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9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 대한 설교 교통

【129-A-2】

방금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많은 진리를 발표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피조물인 우리가 다 알아야 할 진리이고, 갖춰야 할 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죠.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 이 말씀 제목 자체가 바로 진리이고 사실입니다. 아무도 외면하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이 구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시는 것 자체가 사실이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진리라는 걸 믿습니다.” 사람이 인정하든 안 하든,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든 그것은 다 사실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사랑하고 있고, 진리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이 진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상고해야 할까요? 만약 누군가 “전 이 말이 진리라고 인정합니다. 전 하나님의 이 말씀이 진리이고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왜 아니죠? 이건 깊이 생각해 볼 일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하면 진리를 갖춘 걸까요? 그런 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진리를 얻은 걸까요? 얻지 못했습니다. 얻지 못했다는 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첫째, 사람이 일을 판단하는 관점에 진리가 없고, 진리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본분을 하면서 원칙이 없고, 원칙을 운용할 줄 모릅니다. 셋째, 살면서 진리대로 살지 못했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의 삶에 진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상 몇 가지만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인정은 했으나, 진리를 이해했고, 인식했고, 얻었다는 걸 대표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정했다고 해서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정한 건 깨달은 게 아닙니다. 깨달았다고 해도 얻은 건 아닙니다. 이런 걸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얘기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온통 글귀 도리 뿐이고, 그저 얕은 사유와 관념 뿐입니다. 그걸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물의 실질을 인식하는 수준에 도달한 걸까요? 잠재의식에 있는 걸 알고 있고, 장악하고 있는 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사람의 사유와 인식이 모두 잠재의식 속에 있다면 진정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다 찾고 구해야 합니다. 찾고 구하면서 하나, 둘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경력하는 가운데서 진실로 깨우치고 더 많은 경력, 더 긴 세월의 경력, 오랜 시간의 경력을 통해 진리의 실질을 진정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돼야 진정으로 진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수년의 경력을 거치면,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잠재의식 속에 있는 그것이 아니라, 진리의 실제와 실질에 대해 알게 된 겁니다. 그때면 진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도 자연스럽게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일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선택하고, 가는 길까지 다 진리로 결정할 것이고, 진리의 영향을 받아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인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뒤에 “저는 이 말씀이 진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묵상해 볼 것도 없이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요.”라고 합니다. 그건 또 어떤 사람일까요?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고, 글자 표면의 도리와 뜻을 말할 수 있으니,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자 표면으로 알게 된 것이 진실한 경력과 인식을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경력 가운데서 인식하고 알아야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글자 표면의 뜻으로 아는 건 그저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알려면, 반드시 경력하고, 교통을 하고, 늘 묵상하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성령의 빛 비춤을 얻게 됩니다. 성령의 빛 비춤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성령의 빛 비춤을 얻게 되면, 진리의 실제를 깨닫기 시작하게 되고, 진리의 핵심과 실질을 알게 됩니다. 성령의 빛 비춤이 없으면, 그저 글귀 도리에 지나지 않는 얕은 것들만 알게 될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리의 실제에 대해 교제를 하면 느낌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교통해 주시니까 실제적이라서 마음에 쏙쏙 들어오네요.” 그리고 누가 글귀 도리를 말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틀렸어요. 당신이 말하는 건 글귀 도리뿐이라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전 안 들을래요. 당신이 말한 것들은 저도 알고 있거든요.” 그러므로 누가 진리를 정말 알고 있는지, 사실 서로 거울처럼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한다면 먼저 뭐부터 묵상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보세요. 이 말씀들은 전부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매 단락의 뜻은 전부 이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전부 한 효과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효과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겁니다. 그럼, 인류가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아무도 부인하지 않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경우, 어떤 효과가 나타나게 될까요? 전 인류가 참 하나님의 존재를 당연하게 인정할 것이고, 동시에 참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아무도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민족이나 국가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다 멸하십니다. 이건 사실이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셨고, 율법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대통령, 황제,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모두 멸하셨습니다. 그 사실들은 역사에 분명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기억을 되살려 보면, 그 역사들이 전부 사실이란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 기록된 사실들을 쓰셨는데, 어떤 효과에 도달하고자 하시는 걸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확실히 주재하고 계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걸 알지 못하고 “우린 하나님이 존재하시는지 잘 몰라요. 하나님이 대체 존재하시긴 한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그럼 인류의 역사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하나님께 대적했던 자들이 왜 전부 훼멸됐을까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다면 그 사실들은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요? 하나님께 대적했던 자들이 훼멸되었는데, 그럼 그건 누가 멸했을까요?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자연히 하나님께서 멸하신 겁니다. 사람이 멸할 수 있을까요?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 오직 조물주만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분별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주재의 진실성을 증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도성육신하셔서 구속 사역을 하실 때, 로마 정부와 유대교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하나님께서 멸하셨는데, 바로 이스라엘이 멸망됐죠.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끝이 오면 이스라엘은 다시 재건될 거라고 이스라엘에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적한 죄를 가만두지 않으셨고, 국가를 멸하는 벌을 주셨는데, 그것도 장장 2천년 동안 망국의 아픔을 맛보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적한 다른 나라의 결말을 볼까요? 고대 로마 정권은 하나님께 맞서면서 기독교인들을 약 300여년 가까이 잔혹하게 박해했습니다. 결국엔 그 나라도 하나님께서 멸하셨습니다. 온 나라에 온역이 돌아 로마 제국의 사람들 열에 여덟아홉은 다 온역으로 죽어 나갔고, 거리마다 전염병으로 죽은 자들이 여기저기 널리게 됐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도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하나님께 대적한다면 스스로 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든 하나님께 대적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멸하십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고 계신다는 걸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항상 사람은 대자연으로부터 왔고, 만물 역시 대자연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합니다. 대자연에는 주재자가 없고 전부 자연히 생겼다고 합니다. 그 말이 성립되나요? 자연히 생겨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그 어떤 것도 자연적으로 생기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진흙탕에서 모기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럼 진흙탕은 어디에서 생긴 걸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진흙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사람은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과학자들은 복제 양과 복제 소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득의양양해서는 “복제 양과 복제 소의 꿈을 실현한 다음, 우리는 사람을 복제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양과 소를 복제했나요? 실패했죠.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천지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계십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됐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 제목,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고 할까요?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수없이 몸부림 쳐보고, 시도를 해보고 나서 마지막에는 사람의 운명이 자신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 어떤 목적에 도달하고 싶다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았다면 영원히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각 사람의 운명은 전부 하나님께서 정하셨고 전부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업종에 종사하라고 정하셨으면 아무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가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학을 선택했습니다. “의학, 괜찮죠, 밥 벌어 먹기 좋고, 병도 치료하고, 사람도 구할 수 있죠.” 근데 의대를 졸업한 다음 생각이 바뀝니다. ‘의학은 사람의 몸을 구할지 몰라도 생명과 영혼은 구하지 못해. 정치를 해야겠어.’ 보세요! 또 변합니다. ‘그럼 문학적인 일을 해야지. 글을 써야겠어!’ 그리곤 글을 쓰게 됩니다. 그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 걸까요? 사람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공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이죠? 그러나 졸업을 한 뒤에는 생각이 바뀝니다. 계획은 늘 변화보다 빠르지 못하죠. 그건 뭘 말할까요? 사람의 운명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런 운명을 주신다면 그게 사명인 겁니다. 사람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음악을 합니다. 실패해도 계속 합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됩니까? 오랫동안 노래에만 매진하고, 또 수년간 실패의 쓴 잔을 마시고, 수년 동안 좌절을 겪으면서도 노래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운명이야. 어쩔 수 없어!” 마지막엔 끝내 노래로 성공합니다. 그게 바로 운명이 아닙니까? 어떤 이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쓰다가 힘들어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안 돼, 안 쓸 수가 없어, 내 마음속에 담아둔 그 많은 말들, 반드시 써야 해!” 그리고 또 쓰기 시작합니다. 보세요! 어떤 이는 교사가 되어 수년을 강단에 섭니다. 싫어도 계속 가르칩니다. 누가 반대해도 또 가르치게 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정해 주신 그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사람이 인간 세상에 오게 되면 다 부탁을 하나씩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이 온 것은 바로 어떤 일에 종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습니다. 큰일을 하도록 정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황제가 되고, 어떤 이는 총리가 되고, 또 대통령이 되려고 이 세상에 옵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을 보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날 즈음, 주변 사람들은 죽기 시작합니다. 몇 년 뒤에 한 명이 죽고, 또 몇 년 뒤에 한 명이 죽고, 다 죽고 나면 그 사람도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됩니다. 그 주변 사람들이 사명을 다 했기 때문에 그 사람도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온 겁니다. 속담에 “윗사람이 바뀌면 아랫사람도 바뀐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겁니다.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이 그렇게 싸우면서도 이혼하려고 해도 이혼할 수가 없으니,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게 다 팔자야!” 그게 바로 운명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고부터 마음이 그렇게 편안하고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좌절을 만나고 환난과 핍박이 임하면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대체 세상이 왜 이래! 나라가 왜 이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박해할 수가 있지? 하나님을 믿는 게 얼마나 좋은데.” 몇 번이나 연약해지고 낙심도 하지만 물러설 수 없습니다. 안 믿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고 피를 토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믿겠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믿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알게 되죠. 이건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정하시고 택하신 거구나! 아무도 벗어날 수 없구나! 도망가도 돌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돌아갑니다. ‘장사할 거야! 안 믿겠단 말은 안 해!’ 그런데 어딜 가나 밑지고, 어딜 가나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돌아와서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기에 아무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방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왜 저렇게 바보 같지?” 이게 바보 같은 일인가요? 이건 총명한 것도, 바보 같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겁니다. 바보 같다는게 뭔 말입니까? 지금 그렇게 핍박받고 있는데도 그 사람들은 계속 따르면서 믿고 있습니다. 그걸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갖은 핍박을 다 받고, 온갖 고난을 다 감내한 뒤에,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게 바보스러운 걸까요? 그건 대단히 총명한 겁니다. 보세요, 어떤 게 바보 같은 것이고, 어떤 게 총명한 것인지는 결과와 결말을 근거로 정해지는 겁니다! 일시적인 육체적 고통과 수모를 얼마나 받았느냐로 보면 안 됩니다. 그것은 결과와 무관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