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5집 (a)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에 대한 설교 교통

【125-A-8】

소질이 좋은 사람은 한 가지 일이 임하면 정확하게 보고, 꿰뚫어 봅니다. 인식한 정도는 하나님 말씀에 근접하고, 하나님 말씀에 부합되어 사람들이 들으면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죠. 이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식견이 있고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소질이 좋은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쉽고, 진리를 얻기 쉽습니다. 소질이 좋은 사람이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늘 설교를 들으면 외적인 일에 대해, 진리와 무관한 일에 대해 점점 더 싫어지고, 그런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져 “그건 중시하지 말자. 쓸모없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 추구하는 것은 다 진리와 관련된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의미 없는 일과 무료한 사람은 상대하지 않고, 눈에 거슬려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게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은 생각할 줄 알기 시작한 겁니다. 보통말로 하면 그런 사람은 바른 일을 하기에 앞길이 창창합니다! 바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늘 진리와 무관한 그런 소소한 일을 하며 살면서 말할 때는 늘 그런 쓸모없는 작은 일과 하찮은 일에 대해 담론하고 논쟁합니다. 그런 사람은 다 식견이 없는 사람, 무료한 사람에 속합니다. 그 사람들은 한가하면 잡담하는데, 자신들의 생활에 대해 잡담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과 사귀면 장래성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과 섞여 있으면 바로 돼지와 같이 살고 개와 같이 사는 것인데, 아무런 의의도 없습니다. 한평생을 살아도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사람이 늘 남녀간의 일을 중시하면 좋습니까? 누가 누구와 붙어 있다든가, 누가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다든가, 누가 누구와 연애를 한다든가,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다든가, 누가 누구와 눈을 맞추고 추파를 보냈다든가 하는 늘 이런 지저분한 일들을 담론하면, 쓸모없고 무의미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멜로 영화를 보기 좋아하는데, 의의가 있습니까? 이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은 다 진리와 무관한 일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할 일 없는 사람들로 장래성이 없습니다. 반드시 도태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런 걸 보고, 그런 걸 마음에 담아 뭐 합니까? 그런 일들을 많이 담고 있으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영향을 주고, 바른 일을 생각하는 데에 영향을 주며, 본분하는 데에 영향을 줍니다! 제일 할 일 없는 사람은 게임을 하는 사람입니다. 노트북이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데, 각급 인솔자 일꾼은 이런 사람을 얼른 조사해서 그 사람들의 본분을 정지시키세요. 들으셨죠? 그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은 진리와 무관한 일만이 아니라, 그것은 육체의 정욕을 방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본분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 인간쓰레기이고, 다 폐물이며, 다 진흙을 담벼락에 바르지 못하는 것처럼 무능하고 쓸모없기에, 얼른 도태시키고 철저히 도태시키세요!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바로 게임을 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하찮은 휴대폰을 가지고 매일 게임하고, 한가하면 게임하면서 본분을 하지 않습니다. 얼른 그런 사람들을 내보내세요. 그런 사람들은 한평생이라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겁니다. 장래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게임하지 않는 사람들도 진리를 추구해서 바른길에 들어설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데, 늘 게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진리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많은 설교를 듣고 벌써 추구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얼른 도태시키고 깨끗이 제거하세요! 알아들으셨죠? 어떤 사람들은 아무 진리도 없고, 아무 원칙도 없으며,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외적인 일에 대해 여러 번 말해도 그런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고, 또 뒤에서 함부로 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방해가 아닙니까? 외적인 일은 한 번 말해 주면 기억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아무리 많이 말을 해 줘도 기억하지 못하고 또 방해합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런 사람은 마땅히 도태시키고 폐기시켜야지, 본분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교통하는 걸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인식이 깊지 못하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진리에 관련되는 일은 말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또 경력해야 하고, 일부분 받아들인 다음 다시 한동안 경력하고 또 깊이 진입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상입니다. 하지만 외적인 일은 한 번 말하면 분명히 알고 조금만 지적해 줘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모르고 아무리 많이 말해 줘도 잘 모릅니다. 이런 사람에게 마음이 있습니까? 생각이 없지 않습니까? 짐승이 아닙니까?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별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런 사람에 대해 제일 화가 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봅시다.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 이 책의 630번 단락입니다. “사람이 육체에서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육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바로 육체의 정욕 속에서 살고, 애호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누림만 중시하는 사람들, 육체의 관념과 상상만으로 일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바로 육체 속에서 사는 사람, 즉 육체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육체에 속하는 사람은 바로 인간 지옥에서 삽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은 지옥에서 살지 않는데요?”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인간 지옥에서 산다는 건 뭘 가리키는 것입니까? 패괴 성정에서 살고, 패괴된 육체에서 사는 것인데, 이것이 지옥에서 사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사는 가장 주요한 실질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고,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며, 어둠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은 다 인간 지옥에서 사는 것입니다. 설사 지금 죽지 않았다고 해도 죽으면 바로 지옥에 내려갑니다. 여기에서 “바로 인간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인간 지옥에서 사는 사람은 죽은 다음 지옥에 가는 게 아닙니까?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여러분이 참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살았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진정으로 천국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완전히 육체에 속하는 사람이고, 완전히 육체 속에서 살고, 육체의 정욕과 애호에 따라 일을 하고 일을 판단한다면, 그건 끝장난 겁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 이런 사람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보세요, 어떤 사람이 말을 하고 일을 하고 평소에 중요시하는 것이 다 진리와 무관한 일이고, 다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면, 그 사람은 육체에 속하는 사람인데, 완전히 지옥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받을 희망이 제로입니다. 특히 늘 게임을 하는 그런 사람들, 휴대폰 가지고 게임만 하면서 밥 먹는 것도 다 까먹고, 잠 자는 것도 미루는 그런 사람은 다 지옥에서 사는 사람이므로 다 멸망될 것입니다. 제가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사실대로 알려 드리죠.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헛되이 믿는 것입니다!

심판이 없고 형벌이 없으면 사람이 다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러운데, 어찌 성결해질 수 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는 것이고,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깊이 패괴된 인류가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심판과 형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심판과 형벌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심판과 형벌 외에는 다른 방식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교계에서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생명책에 분깃이 있고, 천국에 분깃이 있습니다.”라고 아무렇게나 떠들어 대는 걸 듣지 마세요. 그건 허튼소리입니다. 그것은 허튼소리이고, 사람을 속이는 말입니다. 없는 일입니다. 알아들으셨죠? 미혹되시지 않겠죠?

“베드로는 이렇게 여겼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은 사람에게 제일 좋은 보호이고, 제일 큰 은혜이다.” 베드로의 이 관점이 지금 우리의 관점과 같지 않습니까? 이 일을 우리도 분명히 봤습니다. 우리의 경력을 베드로의 경력과 등호를 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점이 어떻게 베드로의 관점과 같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갓 믿었을 땐 이런 관점이 없었고, 도달할 수 없었으며, 이런 인식이 없었지만, 몇 년을 경력한 후 지금은 이런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인식이 있으면 어떤 땐 수리 대처가 임하고, 어떤 땐 좌절을 당하며,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어떤 땐 어둠 속에 떨어져 징벌을 받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가 아닙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까? 정말로 이 일을 꿰뚫어 본다면 그것은 베드로의 인식과 같고, 정말로 베드로의 인식과 베드로의 분량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베드로의 분량이 없고, 더욱이 베드로의 인식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여겼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은 사람에게 제일 좋은 보호이고, 제일 큰 은혜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경력해 낸 것이지, 아무렇게나 한 마디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정말로 이런 인식이 있다면 심판 형벌이 임할 때 순복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만약 “저는 찬미가 안 나옵니다. 저는 아직도 원망이 있고, 아직도 대립되는 것이 있는데요!”라고 말한다면 아직 베드로의 분량과 인식이 없고, 베드로의 그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해야만 사람이 각성할 수 있고, 육체를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할 수 있다.” 사람이 육체를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하는 것은 심판과 형벌로 도달한 효과에서 생긴 것입니다.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지도 않았는데 육체를 증오하겠다고 하는 것은 상상뿐이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습니다. 육체를 증오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엄한 징계는 사람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 빛 가운데서 살 수 있게 하였다.” 엄한 징계가 임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엄한 책망과 훈계, 심판과 형벌은 어떤 때는 징벌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않고 육체를 따라 했더니, 나중에 거기에서 ‘덜컥’ 가로막혀 일이 안 풀리고, 손해를 봤습니다. 그것은 꼭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엄한 징계입니다. 사람은 징벌이 임했고, 하나님께서 노하셨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럼 사람에게 이런 느낌이 있게 해서 도달한 효과는 무엇입니까?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징계가 임하면 벗어 버리기 쉽고, 내려놓기 쉽고, 순복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육체를 포기하기 쉽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한 징계로 도달한 것입니다. 엄한 징계가 없다면 죽어도 벗어나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럼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의 엄한 징계는 우리에게 도대체 은혜와 축복일까요 아니면 증오와 저주일까요? 이번엔 정말로 잘 아시겠죠? 하나님을 오해하시지 않겠죠? 원망하시지 않겠죠? 그럼 어떤 때 제가 여러분에게 엄하게 말하는 건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맞을까요? 성령에게서 나온 게 맞을까요?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순복할 줄 알아야 하고, 원망 없이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합니다. 이런 순복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에 순복하는 것이지, 저에게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순복할 때 어떻게 말해야 될까요? “저는 사람한테 순복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에 순복하는 겁니다.” 이렇게 밝혀야 합니까? 여러분이 일단 밝히면 순복이 없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예전에 제가 한 사람을 대처하니, 그 사람이 “저는 하나님께 순복하지, 사람에게 순복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원망을 품고 그 말을 한 것이지, 그건 진실한 순복이 아닙니다. 진짜 순복은 마음에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건 하나님에게서 나온 거니까 순복해야지. 절대적으로 순복해야지. 다른 말 할 것 없어.’라고 하면서 순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임하면 좋은 일입니까 아니면 나쁜 일입니까? 축복입니까 아니면 저주입니까? 축복입니다. 왜 축복이라고 합니까? 바로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징계하셔야만 사람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육체를 배반하고 포기하며, 육체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육체의 통제에서 벗어나야만 “자신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 빛 가운데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육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육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살면 사람이 무엇을 중시합니까? 육체적인 누림과 먹고 입는 것, 경제와 이익, 그리고 정감 등이 있는데, 친척, 친구, 지인, 가족 구성원을 포함한 그 좁은 세계입니다. 그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 진리의 범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어도 어떤 사람은 심판과 형벌, 수리와 대처를 경력해서 자기의 남편(아내)을 대하든 아니면 형제자매를 대하든 차별 없이 다 똑같이 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는 듣기 좋게 말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부부간에 또 다른 말을 하는데, 교회에서 하는 말과 다릅니다. 이건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난 것입니까? 그런 사람은 벗어나지 못했고, 아직도 육체와 정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와 정감 속에서 어떤 말을 하고, 교회에 가서 또 다른 공식적인 말을 하는데, 그것은 외식하는 것이 아닙니까? 광명 속에서 사는 사람은 사람 뒤에서 하는 말과 교회 생활 가운데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 같습니다. 이야말로 진정 광명 속에서 사는 사람이죠. 광명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정형입니까? 여기에서 “자신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 빛 가운데서 살 수 있게 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 빛 가운데서 산다’는 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는 것인데, 이것을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났습니까? 자기 육체의 범위에서 벗어났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을 늘 중시하면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까? 육체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바로 인간 지옥에서 살고, 어둠 속에서 살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심판 형벌은 참으로 제일 좋은 구원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진리를 깨닫고, 육체를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하며, 나중에 자기 육체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자기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 빛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는 길입니다.