요? 네, 그 누구도 단정하지 못합니다. 그럼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 경력을 해야 할까요? 본인 스스로 운명은 자기 손에 있는 게 아니라 확실히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걸 느끼고, 경력을 통해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확실히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이 진리를 깨닫게 되고 이 사실을 보게 되면 바로 정복된 것입니다. ‘그래, 완전히 인정하는 거야!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 앞에 순복할 거야!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거야! 내 자신의 명리, 지위, 앞날을 위해서는 어느 것도 계획하지 않을 거야! 오직 하나님만 따르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갈 거야! 내가 해야 할 본분을 잘 하면 마음이 편안한 거야! 이게 사람의 본분이니까! 이제 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 수 있게 됐고, 드디어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됐구나!’ 그때가 되면 정말 진리를 깨달았고, 정말 변화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까지 경력을 해야만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글귀 도리를 이해한 걸 진정으로 깨달았다고 착각하는데, 그건 너무 얕은 겁니다. 그렇다면 이 진리는 우리가 몇 년 정도 경력할 수 있을까요? 몇 년을 경력해야 제가 좀전에 말씀드린 그 몇 가지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 정도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야심과 욕망과 포부를 다 내려놓은 겁니다. 그게 바로 진리를 깨달아 얻은 효과이고, 진리를 깨달아 생긴 변화입니다. 아직도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어서 “그건 모를 일이야. 한 번만 더 해보고, 또 실패하면 그때 인정할 거야! 그때는 인류의 운명이 하나님께 달렸다는 걸 인정할 거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진리를 아는 걸까요? 한 번 더 뭘 해보겠다는 건,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 게 진리를 아는 걸까요? 그런 교만한 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현실 생활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고, 특히 어려움이 임했을 때는 더욱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고 이전부터 말해 왔습니다. 이 말이 실제적이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어려움에 부딪쳐도 진리를 찾고 구한다는 거예요? 그럼 기근이 임하게 된다면 어떤 진리를 구해야 합니까? 딱 한 가지 진리일 뿐인데요, 밥을 못 먹으면 배가 고프고, 밥을 못 먹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 며칠 굶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이 진리만 알 수 있지, 다른 진리는 알 수 있나요? 또 무슨 진리를 찾고 구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리를 찾고 구한다는 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찾고 구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일이 임하면 진리를 찾고 구한다고요? 전 그 말이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무슨 진리를 구한다는 거죠? 누군가 대학입시에 떨어졌다면, 그건 그 사람이 노력하지 않은 거잖아요! 다른 게 뭐가 더 있어요? 노력했는데 합격 못할 리가 있겠어요? 노력을 안 했으니까 떨어진 거죠. 그게 사실이고 그게 진리인 거죠.” 이런 말이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배부르게 먹을 줄밖에 모릅니다. 짐승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아셨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패역한 말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교통하겠습니다.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찾고 구할 진리가 도대체 있는지 없는지, 진리가 도대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해서 교통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성실한 사람이 되는 일에 관해서 봅시다. 다들 성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경력하고 있는데, 어떤 일이 닥치게 되어 거짓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후 반성하면서 “이건 아니야! 내가 거짓말을 했어!” 얼른 찾아가 사과합니다. “제가 좀 전에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제 맘은 사실 이런 거였어요. 정정할게요.” 그럼 상대방은 “성실한 사람이 되면 뭐가 좋은데요? 성실한 사람이 되면 안 죽는대요? 성실한 사람이 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답니까? 못 믿겠네요.”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이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멍청한 사람들은 ‘어? 이방인들의 말도 실제적이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게 진리일까? 정말 진리가 맞나? 진리가 존재하긴 하나? 내가 성실한 사람이 되면 좋은 결말이 있나? 대체 상이 있나? 정말 잘 모르겠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계속 성실한 사람이 돼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힘이 풀립니다. 김이 샙니다. 그건 무슨 문제일까요? ‘진리라는 게 대체 존재하나?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걸까? 대체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것이 맞긴 할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에 따라 실행하면 도대체 어떤 결말이 있게 되지? 하나님은 어떻게 대해 주실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긴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시험에 들게 되고, 이렇게 곤혹스러워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실패하고, 실행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서 정말 이런 시험이 들고 곤혹스럽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어떤 원인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지, 그 문제를 가지고 교통해 봅시다. 문제의 근원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누가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결국에는 “하나님이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이 말씀 한 마디에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할 자신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 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진리를 실행해도 힘이 나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고, 어려움도 너무 클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마음속에서 벌써 그 결과부터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나한테 어떤 이득이 될까? 이 문제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을 거야.”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사탄 논리 아닙니까?

지금 하나님 집에서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고 진리를 교통한 후에는 진리를 실행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럼 “제가 진리를 실행하면 어떤 이득이 있죠? 실행하고 나면 뭘 얻을 수 있어요? 뭘 보장할 수 있어요? 서명이라도 해 주시는 건가요? 서명이라도 해 주신다면 제가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을 때, 배상해 주시고 보상해 주셔야죠. 저는 지금 이득이 보이지 않습니다. 실행한 후에 불이익을 보게 될까 두려워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혀 취조를 당하면 처음에는 굽히지 않습니다. “난 당신들 말 안 들어!” “안 들어? 고문해!” 고문을 한바탕 들이대면 아파서 소리지릅니다. “항복! 항복! 다 말할게요!” 그리고 낱낱이 다 털어놓습니다. 왜 다 말한 겁니까?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자백할 수밖에…… 견뎌낼 수가 없었어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지켜 주십시오. 저의 육체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시지 않는다면, 전 유다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절 구해 주세요! 유다가 되지 않게 지켜 주세요.” 2, 3일을 기다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무런 역사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합니다. “됐어요! 전 기도했어요. 당신께서 역사하지 않으셨고 초자연적인 일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이 저를 고문하는 것도 막아 주시지 않았고요. 그럼 전 유다가 될 거예요.” 이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 진리를 실행하는 데 이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돼요? 전 그런 대가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면 누가 뭐래도 전 안 할 거예요! 전 더 이상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래요.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실행하는 대가가 너무 큽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가잖아요. 누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지한 자의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그럽니다. “아니에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는 그런 대가가 필요 없어요. 기껏해야 한 번 모욕을 당하고 바보란 소리 듣겠죠.” 하지만 진리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그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라고 요구하신 건 많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해야 하며,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따르며 모든 것을 버리고 간증을 굳게 서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는 그런 것도 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으로서 최소한 갖추어야 할 진리죠. 그런 진리들을 정말 다 실행하자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되는지 모릅니다! 이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일입니다.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는 대가도 치러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다 해도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것조차도 안 됩니다. 참 도이고, 하나님의 말씀이기만 하면 다 정죄되고 다 사교로 단정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하나님을 믿으면 바로 반혁명으로 몰렸습니다.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었습니다. 80년대 이후, 개혁개방이 되면서 정치적인 비판은 하지 않았으나, 어떤 죄명을 덮어씌웠죠? “사교 신도”, “사회 치안 교란”, “국가 정권 전복 도모” 등등 몇 가지 죄목을 씌웠습니다. 죄목 하나만으로도 몇 년을 감옥에 보낼 수 있고, 또 죄목 몇 개를 합치면 평생을 옥살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따르면서 진리를 실행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 정말 따라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데, 그런 믿음이 있으십니까? 그럴 만한 배포가 있으신가요? 그만한 믿음과 배포도 없다면 하나님을 따를 자격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지 아십니까? 민주주의 국가의 교회당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도 관여하지 않고 따지지도 않을 것 같습니까? 정말로 진지하게 제대로 믿으려고 하면 똑같이 관여하고 따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해 발표하신 말씀 뿐이죠. 도성육신을 통해 발표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성품인데, 곧 진리입니다. 사람이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 믿으면서 하나님 본 적 있어요?” “없어요.” “그럼 뭘 봤는데요?” “전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이 모두 진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그걸 실행할 수 있나요?” “글쎄요, 몇 년을 경력해 보니까, 저는 진리를 실행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체험했어요! 왜냐면 정말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성실한 사람이 되도록 실행하려면 고난도 받고, 박해도 받아야 하고, 인류에게 버림도 받아야 하고, 비웃음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진리를 접하게 되면 사람은 어렵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는 봤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런 말씀만 먹고 마시고 또한 이런 말씀만 인식하게 하는데, 이런 말씀들을 잘 먹고 마시고, 잘 깨닫게 된 다음 계속 경력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또한 우리가 직접 보고 경력해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